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5 10:20:29

와세다대학

와세다 대학에서 넘어옴

파일:와세다대학 로고(화이트).svg
학과 조직
정치경제학부, 이공학부 연구과,
국교학부 SILS 등 그 외 다수
입학 후 대학 생활 정보 동문 교우회 도몬카이
[稲門会]
캠퍼스 관련 상세 정보
와세다-게이오 라이벌 정기전 소케이센 [早慶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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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다대학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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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81C28>
[ruby(早稲田, ruby=わせだ, color=#F5F5F5)][ruby(大学, ruby=だいがく, color=#F5F5F5)]
와세다대학
Waseda University

파일:와세다대학 로고.svg

대학 정보
<colcolor=#fff> 정식 명칭 早稲田大学[1]
모토 <colbgcolor=#881C28><colcolor=#fff> 일본어 学問の独立[2]
学問の活用[3]
模範国民の造就[4]
한국어 학문의 독립
영어 Independence of scholarship
설립 연도 1882년 10월 21일 ([age(1882-10-21)]주년)
국가
[[일본|]][[틀:국기|]][[틀:국기|]]
소재 와세다(早稲田) 캠퍼스
도쿄도 신주쿠구 니시와세다
니시와세다(西早稲田) 캠퍼스
도쿄도 신주쿠구 오쿠보
도야마(戸山) 캠퍼스
도쿄도 신주쿠구 도야마
기쿠이초(喜久井町) 캠퍼스
도쿄도 신주쿠구 기쿠이초
니혼바시(日本橋) 캠퍼스
도쿄도 주오구 니혼바시
히가시후시미(東伏見) 캠퍼스
도쿄도 니시토쿄시 히가시후시미
토코로자와(所沢) 캠퍼스
사이타마현 토코로자와시 미카지마
혼조(本庄) 캠퍼스
사이타마현 혼조시 니시토미타
기타큐슈(北九州) 캠퍼스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 히비키노
분류 사립대학
설립자 오쿠마 시게노부 (大隈重信)
총장 제17대 다나카 아이지 (田中愛治)
재학생 학부 38,776명 (2023년)
대학원 8,491명 (2023년)
교직원 교원 5,227명 (2023년)
직원 1,275명 (2023년)
상징 마스코트 와세다 베어 (Waseda Bear)
색상
크림슨 (#881C28)
[5]
링크 홈페이지 파일:와세다대학 문장.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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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다 캠퍼스
니시와세다 캠퍼스
도야마 캠퍼스
기쿠이초 캠퍼스
니혼바시 캠퍼스
히가시후시미 캠퍼스
도코로자와 캠퍼스
혼조 캠퍼스
기타큐슈 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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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소개3. 연혁4. 상징
4.1. 교표·인장4.2. 교가4.3. 마스코트4.4. 와세다의 이미지
5. 협정 관계
5.1. 게이오기주쿠대학소케이 라이벌5.2. 국내외 와세다 협정 대학 및 기관
5.2.1. CAMPUS Asia ENGAGE5.2.2. 대한민국 협정교5.2.3. 해외 협정교
6. 학과 등 조직7. 캠퍼스8. 생활9. 와세다 출신 인물
9.1. 와세다 한인 동문
9.1.1. 한인 교수
9.2. 와세다 일본 현지 동문
9.2.1. 일본인 교수
9.3. 그 외 국가의 동문9.4. 중화권 동문9.5. 작품
10. 와세다 관련 기록11. 입시
11.1. 일반 입시 본고사11.2. 내외국인 유학생 입시
12. 사건 사고13. 기타

[clearfix]

1. 개요

파일:와세다대학 캠퍼스 사진1.jpg
▲ 와세다대학 캠퍼스
▲ 와세다대학 소개 영상

와세다대학일본 최초의 사립대학 중 하나이다. 오쿠마 시게노부내각총리대신에 의해 1882년 설립되었다. 와세다의 대학 본부는 도쿄도 도심 신주쿠구에 위치해 있다.[6] 도쿄 6대학 중 하나로 분류된다. 8명의 일본국 내각총리대신[7], 3명의 대한민국 국무총리[8], 각각 수백명 이상의 일본 및 한국 국회의원을 배출한 정재계 중점 대학이다. 중화권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 정부정당 창립자 중 리다자오천두슈 등이 와세다 출신이다.[9]

포브스 선정 기준 일본에서 가장 부자이며 전세계 30위권 부호야나이 타다시 회장 등 와세다 출신 동문들이 모교에 기부 중이며[10], 2024년 기준 현역 일본 닛케이 지수 상장 대기업 CEO 230명 이상이 와세다를 졸업했다. # 대한민국 대기업 재계 삼성그룹, 포스코그룹, 롯데그룹, 신세계그룹, CJ그룹 창업회장이 와세다 출신이기도 한만큼 한국 정재계 근현대사에 자주 등장하는 학교이다.[11] 또한 와세다는 일본 문학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배출하여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이 있으며, 삼성 이건희 선대 회장의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 이건희기념도서관도 있다. # #
와세다대와 한국의 오랜 인연을 실감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있었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후반부터 해방 직후까지 와세다대로 유학을 온 한국 유학생들이 귀국하기 전 기증한 70여권의 서적이 보관돼 있었다. 와세다대는 19세기 말부터 한국의 각계 인사들이 유학하는 등 한국과 인연이 깊다. 기사
와세다대학은 식민지 시대 조선의 독립 운동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공헌하였던 인물들을 다수 배출하였다. 당시 조선인들에게 있어서 일본 유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구의 문물을 도입하였던 일본을 통해 근대화를 모색하려는 수단이였다. 민족 정신을 가지고 있었던 조선 유학생들은 식민지 지배에 동조하는 관료 양성 기관인 제국대학 대신에 학문의 독립과 동서 문명의 조화를 추구하는 개방적인 학풍의 와세다 대학을 선택하였다. 인용 기사
와세다대학은 문부과학성이 공모한 슈퍼글로벌대학 사업에 선정되었으며, 일본 사회에서는 통상적으로 동일 일자에 대학 인가를 받은 와세다대학과 게이오기주쿠대학소케이(早慶)[12]라는 약칭으로 묶어 부르는 경향이 짙다.[13]

본 대학의 약칭은 와세다([ruby(早稲田, ruby=わせだ)])[14] 또는 소다이([ruby(早大, ruby=そうだい)])[15].

2. 소개

1882년 창립된 도쿄전문학교를 기원으로, 1904년 전문학교령에 의거한 구제전문학교를 거쳐 1920년 2월 5일 문부성 고시 제36호[16]에 의거 게이오기주쿠대학(문부성 고시 제35호)[17]과 함께 일본에서 최초의[18] 사립 구제대학으로 인가받았다.

국제적인 대학 평가로는 2024년 기준 QS 세계 대학 랭킹에서 전세계 199위 #, 일본 내에서는 790여개 대학[19] 중 9위[20]를 차지했다. 2024년 THE 세계 대학 랭킹에서는 전세계 801~1000위 및 일본 14위를 기록했으며, CWUR 세계 대학 랭킹에서는 2023년 전세계 201위 및 일본 8위, 2023년 ARWU에서는 전세계 701~800위 및 일본 20~23위를 기록하였다. 또한 학술 연구 성과 지표인 네이처 인덱스 교육기관 순위에서는 2020년대 일본 15위를 기록했다.

캠퍼스는 분산식 형태로, 하나하나의 크기는 작은 대신 도쿄 23구를 비롯하여 일본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다.[21] 신주쿠구 와세다 지역에 위치해 대학본부로 기능하는 와세다 캠퍼스, 동일 신주쿠구 내 바로 옆의 이공계열 학부 연구과가 있는 니시와세다 캠퍼스[22], 학생회관과 운동시설 그리고 문학부와 문화구상학부가 있는 도야마 캠퍼스[23], 스포츠과학부 및 인간과학부가 위치한 도코로자와 캠퍼스, 혼조 캠퍼스, 히가시후시미 캠퍼스, 기쿠이초 캠퍼스[24], 기타큐슈 캠퍼스 등이 있다. 와세다와 니시와세다, 도야마, 기쿠이초 캠퍼스 근처에는 JR야마노테선세이부 신주쿠선도쿄메트로 도자이선 타카다노바바역(高田馬場駅)[25], 도자이선 와세다역, 도덴아라카와선 와세다역, 니시와세다역 등이 있어서 이동하기가 용이하다. 와세다 캠퍼스와 니시와세다 캠퍼스는 본래 지명을 따서 니시와세다, 오쿠보 캠퍼스였으나, 현 니시와세다 캠퍼스 쪽에 도쿄메트로 후쿠토신선 니시와세다역이 생기며 명칭이 변경되었다.[26] #

3. 연혁

  • 1882년
    오쿠마 시게노부내각총리대신[27]이 도쿄전문학교(東京専門学校)를 창설. 정치경제학과(현 정치경제학부), 법률학과(현 법학부), 이학과(현 이공학부), 영문학과(현 문학부)의 4개학과가 출범
  • 1884년
    도쿄전문학교 제1회 졸업생 배출
  • 1898년
    도쿄부(府)로부터 '사단법인 도쿄전문학교' 인가를 받음
  • 1904년
    전문학교령에 따른 고등교육기관으로 지정. 상과(現 상학부의 전신) 신설
  • 1913년
    설립 30주년을 기념하여 '학문의 독립, 학문의 활용, 모범국민의 조취'를 건학의 정신으로 세움
  • 1920년
    다이쇼 9년 2월 6일 관보에 게재된 문부성 고시 제36호에 의거하여 2월 5일부 게이오기주쿠대학(문부성 고시 제35호)과 함께 대학령에 의거한 일본 최초의 사립 구제대학으로 정식 인가
  • 1949년
    '사립대학법인 와세다대학'으로 전환
  • 1953년
    대학원 박사 과정이 설치됨
  • 1982년
    창립 100주년 기념식 개최

