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7 15:59:51

서울신문

서울신문사에서 넘어옴
파일:Document_Protect.svg   편집 보호된 문서입니다.
문서의
ACL 탭
을 확인하세요.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대한민국의 10대 중앙 종합 일간지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8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5px -13px"
파일:서울신문 제호.svg 파일:조선일보 제호.svg 파일:동아일보 제호.svg 파일:경향신문 제호.svg 파일:한국일보 제호.svg
파일:중앙일보 제호.svg 파일:한겨레 제호.svg 파일:국민일보 제호.svg 파일:세계일보 제호.svg 파일:문화일보 제호.svg
※ 창간 일자순
}}}}}}}}} ||


파일:호반건설 CI.svg파일:호반건설 CI_white.svg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그룹사
호반건설 | 호반산업 | 호반프라퍼티 | 호반호텔앤리조트 | 호반TBM | 호반USA | 호반자산개발 | 스카이리빙 | 티에스주택 | 티에스개발 | 티에스건설 | 티에스자산개발 | 티에스리빙 | 대한전선 | 대아청과 | 삼성금거래소 | 아브뉴프랑 | 코너스톤투자파트너스 | 플랜에이치벤처스 | 이비뉴스 | 서울신문
}}}}}}}}} ||
파일:서울신문 제호.svg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fff><tablebgcolor=#fff> 파일:서울신문 아이콘.svg주식회사 서울신문사
株式會社 서울新聞社
The Seoul Shinmun
}}} ||
<colbgcolor=#f04400><colcolor=#ffffff> 국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창간 1904년 7월 18일 대한매일신보 ,([age(1904-07-18)]주년),
설립 1945년 11월 22일 ,([age(1945-11-22)]주년),
소재지 본사
서울특별시 서초구 양재대로2길 22-16 (우면동)
광화문 사옥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24 (태평로1가)
대표자 곽태헌
임원진 회장 김상열[1]
부회장 조억헌
발행·인쇄인 · 대표이사 사장 곽태헌
상무 이종락
상무 이호정
업종명 신문 발행업
상장 여부 비상장 기업
임직원 438명 (2021년 12월)
매출액 832억 원 (2022년 연간)
영업 이익 80억 원 (2022년 연간)
순이익 52억 원 (2022년 연간)
최대 주주 서울미디어홀딩스·호반건설 (지분 47.58%)[2]
사이트 <colbgcolor=#f04400><colcolor=#fff> 파일:서울신문 아이콘.svg
소셜 미디어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네이버 포스트 아이콘.svg | 파일:네이버TV 아이콘.svg | 파일:카카오스토리 아이콘.svg
유튜브 링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구독자 21.2만 명[A]
조회 수 223,501,117회[A]
가입일 2012년 2월 7일

1. 개요2. 특징3. 성향4. 역대 사시
4.1. 1965~1998년: (구)서울신문의 다짐4.2. 1998~2003년: 대한매일의 다짐4.3. 2004년 이후: (신)서울신문의 다짐
5. 사옥6. 지배 구조7. 역사
7.1. 대한매일신보 시대7.2. 매일신보 시대7.3. 서울신문 시대
7.3.1. 6.25 전쟁 도중: 수복신문과 진중신문 발행
7.4. 민주화 이후 현황7.5. 호반건설의 인수
8. 관련 문서9. 관련 문헌10. 역대 임원
10.1. 명예사장10.2. 회장10.3. 부회장10.4. 대표이사 사장10.5. 부사장10.6. 콘텐츠본부장
11. 주요 간부
11.1. 주필11.2. 논설주간11.3. 논설위원실장11.4. 수석논설위원11.5. 논설고문11.6. 편집 책임자11.7. 편집위원실장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조간 종합 일간 신문.

1904년 7월 18일에 창간된 구한말의 대표적 민족지 대한매일신보가 기원으로, 한국에서 현재 발행되고 있는 신문 중에서는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과거에는 오랫동안 기획재정부가 대주주로 있던 '준공영' 성격의 언론사였으나, 2021년 하반기에 호반건설로 대거 지분이 매각되어[5], 호반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노조는 민주노총 언론노조 소속이다.

2. 특징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신문사로 1985년부터 37년 동안 한국프레스센터 건물을 소유했다. 한때 그래도 재정상태는 튼튼하다는 평이 많았지만, 신문 산업이 어느덧 완전히 사양산업이 된지라, 2010년대 들어 여러 부침을 겪었고, 결국 2021년에 호반건설에 인수되었다. 1970~80년대를 주름잡은 그 유명한 선데이 서울을 비롯하여 퀸, TV 가이드 한국어판[6][7], 뉴스피플, 파르베 등 많은 잡지가 서울신문 소유였지만 <퀸>을 빼고 모두 폐간되었으며, 잡지 출판을 담당하던 매거진국(舊 출판편집국)은 1999년 '스포츠서울21' 분사 시 따라가다가 2002년에 '매거진플러스'로 독립했다. 그래서 전술한 <퀸>도 매거진플러스가 발행주체로 되어있다. 또한 2007~2008년까진 국정홍보처의 정책홍보 잡지 <코리아플러스(現 공감)>의 외주제작도 맡았다.

