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del T |
1. 개요
모델 T 주행 영상 |
가성비가 매우 출중한 자동차였다. 전세계 최초의 '국민차'로, 대량 생산이라는 혁명을 가져다주었다. 한국어로 풀어서 포드 T형이라 부르는 경우도 많다. 왜 하필 'T'형인가 하면, 포드는 개발한 자동차를 개발순서에 따라 알파벳 순으로 이름붙였다. Model A, Model B 등의 순으로 개선을 더해가며 알파벳을 붙였고 자신의 20번째 개선작이 Model T 인 것이다. 다만, A에서 T까지 20종류의 차량이 모두 출시된 것은 아니었다. 모델 A는 이후 1927년 헨리 포드의 아들 에드셀 포드가 T형 포드의 고급 개량형으로 내놓을 때 모델명을 가져갔다.
2. 상세
최초로 생산된 모델 T의 차량형식인 1908년식 런어바웃 |
2.1. 개발 과정
1903년 포드는 자동차 가격은 일반 노동자나 국민들이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낮아야 한다는 판매 정책에 의해 모델 T의 개발을 시작한다.2.2. 대량생산
조립 라인에서 생산되는 모델 T |
- 컨베이어 벨트 조립라인 시스템
이전까지 자동차는 노동자들이 소규모 팀을 짜서 하나씩 만들었으나[3], 포드는 1913년에 도입된 컨베이어 벨트 생산 방식으로 인해 조립 근로자들의 작업 속도가 매우 높아졌다. 컨베이어 공정으로 1914년 포드 자동차는 경쟁 자동차 회사가 66,350명의 직원으로 연간 28만대를 생산한 것에 반해 13,000명의 직원으로 30만대의 차량을 생산했다.
- 단일 모델, 단일 색상 생산
다른 모델을 생산하면 어떤 차종의 값은 비싸지고 소수밖에 살 수 없는 물건이 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핸리 포드는 다른 차종 대신 오직 T형만을 생산하기로 함으로써 생산 공정을 표준화시켰다. 거기에다 1915년 이전까지는 오로지 검은색으로만 차량을 도색했다. 다른 색도 얼마든지 칠할 수 있었는데 검은색이 값싸고 무난한데다 가장 빨리 말랐기 때문이라 한다.[4] 물론 나중에는 다른 색도 칠했지만 포드는 회사에서건 밖에서건 사람들에게 검은색은 고객들이 원하는 색이라고 주장했다. 그때 나온 말이 "모든 고객은 자신이 원하는 색으로 차량을 도색할 수 있습니다. 원하는 색이 검은색이라는 가정 하에."[5][6]
- 차체의 규격화
당시 대부분의 자동차의 차체는 코치 빌더(Coach Builder)라 불리는 전문 제조업자[7]가 따로 만들었지만 포드는 생산 라인에서 직접 만들었다. 따라서 고객의 요구에 맞게 T형을 만들 순 없었고, 대신 투어링, 로드스터 등 다른 형태의 차체를 몇가지 생산해서 변화를 주었다. 쉽게 말해 기본적인 부분은 동일하되 고객의 주문에 따라 몇가지 부품만 달리하는 식으로 이는 현대의 자동차 생산방식과 완전히 동일하다.
- 부품의 최소화, 수수료 최소화
극단적인 단일품종 대량생산을 추구하다보니 성능과 안전이 허용하는 한 부품을 최소화하고 동일 규격으로 만들었다. 예로 브레이크조차 뒷바퀴 2개에만 드럼브레이크를 설치했고, 리프 스프링 서스펜션조차 당시 대부분의 차들이 세로 방향으로 각 바퀴 4개에 모두 올리는 동안 가로 방향 차체 가운데에 앞뒤 2개만 설치했다. 엔진은 수랭식 직선 4기통에 중력식 연료공급방식을 채용하여[8] 엔진부품까지 단순화하여 냉각부품을 없애버렸다. 다만 나중에 모델 T 소유자들 사이에서 냉각키트를 추가 구매하는 게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 외에 영업이 중요하던 당시, 영업 수수료를 쥐어짜고 최소화해서 유통비가 최종판매가격에 반영되는 것까지 최대한 줄였다.
