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4 15:59:40

인종(송)


송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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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北宋)
<colbgcolor=#fff,#000><colcolor=#002395,#fff> 희조 <colbgcolor=#fff,#000><colcolor=#002395,#fff>순조
순조 익조
익조 선조
선조 조광제 | 태조 | 조광의 | 조정미 | 조광찬
태조 조덕수 | 조덕소 | 조덕림 | 조덕방
태종 조원좌 | 조원희 | 진종 | 조원분 | 조원걸 | 조원악 | 조원칭 | 조원엄 | 조원억
진종 6남
인종
인종 3남(친자)
2남(양자)
영종(양자)
영종 4남
신종
신종 14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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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 제4대 황제
인종 | 仁宗
파일:1280px-Song_Renzong.jpg
출생 1010년 5월 30일
북송 동경 개봉부 변경 황궁
(現 허난성 카이펑시 구러우구)
즉위 1022년 3월 23일
북송 동경 개봉부 변경 황궁
(現 허난성 카이펑시 구러우구)
사망 1063년 4월 30일 (향년 54세)
북송 동경 개봉부 변경 황궁 복녕전
(現 허난성 카이펑시 구러우구)
능묘 영소릉(永昭陵)
재위기간 북송 황태자
1018년 10월 19일 ~ 1022년 3월 23일
북송 황제
1022년 3월 23일 ~ 1063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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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e8b57><colcolor=#ece5b6> 성씨 조(趙)
수익(受益) → 정(禎)
부모 부황 진종 원황제
친모 장의황후, 양모 장헌명숙황후
형제자매 6남 2녀 중 6남[1]
배우자 폐후 곽씨, 자성광헌황후, 온성황후, 황후 장씨[2]
자녀 3남 13녀 + 양자 2남
작호 경국공(慶國公)
→ 수춘군왕(壽春君王) → 승왕(升王)
→ 황태자(皇太子) → 황제(皇帝)
묘호 인종(仁宗)
존호 체천법도흠문총무성신효덕황제
(體天法道欽文聰武聖神孝德皇帝)
시호
1063년 추증 [ 펼치기 · 접기 ]
신문성무명효황제
(神文聖武明孝皇帝)
1085년 추증 [ 펼치기 · 접기 ]
체천법도극공전덕신문성무예철명효황제
(體天法道極功全德神文聖武睿哲明孝皇帝)
연호
[ 펼치기 · 접기 ]
천성(天聖, 1023년 ~ 1032년)
명도(明道, 1032년 ~ 1033년)
경우(景祐, 1034년 ~ 1038년)
보원(寶元, 1038년 ~ 1040년)
강정(康定, 1040년 ~ 1041년)
경력(慶曆, 1041년 ~ 1048년)
황우(皇祐, 1049년 ~ 1054년)
지화(至和, 1054년 ~ 1056년)
가우(嘉祐, 1056년 ~ 1063년)
절일 건원절(乾元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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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출생의 비밀?3. 재위 기간
3.1. 즉위3.2. 서하와의 전쟁3.3. 범중엄의 개혁과 좌절3.4. 북송의 전성기3.5. 가족 관계와 후사 문제3.6. 사망
4. 기타5. 창작물에서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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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북송 인종.jpg

북송의 제4대 황제. 묘호는 인종(仁宗), 시호는 체천법도극공전덕신문성무예철명효황제(體天法道極功全德神文聖武睿哲明孝皇帝). 휘는 정(禎).

2. 출생의 비밀?

제3대 황제 진종의 여섯 번째 아들로 사실 막내이다. 그럼에도 제위를 계승할 수 있었던 것은 앞서 태어난 진종의 아들들이 유년기를 넘기지 못하고 요절한 와중에 유일하게 유년기 이상을 넘겨, 사실상 외동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휘는 수익(受益)이었고 궁 안에서 신비 이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원래 진종의 후궁 이씨[3]가 낳은 아들이었으나, 진종의 묵인 아래 진종의 황후였던 장헌명숙황후 유씨가 키웠다. 어린 인종이 적통은 아니지만 진종의 유일한 아들이니 적모가 키워야 한다는 명분이었다고. 이후 아들을 유아에게 빼앗긴 이씨는 인종과는 절대 대면하지 못하도록 조치받고 별궁에 유폐되어 살아야 했다. 이후에도 이씨의 존재를 철저히 감추었기 때문에 인종은 생모가 살아있을 적엔 단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해 얼굴도 몰랐고, 장헌황후가 친모인 줄 알고 자랐다.[4] 이렇게 태어난 직후부터 유아 손에서 자란 인종은 5살에 경국공에 봉해졌고, 수군왕(壽郡王)이 되었다가 고작 9살 나이에 태자로 책봉되었다.

인종은 1033년 유아가 사망하고 난 뒤에야 자신의 생모가 신비 이씨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에 진노하여 장헌황후 유씨와 그 일족을 처벌하려 하였으나, 자신의 생모가 죽었을 때 황후의 예를 갖추어서 정중히 장례를 치러주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유씨 일족을 용서하였다.[5] 이후 인종은 자신이 생모 이씨에게 효도를 다하지 못한 것을 책망하며 포증에게 자신의 용포를 때리게 하여 불효의 잘못을 표시하였다고 하며 생모의 묘를 황후의 격에 맞게 다시 조성하고 황후로 추존해 장의황후라는 시호를 올렸다. 이어 장헌황후 유씨 생전에 관직을 잃고 도성 밖으로 쫓겨나 살던 외삼촌 이용화(李用和)를 황궁으로 불러 만난 뒤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6]

이 이야기는 송인종 시대를 다루는 중국 사극에서 각색되어 여러 번 채용되었으며, 유명한 드라마 에피소드로는 국내에서도 방영되었던 판관 포청천 시리즈의 이묘환태자가 있다. 다만 실제 역사와 달리 각색된 내용이 많다. 신 칠협오의 인간도에서도 이묘환태자의 이아기가 각색되어 방영되었다.

3. 재위 기간

총 41년간 재위했다. 물론 어린 나이에 즉위해 초기 11년 동안은 장헌명숙황후 유씨수렴청정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긴 편이다.

3.1. 즉위

9살의 나이에 황태자가 되었다가 4년 뒤인 1022년에 아버지 진종이 붕어하자 고작 13살의 나이에 황제가 되었다. 이때 나이가 아직 어려서 친어머니로 알고 있던 장헌황후 유씨(유아)가 수렴청정을 했다. 장헌황후 유씨의 수렴청정이 있기 전 진종은 병석에서 계속 어린 외아들의 미래를 걱정해[7] 숨을 거두기 전 말을 못 하는 상황에서도 모든 대신들을 침전으로 불러 모았다. 이때 재상 정위를 필두로 한 문무백관들이 “황태자가 어리나 총명하고 이미 대통을 이을 준비를 모두 갖추었으니 문무백관들은 전력을 다해 폐위 등 다른 마음을 품지 않고 어린 황태자를 보필할 것”, “황태자를 도와 수렴청정을 할 황후를 도와 전력으로 복종할 것”을 맹세하자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고, 유능하고 똑똑한 동생인 경왕 조원엄 대신 유아가 어린 인종을 대신해 수렴청정 때 군국대사의 처분권을 행사하도록 유언을 한 뒤 세상을 떴다고 한다.[8]

3.2. 서하와의 전쟁

1038년 서하가 섬서성을 침공하면서 서하와 대립 구도에 놓였는데, 이에 범중엄을 기용하여 군사 제도를 개혁하고 병사들을 훈련시켜서 나름대로 전력 강화를 꾀하였다. 이후 승상으로 기용된 범중엄은 관리 제도를 개편하고, 혹시 모를 서하와 요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무력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개혁 정책을 추진하였다.

