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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윤(允) · 우문충 · 우문태(兌) · 우문원 · 우문연(衍) · 우문술(術)59권 「구락등전(寇洛等傳)」 60권 「이필등전(李弼等傳)」 구락 · 조귀 · 이현 · 양어 이필 · 우문귀 · 후막진숭 · 왕웅 61권 「왕맹등전(王盟等傳)」 왕맹 · 독고신 · 두치 · 하란상 · 질열복귀 · 염경 · 사녕 · 권경산 62권 「왕비등전(王羆等傳)」 63권 「주혜달등전(周惠達等傳)」 64권 「위효관등전(韋孝寬等傳)」 왕비 · 왕사정 · 울지형 · 왕궤 주혜달 · 풍경 · 소작 위효관 · 위진 · 류규 65권 「달해무등전(達奚武等傳)」 강자일 · 약간혜 · 이봉 · 유량 · 왕덕 · 혁련달 · 한과 · 채우 · 상선 · 신위 · 사적창 · 양춘 · 양대 · 전홍 66권 「왕걸등전(王傑等傳)」 왕걸 · 왕용 · 우문규 · 경호 · 고림 · 이화 · 이루목 · 달해식 · 유웅 · 후식 · 이연손 · 위우 · 진흔 · 위현 · 천기 · 이천철 · 양건운 · 부맹 · 양웅 · 석고 · 임과 67권 「최언목등전(崔彥穆等傳)」 68권 「두로녕등전(豆盧寧等傳)」 최언목 · 양찬 · 단영 · 배과 · 당영 · 류민 · 왕사량 두로녕 · 양소(楊紹) · 왕아 ,왕세적,· 한웅 · 하약돈 69권 「신휘등전(申徽等傳)」 신휘 · 육통 · 사적치 · 양천 · 왕경 · 조강 · 조창 · 왕열 · 조문표 · 양대 · 원정 · 양표 70권 「한포등전(韓襃等傳)」 한포 · 조숙 · 장궤 · 이언 · 곽언 · 양흔 · 황보번 · 신경지 · 왕자직 · 두고 · 여사례 · 서초 · 단저 · 맹신 · 종름 · 유번 · 류하 71권 「수종실제왕전(隋宗室諸王傳)」 양정 · 양찬 · 양상 · 양홍 · 양처강 · 양자숭 · 양용 · 양준 · 양수 · 양량 · 양소(楊昭) · 양간 · 양고 72권 「고경등전(高熲等傳)」 고경 · 우홍 · 이덕림 73권 「양사언등전(梁士彥等傳)」 양사언 · 원해 · 우경칙 · 원주 · 달해장유 · 하루자간 · 사만세 · 유방(劉方) · 두언 · 주요 · 독고개 · 걸복혜 · 장위 · 화홍 · 음수 · 양의신 74권 「유방등전(劉昉等傳)」 유방(劉昉) · 유구 · 황보적 · 곽연 · 장형 · 양왕 · 배온 · 원충 · 이웅 75권 「조경등전(趙煚等傳)」 조경 · 조분 · 왕소 · 원암 · 우문필 · 이누겸 · 이원통 · 곽영 · 방황 · 이안 · 양희상 · 장경 · 소효자 · 원수 76권 「단문진등전(段文振等傳)」 단문진 · 내호아 · 번자개 · 주나후 · 주법상 · 위현 · 유권 · 이경 · 설세웅 77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배정 · 이악 · 포굉 · 고구 · 영비 · 육지명 · 양비 · 유욱 · 조작 · 두정 78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장정화 · 장윤 · 맥철장 · 권무 · 왕인공 · 토만서 · 동순 · 어구라 · 왕변 · 진릉 · 조재 79권 「우문술등전(宇文述等傳)」 우문술 · 왕세충 · 단달 80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풍희 · 이혜 · 고조 · 호국진 · 황보집 · 양등 · 을불회 · 조맹 · 호장인 · 여씨 81·82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마자결 · 이흥업 · 양원의 · 풍위 · 장매노 · 유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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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본명이 후연(侯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000> ||
<colbgcolor=#dc143c><colcolor=#fff> 양성문헌남(襄城文獻男) 源子恭 | 원자공 | |
시호 | 문헌남(文獻男) |
작위 | → → 양성현 개국남(襄城縣開國男) → |
성 | 원(源) |
휘 | 자공(子恭) |
자 | 영순(靈順) |
생몰 | ? ~ 538년 |
부친 | 원회(原懷) |
본관 | 서평군(西平郡) 낙도현(樂都縣) |
자녀 | 5남 |
1. 개요
북위의 인물. 선비족. 빙익혜공 원회의 아들. 양평장목공 원자옹의 동생.2. 생애
원자공은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였다. 그는 처음 사공 참군사(司空參軍事)로 임용되었으며, 이후 사도 좨주(司徒祭酒)와 상서 북주객낭중(尚書北主客郎中)을 역임하였고, 한때 남주객(南主客) 업무도 임시로 맡아 보았다.한번은 남조의 양나라에서 망명해 온 허주(許周)라는 인물이 스스로 양나라 조정에서 급사황문시랑을 지냈다 칭했는데, 조정의 신료들이 모두 이를 믿고 대우하였다. 이에 원자공이 아뢰었다.
