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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본명이 후연(侯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000> ||
<colbgcolor=#DC143C><colcolor=#ece5b6> 동아문열공(東阿文烈公) 원순 | 元順 | |
시호 | 문열(文烈) |
작위 | 동아현개국공(東阿縣開國公) |
성 | 탁발(拓跋) → 원(元) |
휘 | 순(順) |
자 | 자화(子和) |
생몰 | 487년 ~ 528년 5월 17일 |
출신 | 하남군(河南郡) 낙양현(洛陽縣) |
부친 | 원징(元澄) |
형제자매 | 5남 2녀 중 장남 |
아들 | 원랑(元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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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위의 황족. 경목황제 탁발황의 증손자. 임성문선왕 원징의 아들. 서출이라 장남임에도 작위를 계승하지 못했다.2. 생애
원순은 9세가 되었을 때, 낙안(樂安) 출신 진풍(陳豐)에게서 글을 배우고, 처음에 왕희지의 《소학편(小學篇)》 수천 자를 쓰고 밤낮으로 외웠으며, 15일 만에 모두 통달하였다. 진풍은 그를 신기하게 여겨 원징에게 말했다."제가 15세에 스승을 따라 배운 이후로 백발이 될 때까지 보고 들은 것 중에 이와 같은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강하(江夏)의 어린 아이 중 저 아이와 견줄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자 원징이 웃으며 말했다."남전(藍田)에서 옥이 나오는 법이니,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원순이 16세가 되었을 때, 《두씨춘추(杜氏春秋)》를 통달하여 늘 제자들을 모아놓고, 그들과 함께 논의를 하며 견해의 차이를 토론하였다. 당시 사방에 아무런 분란이 없고, 나라가 부유하며 백성이 편안했으며, 호족과 귀족의 자제들은 대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즐겼으나, 원순은 장막을 내리고 책을 읽으며, 옛 것을 사랑하고 학문에 뜻을 두었다. 그는 성격이 곧고 직언을 즐기며, 영예와 이익에는 담담하였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였으며, 거문고를 타는 데 능숙하였다. 늘 긴 시를 읊고, 한탄하며 고독한 방에서 소리 내어 시를 읊곤 하였다. 선무제 재위기 때는 《위송(魏頌)》을 상주하였으나, 글이 너무 길어 대부분 실리지 못하였다.
원순은 초기에 급사중(給事中)으로 임명되었는데, 당시 상서령 고조는 황제의 외숙으로 권세가 막강하였고, 천하의 인사들은 그의 먼 발치에서도 엎드려 절하며 경의를 표하였다. 이런 시기에 한번은 원순이 서신을 품고 고조의 집을 찾아갔다. 이때 문지기는 그의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하여
"안에 귀한 손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라며 들이지 않으려 하였다. 이에 원순이 꾸짖으며 말하길,"임성왕(任城王)의 자식이 어찌 천할 수 있단 말인가!"
라고 하였다. 마침내 고조를 만나자 원순은 곧바로 책상 위로 올라가 손을 받들어 예를 취하였다. 왕공(王公)과 선배들이 모두 이를 이상히 여기며 무슨 일이 터질까 두려워했으나, 원순은 당당하게 말을 하며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행동하였다. 이에 고조는 여러 빈객들에게 말했다."이 아이가 이토록 호기롭다니, 하물며 그의 아버지는 어떠하겠는가!"
원순이 나갈 때, 고조는 더욱 공경하며 그를 배웅하였다. 원징은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하여 원순을 매질하였다. 그 후, 원순은 중서시랑(中書侍郎)으로 승진하였고, 이어서 태상소경(太常少卿)으로 옮겨졌다.신귀 2년(519년) 12월, 아버지 원징의 상을 당하자, 원순은 관직에 물러나고는 슬피 울다 피를 토할 정도였고, 직접 흙을 나르며 장례를 치렀다. 당시 그의 나이 25세였으나, 이로 인해 이미 흰머리가 생겼다. 상이 끝난 후 그는 갑자기 흰머리가 모두 빠져버려 다시는 나지 않았는데, 세상 사람들은 이것이 효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겼다.
