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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600년 ~ 기원전 1260년 | |||||
위치 | 메소포타미아, 소아시아 | ||||
수도 | 왓슈카니[1] | ||||
정치 체제 | 전제군주제 | ||||
국가원수 | 왕 | ||||
주요 왕 | 키르타 샤투아라 2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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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 후르리어 아카드어 아모리어 | ||||
종교 | 후르리 종교 메소포타미아 종교 원시 인도유럽 신화 | ||||
주요 사건 | 기원전 1600년 건국 기원전 1260년 멸망 | ||||
성립 이전 | 얌하드 | ||||
멸망 이후 | 중아시리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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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원전 16세기경 키르타에 의해 건국되고, 기원전 1260년경 히타이트와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한 국가이다.수도는 하부르 강 상류 근처에 위치했던 와슈칸니였고, 유프라테스 강-티그리스 강의 북부 유역을 다스렸다. 근처에 위치한 셈어파의 언어나 인도유럽어족과는 확연히 다른 후르리-우라르투어족의 후르리어를 사용했다는 것이 주목할 점이다. 현재 사멸한 이 어족에 속한 언어로 후르리어와 우라르투어가 있었으며, 우라르투어는 현재의 아르메니아에 위치했던 우라르투에서 사용되었다.
지배층 중 필리스티아처럼 인도유럽계도 상당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미탄니인의 지배층은 인도이란계로 추측되는데, 정확히는 이란계보다는 오늘날 남아시아에 거주하는 인도아리아인에 가까웠을 것으로 보인다. # 인류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중앙아시아의 안드로노보 문화[3]의 직계 후손이라고 한다.
2. 국호
미탄니 왕국을 세운 후르리인[4]은 자신들의 나라 이름을 마잇탄(Maittan)이라 불렀고, 여기서 밋탄(Mittan)이란 국호가 나왔다. 그리고 여기에 니스바 어미를 붙이면 미탄니(Mittani)가 된다.히타이트인은 이 나라를 '밋탄인의 땅'이라는 뜻의 미탄니, 혹은 '후르인의 땅'이라는 뜻의 후르릴리라고 불렀다.
한편 고대 이집트인은 이 나라를 '강들'이라는 뜻의 나흐리나라고 불렀다. 이 '강들'이란 지명은 훗날 그리스어를 거쳐 메소포타미아(두 강들 사이)라는 지명으로 수용되었다. 그러니까 미탄니는 메소포타미아라는 이름의 시작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아수르와 바빌론에서는 미탄니를 하니갈바트라고 불렀다. 이는 '전차병'이란 뜻의 전문용어였다. 그러므로 하니갈바트라는 이름은 '전차병의 나라'로 볼 수 있다.
2.1. 전차병의 나라
기원전 2000년대 후반기 고대 근동 전역에 마리안누라는 아카드어가 확산되었다. 이는 '전차병'이라는 뜻으로 후르어에서 유래했다. 아수르와 바빌론에서 유래한 하니갈바트(전차병)는 타쉴리슈[5]라는 아카드어로 번역되었지만, 특이하게도 마리안누는 후르어가 직접 아카드어로 음차된 외래어였다. 이 점에서 미탄니가 전차 기술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줬음을 알 수 있다.아카드어로 '전차'를 뜻하는 나르캅투라는 말은 사르곤 대왕의 시대에도 존재했다. 그러나 유독 '전차병'이란 말은 미탄니가 멸망한 이후에 등장해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미탄니가 전차를 발명한 것이라기보다는 전차기술의 발전을 이루었다고 이해하는 편이 옳다.
마리안누가 고대 근동에 확산되면서 전장에서 말이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 이전의 전쟁에서는 쿤가[6]나 당나귀를 썼다.
3. 역사
미탄니는 히타이트 제국의 서아시아 석권 이전인 기원전 15세기에 시리아와 아나톨리아 반도의 동남부, 이라크 북부를 지배한 강대국이었다. 당시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진출을 노리던 투트모세 3세 휘하의 이집트 신왕국 군대와 자주 격돌했다. 이를 통해 미탄니가 카데시 전투보다 앞서서 이집트와 세계대전을 치렀다고 볼 수도 있는데, 기록이 부족해 미탄니와 이집트 사이의 전쟁은 자세히 알 수 없다. 결국 이집트 제18왕조는 미탄니를 시리아의 패권국으로 인정해 동등한 외교상대로 교류하게 되었고, 강력해진 히타이트를 견제하기 위해 양국은 동맹을 맺기도 했다.이집트와 미탄니 양측이 서로에 대한 견제로 지쳐 있었을 때인 기원전 14세기경, 아나톨리아 고원의 중부에서 힘을 기른 히타이트의 왕 수필룰리우마 1세가 미탄니를 공격하여 수도 왓슈카니를 약탈했다. 참패한 미탄니는 서부의 영토를 대부분 잃은채 동쪽으로 축소되어 히타이트의 속국[7]처럼 되었으며, 내분까지 겪었다. 한편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시리아의 아다드-니라리 1세가 미탄니의 수도를 침공하여 약탈했으며, 결국 샬만에세르 1세가 미탄니를 완전히 꺾어버렸다. 이후 미탄니는 아시리아에 조공을 바치는 신세로 전락했고, 기원전 1260년경에 완전히 멸망했다. 이후 그들의 영토는 수바루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아시리아 제국이 지배했다. 미탄니를 구성하던 후르리인들은 남하하여 아람인과 융화되어 고대 아시리아인에 동화되었다.[8]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자치구의 다후크 주에 있는 저수지가 가뭄으로 마르자 미탄니 시대의 왕성 유적이 드러났다고 한다. # 보존 상태가 좋아서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될 것으로 보였으나 다시 물이 차오름으로써 발굴 진행이 멈추어지고 다시 수장되고 말았다.
4. 미디어
- 토탈 워 파라오 왕조 캠페인에서 하니갈바트 진영이 등장한다. 이 당시의 미탄니는 아시리아에 정복되어 아시리아의 한 지방이 됐기에 아시리아계 세력으로 등장한다. 토탈 워: 파라오/메소포타미아/니누르타 아팔 에쿠르 항목 참조.
[1] 시리아 북부의 텔 페케리예로 추정된다.[2] 지배층은 주로 인도아리아인 계통으로 추정된다.[3] 인도아리아인 중에서 유목생활을 유지한 이들이 세운 문화이다. 참고로 이들 중 정주 농경민으로 전환한 이들이 세운 문화는 박트리아-마르기아나 문화였다.[4] 또는 후르인, 《구약성경》에는 호리인으로 나온다.[5] 문자적인 의미로는 '세 번째 사람'이라는 뜻이다.[6] Kunga. 시리아 야생당나귀와 당나귀를 교잡시킨 잡종이다. 시리아 야생당나귀가 20세기에 멸종하면서 현재는 만들 수 없다.[7] 카데시 전투에서 히타이트의 편에서 싸운 소국 명단에 미탄니가 있다.[8] 현대 시리아인은 아시리아인에 그리스계와 다량의 아랍계, 그리고 일부의 튀르크계가 섞인 혈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