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메살라 라틴어: Marcus Valerius Maximus Messalla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코르비누스(조부) 마니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코르비누스 메살라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아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손자) |
직업 | 로마 공화국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226년 |
전임 |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 |
동기 | 루키우스 아푸스티우스 풀로 |
후임 |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푸스 가이우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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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고대 로마의 대표적인 파트리키 집안인 발레리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조부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코르비누스는 기원전 289년 집정관을 역임했으며, 아버지 마니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코르비누스 메살라는 기원전 263년 집정관, 기원전 252년 감찰관을 역임했으며, 메시나 공략에 성공하고 고대 카르타고-시라쿠사 연합군을 물리치고 시라쿠사 참주 히에로 2세의 귀순을 받아낸 뒤 메시나 함락을 기념해 메사나를 본뜬 메살라(Messalla)를 자신의 아그노멘으로 삼았다. 이후 후손들은 대대로 메살라를 코그노멘으로 사용했다.파스티 카피톨리니에 따르면, 그는 기원전 226년 루키우스 아푸스티우스 풀로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고대 사료에서는 두 집정관의 행적에 대해 전혀 전하지 않았다. 제2차 포에니 전쟁이 한창이던 기원전 210년, 그의 친척인 집정관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라이비누스의 지휘하에 시칠리아 함대 지휘관을 맡았다. 그 해 연말에 라이비누스가 로마로 떠났을 때, 그는 50척의 함대를 이끌고 아프리카를 습격해 유티카 주변 지역을 약탈하고 풍부한 전리품을 확보한 후 13일 만에 라이베이움으로 데려갔다.
얼마 후, 포로들이 하스드루발 바르카에게 보내기 위해 아프리카 전역에서 용병을 모집하고 있으며, 하스드루발이 장차 시칠리아를 공격하기 위해 대규모 함대를 준비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그는 즉시 로마에 이 소식을 전했고, 라이비누스는 원로원에 그를 시칠리아 방어를 위한 독재관으로 지명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원로원은 그런 임명은 로마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며 거부했고, 민회는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를 독재관으로 선출했다. 라이비누스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어서 비밀리에 로마를 떠났다. 결국 선거는 무효 처리되었고, 라이비누스는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은 채 시칠리아에서의 지휘를 기원전 206년까지 수행할 수 있었다.
이후 기원전 206년까지 시칠리아 해군을 이끌었다는 기록을 끝으로 더 이상의 행적이 전해지지 않는다.
아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는 기원전 188년 집정관을 역임했고, 손자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는 기원전 161년 집정관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