이렇게 생산비를 최소화하는 와중에 의외로 노조가 보편화되지 않던 당시에도 포드 스스로 자사 노동자 임금을 쥐어짜지는 않았는데, 노동자 소득을 쥐어짜면 자동차 보급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9]
2.3. 국민차의 시대를 열다
이렇듯 대량생산이 가능해지자 자동차 가격은 당시 일반 노동자의 2개월치 봉급수준에 해당되는 금액으로2.4. 틴 리지(Tin Lizzie)
명칭의 유래가 된 올드 리즈 |
그런데 리즈는 경기에서 1위를 차지해 불록을 포함한 모든 이들을 경악시켰다. 다른 차들이 자잘한 기계 고장으로 퍼지는 동안[11] 리즈는 단 한 건의 말썽도 없이 전 구간을 완주하였으며, 속도도 그리 나쁘지 않아 쉽사리 1위를 차지한 것. 당시 미국 내 모든 신문은 리즈의 우승을 대서특필했으며, "깡통 리즈"는 모델 T의 신뢰성과 내구성을 단숨에 전 미국인들에게 각인시키며 모델 T의 애칭으로 자리잡았다.
다시 말해 틴 리지는 "깡통"이란 단어가 들어갔지만 실제로는 모델 T를 흉보는 별명이 아니라 오히려 영광스런 애칭인 것이다.
3. 제원
제조국가 및 제조사 | 미국, 포드 |
트림 | |
최초생산년도 | 1908년 |
차량가격 | 950달러[1910년][13] 395달러[1920년][15] 260달러[1925년][17] 모델에 따라 다름 |
엔진 | 177 C.I.D(2.9L) |
엔진형식 | 직렬 4기통 |
배기량 | 2,895cc |
압축비 | |
연료 | 가솔린, |
최고출력 | 20마력 |
최고토크 | |
미션형식 | 2단 유성기어 변속기[19] |
구동방식 | FR |
전륜타이어 | 30in×3in 벌룬타이어: 21in×4.5in |
후륜타이어 | 30in×3.5in 벌룬타이어: 21in×4.5in |
전륜 서스펜션 | 리프 스프링 서스펜션 |
후륜 서스펜션 | 리프 스프링 서스펜션 |
전륜 브레이크 | 없음[20] |
후륜 브레이크 | 드럼 브레이크 |
0→100km/h 가속 | 불가능 |
0→200km/h 가속 | 불가능 |
0→300km/h 가속 | 불가능 |
최고속도 | 68km/h |
연료탱크 용량 | 38L |
연비 | 18-11 L/100km (5.6~9.1km/L) |
탄소 배출량 | 340g/km |
승차인원 | 2~4명 |
전장 | 3.404mm |
전폭 | 1,676mm |
전고 | 1,860mm |
축거 | 2,540mm |
건조중량 (Dry Weight) | 669kg[21] |
트렁크 용량 | 정보없음 |
생산모델 | 투어링 모델 포드 모델T의 초창기에 나온 물건이자 베스트셀러 모델. 4인승 모델로 소프트탑이고 문짝 개수로 초기형과 후기형을 구분할 수 있다.[22] •2도어 투어링 (1909~1911)[23] •3도어 투어링 (1912~1925) •4도어 투어링 (1926~1927) 로드스터 모델 포드 모델T의 1인승 스포츠카이다. 당시에도 현재[24]랑 다를 바 없이 스포츠카는 엄청난 부의 상징이였다. 당시에는 막 모터스포츠가 뜨고 있을 시기였고 여러 상류층에서 스포츠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델T나 고르는 서민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꿈이자 희망사항이였다. 