"서주(徐州)에서 귀순한 자 허단(許團)과 그의 동생 허주(許周) 등이 제출한 문서를 조사해 보니, 허주는 자신이 소연의 황문시랑이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나는 산수(山水)를 사랑하고 영예로운 벼슬을 좋아하지 않으므로 여러 차례 사양하였고, 이로 인해 소연의 분노를 사서 결국 제강군(齊康郡)으로 내쳐졌다. 이에 이 나라로 귀순하여 높은 산 속에서 여생을 마치고자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사해 본 결과, 이를 증명할 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으며, 제출한 표장(表狀) 역시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를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매우 의심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옛날 백이와 숙제는 스스로 은(殷)을 떠났지만 주왕(周王)은 그들의 뜻을 꺾지 않았고, 팽황(彭況)은 봉록을 사양하였으나 한(漢)나라의 황제는 이를 아름답게 여겼습니다. 이는 고대의 명철한 왕조차도 신하로서 머물지 않는 사람을 반드시 용납하였음을 보여줍니다.
비록 소연이 강남에서 힘겹게 자립하여 한 지역에서 스스로 황제로 칭했지만,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서 크게 예의를 벗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어찌 관리가 벼슬을 사양한다고 해서 그 뜻을 들어주지 않겠습니까? 정황을 살펴보면, 이는 터무니없는 주장입니다. 설령 소연이 미치광이처럼 예법을 따지지 않고 신하를 강제로 내쫓았다 하더라도, 이는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까지는 아닙니다. 그런데 어찌 그가 태어난 땅을 쉽게 떠나고 부모와 조국을 영원히 등질 수 있겠습니까? 그가 과연 벼슬을 마다하고 높은 산 속에서 지내고 싶었다면, 나라에 도착한 즉시 지팡이를 짚고 산을 찾아 떠나고, 책 보따리를 짊어지고 강을 따라 거닐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폭넓게 지기(知己)를 찾고 여러 관리들을 방문하며, 벼슬에 오르려는 속마음을 드러내었습니다. 과연 벼슬을 피하려는 뜻이 있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옛날 양홍(梁鴻)은 고향을 떠나 종국에는 오(吳)와 회(會) 지방에서 품팔이를 하였고, 봉맹(逄萌)은 바다를 건너 멀리 요동(遼東)에서 떠돌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뜻을 지키고 본성을 기르며 자유롭게 살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허주의 행적을 보면, 이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습니까? 더욱이 허주는 과거 화려한 경력을 지니고 높은 벼슬에 올랐던 자라고 칭하는데, 그렇다면 그의 가족과 재산이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귀순하면서 어찌 이처럼 홀로 돌아왔습니까? 설령 급박한 상황에서 가족과 재산을 챙기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가 떠난 뒤 남은 재산과 가족들은 분명 정부의 관리 대상이 되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허주의 형제들은 태연하게 지내며 근심과 슬픔이 전혀 없습니다. 만약 그에게 가족이 없었다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의 가족이 무사하다면, 이는 곧 허주가 소연의 밀명을 받고 보내진 자일 뿐, 그가 진정으로 귀순한 것이 아님을 뜻합니다.
