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상급대장, 대장, 중장, 소장은 각각 미군의 대장, 중장, 소장, 준장에 상응. ※ 윗 첨자 † : 전사 ※ 윗 첨자 ok : 총사령관(Oberkommandierender) ※ 윗 첨자 s : 총사령관 대리(Stellvertreter) ※ 윗 첨자 c : 참모총장(Chef des Generalstabes) ※ 윗 첨자 m : 전쟁성 장관(Kriegsminister)
1860년 모라비아의 그로스젤로비츠 성에서 카를 페르디난트 대공과 엘리자베트 프란치스카 대공비의 아들로 태어났다.
1879년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에 입대했고, 1896년 현역에서 물러났으나 계속 진급해 1911년 해군 대장이 되었다. 1918년에는 카를 1세의 명으로 카타로만으로 파견되어 호르티 미클로시와 함께 반란 이후 해군 재편을 주도했다.
1886년 마리아 테레지아 폰 외스터라이히토스카나와 결혼해 6명의 자녀를 두었다. 갈리치아의 지비에츠에 정착해 살면서 가족들과 함께 폴란드어를 배웠고[3], 두 딸을 라지비우(Radziwił)와 차르토리스키(Czartoryski) 가문의 폴란드 귀족들과 결혼시켰다. 1916년 독일 측에서 폴란드의 섭정으로 추천되었으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카를 1세가 모두 반대했다.
1918년 이후에는 폴란드 국적을 취득하고 지비에츠에서 계속 살다가 1933년 4월 7일 그곳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