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칼부스 라틴어: Lucius Caecilius Metellus Calvus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조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아버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마케도니쿠스(형제)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달마티쿠스(장남)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누미디쿠스(차남) 카이킬리아 메텔라(딸)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42년 |
전임 |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마케도니쿠스 |
동기 |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세르빌리아누스 |
후임 | 그나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퀸투스 폼페이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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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라치오 인근의 팔레스트리나(Palestrina) 시를 건설했다는 전승이 전해지는 불카누스(Volcanus, 불의 신)의 아들 카이쿨루스의 후예로 전해지는 카이킬리우스 가문의 일원이다. 이 가문은 기원전 3세기부터 로마에서 출세가도를 달려 집정관 계급까지 오른 평민 귀족(노빌레스) 집안으로, 조부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는 기원전 251년과 기원전 247년에 집정관을 맡았으며, 파노르무스 전투에서 카르타고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아버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는 기원전 206년 집정관이었다. 그리고 형제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마케도니쿠스는 기원전 143년 집정관, 기원전 131년 감찰관을 역임했으며, 제4차 마케도니아 전쟁과 아카이아 전쟁에서 활약했다.현대 학자들은 기원전 180년 최고 행정관 간의 취임 간격을 규정한 빌리우스 법에 따라 기원전 145년 이전에 법무관을 역임했으리라 추정한다. 기원전 142년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세르빌리아누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그는 셀레우코스 제국의 국왕 데메트리오스 2세 등 하스몬 왕조 유대 왕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는 동방의 왕들에게 서신을 보내 유대 왕국은 로마와 친선 관계를 맺었으니 더 이상 전쟁을 벌이지 말라고 권고했다.
기원전 141년 먼 히스파니아 총독에 부임한 그는 지난해 로마 법무관이 이끄는 로마군을 상대로 승리한 비리아투스의 루시타니아인과 전쟁을 벌였다. 자세한 상황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138년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그나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형제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마케도니쿠스와 함께 기원전 141년 집정관 퀸투스 폼페이우스의 뇌물 수수 혐의를 고발하고 법정에서 고발측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러나 재판관들은 고발자들의 권위가 자신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무죄를 선고했다.
기원전 136년, 원로원은 자신들의 승인을 받지 않고 바케오스 족과 전쟁을 벌인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포르키나, 데키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칼라이쿠스에게 전쟁을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지시를 내리기로 결의했다. 그는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와 함께 포르키나와 칼라이쿠스에게 찾아가서 원로원의 지령을 전달했지만, 두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고 전쟁을 이어갔다.
기원전 136년 또는 135년에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스푸리우스 무미우스와 함께 동방으로 파견되어 이집트, 시리아, 아시아, 키프로스, 그리스를 방문하면서 동맹을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은 방문하는 곳마다 합리적이고 예의바른 모습을 보여줘서 현지인들의 호감을 샀다고 전해진다. 이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장남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달마티쿠스는 기원전 119년 집정관, 기원전 115년 감찰관, 기원전 114년부터 기원전 104년까지 폰티펙스 막시무스를 역임했고, 차남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누미디쿠스는 기원전 109년 집정관, 기원전 102년 감찰관을 역임했다. 또한 딸 카이킬리아 메텔라는 기원전 104년 법무관을 역임하면서 제2차 노예 전쟁에서 토벌군 지휘관으로 활동한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의 아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