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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국가별 현황/대한민국/사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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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실제로 집행된 사형수
2.1. 1940년대2.2. 1950년대2.3. 1960년대2.4. 1970년대2.5. 1980년대2.6. 1990년대
3. 미집행 사형수 명단
3.1. 사형 집행 대기 중 사망한 사형수
4. 사형수였으나 감형·사면된 경우5.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상급심에서 감형된 경우

1. 개요

현재 대한민국은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으나, 사형을 공식적으로 폐지하지는 않았고 2016년 2월까지는 사형 확정판결이 드물게나마 있었기 때문에 현재도 꽤 많은 사형수가 존재하며, 1997년까지는 실제로 교수형 집행을 하였기에 집행된 사형수도 상당하다.

2. 실제로 집행된 사형수

2009년 10월 11일 법무부가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에게 낸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1949년 7월 14일 살인범을 사형에 처한 것을 시작으로 1997년 12월 30일까지 모두 920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아래의 목록은 역사적으로 알려진, 그리고 나무위키에 언급이 있는 수준의 사형수들 위주로 일부만 작성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저 시절 은폐, 축소된 경우가 많아 실제로는 920명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법무부도 정확한 사형집행 건수를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일단, 1948년 8월 31일 기준으로 해방 후 39명이 사형되었다는 기사가 남아 있으며 기사를 통해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사형 집행은 1948년 8월 27일로 추정할 수 있다.

2.1. 1940년대

||<rowbgcolor=#333><rowcolor=#fff><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91919><tablebordercolor=#000,#555> 이름 || 집행 날짜 || 범죄 내용 ||
김태수 1946년 8월 2일 강도살인, 사기[1]
심택
(沈澤)
1946년 9월 4일 강도살인
윤수룡 강도치사
김길동 1946년 12월 6일 강도살인, 살인미수
최종산 1947년 6월 13일 강도살인
하갑선 1947년 6월 17일 강도살인
최건석 1947년 6월 18일 강도살인
최명하
임춘식 1947년 10월 23일 강도살인
신종완
김덕규
박길주
유복
송칠성 1948년 8월 26일 살인, 강도살인[2]
서병선
김덕선
송득용
임수룡
황한주
전광석
강대엽
문상길[총살형] 1948년 9월 23일 제주 4.3 사건 도중 토벌대인 박경진 대령을 살해[4]
손선호[총살형]
김영례 1949년 7월 14일 미성년자 유괴 및 살인, 사체훼손(식인)

2.2. 1950년대

||<rowbgcolor=#333><rowcolor=#fff><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91919><tablebordercolor=#000,#555> 이름 || 집행 날짜 || 범죄 내용 ||
최창식[총살형] 1950년 9월 21일 한강 인도교 폭파[재심]
김윤근[총살형] 1951년 8월 13일 국민방위군 사건[9]
윤익헌[총살형]
강석한[총살형]
박창원[총살형]
박기환[총살형]
허태영[총살형] 1957년 9월 24일 김창룡 암살
이유회[총살형]
정구헌[총살형] 1959년 5월 20일 제28보병사단 사단장 살인사건
송용고 김창룡 암살
신초식
조봉암 1959년 7월 31일 진보당 사건[재심]

2.3. 1960년대

||<rowbgcolor=#333><rowcolor=#fff><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91919><tablebordercolor=#000,#555> 이름 || 집행 날짜 || 범죄 내용 ||
조동신 1960년 12월 6일 간첩죄
김재곤
정덕수 강도살인
김정제 1961년 7월 11일 김정제 간첩 사건
한영창
오영근
이정재 1961년
10월 19일
폭력범죄단체 구성 외 다수
신정식 데모하던 학생을 각목으로 때려 죽임
최인규 1961년 12월 21일 3.15 부정선거 총지휘
조용수 반공법 위반[재심]
곽영주 4.19 혁명 당시 경무대 앞 시위대에 발포명령[19]
최백근 사회당 반국가행위사건
임화수 고대생 습격 사건
한필국 1962년 4월 26일 밀수
최영오[총살형] 1963년 3월 18일 최영오 일병 살인 사건
이방우[총살형] 1963년
11월 7일
20여 건의 강도 및 1명 강도살인
안태분 강도살인
이기형 존속살해
원용섭 강도, 살인
황태성[총살형2] 1963년 12월 14일 황태성 사건
고재봉[총살형] 1964년 3월 10일 고재봉 살인 사건
조명국 1965년 1월 29일 강도살인
김영선
채용춘 1966년 6월 20일 일가족 3명 살해
조일용[총살형2] 1967년 1월 13일 길에 지나가는 연인들 중 남성을 몽둥이로 마구 폭행하고 여성을 강간한 후 금품을 갈취하여 남성 2명 살해, 여성 5명 강간, 30명에게 중상해를 입힘
임동익 1968년 4월 23일 춘천호 여인 토막 살인사건
김완선 1969년 2월 26일 시흥 일가족 살인사건
이수근 1969년 7월 3일 간첩[재심]
김종태 1969년 7월 10일 통일혁명당 사건
신영식[총살형] 1969년 7월 31일 육군 하사 수류탄 투척 사건
권재혁 1969년 11월 4일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재심]
이문규 1969년 11월 6일 통일혁명당 사건
이관학
윤상수 1969년 11월 28일 임자도 간첩사건

2.4. 1970년대

||<rowbgcolor=#333><rowcolor=#fff><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91919><tablebordercolor=#000,#555> 이름 || 집행 날짜 || 범죄 내용 ||
김병엽[총살형] 1972년 3월 20일 실미도 사건
김창구[총살형]
임성빈[총살형]
이서천[총살형]
김규남 1972년 7월 13일 유럽 간첩단 조작 사건[재심]
김질락 1972년 7월 15일 통일혁명당 사건
정태묵 1972년 7월 28일 임자도 간첩사건
박노수 유럽 간첩단 조작 사건[재심]
정외준 1972년 8월 14일 걸인 부부를 낫으로 살인
문세광 1974년 12월 20일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
박순일[총살형] 1975년 4월 8일 재단용 가위를 들고 장터에서 난동을 피워 2명 살인, 12명 중상해
서도원 1975년 4월 9일 인민혁명당 사건[재심]
도예종
송상진
우홍선
하재완
김용원
이수병
여정남
이원모[총살형] 1975년 8월 2일 유네스코 지하다방 인질사건
최성환[총살형2]
윤찬재[총살형2]
임병석 1976년 12월 28일 임병석 법정증인 살인사건
김대두 17명 연쇄살인
최정관 돈을 훔치기 위해 가정부와 3남매 살해
방영근 강도살인
채수정 국가보안법 위반
이홍길[총살형] 1977년 3월 12일 인질극 중 수류탄 터트려 1명 살해하고 2명에 중상 입힘
전세규[총살형]
이팔국 1977년 11월[41] 이팔국 아내 살인 사건
오휘웅 1979년 9월 13일 인천 일가족 살인사건[42]