4. 상징

4.1. 교표·인장

파일:와세다대학 로고.svg 파일:와세다대학 문장.svg
로고 교장
상기 로고는 창립 125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UI(University Identity)다. 위에서 내려다 본 학사모를 본따 만들어졌으며, 하단에 와세다대학의 교장이 들어가 있는 형태이다. 그 속에 있는 학교의 문장, 즉 교장(校章)은 1906년(메이지 39년)에 도안된 유서 깊은 문장이다.
제1회 졸업식 이후 사용된 와세다대학 인장의 인영(印影)

대학 상징 알파벳이 W이기 때문에, 학생 인터뷰나 기념사진을 보면 하나같이 손으로 W자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4.2. 교가

와세다대학 교가
수도의 서북([ruby(都, ruby=みやこ)]の[ruby(西北, ruby=せいほく)])
일본어 한국어
1절
都の西北 早稲田の森に
聳ゆる甍は われらが母校
われらが日ごろの 抱負を知るや
進取の精神 学の独立
現世を忘れぬ 久遠の理想
かがやくわれらが 行手を見よや
わせだ わせだ わせだ わせだ
わせだ わせだ わせだ

2절
東西古今の 文化のうしほ
一つに渦巻く 大島国の
大なる使命を 担ひて立てる
われらが行手は 窮り知らず
やがても久遠の 理想の影は
あまねく天下に 輝き布かん
わせだ わせだ わせだ わせだ
わせだ わせだ わせだ

3절
あれ見よかしこの 常磐の森は
心のふるさと われらが母校
集り散じて 人は変れど
仰ぐは同じき 理想の光
いざ声そろへて 空もとどろに
われらが母校の 名をばたたへん
わせだ わせだ わせだ わせだ
わせだ わせだ わせだ
1절
수도의 서북 와세다의 숲에
우뚝 선 지붕은 우리의 모교
우리가 언제나 잊지 않는 포부를 아느냐
진취의 정신 학문의 독립
현세를 잊지 않는 영원한 이상
빛나는 우리의 앞길을 보아라
와세다 와세다 와세다 와세다
와세다 와세다 와세다

2절
동서고금 문화의 조류가
하나로 소용돌이치는 큰 섬나라
원대한 사명을 짊어지고 일어서리
우리들의 앞길은 무궁무쌍하도다
머지 않아 영원한 이상의 그림자는
온 천하에 그 빛을 드리우리
와세다 와세다 와세다 와세다
와세다 와세다 와세다

3절
저기를 보라 늘 푸른 숲은
마음의 고향 우리의 모교
만나고 헤어지며 사람은 바뀌어도
우러러 봄은 한결 같은 이상의 빛
자 목소리를 모아 하늘까지 울리도록
우리 모교의 이름을 찬양하자
와세다 와세다 와세다 와세다
와세다 와세다 와세다

4.3. 마스코트

<colbgcolor=#8e1728>
파일:waseda_wasedabear.jpg
와세다베어 (ワセダベア)
설립자인 오쿠마 시게노부의 '쿠마'가 '곰'이라는 뜻의 일본어 '쿠마'와 발음이 같다는 것에서 착안해 곰이 되었다.
설립자인 오오쿠마 시게노부의 이름에서 을 뜻하는 쿠마(くま)를 떼어와 오오쿠마라는 곰을 마스코트 상징 캐릭터로 쓰고 있다. 오오쿠마 강당 근처의 기념품 샵, 11호관 1층 등 곳곳에 곰 캐릭터 상이 있다.

4.4. 와세다의 이미지

와세다대는 일본의 대학 중에선 자국의 대중매체에서 많이 오마주되거나 패러디되는 대학 중 한 곳이다.
  • 인맥이 두터운 대학
    와세다는 인원 수가 많은 만큼 국회의원, 상장기업 대표이사CEO 배출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일본에서 가장 많은 축에 속한다. 2024년 기준 HP대학정보에 따르면 일본 재계 등에서 출신인이 3,164명을 넘긴 바 있다. 관료를 포함한 OBOG 출신 대학 측면에서 와세다대학 졸업생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분야에 상관없이 정치, 경제, 문화, 예능,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수가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
  • 졸업생의 92.1%가 본인이 와세다 출신인 것을 자랑스러워 하고, 42.1%가 모교에 기부금을 낸 적이 있는 대학이다.
  • 높은 인구 밀집도
    입학자수가 매년 약 8천명으로 맘모스급. 좁은 캠퍼스에 학생들을 밀어넣어서 복작복작한 분위기이다. 몇몇 학관에선 에스컬레이터를 타려고 대기줄을 서야 한다.
  • 여학생 비율이 높음
    입학자 중 34% 이상이 여학생이다. 일본은 과거 남존여비 문화가 존재했던 흔적으로 2020년대까지도 남학생에 비해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현저히 낮다. 특히 여학생을 많이 뽑는 학부는 문학부, 문화구상학부가 있으나, 다른 학부의 경우에도 여학생의 비율이 평균보다 높다. 유학생의 경우에도 문과(문계)는 여학생이 최종 합격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 다양한 지역 출신이 많음
    와세다는 지방출신 학생의 비율이 높은 이미지다. 실제로, 지방 진학생을 위한 장학금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기도 한다. 이러한 와세다대학의 학풍은 세간으로 하여금 와세다대학의 소탈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다만 실제로는 일본 도쿄 수도권 출신이 약 75%다.
  • 반카라(バンカラ)
    예전엔 와세다의 특징으로 반카라라고 하는 단어를 들어 외모나 속세보다는 무언가 다른 것에 열중하는 소탈한 모습을 연상하였으나 21세기에는 소탈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어졌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5. 협정 관계

5.1. 게이오기주쿠대학소케이 라이벌

소케이(早慶). 학풍부터가 게이오기주쿠대학과 서로 상반된다. 일제강점기 시절 중국과 조선에서 건너 온 유학생들에게도 교수와 학우들이 차별 없이 친절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지금도 와세다대학의 교수진을 보면 지한파(知韓派) 학자들이 상당히 많이 포진해 있다. 경영대학원 운영방식에서도 두 곳은 차이를 보이는데 MBA과정에 있어서 게이오대학은 전일제만 존재하는데 반해 와세다대학은 전일제, 1년제, 야간 파트타임 등 다양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와세다대학의 경영대학원은 박사과정이 존재하지 않는데 반해 게이오기주쿠대학의 경영대학원은 박사과정이 존재한다.

5.2. 국내외 와세다 협정 대학 및 기관

5.2.1. CAMPUS Asia ENGAGE

CAMPUS Asia ENGAGE 참가교
와세다대학 고려대학교 베이징대학
CAMPUS Asia ENGAGE (Empowering Next Generations of east Asian leaders for Global peacE) とは、紛争解決と社会変革に情熱とスキルをもつ次世代アジアのリーダーを、日中韓のリーディングスクールである早稲田大学と北京大学と高麗大学校が協力して育成しようという画期的なプログラムです。東アジアと世界の望ましい未来のために何かできないかと考えているあなた、でもいったい何から始めればよいのかとまどっているあなた。CAMPUS Asia は、そんなあなたのためのプログラムです。アジアの友人たちとの新しい学びの場を、一緒に作ってみませんか。
[ 국문 해석 ]
>CAMPUS Asia ENGAGE (Empowering Next Generations of east Asian leaders for Global peacE)란 분쟁해결과 사회변혁에 열정과 스킬을 가진 차세대 아시아 리더를 한중일 리딩스쿨인 와세다대학과 베이징대학고려대학교가 협력하여 육성하고자 하는 획기적인 프로그램입니다. 동아시아세계의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뭔가 할 수 없을까 생각하고 있는 당신, 하지만 도대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망설이고 있는 당신. CAMPUS Asia는 그런 당신을 위한 프로그램입니다. 아시아 친구들과의 새로운 배움의 장을 함께 만들어 보지 않겠습니까? (한국어 직역)
Students study abroad at either Peking University or Korea University for a period of 1 or 1.5 years respectively, follow a curriculum designated in cooperation with Peking University and Korea University, and complete a total of 12 credits of CAMPUS Asia courses at Waseda and each host university by graduation.[28]
Students who successfully complete any of course tracks listed above will receive a jointly issued “certificate” testifying to their completion of the CAMPUS Asia Program at graduation.[29]
파일:45E1B36D-AACE-4175-8208-A85F798CA534.jpg
와세다대학 - 북경대학 - 고려대학교 ENGAGE
고려대학교와 일본의 와세다대학교(早稲田大學校)는 1973년 학술교류협정을 체결했고, 2002년에는 양교 교우회가 우호교류협정을 맺어[31] 활발한 학술, 학생, 연구 등 다방면에서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 - 고려대학교 소개
와세다는 대한민국에서는 전통적 자매대학인 고려대학교와 교류가 가장 많다. 고려대학교 전신인 보성전문 시절인 20세기 초반부터 교류는 많았으나 본격적인 교류 협정은 1970년대부터 체결되었다. 고려대학교 인수 및 창립자 김성수 등 고려대학교 초창기 핵심 멤버 다수가 와세다대학 출신인 관계로 그만큼 인연이 깊다. 한일 4대학 연맹 등 연합 행사도 자주 주최한다. # # # 복수학위는 물론 상호 방문단을 파견하여 와세다대학 응원단이 고연전에서 고려대학교를 응원하기도 한다. # #
오부치총리가 대학강연 학교로 고려대학교를 택한 것은 그가 졸업한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과 고려대학교가 자매결연 관계에 있는 인연을 감안한 것. 오부치총리 고려대학교에서 강연
일제강점기 고려대를 인수해 민족사학으로 키운 인촌 김성수민세는 일본 와세다대 동창이다. #
오쿠시마 다카야스(奧島孝康) 일본 와세다대 총장은 축사를 통해 “고려대와 와세다대학은 김이사장의 선대이신 고 김성수(金性洙)선생과 엄친이신 김상만(金相万)전회장이 와세다대를 졸업했으며 김전회장이 와세다대에서 85년 명예박사학위를 받는 등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 동아일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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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A600B2F-8DA3-48E9-BE52-850C758F3ED3.jpg
상술하였듯 베이징대학은 와세다대학과 가장 교류가 많은 대학중 하나이며, 상기는 북경대-와세다대학의 워크샵 일례이다.[33]
파일:355F6E1E-A3BD-402A-BEFC-4CF2E770883F.png
2023년 와세다-북경대 총장 및 고위급 인사 접선

