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03 09:20:02

가이우스 라일리우스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81818,#E5E5E5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font-size: 0.742em; letter-spacing: -0.35px"
기원전 200년 기원전 199년 기원전 198년 기원전 197년 기원전 196년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막시무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 가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루키우스 푸리우스 푸르푸레오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푸블리우스 빌리우스 타풀루스 섹스투스 아일리우스 파이투스 카투스 퀸투스 미누키우스 루푸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기원전 195년 기원전 194년 기원전 193년 기원전 192년 기원전 191년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메룰라 루키우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롱구스 퀸투스 미누키우스 테르무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기원전 190년 기원전 189년 기원전 188년 기원전 187년 기원전 186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가이우스 라일리우스 그나이우스 만리우스 불소 가이우스 리비우스 살리나토르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기원전 185년 기원전 184년 기원전 183년 기원전 182년 기원전 181년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푸블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그나이우스 바이비우스 탐필루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마르쿠스 셈프로니우스 투디타누스 루키우스 포르키우스 리키누스 퀸투스 파비우스 라베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르쿠스 바이비우스 탐필루스
기원전 180년 기원전 180년 보결 기원전 179년 기원전 178년 기원전 177년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루스쿠스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루키우스 만리우스 아키디누스 풀비아누스 아울루스 만리우스 불소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
기원전 176년 기원전 176년 보결 기원전 175년 기원전 174년 기원전 173년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히스팔루스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라이비누스 푸블리우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파울룰루스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퀸투스 페틸리우스 스푸리누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마르쿠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기원전 172년 기원전 171년 기원전 170년 기원전 169년 기원전 168년
가이우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아울루스 호스틸리우스 만키누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케도니쿠스
푸블리우스 아일리우스 리구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아울루스 아틸리우스 세라누스 그나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기원전 167년 기원전 166년 기원전 165년 기원전 164년 기원전 163년
퀸투스 아일리우스 파이투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티투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아울루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펜누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갈루스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퀸투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마니우스 유벤티우스 탈나
기원전 162년 기원전 162년 보결 기원전 161년 기원전 160년 기원전 159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코르쿨룸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루키우스 아니키우스 갈루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피굴루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가이우스 판니우스 스트라보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
기원전 158년 기원전 157년 기원전 156년 기원전 155년 기원전 154년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섹스투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루푸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코르쿨룸 퀸투스 오피미우스
가이우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오레스테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피굴루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기원전 154년 보결 기원전 153년 기원전 152년 기원전 151년 기원전 150년
퀸투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티투스 안니우스 루스쿠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발부스
기원전 149년 기원전 148년 기원전 147년 기원전 146년 기원전 145년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켄소리누스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마그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아이밀리아누스
마니우스 마닐리우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가이우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루키우스 뭄미우스 아카이쿠스 루키우스 호스틸리우스 만키누스
기원전 144년 기원전 143년 기원전 142년 기원전 141년 기원전 140년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칼부스 그나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가이우스 라일리우스 사피엔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마케도니쿠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세르빌리아누스 퀸투스 폼페이우스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기원전 139년 기원전 138년 기원전 137년 기원전 136년 기원전 135년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세라피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포르키나 루키우스 푸리우스 필루스 세르비우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마르쿠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데키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가이우스 호스틸리우스 만키누스 섹스투스 아틸리우스 세라누스 퀸투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기원전 134년 기원전 133년 기원전 132년 기원전 131년 기원전 130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아이밀리아누스 푸블리우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푸블리우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무키아누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가이우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프루기 푸블리우스 루필리우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마르쿠스 페르페르나
기원전 130년 보결 기원전 129년 기원전 128년 기원전 127년 기원전 126년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가이우스 셈프로니우스 투디타누스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루키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라빌라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마니우스 아퀼리우스 티투스 안니우스 루스쿠스 루푸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오레스테스
기원전 125년 기원전 124년 기원전 123년 기원전 122년 기원전 121년
마르쿠스 플라우티우스 힙사이우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루키우스 오피미우스
마르쿠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가이우스 섹스티우스 칼비누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 가이우스 판니우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기원전 120년 기원전 119년 기원전 118년 기원전 117년 기원전 116년
푸블리우스 마닐리우스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디아데마투스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게타
가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퀸투스 마르키우스 렉스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에부르누스
기원전 115년 기원전 114년 기원전 113년 기원전 112년 기원전 111년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스카우루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발부스 가이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카프라리우스 대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세라피오
마르쿠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가이우스 포르키우스 카토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베스티아
기원전 110년 기원전 109년 기원전 108년 기원전 108년 보결 기원전 107년
마르쿠스 미누키우스 루푸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루키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퀸투스 호르텐시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스카우루스 가이우스 마리우스
기원전 106년 기원전 105년 기원전 104년 기원전 103년 기원전 102년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마리우스 가이우스 마리우스 가이우스 마리우스
가이우스 아틸리우스 세라누스 그나이우스 말리우스 막시무스 가이우스 플라비우스 핌브리아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오레스테스 퀸투스 루타티우스 카툴루스
기원전 101년
가이우스 마리우스
마니우스 아퀼리우스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8px; padding: 0 6px"
}}}}}}}}}}}}}}}