레이싱 팀 맞춤제작은 물론이고, 스포츠카 전문회사에서 만드는 부가티, 란치아, 피아트, 알파로메오같은 초고가 자동차를 살 돈이 없는 서민들에게 포드 모델 T로드스터는 깊은 사막 속의 오아시스이자 구세주였다. •로드스터 (1909~1911) •1도어 로드스터 (1912~1925) •2도어 로드스터 (1926~1927) •로드스터 픽업 (1925~1927)[25] 쿠페 모델 포드 모델T의 2도어 쿠페 모델로 로드스터와는 달리 스포츠와는 거리가 매우 멀고 경차에 가깝다. 하드탑인 2도어 쿠페와 소프트탑인 컨버터블이 있다. •2도어 쿠페 (1909~1912)(1917~1927) •2도어 컴플렛 (1915~1917) 세단 모델 포드 모델T의 고급 모델로 모두 4인승이다. 모두 지붕이 하드탑인것이 특징이며 년식에 따라 문 수를 늘리지않고 각각 고유의 모델이다. 문이 차량 양쪽 가운데에 2개 있는 중앙(2)도어 세단과 앞쪽에 2개 있는 2도어 세단, 문이 4개 다 달려있는 4도어 세단, 그리고 가장 먼저 생산된 포드 모델T의 기함모델이자 최고급모델[26]인 타운 카가 있다. 그러나 타운카가 1918년 단종됨에따라 중앙(2)도어 세단과, 4도어 세단모델이 차례대로 모델T의 기함을 맞게된다. •중앙(2)도어 세단 (1915~1923) •2도어 세단 (1924~1927) •4도어 세단 (1923~1927) •타운 카 (1909~1918) 이 외 많은 파생형 모델 •창원시/교통 문서에 있는 한반도 최초의 버스는 8인승 모델 T이다. |
4. 모델 일람
4.1. 승용형
1917년식 런어바웃 |
1925년식 로드스터 러너바웃 윗 픽업바디 |
1920년식 투어링 | 1924년식 투어링 |
4.2. 상용차
1919년식 트럭형 | 1924년식 승합차 |
모델 T 스쿨버스 |
4.3. 특장차
모델 T 야전 구급차 | |
모델 T 소방차 | 포드 Tf-c 장갑차 |
5. 조작법
참고 링크 1 참고 링크 2조작법이 현대의 자동차들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요즘 기준으로는 상당히 복잡해서 당장 수동변속기 조작의 어려움은 고사하고 맥 변속기가 선녀로 보일 정도로 저리가라할 수준이다.
조작계 |
5.1. 시동
스파크 레버를 최대한 위에 위치시키고 쓰로틀 레버를 조절해 쓰로틀을 적당히 열어준다. 차 전면의 초크 링을 당긴 후 차량 밖으로 나와 전면 범퍼에 붙은 크랭크를 펼쳐 끼운후 몇 바퀴 돌려서 엔진에 수동으로 연료와 공기를 유입시킨다. 이제 키를 왼쪽으로 돌린 뒤 차량의 앞에 있는 크랭크를 시계 방향으로 힘차게 돌려주면 시동이 걸리게 된다. 크랭크를 돌릴 때 조심하지 않으면 엔진에 시동이 걸리면서 돌아가는 크랭크에 몸을 맞고 다칠 수도 있기 때문에 오른쪽으로 서서 왼손으로 크랭크를 돌린다. 이 경우 왼손이 크랭크를 따라 돌아도 몸에 부딪히지 않게 되기 때문.[28] 갓 시동을 건 상태에서는 엔진의 움직임이 상당히 거칠고 엔진 효율이 떨어지는 상태인데, 이 때 스파크 레버를 적절히 조절해 엔진의 움직임을 부드럽게 해 준다. 시동이 걸리고 난 뒤에는 키를 오른쪽 ON 위치로 돌려준다.즉 경운기 엔진과 시동거는 방식이 상당히 비슷하다.
