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 앨런 Terry Allen | |
본명 | 테리 데라메사 앨런 시니어 Terry de la Mesa Allen Sr. |
출생 | 1888년 4월 1일 |
미국 유타주 포트 더글러스 | |
사망 | 1969년 9월 12일 (향년 81세) |
미국 텍사스주 엘패소 | |
복무 | 미합중국 육군 |
최종 계급 | 소장 |
복무 기간 | 1913~1946 |
학력 | 미국육군사관학교중퇴 미국가톨릭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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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유타주 포트 더글러스에서 스페인계 군인의 아들로 태어났고 남북 전쟁의 게티즈버그 전투당시 제39뉴욕의용보병연대의 스페인계 중대를 지휘했던 카를로스 알바레스 데라메사의 후손이다. 1907년 육군사관학교를 입학했으나 2학년 당시 수학 성적이 저조해 퇴교되었고 이후 미국가톨릭대학교에 진학해 학위를 수료 후 1913년 기병 소위로 임관했다.제14기병연대에서 복무했고 1916년 중위로 1년만에 대위로 진급했다. 미국이 1차 대전에 개입하자 징병관으로 있다가 미국 원정군 제90보병사단 제358보병연대 3대대 소속이였으며 소령으로 진급후 생미이엘 공세에 참가해 야습에 성공해 공을 세웠다.
전후 은성훈장, 퍼플하트를 수여받았고 1920년 미국으로 귀국해 본 계급인 대위로 환원되었으며 제61기병사단을 거쳐 1920 안트베르펜 올림픽 폴로 국가대표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육군기병학교 OAC, 지휘참모학교, 보병학교를 수료했고 조지 C. 마셜을 보좌했다. 이후 육군전쟁대학을 수료하고 1935년 중령으로 진급했다. 기병학교 교관으로 있었으며 1940년 준장으로 진급해 제3기병여단장이 되었다. 1941년 제2기병사단장으로 임명되었으나 주방위군으로 편성된 제36보병사단장으로 임명되었다.
1941년 미국이 세계 대전에 참가하고 제1보병사단장이 되었고 휏불 작전을 시작으로 북아프리카 전역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로이드 프레덴달의 실책으로 카세린 협곡 전투에서 피해를 입는다. 하지만 이후의 전투에서 2000명의 사상자를 냈다. 또한 무리한 전투로 인해 횃불 작전 종료이후 오랑으로 퇴각해 재편성해야 했다.
시칠리아 전역을 준비했지만 계획을 브리핑하던 도중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오마 브래들리, 시어도어 루스벨트 주니어등 여러 장성들이 앨런의 지휘에 대해 비판적으로 봤고 특히 브래들리는 굉장히 비판적으로 앨런에 대해 평했다. 장성들의 예상대로 시칠리아 전역 당시 졸전을 펼쳤고 이에 브래들리는 자신의 직권으로 사실상 앨런을 보직해임하고 본인이 눈도장을 찍은 클래런스 R. 휴브너를 제1보병사단장으로 임명했다.
이후 길버트 R. 쿡의 후임으로 제104보병사단장으로 임명되어 본토에서 훈련시키고 네덜란드 전역을 거치고 독일 본토까지 진군했으며 파더보른 전투에서 독일군을 상대했다. 1946년 퇴역했으며 엘패소 보험회사의 대표로 있다가 1967년 아들인 테리 앨런 주니어 중령이 베트남 전쟁의 옹탄 전투에서 전사하자 건강이 악화되었고 1969년 자연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