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우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라틴어: Gaius Livius Drusus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아이밀리아누스(아버지) 가이우스 리비우스 드루수스(장남) 대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차남)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47년 |
전임 |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마그누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
동기 |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
후임 |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루키우스 뭄미우스 아카이쿠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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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본래는 아이밀리우스 일족의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가문 사람이다.아버지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아이밀리아누스는 종종 마르쿠스 리비우스 아이밀리아누스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기원전 216년 칸나이 전투 때 한니발 바르카와 맞서 싸우다 전사한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의 둘째 아들로, 형은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의 아버지인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케도니쿠스가 있다. 아버지를 잃은 뒤 외가 친척 마르쿠스 리비우스 살리나토르에게 입양됐고, 관례에 따라 이름을 바꿨다. 현대 학자들은 고위 행정관의 재임 간격을 설정한 빌리우스 법에 의거해, 그가 기원전 150년 이전에 법무관을 역임했을 거라 추정한다.
기원전 148년 말, 로마는 제3차 포에니 전쟁에서 고대 카르타고를 상대로 예상치 못한 고전을 겪고 있었다. 이에 격분한 로마 시민들은 당시 트리부누스 밀리툼으로서 카르타고군을 상대로 유일하게 선전하고 있는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를 집정관으로 세우고 아프리카 방면 로마군을 맡기기로 결의했다. 이에 대해 함께 집정관에 선출된 그는 혈연적 조카뻘인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법무관 같은 고위 행정관을 역임한 적이 없는데 집정관에 단숨에 선출되는 것은 빌리우스 법에 어긋나며, 제비뽑기를 통해 임지를 결정하는 관례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민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는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카르타고와의 전쟁을 이끄는 동안 이탈리아에서 행정에 전념해야 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장남 가이우스 리비우스 드루수스는 뛰어난 변호사였지만 실명으로 인해 정치 경력을 쌓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둘째 아들인 대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는 기원전 112년 집정관, 기원전 109년 감찰관을 역임했으며, 가이우스 그라쿠스를 몰락시키는 데 일조했다.
본래 아이밀리우스 가문 사람이었기 때문에, 차남 대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는 친척뻘 분가 지파인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가문의 대를 잇게 하기 위해, 자신의 장남을 입양보냈다. 그가 바로 가이우스 리비우스 드루수스의 친손자 마메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리비아누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