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나 라틴어: Publius Cornelius Scipio Asina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바르바투스(조부)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나(아버지) |
직업 | 로마 공화국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221년 |
전임 |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칼부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
동기 | 마르쿠스 미누키우스 루푸스 |
후임 | 가이우스 루타티우스 카툴루스 루키우스 베투리우스 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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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고대 로마의 대표적인 파트리키 가문인 코르넬리우스 씨족 중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스키피오 지파의 일원이다. 조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바르바투스는 기원전 298년 집정관, 기원전 280년 감찰관을 역임했으며, 제3차 삼니움 전쟁에서 활약했다. 아버지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나는 기원전 260년과 254년에 집정관을 역임했고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 활약했다.기원전 221년 마르쿠스 미누키우스 루푸스와 함께 집정관을 역임했다. 두 집정관은 아드리아 해에서 해적질을 일삼는 이스트리아인과의 전쟁에서 군대를 통솔하였고, 이들을 로마에 예속시킨 뒤 로마로 귀환하여 개선식을 거행했다. 기원전 218년 플라켄티아 식민지를 건설하는 임무를 맡은 위원회의 일원이었으며, 기원전 217년 집정관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가 트라시메노 전투에서 한니발 바르카의 카르타고군에 의해 전사하자 인터렉스에 발탁되어 새 집정관으로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를 지명했다.
기원전 211년, 한니발 바르카가 카푸아 공방전을 수행하고 있는 로마군을 유인하기 위해 로마로 쳐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이 카푸아 방면 로마군 지휘관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의 급보를 통해 전해지자, 원로원은 즉시 회의를 소집해 어찌 대처할 지 논의했다. 이때 그는 로마를 방어하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싸우는 모든 사령관과 군대를 소환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많은 의원이 이에 동조했다.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는 카푸아 포위망을 풀지 않고도 로마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있는지 알아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는 한니발이 군대를 로마 쪽으로 유인하려고 허세를 부리는 것뿐이니, 어떤 군대도 로마로 돌아오게 하지 말고 농성만 하면 된다며 묵살했다. 결국 한니발은 며칠간 성밖에서 시위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자 물러났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