1919년부터 생산된 모델 T에는 스위치를 이용한 시동 방법이 적용되었는데, 크랭크를 이용한 시동 때와 다른 부분은 동일하나 크랭크를 돌리는 대신 바닥에 위치한 시동 버튼[29]을 발로 밟아주면 시동이 걸린다. 버튼이 밖에 보이는 것은 아니고 그냥 바닥 깔개 밑에 깔린 발판 형태다.[30]
5.2. 주행
위의 조작계 사진을 보면 페달 3개가 있는데 각각 뭐라고 쓰여 있는지 보면 알겠지만 셋 중 어느 것도 액셀러레이터가 아니다. 맨 왼쪽 클러치 페달이 1단 주행 시에 쓰이지만 정확한 의미에서의 액셀러레이터라고는 할 수 없다. 클러치 페달로는 속도를 조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속도는 스로틀 레버를 이용해 조절해야 한다.기본적으로 왼쪽 레버는 끝까지 당겨진 상태로 잠겨 있는데 이는 주차 브레이크 작동 및 변속기 중립 상태이다. 시동이 걸리고 나면 왼쪽 레버를 이용해 주차 브레이크를 푸는데 이 때 레버를 중간쯤의 위치에 둔다. 이 상태에서 클러치 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1단으로 주행하게 된다. 적당히 속도가 붙으면 클러치 페달을 밟고 있는 상태로 왼쪽 레버를 끝까지 앞으로 밀어준 후, 빠르게 쓰로틀 레버를 맨 위로 올리고 클러치 페달에서 발을 뗀 후(이 때 2단 기어가 연결된다) 쓰로틀 레버를 다시 내려준다. 이렇게 하면 2단으로 주행하게 된다.
쓰로틀 레버를 이용해 적당히 속도를 낮추고 클러치 페달을 반쯤 밟아주면 변속기 중립 상태가 되는데 이 때 맨 오른쪽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주면 제동이 된다. 이 상태에서 왼쪽 레버까지 끝까지 뒤로 당겨서 주차 브레이크를 걸어주면 완전히 제동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가운데 페달은 후진 기어용으로 왼쪽 레버를 가운데에 둔 상태에서 밟으면 후진한다.
6. 미디어
190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 제작되거나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미디어에서는 웬만하면 모델 T가 지나다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6.1. 영화/드라마
}}} ||암살에 출연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 소속 포드 모델 T 승합차 |
6.2. 소설
- 멋진 신세계
포드 모델 T 생산 시작 연도인 1908년을 원년으로 삼는 A.F. (After Ford)라는 기년법을 사용한다. 과거 교회에 걸려있던 십자가들도 윗부분을 잘라내 T자 모양으로 바꾼 뒤 포드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하는 장치로 쓰인다.
- 오 헨리의 단편 중 하나인 "도시의 패배"에서, 뉴욕에서 변호사로 살고 있는 형이 시골집에 다니러 오자 마차를 타고 기차역으로 마중 나온 동생이 "자동차로 오려고 했는데, 하필 아버지가 그 자동차로 클로버 밭을 갈고 있다"라고 해명하는 장면이 있다. 정황상 모델 T로 추측된다.
- 조선, 혁명의 시대에서 해당 모델을 이용해 버스와 택시를 만들었다고 언급된다.
6.3. 게임
- 마피아
볼트 에이스란 이름의 차로 등장한다. 바디 타입은 2도어와 4도어 세단, 4도어 컨버터블, 2도어 쿠페, 로드스터, 픽업으로 나눴다. 배경이 1930년대인데, 모티브가 된 차가 차라 그런지 최악의 성능을 자랑한다.
- 크레이지레이싱 카트라이더
카트바디인 로디 알베르의 모티브가 되었다.
-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
4편에서 1915년형 투어러가 등장한다. 게임에서 1886년에 만들어진 카를 벤츠의 자동차와 고틀리프 다임러의 자동차 다음으로 오래된 차량이다. 슈퍼 라이센스에서 올 골드를 달성해야 얻을 수 있지만, 획득한다 해도 레이스에는 참가할 수 없다.