2.5. 1980년대

||<rowbgcolor=#333><rowcolor=#fff><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91919><tablebordercolor=#000,#555> 이름 || 집행 날짜 || 범죄 내용 ||
박흥주[총살형] 1980년 3월 7일 10.26 사건
김재규 1980년 5월 24일
박선호
이기주
유성옥
김태원
박흥숙 1980년 12월 24일 살인, 살인미수
서덕기 1980년 12월 26일 돈을 뺏기 위해 가정집에 침입하여 노부부 중 남편 살인, 아내 살인미수
김한수 1980년 12월 27일 영동에서 자매 살해
이헌삼 강도살인
박철웅 1982년 7월 22일 금당 골동품상 부부 납치 살해사건
주영형 1983년 7월 9일 주영형 유괴 살인 사건
박분례 박분례 보험 살인사건
진항식 삼척 고정 간첩단 사건[재심]
김상회
한상인 1985년 10월 31일 강도강간, 강도살인
황인규 일당 7명과 함께 유흥비 마련을 위해 18차례에 걸쳐 강도 및 강도강간[45]
최윤성
최성훈
이정수 특수강도, 강도강간, 살인미수
이양길 이양길 토막 살인 사건
김정인 진도 가족 간첩단 사건[재심]
이동식 1986년 5월 27일 사진작가 이동식 살인사건
이용이 1987년 5월 18일 장모와 아내 살해, 처제 강간
최양호 강도살인
진광룡 강도살인
김구환 유괴, 살인
길완기 국교생 3명 강간살인
고금석 1989년 8월 4일 서진 룸살롱 집단 살인 사건
김동술
함효식 원혜준 유괴 살인 사건
김성철 울산일대 강간, 강도살인
이우동[47]
시석기 복면강도를 하며 2명 살인, 4명 강간
강상원 동거 여인의 남동생 2명 살해

2.6. 1990년대

||<-2><rowbgcolor=#333><rowcolor=#fff><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91919><tablebordercolor=#000,#555> 1990년 4월 17일 ||
<rowcolor=#fff> 이름 범죄 내용
강창구
(姜昌求)
공주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 (부녀자 6명 강간살해)
육근성
(陸根成)
1987년 3월 9일 서울 중화2동 김모씨(52·여)집에 침입, 혼자 집을 보던 김씨의 딸 한모양(23)을 전선으로 목졸라 살해하고 때마침 외출했다가 귀가한 김씨도 살해
유자환
(柳自煥)
1986년 3월 20일 천안시 김모씨(33·여)집에 침입, 현금을 빼앗고 반항하는 김씨를 살해한후 범행을 은폐할 목적으로 집에 돌아온 김씨의 딸 최모양(6)도 살해
이배진 김기현 변호사(74)의 처 조모씨를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쳐 7년간 복역한 것에 앙심을 품고 1982년 8월 24일 서울 순화동 김씨의 사무실에 찾아가 돈을 요구, 거절당하자 등산용칼로 김씨를 살해
박영국
(朴煐國)
1983년 10월 26일 0시 30분쯤 서울 영등포 식당에 침입,주인 박모(52)씨, 김모(45)씨 부부를 살해한후 사망한 김씨를 강간
어성갑
(魚聖甲)
중곡동 세 모자 살인 사건의 범인
천영훈 1987년 8월 17일 자신을 정신요양원에 입원시킨데 앙심을 품고 부산 동대신동 이모집에 찾아가 이모부 내외를 살해
최정호 1987년 3월 29일 공범 4명과 함께 경북 포항시 상대동 포항공설운동장 후문에서 승용차를 타고 데이트중이던 커플을 차 트렁크에 실어 납치. 금품을 뺏고 여성을 성폭행, 남성은 빨랫줄로 목을 졸라 살해 후 저수지에 사체를 던져 유기. 이후 도주하다 밀양 신곡면 이모씨(29)집에 들어가 이씨를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하다 검거
권현집 어린이대공원내의 점포를 임대해주겠다고 박모씨를 속여 4백50만원을 가로챈후 박씨가 고발하려하자 1982년 8월 31일 밤 충남 연기군 동면 산으로 유인, 나일론끈으로 목졸라 살해

||<-2><rowbgcolor=#333><rowcolor=#fff><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91919><tablebordercolor=#000,#333> 1990년 12월 4일 ||
<rowcolor=#fff> 이름 범죄 내용
전경숙
(田京淑)
1986년 11월 28일
홍제동 치과병원에서 병원장 살해하는 등 4차례에 걸쳐 치과병원 상대로 강도
손오순
(孫五淳)[48]
1988년 11월 17일 공범 7명과 함께 경기도 부천시도당동 둑길에서 데이트중인 남녀를 부근 숲속으로 끌고가 남자는 몽둥이로 전신을 때려 살해, 여자를 윤간하는등 데이트중인 남녀를 상대로 13차례에 걸쳐 강도 강간 상해
이재철
(李在哲)
1989년 7월 22일 부산진구 부암3동 백양산 중턱 약수터앞에서 약수물을 들고 내려오던 여중생 박모양(12)을 흉기로 위협, 야산으로 끌고가 성폭행 후 박양의 셔츠로 목을 졸라 살해
임천택
(林天澤)
1989년 10월 13일 부산시 동래구 복천동 가정집에 들어가 집주인 김모씨(38·남)를 칼로 찔러 살해하고 4만원을 빼앗음
송재홍 1983년 12월 8일 사망보험금 6천만원을 받아내기위해 택시에 아버지를 태워 제주도 서귀포시 회수동 숲으로 유인해 아버지를 살해, 이를 은폐하기 위해 택시운전사를 다시 숲으로 유인해 돌로 머리를 때려 실신시킨 후 교통사고로 위장하기위해 택시에 석유를 뿌린 후, 불을 질러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침


||<-2><rowbgcolor=#333><rowcolor=#fff><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91919><tablebordercolor=#000,#555> 1991년 12월 18일 ||
<rowcolor=#fff> 이름 범죄 내용
조경수 연쇄살인, 구로동 샛별룸살롱 살인 사건, 광주 양동 백양주점 접대부 살해, 그 외 미용실 등에 침입해 수십차례 강도, 강간, 강도상해 등
김태화
홍순영 곽재은 유괴 살인 사건
전재복 친구의 부인을 강간한 뒤 두살배기 딸과 함께 살해
서병원 12세 여학생을 산으로 데리고가 강간살해
심재화 동거하던 여자가 다른 남자와 살고 있는 집에 침입하여 두 사람 살해
윤도영 1984년 5월에 동거녀의 오빠가 빌려간 돈 2천만원을 갚으라고 하자 갚겠다며 승용차로 유인, 살해 후 암매장.[49]
서지우 강영리와 공모해 강영리의 남편을 운전연습을 시켜주겠다고 유인해 뒤에서 승용차로 들이받아 살해, 시어머니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침
강영리

||<-2><rowbgcolor=#333><rowcolor=#fff><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91919><tablebordercolor=#000,#555> 1992년 12월 29일 ||
<rowcolor=#fff> 이름 범죄 내용
윤용필 양평 일가족 생매장 사건의 주범
문경한 이완희 유괴 살인 사건
심영구 1989년 5월부터 12월까지 6차례에 걸쳐 연쇄살인, 강도살인
김영호 1989년 자신의 의붓아버지 둔기로 살해, 한 달 후 자신을 고아원에 맡기고 재가한 친모 강간 후 살아있는 친모에게 석유뿌리고 방화, 존속살해
김삼중 1990년 6월 60대의 부녀자에게 밥을 달라고 해 없다고 하자 살해 이외에도 69차례 부녀자 강간
전용운 전용운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 1987년 귀갓길의 여성 3명 미행 후 성폭행 살해, 1명 성폭행 살인미수
권갑석 1984년 9월 부산에서 내연녀와 짜고 내연의 남편과 자신의 아내 살해
유충남 1984년 9월 보험금을 타낼 목적으로 자신의 아내 교통사고 가장하여 살해
장효상 자신이 과거 7년형 복역 이유를 고종형수 때문이라 생각하고 1984년 9월 고종형수 살해 외 같은 마을 주민 2명 살인미수