5.2.2. 대한민국 협정교

5.2.3. 해외 협정교

6. 학과 등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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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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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다대학의 학과 상세에 관해서는 상기 문서를 참조.

7. 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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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세다대학 캠퍼스 소개 영상

8.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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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다대학의 입학 후 대학 생활에 관해서는 상기 문서를 참조.

9. 와세다 출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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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와세다대학/도몬카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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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히토 천황조카딸쓰구코 공주와세다대학 국제교양학부입학, 졸업한 내용 등 와세다대학의 총교우회 동문 네트워크 도몬카이 자체에 대한 내용 상세에 관해서는 상기 문서를 참조.
  • 상기에서 언급한 내용에 한국 중점 내용으로 첨언하자면 대한민국의 와세다 출신 인물로는 아무래도 삼성그룹 창업회장인 이병철(정치경제학부 중퇴 및 명예박사) 그리고 선대회장인 이건희(경영학 학사 및 명예박사)가 있다.[40] 이병철은 이건희가 서울대학교 진학에 실패하고,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자, 서울대학교에 못갈 바에 연세대학교를 자퇴하고 일본 와세다대에 유학가서 선진국일본을 배워오라”[41]고 지시하기도 했다. # 대학 내 컴퓨터가 레노버인 점을 포함해 캠퍼스 내 삼성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으나 이건희가 졸업한 정치경제학부 건물이 새로 지어지면서 이건희기념도서관이 생겼다. 이건희는 생전 막대한 금액을 매년 와세다에 기부했고, 지금의 삼성그룹을 이룩한 경영자라는 점에서 대학 측에서도 특별 동문으로 우대해왔다. 2010년에는 이건희에게 명예 박사를 수여하였는데 이때 홍라희와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등 가족이 모두 참석하여 화제가 되었다 #. 와세다대학은 2020년 이건희가 별세하자 특별 애도 성명을 발표하였다 #. 상술한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도 있다.[42] 그 외 유명 졸업생으론 기 서술한 고려대학교, 동아일보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도 있는데, 그를 포함 당시 한국인 다수가 와세다대학 한국동창회 활동을 열심히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43] 다만 와세다 도몬카이는 명목상으로는 당연히 와세다대학 본부 및 도몬카이 소속이지만, 일본 도몬카이와 다른 1940년대부터의 대한민국 위주의 독자적 역사가 있으므로, 와세다대학 한국동창회와 작금의 와세다대학 한국교우회의 역사는 하기에 중점적으로 서술한다.

9.1. 와세다 한인 동문

早稲田大學韓国校友會
WASEDA University Korea Alumni Association
주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강남대로 유니온센터빌딩 1710호[44]
와세다대학 한국교우회[45]일본 도쿄도 신주쿠구 와세다 메인 캠퍼스 안에 한국 전통양식의 “한종각(韓鐘閣)” 및 내부에 성덕대왕신종[46]의 복제인 “한국의 종”을 설치하기도 했다. 1982년 개교 100주년을 맞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김창성 전방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등 한국인 동창회원들이 제작해 기증한 것으로 와세다대학 캠퍼스 공원 내 설치돼 있다. # 당시 와세다 한인동문들은 “마치 독립운동을 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고 소회 2000년대 삼성 이건희 회장, 롯데 신격호 회장 등이 수십억원의 와세다대학 모교한인장학금 기부를 하기도 했다. 2023년 기준 약 1만여명의 한국인이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파악된다.
“와세다대학 교우회의 해외 지부 중 하나로서 자리매김하고,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교우회는 2017년에 7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와세다대학 총장과 본교 교우회 대표 간사를 비롯한 대학·교우회 본부의 대표가 기념식에 초대되었습니다.” 와세다대학 - 한국교우회 창립 70주년 기념식 개최
한국교우회와 마찬가지로 1947년도에 만들어져 2021년부터 대학 공인 서클로 인정받은 재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와세다대학 한국인학생회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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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다 출신 중 시가총액 1위 기업의 경영자는 누구일까요?” 일본 와세다대학 비즈니스스쿨 (경영대) 수업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 교수가 있다. 학생들은 유니클로를 이끄는 야나이 다다시(柳井正) 패스트리테일링 회장이라고 대답했지만, 교수의 대답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었다. △고(故) 이건희 회장은 1961년에 와세다대 상학부에 입학해 1965년 졸업했다. 2010년엔 와세다대로부터 대학원 명예박사학위도 받았다. 2014년 와세다대는 정치경제학술원연구도서관과 정치경제학술원학생도서관의 간판을 ‘이건희 기념도서관’으로 변경해 개관했다. △“본 대학 동문인 이건희씨가 철학과 인덕을 겸비한 경영자로서 인류사회에 공헌하고, 일본과 한국의 우호 관계 증진을 위해 힘써온 일은 와세다의 큰 긍지이다.” 와세다대 홈페이지엔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한 이유가 적힌 결의문과 함께 박사모를 쓴 이건희 회장의 기념사진이 걸려 있다. # #

9.1.1. 한인 교수

"이 대학이 나에게 주신 영예를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특히 존경하는 정치선배였던 신익희, 김성수 선생이 공부한 바 있는 이 대학에서 명예로운 학위를 받게 된 것을 더욱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여러분께서 저를 와세다 동창의 한 사람으로 맞이해 준 데 대하여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늘 형설의 노력 끝에 학위를 받은 졸업생 여러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나는 야당 정치인 시절인 1985년에 이 대학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때 방문기념으로 「대도무문」이라는 글을 써 주었습니다. 당시 대학 관계자들은 와세다 대학에 교문이 없는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했습니다. 나는 그때 이 대학에 문이 없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와세다 정신은, 당당하고 떳떳하게 나가면 거칠 것이 없다는 「대도무문」이라는 나의 좌우명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로부터, 저는 와세다人과 정신적 同志[54]라는 생각을 가져 왔습니다. 그때 쓴 글이 아직도 이 대학에 비치되어 있는데 대해 저는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 대학의 창립자 오쿠마 시게노부(大 畏重信) 선생은「학문의 독립」과 「정신의 독립」을 강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의 정신을 이어받은 와세다人들은 높은 이상을 추구했으며,진취적 정신을 지녔습니다. 그리하여 이 대학 출신들은 日本 近代化의 役軍[55]이 되었습니다.전쟁의 폐허 위에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대국을 건설하는 주역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가장 많은 한국 유학생들이 와세다를 선택했던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56][57] - 1994년 고야마 츄마루(小山宙丸)총장 등 대학관계자들의 영접을 받으며 #

9.2. 와세다 일본 현지 동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자신의 모교인 와세다대에서 후배들을 상대로 강연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돌아가는 길의 연속이었다"고 술회했다. 기시다 총리는 원래 도쿄대학을 목표로 대학 시험을 3번이나 봤지만 떨어져 결국 포기하고, 와세다대 법학부에 입학한 이른바 'N수생' 출신이다. 현직 총리가 와세다대에서 강연한 것은 2012년 노다 요시히코(와세다대 정치학과 졸업) 당시 총리 이후 11년 만이라고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전했다. 와세다대 'N수생' 기시다, 모교서…"난 실패 거듭했던 인간"