- 포드 레이싱 3
1923년형 센터 도어 세단 모델로 등장. Design Concepts 이벤트를 최소 3위 이상으로 완료해야 해금된다.
- 도미네이션즈
이벤트 중 하나에 등장하며 다음과 같은 추가 정보를 볼 수 있다.자동차는 1880년대부터 생산됐지만 1908년 모델 T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보기 드물고 비싸며 불안정한 제품이었습니다. 모델 T는 안정적이고 유지 및 관리가 쉬운 대중 운송 수단으로 자리매김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출시 후 며칠 만에 주문량은 15,000건을 돌파했습니다. 최초로 생산된 모델 T는 1908년 8월 12일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 있는 포드 피켓 애버뉴 플랜트에서 제작되어 1908년 9월 27일에 공장을 떠났습니다. 1927년 5월 26일 헨리 포드는 미시간주 하이랜드 파크에 있는 자신의 공장에서 1,500만 번째 모델 T가 조립 라인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6.4. 만화
}}} ||}}} ||카 시리즈의 리지 |
-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작중 초반에서 아버지(마키 쇼이치)가 군수공장으로 가기 위해 타는 대중교통(버스)으로 등장. 보닛 앞쪽의 크랭크를 돌려서 시동을 거는 운전수의 모습이 잘 묘사되었다. 참고로 이 작품의 작중 연도는 1944년이다. 일본은 그 때까지도 1924년식 버스를 쓰고 있었다는 것으로, 작중에서도 고물 취급이다.
- 귀멸의 칼날
다이쇼 시대를 다룬 작중에 부자들이 타고 다니는 차로 승합 모델이 나온다.
7. 기타
- 1908년 생산한 8인승 차량은 한반도 최초의 영업승합차량 기록을 갖고 있다. 창원시/교통 문서 참조.
- 북미 대륙에서 17세때 포드 T형을 구입하여 70년동안 소유한 캐나다 남성이 있다. # 자신의 첫 차로 단종된지 20년 된 차를 구매해 70년동안 애지중지 한 것을 보면 보통 차 주인이 아니다.
- 꽥꽥이로 부르는 경적을 단 원조 차종으로 추정된다.
- 당시에는 차량 및 농기계 자체가 귀했기 때문에 농사를 지을 때 밭을 갈기 위해서 트랙터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다만 현대의 트랙터처럼 내구성이 튼튼한 편이 아니었어서 한 500시간쯤 쓰면 수리가 필요한 중등도의 고장이 발생하는 경우가 잦았다. 사실 이는 포드 모델 T뿐만 아니라 당시 차량이나 농기계 자체가 기술 부족으로 다 그랬지만.
8. 둘러보기
[1] 2016년 말 기준 1위는 일본의 토요타 코롤라(4,400만대), 2위는 독일의 폭스바겐 비틀(2,100만대), 3위는 소련의 라다 지굴리(1,775만대).[2] 과장된 말처럼 들리겠지만 1908년 당시에 1달러는 꽤 큰 액수였다. 2024년 기준으로 34달러에 해당하며, 한화로 약 5만원인 셈.[3] 이 방식은 지금도 주문 제작 형식이 다수인 버스 업계에서도 쓰이고 있다.[4] 현대의 경계에서-윤종희. 2015, 328.[5] "Any customer can have a car painted any colour that he wants so long as it is black."[6] 여담으로, 우리나라 역시 20세기에는 검은색이 가장 선호되는 자동차 색이었다. 20세기 승용차는 검정 아니면 은색 둘 중 하나였다고 해도 큰 과장이 아니다. 당시 흰색 자동차는 색이 수년 내로 누르스름하게 변색되어 흉했고, 도장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그 외의 색은 있지도 않거나 보기 좋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그 영향은 남아서 흰색을 제외하면 검정이나 은색계열인 무채색 도장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7] 원래는 마차 차체 제조업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초창기의 차가 '말 없는 마차'로 시작하다보니 이렇게 마차에서 자동차로 전업한 것.