||<-2><rowbgcolor=#333><rowcolor=#fff><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91919><tablebordercolor=#000,#555> 1994년 10월 7일 ||
<rowcolor=#fff> 이름 범죄 내용
오태환 양평 일가족 생매장 사건의 주범[50]
전기철 이완희 유괴 살인 사건
문승도 이득화 유괴 살인 사건
최오림 도끼로 부인, 장인, 장모, 친딸 살해하고 친아들 살인미수.
박현룡 1990년 3월 서울에서 가정집에 침입, 금품을 강취한 후 임신 3개월의 부녀자를 강간하는 등 강도강간 16회, 상습강도 8회
조현철 가정집에 침입해 부녀자 성폭행하고 살인 등
서채택[51] 강도살인
차순석 처남자녀 2명 살해
김무경 김희성 유괴 살인 사건
김대흥 방화살인
이필완 강간치사, 강도살인
박기태 강간치사, 강도살인
김만수 살인, 사체유기
임남형 강도살인
이덕재 살인

||<-2><rowbgcolor=#333><rowcolor=#fff><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91919><tablebordercolor=#000,#555> 1995년 11월 2일 ||
<rowcolor=#fff> 이름 범죄 내용
김기환 지존파 사건(5명 살해)
강동은
김현양
문상록
강문섭
백병옥
온보현 부녀자 납치, 성폭행하고 2명 살해
이호성[52] 일가족 5명 살해 후 암매장
서혁빈 고교생 살해 후 암매장
이두견 초등학생 유괴살해
신민철 할아버지 살해
최명복 부산 새마을금고 권총 강도 살인 사건
지춘길 노인 6명 연쇄살인
배진순 부녀자 성폭행 등 2범
김철우 살인 등 2범
김동식 살인 등 2범
이근호 존속살해
박성규 살인 및 강도
송정호 내연녀 가족 살해

||<-2><rowbgcolor=#333><rowcolor=#fff><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91919><tablebordercolor=#000,#555> 1997년 12월 30일 ||
이름 범죄 내용
김선자
(여, 58세)
김선자 연쇄 독살사건(5명 살해)
임상철
(남, 28세)
10대 여성 강간 살인, 방화하여 시신 훼손
유영택
(남, 29세)
가정집에 침입해 모녀 성폭행 후 어머니를 클러치페달로 내리쳐 살해
임풍식
(남, 38세)
9살 여아 강간 후 살해, 유기
강순철
(남, 29세)
여성 2명에게 강간을 시도하다 방화하여 1명 사망, 1명 중상
김용제
(남, 27세)
여의도광장 차량질주 사건(2명 사망, 21명 부상)
임영자
(여, 48세)
임영자의 남편에게 극약을 탄 초콜릿을 먹여 살해, 사체 화장
한춘도
(남, 46세)
김영환
(남, 38세)
재산 문제로 가족 3명 살해
한재숙
(여, 51세)
내연남[53]과 짜고 남편 독살
이영길
(남, 36세)
모친, 남동생 살해 후 암매장
장정근
(남, 48세)
다방 여주인에게 돈 빌리는 것을 거부당하자 망치와 칼을 이용해 잔인하게 살해
곽도화
(여, 36세)
곽도화의 남편을 목졸라 살해 후 강도로 위장
오숭관
(남, 36세)
이상수
(남, 28세)
70여 차례 가정 침입 강도, 신고를 막기 위해 윤간
전장호
(남, 26세)
태규식
(남, 29세)
공범 2명[54]과 함께 150차례 퍽치기 및 강도, 2명 강도살인
김승도
(남, 39세)
잔혹 살인[55]
김준영
(남, 34세)
총기를 이용해 평소 앙심을 품고 있던 일가족 4명 살해
변운연
(남, 31세)
법정증인에 앙심 품고 살해
신정우
(남, 41세)
집주인 살해 후 암매장
정은희
(남, 27세)[56]
친구가 후배를 자꾸 괴롭힌다는 이유로 친구 살해 후 암매장, 동네 남성에게서 내연녀의 남편을 살해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청부 살해
김정석
(남, 27세)
현주 건조물 방화 치사

3. 미집행 사형수 명단

현재 대한민국에 생존해 있는 사형수는 모두가 살인범이며, 이전과 같이 정치범은 없이 대부분 연쇄살인 또는 대량살인과 같이 2명 이상의 사람을 살해하거나, 유괴살인, 토막살인, 조직범죄 등 살인범 중에서도 특히나 흉악범들이다.

원래 미집행 사형확정자는 총 71명이지만 5명이 자살, 7명이 기타 연유로 사망하며 59명만이 남았다. #

1997년 12월 30일 마지막 사형 집행 이후 현재까지 나온 사형 확정 선고는 44건이다. 2000년대 초 이후에는 사형 판결의 기준을 더욱 엄격하게 적용하여, 강호순 같은 연쇄살인범이나 김동민처럼 다수의 사람을 죽인 대량살인범이 아니면 피살자가 3명 이상이고 그것도 피살자가 아동이거나 살해수법이 잔혹하거나 성폭력 혹은 묻지마 살인 등 죄질이 극도로 흉악한 경우에만 사형 판결을 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2010년대 부터 기준을 매우 높게 적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로인해 2011년 이후 사형 판결이 확정된 사형수는 단 3명[57] 뿐이며, 그 중 장재진을 제외한 2명은 군인 신분이다. 언론에서 살인마로 불렸던 김길태, 오원춘, 김홍일, 이영학, 안인득, 권재찬도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58]

2020년대 이후로는 사형 판결이 확정된 사형수가 단 한명도 없다. 과거에 사형 확정 판결을 받은 범죄자들보다 더욱 무도한 살인 행각을 저지른 이들도 대부분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있는 상황이니 사형은 사실상 폐지된 셈. 대신에 2010년대 후반부터는 한강 몸통시신 사건, 노원 세 모녀 살인사건등 흉악범들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면서 판결문에 '가석방이 적절하지 않다'고 언급하거나, '가석방 없는 절대적 종신형으로 선고해야한다' 라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죄질이 덜 불량한[59] 사형수들은 이미 상당수가 감형을 받았다. 1998년 2명, 1999년 5명, 2000년 2명, 2002년 4명, 2006년 6명의 감형이 있었다. 다만 이렇게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19명의 사형수 중에서 가석방된 사람은 2024년 기준 1명도 없다.