서하는 1041년 다시 한번 대대적인 원정을 단행하였는데, 초전에 송군이 개발살 나버려서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도 했지만 무너질듯 말듯 버텨낸 덕분에 전쟁은 점점 길어지게 되었다. 이 와중에 송이 요나라와 강화 조약을 맺으면서 군사력 일부를 서하 방면으로 돌릴 수 있게 되었고, 서하 역시 계속된 전쟁에 지쳐버린 상황이라 결국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있었던 서하가 먼저 강화를 신청하였다. 송 역시 전쟁이 길어지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고, 만약 요가 서하와 동맹을 맺고 공동 전선을 형성하면 매우 곤란해질 수 있었기에 즉시 강화 교섭에 착수하였다.[9]

그 결과 1044년 서하는 송의 황제를 천자로 인정하고 신하의 나라가 되는 조건으로 강화 조약이 체결되었다. 서하의 황제는 하국왕에 봉해졌으며, 매년 비단 13만 필, 5만 냥, 2만 근씩 송이 서하에게 공물을 제공하는 것으로 상황이 마무리되었다.[10]

3.3. 범중엄의 개혁과 좌절

인종 경력(庆历)3년(1043) 무렵부터 송나라 서쪽 국경은 점차 안정되어갔다. 그러나 당시 송나라 내부는 요나라, 서하와의 계속되는 전쟁과 세폐 문제, 조정 내 부정부패와 관료들의 봉급 문제[11] 등으로 국고가 점점 탕진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인종은 범중엄을 급히 개봉으로 불러 그를 부밀부사로, 소위 ‘4간’이라고 불리는 4명의 간관(채양, 구양수, 왕소, 김정)을 새로 임명했다. 이들 4간은 8월 범중엄을 재상으로 추천했고 인종은 부재상 왕거정을 파면한 뒤 범중엄을 참지정사로 삼고 부필, 범중엄과 수차례에 걸쳐 치국방략을 논의했다.

이 당시 범중엄은 인종에게 송이 가지고 있는 오래된 사회 문제들을 한번에 해결하고 고치는 건 힘들며 개혁도 실패할 확률이 높음을 말하면서 개혁추진도 신중하고 천천히 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인종은 범중엄이 이렇게 말했음에도 사회문제들을 한번에 해결하겠다며 자신이 직접 자리까지 만들면서 범중엄을 재촉했다. 따라서 범중엄은 조정에 다시 들어오면서 「답수조조진10사(答手詔條陳十事)」를 적어 인종에게 올렸다. 이후 이 내용이 받아들여지면서 소위 ‘경력신정’이라고 불리는 개혁이 시행됐다.

당시 범중엄이 인종에게 건의해 반포된 내용들에는 조정 내 쇄신안과 함께 「답수조조진10사」에서 언급된 과거제의 엄격한 시행, 승진제도의 엄격한 시행, 지방에 파견하는 장관들을 잘 선발해야 함[12], 농사와 잠업 중시, 백성들의 부역을 줄일 것, 군을 정비하고 장비 관리에 힘쓸 것 등이 담겨 있었다. 이런 조치가 발표된 이후, 범중엄은 다시 한번 인종에게 상소를 올렸는데 여기에는 은밀히 개봉 외성을 수리할 것과 비밀리에 적을 토벌할 계책 등이 7가지가 추가로 포함됐고, 재상권 확대, 황제의 은혜 조치를 엄중하게 하는 등의 조치도 건의됐다.

범중엄의 건의 아래 경력신정이 추진됐지만, 범중엄이 예상한대로 신정 초기부터 황실, 외척, 권신 등이 개혁에 반발하며 그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치게 되었다. 특히 반대파 대신들은 매일같이 인종을 찾아가 “범중엄이 일부와 결탁해 직권을 남용하고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다”고 참소했고, 조정 내에 유언비어를 퍼트렸다. 물론 인종은 반대파 대신들을 강하게 질책하며 범중엄을 감싸주었다. 하지만 반대파 대신들이 틈만나면 범중엄을 탄핵하려고 한터라 범중엄도 자신이 더 이상 도성 안에 있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인종에게 변경의 일이 생겼기에 서부 변경을 수비하러 가겠다고 자청하기에 이른다.

범중엄이 스스로 변경 수비를 자처하자, 인종은 만류했으나 자신도 계속해서 신정을 반대하던 이들에게 시달리던 터라 결국 1045년 정월 범중엄을 즉시 변경으로 내보냈다.[13] 이처럼 범중엄 주도로 진행된 개혁은 1여년 만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범중엄 주도로 진행된 짦았던 신정 기간 동안 한때나마 관료기구도 재정비되면서 가문에 의지해 관직에 진출하던 풍속이 엄격히 제한되고, 경력만으로 승진하던 관례를 대신해 한 개인의 품성과 업적 등을 승진에 반영하는 조치들이 이뤄졌다. 또 이전과 다르게 과거시험도 실용적 답안들이 늘었고, 그 결과 학교가 증가하고 새로운 학풍도 싹트게 된 긍정적인 측면은 있었다.

3.4. 북송의 전성기

인종의 치세는 아버지 진종의 치세와 더불어 북송의 전성기로 평가받는다. 두 황제의 연호를 따서 '함평-경력 치세', 혹은 인종 시대만 따로 봐서 '경력의 치', '인종성치(仁宗盛治)'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시기 송은 농업세와 상업세의 비율이 3:7일 정도로[14] 확실한 상업사회로 진입했으며, 세계 최초의 지폐인 '관교자'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외적의 침입을 받기도 했지만, 이시기 송 내부적으로는 유례없는 태평기였고 불야성이란 말마따나 경제와 문화가 크게 발전하여 번영을 누렸다. 또 ‘경력의 치’ 당시 인종을 보필했던 명신들도 많이 나왔는데 한기, 범중엄, 구양수, 포증, 부필 등이 그들이다. 또 인종 이후인 영종, 신종대 활약하는 사마광, 왕안석 등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거나 과거를 통해 관료생활을 시작했다.

인종 본인의 능력에 대해서는 송의 전성기를 이끈 최고의 명군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반대로 본인이 뛰어난 군주라기보단 때와 수하를 잘 만났던 범군에 가까웠다는 평가도 있다. 사실 운장이 최고긴 하다. 왜냐하면 인종의 치세 말기 쯤부터 송나라는 상인과 지주 계층, 관료의 증가 등으로 인하여 세수는 줄었는데 주변국에 제공하는 공물과 자체적인 국방력 강화 정책, 관료제 유지로 인한 지출이 꾸준히 발생했기 때문에 재정에 부담이 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생애 전반에 큰 실정을 한 것은 없었다.

인종의 시호로 '어질 인(仁)' 자가 새겨진 이유는 <송사> 본기에 "공검인서(恭儉仁恕)"[15]라는 평이 실릴 정도로 그의 아량이 대인배다운 성품을 가진 온후한 군주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종은 포청천이란 별칭으로도 유명한 포증이 그와 가까이서 대화할 때 자신의 용안에 침까지 튀어가면서 강하게 말하는 것에 대해 불쾌하다며 화를 내지 않았고, 간관들이 자신을 비판한 것도 신하들이 처벌하라고 간언한 것을 간관들은 당연한 말을 한 것이라고 도리어 그들을 감쌌다. 또 애첩 장귀비의 큰아버지 장요좌를 선휘남원사에 임명한 행동을 놓고, 포증이 간관들과 연합해 자신에게 “군주로서의 도리도 없고 패덕한 군주”라고 최악의 악평을 쏟아내며 디스한 발언에 대해서도 잠시 화만 냈을 뿐 죄로 다스리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양보까지 하며 넘어갔다.