이러한 정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면 진위(眞僞)를 가리기가 어렵습니다. 이에 서주(徐州)와 양주(揚州)에 비밀리에 조사를 명하여 반드시 실상을 밝혀야 합니다. 불과 수십 일 안에 진상이 드러날 것입니다."
이에 조정에서는 조사하도록 명하였고, 결국 허주는 죄를 짓고 조정에 항복한 것이 아니라 직위를 거짓으로 칭하였음이 드러났다. 이는 모두 원자공이 의심한 바와 같았다.비록 소연이 강남에서 힘겹게 자립하여 한 지역에서 스스로 황제로 칭했지만,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서 크게 예의를 벗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어찌 관리가 벼슬을 사양한다고 해서 그 뜻을 들어주지 않겠습니까? 정황을 살펴보면, 이는 터무니없는 주장입니다. 설령 소연이 미치광이처럼 예법을 따지지 않고 신하를 강제로 내쫓았다 하더라도, 이는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까지는 아닙니다. 그런데 어찌 그가 태어난 땅을 쉽게 떠나고 부모와 조국을 영원히 등질 수 있겠습니까? 그가 과연 벼슬을 마다하고 높은 산 속에서 지내고 싶었다면, 나라에 도착한 즉시 지팡이를 짚고 산을 찾아 떠나고, 책 보따리를 짊어지고 강을 따라 거닐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폭넓게 지기(知己)를 찾고 여러 관리들을 방문하며, 벼슬에 오르려는 속마음을 드러내었습니다. 과연 벼슬을 피하려는 뜻이 있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옛날 양홍(梁鴻)은 고향을 떠나 종국에는 오(吳)와 회(會) 지방에서 품팔이를 하였고, 봉맹(逄萌)은 바다를 건너 멀리 요동(遼東)에서 떠돌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뜻을 지키고 본성을 기르며 자유롭게 살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허주의 행적을 보면, 이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습니까? 더욱이 허주는 과거 화려한 경력을 지니고 높은 벼슬에 올랐던 자라고 칭하는데, 그렇다면 그의 가족과 재산이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귀순하면서 어찌 이처럼 홀로 돌아왔습니까? 설령 급박한 상황에서 가족과 재산을 챙기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가 떠난 뒤 남은 재산과 가족들은 분명 정부의 관리 대상이 되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허주의 형제들은 태연하게 지내며 근심과 슬픔이 전혀 없습니다. 만약 그에게 가족이 없었다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의 가족이 무사하다면, 이는 곧 허주가 소연의 밀명을 받고 보내진 자일 뿐, 그가 진정으로 귀순한 것이 아님을 뜻합니다.
이러한 정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면 진위(眞僞)를 가리기가 어렵습니다. 이에 서주(徐州)와 양주(揚州)에 비밀리에 조사를 명하여 반드시 실상을 밝혀야 합니다. 불과 수십 일 안에 진상이 드러날 것입니다."
신귀 원년(518년) 7월, 하주(河州)의 강족 각철홀(卻鐵忽)이 반란을 일으켜 관리들을 살해하자, 효명제는 원자공에게 지절(持節) 및 행대(行臺)를 맡기고, 여러 장수들을 이끌고 이를 토벌하도록 명하였다. 원자공은 엄격하게 주군(州郡)과 여러 군대를 단속하여, 백성의 물건을 하나라도 침해하지 못하게 하고, 경솔하게 적과 전투를 벌이지 않도록 하였다. 그런 뒤에야 위엄과 은혜를 보여 주었고, 20일 만에 반란을 일으킨 자들이 모두 항복하니, 조정은 이를 높이 평가하였다.
정광 원년(520년), 원자공은 행대좌승(行臺左丞)으로 임명되어 북쪽 변방을 순찰하였고, 순찰을 마친 뒤에는 기부랑(起部郎)으로 전임되었다. 그때 명당(明堂)과 벽옹(闢雍)이 아직 건설되지 못하자, 원자공이 상소를 올려 아뢰었다.
