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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 아르메니아 |
1. 개요
그리스와 아르메니아의 관계에 대해 서술한 문서. 그리스와 아르메니아는 튀르키예-아제르바이잔 관계까지는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깊은 유대관계를 지녔으며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으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각 국은 예레반과 아테네에 대사관이 위치해 있다.두 나라 모두 유럽 평의회와 흑해경제협력기구의 정회원이다.
2. 역사적 관계
2.1. 고대
두 국가 모두 고대 문명을 지녔기 때문에 아르메니아인과 그리스인은 고대부터 공존하였다. 기원전 525년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카타이오스가 아르메니아인에 대해 언급한 기록이 있다. 헤로도토스는 아르메니아인이 프리기아인의 후손이라고 주장하였다.[1]이후 알렉산더 대왕의 헬레니즘 제국의 후계 셀레우코스 제국이 멸망하고 기원전 190년에는 헬레니즘 문화를 본딴 아르메니아계 국가들이 세워졌다.
그리스의 고대 올림픽에서도 아르메니아인이 참가하였는데 최초의 아르메니아계 선수는 티리다테스 3세였다.
아르탁세스 왕조 아르메니아 왕국이 로마 제국에 의해 멸망한 이후로는 아르메니아 속주가 세워졌다. 로마의 지배 기간 동안에도 그리스인과 아르메니아인의 교류는 활발했다. 301년 아르사케스 왕조 아르메니아가 최초로 기독교를 공인하고 이는 313년 밀라노 칙령과 380년 테살로니카 칙령에 영향을 주었다.
2.2. 중세
로마 제국이 서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으로 분열되고 아르메니아가 동로마와 사산 왕조에 의해 분할되면서 동로마 제국에 수많은 아르메니아인들이 들어왔다. 이들은 초기 동로마 제국에서 많은 부분을 구성했으며 황제들 중에는 아르메니아 혈통을 가진 사람도 많았다. 특히 동로마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마케도니아 왕조는 아르메니아계 바실리오스 1세에 의해 창건되어서 아르메니아 왕조 라고도 불린다. 이 기간 동안 동로마 제국은 마케도니아 르세상스로 발달하였다. 그 사이 아르메니아 본토에서는 바그라투니 왕조가 부흥해 제2차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리스 정교회와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사이의 종교적 갈등으로 인해 동로마 측에서는 아르메니아를 못마땅해 하였고 수많은 전투 끝에 1045년 동로마 제국은 아르메니아를 정복하였다. 이때 아르메니아의 바그라투니 왕조는 조지아 왕국로 넘어가 바그라티온 왕조가 되었다. 다만 아르메니아를 정벌하고 나서 동로마는 금세 쇠퇴하였다.십자군 전쟁에서 동로마 제국과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이 협력하기도 하였으나 아르메니아는 동방보다는 서방 교회와 더 가까웠기에 전쟁 후기에는 약간의 갈등도 있었다.
2.3. 근세
셀주크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지배 하에도 그리스인과 아르메니아인의 관계는 이어졌는데 그리스인은 패전국의 국민이라고 어느 정도 차별 받은 반면 아르메니아인들은 지배 하에서도 근면성실한 민족성과 상업 활동으로 높은 지위에 올라올 수 있었다. 오스만 제국에서도 이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네덜란드, 포르투갈과 같은 유럽 국가들과의 교류에서 아르메니아인을 많이 써먹었다. 반면 동로마 시절부터 아르메니아와 관계가 좋지 않던 그리스인들은 현재와 달리 아르메니아인을 썩 좋아하진 않았다.2.4. 근대
2.4.1. 19세기
근대에 들어서 러시아 제국이 캅카스로 남하하고 오스만 제국과 사파비 제국의 아르메니아인들에게 민족주의를 강요하였다. 그래서 몇몇 아르메니아인들은 오스만 영내에서 독립 관련 활동들을 진행하였고 이에 눈이 뒤집힌 오스만 제국은 아르메니아인들의 직책을 박탈하였고 이스탄불 등에서 단체로 쫓겨나는 비극이 일어났다. 여기서 추가로 박해당한 아르메니아인까지 독립 운동에 가담하면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의 발단이 되었다.러시아 제국과 서방 식민제국들은 쇠퇴한 오스만 제국의 발칸 영토에서도 각 피지배 민족들의 민족주의를 자극하였다. 그리스 독립 전쟁를 필두로 세르비아, 루마니아, 몬테네그로, 불가리아 등의 국가들이 마구잡이로 독립하여 수많은 영토 분쟁을 앓았다.