이런 인종의 포용력 있는 모습은 대간이 아닌 관리들이나 사대부들이 자신에 대한 비판이나 비평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인종은 그들이 자신의 사생활에 대한 말도 안 되는 비난을 하거나 자신을 나쁘게 비평하는 행동이라고 해도 뒤끝있게 보복을 하거나 처벌하지 않았고 때론 이를 받아들였다.[16] 아울러 인종은 궐내 궁녀들이나 내시들을 배려하고 그들의 실수조차 넘어가는 온후한 군주였다.[17]

또한 검소한 성격으로 사치를 싫어하여 낡은 옷을 입고 다니며 저렴하고 소박한 물건만을 선호했다고 한다. 각 지역에서 황실에 바치는 산해진미도 싫어하여 먹지 않았다. 일례로 신하들과 같이 식사하는 연회에서 올린 동죽조개 100개의 가격이 2800냥이라는 고가의 음식이라는 것을 알자 불쾌하게 여기며 먹지 않았다. 자신뿐만 아니라 황후나 비빈들이 사치를 하는 것도 매우 싫어하여 황후나 비빈들조차 인종의 눈치를 봐야 했다. 일례로 인종이 총애한 장 귀비도 처소에 관리가 선물한 고가의 도자기가 있자 이를 보고는 크게 화를 내며 도끼로 깨버렸다.

그럼에도 궁밖의 풍류에 대해선 크게 터치하지 않았던 모양인데, 어느 늦은 밤 굉장히 떠들썩한 음악소리가 궁궐까지 들려오자 인종은 무슨 일인지 궁금하여 곁에 있던 궁인에게 물었다. “대체 어디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냐?” 그러자 궁인이 답했다. “가까이 있는 민간의 주루에서 나는 소리입니다. 폐하, 들어보십시오. 바깥 민간 세상은 이곳 궁중의 적막함과 달리 이토록 즐겁사옵니다.” 이에 인종이 답했다. “너희는 아느냐? 궁중이 적막하기 때문에 바깥 백성들이 이토록 즐거울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궁중이 바깥처럼 즐겁다면 백성들이 곧 적막할 수밖에 없다.”#

이런 까닭에 당시 송나라에서는 신망을 받던 군주였고 이후 조선에서도 이상적인 군주의 예로 사대부들에게 높이 평가받았다. 그 이유는 유학을 진흥시켰으며 특히 신하들의 비판도 수용하고 때로는 하자는 대로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전하, 인종처럼 신하들 말을 잘 들으셔야 훌륭한 왕이 되십니다. 그러니 우리 말 좀 잘 들으십시오.'라는 용도? 다만 연산군은 송인종이 유하기만 하고 강하지 못해 여러차례 오랑캐에게 화를 입었다며 평가절하했다. 아버지인 성종의 묘호를 정했을 때도 인종과 성종이 대립했는데 성종을 채택한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물론 폭군의 대명사인 연산군이 한 말이라 묘하긴 하다.

3.5. 가족 관계와 후사 문제

파일:자성광헌황후 조씨.jpg
인종(오른쪽)과 자성광헌황후 조씨

인종의 첫번째 황후는 폐후 곽씨(廢后 郭氏)였다. 하지만 투기가 심하고 인종의 얼굴에 손찌검을 하고 상처를 내었다는 이유로 1033년 폐후된 뒤[18] 정비(淨妃)로 강등되었다가 1035년에 병으로 죽었다. 인종은 곽씨를 그리워하여 황후로 다시 추존하였으나 시호나 종묘 배향은 없었다.

곽씨를 황후에서 폐위시킨 뒤, 1034년에 18살이었던 개국 공신 조빈의 손녀를 황후로 세웠는데 그녀가 두번째 황후이자 계후인 자성광헌황후 조씨(慈聖光献皇后 曹氏)였다. 자성광헌황후 조씨는 개국 공신의 손녀인데다 명문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농사를 짓고 누에를 쳤으며 성품 또한 온화하고 소박한데다 침착했다고 <송사>에서는 전해지는데, 그녀는 후계자 선정문제를 놓고 남편 인종과 대립하여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양자인 영종과도 국정 주도권과 친부의 봉직 제수 문제 등으로 영종이 병석에 눕기 전까지 대립했다고 한다. 물론 자성광헌황후 조씨에게 다소 무례해보이는 태도를 취하다가 필요한 순간부터 갑자기 문안인사를 고의로 드리고 모후의 건강을 기원한다면서 술을 취하도록 먹여서 사인을 받아낸 영종 잘못이 크지만... 아울러 황후 조씨는 궁 안에서 변고가 났을 때, 잠시 혼란에 빠져 불안해하던 남편 인종에게 서둘러 반란 진압을 위해 군을 움직이도록 하고 침착하게 대응케 했던 일화도 있다.

인종은 그 외에도 16명의 후궁을 뒀는데[19] 이중 인종의 총애를 받았던 장 귀비는 그녀 사후 인종에 의해 추존되어 온성황후 장씨(溫成皇后 張氏)가 되었다. 그는 총 3남 13녀의 자녀를 두었지만 사후 추존된 온성황후 장씨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 셋[20]을 제외하고는 정실부인들[21]과의 사이에서는 아들을 얻지 못했고 후궁들과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들도 모두 유년기를 넘기지 못하고 요절했다. 따라서 인종은 대를 이을 양자로 송태종의 4남 상공정왕 조원분(趙元份)의 손자이며 사촌 동생 복안의왕 조윤양의 13번째 아들인 조종실[22]을 일찍이 궁으로 데리고 가서 길렀다. 양자인 조종실[23]은 궁에서 성장하다가 인종이 아들을 얻자 다시 사저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후 1043년 인종의 친아들이 요절한 이후에도 다시 궁으로 불러들이지 않았고 사저에서 살다가 뒤를 이어 영종으로 즉위하게 된다.

3.6. 사망

재위 41년차인 1063년 병사했으며, 영소릉에 안장되었다.

송사(宋史)에는 장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황제를 사모하여 경향 각지에서 백성들이 시장 문을 닫고 통곡을 했다. 심지어 거지와 어린애들까지 지폐를 태우면서 그 연기가 하늘을 가려 며칠 동안 태양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의외라면 의외로 요나라 황제도 인종이 사망하자 이를 알리러 온 송 사신 앞에서 매우 애도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인종 화상을 두고 자기 나라 조상 즉 ‘조종’으로 섬겼다고 한다.[24]
"내 42년 동안 전쟁이란 것을 도무지 알지 못했도다![25] 황제를 위해 의관묘를 모셔 애도하도록 하겠노라!"

4. 기타

조선 영조가 모친 숙빈 최씨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인종과 인종의 생모 장의황후 이씨의 사례를 언급했다고 한다.

진종 못지 않게 학문을 중시한 군주였기에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한 권학문(勸學文)을 남겼는데, 보면 아버지만큼 노골적으로 물질을 강조하지는 않았다.(...)
朕觀無學人(짐관무학인): 짐이 배움이 없는 사람을 보건대
無物堪比倫(무물감비륜): 이 같은 무리에 비교할 것이 없느니라.
若比於草木(약비어초목): 풀과 나무에 견주어 보면
草有靈芝木有椿(초유영지목유춘): 풀에는 영지가 있고 나무에는 춘목이 있다.
若比於禽獸(약비어금수): 새와 짐승에 견주어 보면
禽有鸞鳳獸有麟(금유란봉수유린): 새에는 난새와 봉황이 있고 짐승에는 기린이 있다.
若比於糞土(약비어분토): 똥과 흙에 견주어 보면
糞滋五穀土養民(분자오곡토양민): 은 오곡을 살찌우고 은 백성을 기른다.
世間無限物(세간무한물): 세상의 무수한 사물 중에서
無比無學人(무비무학인): 배움 없는 사람과 비교할 것은 없느니라.
요약하자면 "초목이나 금수에는 좋은 놈이라도 있고 똥과 흙도 쓸모라도 있지 공부 안 하는 놈은 비교할데가 없다. 그러니 공부 안 하는 놈은 초목이나 금수 심지어 똥이나 흙보다도 못한 놈이다!"란 내용을 점잖게 말한 것이다.