9.2.1. 일본인 교수

9.3. 그 외 국가의 동문

9.4. 중화권 동문

니혼게이자이신문 중문판 - 와세다(早稻田)[62]대학과 중국과의 인연은 1899년(메이지 3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와세다는 청나라 정부의 3명의 공비 유학생을 받아들이고 일본어 교육을 시작했다. 1914년(다이쇼 3년)에는 중국인 리다자오가 와세다의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했다. 리다자오는 후에 중국 공산당의 창립자 중 한 명이 되었다. 같은 창립 멤버이자 첫 번째 총서기로 선출된 천두슈도 일본에서 유학했으며 와세다를 졸업했다. 이렇게 두 명의 중국 공산당 핵심 멤버가 일본에서 유학하고 와세다대학에 진학한 사실은 중국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1998년 장쩌민과 2008년 후진타오 이 두 명의 당시 국가주석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특별히 와세다 대학에서 강연을 했으며, 이는 중국에서도 널리 보도되었다. #
중국 언론에서는 이전부터 와세다대학과 중국의 깊은 연관성에 대해 보도해 왔다. 메이지 시대에 청국에서 정부 장학생 13명을 받아들여 일본어 교육을 제공하였고, 1913년(다이쇼 2년)에 후에 중국 정부 및 집권당의 창립 멤버가 된 리다자오(李大釗)가 입학했다. 같은 창립 멤버이며, 첫 대표로 선출된 천두슈(陳獨秀)도 와세다에서 학습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1998년에는 장쩌민 주석, 2008년에는 후진타오라는 두 명의 국가주석이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특별히 와세다를 방문했다. 중국의 역사 교과서에서는 일본의 메이지 개혁에 대해 가르치며, 메이지 정부에서 활동한 것은 와세다의 창립자, 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였고, 그곳에서 학습한 유학생들이 중국 국가 및 집권당을 창립했던 것이 중국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인용 기사
  • 쑹자오런 - 중국의 혁명가, 정치가 - 宋教仁 (Sòng Jiàorén) - 대한민국 건국훈장 - 송교인
  • 리다자오 - 중국 국가 설립 핵심 멤버 - 李大钊 (Lǐ Dàzhāo) - 이대조
  • 천두슈 - 중국 국가 설립 핵심 멤버 - 陈独秀 (Chén Dúxiù) - 진독수
  • 랴오중카이 - 중국의 혁명가, 정치가
  • 인루겅 - 중화민국의 외교관
  • 펑파이
  • 저우언라이 (주은래) - 중국의 혁명가, 정치가. 와세다대학에서 수강[63]하다가 귀국해 현지 난카이대학 졸업
2021년 중국 당 창립 100주년에 주목…일본 와세다대학에 유학한 주요인물 2명은

하기는 편의상 한어병음 및 한국 한자 직독을 추가하였다.[64]
  • 랴오중카이 (廖仲恺) (Liào Zhòngkǎi): 요중해 - 혁명 지도자, 중국 국민당 중앙집행위원회 위원, 역임 외교부 장관, 국방부 장관, 재정부 장관, 노동부 장관
  • 랴오청지 (廖承志) (Liào Chéngzhì): 요승지 - 중국 당원, 외교가
  • 진쇼푸 (金硕甫) (Jīn Shuòfǔ): 김석보 - 통련회 회원, 혁명가, 중화민국 창립자 중 한 명
  • 양룬바이 (杨沦白) (Yáng Lúnbái): 양륜백 - 통련회 회원, 혁명가, 중화민국 창립자 중 한 명
  • 시에츠 (谢持) (Xiè Chí): 사지 - 통련회 회원, 혁명가, 중화민국 창립자 중 한 명
  • 자오톄차오 (赵铁桥) (Zhào Tiěqiáo): 조철교 - 통련회 회원, 혁명가, 중화민국 창립자 중 한 명
  • 천슈윈 (陈漱云) (Chén Shùyún): 진수운 - 통련회 회원, 혁명가, 중화민국 창립자 중 한 명
  • 양자오롱 (杨兆容) (Yáng Zhàoróng): 양조용 - 통련회 회원, 혁명가, 중화민국 창립자 중 한 명
  • 리친허 (李琴鹤) (Lǐ Qínhè): 이금학 - 통련회 회원, 혁명가, 중화민국 창립자 중 한 명
  • 진리치우 (金丽秋) (Jīn Lìqiū): 김려추 - 통련회 회원, 혁명가, 중화민국 창립자 중 한 명, 중화민국 초대, 2대 쓰촨성 참의원
  • 진메이링 (金美龄) (Jīn Měilíng): 김미령 - 전 중화민국 총통부 국책 자문
  • 청종모 (城仲模) (Chéng Zhòngmó): 성중모 - 공법학자, 전 중화민국 사법원 부원장,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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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작품