2023년 기준 군 사형수 4명을 제외한 55명의 사형수들의 나이는 50대가 29명으로 절반이 넘으며, 40대가 11명, 60대가 8명, 70대 이상이 6명이다. 최연소 사형수이자 유일한 30대는 장재진이다. 이들은 평균 3.5명을 살해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들에 의해 목숨을 잃은 피해자의 수는 총 188명이다. 가장 많은 피해자를 만든 사형수는 20명을 살해한 유영철이다.[60]
||<-3><rowbgcolor=#333><rowcolor=#fff> 대한민국의 미집행 사형수 ||
<rowcolor=#fff> 연도 이름 범죄 내용
1993년 원언식 원주 왕국회관 화재 사고의 범인이다. 여호와의 증인 왕국회관에 방화해 총 15명이 사망하고, 25명이 중상을 입었다. 대한민국 최장기 사형수.
1995년 박한상 박한상 존속살해 사건의 범인. 돈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하고 집에 방화했다.
성낙주 황금장 여관 모녀 토막 살인 사건의 범인. 동거녀에게 얹혀 살다 동거녀의 14살 여중생 딸이 "그만 나가달라"는 요구를 하자 밤에 자고 있는 틈을 타 목을 졸라 살해한 후 토막내 정화조에 유기, 가짜 편지를 써서 가출한 것으로 속였다. 이후 동거녀와 싸우게 되면서 동거녀를 살해하고 똑같이 토막을 내 정화조에 유기했다.
성태수 순천 초등생 납치 살인 사건의 주범. 인신매매로 돈을 벌기 위해 공범 서동원과 함께 중학교 1학년 여중생과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을 납치,[61] 남학생은 살해한 뒤 댐에 유기하고, 여학생은 13일간 끌고 다니며 수차례 성폭행했다.[62]
전석재 울산 유곡동 초등생 유괴살인범. 3만원을 쥐고 가던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 보고 돈을 빼앗을 겸 납치해 자신의 자취방에서 사흘동안 9차례 성폭행하고 살해했다. 그 뒤 자신의 아버지에게 "여자애를 죽여서 장롱에 넣어놨다"고 털어놓았고, 아버지가 경찰에 알리면서 붙잡혔다.
전용재 강태민 유괴 살인 사건의 범인. 8세 남자 초등생을 납치해 소나무에 묶고 재갈을 물려놓고 도주했다. 초등생은 추위와 배고픔에 떨다 서서히 질식해 사망했다. 이후 부모에게 금전을 요구하는 전화를 걸다 붙잡혔다.
1996년 강영성 밀양 단란주점 살인 사건의 주범. 술값 문제로 주점에서 시비를 벌이다 지배인과 다른 2명에게 부상을 입히고, 조직원들을 이끌고 병원까지 몰려가 피해자와 피해자의 지인 등 2명을 흉기로 살해했다. 출동 경찰관 3명에게 쇠파이프를 휘둘러 중상을 입히기도 했다. 대법원 판결문
2019년도에 뇌출혈로 쓰러져 현재 반신불수 상태로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근황 링크
이우철 안양 AP파 조직원 살인사건의 범인들. 청부 폭력 사실을 폭로하려는 조직원 및 그의 여자친구를 살해 후 암매장했다. 당시 뉴스 영상
정병근
정병옥
1997년 김용식
(상등병)
강원도 철원 육군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군 범죄자로 강원도 철원군 모 육군 부대에서 자신의 신변을 비관해 K2 소총으로 총기를 난사하여 병사 3명을 살해하고 상병 1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그 뒤 병사 1명을 인질로 붙잡았다가 자수했다.[63]
박광 대구 온달주점 살인사건의 범인. 강도살인죄로 15년형을 복역하다가 가석방된지 불과 2개월도 안돼 대구의 온달주점에서 "술값 30만원도 지불하지 못하는 주제에 술을 마시느냐" 라는 말을 들은 것에 격분해 주인과 종업원 등 3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그 이후에도 공범과 고등학교 교사를 납치하고 1억 5000만원을 요구하는 범행을 저질렀다가 붙잡혔다.[64]
이승수 대구 동구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 별다른 이유 없이 분식집 종업원과 할머니 등 4명을 살해했다.
임동수 봉천동 일가족 살인사건의 범인. 전형적인 묻지마 범죄로, 막노동을 전전하며 사는 자신의 삶을 비관하였고 현관문이 열려있던 집에 침입해 주부와 두 아들 등 3명을 칼로 수십차례 찔러 잔인하게 살해했다. 시신들이 널부러진 곳에서 술을 마시고 잠을 자다 검거되었고, "사형당하고 싶어서 도망가지 않았다"고 밝혔다.
최정수 막가파 두목. 집에 돌아가던 유흥주점 업주를 납치해 금품을 빼앗고 소금 창고에 생매장했다.
홍대복 제천 내연녀 수장사건의 범인. 제천에서 내연녀에게 금전을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약물을 주사해 바다에 던져 수장하고, 지인의 집에 침입해 지인의 아내를 살해하고 금품을 갈취했다.
1998년 이원수 경북 안동 초등생 살인범. 여자 초등생 2명을 외딴 빈집으로 유인해 1명을 목졸라 죽인 다음, 한명을 성폭행하다가 살해했다. 이후 도주하다가 여관에서 16살 여자애도 목졸라 살해했다. 나중에 경북 안동경찰서에 제보자랍시고 수사 진척 상황만 따져 묻다가 의심만 잔뜩 사서 결국 붙잡혔다.
정근호 대구 수성구 제과점 부부 피살사건의 범인. 자신에게 "남편의 간통 현장을 잡아달라"는 여인의 부탁으로 그의 남편을 뒷조사 하던 도중, 이들 부부가 상당한 재력을 가졌단 걸 알게 되자 강도 살해했다. 부부가 사는 아파트로 들어가 여인을 결박하고 그의 남편을 칼로 마구 찔러 살해했고, 여자도 목졸라 살해했다. 살해한 부부 집에서 잠을 자고 샤워까지 하는 엽기적인 행태를 보였고, 날이 밝자 현금과 수표 등 1억원어치를 훔쳐 달아났다가 검거되었다.[65]
1999년 고종원 안양 사채업자 부부 강도살인사건의 범인. 금품을 빼앗으려 공범과 공모해 경찰을 사칭하여 사채업자와 그 부인을 납치 후 살해했다.[66]
2000년 강종갑 전남 순천 모녀 살인사건의 범인. 살인 전과자인 자신과 함께 살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이복 형수와 그의 어머니 쇠망치로 살해했다.
고흥수 충남 모자 살인사건의 범인. 동거녀가 헤어지자고 말하자 이에 격분하여 동거녀를 살해하고 암매장했다. 2년 후에는 내연녀의 빚을 갚기 싫다는 이유로 내연녀와 그의 7세 아들을 살해했으며, 이후 범행을 도와준 공범마저 살해했다.[67]
노경락 예천 50대 농민 부부 피살 사건의 범인. 자신의 집에 동거하게 된 외사촌을 상습적으로 강간하고 폭력을 휘두르다 사실을 알게된 외삼촌 부부에게 경고를 받고 강제로 헤어지게 되자, "사실 외사촌은 나를 좋아하지만 외삼촌 부부가 반대해서 그런 것"이라는 망상으로 부부 집에 찾아가 일가족을 손도끼로 살해했다. 2013년에 언론에서 또 거론된 적 있는데, 자해 난동을 부린 탓이다.
박경수 대구 평리동 모녀 강도강간 살인사건의 범인. 유일한 조선족 사형수로, 대구에서 출국 경비[68]를 마련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가정집에 침입해 모녀를 살해했으며[69], 그 집 셋째 딸의 친구인 15세 여중생도 화장실에 숨어있던 걸 찾아내 강간했다.
박진봉 김해 유괴 살인범. 양정규(11세)군을 납치해 목졸라 살해하고 부모에게 돈을 요구하며 도피, 도중에 한 노숙자를 공범으로 끌어들이고, 머리를 깎고 승려 행세도 했다. 나중에 공범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해 살해할 목적으로 수면제도 가지고 있었다.
이규상 평택 지인 폭행 살인사건의 범인. 도박자금을 마련하려고 공범의 부인이 접대부로 일할 때 알게 된 40대 남성을 유인해 살인했고, 검거 당시 이미 다른 살인으로 구속된 상태였다. 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중 불교에 귀의했고, 이후 그림에 소질을 보여 화가가 되었다.
이순철 영웅파 두목. 살인죄로 12년을 선고받고 가석방으로 출소한 후, 동료 조직원을 살해하고 시신을 토막낸 후 간을 꺼내먹었다.
정형구 삼척 신혼부부 살인 사건의 범인. 고속도로에서 신혼부부가 탄 차가 자신들을 추월했다는 이유로 운전자 부부에게 엽총을 발사해 살해하고, 이를 목격한 사람에게도 총을 쏴 중상을 입혔다. 공범은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황호진 황호진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 옥탑방에 들어가 절도를 하고, 보름 뒤에 다시 찾아가 옥탑방에 살고 있던 자매 중 언니를 목졸라 강간 후 살해했으며, 8개월 뒤 나이트에서 알게 된 여성을 집으로 데려다준 뒤 강간하려다 목을 졸라 살해하고 옆방에서 자던 여성도 강간, 살해했다. 그 뒤 집에 불을 지르고 알리바이를 만든다고 피해자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던 것이 증거가 되어 검거되었다.
2001년 강영민 내연녀 부부 보험금 살인사건의 범인. 보험금을 목적으로 내연녀를 거래처 직원과 결혼시킨 뒤 남자를 살해하고,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범행을 은폐할 목적으로 내연녀도 살해했다.