가이우스 라일리우스
라틴어: Gaius Laelius
생몰년도 미상 ~ 미상
출생지 이탈리아 로마
사망지 미상
지위 평민
국가 로마 공화정
가족 가이우스 라일리우스(아버지)
가이우스 라일리우스 사피엔스(아들)
참전 제2차 포에니 전쟁
직업 로마 공화정 집정관
로마 공화정 집정관
임기 기원전 190년
전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동기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
후임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
그나이우스 만리우스 불소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제2차 포에니 전쟁 시기에 활약한 고대 로마의 평민 출신 장군.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친구로, 이베리아 원정과 아프리카 원정에 활약했다. 특히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 바르카를 격파하는 데 결정적으로 공헌했다. 이후 스키피오의 후원을 받아 정계에 진출하여 집정관까지 역임하였으며, 말년에 폴리비오스에게 포에니 전쟁에 관한 주요 정보를 제공했다.

2. 생애

아버지가 가이우스 라일리우스이며, 어렸을 때부터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와 절친한 친구였다는 것 외에 그의 유년기에 대해 알려진 건 거의 없다. 폴리비오스에 따르면, 그는 부유하지도 않았고 고귀한 신분도 아니었지만, 푸블리우스 스키피오의 친구로서 유년기부터 죽을 때까지 그의 모든 행적에 동참했다고 한다. 스키피오도 그런 그를 무척 소중하게 여겨서, 그가 없을 때 중요한 일을 하고 싶지 않아 했다고 한다.

기원전 218년 제2차 포에니 전쟁이 발발한 이래 스키피오와 함께 군대에 배속되어 친구의 곁에서 적에 맞서 싸웠으며, 기원전 210년 스키피오가 히스파니아 총독이 되었을 때 동행했다. 스키피오는 그해 겨울 장성들에게 하스드루발 바르카, 마고 바르카, 하스드루발 기스코를 연이어 격파하는 걸 작전 목표로 삼을 거라고 밝혔지만, 오직 그만이 실제로는 카르타고 노바를 기습 공략한다는 걸 사전에 알고 있었다. 그는 스키피오의 비밀 지시에 따라 극비리에 군대를 함대에 태워 이동해 같은 날 카르타고 노바에 도착했다. 다음날, 스키피오와 라일리우스는 육지와 해상에서 동시 공격하였고, 카르타고 노바는 순식간에 함락되었다(카르타고 노바 공방전). 스키피오는 친구의 공적이 자신과 동등하다고 선언하고, 그에게 황금 화환을 수여했다. 이후 귀족 포로들을 대동한 채 스키피오의 동생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와 함께 로마로 가서 원로원에 승리를 보고하였고, 가능한 한 빨리 히스파니아로 돌아가라는 명령에 따랐다.

기원전 208년 하스드루발 바르카와의 바이쿨라 전투에서, 그는 절반의 병력을 이끌고 카르타고군이 점령한 언덕을 우회하여 공격을 감행해 대승에 크게 기여했다. 기원전 206년 일리파 전투에서는 먼저 상대 기병 지휘관 마고 바르카를 무찌른 뒤 보병을 이끌고 카르타고 주력군과 맞붙어 대승에 일조했다. 이리하여 히스파니아를 평정한 뒤, 스키피오는 그를 누미디아 마사에실리 부족의 왕 시팍스에게 보내 로마와 동맹을 맺자고 제안했고, 시팍스는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라일리우스는 히스파니아에 돌아와서 스키피오에게 협상 결과를 보고하였고, 이후 스키피오와 함께 이탈리아로 돌아갔다. 기원전 205년 스키피오가 집정관을 맡아 시칠리아 속주로 가서 아프리카 침공을 준비하고 있을 때, 그는 언제나처럼 친구를 따라가서 아프리카 해안을 급습하여 약탈하는 한편 적의 방비를 정탐했다. 또한 누미디아 왕 마시니사를 만나 동맹을 맺고, 스키피오가 상륙할 때 기병대를 이끌고 합류하도록 했다. 그러나 마시니사는 시팍스와 카르타고의 협공으로 나라를 잃고 얼마 안되는 기병과 함께 스키피오에 가담했다.

