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라틴어: Gnaeus Calpurnius Piso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미상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39년 |
전임 | 가이우스 라일리우스 사피엔스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
동기 | 마르쿠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
후임 |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세라피오 데키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칼라이쿠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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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칼푸르니우스 씨족은 로마의 전설적인 두번째 왕 누마 폼필리우스의 아들 칼푸스를 시조로 둔 평민 귀족(노빌레스)이다. 이 가문에는 여러 분파가 속해 있었는데, 그중 가장 저명한 분파가 기원전 2세기 초부터 집정관을 역임하면서 엄청난 위세를 떨친 피소 가문이었다. 그러나 파스티 카피톨리니에서는 그의 조부와 아버지가 누구였는지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프라이노멘 조차 고대 기록에서 엇갈리게 설명되었다. 6세기의 원로원 의원이자 로마 작가 카시오도루스는 그를 '그나이우스'라고 불렀고,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이다티우스 등은 루키우스라고 지칭했다. 현대 학자들은 파스티 카피톨리니에서 '그나이우스'라고 지칭한 것을 근거로 그의 프라이노멘이 그나이우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현대 학자들은 고위 행정관의 재임 간격을 설정한 빌리우스 법에 의거해 기원전 142년 이전에 법무관을 역임했으리라 추정한다. 기원전 139년 마르쿠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라이나스가 가까운 히스파니아 속주로 가서 누만티아 전쟁을 치르는 동안, 그는 로마에서 행정을 맡았다. 일부 학자들은 크레타 내 두 공동체 사이에서 일어난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파견된 사절단의 일원인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가 그이거나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한다. 이외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