김해선 고창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 11살 초등학생을 강간하려다 사망하자 사체를 방치한 뒤 도주했다. 두달 후, 길가던 남매 중 12살 남동생을 목졸라 살해하고 17살 누나는 산으로 끌고가 강간하고 칼로 마구 찌르며 고문하다가 살해했다. 이후 허벅지 살을 도려내는 엽기적인 행위도 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혼자 죽기 억울했다"고 하거나 현장검증에서 "불편하니 수갑을 풀어달라"는 등 전혀 반성하는 기색이 없었다.
백문기 전주익산 연쇄 강도 살인사건의 범인. 전과 16범의 백문기는 교도소에서 출소하자마자 공범과 함께 강도짓을 하다가 전주에서 낚시를 하던 모 방송국 부장을 흉기로 살해하고, 4시간 뒤 근방의 호프집에 들어가 여사장을 흉기로 살해했다. 이후 교도소 동기를 찾아가 1주일만 숨겨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자 흉기로 찔러 중상을 입히고, 택시를 타고 도주하는 과정에서 택시기사를 살해했다.
왕리웨이 안산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유일한 중국인 한족 사형수이다. 심야에 혼자 돌아다니는 여성들을 노려 돌멩이와 망치 등으로 공격하고 금품을 훔쳤다. 이 중 여성 2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상해를 입었다. 피해자들의 성기에 나뭇가지를 삽입하는 등 변태적이고 가학적인 성추행도 가했다.[70]
이명호 가평 장의사 부부 살인 사건의 범인. 병원 영안실 계약을 성사시켜 주겠다고 속여 1억 1000여만 원을 갈취 후 공범과 같이 친구 누나 부부인 장의사 부부를 유인해 살해 후 암매장했다. 공범은 2016년 필리핀서 검거돼 징역 17년 형을 선고받았다.
정두영 10억원을 벌기 위해 부유층의 집에 침입해 강도짓을 하며 10개월간 총 9명의 사람을 살해하고 3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이전에도 살인죄로 12년을 복역한 전과가 있었다. 문서 참고.
천병선 노름판에서 사소한 시비 끝에 한명을 흉기로 찔러 중상을 입히고, 도망가는 다른 사람을 쫓아가 살해했다. 이후 원한을 가지고 있던 사람 3명을 찾아가 살해했으며, 또다른 사람을 살해하려던 과정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교도소 내에서도 교도관을 폭행해 징역 10개월이 추가되었으며, 유튜브 채널 과자형TV에 의하면 배식을 맡은 죄수들이 천병선에게 배식을 가면 그야말로 죽을맛이었다고 한다. 영상참조
2002년 김종근 부천에서 귀가하던 20대 직장인 여성을 납치 후 강간 살해, 시체를 싣고 다니며 이틀 동안 가족들과 태연하게 외식을 즐기고 야산에 암매장했다. 얼마 뒤 누나 집으로 가는데 기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한 아파트에 침입해 세들어 살던 여성과 집주인 여성이 자신의 얼굴을 봤다는 이유로 노끈으로 살해하고 현장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나갔지만, 빼앗은 카드로 현금을 인출하는 모습이 CCTV에 잡혔고 부천 건으로 붙잡히면서 검거되었다.[71]
조용훈 전주 노파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 절도를 목적으로 집에 침입했다가 50대 주부와 할머니 2명 등 총 3명을 목 졸라 살해했다. 마지막 피해자는 방화로 시체를 훼손했다.
김중호 잠실 아파트 일가족 살인사건의 범인. 의붓딸을 상습 성추행한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난 뒤, 집으로 찾아가 아내와 의붓딸, 다른 두 자녀 등 일가족 4명을 살해했다.
2003년 도경일 안성 일가족 강도살인사건의 범인. 아버지 이웃인 노인 부부와 처형 살해, 3억 원을 훔치고 손자도 유인해 살해했다.
박종규 빚을 독촉하던 사돈과 사채업자 등 2명을 살해하고 사체를 각각 암매장, 소각했다.[72]
정운하 사기행각이 탄로날까봐 일가족 4명을 살해한 뒤 방화했다.[73]
허재필 용인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 공범과 함께 택시기사로 위장해 이틀간 승객 6명의 돈을 빼앗고 살해했다.
2004년 김근우 부천 원미동 존속살해 사건의 범인. 카드빚을 안 갚아준다는 이유로 할머니와 어머니를 살해하고, 형과 아버지도 살해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범행 직후 pc방을 전전하며 여자친구에게 이메일을 태연히 보내고, 모든 잘못을 아버지 탓으로 돌렸다.
라경옥 영생교 교단에서 이탈한 신도 등 6명을 살해했다. 공범들에게 범행을 제의하고 실행을 주도한 주범이며, 피해자들 모두를 암매장했다.
2005년 유영철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총 20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마.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 문서 참고.
이종헌 보험설계사를 납치해 카드를 뺏고 강간, 살해하고 암매장. 그 뒤 피해자의 돈을 인출한 공범도 살해하고 암매장했다.
전용술 마산 대학교수 살인사건의 범인. 1974년, 18세였던 전용술은 짝사랑하던 여성을 살해한 뒤 강도행각을 벌여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후 동네 선배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이윤근 교수 덕분에 감형을 받아 1993년에 모범수로 석방되었다. 하지만 출소 후 교수에게 생활비를 타가는 한편, 사업 자금 5,000만원을 내놓으라며 살해 협박을 가해오다가 호프집에서 교수를 살해했다.
2006년 김용원 청주 내연녀, 초등생 연쇄살인 암매장 사건의 범인.[74]결별한 여자친구, 호프집 주인을 살해하고, 친구의 11세 딸을 2차례 성폭행 후 살해했다. 이전에도 폭행, 특수절도 등으로 11년 이상 복역한 전과가 있었다.
장기수 대전 문화동 일가족 살인사건의 범인. 보험금을 타기 위해 청산가리로 아내, 장남, 차남을 독살하고, 막내 아들은 목을 졸라 살해 후 방화했다.
2007년 김동민
(일등병)
530GP 사건의 범인. 상관과 선임병 등 8명을 살해하고 4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조경민 춘천,광주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의 범인. 2006년 7월~8월 춘천광주광역시 등지에서 공범과 함께 돈을 뺏기 위해 여성 3명을 납치, 살해 후 암매장했다. 두 범인 모두 이전에 강도, 강간 등 다수의 전과가 있었다. 공범 김종빈은 2009년 구치소에서 자살했다.
2009년 강호순 부인과 장모를 방화 살해하고, 부녀자 8명을 납치 후 강간 살해했다.
정상진 논현동 묻지마 방화 살인사건의 범인. 고시원에 방화하고 대피하는 고시원 거주자들을 회칼로 찔러 총 6명을 살해하고, 10명에게 중상해를 입혔다.
정성현 안양 초등생 유괴 살인 사건의 범인. 10세, 8세 여아를 강간 목적으로 집으로 유인하고, 살해한 뒤 사체를 토막내어 은닉했다. 이전에 성매매 여성과 말다툼을 벌이다 여성을 폭행하여 숨지게 한 뒤 사체를 토막내어 암매장한 사실도 드러났다.
2010년 이향열 영암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 여중생을 납치, 강간한 혐의로 15년을 복역했으나 출소한 후 동거녀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조카 중 1명을 강간 후 살해, 의붓딸을 강간 후 살해했다. 이후 조카 중 1명을 강간 후 감금, 친딸을 강간했고 친딸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붙잡혔다.
오종근 보성 어부 살인 사건의 범인. 대학생 커플을 자신의 배에 태운 뒤 남성을 배에서 밀어 익사, 여성을 추행하려다 반항하자 배에서 밀어 익사시켰다. 2명의 여성을 배에 태운 뒤 추행하려다 반항하자 모두 밀어 익사시켰다. 1938년생으로 국내 최고령 사형수이다.
2013년 김민찬
(상등병)
강화군 해병대 동료 총격 사건의 주범.[75] 총기를 훔쳐 앙심이 있던 동료 해병대원을 조준사격해 4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2015년 장재진 대구 중년부부 살인 사건의 범인.[76] 여자친구를 구타하여 이별 통보를 받고 이에 행패를 부리다 여자친구의 부모가 자신의 부모에게 이를 알려 다니던 대학교를 강제로 휴학하고 활동하던 동아리에서도 쫓겨나자, 분노하여 배관수리공으로 위장한 뒤 여자친구의 집으로 들어가 여자친구의 부모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여자친구도 유인, 집 안에 감금한 뒤 부모의 시신 앞에서 준강간했다.
2016년 임도빈
(병장)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77] 초소 근처에 대기 중이던 상관 및 동료 병사들을 향하여 수류탄을 던져 폭발시키고, 실탄을 발사했다. 총 5명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을 입었다.