얼마 뒤, 원순은 급사황문시랑(給事黃門侍郎)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영군장군 원차의 위세가 매우 컸기에, 관직에 임명된 자들은 모두 그의 집을 찾아가 감사를 표하였다. 그러나 원순은 단지 상주문을 올려 예를 표했을 뿐, 한 번도 원차를 찾아가지 않았다. 이에 원차가 원순을 찾아가 물었다.
"경(卿)은 어찌하여 나를 보러 오지 않는 것이오?"
그러자 원순이 정색하며 말했다."천자께서는 아직 어리시어, 정사를 종친과 보정 대신들에게 맡기셨으니, 숙부께서는 마땅히 지극히 공정한 마음으로 임하며 인재를 등용하고 나라를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찌 은혜를 팔아 사적인 감사를 요구하십니까? 이는 기대에 미치는 바가 아닙니다!"
이처럼 원순은 조정에서 논의할 때 항상 거리낌 없이 바른말을 하였고, 결코 아첨하지 않았으니, 이로 인해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였다.원순이 평북장군(平北將軍)•항주자사(恆州刺史)로 임명되었을 때, 그가 원차에게 말했다.
"북쪽 변경은 혼란스러워 나라에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상건(桑乾)은 옛 도읍으로, 나라의 근본이 걸려 있는 중요한 지역이니, 도독(都督)의 직위를 임시로 맡겨 주셔서 나라를 지키는 방패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원차는 마음속으로 의심스러워하며, 원순에게 병권을 주고 싶어하지 않아 이렇게 말했다."이것은 조정의 일이지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오."
이에 원순이 답했다."숙부께서는 이미 나라의 권력을 쥐고 계시고, 생사여탈의 권한도 쥐고 계시면서, 스스로 하늘의 운명이 자신에게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어찌 다시 조정의 일이 있겠습니까!"
이 말에 원차는 더욱 분노하며 두려워하였다. 이후 원순은 안동장군(安東將軍)•제주자사(齊州刺史)로 전임되었다. 그는 자신이 재능이 있다고 자부하였으나 조정에 머물지 못하자, 늘 답답한 마음을 품고 그 감정이 얼굴과 말에 드러났다. 그래서 결국 술에 빠져 즐거움을 찾으며, 정사에 신경 쓰지 않았다. 정광 6년(525년) 4월, 원차가 영군장군 직책에서 해임되자, 원순은 다시 급사황문시랑으로 중앙에 소환되었다. 친지와 친구들이 교외로 나와 그가 다시 조정에 들어가는 것을 축하하자, 원순이 말했다.
"들어가지 못할까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들어갔다가 다시 나올까 두렵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전중상서(殿中尚書)를 겸직하고, 이후 시중(侍中)으로 전임되었다.당초 원차가 정권을 잡고 있을 때, 중산왕 원희는 원차를 토벌하기 위해 거병했다가 실패하고 처형되었는데, 영태후가 다시 정관을 잡고 나서야 비로소 개장(改葬)을 허락받았다. 원순은 태후를 모시고 서유원(西游園)에서 앉아 있다가 태후에게 아뢰었다.
"신이 어제 중산왕 가문의 장례를 보고 왔습니다. 종친들만이 그들의 억울하고 참혹한 죽음을 슬퍼한 것이 아니라, 길 가던 남녀들도 그 일가의 일곱 번의 장례를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모두가 슬픔에 젖어 울고 있었습니다."
당시 원차의 아내 호씨도 영태후 곁에 있었는데, 원순이 그녀를 가리키며 이어서 말했다."폐하께서 어찌 한 동생을 위해 원차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온 천하로 하여금 억울함을 품게 하십니까!"[1]
영태후는 침묵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영주(營州)의 백성 취덕흥(就德興)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조정에서는 상서 노동(盧同)을 보내 이를 토벌하게 했지만, 노동이 도리어 크게 패하고 돌아왔다. 조정에서 노동의 죄를 논의하였는데, 이때 시중 목소(穆紹)와 원순도 여기에 참여하였다. 목소는 노동으로부터 저택을 빌려서 살았기에, 그를 위해 변호하기 시작하니, 원순이 벌컥 화를 내며 외쳤다.
"노동은 결국 죄가 없을 것이오!"
이에 영태후가"어찌 시중(侍中)의 말처럼 될 수 있겠느냐?"
라고 물으니, 원순이 답했다."노동은 좋은 집을 조정의 요직인 시중에게 주었으니, 그가 어찌 자신의 죄를 걱정하겠습니까?"
