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8da9c5><colcolor=#191919>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기병대장 데죄 콜로슈바리 폰 콜로주바르 Dezső Kolossváry von Kolozsvár | |
이름 | 데죄/데지데리우스 콜로슈바리 폰 콜로주바르 Dezső/Desiderius Kolossváry von Kolozsvár[1] |
출생 | 1854년 5월 1일 오스트리아 제국 헝가리 왕국 베스프렘 |
사망 | 1919년 4월 5일 (향년 64세) 헝가리 평의회 공화국 쇼프론 |
복무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1877년 ~ 1915년) |
최종 계급 | 제국 육군 기병대장 (General der Kavallerie) |
주요 지휘 | 제10기병연대 타르누프 제2기병여단 제2기병연대, 제14기병여단 정보국 제30보병사단 제11군단 |
주요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 갈리치아 전투 |
기타 활동 | 왕립 헝가리 국방성 국방부 장관 (19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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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군인이자 기병대장. 오스트리아-헝가리군 내 다양한 기병 지휘관직을 역임했고, 1903년에는 잠시 왕립 헝가리 국방성 장관직도 수행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초기 동부전선의 갈리치아 전투에서 제11군단장으로 참전했으나 전술적 패배로 해임되었다.2. 생애
1854년 5월 1일, 콜로슈바리는 변호사이자 지주인 요제프 콜로슈바리(József Kolossváry)와 카롤리나 네데츠키(Karolina Nedeczky) 사이의 아들로 베스프렘에서 태어났다. 빈의 군사학교를 졸업한 후 1876년부터 제10후사르연대 소위로 복무했다. 1881년 중위로 진급해 작전참모부에 배속되었고, 1884년 대위, 1891년 소령이 되었다. 1896년 중령으로 진급한 후 1896년부터 1898년까지 정보국장을 지냈고, 이어 작전국장을 역임했다. 1897년 5월 대령이 되었다.1901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작전참모부에서 전출되어 고향 헝가리의 헝가리 왕립 국토방위군[2]으로 전속, 제2기병여단을 지휘했다. 1903년 5월 소장으로 진급했으나, 한 달 뒤인 6월 쿠엔헤데르바리(Khuen-Héderváry) 내각의 왕립 헝가리 국방성 장관직을 수락해 11월까지 5개월간 재직했다. 임기 중 논란이 된 징병법 개정안 처리에 실패하며 내각이 총사퇴했다. 후임 국방장관 샨도르 니리(Sándor Nyiri) 소장의 배려로 현역 복귀가 허용되어, 1904년 라이히쇼프의 제14기병여단장을 거쳐 1906년 8월부터는 스타니스와프 사단을 지휘했다.
콜로슈바리의 군 경력 말년은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의 수도 렘베르크 인근에서 보냈다. 1907년 11월 중장으로 진급해 렘베르크 주둔 제30보병사단장이 되었고, 1912년 10월 31일부터는 같은 지역 제11군단을 지휘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직후인 1914년 8월, 콜로슈바리는 루돌프 폰 브루더만 남작 휘하 제3군 예하의 제11군단장으로 갈리치아 전투에 참전했다. 그러나 참패 끝에 렘베르크를 상실하고, 9월 군단장직에서 해임되었다. 이후 재기용되지 못한 채 1915년 2월 1일부로 무기한 휴가에 들어갔고, 전쟁에 더는 관여하지 않았다. 이후 1919년 4월 5일 향년 64세로 쇼프론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