[8] 쉽게 말해 연료펌프조차 없었다. 이 때문에 남은 연료가 부족할 때 언덕에 오르려면 힘을 얻기 위해 후진으로 올라야 했다.[9] 노동자 소득을 쥐어짜면 컨베이어를 유지하는 숙련공이 도망가버린다.(현대에도 대한민국 조선업 숙련공이 어디로 도망갔는지 잘 떠올려보면 대충 이해할 수 있다.) 어차피 컨베이어 기술이 발전하게 되니 필요한 건 그 벨트를 따라 차를 빠르게 조립해줄 숙련공인데, 이걸 유지하려면 비숙련공을 차차 정리하는 대신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5달러의 봉급과 근로시간을 주어 기존 숙련공을 묶어둘 필요가 있던 것. 이러하니 해고 위기의 비숙련공은 어떻게든 남아있기 위해 능률을 올리려 하고, 다른 지역의 숙련공들도 포드 공장으로 몰려들면서 생산성은 올라가고 이에 정비례하여 차는 값싸게 팔 수 있게 되고, 결과적으로 포드 공장이 이윤을 남기면서도 노동자들에게 약속한 고임금을 줄 수 있게 되면서 포드 공장의 노동자들도 나름 먹고 살 만한 환경이 만들어진다. 오죽했으면 포드 노동자들이 모피를 입고 운전기사를 부려서 공장에 일하러 가는 만평이 그려질 정도.[10] 한창 생산중이던 1920년대에는 당시 돈으로 200달러대까지 떨어졌다. 당시에는 고급차 1대 값이 2,000달러에서 3,000달러로 포드 모델 T 5~8대는 살 수준이었다.[11] 파익스 피크 인터내셔널 힐 클라임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 코스는 험난하기로 유명하며 오늘날에도 기계적 이상으로 리타이어하는 레이서들이 나올 정도로 고난이도다.[1910년] 최고가격[13] 2024년 환율로는 약 30675달러다.[1920년] [15] 2024년 환율로는 약 6058달러다.[1925년] 최저가격[17] 2024년 환율로는 약 4715달러, 한국돈으로 640만원이다.[18] 등유 및 에탄올도 연료로 사용가능하나, 등유는 엔진 트러블을 일으킬 수 있으며(혼유 참조) 에탄올은 금주법 때문에 금지되었다.[19] 3단중 1단은 역방향이기에 2단으로 간주[20] 30년대 이전까지는 전륜에 브레이크를 안 쓰는 경우도 꽤 있었다.[21] 새시와 차체 앞부분[22] 초창기 4인승 모델은 우측통행의 미국 특정상 운전석에는 왼쪽문이 없었으나, 여러 불편과 요인으로 최후기형에는 4짝 다 달려있다.[23] 운전석, 조수석은 문짝 없음[24] 현재는 진입장벽이 많이 낮아졌다하지만 지금도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차량이 많이 생산되는 현재도 스포츠카는 어려운데 당시에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25] 단어 그대로 로드스터와 트럭을 합친 독특란 모델이다.[26] 물론 동시대 고급차에 비해 압도적으로 저렴하다.[27] 사실 현 시대에서 쓰이는 엑셀러레이터 페달 자체가 스로틀 밸브를 페달로 조절할 수 있게 한 장치에 이것저것 개량을 가한 것이다.[28] 물론 재현 영상이던 당시 삽화를 보던 알 수 있지만 그냥 오른손으로 돌리는 경우도 많았다. 근본적으로 엔진에 수동으로 연료와 공기를 유입시키다보니 어느정도 힘이 필요했기 때문.[29] 전기식 시동 버튼이라고 한다[30] 이 형식은 이후 CCKW를 거쳐 대한민국 국군의 육공트럭(구형 K511)까지 정말 오래도록 살아남아 있다. 물론 K511은 발판이 아니라 빨간색 버튼이지만. 신형 K511은 무려 21세기에 들어서야 다른 민수용 트럭과 비슷하게 개량이 가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