목소는 이를 듣고 부끄러워 이후로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였다.영태후는 치장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고, 자주 외출을 즐겼다. 한번은 영태후가 외출했을 때, 원순이 그녀의 면전에서 간언하며 말하길,
"《예기》에 따르면, 부인이 남편의 상을 당하면 스스로를 '미망인'이라 칭하고, 머리에서 구슬과 옥 장식을 제거하며, 화려하게 채색된 옷을 입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폐하께서는 천하를 다스리는 황태후이시며, 나이도 곧 불혹에 이르시는데, 지나치게 치장을 하시면 후세에 무엇을 보여주시겠습니까?"
라고 하니, 영태후는 부끄러워하며 외출을 중단하였다. 그녀가 궁으로 돌아오자, 원순을 책망하며 말했다."짐은 그대를 천리 밖에서 불러들였건만, 어찌 많은 사람 앞에서 모욕을 주려 한 것이냐!"
원순이 답했다."폐하께서 화려한 옷차림과 외모를 자랑하시며 천하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으시면서, 어찌 신의 한마디 말이 부끄러우시겠습니까?"
당초 성양왕 원휘는 원순의 재능과 명성을 흠모하여 그와 특별히 친분을 맺었다. 그런데 광양왕 원연이 원휘의 아내인 우씨(于氏)와 간통하여, 원연과 원휘 두 사람 사이에 큰 반목과 갈등이 생겼다. 이후 원연이 정주(定州)에서 소환되어 입조하여 이부상서(吏部尚書)•중령군(中領軍)이 되자, 원순이 조서를 작성했는데, 그 글이 매우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이를 두고 성양왕 원휘는 원순이 원연의 측근이라고 의심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서흘(徐紇)과 함께 영태후에게 나아가 원순을 참소하였다. 그 결과, 순은 조정에서 쫓겨나 호군장군(護軍將軍)으로 임명되었다. 원순이 서유원에서 영태후에게 작별 인사를 올릴 때, 성양왕 원휘와 서흘이 모두 태후 곁에서 시중들고 있었다. 원순은 그들을 가리키며 영태후에게 말했다.
"저 자들은 우리 위나라의 재비(宰嚭)와 같은 자들이니, 위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상 절대 죽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서흘은 겁에 질려 어깨를 움츠리며 나갔다. 원순은 도망치는 서흘을 꾸짖으며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네놈처럼 같은 글만 쓰는 소인배는 탁상에서나 일할 만한 자이지, 어찌 감히 병사로서 창을 잡는 지위에 있을 수 있겠느냐? 이는 나와 내 동생 원이의 도리를 이지러뜨리는 일이다!"
그리고는 옷소매를 휘날리며 일어섰고, 영태후는 이를 보고도 아무 말 없이 침묵하였다. 이후 원순은 성양왕 원휘 등에게 참소당한 것을 노여워하여, 마침내 《승부(蠅賦)》라는 글을 지어 자신을 모함한 무리를 파리에 비대며 비난하였다.당시 아버지 원징이 여러 황제들을 보정한 공로가 회자되자, 조정에서 임성왕 원이의 식읍을 2,000호 늘렸고, 다시 원이의 식읍에서 500호를 떼어내어 원순을 동아현개국공(東阿縣開國公)에 봉하였다.
그 후 원순은 병으로 인해 집에서 요양하며 경조사 방문을 일절 끊었다가, 병이 낫자 다시 조정으로 돌아와 이부상서•상서우복야를 지냈다. 어느 날, 원순이 조회에 나아가, 계단을 올라 걸상을 향해 보니, 걸상이 매우 낡아 보였다. 이에 그가 도령사 서오기(徐仵起)에게 물으니, 서오기가 답했다.
"이 걸상은 선왕(先王)께서 앉으셨던 것입니다."
그러자 원순은 목이 메어 눈물이 흘러내렸고, 한동안 말을 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걸상을 바꾸도록 명하였다.당시 삼공조령사 주휘(朱暉)는 평소에 녹상서•고양왕 원옹(元雍)을 섬겼는데, 고양왕 원옹은 주휘를 정위평(廷尉評)으로 임명하려고 여러 번 원순에게 부탁했지만, 원순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원옹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직접 명령을 내려 주휘를 정위평으로 임명할 것을 강요하자, 원순은 그 명령서를 땅바닥에 던져버렸다. 원순의 이 같은 행위를 전해 들은 원옹은 크게 분노하였으며, 이른 새벽에 도청(都㕔)에 앉아 상서성의 관리와 승랑(丞郎)들을 모두 불러 모으고, 원순이 도착하기를 기다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를 굴복시키고자 하였다. 원순은 해가 높이 떠오른 뒤에야 도착하였고, 원옹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책상을 두드리며 말했다.
