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 라틴어: Tiberius Sempronius Gracchus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지위 | 노부스 호모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가이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조부)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아버지)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아들) 푸블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아들) |
직업 | 로마 공화국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238년 |
전임 | 퀸투스 발레리우스 팔토 가이우스 마밀리우스 투리누스 |
동기 |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팔토 |
후임 |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카우디누스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
[clearfix]
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고대 로마의 저명한 노빌레스 가문인 셈프로니우스 씨족에서 최초로 집정관에 오른 인물이다. 파스티 카피톨리니에 따르면, 조부는 가이우스, 아버지는 티베리우스라는 프라이노멘을 사용했다고 한다. 기원전 246년 평민 조영관에 선임되었다. 이 무렵, 클라우디아가 경기장에 참석했다가 평민들이 워낙 많이 있어서 좀처럼 빠져나가지 못하자 "오빠가 살아있었다면 이 쓸모없는 평민들을 다시 한 번 물속에 쳐넣었을 것을!"이라고 외친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동료 조영관 가이우스 푼다니우스 푼둘루스와 함께 클라우디아를 로마인을 모욕한 혐의로 고발했고, 클라우디아는 막대한 벌금을 내야 했다. 두 조영관은 이 벌금을 아벤티노 언덕에서 건설될 예정인 리베르타스(Libertas: 자유의 여신) 신전 건설 자금으로 돌렸다.기원전 238년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팔토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에 따르면, 로마 역사상 처음으로 리구리아인과 싸운 집정관이었다고 한다. 이후 사르데냐에서 용병 전쟁을 일으킨 용병들이 로마 원로원에 구원을 요청하자, 그는 원로원의 지시에 따라 사르데냐로 진군해 그곳을 장악했다. 카르타고 정부는 자국의 영역에 군대를 진주시킨 로마의 행위에 항의했지만, 로마 정부는 사르데냐인들의 보호 요청을 받아들였을 뿐이며 조약에 적시된 "추가로 양도해야 하는 섬"에 사르데냐가 들어갔을 뿐이라고 답했다.
파울루스 오로시우스에 따르면, 에트루리아 남동쪽에 살던 팔레스키인과 로마인들이 그가 집정관을 맡던 시기에 전쟁을 벌였고 15,000명의 팔레스키인이 전사했다고 한다. 하지만 에우트로피우스는 팔레스키인과 로마인의 전쟁은 아울루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아티쿠스와 퀸투스 루타티우스 케르코가 집정관을 역임하던 기원전 241년이라고 주장했다. 이외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에게는 두 아들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와 푸블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가 있었다. 티베리우스는 기원전 215년과 기원전 213년에 집정관을 역임하면서 노예군을 이끌고 한니발 바르카의 카르타고군을 상대로 활약했다. 푸블리우스는 별다른 행적이 전해지지 않으나,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그라쿠스 가문을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