한번은 고려가 공물 적게 바친다고 정벌하자는 신하에게, "그것은 단지 고려 국군의 죄일 뿐이다. 만약 공격을 한다 해도 반드시 그 국군을 벌할 수도 없고[26], 반대로 무고한 많은 백성들만 죽게 된다."고 답하면서 끝내 출병하지 않았다고 한다.#

5. 창작물에서

실존인물 포청천의 활동 시기와 그를 기반으로 한 드라마 판관 포청천의 배경 시대가 송 인종의 재위 시기이다. 참고로 판관 포청천에서 다뤘던 살쾡이 태자 전설은 사실 알고 보면 명나라 때 만들어진 경극으로, 다른 후궁들과 그 소생들을 독살했던 성화제의 후궁 만 귀비를 비판하면서 검열을 피하기 위해 위의 장헌황후 유씨와 장의황후 이씨의 이야기로 각색한 것이라고 한다.[27]

수호전의 프롤로그 부분에 등장하여 '태위 홍신'을 108마왕이 봉인된 복마전에 보낸 황제도 바로 인종이다.[28] 이때 인종의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인종이 등극 후 나라에 역병이 돌자 인종이 태위 홍신을 보내 장천사를 모셔오라고 보내는데, 장천사는 없고 어린 시동만 있자 오두미도의 교전을 들러본다. 이때 홍신이 장천사의 복마전에서 어린 시동이 말리는데도 초대 장천사인 장릉이 봉인해뒀다는 36천강 72지살의 108 마성(魔星)이 담긴 항아리를 기어이 열어 마성(魔星)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홍신이 무척 놀라고 자기가 얕잡아 보던 시동이 장천사인 줄을 알고 자기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걸하는데, 나라를 어지럽힐 마성의 봉인을 풀어줬기에 목이 달아날 처지이기 때문.

인종을 찾아온 장천사는 역병을 물리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108 마성(魔星)의 봉인을 홍신이 푼 것은 하늘이 정한 바이니 홍신의 죄를 묻지 말라는 청을 한다. 인종이 걱정을 하자 장천사는 인종에게는 문곡성(文曲星)과 무곡성(武曲星)이 있으니 인종 당대에는 108 마성(魔星)이 발호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키고 다만 후세에 나타나게 될 것이라 경고한다.[29] 그리고 여기서 문곡성(文曲星)이 판관 포청천으로 유명한 개봉 부윤 포증이고, 무곡성(武曲星)이 서하와의 전투에서 활약한 명장 적청(狄靑)이라는 얘기. 다만 문곡성과 무곡성이 포증과 적청이라는 얘기는 후대에 나온 소설에서 나오는 것이며 소설에서는 문곡성이 포증이라는 얘기가 나올 뿐, 무곡성이 적청이라는 얘기는 전혀 나오지 않으며 역사적으로 포증이나 적청이 문곡성, 무곡성이라는 기록은 전혀 없다.

장예모 감독의 영화 그레이트 월에도 등장. 중국의 인기 보이그룹 TFBOYS의 멤버 왕쥔카이가 연기했다. 즉위한지 몇 년 안된 어린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아이다 보니 괴물들에 겁먹고 찌질한(...) 모습만 보여준다. 근데 이와 별개로 이 영화 최대의 미스터리는 괴물들이 도성을 털었는데 황제는 살아있었다는 것. 그러니 영화지

2020년 드라마 청평악에서 왕카이가 연기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30] 초반 아역 때에는 성군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있지만 능력이 따라주지 않는 편이다. 조정은 태후 유씨와 간신 여이간과 그 일파들이 장악하고 있다. 유교 윤리관과 대의 명분을 중시하는 신하들은 태후 섭정을 월권으로 보며 인종의 친정을 지지하나 실권이 없고, 명분은 쥐고 있음에도 우유부단함에 친정 선포를 머뭇거리며 결국 태후가 병에 걸려 드러누울 때까지 태후에게 대권을 얻어내지 못한다. 그 후에도 개혁을 하려 하나 현실의 벽에 막힌다. 범중엄을 중용하고 과거제를 개혁하여 황제 친정을 보좌 할 한기 구양수 등 유능한 신하들을 얻으나 범중엄도 자신이 추진한 개혁이 지나쳐서 실패했다고 인정하고, 젊은 과거 출신들은 말과 문장은 아름다우나 파벌을 만들어 서로 반목한다.

여이간이나 하송 같은 간신들은 오히려 능력이 있어 국정을 맡길 수 있으나 유교 대의 명분을 중시하는 신하들에게 경멸 당하는 한편, 도덕성을 중시하는 이들도 막상 황제의 사부인 안수는 화를 참지 못하고 집안 노비를 폭행해서 이를 부러뜨려지 않나, 명장 적청은 무신 출신이라고 무시하고, 무공을 기려 인종이 출세 시켜 파격적으로 추밀원의 중앙 관직을 내리니 문신 신하들은 적청을 완전히 왕따 시켜 투명인간 취급하고, 과거 출신이라고 뽑은 인재들은 합격하자마자 유력 집안의 사위로 들어가 부귀영화를 누리고 집안에서는 여러 첩을 두는 주제에 도성에서 여자 농부들이 씨름 경기하는 것을 음란하다고 일장 설교를 하는 위선적인 면을 보여준다.

황자 조흔이 흡혈진드기로 죽자 인종은 친모 장의황후에 대한 효도가 부족해서 천벌을 받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친외숙인 이용화에게 높은 벼슬을 제수하고 연국공주를 이용화의 아들 이위에게 시집보냈다. 자신의 사후 자성광헌황후의 조씨가문이 태후의 권세로 국정을 마음대로 할 것을 걱정했다. 사마광이 가뭄과 재해가 극심하니 연등회를 취소해야 한다고 간언했으나 인종은 좋지 않은 일들이 있었으니 명절에라도 기쁨을 나눠야 한다며 연등회를 열었다.

