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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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동남부 우크라이나 병합 Annexation of Southern and Eastern Ukraine |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일부 | |
합병 선언 | |
2022년 9월 30일[1] 러시아 연방 모스크바 크렘린 성 게오르기 홀 | |
합병 영토 | |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자포로지예주, 헤르손주 | |
원인 |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 |
근거 | |
우크라이나 점령 지역의 러시아 편입에 관한 국민투표 |
[clearfix]
1. 개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점령한 지역인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헤르손주, 자포로지예주를 병합한 사건이다.영국의 BBC는 이를 유럽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영토 침탈(Europe's biggest land grab since World War 2)이라고 표현했다. # 러시아는 이번 전쟁을 통해 우크라이나로부터 108,915km²의 영토를 공식 병합하였다. (2014년에 병합한 크림 공화국과 세바스토폴 연방시까지 포함 시 총 136,075km²) 그러나 현 시점에선 우크라이나의 탈환 등으로 인해, 실효 지배 면적 자체는 위에 언급한 면적보다 근소하게 적다. 러시아로 편입된 지역의 면적은 우크라이나 영토의 20%를 전후하는 수준이며, 남한 면적(100,449km²)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병합한 4개 지역 인구는 약 700만 명 가량으로 우크라이나 전체 인구의 약 16% 정도이다.
2. 경과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와 도네츠크, 루간스크가 점령한 지역 대부분을 러시아에 편입하기 위한 국민투표인 우크라이나 점령 지역의 러시아 편입에 관한 국민투표가 실시되었고, 그 결과로 9월 30일 푸틴 대통령이 국가안보위원회 화상회의에서 점령지인 헤르손 군민정청, 자포로지예 군민정청, 그리고 친러 성향의 미승인국인 루간스크 인민공화국과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을 러시아의 정식 영토로서 합병을 선언하였다.2.1. 국민투표
자세한 내용은 우크라이나 점령 지역의 러시아 편입에 관한 국민투표 문서 참고하십시오.2.2. 합병식
2022년 9월 30일 크렘린 궁전에서 합병식이 이루어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37분간의 연설을 가져 동남부 우크라이나 4개 연방주체에 대한 러시아 연방으로의 합병을 선언했다. 연설 영어 전문 합병식 영상
연설 번역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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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과 병합지 수반 4인방 | ||||
헤르손 블라디미르 살도 | 자포로지예 예브게니 발리츠키 |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 도네츠크 데니스 푸실린 | 루간스크 레오니트 파세치니크 |
▲ 합병식 영상 |
2.2.1. 공연
«국민의 선택. 영원히 함께» «Выбор людей. Вместе навсегд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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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붉은 광장, 모스크바 연방시 | |||
날짜 | 2022년 9월 30일 | |||
주최자 | 블라디미르 푸틴 |
합병지 수반 4명, 류베를 포함한 러시아의 유명 가수들이 연설과 콘서트를 진행했다.
2.3. 조약 비준
10월 2일 러시아 헌법재판소는 2개 공화국과 2개 주를 러시아 연방에 편입하는 것이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특히 이날 러시아 연방 헌법재판소는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및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이 공화국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과 헤르손주 및 자포로지예주가 주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모두 합헌으로 결정하면서 4개 지역 모두 기존의 지위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결정되었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이들 4개 지역이 9월 30일 조약이 체결된 순간부터 러시아의 영토로 편입되었다는 것도 확인했다.# 이렇게 한 것은 외형상 네 곳이 독립국이 되어 러시아와 합병(편입)하는 국제조약을 체결하는 형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국가두마는 10월 3일 우크라이나 점령지 4곳을 영토로 편입하는 조약과 관련 법안을 만장일치로 비준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대로 새로 편입되는 지역은 기존 명칭과 지위를 그대로 유지한다. 또한 해당 지역의 화폐는 러시아 루블로 하며, 2022년 12월 31일까지는 우크라이나 흐리우냐를 병용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10월 4일 상원인 평의회에서 조약 비준과 관련 법안이 만장일치로 통과 되었고, 당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최종 서명 및 공포하면서 합병에 대한 모든 법적 절차가 마무리되었다.# 발표는 10월 5일에 했다.