2.4.2. 20세기
1900년대에 다가와서 사실상 유럽의 환자로 전락한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많은 국가들이 탐냈다. 신생 독립국 그리스 왕국, 세르비아 왕국, 불가리아 왕국은 아직 남아있는 오스만 제국 하 발칸 영토를 분할하기 위해 동맹 관계를 맺었으며 1912년 제1차 발칸전쟁으로 금세 오스만 제국을 쫓아냈다. 이에 분노한 오스만 제국은 표적을 같은 기독교인 아르메니아인으로 돌렸고 대학살 이전에도 크고 작은 아르메니아계에 대한 박해가 지속되었다.그리고 몇 년 안가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며 오스만 제국은 동맹국에 속하여 영국, 러시아, 그리스와 교전하였다. 여기서 많은 아르메니아인들이 러시아군과 함께 싸우게 되었으며 결국 오스만 제국에 의하여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이 시작되었다. 아르메니아인 뿐만 아니라 그리스인들도 학살되었고 이는 그리스인 대학살로 불린다. 이는 그리스인과 아르메니아인 사이의 공통점이자 연대감을 형성하였다.
세브르 조약 체결으로 그리스와 아르메니아 제1공화국은 공통적으로 오스만 제국한테서 거대한 영토를 뜯어내었다. 그리스는 동로마 이후로 항상 원해오던 메갈리 이데아를 실현하려 했고 아르메니아 또한 카르스, 에르주룸, 반 등을 포함한 서아르메니아 영토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였다. 결국 오스만 제국에 대한 침공이 계속되는 가운데 무스타파 케말의 등장으로 튀르키예 독립 전쟁이 시작된다. 동부 전선에서는 아르메니아와 영국이 튀르키예와 대치하였는데 아르메니아가 점령한 영토에는 이미 모든 아르메니아인들이 학살되어 없었고 튀르키예인과 쿠르드인 거주민들이 반란을 일으켜 아르메니아는 금세 몰락하였다. 이후 아르메니아의 영토는 튀르키예와 소련이 모스크바 조약으로 분할하였다.
1920년대에는 그리스가 본격적으로 튀르키예 서부를 침공하였다. 그러나 기타 지역을 전부 통일하고 온 케말은 그리스를 곧바로 격파하였다. 튀르키예 독립전쟁에서 승전한 튀르키예는 로잔 조약을 통해 시리아, 이라크 일대를 잃긴 하였지만 어느정도 영토 보전에 성공하였고 그리스-튀르키예 인구 교환으로 분쟁 요소를 없애었다. 이 전쟁에서 그리스와 아르메니아의 갈등도 있었는데 바로 흑해 그리스인과 아르메니아인들의 갈등이었다. 이들은 거주 지역이 겹쳐 많은 유혈 사태로 번지었다.
2.5. 현대
그리스는 1991년 소련 붕괴로 아르메니아가 독립하자마자 독립 승인을 한 최초의 국가 중 하나이다. 그리스는 아르메니아의 UN, 유럽안보협력기구, 유럽평의회, 흑해경제협력기구 가입을 격하게 지지하였으며 그리스 덕분에 아르메니아는 유럽 연합과 좋은 관계를 가지었다. 각 국의 국가 원수들는 1996년, 1999년, 2000년, 2005년, 2011년, 2014년 서로의 국가를 방문하였다.1996년 그리스는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고 아르메니아는 2015년 그리스인 대학살을 인정하였다.
니콜 파시냔 총리는 그리스를 EU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라 생각한다 하였다. 기사
코로나 19로 아르메니아가 큰 타격을 입었을 때 그리스는 35,000개의 백신을 기부하였다.
3. 군사교류
그리스와 아르메니아는 군사 파트너이기도 하다. 많은 아르메니아 장교들은 그리스 사관 학교에서 훈련을 받는다고 한다.2003년부터 아르메니아 소대는 KFOR 그리스 대대의 일부로 코소보에 배치되었다.
2021년 8월 31일 아르메니아, 그리스, 키프로스가 3국 국방 협력 프로그램을 실시하였다. 각 국의 군대들이 합동 훈련과 전문 지식 공유 등을 한 것으로 보인다.
2023년 8월 31일 아르메니아와 그리스 공동 방산 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4. 디아스포라
아르메니아 내 그리스인의 수는 1,800명~5,000명으로 추정된다. 이 중 대부분은 그리스 본토 출신이 아니라 흑해 그리스인으로 북부 조지아에 많이 거주한다. 1989년 아르메니아 대지진의 타격이 심해 많은 수가 주변국으로 대피하였다.그리스 내 아르메니아인은 50,000명으로 아르메니아 내 그리스인보다 약 15배나 된다. 과거에는 더 많았다고 하지만 아르메니아인 대학살과 상업 활동으로 북미로 이주하였다.
5. 관련 문서
- 그리스/외교
- 아르메니아/외교
- 그리스/역사
- 아르메니아/역사
- 그리스인/아르메니아인
- 그리스어/아르메니아어
- 그리스/경제
- 아르메니아/경제
- 그리스 정교회/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 프랑코포니
- 흑해경제협력기구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남유럽 국가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캅카스 국가
[1] Chahin, Mark (2001). The Kingdom of Armenia. London: Routledge. p. 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