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팔토 라틴어: Publius Valerius Faltō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조부) 퀸투스 발레리우스 팔토(아버지) 퀸투스 발레리우스 팔토(형제) |
직업 | 로마 공화국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238년 |
전임 | 퀸투스 발레리우스 팔토 가이우스 마밀리우스 투리누스 |
동기 |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 |
후임 |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카우디누스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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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고대 로마의 대표적인 파트리키 가문인 발레리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파스티 카피톨리니에 따르면, 조부와 아버지는 각각 푸블리우스, 퀸투스라는 프라이노멘을 사용했다고 한다. 조부의 코그노멘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많은 학자들은 포플리콜라였을 것이라 추정하며, 아버지 퀸투스부터 팔토라는 코그노멘을 사용했다. 형제로 기원전 239년 집정관 퀸투스 발레리우스 팔토가 있었다.기원전 238년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학자들은 형제 퀸투스가 기원전 239년 집정관을 역임하면서 그를 지원해줬을 거라고 추정한다. 그는 갈리아 키살피나 속주를 임지로 부여받고 갈리아인들과 전쟁을 벌였다. 파울루스 오로시우스에 따르면, 첫 전투에서는 갈리아인들이 3,500명의 로마인을 전사시키며 승리했지만, 두번째 전투에서는 로마군이 완전한 승리를 거두어 14,000명의 갈리아인이 전사하고 2,000명이 포로로 전락했다고 한다. 이후 로마로 돌아와서 개선식을 치르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첫번째 전투에서 패한 것 때문에 거부당했다고 한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