10월 4일부로 러시아 구성주체를 명시하는 러시아 헌법 제65조에 4개 지역이 추가되었으며, 이와 같은 수정·보충 사항은 10월 6일에 공포되었다.21쪽부터
3. 병합 이후
이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지만 합병한 지역들에서 루블화와 러시아 학제 도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양측 전선이 어느정도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고, 서방에서도 평화협상을 기대하며 양국을 지켜봤으나 크렘린궁에서는 서방과의 대화조건으로 "동남부 우크라이나 병합지역을 러시아 고유 영토로 인정, 우크라이나 지원 즉각 중단 등의 조건을 내걸면서 4개 지역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반면 서방과 우크라이나에서는 크리스마스 이전까지 국제법에 의거한 우크라이나 영토 내(크림 공화국 포함)에서의 조건없는 러시아군 철수를 내걸면서 우크라이나 역시 물러서지 않고 있다. 러시아의 협상안은 사실상 우크라이나 전쟁을 언제든 재개하겠다는 다짐이나 다름 없는데다 멀쩡한 영토를 대놓고 뜯기는 특성상 젤렌스키 정권에게 대놓고 매국노 및 사형선고를 때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협상안이고, 우크라이나와 서방의 요구 역시 기껏 전쟁을 시작해 수많은 인명을 갈아넣고도 오히려 2014년에 얻은 크림반도까지 내놓으라는, 푸틴 정권에게 대놓고 사형선고를 때리는 협상안이나 다름없는지라 협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아예 없는 상황이다. 거기다 러시아 내의 여론조사에서도 평화협상 찬성 기류는 높아졌으나, 합병한 지역을 포함한 점령지를 반환하는 것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과반수 반대의 결과가 나오면서 협상은 평행선을 달릴 것으로 보인다.
4. 문제점
전쟁 중에 점령한 영토의 기존 소유국인 우크라이나와 평화협상 등 일말의 합의나 동의 없이 지역주민들이 결정하는 것이라며 일방적으로 투표를 시행한 뒤 그 결과로 합병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국제법적으로도 국제정치적으로도 문제가 된다.페스코프의 인터뷰에 따르면 공화국 2곳은 '2014년의 경계'로 병합하고 두 개 주는 주 전체의 행정구역을 병합한다고 한다. # 그런데 이번에 병합한 4개 지역 중 러시아가 완전히 점령한 지역은 단 하나도 없다.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은 잠시나마 러시아가 완전히 점령한 적이 있었지만 우크라이나의 가을 공세로 서부 지역에서 밀려났다.
우크라이나군의 공세가 시작된 후에도 러시아군은 수 개월간 헤르손 전선의 스니기룝카에서 버티며 점진적으로 철수했고 11월 초 헤르손에서 전원 철수했다. 이러한 지역에 대해 러시아 측은 "일시적으로 우크라이나에 의해 점령된 러시아 영토"라고 명명하고 있다.
5. 반응
5.1. 유엔
당일 UN 안보리에서 러시아의 합병을 규탄하는 성명에 대해 투표를 하였으나 당연히도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여 흐지부지되었다. 해당 투표에서 중국, 인도, 브라질, 그리고 가봉이 기권했다.이후 2022년 10월 12일 유엔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동남부 병합 불법 결의안을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반대표는 러시아, 북한, 시리아, 벨라루스, 니카라과 5개국이며 중국을 포함한 35개국은 기권했다.#,사진 세르비아 같은 상당수 친러 국가들도 찬성 또는 기권했는데, 이는 자국 내의 분리주의 세력들에게 명분을 주지 않으려면 진영과 상관없이 러시아편을 들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홍콩, 대만, 티베트 자치구, 신장 위구르 자치구 등의 문제가 있으며, 세르비아는 코소보 문제가 있다.
5.2.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의 영토 병합 선언에 맞서 "점령자 축출만이 평화회복의 길, 푸틴과 대화 불가"를 천명하고 항전을 다짐했다.# 종전 협상은 가능하다고 얘기했지만 조건은 다른 러시아 대통령이 협상장에 와야 한다는 걸 걸었다. 이는 다시 말해 푸틴과는 그 어떤 협상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인 셈이다. 이 점은 아예 명령으로 못박아버렸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신청서에 공개 서명했다.## 또한 차후 영토해방 계획도 제시했다.#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이 우크라이나 동남부 일부 지역에서 러시아 합병에 대한 국민투표를 조직한 혐의로 기소된 16명의 "협력자" 목록을 발표했다.#
5.3. 미국
즉각 크렘린 고위 관리들에 대한 제재를 그들의 부인과 성인 자녀까지 포함하도록 확대, 러시아의 군사 공급망을 지원하는 14개의 국제 공급 업체들을 지명, 러시아 이외의 여러 전방 기업을 대상으로 제재에 들어갔다.#5.4. 캐나다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 4개 지역의 고위 관리 35명, 이들 외에 일부 올리가르히와 그 가족 등 43명을 제재하기로 했다.5.5. 대한민국
우크라이나의 주권, 독립, 영토 보전 입장에 따라 4개 지역 합병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전문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지 병합 관련 대변인 성명
1. 우리 정부는 유엔헌장을 위배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력히 규탄한다.
