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M. 로버트슨 Walter M. Robertson | |
본명 | 월터 멜빌 로버트슨 Walter Melville Robertson |
출생 | 1888년 6월 15일 |
미국 버지니아주 넬슨 카운티 | |
사망 | 1954년 11월 22일 (향년 66세)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 |
복무 | 미합중국 육군 |
최종 계급 | 미국 육군 소장 |
복무 기간 | 1912~1950 |
학력 | 오클라호마 대학교중퇴 미국육군사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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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버지니아주 넬슨 카운티에서 태어나 오클라호마 대학교 기계공학과로 입학했으나 1년만에 중퇴하고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했다. 1912년 졸업하고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1] 하와이에 있는 제1보병연대가 초임지이며 이후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제24보병연대에서 복무했다. 1916년 몬태나주의 포트 미줄라에서 복무했고 1차대전 당시 서부전선에 투입되어 독일군과 전투를 치렀다.전후 라인란트에 진주해있다가 육군보병학교 고군반, 육군전쟁대학, 지휘참모학교를 수료하고 31보병연대 2대대장, 16연대 부연대장을 지냈다. 전쟁계획부에서 참모를 역임하고 대령으로 진급 후 23, 9보병연대장을 역임했다.
1941년 진주만 공습으로 인해 미국이 세계 대전에 개입하자 준장으로 진급해 존 C. H. 리가 지휘하고 있는 제2보병사단의 부사단장으로 임명되었고 유럽으로 가기 전 루이지애나에서 훈련을 실시했다. 잠시 조지 C. 마셜휘하에서 군수참모로 일했고 소장으로 진급해 리의 후임으로 2사단장이 되었다. 북아일랜드, 웨일스에서 훈련 후 노르망디 상륙 작전당시 오마하 해변에서 피의 신고식을 치렀다. 이후로 프랑스 전역에서 남하하며 브레스트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벌지 전투당시에도 2사단을 맡고 있었고 초반 독일군 전차에 밀렸음에도 불구하고 시가전에서 보병들에게 많은 피해를 강요했으며 퇴각시에도 지연전을 통해 점진적으로 퇴각했다. 이로 인해 독일군은 인적, 물적 손실을 강요받고 작전의 일정까지 지연시켜 공세의 실패를 야기했다. 이 공적으로 수훈십자장을 수여받았다.
이후로도 독일 본토에 진출했으며 체코슬로바키아에 주둔해있다가 종전을 맞이했다. 종전 후 제15군단 소속으로 오스트리아, 서독에 있었으며 제6군 군수사령관을 마지막으로 1950년 퇴역했다. 은퇴 후 캘리포니아주 민방위장을 지냈고 1954년 사망했다.
[1] 당시 임관 동기로 월튼 워커, 레이먼드 바턴, 윌리엄 H. 윌버, 프랭클린 C. 시버트, 밀러드 하먼, 웨이드 H. 헤이즐립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