기원전 204년 로마군이 스키피오의 인도하에 아프리카에 상륙했을 때, 그는 대 카토와 함께 좌익 편대를 이끌었다. 로마군은 우티카 인근에서 겨울을 보낸 뒤, 봄에 카르타고와 시팍스의 누미디아 연합군을 상대로 야습을 감행했다. 그는 마시니사와 함께 일부 병력을 이끌고 야습을 성사시켰고, 적병을 모조리 살육했다.(우티카 전투) 이후 스키피오의 지도하에 동부 누미디아로 진군하여 시팍스-하스드루발 기스코의 연합군을 다시 한번 격파해(바그라다스 전투), 마시니사가 동부 누미디아를 회복하고 왕으로 복귀하게 했으며, 연이어 서부 누미디아로 진군해 시팍스를 다시 한번 격파하여 포로로 잡고 누미디아 전체를 공략했다. 그는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황금 화환을 받았다.

그는 시팍스 외 고위급 포로들과 마시니사의 사절단과 함께 로마로 가서 승리를 보고한 뒤, 마침 로마로 와서 평화 협정을 맺은 카르타고 사절과 함께 아프리카로 돌아왔다. 그러나 카르타고는 한니발 바르카가 돌아오자 평화 협정을 취소하고 다시 한번 일전을 벌이기로 했고, 그는 기원전 202년 자마 전투에서 스키피오의 지도하에 좌익의 이탈리아 기병대를 이끌고 상대 기병대를 물리친 뒤, 마시니사와 함께 카르타고군의 후방을 강타하면서 승리에 일조했다. 자마 전투의 패배로 카르타고는 더 이상 싸울 여력을 잃고 비로소 평화 협정을 맺었다. 그는 다시 한번 로마로 가서 승전보를 알렸다.

기원전 202년 스키피오가 집정관을 맡았을 때 재무관에 선출되었고, 기원전 197년에 평민 조영관이 되었으며, 기원전 196년 시칠리아 총독을 역임하였다. 기원전 193년 친구의 지원에 힘입어 집정관 선거에 도전했지만 낙선했다. 기원전 191년 다시 집정관 선거에 출마해 스키피오의 동생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와 함께 집정관에 당선되었다. 이후 벌어진 일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에 따르면, 원로원은 라일리우스가 동방 원정을 맡아야 하고 루키우스 스키피오는 그리스에 남아서 물자를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여겼다. 이에 라일리우스는 제비뽑기를 하지 말고 원로원에 결정을 맡기자고 제안했다. 그때 푸블리우스 스키피오가 나서서 항의하자 민심이 격앙되었고, 원로원은 어쩔 수 없이 루키우스 스키피오에게 원정을 맡겼다고 한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에 따르면, 제비뽑기 결과 라일리우스가 동방 원정을 맡게 되었지만, 푸블리우스 스키피오의 설득에 따라 루키우스 스키피오에게 원정을 넘겨줬다고 한다. 키케로에 따르면, 제비뽑기 결과 루키우스가 동방 원정을 맡게 되었지만, 원로원은 그를 군사적으로 무능한 인물이라 여겨 반대했다. 그때 푸블리우스가 나서서 동생을 옹호했고, 결국 그의 뜻대로 관철되었다고 한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결국 절친한 친구보다 동생을 우선시했던 셈이다.

이후 스키피오 형제가 동방 원정을 떠난 동안, 그는 이탈리아에 남아서 북이탈리아의 켈트족 문제를 처리했다. 크레모나와 플라켄티아에 이주할 이들을 모집했으며, 보이족의 영역에 두 개의 새로운 식민도시를 건설하였다. 이 일대에 대한 그의 권한은 이듬해까지 연장되었다. 스키피오 형제가 몰락한 뒤에는 정계에서 이렇다할 활약을 하지 않았지만, 포에니 전쟁의 영웅으로서 대중의 존경을 받았다. 기원전 160년경 폴리비오스를 만나 포에니 전쟁과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그가 언제 사망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아들 가이우스 라일리우스 사피엔스는 기원전 140년에 집정관을 역임했으며,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의 절친한 친구였다. 대를 이어 스키피오 가문의 충실한 클리엔테스였다. 아이밀리아누스의 후원을 받아 농지개혁 법안을 추진했으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곧 그만두었고, 현명하다는 뜻의 '사피엔스'라는 아그노멘을 얻었다. 사피엔스의 두 사위 또한 집정관을 역임했으며, 둘째 사위인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아우구르키케로의 스승이기도 했다. 키케로는 스승을 통해 라일리우스와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자신의 작품의 영감으로 삼은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