"신이 듣건대, 벽대(闢臺)에서 기운을 살피는 것은 천도(天道)의 규범이 숭고하기 때문이요, 방당(方堂)에서 정치를 펼치는 것은 세상을 교화하는 도리가 원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문자를 사용하여 기록하는 것은 창조의 이치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며, 존귀함을 미루어 헤아려 보면, 이는 인간 세계의 모든 일에 뛰어넘는 바가 있습니다. 하늘에 제사를 올려 상제(上帝)를 모시는 것은 위로 신령에 감응하기 위한 것이며, 종묘에 천신(天神)을 배향하는 것은 아래로 인간 세상에서 그 은혜를 갚기 위한 것입니다. 가장 큰 효도는 이를 능가할 수 없으며, 엄부(嚴父)께서 이를 가장 중하게 여기셨으니, 이는 곧 황왕(皇王)의 빛나는 사업이자, 나라를 가진 자의 성대한 의식이라 할 것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황위(皇魏)께서는 진방(震方)에 군림하시고 우주의 중심에서 천하를 다스리시며, 중원의 제도를 개혁하시고 그 법도를 천하에 드리우셨습니다. 북방에서 남방으로 이동하실 때 낙양(洛陽)에서 기거하실 터를 정하셨으며, 도읍을 정하고 백성을 옮기어 한서(寒暑)의 기후를 균등하게 조절하셨습니다. 고조(高祖)께서 그 기초를 닦으셨고, 세종(世宗)께서 이를 더욱 확장하셨습니다. 공적이 이루어지면 음악을 제정하고, 다스림이 정착되면 예제를 마련하는 것이니, 옛 기록을 살펴 잊힌 전례를 정리하고, 명당(明堂)을 세우며, 학교를 설립하여 한 시대의 융성한 규범을 세우고 천 년의 빛나는 규범을 마련해야 합니다.
영평(永平) 연간에 처음으로 명당을 지을 계획을 세웠으나, 그 기초 공사는 미약하여 끝내 완성되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상서령 임성왕 신(臣) 원징이 과거 사공 신(臣) 이충이 조성한 명당의 설계도와 함께 여러 차례 표를 올려 두 수도의 구조를 참고하여 건설할 것을 건의하였습니다. 당시 조정에서는 이에 대한 윤허를 내렸고, 즉시 공사를 시작하도록 명하였습니다. 시중 영군 신(臣) 원차가 공사의 감독을 맡아 지시하였으며, 이후 병졸들을 배정하여 한 번에 1,000명 혹은 수백 명을 동원하여 건축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공사가 지연되고 병력이 축소되어 일정한 계획을 세우지 못하였으므로, 속히 완공하고자 해도 현실적으로 어려웠습니다. 만약 전적으로 이 공사에만 전념하여 지속적으로 건축을 진행한다면 마침내 완공할 기약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할당된 인부가 애초부터 부족한 데다, 여러 곳에서 차출하여 천여 명이 동원되더라도, 비록 공사를 진행하는 명목은 있으나 실질적으로 완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허허벌판과 황량한 터만이 여러 해 동안 방치되었고, 큰 건축물도 겨우 한 치의 땅 위에 멈춰 있으며, 산을 쌓으려 하다가 한 삽의 흙에서 그치는 격이니,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신이 생각건대, 백성을 동원해 대공사를 시작하면 반드시 ‘자래(子來)의 노래’가 있어야 하고, 건축을 급하게 서두르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 아름다움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본디 동원할 병력이 많지 않은데도 여러 곳에서 부역을 차출하여, 한쪽을 중단하면 다른 한쪽이 손실되는 일이 순환하여 끝이 없습니다. 결국 이는 중대한 예제(禮制)를 창건하는 공사를 중지하고, 시급하지 않은 비용을 낭비하는 것이며, 국가를 운영하는 중요한 사업을 포기하고, 사원과 객관(客館)의 공사만을 수행하는 것이니,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면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현재 여러 사원(寺院)들도 대공사를 진행 중인데, 대체로 거칠게 추진되고 있으니, 이를 일부 철회하여 줄이고, 오로지 국가의 경륜을 위한 사업에 집중해야 합니다. 공장(工匠)들을 철저히 감독하여 반드시 명당의 공사부터 완공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조종(祖宗)의 제사에 올릴 예제(禮制)를 갖추고, 백성들이 예악(禮樂)의 풍요로움을 목도하게 해야 합니다."