2021년 드라마 대송궁사에 후반부터 등장한다. 놀기 좋아하고 감정적이며 똑똑하지도 않다. 이복누나인 수강공주가 대요로 시집가서 인종은 슬퍼했다. 소순과 어릴 때부터 친구인 것으로 나온다. 활발한 성격의 곽청오를 좋아하지 않으며 조용한 성격의 조여를 좋아한다. 곽청오와 혼인하기 싫어서 조여와 사랑의 도피를 하기도 했다. 도피처에서 정위의 음모로 자신의 친모를 알게 된다. 인종은 조여에 정신이 팔려서 조리용이 딸 조여를 황후로 만들어 송나라를 주무를 계획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조리용을 충신으로 오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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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권 「공주전(公主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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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권 「범질등전(范質等傳)」 250권 「석수신등전(石守信等傳)」
범질 · 왕부 · 위인포 석수신 · 왕심기 · 고회덕 · 한중윤 · 장령탁 · 나언괴 · 왕언승
251권 「한령곤등전(韓令坤等傳)」 252권 「왕경등전(王景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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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권 「절덕의등전(折德扆等傳)」 254권 「후익등전(侯益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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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권 「윤수등전(尹洙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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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권 「원강등전(元絳等傳)」 344권 「손각등전(孫覺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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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권 「유안세등전(劉安世等傳)」
유안세 · 추호 ,전주 왕회(王回) 증탄, · 진관(陳瓘) · 임백우
346권 「진차승등전(陳次升等傳)」
진차승 · 진사석 · 팽여려 · 여도 · 장정견 · 공결 · 손악 · 진헌 · 강공망 · 진우 · 상안민
347권 「손고등전(孫鼛等傳)」
손고(孫鼛) · 오시 · 이소기 · 오사례 · 왕한지 · 황렴 · 주복 · 장순민 · 성도(盛陶) · 장형 · 안복 · 손승 · 한천 · 공정신 · 정목 · 석단 · 교집중
348권 「부즙등전(傅楫等傳)」
부즙 · 심기(沈畸) ,소복, · 서적(徐勣) · 장여명 · 황보광 · 석공필 ,장극공, · 모주 · 홍언승 · 종전 · 도절부 · 모잠 · 왕조도 · 장장 · 조휼
349권 「학질등전(郝質等傳)」
학질 · 가규 · 두순경 · 유창조 · 노정 · 연달 · 요시 · 양수 · 유순경 · 송수약
350권 「묘수등전(苗授等傳)」
묘수 · 왕군만 · 장수약 · 왕문욱 · 주영청 · 유소능 · 왕광조 · 이호 · 화빈 · 유중무 · 곡진 · 유격 · 곽성 · 가암 · 장정(張整) · 장온 · 왕은 · 양응순 · 조륭
351권 「조정지등전(趙挺之等傳)」
조정지 · 장상영 · 유정부 · 하집중 · 정거중 · 안요신 · 장강국 · 주악 · 유규 · 임터 · 관사인 · 후몽
352권 「당각등전(唐恪等傳)」
당각 · 이방언 ,여심 설앙 오민 왕안중 왕양 조야 조보(曹輔) 경남중 왕우(王㝢),
353권 「하율등전(何㮚等傳)」
하율 · 손부 · 진과정 · 장숙야 · 섭창 · 장각(張閣) · 장근(張近) · 정근 · 우문창령 · 허기 · 정지소 · 공원 · 최공도 · 포유
354권 「심수등전(沈銖等傳)」
심수 · 노창형 · 사문관 · 육온 · 황식 · 요우 · 누이 · 심적중 · 이백종 · 왕해 · 하상 · 엽조흡 · 시언 · 최단우 · 유율 · 채의
355권 「가역등전(賈易等傳)」
가역 · 동돈일 · 상관균 · 내지소 · 엽도 · 양외 · 최태부 · 양급 · 여가문 · 이남공 · 동필 · 우책 · 곽지장
356권 「유증등전(劉拯等傳)」
유증 · 전휼 · 석예 · 좌부 · 허돈인 · 오집중 · 오재 · 유병 · 송교년 · 강연명 · 채거후 · 유사명 · 장정(蔣靜) · 가위절 · 최언 · 장근(張根) · 임량 · 주상
357권 「하관등전(何灌等傳)」 358·359권 「이강전(李綱傳)」
하관 · 이희정 · 왕운 · 담세적 · 매집례 · 정진(程振) · 유연경 이강
360권 「종택등전(宗澤等傳)」 361권 「장준전(張浚傳)」
종택 · 조정(趙鼎) 장준(張浚)
362권 「주승비등전(朱勝非等傳)」 363권 「이광등전(李光等傳)」
주승비 · 여이호 · 범종윤 · 범치허 · 여호문 이광 · 허한 · 허경형 · 장각(張愨) · 장소(張所) · 진화 · 장유(蔣猷)
364권 「한세충전(韓世忠傳)」 365권 「악비전(岳飛傳)」 366권 「유기등전(劉錡等傳)」
한세충 악비 유기(劉錡) · 오개 · 오린
367권 「이현충등전(李顯忠等傳)」 368권 「왕덕등전(王德等傳)」
이현충 · 양존중 · 곽호(郭浩) · 양정(楊政) 왕덕 · 왕언 · 위승 · 장헌 · 양재흥 · 우고 · 호굉휴
369권 「장준등전(張俊等傳)」 370권 「왕우직등전(王友直等傳)」
장준(張俊) · 장종안 · 유광세 · 왕연(王淵) · 해원 · 곡단 왕우직 · 이보 · 성민 · 조밀 · 유자우 · 여지 · 호세장 · 정강중
371권 「백시중등전(白時中等傳)」
백시중 · 서처인 · 풍해 · 왕륜(王倫) · 우문허중 · 탕사퇴
372권 「주탁등전(朱倬等傳)」
주탁 · 왕륜(王綸) · 윤색 · 왕지망 · 서부 · 심여구 · 적여문 · 왕서(王庶) · 신병
373권 「주변등전(朱弁等傳)」 374권 「장구성등전(張九成等傳)」
주변 · 정망지 · 장소(張邵) · 홍호 장구성 · 호전 · 요강 · 이태(李迨) · 조개(趙開)
375권 「등숙등전(鄧肅等傳)」 376권 「상동등전(常同等傳)」
등숙 · 이병 · 등강 · 장수 · 부직유 · 풍강국 상동 · 장치원 · 설휘언 · 진연 · 위강 · 반량귀 · 여본중
377권 「상자인등전(向子諲等傳)」
상자인 · 진규(陳規) · 이릉 · 노지원 · 이구(李璆) · 이박 · 왕상 · 왕의 · 진각
378권 「위부민등전(衞膚敏等傳)」
위부민 · 유각 · 호순척 · 심해 · 유일지 · 호교수 · 기숭례
379권 「장의등전(章誼等傳)」
장의 · 한초주 · 진공보 · 장학 · 호송년 · 조훈(曹勛) · 이직(李稙) · 한공예
380권 「하주등전(何鑄等傳)」
하주 · 왕차옹 · 범동 · 양원 · 누소 · 구룡여연 · 설필 · 나여즙 · 소진
381권 「범여규등전(范如圭等傳)」
범여규 · 오표신 · 왕거정 · 안돈복 · 황귀년 · 정우(程瑀) · 장천 · 홍의 · 조규(趙逵)