1. 우크라이나의 주권, 영토 보전과 독립은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
1. 우리 정부는 도네츠크, 루한스크, 자포리자, 헤르손 지역에서 실시된 주민투표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 병합을 인정하지 않는다.
1. 우리 정부는 유엔헌장을 위배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력히 규탄한다.
1. 우크라이나의 주권, 영토 보전과 독립은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
1. 우리 정부는 도네츠크, 루한스크, 자포리자, 헤르손 지역에서 실시된 주민투표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 병합을 인정하지 않는다.
5.6. 중국
중국은 해당 병합에 대해 별다른 성명을 내놓지는 않았고, 이 합병을 규탄하는 유엔 성명의 안보리 표결에서 기권하였다.다만 중국은 러시아가 해당 4개주에 주민투표를 실시할 당시 국가들의 영토 보전과 주권 준수를 강조한 점을 보아 완전한 지지의 가능성은 낮다. 특히 중국은 러시아의 동남부 우크라이나 병합에 대해 대내외적으로 복잡한 입장이 섞여있다.
현재 중국은 대만부터 해서 홍콩, 신장 위구르 자치구, 티베트의 분리주의 대립 문제를 겪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외교적으로만 이 문제를 바라 보고 같이 반미 연대를 하는 러시아를 돕는답시고 합병 규탄에 대해 거부권을 내면서 동남부 우크라이나의 분리독립을 인정하는 듯한 뉘앙스를 보이면 자국의 티베트와 위구르의 분리주의 진영에게 '명목상 투표라도 일단 하면 독립할 수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해주는 꼴이 되어버린다. 때문에 중국은 루간스크와 도네츠크의 독립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중국은 자국의 사정 때문에 러시아의 동남부 우크라이나 병합을 대놓고 지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같은 반미 연대의 주축인 러시아를 공개 규탄할 수도 없어서 '기권'을 선택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5.7. 북한
북한의 조철수 외무성 국제기구국장은 10월 4일 담화를 내고 "우리는 러시아에로의 통합을 지향한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헤르손주와 자뽀로쥐예주 주민들의 의사를 존중하며 상기지역들을 자기 구성에 받아들일 데 대한 러시아 정부의 입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또 "9월 23일부터 27일까지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 헤르손과 자뽀로쥐예에서 진행된 국민투표는 인민의 평등과 자결권의 원칙을 규제한 유엔헌장에 부합되게 그리고 현지주민들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될수 있도록 합법적인 방법과 절차대로 진행되였으며 절대다수의 유권자들이 러시아와의 통합을 지지해나섰다."고 밝히며 국민투표의 정당성 역시 지지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이전 유고슬라비아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를 비롯한 주권국가들을 반대하는 침략전쟁을 일으켰지만 언제 한 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문제시된 적은 없었다"고 언급하면서 "미국이 자기의 패권유지를 위해 유엔안전보장이사회를 방패막이, 침략수단으로 도용하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있다"고 평하였다. 특히 "9월 30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미국이 제출한 반러시아결의안에 대한 표결이 진행되였으며 결의안은 러시아의 정당한 거부권행사로 부결되였다"는 점을 담화 첫머리에 기재하면서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를 정당화하기도 했다.6. 유사 사건과 비교
6.1. 오스트리아 병합(1938)
이번 러시아의 점령지 병합은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사건과 비교가 가능한 부분이 있다.우크라이나 점령 지역의 러시아 편입에 관한 국민투표와 같이 오스트리아 병합 투표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병합 투표는 우크라이나 병합 투표와 달리 비밀투표도 아닌 일방적인 투표에 대놓고 예(Ja)를 아니오(Nein)보다 훨씬 크게 그려놓았으며 아니오 칸은 구석으로 밀어넣었고, 실제로 관련 패러디가 나오는 등 연관짓는 사람이 많다. 다만 그때는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키기 전이었다. 당시에도 독일의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일부 인물들은 히틀러를 위험한 인물로 평가하였지만, 이는 극소수에 국한되었고 대부분은 단순히 긴 경기침체와 대공황에도 불구하고 독일을 다시 일으킨 지도자라고만 알고 있었다. 대외적으로도 수년간 끌어온 폴란드와의 무역전쟁을 끝내는 등 유화책으로 나온 사례도 없지 않았다.