양원보의 <한국의 연쇄살인범 X파일>에서 소수의 사형수들과 무기수들[78]의 범죄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79]

사형수가 현재 어떠한 생활을 하는지 소개한 조선일보 기사가 있다. 링크 혹은 김대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실장의 인터뷰나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사형 확정자의 생활 실태와 특성’ 보고서 참고.

공범과 함께 여성 3명을 살해해 사형을 확정받은 사형수 조경민이 열악한 교도소 환경으로 인해 심신의 피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나 기각 당했다. "교도소 좁아 우울증"…소송 낸 '女 3명 살인' 사형수

2002년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에는 여자 사형수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 날 이루어진 특별사면으로 2명의 여성 사형수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이들은 현재 무기수로 복역 중이다. #

3.1. 사형 집행 대기 중 사망한 사형수

다음은 1997년 이후 사형 집행 대기 중 자살 또는 자연사 등으로 숨진 사형수 목록이다.
||<width=20%> 이름 || 죄목 ||<width=20%><rowbgcolor=#333><rowcolor=#fff><tablebgcolor=#FFFFFF,#191919><tablebordercolor=black> 사형 확정 년도 ||<width=20%> 사망일시 및 원인 ||
장세명 어린이 2명 납치해 성폭행 후 살해 1999년 2006년 폐암으로 사망
김철표 내연녀의 자녀 3명 흉기 살해 1993년 2009년 지병으로 사망
전용하 내연녀 일가족 살해 후 암매장 1998년 미상
심인상 채무자의 자녀 등 어린이 4명 살해 및 방화 2000년 미상
김종빈 공범과 함께 부녀자 3명 강도 살해 2007년 2009년 자살
정남규 2년간 13명 살해, 20명 중상해 2007년 2009년 자살
이수일 3명 강도살해 1995년 2011년 자살
이동진 빚 독촉을 이유로 일가족 4명 살해 1999년 2015년 자살
오수현 2명 살해, 4명 성폭행 등 상습 강도강간
판결문
1996년 2015년 지병으로 사망
이재복 아내의 불륜남으로 의심한 남성 토막살해 후 방화 1999년 2019년 당뇨병으로 사망
임명기 길가던 여성을 배신한 동거녀로 착각해 살해, 이후 숨어 지내던 사찰에서 자신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여성 신자 두 명 살해[80] 1996년 2021년 직장암으로 사망

4. 사형수였으나 감형·사면된 경우

사형수 구명 운동으로 감형된 사례들이 존재하며, 또한 혼란했던 한국 정치사로 인해 정치적 이유로 감형이 되거나, 반대로 정치적 이유로 사형이 선고되었기 때문에 이후에 감형·사면된 사례도 상당하다.

이승만 정부 이후 현재까지 대법원 사형 확정판결을 받은 1100여 명 가운데 무기수로 감형된 경우는 총 44명이다. 사형수 감형은 1998년 2명, 1999년 5명, 2000년 2명, 2002년 4명, 2008년 6명이 있었다. 2008년 1월 1일 6명의 사형수를 감형한 이후 더 이상의 감형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tablewidth=100%><width=18%><tablebgcolor=#fff,#191919><rowbgcolor=#333><rowcolor=#fff><tablebordercolor=gray> 이름 ||<width=20%> 파기·사면 날짜 || 비고 ||
송지영 1961년
12월 21일
혁명재판으로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으나 정부에 의해 무기징역으로 감형.
안신규
한희석
이갑영
유지광
원충연 1967년
6월 27일
원충연 반혁명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으나 정부에 의해 무기징역으로 감형. 이후 1981년 형집행정지로 석방. 별도로 2020년의 재심으로 원충연의 사형/무기징역은 파기되고 징역 15년이 선고되었다.
박인도
김계원 1980년
1월 31일
10.26 사건에 대한 재판으로 1·2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2심에서 확인조치권[81]으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이후 1982년 형집행정지로 석방, 1988년 사면.
김대중 1981년
1월 23일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에 대한 재판으로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으나 전세계의 구명운동과 미국의 압박으로 정부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하였다. 이후 1982년 미국으로 망명.
김현장 1983년
3월 15일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으나 정부에 의해 무기징역으로 감형. 이후 1988년 석방.
문부식
김현희 1990년
4월 12일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의 범인.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으나 10일만에 정부에 의해 특별사면.
김광년 1999년
8월 15일[82]
대구 삼남매 살인 암매장 사건의 범인. 가출한 처와 닮았다는 이유로 친자식 2명을 살해하고 암매장했다.
최필승 1993년 7월 13일 이모씨가 운영하는 석궁사격장에 침입, 잠자던 이씨의 눈에 석궁을 발사하고 흉기로 살해한 뒤 7백60만원상당의 금품을 빼앗아 달아나면서 가스렌지를 틀어 불을 붙여 사형을 선고받았다.
김수연 1994년 6월 25일, 불륜관계에 있던 남성과 짜고 서울 은평구 수색동공터로 남편을 유인, 불륜남이 건넨 청산나트륨 캡슐 2개를 피로회복제라고 속이고 먹여 살해해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 1994년 11월 4일 집에서 잠자다 물을 찾던 남편에게 수면제를 탄 음료수를 마시게 한 뒤 정부를 끌어들여 남편을 전깃줄로 목졸라 살해해 사형을 선고받았다.
정영복 1992년 불륜관계이던 여성과 짜고 여성의 남편을 경북 고령읍 국도변으로 유인, 가스총을 쏴 실신시킨 뒤 각목으로 때려 숨지게 한 데 이어 사체에 볏단을 쌓고 불태워 사형을 선고받았다.
채○○ 2000년
8월 15일[83]
이모로부터 이모와 내연관계를 가진 정부의 애인을 살해하라는 부탁을 받고 피해자를 살해해 사형을 선고받았다.
정남진 94년에 처가 가출한 후 처가댁에 여러차례 처의 행방을 물어보았으나 알려주지 않자 술김에 처가를 불질러 2명을 살해해 사형을 선고받았다.
김진태 2002년
12월 31일[84]
1992년 10월 술을 마시고 걸핏하면 어머니를 폭행하는 아버지를 보다 못해 공기총으로 살해하고 유기한 혐의로 93년 사형이 확정. 이후 무기징역으로 특별 감형되었다.
김인제 1994년 친구 김명호와 함께 도박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여자친구를 납치해 살해한 뒤 암매장하고 가족에게 몸값을 요구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고, 공범인 김명호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후 무기징역수로 복역중이던 김명호가 김인제가 만취 상태에서 여자친구와 다투다 곯아떨어진 사이 자신이 여자친구를 숨지게 했다는 사실을 자백했다.
김장근 유흥비 마련을 위해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98년 4월 사형이 확정되었다.
김동운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회사에 침입했다 경비원을 살해해 사형을 선고받았다.
전재천 2007년
12월 31일[85]
페스카마호 선상 살인 사건으로 사형이 확정되었으나 특별사면으로 감형받았다.
정효조 조흥은행 강도살인 사건의 범인. 고향 선배의 변호사 선임비를 마련하기 위해 공범 4명과 함께 필로폰을 투약한 후 은행 직원 2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힌 뒤 약 1억 3천여만원이 들어있는 현금자루를 탈취하여 사형이 확정되었다.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이후 사형 확정자의 사형 집행 대기기간을 무기징역의 가석방 요건(20년)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