382권 「장도등전(張燾等傳)」 383권 「진준경등전(陳俊卿等傳)」
장도 · 황중 · 손도부 · 증기 · 구도 · 이미손 진준경 · 우윤문 · 신차응
384권 「진강백등전(陳康伯等傳)」 385권 「갈필등전(葛邲等傳)」
진강백 · 양극가 · 왕철 · 엽의문 · 장패 · 엽옹 · 엽형 갈필 · 전단례 · 위기 · 주규 · 시사점 · 소수 · 공무량
386권 「유공등전(劉珙等傳)」 387권 「황흡등전(黃洽等傳)」
유공 · 왕린 · 황조순 · 왕대보 · 금안절 · 왕강중 · 이언영 · 범성대 황흡 · 왕응진 · 왕십붕 · 오패 · 진량한 · 두신로
388권 「주집고등전(周執羔等傳)」 389권 「우무등전(尤袤等傳)」
주집고 · 왕희여 · 진양우 · 이호 · 진탁 · 호기 · 당문약 · 이도(李燾) 우무 · 사악 · 안사로 · 원추 · 이춘 · 유의봉 · 장효상
390권 「이형등전(李衡等傳)」
이형 · 왕자중 · 가원 · 장강 · 장대경 · 채광 · 막몽 · 주종 · 유장 · 심작빈
391권 「주필대등전(周必大等傳)」 392권 「조여우전(趙汝愚傳)」
주필대 · 유정 · 호진신 조여우
393권 「팽귀년등전(彭龜年等傳)」
팽귀년 · 황상 · 나점 · 황도 ,주남, 임대중 · 진규(陳騤) · 황보 · 첨체인
394권 「호굉등전(胡紘等傳)」
호굉 · 하담(何澹) · 임율 · 고문호 · 진자강 · 정병 · 경당 · 사심보 · 허급지 · 양여가
395권 「누약등전(樓鑰等傳)」
누약 · 이대성 · 임희이 · 서응룡 · 장하 · 왕원 · 왕질 · 육유 · 방신유 · 왕남
396권 「사호등전(史浩等傳)」 397권 「서의등전(徐誼等傳)」
사호 · 왕회(王淮) · 조웅 · 권방언 · 정송 · 진겸 · 장암 서의 · 오렵 · 항안세 · 설숙사 · 유갑 · 양보 · 유광조
398권 「여단례등전(余端禮等傳)」 399권 「정각등전(鄭瑴等傳)」
여단례 · 이벽 · 구화 · 예사 · 우문소절 · 이번(李蘩) 정각 · 왕정수 · 구여 · 고등 · 누인량 · 송여위
400권 「왕신등전(王信等傳)」
왕신(王信) · 왕대유 · 원섭 · 오유승 · 유중홍 · 이상(李祥) · 왕개 · 송덕지 · 양대전
401권 「신기질등전(辛棄疾等傳)」 402권 「진민등전(陳敏等傳)」
신기질 · 하이 · 유재(劉宰) · 유약(劉爚) · 시중행 · 이맹전 진민 · 장조(張詔) · 필재우 · 안병 · 양거원 · 이호의
403권 「조방등전(趙方等傳)」 404권 「왕약해등전(汪若海等傳)」
조방 · 가섭 · 호재흥 · 맹종정 · 장위 왕약해 · 장운 · 유약(柳約) · 이순신 · 손봉길 · 장영(章穎) · 상비경 · 유영 · 서방헌
405권 「이종면등전(李宗勉等傳)」 406권 「최여지등전(崔與之等傳)」 407권 「두범등전(杜範等傳)」
이종면 · 원보 · 유불 · 왕안거 최여지 · 홍자기 · 허혁 · 진거인 · 유한필 두범 · 양간 · 전시 · 장복 · 여오
408권 「오창예등전(呉昌裔等傳)」 409권 「고정자등전(高定子等傳)」 410권 「누기등전(婁機等傳)」
오창예 · 왕강 · 진복 · 왕정 고정자 · 고사득 · 장충서 · 당린 누기 · 심환 · 조언약 · 범응령 · 서경손
411권 「탕숙등전(湯璹等傳)」 412권 「맹공등전(孟珙等傳)」
탕숙 · 장중진 · 모자재 · 주비손 · 구양수도 맹공 · 두고 · 왕등 · 양섬 · 장유효 · 진함
413권 「조여담등전(趙汝談等傳)」 414권 「사미원등전(史彌遠等傳)」
조여담 · 조여당 · 조희관 · 조언눌 · 조선상 · 조여환 · 조필원 사미원 · 정청지 · 사숭지 · 동괴 · 엽몽정 · 마정란
415권 「부백성등전(傅伯成等傳)」
부백성 · 갈홍 · 증삼복 · 황주약 · 원소 · 위진(危稹) · 정공허 · 나필원 · 왕수(王遂)
416권 「오연등전(吳淵等傳)」
오연 · 여개 · 왕입신 · 상사벽 · 호영 · 냉응징 · 조숙원 · 왕만 · 마광조
417권 「교행간등전(喬行簡等傳)」 418권 「오잠등전(呉潛等傳)」
교행간 · 범종 · 유사 · 조규 · 사방숙 오잠 · 정원봉 · 강만리 · 왕약 · 장감(章鑑) · 진의중 · 문천상
419권 「선증등전(宣繒等傳)」
선증 · 설극 · 진귀의 · 증종룡 · 정성지 · 이명복 · 추응룡 · 여천석 · 허응룡 · 임략 · 서영수 · 별지걸 · 유백정 · 김연 · 이성전 · 진위 · 최복
420권 「왕백대등전(王伯大等傳)」
왕백대 · 정채 · 응요 · 서청수 · 이증백 · 왕야 · 채항 · 장반 · 마천기 · 주습 · 요호신 · 대경가 · 피룡영 · 심염
421권 「양동등전(楊棟等傳)」
양동 · 요희득 · 포회 · 상정 · 진종례 · 상무 · 가현옹 · 이정지
422권 「임훈등전(林勳等傳)」
임훈 · 유재소 · 허흔 · 응맹명 · 증삼빙 · 서교 · 도정 · 정필 · 우대년 · 진중미 · 양성대 · 이지효
423권 「오영등전(吳泳等傳)」
오영(吳泳) · 서범 · 이소 · 왕매 · 사미공 · 진훈 · 조여주 · 이대동 · 황순 · 양대이
424권 「육지지등전(陸持之等傳)」
육지지 · 서록경 · 조봉룡 · 조여등 · 손몽관 · 홍천석 · 황사옹 · 서원걸 · 손자수 · 이백옥
425권 「유응룡등전(劉應龍等傳)」
유응룡 · 반방 · 홍근 · 조경위 · 풍거비 · 서림 · 서종인 · 위소덕 · 진개 · 양문중 · 사방득
426권 「순리전(循吏傳)」
진정 · 장륜 · 소엽 · 최립 · 노유개 · 장일 · 오준로 · 조상관 · 고부 · 정사맹 · 한진경 · 엽강직
427·428·429·430권 「도학전(道學傳)」
주돈이 · 정호 · 정이 · 장재 · 소옹 · 유현 · 이유 · 사량좌 · 유초 · 장역 · 소병 · 윤돈 · 양시 · 나종언 · 이동 · 주희 · 장식 · 황간 · 이번(李燔) · 장흡 · 진순 · 이방자 · 황호
431·432·433·434·435·436·437·438권 「유학전(儒學傳)」
섭숭의 · 형병 · 손기 · 왕소소 · 공유 · 공의 · 최송 · 윤졸 · 전민 · 신문열 · 이각 · 최이정 · 이지재 · 호탄 · 가동 · 유안(劉顔) · 고변 · 손복 · 석개 · 호원 · 유희수 · 임개 · 이구(李覯) · 하섭 · 왕회(王回) · 주요경 · 왕당 · 진양(陳暘) · 소백온 · 유저 · 홍흥조 · 고항 · 정대창 · 임지기 · 임광조 · 양만리 · 유자휘 · 여조겸 · 채원정 · 육구령 · 육구연 · 설계선 · 진부량 · 엽적 · 대계 · 채유학 · 양태지 · 범충 · 주진 · 호안국 · 진량 · 정초 · 이도전 · 정형 · 유청지 · 진덕수 · 위료옹 · 요덕명 · 탕한 · 하기 · 왕백 · 서몽신 · 이심전 · 엽미도 · 왕응린 · 황진(黃進)
439·440·441·442·443·444·445권 「문원전(文苑傳)」
송백 · 양주한 · 주앙 · 조인기 · 정기 · 곽욱 · 마응 · 화현 · 풍길 · 고적(高頔) · 이도(李度) · 한부 · 국상 · 송준 · 유개 · 하후가정 · 나처약 · 안덕유 · 전희 · 진충 · 오숙 · 황이간 · 서현 · 구중정 · 증치요 · 조간 · 요현 · 이건중 · 홍담 · 노진 · 최준도 · 진월 · 목수 · 석연년 · 소관 · 소순흠 · 윤원 · 황항 · 황감 · 양파 · 안태초 · 곽충서 · 매요신 · 강휴복 · 소순 · 장망지 · 왕봉 · 손당경 · 당경 · 문동 · 양걸 · 하주 · 유경 · 포유 · 황백사 · 황정견 · 조보지 · 진관(秦觀) · 장뢰 · 진사도 · 이치 · 유서 · 왕무구 · 채조 · 이격비 · 여남공 · 곽상정 · 미패 · 유선 · 예도 · 이공린 · 주방언 · 주장문 · 유엄 · 진여의 · 왕조 · 엽몽득 · 정구 · 장얼 · 한구 · 주돈유 · 갈승중 · 웅극 · 장즉지
446·447·448·449·450·451·452·453·454·455권 「충의전(忠義傳)」