10. 와세다 관련 기록

일본 주간 다이아몬드 최신호는 3백14사 인사부장을 상대로 전국 주요대학 출신자의 「인재유용도」를 조사한 결과 모두 11개 항목중 9개 항목에서 와세다대가 차지했다.
여배우 윤정희 : 부친은 와세다 법대를 나와 부산에서 신문기자로 있었다. #
제주은행[65] : 제주은행은 1대 김봉학 전 행장에 의해 설립될 때만 해도 재일교포 중심의 조직이었다. 그는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교 정경학부를 졸업했고 천마합성수지를 창업했다. 재일교포 사업가로 성공해 그 자금을 밑천으로 제주은행을 설립했고 초대 행장까지 맡았다. 1995년에는 김봉학 전 회장의 아들인 김성인 전 행장이 취임하기도 했다. 김성인 전 행장도 일본에서 자라 아버지의 모교인 와세다대 상학부를 졸업했다. 훗날 외환위기로 경영이 어려워진 제주은행을 신한금융이 인수한 것도 재일교포 자본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어 가능했다. #
일본 도쿄 도심 신주쿠에 위치한 와세다대학 본부 캠퍼스 학생식당 옆에 한국식 정자가 있다. 정자는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 와세다 대학출신 한국 기업인 등이 기금을 모아 기증해서 만들어졌다. 이건희 회장은 와세다대 동문인 선친 이병철 회장의 영향으로 어릴 적 일본에서 초등학교를 다녔으며, 대학은 와세다대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그가 일본 경제, 사회, 문화는 물론 스포츠도 잘 아는 대표적인 한국 기업 총수의 한 명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 회장이 대학 재학 중일 때만 해도 한국 경제는 기술적 차이가 워낙 커 일본 경제의 변방 역할을 하는 수준이었다. 일본의 선진 기술을 도입할 정도도 되지 않았으며 그냥 흉내 내는 데 불과했다. 이 회장은 선친과 함께 일본 경영기법과 노하우를 부지런히 배우고 삼성에 적용했다. #
백기만은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와세다 대학을 나오고 양주동과 세 사람(이장희, 이상화, 양주동)은 금성(金星)동인으로 문단 활동을 함께 했다. #
김우진은 목포 백만장자 김성규의 장남으로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 부잣집 아들에 일본 와세다 대학을 나온 유부남과 배우 출신의 가수가 동시에 사리진 것은 호사가들의 입맛을 당기는 뉴스였고, 이들이 사라졌다는 사건이 전해지자 언론에서는 ‘정사(情死)’로 단정해 앞다퉈 보도했다. #
“재일동포 출신으로 일단 일본 사회에서 취직이 어려웠어요. 빠징코나 폐품 회수 자영업자 등 선택지가 좁았지요.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용기를 내서 소니에 지원했는데, 가타부타 연락도 없었어요(웃음). 한마디로 무시를 당한 거예요. 몇 년 전 소니 본사가 있는 시나가와에서 간부들을 모아놓고 강연을 하면서 “소니에서 떨어진 강상중입니다"라고 했더니, 그분들이 “강 선생, 행운이십니다" 그래요. 소니는 그때 이후로 힘든 시기를 보냈고, 지금은 삼성을 못 따라간다고요. 지금은 웃으며 얘기하지만, 대학 시절엔 어두운 얘기였어요.” #
이런 월례행사는 국내는 물론 세계 대학동창회 사상 그 유례가 없는 고대만의 자랑스런 전통 사업이다. 자매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벤치마킹해 갔다지만 뒷소식이 없고... #
교육사업에 전 재산 바친 청암 이하복 선생. 일본 와세다 대학 출신의 이하복 선생은 관리가 되기를 바란 아버지 뜻을 거부하고 교편을 잡습니다. #
롯데삼성보다 더 삼성 같은 기업이다. 롯데 직원들도 맞장구 친다.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 등 삼성의 좋은 점은 안 닮았다. 대신, 나쁜 면은 더 진하게 닮았다. 지나치게 보수적인 문화, 총수가 전횡하는 황제경영 등이 그렇다. 닮은 점은 그밖에도 많다. 창업주는 특히 그렇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과 롯데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은 모두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다. 창업 이후에도 일본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일본식 경영을 배워 적용했고, 일본 기업인들처럼 정치권력을 관리했다. #
와세다대학교가 지난 19일 고려대학교를 찾아 첫 친선경기를 치렀다. 와세다대 벤치에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양 팀 벤치를 통틀어 있는 유일한 여자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일본인도 아닌 한국인이라는 점. 와세다대 벤치에 앉아있는 주인공은 다름 아닌 정민영(21)씨였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정민영씨는 숙명여고를 졸업한 뒤 와세다대에 입학했다. 정민영씨는 “야구같은 경우는 일본이 한국보다 앞서는데, 농구는 사실 한국이 한 수 위잖아요. 뿌듯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해요. 이렇게 시설이 좋은 체육관이 있다는 것도 자랑스럽고요”라며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
차남 이창희씨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와세다대학에서 만난 일본인인 나카네 히로미(이영자)씨와 연애 결혼했다. 하지만 한비사건으로 삼성그룹을 떠나 1973년 마그네틱미디어코리아를 설립하게 된다. 이후 1977년 특수세라믹사를 인수해 새한미디어로 재출발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백혈병으로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1991년 7월 미국에서 치료 중 별세했다. #
글로벌 경영전략 수립 : 롯데는 지난 1964년 국내 대학의 이공계 출신 7명의 소수 멤버를 뽑아 와세다대학에서 교육을 시켰다. 이들이 바로 롯데 1기가 됐다. 이중 4명이 롯데의 최고 수장까지 올랐다. #
이창용에 의하면 전형필이 24살 나이에 가족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유산 상속받은 땅은 무려 800만 평에 달했다. 그의 집은 종로 일대 99칸 기와집이었으며, 창동 노원 일대 수십만 평의 땅이 그의 집안 것이었고, 충청도 서산 공주 농지에서는 매년 수만 석의 추수를 거둬들였다. 이런 전형필이 본격적으로 '문화보국'에 뛰어든 나이는 고작 24살이었다. 당시 아버지의 바람대로 조선인들의 편에서 그들을 구제해주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와세다대학 법학부에 재학 중이던 전형필은 아버지를 포함한 가족들의 죽음으로 유산을 상속받아 하루 아침에 백만장자가 되자, 그간 마음에만 품고 있던 '일본이 만든 법으로 조선인을 지키는 게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다. #
안철수연구소가 일본 사립대와 공공기관과 제품 공급 계약을 잇달아 체결했다. 일본법인 안랩 재팬(www.ahnlab.co.jp)이 일본 와세다 대학에 윈도우 서버용 ‘V3 VirusBlock(기업용)을 납품하고 일본 지방 교육위원회와도 향후 5년간 직판으로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8일 밝혔다. #
회장의 5남매는 하나같이 내로라하는 집안에, 모두 중매로 결혼했다. 큰딸 혜성(24)씨는 일본 세이신여자대학을 나와 와세다대학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어머니가 설립한 그룹 계열사 ‘쓰리에스포유’(시설관리전문)의 등기이사이기도 하다. #
일본 와세다 대학을 방문해 강연할 예정이었던 중국 후진타오 주석은 우파 성향 졸업생들의 반대에 부딪혀 곤란을 겪었다. 수십명의 와세다대 졸업생들은 성명을 통해 후 주석을 `티베트인들의 민족자결권과 인권을 탄압하는 지도자'라고 비난하면서 방문 일정의 취소를 요구했다. #
일본 4대 어덜트비디오(AV) 제작 회사가 일본 와세다(早稲田) 대학에서 채용박람회를 개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중국 환추스바오(環球時報)는 일본 언론을 인용해 지난달 이들 회사가 와세다대 신주쿠(新宿) 캠퍼스에서 '섹스산업설명회'라는 이름의 박람회를 공동으로 개최했으며 약 200명의 학생이 이 박람회에 참가했다고 전했다. 박람회에 참가한 학생 가운데 약 20%가 여학생으로 알려졌다. AV 회사 기획팀에서 근무하는 와세다대 출신의 한 여직원은 이날 "애초 부모들이 자신이 이런 회사에서 근무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했지만 잘 설득한 결과, 이들의 이해를 구했다"면서 개인적인 경험을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
삼성가 둘째인 이창희(李昌熙)와 효성가 장남 조석래(趙錫來)가 이승만 정부의 최초 합법적 유학으로 와세다 대학에 입학했다. 이맹희 씨는 동생과 조석래 등과 만나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지만 여전히 노는데 눈이 팔려 공부는 건성건성했고 동생 이창희는 열심히 공부하여 일본의 명문가 규수를 만나 부모님 허락 없이 제국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
제주외국어고등학교: 제주시 애월읍에 위치한 제주외국어고등학교가 떠들썩하다. 학교 역사상 최초로 일본 전통 와세다대학교(Waseda University, 早稲田大学) 합격자가 배출됐기 때문이다. 사교육에 의존한 것도 아니고 녹록지 않은 환경에서 스스로 이뤄낸 성과이기에 더욱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합격자의 부모는 기쁨 만큼 걱정도 가득하다. 어찌된 일일까? 게다가 국내에서 고3 때 바로 시험을 봐 합격해 일본 내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 소위 ‘현역’으로 일본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가 드문데다 서울 강남에서 학원을 꾸준히 다니며 대비하는 게 일반적이다. “장학금 제도를 찾아보지 않은 건 아니에요. 그런데 국내 정부에서 지원하는 장학금은 사실상 국내 대학에 진학했을 경우에만 해당되더라구요. #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한류 원조’ 손일형 IMX 대표. 최정점에서 떨어진 나락에서 한국 드라마 최초 아마존 오리지널 시리즈 들고 귀환. 손일형 대표가 남들보다 일찍 콘텐트와 멀티 플랫폼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것은 남다른 그의 이력 때문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성균관대학교를 다니다 (중퇴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했다. #
인문계 출신의 평사원이 소니 CEO에 오르기까지.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이데이 노부유키는 자타가 공인하는 엘리트였다. 그의 아버지는 와세다 대학의 교수였으며, 이데이 노부유키 본인 역시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학부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그는 1960년, 대학 졸업과 거의 동시에 소니에 입사했으며, 뛰어난 외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10여년간 유럽 지사에 근무했다. 회사일을 하면서 스위스 제네바의 국제연구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치기도 했는데, 이를 통해 국제적인 감각을 익히게 된다. #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일본의 국립대학인 도쿄대학교에 여러 차례 응시했지만 번번이 낙방하고, 와세다대학교로 진학합니다. 그리고 1982년 와세다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한 후 일본장기신용은행에 입사했습니다..... #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도쿄(東京)대학을 목표로 공부했다. 아버지를 포함해서 주변에 도쿄대학 졸업생이 많아 자신도 당연히 도쿄대학에 들어갈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하지만 3번이나 실패했다. 결국 와세다(早稻田)대학 법학부에 진학했다. #
방탄소년단(BTS) 지민에게 수학 공식을 이용해 팬심을 고백해 화제를 모았던 인도네시아 작가 겸 유튜버 (인플루언서) 제롬 폴린 시자밧(Jerome Polin Sijabat)이 'jimin x min = jiplus'라는 글을 게시해 눈길을 모은다. 와세다 대학(早稲田大学, Waseda University)에서 수학을 전공한 수재로 2020년 제40회 인도네시아 국제 북페어(Indonesia International Book Fair - IIBF)에서 올해의 신인 7작가상을 수상하며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
와세다대학교 MBA 과정에서는 물건의 판매가 아닌 서비스 판매 중심 사고를 요구한다. ‘운동화 판매’를 예로 들면 운동화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달리기’를 판매하라고 말한다. 운동화 구매를 통해서 실현할 수 있는 상황을 판매하여 비즈니스를 풀어가라는 말이 될 것이다. 현대 경영의 흐름은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닌 제품을 사용하면서 사용자가 느끼는 가치를 디자인하는 쪽으로 이미 발전해 왔다. 디자인경영의 하버드씽킹
코로나는 대학입시도 피해 가나? 사회적 거리두기 0m. 와세다(早稲田)대학 교육학부 입시가 실시된 19일 오후 시험을 마친 수천 명의 수험생들이 한꺼번에 몰려 지하철역까지 장사진을 이뤘다. #

11. 입시

  • 와세다대학과 같은 사립대학은 대학입시에 있어서 국립대학과 상당히 다른 차원의 제도로 운영된다. 이것은 와세다대학 뿐만이 아니라 일본의 모든 사립대학[66] 전반의 사정에도 해당된다.
  • 국립대학은 전기일정, 후기일정 각각 1곳 밖에 지원할 수 없다. 국립대학들은 복수지원이 불가하며 대부분 전기일정에서 입학자를 선발하므로 기회가 사실상 1번이다. 반면에 사립대학은 대학마다 시험 일정이 다르며, 같은 대학 내에서도 학부가 다르다면 입시일정이 다른 경우가 많고, 여러 학부에 중복지원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계획을 잘만 짜면 사립대학 수십 곳에 중복 지원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립대학 합격자의 상당수가 다른 곳으로 진학하기 때문에 사립대학 입시관계자들은 이를 미리 내다보고, 모집인원을 아득히 넘는 인원을 합격시킨다.[67]
  • 와세다대학과 같은 사립대학은 일부 전형을 제외하고는 센터시험 없이 오직 대학 자체의 본고사만으로 선발을 한다.[68] 그 반면에 국립대학의 입시는 한국의 수능과 같은 격인 센터시험을 수험해야 하며, 센터시험 성적으로 1차 전형, 그 다음에 대학 자체의 본고사를 치른다. 국립대학 문과계의 경우, 센터시험에서 7과목[69]의 모든 영역을 수험보지만, 사립대학 문과의 경우 기본적으로 3과목[70] 시험이다. 이렇게, 입시 과목 수에서 국공립대학에 비해 부담이 적어지고, 문과계열 학부는 수학이 선택과목에 불과하므로 수포자도 합격이 가능하다는 점이 사립대학 입시의 특징이기도 하다.
  • 사립대와 국립대는 시험과목 대책, 전략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와세다대학을 지원하는 학생들의 경우, 국립대학은 전혀 지원하지 않고 오직 사립대학만을 지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71] 즉, 애초에 국립, 사립의 어느 한쪽에만 힘을 쏟은 수험생이 대부분이므로, 국립-사립을 비교할 모집단 자체가 애매한 셈이다.
  • 입학 정원의 약 절반은 일반입시와 같은 대학입시 시험을 치르지 않고 추천 및 AO 입시, 혹은 고등학교 내부진학으로 입학한다. 일본의 수능격인 센터시험입시, AO입시, 글로벌입시, 귀국자녀입시, 사회인입시, 외국인입시[73], EDESSA입시, 학사편입 등도 있다.