또한 양국간의 합병에 대한 공감대도 대독일주의에서 나타난 것처럼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다. 독일군이 오스트리아로 진입했을 때 오스트리아 주민들은 열렬히 환영했고, 히틀러가 자신의 고향으로 여긴 린츠를 방문했을 때나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빈에서 연설했을 때도 오스트리아인들은 엄청나게 환영했다. 즉 '언젠가는 해야 했던 통일을 히틀러가 총대 메고 해내주었다'는 인식이 강했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나치와는 성향이 극상성인 오스트리아 사민당 정치인 카를 레너도 독일과의 합병은 필요하다고 여겼다. 단지 그 대상이 나치 독일이 아니라 사회주의 체제 하의 독일이었을 뿐. 즉 오스트리아 내에서 독일과의 합병은 정치색과는 무관한 상당히 대중적인 의견이었다.
우크라이나 역시 2022년 우크라이나 난민 사태에서 러시아를 택한 우크라이나인들이 상당히 많고, 비록 대부분이 친러 성향이지만 소수의 친서방 정치인들을 포함한 전현직 정치인들도 적지 않게 러시아에 투항하는 등[4] 합병에 대한 공감대가 오스트리아에 비해 적긴 하지만 존재하긴 했다. 실제로 한 유튜버가 투표 당일 시민들과 인터뷰한 영상에서도 가족이 러시아에 있다거나 역사적인 이유로 러시아 편입을 별다른 거리낌없이 받아들인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계속되는 전쟁과 가족의 사망으로 기존에 친러 성향이었던 사람들이 상당수 반러 성향으로 돌아섰고, 합병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반러 움직임이 일어났다.
6.2. 캘리포니아 공화국 병합
이번 병합은 미국이 캘리포니아 공화국을 병합한 사건과도 비교할 수 있는데 캘리포니아는 원래 멕시코 영토였으나 미국인들이 상대적으로 정착촌을 세워나가기 시작하며 미국인의 비율이 늘어났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과 비교할 수 있다.6.3. 텍사스 공화국 병합
미국이 텍사스 공화국을 병합한 사건과도 비교할 수 있는데 텍사스는 원래 멕시코 영토였으나 미국인들이 상대적으로 정착촌을 세워나가기 시작하며 미국인의 비율이 늘어났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과 비교할 수 있다. 다만 텍사스 공화국은 공식적인 국가로 상당한 기간 동안 미국과는 별개로 유지되었기에 캘리포니아 공화국과 다른 부분도 많다.7. 기타
- 푸틴은 합병 선언 연설에서 "워싱턴(미국)이 여전히 독일, 일본, 한국을 점령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현재 세 나라 모두 주둔 미군이 있다는 점(주독미군, 주일미군, 주한미군)을 노린 발언일 가능성이 높다.
- 공교롭게도 이 선언이 발표된 9월 30일은 지난 1938년, 나치 독일에 의해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인 주데텐란트를 빼앗긴 뮌헨 협정이 채택된 날이다. 비슷한 사건이 84년 만에 재현된 셈이다.
8. 관련 문서
[1] 모든 합병 절차는 2022년 10월 4일 마무리되었다.[2] 2014년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부에서 일어난 반유로마이단 시위를 일컫는다.[3] 2014년 5월 2일 오데사에서 친-유로마이단 시위대와 반-유로마이단 시위대의 충돌로 최소 48명이 사망한 사건. 러시아는 이를 우크라이나 정권의 "학살"이라 주장하며 1943년 나치 독일의 벨라루스 민간인 학살인 하틴 학살에 빗데어 "오데사 하틴"이라 부른다.[4] 하르키우주 쿠퍈스크 시장 헨나디 마체호라는 전쟁 개시 이후 러시아에 도시를 통째로 넘겨주었고, 헤르손주와 자포로지예주의 임시 주지사인 블라디미르 살도와 예브게니 발리츠키(과거 유럽과 협력해 러시아의 제재 명단에 오른 적이 있지만 친러로 전향했다.)도 오랫동안 지역에서 활동해 국회의원까지 역임한 정치인이다. 이외에도 과거 우크라이나 사회당 대표를 역임한 최고 라다 의원 일리야 키바처럼 현직 국회의원 신분으로 러시아에 투항하거나 수미주 코노토프 등 러시아군과 타협한 사례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