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라틴어: Spurius Postumius Albinus | |
생몰년도 | 미상 ~ 기원전 180년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조부)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아버지)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팀파누스(형제)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아들)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86년 |
전임 |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 |
동기 | 퀸투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
후임 |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마르쿠스 셈프로니우스 투디타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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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고대 로마의 파트리키 집안인 포스투미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파스티 카피톨리니에 따르면, 조부는 아울루스, 아버지는 루키우스라는 프라이노멘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중 아버지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는 기원전 234년과 229년, 215년에 집정관을 역임했고, 실바 리타나 전투에서 보이족에게 전사했다. 형제로 기원전 194년 재무관을 역임하다가 보이족과의 전투 도중에 전사한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팀파누스가 있었다.기원전 189년 법무관을 맡았다. 처음에는 로마 시내에서 외국인들의 소송을 담당하는 임무만 맡았지만, 두 집정관 그나이우스 만리우스 불소와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가 모두 동방 원정을 떠났기 때문에 로마 시의 모든 행정을 주관했다.
기원전 186년 퀸투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와 함께 집정관에 올랐다. 그해 초, 로마 시내에 바커스를 모시는 비밀 의례인 바카날리아에 가담한 수천 명의 여인과 청년들이 온갖 음란한 행위를 일삼고 유언장과 인장을 위조하며, 중상 모략을 일삼고, 친척을 중독시키거나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원로원은 사회 질서가 무너질 것을 우려해 바카날리아에 가담한 인사들 처리를 두 집정관에게 일임한다는 법령을 반포했다.
그와 필리푸스는 철저한 조사를 실시한 뒤 범죄에 연루된 바커스 신도들을 처형하고 그 외의 신자들을 구금했다. 리비우스에 따르면, 7,000명 이상이 이 비밀 결사의 회원이었다가 처형되거나 체포되었다고 한다. 이후 필리푸스와 함께 리구리아인과의 전쟁을 배정받았지만, 고대 사료에서는 필리푸스의 활약상만 언급했다. 그는 연말에 차기 고위 행정관 선거를 조직했고, 그 결과 그의 사촌으로 추정되는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와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팀파누스가 법무관으로 선출되었다. 기원전 185년 전직 집정관의 자격으로 아풀리아에서 반란을 일으킨 양치기 노예들을 진압했다. 기원전 184년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가 사망한 뒤 아우구르 사제단의 일원이 되었다. 기원전 180년 전염병에 걸려 사망했다.
그의 아들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는 기원전 154년 집정관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