5.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상급심에서 감형된 경우

사형 선고를 받었으나 상급심에서 감형된 경우. 90년대까지만 해도 사형 선고는 현재의 무기징역만큼 흔하게 내려졌고 사형 선고가 그리 특별한 경우가 아니었기에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2000년대 이후의 사례만 작성.

사형을 구형받았으나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례는 사형을 선고받은 적이 없으므로 이 목록에 해당하지 않는다.

||<tablewidth=100%><tablebgcolor=#fff,#191919><rowbgcolor=#333><rowcolor=#fff><width=20%><tablebordercolor=gray> 이름 ||<width=25%> 감형 날짜 ·법원 || 비고 ||
이은석 2001년
4월 18일
서울고등법원
이은석 존속살해 사건의 범인. 부모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유기한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손상헌 2002년
2월 8일
고등군사법원
부천 탈영장교 살인사건의 범인.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항소심을 기다리던 중 탈옥하여 1명을 강도살인했다. 1·2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었고, 파기환송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최종근 2003년
10월 23일
부산고등법원
강간살인 및 살인 미수 3건, 특수 강도 및 강도상해 각각 6건, 절도 11건 등 부녀자들을 상대로 특수강도강간 범행을 저질러 1·2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었고, 파기환송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86]
이학만 2005년
2월 18일
서울고등법원
이학만 경찰 살해 사건의 범인. 경찰관 2명을 살해해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김원식 2006년
4월 28일
대전고등법원
대전교도소 교도관 피살 사건의 범인. 상해치사 혐의로 징역 8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도중, 평소 앙심을 품고 있었던 교도관을 쇠파이프로 내려쳐 살해해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이후 2014년경 지병으로 사망했다.
조영국 2008년
8월 12일
고등군사법원
강화도 해병대 총기 탈취 사건의 범인. 해병대원의 총을 탈취하여 1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2심에서 피해자를 초병으로 인식했다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초병살해죄는 파기되어 징역 15년으로 감형되었다.
하영민 2009년
4월 23일
서울고등법원
강화도 모녀 납치 살해 사건의 주범. 공범 4명과 함께 모녀를 납치하여 돈을 빼앗고 성폭행한 후 살해했으며, 자신의 이복 여동생도 살해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김종무 2009년
9월 17일
대전고등법원
2006년 재산을 뺏을 목적으로 집에 불을 질러 부모를 살해하고, 2008년 낭비벽이 심하다는 이유로 아내를 살해한 뒤 이를 목격한 딸까지 살해하였다.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김길태 2010년
12월 15일
부산고등법원
김길태 살인사건의 범인. 초등생을 납치해 성폭행, 살해 후 사체를 유기해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허준 2011년
2월 9일
서울고등법원
전국을 돌며 24차례에 걸쳐 가정주부를 성폭행하거나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87]
이○○ 2011년
3월 24일
대전고등법원
보령 청산가리 살인사건의 범인. 내연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아내와 옆짚 부부에게 청산가리를 먹여 살해했다. 2009년,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대법원에서 파기환송했고, 2011년에 무기징역을 확정받았다.[88]
신대용 2011년
5월 13일
부산고등법원
진주 빌라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 살인죄로 복역한 후 10여년간 총 3명을 살해해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받았다.
안남기 2011년
3월 15일
대전고등법원
청주 택시 연쇄강도 살인 사건의 범인. 택시기사로 일하면서 2명을 강간살해, 1명을 살해해 1심에서 사형을 선고[89]받았으나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오원춘 2012년
10월 18일
서울고등법원
수원 토막 살인 사건의 범인. 길가던 여성을 납치해 살해, 사체를 훼손해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임○○ 2012년
12월 17일
서울고등법원
70대 부모님과 10대 친아들을 흉기로 살해하고 본인도 자살을 시도해 1심에서 사형을 선고[90]받았지만 2심에서 심신미약이 인정되어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김홍일 2013년
5월 15일
부산고등법원
울산 자매 살인사건의 범인. 이별을 요구한 여자친구와 그녀의 동생을 살해해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정영석 2014년
7월 24일
서울고등법원
인천 모자 살인사건의 범인. 아내와 함께 재산을 노리기 위해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 또한 이를 형에게 뒤집어 씌우기 위해 형도 살해, 이후 어머니와 형의 사체를 훼손 후 유기했다.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이영학 2018년
9월 6일
서울고등법원
어금니 아빠 살인사건의 범인. 자신의 딸을 이용해 여중생을 집으로 유인한 뒤 성추행하고 살해, 시신을 유기했다.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안인득 2020년
6월 24일
부산고등법원
진주 아파트 방화·흉기난동 살인 사건의 범인. 고의로 방화를 저지른 뒤 대피하는 사람들을 흉기로 찔러 5명을 살해했다.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2심에서 심신미약이 인정되어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권재찬 2023년
6월 23일
서울고등법원
인천 미추홀구 강도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 강도살인으로 15년 복역 후 또 다시 2명을 살해해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이○○ 2023년
7월 13일
대전고등법원
공주교도소 살인 사건의 주범. 강도살인으로 무기징역으로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같은 방 재소자를 또 살해했다.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었고, 파기환송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무기징역을 2번 선고받은 셈이다.
정두호
2024년
2월 7일
부산고등법원