"나는 천자의 아들이며, 천자의 동생이고, 천자의 숙부이며, 천자의 재상이다. 사해(四海) 안에서 나만큼 친족으로서 존귀한 자가 없다. 그런데 원순이란 작자는 무엇이길래, 감히 내 명령서를 자신의 손으로 받아 놓고 그것을 땅에 던져버렸단 말인가!"
원순은 그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라 수염과 머리카락이 모두 곤두섰다. 그는 얼굴을 들어 천장을 바라보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원옹이 다시 말했다."내가 승상(丞相)이고 녹상서(錄尚書)인데, 어찌 사람 하나를 관직에 임명할 수 없단 말인가?"
원순이 말했다."부엌에서 요리를 담당하는 사람이 그 일을 하지 않더라도, 제사를 맡은 사람이 제사 기물들을 내팽개치고 대신 요리를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전하께서 인사 선발에 관여하라는 별도의 명령을 받은 적이 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소리 높여 이어서 말하길"전하께서 반드시 이와 같이 하시겠다면, 저 원순은 이 일을 그대로 상주하여 폐하께 아뢰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그러자 원옹이 화를 풀고 웃으며 말했다."내 어찌 주휘(朱暉) 같은 소인 때문에 그대와 서로 원망하고 다투겠는가?"
그러고는 일어나 원순을 자신의 방으로 초대하여 함께 술을 진탕 마셨다. 원순의 강직함이 이와 같았다. 이후 원순은 정남장군(征南將軍)•우광록대부(右光祿大夫)로 임명되었으며, 상서좌복야를 겸직하게 되었다.건의 원년(528년) 4월 13일[2], 대장군 이주영이 효장제를 받들고, 영태후와 조정의 백관을 모두 하음(河陰)으로 소집하였다. 이주영은 평소 원순의 강직함을 익히 들어왔기에, 주서(朱瑞)에게 특별히 말했다.
"가서 원 복야(元僕射)에게 전하라. 그는 조정에만 있으면 되니 굳이 여기에 올 필요는 없다."
그러나 원순은 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관료들이 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도망치다가, 능호(陵戶)에서 선우강노(鮮於康奴)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원순의 집은 네 벽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으며, 시신을 수습할 물건조차 없었고, 오직 책 몇 천 권만 있을 뿐이었다. 이에 문하통사령사(門下通事令史) 왕재달(王才達)은 자신의 옷을 찢어 원순의 시신을 덮었다.효장제가 입궁한 후, 효장제는 황문시랑 산위(山偉)를 보내 수도를 순찰하게 하였다. 이때 산위는 원순의 장례에 참석하고, 깊은 슬픔에 잠겨 끝없이 애통해 하였다. 이윽고 산위가 효장제에게 돌아가니, 그의 모습을 본 효장제는 이상하게 여기며 물었다.
"황문시랑은 어찌하여 그리 슬피 울었는가?"
산위가 그 사정을 설명하며 답하니, 효장제가 시중 원지(元祉)에게 명령하였다."종실에서 죽은 자가 한둘이 아니니 모두에게 넉넉히 지원할 수는 없다. 원 복야(元僕射)의 청렴하고 고결한 절개는 죽음으로 더욱 빛났으니, 특별히 비단 100필을 증여하되, 그 외에는 예외를 둘 수 없다."
이후 효장제는 원순을 표기대장군•상서령•사도공(司徒公)•정주자사(定州刺史)으로 추증하였고, 시호는 '문열(文烈)'이라 하였다. 원순은 《제록(帝錄)》 20권과 시(詩), 부(賦), 표(表), 송(頌) 등 수십 편의 글을 남겼으나, 대부분이 현재로서는 유실되어 전해지지 않는다.훗날 서위 정권이 세워졌을 때는 태부(太傅)로 재추증되고, 시호는 '문간(文簡)'으로 다시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