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상급대장, 대장, 중장, 소장은 각각 미군의 대장, 중장, 소장, 준장에 상응. ※ 윗 첨자 † : 전사 ※ 윗 첨자 ok : 총사령관(Oberkommandierender) ※ 윗 첨자 s : 총사령관 대리(Stellvertreter) ※ 윗 첨자 c : 참모총장(Chef des Generalstabes) ※ 윗 첨자 m : 전쟁성 장관(Kriegsminister)
프란츠 숄츠 폰 베네부르크는 1855년 7월 5일 당시 갈리치아 지방의 올호베츠(Ołhowec)[1]에서 태어났다. 6년간의 실과학교 교육을 받은 후 1873년부터 1877년까지 빈 공과군사학교에서 수학했다. 1881년부터 1883년까지 빈에서 고등공병과정을 이수했고, 이후 트리엔트 공병부로 전출되었다. 1888년에는 공병참모부에, 1889년에는 인스브루크 제14군단 공병참모장에, 1891년에는 빈 기술행정군사위원회에 배속되었다. 또한 1891년부터 1894년까지는 교관으로, 1895년에는 빈 군사건설기술과정 지휘관으로 근무했다. 1896년에는 제2군단에서 근무했고, 1897년부터 1899년까지는 사라예보 공병감독관을 지냈다. 그는 1877년에 제2공병연대 소위로 임관한 이후 1879년에 중위, 1888년에 제2급 대위, 1891년에 제1급 대위, 1896년에 소령, 1898년에 중령, 1902년에 대령, 1908년에 소장, 1912년에 중장으로 진급했다. 1913년에는 예비역으로 전환되었다가 전쟁 발발로 현역 복귀했고, 1916년에는 포병대장 명예 계급을 받았다.
전쟁 당시 숄츠는 보첸 보병사단사령관으로서 15개 향토방위대대를 조직했다. 1915년 이탈리아가 참전하자 제90보병사단장이 되었고, 1916년 5월 트렌티노 공세 당시에는 돌로미티 산맥의 파사 계곡(Val di Fassa) 지역에서 기만부대를 지휘했다. 특히 돌로미티 산맥에서의 전투는 혹한과 눈, 고도로 인한 어려운 조건 속에서 진행되었다. 이 지역은 오스트리아-헝가리와 이탈리아 사이의 자연 장벽으로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했으며, 1915년 5월부터 1918년 11월까지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다. 이후 숄츠는 발수가나(Valsugana) 계곡에서의 진지전을 지휘했으며, 1918년에는 티롤, 포어아를베르크, 상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군관구사령관으로 근무했다. 종전 후에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바트 조덴 암 타우누스(Bad Soden am Taunus)로 건너가 살다가 사망하였다.
시인 프리드리히 뤼케르트(Friedrich Rückert)의 손녀이자 크리스토프 마르틴 빌란트의 증손녀인 헬레네 뤼케르트(Helene Rückert)와 결혼했다. 그의 공적을 기려 1912년 귀족 작위가 수여되었고, 인스브루크 베르기젤 박물관에는 티롤 주에서 기증한 실물크기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