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의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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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몽골 제국 서방의 주치 울루스, 차가타이 울루스. 우구데이 울루스와 비교해 동쪽에 위치한 세 왕가(울루스)를 가리킨다. 칭기즈 칸은 동복동생 카사르, 카치운, 테무게 옷치긴에게 만주의 영토를 분봉했다.2. 왕가
2.1. 카사르 왕가
칭기즈 칸의 동복동생인 카사르의 후손들로 제왕(齊王)의 작위를 받았다. 청나라 제2대 태종 숭덕제 홍타이지의 아내이자 세조 순치제의 생모이며, 성조 강희제의 조모인 효장문황후 보르지기트씨가 이 가문의 후예였다.2.1.1. 왕사
1. 주치 카사르 拙赤合撒兒 | |||||
2. 예쿠 也苦 | 3. 이숭게 移相哥 | 토쿠 脫忽 | |||
코르코순 火魯火孫 | 4. 에메겐 愛每根 | 에부겐 阿不干 | |||
5. 식투르 勢都兒 | |||||
6. 바부시 八不沙 | 황올아 黃兀兒 | ||||
바무르 伯木兒 | 7. 우룩테무르 玉龍帖木兒 | 베르테무르 別兒帖木兒 | |||
8. 시레문 失列門 | |||||
■ 제왕·齊王 |
2.2. 카치운 왕가
칭기즈 칸의 동복동생인 카치운의 후손들이었다.2.2.1. 왕사
1. 카치운 哈準 | |||||
2. 알치다이 按只吉歹 | |||||
3. 차쿨라 察忽喇 | 쿨라추 忽剌出 | 5. 카단 哈丹 | |||
4. 쿨라우르 忽剌忽兒 | 7. 이질 也只里 | 타렬납 朵列納 | 목남자 木喃子 | 노적 老的 | |
6. 싱나카르 勝納哈兒 | 발피 潑皮 | 초스간 搠思監 | |||
타아치 朵兒赤 | |||||
■ 제남왕·濟南王 | ■ 농왕·隴王 | ■ 오왕·吳王 |
2.3. 옷치긴 왕가
예수게이와 호엘룬의 소생으로, 막내인 테무게 옷치긴은 몽골이 기원한 만주의 흥안령 산맥 일대를 분봉받았다. 만주 일대는 목축 뿐 아니라 농경과 수렵도 가능한 풍부한 생산력을 갖춘 지역이었기에, 옷치긴 왕가는 다른 왕가보다 눈에 띄게 발전했다. 옷치긴 이후의 역대 군주들은 요동으로 세력을 확대해 1316년에는 옷치긴의 후손 토크토아가 요왕(遼王)의 1자 왕호를 얻었으며, 만주 일대를 장악해 14세기 동아시아에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대도의 원나라 조정도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세력을 키워 중앙정부에 대해 스스로 대칸이 되려는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원나라 멸망 후에도 옷치긴 왕가의 요왕 아자스리가 명 태조 홍무제 주원장과 타협 끝에 만주를 지배했다. 명나라의 영향하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한 몽골계 올량합 3위가 바로 그들이었다.한국사와도 관계가 깊은데, 조선 태조 이성계의 조상인 이안사가 항복한 산지(散吉) 대왕(大王)은 옷치긴 왕가의 군주인 보르지긴 타가차르와 가까운 제후왕이었다. 이안사의 후손들은 대를 이어 옷치긴 왕가로부터 천호장 겸 다루가치를 임명받아 세습하며 함주와 길주 등의 고려인과 여진인을 지배했다.
윤은숙 교수(강원대)가 저술한 《몽골제국 만주 지배사》(소나무, 2010)에 따르면 고려의 제26대 충선왕이 심양왕에 임명된 것에는 이 옷치긴 왕가의 존재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13∼14세기 원제국의 동북 만주 지역을 장악했던 옷치긴 왕가는 방대한 경제 인프라를 기반으로 제왕들 중 최고의 경제·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대도의 대칸들은 고려의 개경과 요동의 심양에 각각 개성 왕씨의 부마(쿠르겐)왕을 분봉왕으로 세워, 옷치긴 왕가의 과도한 비대화를 견제했다.
