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상급대장, 대장, 중장, 소장은 각각 미군의 대장, 중장, 소장, 준장에 상응. ※ 윗 첨자 † : 전사 ※ 윗 첨자 ok : 총사령관(Oberkommandierender) ※ 윗 첨자 s : 총사령관 대리(Stellvertreter) ※ 윗 첨자 c : 참모총장(Chef des Generalstabes) ※ 윗 첨자 m : 전쟁성 장관(Kriegsminister)
게오르크 폰 레만은 테레지아 사관학교를 졸업후 1875년에 황립 및 왕립 용기병 6연대 소속 소위로 임관하였다. 1878년부터 2년 동안 황립 및 왕립 군 승마교관 기관(k.u.k. Equitationsinstitut)에 다녔고 거기서 수석을 차지해서 중위로 진급하였다. 그 후 승마교관으로 1888년 기병대위(Rittmeister)로 진급하여 기병장교학교(Kavallerie-Brigade-Offiziersschulen)의 교사로 2년 동안 재직하다가 1890년에 비너노이슈타트의 기병생도학교(Kavalleriekadettenschule)로 옮겨서 거기서도 2년을 보냈다.
1896년 소령으로 진급한 게오르크 폰 레만은 황립 및 왕립 울란 13연대 소속으로 편입되었고 3년이 지나서 중령으로 진급해서는 황립 및 왕립 전쟁대학(k.u.k. Kriegsschule)의 승마교관으로도 복무하였다. 1903년 대령으로 진급한 게오르크 폰 레만은 마침내 황립 및 왕립 울란 13연대장이 되면서 처음으로 지휘관 자리를 경험하였다. 그 후 게오르크 폰 레만은 17기병여단을 지휘하였고, 1907년 4월 1일에 황제프란츠 요제프 1세로부터 오스트리아 철왕관 3급 훈장을 수여받았다.
1910년 4월 28일부터 폰 레만은 스타니슬라우에 있는 제8기병사단의 소장겸 사단장으로 승진했다. 1913년 4월 30일 그는 중장으로 진급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될 때 그의 임무는 적의 움직임을 정찰하고 아군의 배치를 적으로부터 은폐하는 것이었다. 게오르크 폰 레만은 뛰어난 통솔력을 보여줬고, 전쟁훈장과 함께 오스트리아 철왕관 2급 훈장을 수여받았다. 1916년 3월 20일, 폰 레만은 황립 및 왕립 기병대와 오스트리아 란트베어의 전시 훈련의 전반적인 관리를 맡았고 11월 10일 기병대장으로 진급하였다. 이듬해 폰 레만은 퇴역하였다.
[1]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대로는 '폰레만'으로 표기한다. 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 및 관사는 뒤 요소와 붙여 적도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