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트 무어 Bryant Moore | |
본명 | 브라이언트 에드워드 무어 Bryant Edward Moore |
출생 | 1894년 6월 6일 |
미국 메인주 엘스워스 | |
사망 | 1951년 2월 24일 (향년 56세) |
대한민국 경기도 여주군 | |
복무 | 미합중국 육군 |
최종 계급 | 미국 육군 소장 |
복무 기간 | 1917~1951 |
학력 | 엘스워스 고등학교 미국육군사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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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메인주 엘스워스에서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고 1917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1차대전 미국 원정군 소속으로 프랑스에 진주해 있었고 전후 육군사관학교 교관으로 있다가 보병학교 고군반과, 지휘참모학교를 수료했다. 태평양 전쟁 당시 대령으로 164보병연대장으로 과달카날 전역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치렀다.이후 준장으로 진급해 테리 앨런이 지휘하는 제104보병사단의 부사단장으로 임명되었다가 제8보병사단장으로 임명되었고 유럽에서 독일군과 전투를 치렀다. 전후 제88보병사단장으로 오스트리아에 진주했으며 당시 유고슬라비아의 요시프 티토가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를 넘보자 트리에스테에 진주해 티토를 견제했다. 1949년 소장으로 진급해 2년간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 재직했다.
6.25 전쟁이 진행되고 있던 1951년 한국으로 건너와 제9군단장으로 임명되어 임관동기인 매튜 B. 리지웨이휘하에 있었다.[1] 당시 리지웨이는 전황을 역전시키기 위해 썬더볼트 작전을 펼쳤고 무어가 지휘하는 9군단은 지평리 전투이후 여주에서 공세 작전인 킬러 작전을 펼치고 있었는데 헬기를 타고 도하를 지휘했으나 헬기가 남한강인근에 추락했다. 현장에서 즉사한 인원은 없었고 파일럿을 포함한 다른 인원은 살아남았으나 무어는 부하들의 구출에 힘쓰다가 추락 후유증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9군단장으로 부임한지 3주만에 사망했다.
3. 여담
- 국가보훈처에서 제정하는 6.25 전쟁 영웅에 2016년 2월의 전쟁영웅으로 선정되었다.
-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단현리에는 그를 기리는 추모 전적비가 있다.
[1] 당시 리지웨이가 국방부에 건의해 군단장으로 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