여기서 우선 옷치긴 왕가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면, 옷치긴(Otchigin) 즉 테무게 옷치긴(1168∼1246)은 태조 칭기즈 칸의 막내 동생인데 매우 용맹스러운 사람으로 칭기즈 칸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현재의 아무르 강 일대에서 한반도 북부까지 다스린 제왕이었다. 칭기즈 칸은 자신의 막내 동생인 옷치긴에 대한 신뢰가 매우 커서 서방 원정(1219∼1225)을 떠날 때 신생 제국의 국정 운영을 맡길 정도로 신임이 깊었으며, 그 덕분에 옷치긴 왕가는 13세기에서 14세기까지 유목과 농경을 모두 할 수 있는 땅을 받음으로써 제왕들 가운데서 가장 큰 경제력을 가질 수 있었다.
옷치긴 사후 제2대 왕은 타가차르(塔察兒)였다. 타가차르는 세조 쿠빌라이 칸의 최대 정적이었던 아리크부카(阿里孛哥)를 격파하여 쿠빌라이가 제5대 카안위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고, 쿠빌라이 칸(원 세조)의 명령에 따라 항상 원정에 나서는 등 원나라 조정내에서도 명망이 높은 사람이었다.
“항상 쿠릴타이(일종의 화백 제도)에 참석하여 중대한 국사(國事)를 논의했으며 매우 존경을 받았다.(《집사》)”
그래서 타가차르는 원 세조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타가차르는 독자적으로 원나라 조정의 법도를 어겨가면서 자신의 관할권이 있는 지역에 사신도 파견하고, 민호도 소집하기도 할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바로 이점에서 옷치긴 울루스는 원 세조(쿠빌라이 칸)에게 가장 강력한 우방인 동시에 가장 두려운 대상이기도 했을 것이다. 윤은숙 교수는 심왕 제도도 옷치긴 왕국의 남하(南下)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옷치긴 왕가가 원나라 ― 고려 사이에 위치하면서 고려까지 지배하려 했기 때문에 이것을 중간에서 차단하기 위해서 심왕을 설치하고, 양자를 서로 충돌시켜 옷치긴 왕국의 영향력을 통제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원 세조가 우려했던 일이 훗날 터지는데 1287년 옷치긴 왕가의 제4대 왕인 나얀(乃顔 : 타가차르의 손자)은 원 세조의 중앙집권화 정책에 대항하여 동방의 다른 제왕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원 세조는 고령(73세)에도 불구하고 직접 정벌에 나서 1287년 나얀을 처형했다.나얀이 반란을 일으키자 고려 제25대 충렬왕은 원 세조에게 즉각 지원군을 파견하여 동북 지역의 안전을 일부 담당하려고 했다. 그런데 나얀의 잔당들이 상대적으로 허약한 고려로 몰려오면서 사태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카다안의 침입). 충렬왕은 다시 원나라에 지원군을 요청하여 1291년에야 반란이 진압되어 고려는 안정을 되찾았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 왜 고려 왕실이 원나라 중앙정부에 의해 요동의 심양왕에 임명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은 당시 고려 왕실의 심양왕 임명 또한 당대의 원나라 황실과 동방 3왕가간의 파워게임의 연장선의 산물이었다는 것을 뜻한다.
2.3.1. 왕사
1. 테무게 옷치긴 帖木哥斡赤斤 | |||||||||
지부겐 只不干 | 사타기 撒答吉 | 카시다이 哈失歹 | 차즈랄 察只剌 | 오텐 斡端 | 오르타이 斡魯台 | 부쿠 白虎 | |||
2. 타가차르 塔察兒 | 테무데르 帖木迭兒 | 애나카치 愛牙哈赤 | 카르바투 哈八兒都 | 테시 帖實 | 키두케 氣都哥 |
2. 타가차르 塔察兒 | ||||||||
3. 아줄 阿朮魯 | 5. 나이마다이 乃蠻台 | 야부겐 也不干 | 오르기타이 兀剌兒吉歹 | 차랄카 察剌海 | 보라다이 孛羅歹 | |||
4. 나얀 乃顏 | 6. 톡타 脫脫 | 토리추 脫里出 | ||||||
바투 八都 | 7. 야나스리 牙納失里 | |||||||
8. 아자스리 阿札失里 | ||||||||
■ 요왕·遼王 | ■ 수왕·壽王 |
3. 참고문헌
- 윤은숙, <14세기 말 만주의 역사상 -옷치긴 왕가와 만주->, 《농업사연구》 제11권 1호, 한국농업사학회, 2012.
- 윤은숙, 《몽골제국의 만주 지배사》, 소나무,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