이윽고 원자공의 상소문이 올라가자 조정에서 이를 받아들였다. 그 후 원자공은 관군장군(冠軍將軍)•중산대부(中散大夫)•치서시어사(治書侍御史)로 임명되었다.삼가 생각건대, 황위(皇魏)께서는 진방(震方)에 군림하시고 우주의 중심에서 천하를 다스리시며, 중원의 제도를 개혁하시고 그 법도를 천하에 드리우셨습니다. 북방에서 남방으로 이동하실 때 낙양(洛陽)에서 기거하실 터를 정하셨으며, 도읍을 정하고 백성을 옮기어 한서(寒暑)의 기후를 균등하게 조절하셨습니다. 고조(高祖)께서 그 기초를 닦으셨고, 세종(世宗)께서 이를 더욱 확장하셨습니다. 공적이 이루어지면 음악을 제정하고, 다스림이 정착되면 예제를 마련하는 것이니, 옛 기록을 살펴 잊힌 전례를 정리하고, 명당(明堂)을 세우며, 학교를 설립하여 한 시대의 융성한 규범을 세우고 천 년의 빛나는 규범을 마련해야 합니다.
영평(永平) 연간에 처음으로 명당을 지을 계획을 세웠으나, 그 기초 공사는 미약하여 끝내 완성되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상서령 임성왕 신(臣) 원징이 과거 사공 신(臣) 이충이 조성한 명당의 설계도와 함께 여러 차례 표를 올려 두 수도의 구조를 참고하여 건설할 것을 건의하였습니다. 당시 조정에서는 이에 대한 윤허를 내렸고, 즉시 공사를 시작하도록 명하였습니다. 시중 영군 신(臣) 원차가 공사의 감독을 맡아 지시하였으며, 이후 병졸들을 배정하여 한 번에 1,000명 혹은 수백 명을 동원하여 건축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공사가 지연되고 병력이 축소되어 일정한 계획을 세우지 못하였으므로, 속히 완공하고자 해도 현실적으로 어려웠습니다. 만약 전적으로 이 공사에만 전념하여 지속적으로 건축을 진행한다면 마침내 완공할 기약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할당된 인부가 애초부터 부족한 데다, 여러 곳에서 차출하여 천여 명이 동원되더라도, 비록 공사를 진행하는 명목은 있으나 실질적으로 완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허허벌판과 황량한 터만이 여러 해 동안 방치되었고, 큰 건축물도 겨우 한 치의 땅 위에 멈춰 있으며, 산을 쌓으려 하다가 한 삽의 흙에서 그치는 격이니,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신이 생각건대, 백성을 동원해 대공사를 시작하면 반드시 ‘자래(子來)의 노래’가 있어야 하고, 건축을 급하게 서두르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 아름다움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본디 동원할 병력이 많지 않은데도 여러 곳에서 부역을 차출하여, 한쪽을 중단하면 다른 한쪽이 손실되는 일이 순환하여 끝이 없습니다. 결국 이는 중대한 예제(禮制)를 창건하는 공사를 중지하고, 시급하지 않은 비용을 낭비하는 것이며, 국가를 운영하는 중요한 사업을 포기하고, 사원과 객관(客館)의 공사만을 수행하는 것이니,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면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현재 여러 사원(寺院)들도 대공사를 진행 중인데, 대체로 거칠게 추진되고 있으니, 이를 일부 철회하여 줄이고, 오로지 국가의 경륜을 위한 사업에 집중해야 합니다. 공장(工匠)들을 철저히 감독하여 반드시 명당의 공사부터 완공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조종(祖宗)의 제사에 올릴 예제(禮制)를 갖추고, 백성들이 예악(禮樂)의 풍요로움을 목도하게 해야 합니다."
정광 2년(521년) 정월, 진주(秦州)과 익주(益州) 지역의 저족이 반란을 일으키자, 조정에서는 원자공을 지절 및 도독으로 삼고, 하간왕 원심(元琛)의 군사(軍司) 직책을 맡겨 원심을 따라 이를 토벌하게 하였다. 반란이 평정된 후, 원자공은 행 남진주사(行南秦州事)로 임명되었다.