11.1. 일반 입시 본고사

와세다의 입시 시험(入試)은 '참으로 와세다다운 출제'라고 평이 많은데, 다른 대학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유형의 출제 경향이 두드러진다. 특히 국어와 공민에서 교수들이 자신들의 입맛과 학풍에 맞는 학생을 뽑는 느낌이 매우 강하다. 일반 입시로는 다음과 같다.
  • 특정 과목의 난이도가 높은 데 비해 평균 합격점은 결코 낮지 않으며, 고난도의 문제로 합격라인 7할(割)의 득점을 받기 위한 벽이 매우 높다.
  • 이러한 특징 때문에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다'고 하는 심적 부담, '열심히 준비해도 왠지 (합격으로) 보상받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

결과적으로 문제와의 싸움, 시간과의 싸움, 자신과의 싸움으로 요약 가능하다. 이 벽을 넘기 위해서는 와세다 입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즉 학부의 벽을 넘는 상당량의 과거 문제 풀이 및 연구가 필요하다.

반대로 말하면 특징이 있는 시험이기 때문에 그 특징을 파고 들어서 과거 문제들의 경향을 체득하면 합격률이 오른다는 이야기. 즉, 다른 국립대학이 1지망인 경우, 지망교 공부도 빡센데 방대한 양의 와세다 일반입시의 과거문제 풀이와 유형 분석하며 준비하는 것은 시간상 사치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다른 국립대학이 1지망인 지원자들은, 정 사립대학을 보험삼아 수험하고 싶다면 일반입시보다는 센터시험 이용입시를 지원한다.[74] 또한, 학부에 따라서 과목별로 난이도가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어 정치경제학부는 영어와 지리가 매우 어렵고, 법학부의 경우에는 국어가 매우 어렵다. 다만 문과계 학부 입시는 국어와 영어, 세계사 또는 수학을 선택하여 총 3과목만 응시하면 된다.

그러나 이들 학부에도 공통점이 있다면 기출문제를 단순히 입시의 끝이라고 생각하고 출제하는 것이 아니라, 입시가 더럽고 치사하고 어려울지라도 이에 열중해서 풀어나가며 깨우쳐 나가는 자기자신을 발견할 줄 아는 학생, 즉 학력에 맞춰서 대학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에 맞춰서 자신을 끌어올릴 줄 아는 학생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방침이라는 교수의 카더라.

국립대 1지망인 학생들이 보험용으로 많이 치는 학교라서 수많은 합격자들이 다른 학교로 빠진다.

11.2. 내외국인 유학생 입시

와세다의 일본인 귀국자녀유학파의 입시 입학률 (합격률)은 17%다. 한국 및 중국 포함 외국 국적 유학생은 20% 내외로, 매년 1,000여명대가 지원하면 200명 이하로 합격하는 수준이다. 와세다 유학생 학부 학사 및 대학원 석사, 박사 입시의 경우, 일본인 귀국자녀와 함께 각국의 외국인들이 시험을 치른다.

특히, MBA 등 와세다대학 석박사의 경우 일본인 진학자가 대부분이라 와세다의 입시는 기본적으로 내외국인 구분없이 엄격하다. 와세다대학 경영(상학)연구과의 경우, 2019년 데이터 기준 지원자 723명에 합격자 80명이었다. 일례로 와세다대학 창조이공학부 연구과와 기간이공학부 및 연구과의 입시는 2023년 합격자 평균 SAT 점수가 1448점이라 1500점 가까운 점수를 받아야 안전히 입학 가능하다.

외국인입시는 크게 입학후 일본어로 수업하는 코스와 영어로 수업하는 코스로 나누어진다.[75] 와세다대학 홈페이지에서 기출문제를 열람할 수 있다.

참고로 와세다대학은 학부 학사, 대학원 연구과 즉 석사(박사전기과정), 박사, 그리고 일본어교육과정 및 교환학생제도를 포함해서 일본에서 가장 많은 유학생이 재적하고 있는 대학이다.
  • 외국학생입시 전형 外国学生のための学部入試(外国学生入試)
    가장 일반적인 유학생 입시 전형으로,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하술할 영어 입시와 대비하여 '일본어 입시'라고도 부른다. 1차적으로 일본유학시험[76] 성적과 TOEFL 성적을 학교생활기록부와 함께 제출하며, 도일한 뒤에 본고사와 소논문, 면접을 치른다. 학과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본고사의 경우 크게 전공지식 본고사와 영어 본고사가 있다. 전공지식 본고사는 고등학교+대학 전공기초 수준의 문제가 출제된다. 소논문은 1000~2000자 분량으로 주어진 문제에 서술하는 방식으로, 우리나라 대학의 논술시험과 유사한 형태다. 영어의 경우 과거에는 영어본고사와 토플을 병용하였지만, 2018년도 입시부터는 영어본고사는 폐지하고 토플 점수만을 사용한다. 일본유학시험의 일본어 성적은 2016년부터 JLPT N1 점수로 대체 가능해졌지만, 실상은 JLPT N1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더라도 JLPT로 지원하는 학생은 많지 않다. 정치경제학부, 기간이공학부, 창조이공학부, 선진이공학부의 경우 TOEFL 외에 TOEIC 성적으로도 지원할 수 있지만 JLPT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가능하면 토플 점수를 제출하는 쪽이 더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과거에는 한국의 수능 점수를 희망자에 한해 제출받아 역량 평가자료로 활용하였으나 현재는 타국 유학생 전형을 고려하여 받지 않는다. 수능 성적과 관련한 내용은 아래 영어 학위취득 프로그램 전형 참조.

    본고사의 구체적인 예로서는 법학부, 상학부의 경우 '학술논문의 독해와 장문서술'로 이루어진 '소논문B'를 보며, 여기에 법학부는 면접을, 상학부는 수학 시험을 추가로 친다. 문학부, 문화구상학부는 자체 일본어 시험을 부과한다[77]. 정치경제학부는 학부 내에서 별도의 시험을 출제하는데, 일본인 학생들의 수시전형 문제와 동일한 문제를 풀게되며 통계해석이 포함된 상당히 긴 지문의 글을 빠른 시간에 읽고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기간이공학부, 창조이공학부, 선진이공학부는 하위 학과(학계) 에 따라 본고사 과목이 달라지기 때문에 자신이 고른 과에 따른 본고사 과목을 잘 준비해야 한다.

    당초 '정치경제학부', '스포츠과학부', '인간과학부'의 경우 일본에서 본고사와 면접을 보지않고 일본유학시험 성적과 토플성적, 서류제출만으로 합불을 결정하는 '도일 전 입시제도'가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폐지되었다. 정치경제학부는 2018년도 외국인 입시를 마지막으로 도일 전 입시전형을 폐지했고 2020년도부터는 스포츠과학부와 인간과학부 도일 전 입시마저 폐지하면서, 모든 외국인 학생 전형에서 도일후 본고사와 면접이 필수가 되었다. 한 술 더 떠서 이들 세 학부는 와세다 전체를 통틀어 유학생을 뽑는 기준이 가장 자비없다. 인간과학부와 스포츠과학부는 애초에 유학생 유치에 소극적이라 뽑는 인원이 한 자릿수에, 정말 적을 때는 다섯 명이 채 안 되며, 정치경제학부는 정원은 많으나 간판학부라는 이미지가 있어 경쟁이 심하다.
  • 영어 학위취득 프로그램 전형英語による学位取得プログラムへの入学試験
    외국학생입시 전형 외에도 'EDESSA 영어과정입시', 'AO선발' 등이 존재한다. 이들은 입시 방법만 다를 뿐 똑같은 정규생 입시며, 다만 졸업 때까지 영어로 개설된 강의만을 듣는다. 입학이 결정된 이후의 전과, 전부등의 시험은 내국인과 동일한 시험,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된다[78]. 지원 시에는 바칼로레아, 대학수학능력시험 및 모의고사, SAT, AP 등의 학력시험들과 TOEFL 공인성적표가 필요하며, 전형 내용은 시기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으므로 모집요강을 반드시 참조해야 한다.
상술했듯이 미국 수능격인 SAT를 1450점 정도 취득해서 와세다대학에 입학하는 영어 입시 전형의 경우, 유학생 지원자 대부분이 한국계 미국인 등 영어 원어민 화자거나, 영미권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유학생, 국제고 혹은 외고를 다닌 학생들이다. 따라서 영어를 기반으로 한 입시를 치루며, G30 입시의 대표적인 학과들은 정치경제학부 PSE, 국제교양학부 SILS, 문화구상학부 CMS, 사회과학부 SSS 등이다. 영어과정 입시자의 경우 일본대학 통상의 4월 입학이 아닌 9월에 입학한다[79]. 참고로 이공학부 영어 전형의 경우 2020-2022년 기준 3년 동안의 합격생 평균 SAT와 ACT 점수를 게시해놓았는데, 각각 1437.8점, 1432.2점이다. 이후 신입생 SAT 점수는 정치경제학부 1437.7점, 사회과학부 1407점, 국제교양학부 1402점, 문화구상학부 1387.2점 순이다. ## 일본 기업들이 학점을 잘 보지 않는 대신, 학점 인플레인 한국대학에 비해 영미권 석박사 진학시 디메리트로 작용한다.