살인 혐의로 복역 후 출소한지 1년만에 자신의 동거녀를 살해했고 동거녀의 딸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쳤다.[91] 재판 도중 사형을 선고해달라며 조롱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1] 대구일보는 해방 후 최초 사형집행이라고 보도했고 그 이전의 사형집행 보도가 없는 점, 해방 직후의 기사들에서도 '1946년 8월부터 XX년 XX월까지 사형집행된 사람은...' 식의 보도가 있는 것으로 보아 최초의 사형집행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2] 정부수립(1948년 8월 15일) 이후 최초 사형집행이다.[총살형] 군인 신분으로 총살형으로 집행[4] 해방 이후 군사재판으로 총살형이 집행된 최초의 사례로 알려져 있다.[총살형] [총살형] [재심]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됨[총살형] [9] 이례적으로 주범 5명이 모두 공개처형되었다.[총살형] [총살형] [총살형] [총살형] [총살형] [총살형] [총살형] [재심] [재심] [19] 서울 도심 쪽 발포 명령으로 기소된 홍진기에 대해서는 사형선고가 내려지지 않았다. 곽영주와 최인규가 홍진기의 책임도 모두 떠안고 처형당했다는 의견이 많은 건 그 때문.[총살형] [총살형] [총살형2] 민간인 신분이지만 군사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된 후 총살형으로 집행[총살형] [총살형2] [재심] [총살형] [재심] [총살형] [총살형] [총살형] [총살형] [재심] [재심] [총살형] [재심] [총살형] [총살형2] [총살형2] [총살형] [총살형] [41] 정확한 일자는 알려지지 않았다.[42] 집행 직전까지 무죄를 주장했고 실제로 범인이 아닐 것이라는 추측은 많지만 아직 재심이 된 적은 없다.[총살형] [재심] [45] 일당 중 3명 사형, 2명 무기징역, 1명 징역 7년, 1명 징역 5년[재심] [47] 만 15세때 저지른 살인 사건으로 만 18세의 나이에 사형 확정, 만 21세의 나이에 집행당한 대한민국의 전무후무한 최연소 사형수이다. 이후 강문섭, 백병옥이 그와 같은 나이에 사형당했다.[48] 1990년 우리나라에서 2번째로 사형제에 대해 위헌법률 심판을 벌였다.[49] 다만 재판 당시 검찰 측이 살해도구라고 주장하는 삽을 증거로 제시하지 못해 논란이 있었다. 1심 당시에는 무기징역이 선고됐으나 1985년 2심 재판 당시 자신이 결백하다고 주장하면서 검찰측 증인의 증언을 위증이라고 하며 수갑을 던지거나 판사와 언쟁을 벌이는 등의 난동을 부려 '법정 소란죄'가 가중돼 사형선고까지 간 것이며, 대법원도 이를 되풀이했다.[50] 본인은 여론에 떠밀려 과하게 사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51] 1989년 우리나라 최초로 사형제도에 대해 위헌법률 심판을 청구했다.[52] 1967년생 야구선수 출신 살인마 이호성과는 동명이인이다. 우리가 아는 그 이호성은 李昊星이고 이 이호성은 李浩成이다. 그리고 이 이호성은 1960년생이다.[53] 내연남이었던 박걸의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음.[54] 2명 모두 무기징역을 선고받음[55] 이외의 정보는 찾을 수 없다.[56] 여성스러운 이름으로 인해 여성 사형수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남성이다. 관련 기사 참조. 사형 집행 이듬해인 1998년 쯤에 방영한 사형 관련 다큐에서도 그의 생전 사진 및 맏아들로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으로 보아 남성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57] 강화도 해병대 동료 총격 사건의 범인인 김민찬 - 대량살인, 대구 중년부부 살인 사건의 범인인 장재진 - 부모 살인 및 딸 강간 등 매우 계획적이고 치밀한 가정파괴범,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인 임도빈 - 대량살인.[58] 특이하게도 공주교도소 살인 사건처럼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고 2심에서 사형으로 늘어났다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으로 판결이 무기징역으로 되돌아간 사례도 있다.[59] 예외적으로 감형된 사형수 중에는 잔혹하기로 유명한 페스카마호 선상 살인 사건의 사형수, 엽총 은행 강도살인 사건의 사형수가 포함되어 있다. 감형 대상 선정에는 죄의 무게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부분도 어느정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60] 군 사형수 4명을 포함하면 희생자 수는 207명으로 늘어난다.[61] 사실 남학생을 납치한 것은 여자애로 착각했기 때문이다.[62] 특이하게도 성태수는 1991년 한반도를 강타했던 태풍 글래디스로 살던 집이 무너지면서 머리를 다쳐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항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63] 여담으로 군 교도소 내 최고참이며, 집사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고 한다.[64] 초졸 학력이었지만 복역 중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학사 학위도 취득했다. 2012년에는 재생에너지 관련 특허를 등록하기도 했다. 2018년에는 DNA 검사를 통해 가족관계를 확인받은 생모와 가족접견을 하였다.[65] 여담으로 피해자가 운영하던 제과점은 대구에서 꽤나 유명한 곳이었다.[66] MBC 경찰청 사람들 226화에서 공개수배 된 적이 있다.[67] 표창원이 진행한 K STAR의 프로그램인 살인자는 말한다 9화 편에서 장용식이라는 가명으로 이 사건을 다루었다.[68] 1998년 9월 부산의 모 의류공장에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한 뒤, 근무지를 이탈해 광주 등지에서 생활해 오다 체류기한이 다가오자 범행을 계획했다.[69] 가슴부위를 20~30차례 난자했다.[70] 만약 자기네 나라에서 붙잡였으면 얄짤없이 사형이 집행되었을 것이다.[71] KNN 현장추적 싸이렌 403회 방영되었다.[72] 공범 박창훈과 백철학은 각 무기징역, 1건의 살인에만 가담한 남상일은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73] 하지만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74] 청주판 유영철 사건으로 불렸던 사건이다.[75] 공범 정준혁은 살인에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에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2021년에 출소했다.[76] 현재 민간인 사형수 중 가장 최근에 사형이 확정된 사형수이다.[77] 현재 최연소이자 마지막으로 사형이 확정된 사형수이며, 2010년대 후반 이후 사법부의 사형 판결 기피가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감안하면 사실상 대한민국의 마지막 사형 확정자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78] 구형은 사형이지만 사형을 피하고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경우. 김윤철 같은 살인자에 관한 사례가 있다.[79] 다만 일부 범죄자들의 이름을 잘못 적거나 (이향열을 이'항'열로 표기, 전용술 사건을 전석재라고 혼동) 몇몇 사건의 날짜가 잘못 표기되었다.[80] 감옥에서는 자신이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라고 떠들어 대기도 했지만 물론 진범은 따로 있었으니 허풍이였다.[81] 2021년에 폐지되기 전에 지휘관이 가지고 있던, 군사재판에서 선고된 형량을 감경할 수 있던 권한[82] 광복절 특사로 5명의 사형수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83] 광복절 특사로 2명의 사형수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받았다.[84] 특별사면으로 4명의 사형수가 감형되었다.[85] 특별사면으로 6명이 감형되었다.[86]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문. 재판부는 "사형 선고는 그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누구라도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분명히 있는 경우에만 허용돼야 한다"며 "법원은 양형조건들을 평면적으로만 참작하는 데서 나아가 피고인의 주관적인 양형요소인 성행과 환경, 지능, 재범의 위험성, 개선 교화 가능성 등을 심사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해 사형 선택 여부를 심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판결은 훗날 많은 판례에 인용되며 피고인의 인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사형선고 요건을 엄격히 해석한 판결로 평가받았다.[87] #[88] 무기징역 판결문[89] 2010년 10월 28일 대전지방법원[90] #[91] 이전에도 살인, 살인미수 등으로 15번의 징역형과 8번의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며 합계 30년 가까이 징역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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