정광 4년(523년) 4월, 옥야진(沃野鎮)의 백성 파륙한발릉(破六韓拔陵)이 반란을 일으키자, 조정에서는 원자공을 겸급사황문랑(兼給事黃門郎)으로 삼고, 지절을 더하여 지역을 위로하고 회유하는 사명을 맡겼다.
효창 2년(526년) 6월, 원자공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자, 조정에서는 그를 하내태수(河內太守)로 임명하고, 후장군(後將軍) 직책을 더하여 강군(絳郡)에서 일어난 진쌍치(陳雙熾)의 반란을 평정하게 하였다. 반란은 금새 진압되었으나, 단곡(丹谷)과 청렴(清廉)의 두 길이 험하고 막혀 통하지 않자, 조정에서는 원자공을 당구군(當囗郡)의 별장(別將)으로 삼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건흥(建興)의 촉인(蜀人)들이 다시 반란을 일으키고 서로 세력을 연합하자, 조정에서는 원자공의 직위를 지절•산기상시(散騎常侍)•가 평북장군(假平北將軍)•정건흥도독(征建興都督)으로 올리고, 또한 상서행대(尚書行臺)를 겸임하게 하였다. 원자공은 정평도독 장손치(長孫稚)와 힘을 합쳐 진군하여 반란군을 대파하였고, 정평(正平)에서 적장 범명원(範明遠)과 유아노(劉牙奴)가 함께 스스로를 결박하여 항복을 청하였다. 반란이 평정되자, 조정에서는 원자공을 평남장군(平南將軍)•예주자사(豫州刺史)로 임명하였으며, 곧이어 산기상시•무군장군(撫軍將軍)을 더하여 주었다.
무태 원년(528년) 4월, 영주(郢州) 자사 원원달(元願達)이 성을 들어 양나라에게 투항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도독 울경빈을 소환하여 도성으로 돌아오게 하고, 그가 거느린 군대를 원자공에게 속하게 하여 원원달이 끌어들인 양나라 군대를 토벌하도록 명하였다. 당시 양나라의 장수 하후기(夏侯夔)가 수만의 병력을 거느리고 침입하자, 멀고 가까운 곳이 불안에 빠졌다. 하후기는 기세를 타고 병력을 나누어 신채(新蔡)를 압박하고, 그 자신은 모성(毛城)을 공격하였다. 원자공은 이에 따라 대응하며 구원에 나서 적군을 모두 격파하고 패주하게 하였다.
이후 양나라의 예주(豫州) 자사 하후단(夏侯亶)이 다시 네 장수를 보내 30,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남돈(南頓)을 포위하고, 북쪽으로 진(陳)과 항(項)을 공격하였다. 원자공이 군대를 보내 이를 막자, 적군은 다시 패주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원자공에게 진남장군(鎮南將軍)을 더하고, 상서행대를 다시 겸임하게 하였다. 원자공은 군대를 이끌고 회수(淮水)를 건너, 백성들을 회수 이북으로 이주시키고, 군현을 세워 수비대를 배치한 뒤 돌아왔다. 그 후, 양나라의 직각장군 호지달(胡智達) 등 여덟 장수가 감군 염차홍(閻次洪)과 함께 침입하여 주성(州城) 동북 40여 리 지점에 주둔하였다. 원자공이 이를 공격하여 대파하였으며, 호지달을 참수하고, 염차홍을 생포하였다.
영안 2년(529년) 5월, 원호가 낙양에 입성하여 조정을 장악했을 때, 원자공에게 거기장군(車騎將軍)을 더하여 주었다. 원자공은 감히 그를 거스를 수 없었으나, 몰래 사자를 보내 효장제의 동정을 탐색하였다.
영안 2년(529년) 6월, 원호가 패배하고 효장제가 다시 낙양으로 돌아오자, 원자공은 정남장군(征南將軍)으로 승진하고, 겸우복야(兼右僕射)•가 거기장군(假車騎將軍)•산기상시가 더하여졌다.