12. 사건 사고

  • 1980년 2월 상학부 입학시험 문제가 사전에 유출된 사건이 발생했다. 3수생 아들을 둔 학부모의 부탁을 받은 고교 교사가 와세다대학 교직원[80]과 공모하여 문제지를 빼돌려 유출시킨 사건으로, 범인들이 체포된 후 유출된 시험문제를 이용해 합격한 수험생 9명은 모두 불합격 처리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을 계기로 대학 측에서는 과거의 입시부정 사례를 일제 조사, 1981년 5월에 졸업생 44명, 재학생 13명의 입학을 취소하고 학적 말소 처분을 내렸다. #
  • 2017년 11월 10일에 폭파 예고를 담은 메일이 대학 측에 보내져 1~3교시를 휴강한 적이 있다. 결국 폭탄은 발견되지 않았다. #
  • 2023년 11월 14일에 본 대학 학생이[81] 대마 단속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학생들에게 주의를 당부하는 총장 명의의 이메일이 발송되었다. #

13. 기타

  • 아시아 각국에 와세다 XXX라는 일본어 스쿨 또는 일본유학원이 활개치고 있지만 와세다대학과는 전혀 연관이 없다. 일본 국내에도 와세다 이름이 들어간 학원이 다수 있다.
  • eduroam 협력교이기 때문에, 국내외 에듀롬 소속의 대학생인 경우 Wi-Fi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 학부 기준으로 연간 학비는 문과계열 120만엔대, 이과계열 170~180만엔대이다. 인간과학부, 스포츠과학부, 국제교양학부는 160만엔대~170만엔대이다. 대학원은 문과 기준으로 대략 연 150만엔 가량.
  • 와세다대학은 종합대학이지만 의학부, 그리고 예술대학이 없다. 대학 측에서도 꾸준히 의학부를 만들려는 노력을 해왔지만, 여러 사정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토코로자와 캠퍼스의 인간과학부는 의학부를 설립하려다가 실패하고 남은 흔적이다. 2000년대 후반에는 인근의 '도쿄여자의과대학'과 협력하여 공동 연구시설 'TWIns'를 설립하였고, 이후 아예 도쿄여자의대를 인수하려 한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이러한 소문 때문인지 두 대학간 협력 관계는 깨졌고, 현재 TWIns는 와세다대학 단독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시설은 신주쿠 도쿄한국학교 바로 뒤에 위치하고 있다.
  • 학교에 재학생들로 구성된 교향악단이 있다. 홈페이지 물론 와세다 내에 음악대학이 없기 때문에 단원들은 모두 비전공 아마추어들이지만, 1970년대부터 프로 악단들도 버거워하는 스트라빈스키봄의 제전이나 쇼스타코비치교향곡 13번 같은 난곡들을 무대에 올리고 1978년에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음악 재단이 주최한 세계 청소년 관현악단 경연대회에 참가해 우승하는 등 미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심지어 3년 혹은 4년마다 한 번씩 유럽 순회 공연도 하고 있으며, 1986년과 2009년, 2012년에는 베를린필하모니에서 개최한 공연의 실황으로 CD까지 낸 바 있다. 2013년에는 창단 100주년을 맞아 기념 음악회가 개최되었고 CD, DVD, 스티커, 엽서 등의 상품이 발매되었다.
  • 일본의 SF 작가 오시카와 슌로(押川春浪) 이후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업계에 와세다 대학 출신이 많은데 1976년 우주전함 야마토 붐을 계기로 설립된 애니메이션 동아리가 꾸준한 노하우와 자료 축적으로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1] 와세다다이가쿠 (Waseda Daigaku)[2] 와세다대학의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와세다대학 특유의 재야정신(在野精神)과 반골기질(反骨の精神)을 상징하는 학풍이다. 귀족학교 이미지를 띠는 게이오기주쿠대학과 차별성을 띠는 부분이다.[3] 학문의 활용이라는 의미로, 단순한 학문의 활용이 아닌 '진취의 정신(進取の精神)'을 추구한다.[4] 모범국민의 조취란 의미로, 조취란 '육성' 또는 '양성'한다는 뜻으로 '지구시민의 육성(地球市民の育成)'을 의미한다.[5] 연지(えんじ・臙脂)색이라고도 하며, 와세다대학의 아이덴티티로 사용될 때에는 와세다 레드(早稲田レッド)로 불리기도 한다. (참조)[6] 와세다대학의 소재지인 신주쿠는 관동대지진 때부터 일본에서 지진 피해가 가장 적은 지역이기도 하며, 신오쿠보 한인코리아타운도 와세다 인근에 위치해 있다. 관동 대지진 후에 신주쿠에 명점이 속속 개업했다고 일본에서도 언급된다. 1923(대정 12)년에 발생한 관동대지진은 도쿄에 괴멸적인 데미지를 주었으나 도쿄 서부에 위치한 신주쿠의 피해는 비교적 적어 번화가로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애초에 쇼와헤이세이 시대 일본 최대의 한인타운인 신오쿠보가 1950년대부터 발전한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와세다를 졸업한 롯데그룹 신격호 창업회장이 신주쿠와 시부야 일대에 롯데그룹 회사공장을 대량으로 지어서 한국인들이 많이 몰려들었기 때문도 있다. 따라서 와세다의 19세기부터의 한국과의 인연으로 인한 지명도는 물론 와세다의 위치 측면에서도 한국에 대한 향수, 지진에 대한 우려 등 한국인들이 일본에 가지는 걱정거리 대다수를 해결한다고 사료된다. #[7] 기시다 후미오, 노다 요시히코, 모리 요시로, 오부치 게이조, 후쿠다 야스오, 가이후 도시키, 다케시타 노보루, 이시바시 단잔.[8] 최두선, 박태준, 장택상 #[9] 국문 기사 와세다가 없으면 당도 없다 상세 내용은 후술.[10] 그는 자신의 모교인 와세다 대학에 9억 2600만 달러를 기부할 계획이라고 발표 # # #[11] 삼성•CJ•신세계 창업주 이병철 회장, 포스코 박태준 회장, 롯데 신격호 회장. 자세한 내용은 후술. # #[12] 와세다와 게이오기주쿠의 머리글자를 음독으로 읽은 것이다.[13] 소케이센 등 참조.[14] 설립자인 오쿠마 시게노부의 별채가 있던 구 도쿄부 우시고메구 와세다촌(현 도쿄도 신주쿠구 니시와세다)의 지명에서 차용해 왔다. 한국어 한자 독음으로 읽으면 '조도전'이 된다. 근대 한국 사료나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조도전'은 십중팔구 와세다대학을 칭하는 말이다.[15] 와세다의 한자 표기의 첫 글자인 '早(조)'와 대학의 '大(대)'를 따온 것이다. 한국 및 중국에도 복수학위 연계 자매교인 고려대학교의 약칭인 고대, 베이징대학의 약칭 북대(北大; 베이다) 등 비슷한 사례가 있다.[16] 재단법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 대학령에 의한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을 설립하는 건을 다이쇼 9년 2월 5일 인가한다.[17] 다이쇼 9년 문부성 고시 제35호 "재단법인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에 대학령에 의한 게이오기주쿠대학(慶應義塾大學)을 설립하는 건을 다이쇼 9년 2월 5일 인가한다."[18] 문부성 고시 제35호로 인가된 게이오기주쿠대학이 고시 번호가 더 빠르긴 하나, 같은 날 동시에 승격되었으로 누가 더 빠른지 논쟁은 무의미하고 공동으로 최초라고 간주하면 된다.[19] 한국은 400여개[20] 약 790개 중에서 8위부터 15위는 상위 약 1%에서 2% 사이에 해당한다. 구체적으로 계산하면, 상위 1%는 7.9개 (790의 1%), 상위 2%는 15.8개 (790의 2%)이므로, 8위부터 15위는 이 두 비율 사이에 위치한다. 와세다는 의과대학이 없어 학술적 순위에서 열세인데도 불구하고 일본 상위 1-2%에 해당하며, OBOG 동문 측면에서는 일본 전체 2, 3위를 다툰다.[21] 일본의 대학은 캠퍼스가 분산된 경우가 매우 흔하다.[22] 와세다대의 이공계열 메인 캠퍼스로 기능한다. 2030년대까지 3배 증축 방침이다. #[23] 와세다 캠퍼스와 도보로 5-10분 정도의 애매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교시와 교시 중간에 이 캠퍼스에서 저 캠퍼스로 서둘러 뛰어가는 학생들을 흔히 볼 수 있다.[24] 나쓰메 소세키의 출생지인 그 기쿠이초다.[25] 약칭 바바역. 테즈카 오사무의 대표작, 그리고 최초의 재패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철완 아톰의 고향이 되는 역이다. 만화 설정상 2003년 타카다노바바에서 태어난 아톰을 기념하기 위해 2003년부터 타카다노바바역 JR야마노테선의 출발 시그널은 아톰 오프닝 테마의 어레인지 버젼이다.[26] 지명 '니시와세다' 또한 본래는 와세다마치가 아니라 도쓰카마치에 속했던 지역으로 와세다대학으로 인해 지명이 붙은 케이스다.[27] 일본 메이지 14년 정변에서 실각한 후 재야에서 교육활동에 전념.[28] (국문 해석) 학생들은 각각 1년 또는 1.5년의 기간 동안 북경대학과 고려대학교 중 한 곳에서 유학하여 북경대학과 고려대학교가 협력하여 지정한 교육과정을 따르고, 와세다와 각 주관대학에서 총 12학점의 캠퍼스 아시아 과정을 졸업으로 이수한다.[29] (국문 해석) 위에 나열된 코스 트랙을 성공적으로 이수한 학생은 졸업 시 CAMPUS 아시아 프로그램 이수를 증명하는 공동 발급 "인증서"를 받게 된다.[30] 고려대학교는 와세다대학과 한국에서 가장 교류가 많은 자매학교이다. 고려대학교 일본 자매대학 와세다대학 와세다대학은 고려대학교와 Campus Asia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학사 과정에서는 드문 double degree 학부 복수학위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소속의 4학기 이상 이수한 재학생인 경우 신청할 수 있고 3학기 동안 와세다대학에서 수업을 듣고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소속학과 학위를 수여받는다. 