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8da9c5><colcolor=#191919>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육군 보병대장 요한 폰 헨리케츠 Johann von Henriquez | |
이름 | Johann Nepomuk von Henriquez 요한 폰 헨리케츠[1] |
출생 | 1861년 5월 16일 오스트리아 제국 크로아티아 왕국 벨로바르 |
사망 | 1924년 1월 12일(향년 62세) 헝가리 왕국 부다페스트 |
복무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
최종 계급 | 육군 보병대장 (General der Infanterie) |
주요 지휘 | 제17보병사단 제12군단 제2이손초군 |
주요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 갈리치아 전투 - 카포레토 전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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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군인이자 보병대장.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동부전선과 이탈리아 전선에서 활약했으며, 특히 카포레토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다.2. 생애
요한 폰 헨리케츠는 1861년 5월 16일 오스트리아 제국 크로아티아 왕국의 벨로바르(Belovár)[2]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18세기에 카를 6세 치하에서 합스부르크 제국으로 이주한, 꽤나 전통 있는 스페인계 귀족 가문 출신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오스트리아 제국군 중장 구스타프 헨리케츠(Gustav Henriquez, 1810-1869)로, 1850년 오스트리아 제국 귀족 작위를 받았다. 헨리케츠는 올뮈츠에서 중등교육을 마친 후, 1878년부터 1881년까지 비너노이슈타트에 위치한 테레지아 육군사관학교에서 수학했다. 졸업 후 소위로 임관해 테셴과 브륀의 제17야전군사령부에 배속되었다. 1884년부터 1886년까지 빈의 황립 및 왕립 전쟁대학에서 수학했고, 이후 중위로 참모장교단에 편입되었다.이후 헨리케츠는 클라겐푸르트에서 제55보병여단의 참모를 지냈고, 1890년 대위로 진급해 요제포프(Josefov)의 제9군단 참모가 되었다. 이어서 비스트리차(Bistrița)와 부다페스트의 제4군단에서 근무했다. 1896년 소령이 되어 테메슈바르 제34보병사단과 부다페스트 제31보병사단의 참모장을 역임했다. 1897년에는 루마니아로부터 루마니아의 별 훈장 기사십자를 수여받았다.
1899년에는 중령으로 진급해 제82보병연대에 전출되어 10년간 복무했다. 1900년에는 페르시아의 사자태양훈장 2등급을 받았다. 1904년에는 대령으로 진급해 제82보병연대장이 되었다. 1908년에는 철왕관 훈장 3등급을 받았고, 1909년 8월부터는 프라크의 제17보병여단장 겸 사관학교장을 지냈으며, 같은 해 11월 소장으로 진급했다. 1912년에는 중장이 되어 나기바라드의 제17보병사단장이 되었다.
3. 제1차 세계 대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헨리케츠는 사단을 이끌고 모리츠 폰 아우펜베르크 보병대장 휘하의 제4군에 편입되어 세르비아 전선에 투입될 예정이었으나 상황이 바뀌어 동부전선으로 전환되었다. 이후 갈리치아 전투에 참전했으나 1914년 11월 건강상의 이유로 잠시 지휘권을 내려놓았다. 1915년 7월 제15보병사단장으로 복귀했고, 8월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임시 군단(Korps Henriquez)의 지휘관이 되었다. 9월부터는 제12군단장인 헤르만 쾨베시 폰 쾨베슈하저 보병대장으로부터 사령관직을 인수받아 제12군단을 잘 지휘했고, 이 공로로 철왕관 훈장 2등급과 레오폴트 훈장 기사십자를 받았다. 1916년 5월 1일 보병대장으로 진급했으며, 같은 해 독일의 철십자 2등급, 바이에른의 군공훈장 1등급을 수여받았다.1917년 8월 헨리케츠는 이탈리아 전선으로 전출되어 신설된 제2이손초군의 지휘관이 되었다. 독일군과 협동작전으로 카포레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이 공로로 철왕관 훈장 1등급, 레오폴트 훈장 사령관십자, 독일의 철십자 1등급, 작센의 알베르트 훈장 대십자를 받았다. 1918년 1월 제2이손초군이 제1이손초군과 통합되면서 나기바라드로 전출되어 전쟁 종료까지 그곳에서 복무했다. 같은 해 프로이센의 프로이센 왕관 훈장 3등급을 수여받았다. 1919년 1월 1일부로 퇴역했고, 이후 부다페스트에서 은거하다가 1924년 1월 12일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