강보예 · 마수 · 동원형 · 조근 · 소함 · 진전서 · 첨량신 · 이약수 · 유겹 · 부찰 · 양진 · 장극전 · 장확 · 주소 · 사항 · 손익(孫翊) · 곽안국 · 이연 · 이막 · 서규 · 진구 · 조불시 · 조령성 · 당중 · 서휘언 · 상자소 · 양방예 · 증고 · 유급 · 정양 · 여유성 · 곽영 · 한호 · 구양순 · 장충보 · 이언선 · 조립 · 왕충식 · 당기 · 이진 · 진구도 · 최종 · 임충지 · 등무실 · 위행가 · 염진 · 조사가 · 역청 · 호빈 · 범왕 · 마준 · 양진중 · 고가 · 조우문 · 진인 · 허표손 · 진륭지 · 왕익 · 이성지 · 진원규 · 장순 · 범천순 · 우부 · 변거의 · 진소 · 윤옥 · 이불 · 윤곡 · 조묘발 · 당진(唐震) · 조여석 · 조회 · 조양순 · 강재 · 마기 · 밀우 · 장세걸 · 육수부 · 서응표 · 진문룡 · 등득우 · 장각(張珏) · 고민 · 경사충 · 왕기 · 장흥조 · 곽호(郭滸) · 오혁 · 이익 · 조사륭 · 진쉬 · 황우 · 학중련 · 유유보 · 우호 · 위언명 · 유사영 · 적흥 · 주필 · 공즙 · 이긍 · 능당좌 · 양수중 · 강예 · 곽선 · 사마몽구 · 임공재 · 황개 · 손익(孫益) · 왕선 · 오초재 · 이성대 · 도거인 · 고영년 · 국사복 · 손소원 · 증효서 · 조백진 · 왕사언 · 설경 · 손휘 · 송창조 · 이정(李政) · 강수 · 유선 · 굴견 · 정담 · 요흥 · 장기(張玘) · 왕공 · 유태 · 손봉 · 유화원 · 호당로 · 왕주 · 유안(劉晏) · 정진(鄭振) · 맹언경 · 고담 · 연만부 · 설양현 · 당민구 · 왕사도 · 조시상 · 조희계 · 유자천 · 여문신 · 종계옥 · 경세안 · 정보 · 미립 · 후핍 · 왕효충 · 고응송 · 장선옹 · 황신 · 진달 · 소뇌룡 · 추붕 · 유사소 · 진동 · 구양철 · 마신 · 여조검 · 양굉중 · 화악 · 등약수 · 진보 · 모겸지 · 서도명
456권 「효우전(孝友傳)」
이린 · 서승규 · 유효충 · 여승 · 나거통 · 제득일 · 이한징 · 형신류 · 허조 · 호중요 · 진긍 · 홍문무 · 역연경 · 동도명 · 곽종 · 고흔 · 주태 · 성상 · 진사도 · 방강 · 방천우 · 유빈 · 번경온 · 영서민 · 기위 · 하보지 · 이빈(李玭) · 후의 · 왕광제 · 강백 · 구승순 · 상진 · 두의(杜誼) · 요종명 · 등중화 · 모안여 · 이방(李訪) · 주수창 · 후가 · 신적중 · 학인 · 지점 · 등종고 · 심선 · 소경문 · 태형 · 앙흔 · 조백심 · 팽유 · 모순 · 양경(楊慶) · 진종 · 곽의 · 신세녕 · 구여령 · 왕주(王珠) · 안후 · 장백위 · 채정(蔡定) · 정기
457·458·459권 「은일·탁행전(隱逸卓行傳)」
척동문 · 진단 · 충방 · 만적 · 이독 · 위야 · 형돈 · 임포(林逋) · 고역 · 서복 · 공민 · 하군 · 왕초(王樵) · 장유(張愈) · 황희 · 주계명 · 대연 · 진열 · 손모 · 유역 · 강잠 · 연서 · 장찰 · 유여상 · 양효본 · 등고보 · 우문지소 · 오영(吳瑛) · 송강어옹 · 두생 · 순창선인 · 남안옹 · 장여 · 서중행 · 소운경 · 초정 · 왕충민 · 유면지 · 호헌 · 곽옹 · 유우(劉愚) · 위섬지 · 안세통 · 유정식 · 소곡 · 서적(徐積) · 증숙경 · 유영일
460권 「열녀전(列女傳)」
주아 · 학절아 · 진당전 · 여양자 · 동팔나 · 한희맹 · 모석석
461·462권 「방기전(方伎傳)」
조수기 · 왕처눌 · 묘훈 · 마소 · 초지란 · 한현부 · 사서 · 주극명 · 유한 · 왕회은 · 조자화 · 풍문지 · 홍온 · 소징은 · 정소미 · 조자연 · 하란서진 · 시통현 · 견서진 · 초연 · 지언 · 회병 · 허희 · 방안시 · 전을 · 지연 · 곽천신 · 위한진 · 왕노지 · 왕자석 · 임령소 · 황보탄 · 왕극명 · 사의도인 · 손수영
463·464·465권 「외척전(外戚傳)」
두심기 · 하영도 · 왕계훈 · 유지신 · 유문유 · 유미 · 곽숭인 · 양경종 · 부유충 · 시종경 · 장요좌 · 왕이영 · 이소량 · 이용화 · 이준욱 · 조일 · 고준유 · 상전범 · 장돈례 · 임택 · 맹충후 · 위연 · 전침 · 형환 · 반영사 · 오익 · 이도(李道) · 정흥예 · 양차산
466·467·468·469권 「환자전(宦者傳)」
두신보 · 왕인예 · 왕계은 · 이신복 · 유승규 · 염승한 · 진한 · 주회정 · 장귀숭 · 장계능 · 위소흠 · 석지옹 · 등수은 · 양수진 · 한수영 · 남계종 · 장유길 · 감소길 · 노수근 · 왕수규 · 이헌 · 장무칙 · 송용신 · 왕중정 · 이순거 · 석득일 · 양종길 · 유유간 · 이상(李祥) · 진연 · 풍세녕 · 이계화 · 고거간 · 정방 · 소이섭 · 뇌윤공 · 염문응 · 임수충 · 동관 · 양사성 · 양전(楊戩) · 소성장 · 남규 · 풍익 · 마거위 · 진원 · 감변 · 왕덕겸 · 관례 · 동송신
470권 「영행전(佞幸傳)」
미덕초 · 후막진리용 · 조찬 · 왕보 · 주면 · 왕계선 · 증적 · 장설 · 왕변 · 강특립
471·472·473·474권 「간신전(姦臣傳)」
채확 · 형서 · 여혜경 · 장돈 · 증포 · 안돈 · 채경 · 조양사 · 장각(張覺) · 곽약사 · 황잠선 · 왕백언 · 진회 · 묵기설 · 한탁주 · 정대전 · 가사도
475·476·477권 「반신전(叛臣傳)」
장방창 · 유예 · 묘부 · 두충 · 오희 · 이전
478권 「남당세가(南唐世家)」 479권 「서촉세가(西蜀世家)」 480권 「오월세가(吳越世家)」
이경(李景) 맹창 전홍숙
481권 「남한세가(南漢世家)」 482권 「북한세가(北漢世家)」 483권 「호남·형남·장천·진세가(湖南荊南漳泉陳世家)」
유창(劉鋹) 유계원 주행봉 · 고보융 · 유종효 · 진홍진
484권 「주3신전(周三臣傳)」
한통 · 이균 · 이중진
485·486·487·488·489·490·491·492권 「외국전(外國傳)」
서하 · 고려 · 교지(정조전여조이조진조) · 대리 · 점성 · 진랍 · 포감 · 막려 · 삼불제 · 도파 · 발니 · 주련 · 단미류 · 천축국 · 우전 · 고창 · 회골 · 대식국 · 층단국 · 구차 · 사주 · 불름국 · 유구국 · 정안국 · 발해 · 일본 · 당항 · 토번
493·494·495·496권 「만이전(蠻夷傳)」
계동만 · 매산동만 · 성주만 · 휘주만 · 남단주만 · 무수주만 · 황원주만 · 여동만 · 환주만 · 서남이 · 여주만 · 공부천 · 풍파만 · 보새만 · 미강만 · 동만 · 석문부 · 남광만 · 보패만 · 무주부 · 유주만 · 검주만 · 시주만 · 고주만 · 육수만 · 준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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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남이지만 5명의 형들이 전부 요절하여 외아들로 자랐다.[2] 온성황후 장씨와는 다른 인물로, 장미의 증손녀이다. 사후 인종에 의해 황후로 추존되었는데, 시호는 불명이다.[3] 아들 인종이 장의황후 이씨로 추존하였다. 장헌명숙황후 유씨(유아)가 덕비였던 시절 유아를 시중 들던 궁녀로 절강 출신이었다. 항주 일대의 관료 집안에서 태어난 본래 사람됨이 장중하고 모범적이었으며 말수가 적은 미인이었다고 한다. 