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랜도 워드 Orlando Ward | |
출생 | 1891년 11월 4일 |
미국 미주리주 메이컨 | |
사망 | 1972년 2월 4일 (향년 80세) |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 |
복무 | 미합중국 육군 |
최종 계급 | 소장 |
복무 기간 | 1914~1953 |
학력 | 미국육군사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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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미주리주 메이컨에서 태어났고 191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기병 소위로 임관했다.[1] 제9기병연대 E중대 소대장으로 경력을 시작했고 베라크루스 원정에 참가했다. 이 당시 전투를 겪으며 기병의 한계를 깨닫고 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 포병으로 전과했고 제10포병연대에 배치되었다.1917년 미국 원정군 제3보병사단 소속으로 서부전선에 투입되어 제2차 마른 전투에 참가해 공을 세워 은성훈장을 수여받았다. 전후 위스콘신 대학교 학군단 훈육관으로 복무했고 포트 스틸에 있는 육군포병학교 관측반 교관으로 재직했다. 육군전쟁대학을 수료했으며 1935년 중령으로 진급해 제83포병연대 1대대장으로 부임했다. 이후 전쟁부에서 참모로 일했다.
1939년부터 육군참모총장 조지 C. 마셜의 참모로 임명되었고 월터 베델 스미스, 오마 브래들리와 함께 일했다. 1940년 대령으로 진급했고 1941년 전시계급 준장으로 진급해 제1기갑여단장이 되었다. 본격적인 전쟁이 발발했고 1942년 소장으로 진급해 브루스 매그루더의 후임으로 제1기갑사단장으로 임명되었고 북아일랜드에서 영국군과 훈련했다.
횃불 작전으로 북아프리카에 상륙했으나 튀니지에서 독일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고전했고 카세린 협곡 전투에서 많은 피해를 입고 퇴각했다. 이에 참관하고 있던 영국군 중장 케네스 앤더슨은 워드와 군단장 로이드 프레덴달과 함께 묶어서 비판했고 미군은 영국군에게 한동안 겁쟁이라는 인식이 박혔다. 이후 프레덴달이 보직해임되고 조지 S. 패튼이 부임해 워드를 비롯한 장병들을 닦달했으며 마크나시 전투에서 주도적으로 야습을 했으며 앞장서 지휘하다가 부상을 입었다. 이 공으로 퍼플하트, 은성훈장, 수훈십자장을 수여받았다.
이후로도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활동하다가 어니스트 N. 하먼에게 인수인계한 후 본국으로 돌아가 기갑학교, 포병학교장을 역임하다가 로더릭 R. 앨런의 후임으로 제20기갑사단장으로 임명되어 유럽전선에 투입되었고 뮌헨을 점령했다. 종전을 맞이하고 존 W. 레너드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제5군단장으로 영전했다.
1949년 한국에 진주한 제6보병사단장으로 있었으며 1953년 퇴역했다. 콜로라도주 덴버에 거주하다가 1972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