반대로 와세다대학교 정치경제학부 재학생의 경우 고려대에서 1.5년간 수업을 듣고 복수학위를 수여받을 수 있다. 단, 고려대학교->와세다대학은 한국/중국 국적 학생만, 와세다대학->고려대학교는 일본/중국 국적 등 학생만 프로그램 참여가 가능하다. 고려대학교->와세다대학, 와세다대학->고려대학교 또한, 와세다대학의 해외거점 중 하나를 고려대학교에 두고 있다.[31] LS그룹 구두회 회장이 주도했다. #[32] 전세계 통틀어 특히 중화권에서는 북경대 측과 가장 교류가 많다. 국문 기사 2007년-2017년 와세다-북경대 복수학위 10주년 기념 중문 기사 북경대는 1982년에 와세다대학과 협정을 체결하여 학사, 석사, 박사 복수학위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중화권 국립 베이징대학북경외대 총서기, 총장을 역임한 하오핑이 2023년 직접 북경대에서 와세다대학 교수진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장면. 와세다대학 총장 다나카 아이지가 북경대학을 방문[33] 과거 워크샵은 베이징대학 문서 참조.[34]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와세다대학 정치학부는 협력 관계인 적이 있다. 와세다대학에서 한국인 석박사 통합생을 모집할 때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통해 홍보하기도 한다. 경희대학교-와세다대학 간 교환학생 파견도 활발하다. 2021년부터는 경희대학교와 와세다대학 중앙영어토론동아리가 공동으로 초중고 영어토론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경희대학교 중앙 영어 토론동아리[35] 와세다대학과 단국대학교는 자매대학이다. 단국대학교 일본 자매대학 와세다대학 와세다대학과 단국대학교는 학점교류, 교환학생, 학술교류(워크샵) 등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와세다대학-단국대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36] 성균관대학교는 1994년 7월 와세다대학과 학술교류협정을 체결했다.[37] 연세대학교는 와세다대학과 교류세미나를 진행했었다. 연세·와세다 학생 교류 세미나[38] 와세다대학과 한양대학교는 공동 심포지움 개최를 비롯해 가장 활발한 학술교류를 진행 중인 대학 중 하나이다. 와세다대학은 한양대학교와 정보 테크놀러지(IT)와 나노 테크놀러지(NT) 그리고 환경 테크놀러지(ET)를 주제로 공동 심포지움을 개최한 바 있다.[39] 복수학위 제공.[40] 흥미롭게도 아들 이재용은 라이벌 게이오기주쿠대학 출신(경영학 석사)이다.[41] 손자 이재용이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에 진학하자 와세다 출신 이병철 창업회장은 대단히 기뻐했다고 한다.[42] 아들 신동빈은 아오야마가쿠인, 손자 신동열은 라이벌 게이오 졸업이다.[43] 한국교우회로 개칭[44] 와세다 한국교우회가 매입함[45] 한국동창회에서 2003년 명칭 갱신[46] 일명 에밀레종[47] 당시 직함명은 주무이사였다.[48] 명예[49] 파일:D64D1B7E-67B8-421C-8C97-545829FA6943.jpg 2019년 협찬 내역을 공개하기도 했다. 정경 학사, 이학 학사, 문학 학사, 상학 학사, 상학연구과 (석사), WBS MBA 등 동문이 기부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50] 한국 미술사의 허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수준 높은 유물을 다수 수집하였다. 이 사람의 수집품 중 현재까지 지정문화재만 50점(국보 12점, 보물 32점, 서울시 지정문화재 4점. 특히 훈민정음 해례본과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신윤복 필 미인도 등이 유명하다) 가까이 되는 것을 보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1938년 한국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간송미술관을 만들었으며, 1945년 보성고등학교를 인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51] 특명교수란 특정학부에 소속되지 않고 대학본부에 직접 소속돼 연구 또는 강의하는 교수를 말하는 것이지 특임교수가 아니다.[52] 김 전 대통령의 와세다에서의 마지막 강연은 2009년 10월 27일. 일본어가 굉장히 능통했다. 2분38초부터 김 전 대통령 인터뷰 참조.[53] 김영삼 전 대통령은 와세다대 교우회 규칙 제2장 정회원 제 6조에 의해 교직원 교우 및 4에 해당한다. 와세다의 정식 동문이 맞다. Waseda Alumni[54] 동지[55] 일본 근대화의 역군[56] 김영삼 대통령은 와세다 학위복과 학위모를 착용하고 총장 안내로 한국 동문들의 종을 구경했다. 1,2층에 있던 약 1천2백여명의 재학생과 졸업생 학부모 학교직원들은 기립해 뜨거운 박수로 환영했다.[57] 와세다 고야마총장은 인사말을 통해 "金대통령은 취임이후 한국정치의 개혁과 발전을 위해 훌륭한 공적을 남겼다"면서 "이같은 업적은 와세다대의 창립자인 오쿠마 시게노부 선생이 일본의 막부 말기 격동시대 때 두번이나 수상에 재직하면서 일본의 개혁을 위해 노력한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김 대통령을 높이 평가했다. 김영삼 대한민국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은 더욱 가까워 지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를 맞고 있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모두가 편견을 버리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양국국민은 과거의 편견을 씻어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받아들이고 역사의 진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역사의 교훈을 용기있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58] 일본 3대 중창단 중에는 멤버 전원이 게이오기주쿠대학 출신인 다크 덕스도 있었다.[59] 와세다대학 최악의 흑역사 2[60] 130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61] 영국 귀화 출신이다.[62] 와세다 대학의 중국어 발음은 “자오다오톈(Zǎodàotiān)”. 한국어로도 20세기에는 한자 그대로 조도전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63] 진수(进修)라고 한다.[64]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전 청나라 및 중화민국 인물에 대해서는 한자 직독으로 기재하는게 맞다.[65] 제주는 전통적으로 재일교포가 많다.[66] 일본의 사립대학은 느슨한 사학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입시제도에서 국립대학보다 자유도가 높다.[67] 예를 들어, 와세다대학의 2016년 일반입시 모집인원은 5580명이었는데, 합격자 수는 그의 3배가 넘는 17541명이었다.[68] 물론 사립대학에도 센터시험을 이용해서 입학하는 입시전형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입시전형에 비해 난이도가 매우 높고, 선발정원은 매우 적기에 사실상 없는 수준이라고 봐도 된다.[69] '국어+문과수학+사회과(2과목)+과학(문과용 2과목)+외국어'[70] '국어+사회과(1과목)+외국어'[71] 일본 입시학원인 토신 하이스쿨(東進ハイスクール)의 정보에 따르면, 와세다생 일반입시 중 45%가 다른대학과 복수 지원했고(같은대학 다른 학부 중복지원 제외), 그 중 46.5%가 국립대학과 복수 지원했다. 와세다대학 정원 중 약 50%만이 일반 입시인 것을 감안하면, 0.45*0.465*0.5=0.104=약10%, 즉 와세다 10명 중 1명 만이 국립대학과 와세다대학을 동시 지원한다.[72] 와세다는 입학생의 10% 이상이 이 전형이다. 초등학교 입학 후 별다른 수험공부 없이 무시험 전형으로 온 금수저까지, 편차가 대단히 크고 다양하다.[73] 대학원 석박사는 내외국인이 같이 경쟁하는 경우가 많다. 애초에 자대생이 80-90%인 분위기라 분위기가 한국과 많이 다르다.[74] 그래서 센터시험 이용입시는 스베리도메(보험)로 사립대를 수험해 보는 학생이 거의 100%이다. 문제는, 사립대학도 이런 사정을 알기에, 일반입시에 비해 난이도를 매우 높고, 선발정원은 매우 적게 설정해 둔다.[75] 일본어 코스는 모든 학부에 설치되어있으며, 영어 코스는 정치경제학부, 선진이공학부, 문화구상학부, 국제교양학부, 사회과학부에 설치되어있다. 상학부에서는 교환유학생을 대상으로 영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76] 2020년 기준으로 이학과, 스포츠과학과를 제외하고는 일본유학시험에서 요구되는 것은 일본어 영역 뿐이다.[77] 또한 대부분의 지문은 현대문만을 다루지만, 문학부 전수 코스에 고문을 다루는 학과가 있는 관계로, 4~5년에 한번씩 일본어 본고사에 근대문어문이 나오니 해당하는 년도 기출을 풀어볼 필요가 있다.[78] 학적번호에 따라서 유학생의 구별이 가능하기때문에 시험이나 학내 면접 등에서 유학생이 헤택을 받는 경우도 있다.[79] 입시일정이 학부와 프로그램별로 제각각이다.[80] 당시 50대의 남성 직원으로, 이 사람은 사건 전에도 부정입학 의뢰를 자주 받았다고 한다.[81] 소속 학부는 밝혀지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