당시 덕비였던 유아는 이씨에게 진종 곁에서 침대를 관리하고 이불과 베개를 갈아주는 일을 하도록 했는데, 이때 진종의 눈에 띄었다고 한다. (진종의 총애를 받음에도 아들을 낳지 못해 황후가 될 명분이 없던 유아가 일종의 씨받이, 대리모로 이씨를 진종에게 보낸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씨가 진종을 모시고 높은 누각에 올라갔다가 비녀를 떨어드렸는데, 비녀가 망가지지 않자 진종이 귀한 아들을 낳을 징조라 하여 가까이 하였다고 한다.[4] 진종 사후 수렴청정기 당시 유아의 권세가 워낙 막강했기에 어떤 신하도 사실을 말하지 못했고, 인종의 생모 신비 이씨도 아들의 황위와 목숨이 위험해질까 봐 황궁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았다. 신비 이씨는 황궁 내에서 자신의 사람을 만들어 세를 키우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궁에서 근무하던 남동생 이용화마저 관직을 잃고 도성 밖으로 쫓겨난 후, 홀로 냉궁에서 쓸쓸히 보내다 병을 얻어 명도(明道) 원년(1032) 2월 황궁에서 46세 나이에 사망했다. 나중에 인종이 외삼촌 이용화를 다시 궁으로 불러들였다.[5] 원래 장헌황후 유씨(유아)는 신비 이씨의 장례를 일반 궁녀의 장례대로 아무렇게나 치르려고 했으나, 후에 인종이 알게 되면 화가 미칠 것이라는 재상 여이간의 충고로 황후의 예로 치러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때 여이간의 말을 들은 유아는 크게 화를 내며 "왜 내궁 일에 관여하려는거요? 궁녀 하나 죽은 것에 어찌 그리 깐깐하게 군단 말이오!"라고 말한 뒤 여이간에게 욕까지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여이간이 나가서 가만히 오래 기다리자 이성을 찾은 유아가 다시 여이간을 불렀는데 이때 여이간이 "태후께서는 당신의 유씨 집안을 온전하게 보전하실 생각이 없으신 겁니까? 만약에 태후께서 유씨 가문의 대를 이을 생각이라면 마땅히 신비 이씨의 장례를 후하게 치러야 할 것입니다."라고 충고했고, 그 말을 들은 유아는 태감 나숭훈(羅崇勛)에게 인종의 생모 장례를 황후의 예로 정중히 치르라고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이때도 유아는 도성 밖으로 나갈때 궁문으로 출관하지 못하게 했는데 그 소식을 들은 여이간이 다시 유아를 찾아가 황후의 예로 장례를 치르라고 충고해 신비 이씨의 관은 서화문으로 출관해 도성 밖 남쪽 홍복원 안에 안치되었다.[6] 인종은 생모 장의황후 이씨의 묘를 영정릉에 안장하고 외삼촌 이용화의 관직을 높였다. 더해 외가 이씨 가문을 황제 외가의 예로 후하게 대하고, 황실 사람 중 복강공주를 이용화의 아들 이위(李瑋)에게 시집보냈다.[7] 진종의 동생인 경왕 조원엄의 능력이 출중했고 태조에서 태종으로 제위가 넘어간 이전 사례도 있었기에 진종이 13세밖에 안 된 외동아들을 걱정한 건 무리가 아니었다.[8] 인종의 삼촌인 경왕 조원엄은 형 진종이 죽은 뒤 유아가 죽기 전까지 십여년간 조정에 나타나지 않고 그 누구도 손님으로 받아주지 않은 채 은거생활을 하다가 유아가 죽은 이후 인종이 친정을 하게 되자 황궁으로 가 조카 인종을 만나뵈었다고 한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인종의 숙부인 조원엄이 인종에게 생모의 비밀을 알려주지 않았겠느냐 하는 말도 있다.[9] 여담으로 서하와의 전쟁에서 활약한 명장으로 적청이라는 인물이 유명하다. 송나라를 대표하는 명장 중 한 명으로 당대에 무곡성(武曲星)의 화신으로 여겨질 정도로 대활약을 펼쳐 많은 공을 세웠으나 그런 만큼 시기와 모략도 잇달아 결국 파직되고 만다. 많은 민간 설화를 남긴 무인으로 중국에서 지금까지도 인기가 많은 무인 중 한 사람이다.[10] 송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결정한 정책. 어떻게 보면 후대의 , 이 조공국에게 더 많은 이익을 안겨주었던 사건의 시초(?)이기도 하다.[11] 관료제가 발달하면서 관료의 숫자가 증가했지만 정작 재정이 감당해내지 못했다.[12] 당시 지방에 파견된 장관들의 부정부패와 백성에 대한 갈취가 심각했다.[13] 이후 범중엄은 서부 변경 업무를 맡으면서 견고한 방어벽을 만들고 서하가 함부로 송나라 국경을 공격하지 못하게끔 했다.[14] 후대 왕조 포함한 어떤 중국의 왕조도 이 수준엔 도달하지 못했다고 한다.[15] 공경, 검소하고 인자하며 자비롭다.[16] 이는 송태조가 사대부와 상소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는 석각 유훈을 내린 탓도 있을 것이다. 물론 조상의 유훈이 있더라도 지금 황제는 자신이니 맘에 안들면 어떻게든 명분을 만들어 안지켜도 그만일 것인데, 인종의 인격은 그렇지 않았다.[17] 이에 대한 일화도 꽤 있는데 목이 마른데도 미처 물을 준비 못한 내시가 이 일로 처벌받을까봐 궁안에 들어올 때까지 참았다거나, 밤 늦게 갑자기 양고기를 야식으로 먹고 싶었음에도 수라간 사람들과 궁녀들이 이 일로 인해 매일 양 잡을 준비를 하고 고생할 것을 걱정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다가 이 일을 말한 이후에도 준비하지 못하게 한 일화가 있다.[18] 인종은 곽황후를 폐할 때 자신이 총애한 장귀비(당시 장미인)를 황후로 삼으려 했다. 이때 장귀비의 황후 책봉을 찬성한 여이간과 책봉을 반대한 범중엄, 구양수, 한기 등의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논쟁 당시 범중엄 등 반대파들은 “국모이신 황후마마를 경솔하게 폐립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대의명분을 내세워 여이간을 비난했다.[19] 사후 추존된 온성황후 장씨를 제외하면 15명이다.[20] 동국 공주, 진국 공주, 당국 공주[21] 추존된 온성황후 포함[22] 즉, 송 인종에게는 5촌 조카.[23] 뒤에 휘를 서(曙)로 바꿨다. 참고로 조서의 아내 고씨의 이모가 인종의 계후인 자성광헌황후 조씨이다.[24] 일단 형식상 송나라가 형님네 나라이긴 했으니, 형님 조상으로 우길볼 수도 있긴 하다.[25] 인종 재위기간 요송 관계가 평화로웠다는 뜻인듯 하다.[26] 애초에 육로는 북쪽의 요로 막혀 있으니 가려면 해로로 가야 되는데, 육로로 온 요도 물리친 고려를 굳이 해로로 무리하게 공격해야 될 이유가 없기도 했다.[27] 실제 역사에서는 장헌황후 유씨가 죽은 후에야 사실이 알려졌으며 이씨는 사실 진종에게 별다른 사랑을 받지 못했다. 애초에 진종은 왕자 시절부터 유부녀였던 유씨를 지극히 사랑해서 아버지인 태종의 명령으로 왕자궁에 감금당하고 못 만나게 되어서도 유씨를 잊지 않고 제위에 오른 뒤에는 그녀를 정식으로 궁으로 불러들여서 황후로 삼았을 정도였고 이씨는 진종이 그냥 한동안 관심을 보였던 일개 후궁에 불과했다. 처음부터 아예 취급이 다른 것이다. 진종 또한 이씨가 아들을 낳고서도 유씨의 청에 따라 그녀가 키우도록 하고 이씨에 대해서는 존재 자체를 깨끗이 잊어버렸다.[28] 정확히는 나라에 역병이 들어 이를 물리칠 당대 널리 알려진 오두미도의 교조 장천사를 찾기 위해 보냈던 것. 참고로 수호전의 장천사는 오두미도의 창시자인 장릉 본인이 아닌 후대 교조로 오두미도의 교조는 장천사라 지칭된다.[29] 수호전의 배경은 인종의 후대인 송 휘종 때이다.[30] 사실 소설 원작은 송 인종의 고명딸 복강공주와 내시 태길이 주인공이나 방영되기에 검열과 흥행 때문에 각색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