그 무렵, 판교(板橋)의 만족인 문석활(文石活)과 석기(石忌)가 무제 소연의 인수(印綬)를 받아 그 무리를 선동하며 험지를 점거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원자공은 친히 장병을 이끌고 기습하여 그들의 보루를 공격하였고, 며칠 만에 거의 전멸시켰다. 그 후, 여러 만족들이 항복하여 북위 조정에 조세를 바치기를 청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원자공을 우광록대부(右光祿大夫)•급사황문시랑(給事黃門侍郎)으로 임명하고, 본래의 장군직도 유지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가 거둔 전공을 기록하여 임영현 개국후(臨潁縣開國侯)에 봉하고, 식읍 600호를 하사하였으며, 다시 산기상시를 더하여 주었다. 얼마 뒤, 원자공은 시중(侍中)으로 승진하였다.
영안 3년(530년) 10월, 효장제가 권신 이주영을 제거하자, 이주조와 이주세륭(爾朱世隆), 이주도율(爾朱度律)이 봉기하여 하교(河橋)를 장악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원자공을 도독으로 삼아 토벌하게 하였고, 그는 출정하여 대하문(大夏門) 북쪽에 주둔하였다. 곧이어 태부경 이묘(李苗)가 밤에 하교를 불태우자, 이주세륭의 군대는 퇴각하였다. 이후 조정은 원자공에게 상서복야(尚書僕射)를 겸하게 하고, 대행대(大行臺) 및 대도독(大都督)으로 삼았다. 곧이어 원자공은 위장군(衛將軍)으로 다시 승진하고, 여러 장수들을 거느려 태행산(太行)에서 보루를 쌓아 적의 침입을 방어하였다.
영안 3년(530년) 12월, 이주조가 군대를 이끌고 남쪽으로 진출하자, 원자공의 부하인 도독 사오룡(史仵龍)과 양문의(羊文義)가 보루를 열고 이주조에게 항복하였다. 이에 원자공은 패주하였고, 관군이 흩어지자 이주조는 이를 기회로 삼아 낙양에 입성하였다. 원자공은 구지현(緱氏縣)으로 달아났으나, 곧 붙잡혀 낙양으로 압송되었다가 얼마 안 가 석방되었다.
보태 원년(531년) 2월, 이주조 등이 절민제 원공을 황제로 세웠을 때, 원자공은 표기장군(驃騎將軍)•좌광록대부(左光祿大夫)로 임명되었고, 시중의 직책은 이전과 같았다. 이후 그는 산기시랑(散騎侍郎)•도독3주제군사(都督三州諸軍事)•표기장군•가 거기장군•행대복야(行臺僕射)•형주자사(荊州刺史)에 제수받았고, 이전에 책략의 공을 인정받아 임여현 개국자(臨汝縣開國子)로 고쳐 봉해졌으며, 식읍 300호를 받았다.[1]
당시 만족 뇌란청(雷亂清)이 무제 소연으로부터 연주(袞州) 자사 인장을 하사받아 반란을 일으켰고, 그를 지지하는 여러 만족들에 힘입어 군현(郡縣)을 따로 설치하였다. 이에 원자공이 출정하여 뇌란청의 세력을 평정하였다.
영희 연간(532년 ~ 534년)에 원자공은 이부상서(吏部尚書)로 승진하고, 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을 겸하였다. 또, 이전에 예주에서 세운 전공으로 인해 양성현 개국남(襄城縣開國男)으로 고쳐 봉해졌고 식읍은 200호를 하사받았다가, 다시 공로가 조정에서 논해져 신성현 개국자(新城縣開國子)에 봉해지고 식읍은 400호를 받았다. 이때 원자공은 자신의 다섯번째 아들인 원문성(源文盛)에게 작위를 양보하게 해줄 것을 청하였고, 조정에서 이를 허락하였다.
천평 원년(534년), 북위가 동위와 서위 둘로 갈라졌을 때, 원자공은 동위에 남아 중서감(中書監)을 지냈다.
천평 3년(536년), 원자공은 위윤(魏尹)으로 전임되었고, 승상 고환의 군사(軍司)로 배속되었다.
원상 원년(538년), 원자공이 세상을 떠났다.
흥화 2년(540년), 조정에서 원자공을 도독서·연2주제군사(都督徐袞二州諸軍事)•사공공(司空公)•연주자사(袞州刺史)•표기대장군•상서좌복야로 추증하였고, 시호는 '문헌남(文獻男)'이라 하였다. 아들 원문요(源文瑤)가 양성현남 작위를 이었다.
[1] 기존의 임영현후 작위는 장남인 원표(源彪)에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