과거에는 정부가 운영하던 공기업이었으나 2002년 1차 민영화 이후 최대 주주가 본사 사원주주 조직인 우리사주조합(39%)으로 바뀌었고 그 외에는 KBS, 기획재정부, 포스코 등이 나누어 지니고 있었다.[8] 그러다 2021년부로 호반건설의 자회사로 완전 편입되었다. 과거 2000년대 초반까지 오랫동안 정부기관지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탓인지, 공무원 시험등 국가에서 주관하는 시험들 대부분은 이 신문을 거쳐 민간에 발표되는 경향이 있다. 당시만 해도 공무원 시험이나 고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서울신문의 주요 공고란을 눈여겨 보곤 했지만, 요즘은 인터넷 등을 통해 전부 공지가 뜨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비교 우위는 없어진 상황이다. 또한 과거 신문의 성격 때문인지 행정부처의 관계(官界) 동향, 공직사회 부문을 다루는 기사의 비중이 높았으며, 다른 일간지에 비해 공무원 사회에 대한 관심과 정보력이 남다르다는 평가도 있긴 했지만, 세종시로의 행정 부처 이전 이후에는 모든 언론이 다 비슷한 상황이므로 딱히 과거와 같은 서울신문의 메리트는 없어졌다.

서울신문에서 창간했던 스포츠서울의 경우 1999년 12월 자회사로 분사된 이후 2007년 5월 서울신문에서 보유한 주식을 모두 매각했다. 그러나 2016년 현재까지도 자매지 관계는 유지하고 있다. 2009년 케이블 PP업체 성공TV와 공동 경영 협약을 맺어 '서울신문STV'로 출범하여 지분 30.49%를 가졌으나, 2020년 제휴관계를 끊고 지분까지 넘기면서 사명도 '서울STV'가 되었다. 해당 기업은 스서 외에 하이라이트TV, 굿모닝경제(舊 한국정책신문) 등을 보유하고 있다.

최우수 교정공무원을 뽑는 교정대상과 우수 청년농민을 뽑는 농어촌청소년대상을 1981년부터 시상해오고 있으며, 1959년부터 2003년까지 패왕전이라는 프로바둑기전을 개최한 바 있다. 2022년에는 패왕전을 여자 세계대회로 부활시킨 세계 여자 바둑 패왕전을 창설했다. 2002년부터 서울 상암에서 '서울신문 마라톤(舊 서울신문 하프마라톤)'을 매년 개최 중이다.

ABC협회에서 발표한 2019년 기준 서울신문의 유료부수는 약 11만 7천여 부 정도라고 하는데, 일단 과거 오랫동안 중앙정부의 부처인 기획재정부가 대주주로 있던 신문인지라 지금도 전국의 시청, 구청, 군청, 동사무소 등에 '홍보지', '계도지' 등의 명목으로 가장 많이 구독되고, 통반장 및 이장들에게도 가장 많이 배포되는 있는 신문이다. 2022년 기준, 이 계도지 명목으로 서울에서만 연간 약 65억 원 가량의 구독료가 서울신문으로 유입된다고 알려져 있다.

서울신문의 매출을 분석해 보면, 과거 10여년간 명목상의 신문 관련 매출 변동은 거의 없거나 되려 약간 늘었지만,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 실질 매출로는 10% 가량 감소하였다. 2013년 서울신문 매출 890억 중 510억, 전체매출의 58.2%가 신문관련 매출이었으나, 매출이 700억대로 감소한 2018년에는 전체 매출 787억 중 신문관련 매출이 559억으로 매출의 71%를 차지하고 있다.[9]

2021년에 들어서 3대 주주인 호반건설이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의 지분을 모두 인수하는 조건으로 협상에 들어가더니, 9월에는 지분의 인수가 최종 확정되었다. 이로써 호반건설이 서울신문 지분의 절반 가량, 의결권의 절반 이상을 단독으로 보유하게 되어, 서울신문이 완전히 호반건설의 자회사로 편입되었으며, 기존의 기재부 지분으로 인한 '준공영 신문'이라는 정체성도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온전히 민간 언론사가 된 이상, 이제는 기획재정부가 굳이 언론사 지분을 보유할 이유가 없어지게 되므로, 남아있던 일부 기재부 소유의 지분까지도 아예 완전히 매각될 가능성도 있다.

3. 성향

과거 군사 독재정부 시절에는 사실상 정권의 기관지 역할을 했고[10],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정부의 정치적 성향과 정책 방향에 따라 논조가 급격히 바뀌는 일이 많았다. 1992년 대선 국면에서는 노골적으로 당시 집권 여당인 민주자유당김영삼 후보를 지지하였고, 이후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정부로 정권 교체가 된 이후에는 과거 독재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했던 서울신문의 과거를 반성한다는 공개 반성문을 쓰기도 했다. #

200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 중반까지는 이명박 정부박근혜 정부의 입김 때문에 과거에 비해 논조가 상당히 보수화되기는 했으나, 기자단 차원의 끈질긴 요구의 결과로 '편집국장 임명동의제'가 도입되었던 덕에 조중동보다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덜 강경한 성향을 보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전반적으로 문재인 정부에 별로 호의적인 논조를 보이지는 않았는데, 다만 2018년 남북 대화 무드에 적극 동조하며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지했고, 2019년 패스트트랙 정국에서는 협상을 촉구하면서도 개정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지지하며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의 정책의 손을 들어주긴 하였다. 그러나 또 반대로 기재부 소유 서울신문 지분 매각 논의 국면에서는 지분 매각을 극렬히 반대하며 정부와 크게 각을 세우며 충돌하기도 했다. 어쨌든 한동안 이 즈음에는 보수 성향도 진보 성향도 아닌, 중도 성향의 신문이라고 분류되면서 '중도지' 중의 하나로 묶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2021년 하반기에 들어서는 정부 소유 지분 매각과는 관계 없이, 갑자기 임직원들의 우리사주조합 소유 지분을 호반건설로 매각하는 협상이 타결되며, 호반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이 이후로는 점점 보수적 논조의 기사와 사설 및 칼럼이 늘어났으며, 경제신문 비슷하게 재벌 대기업 친화적 논조와 모기업인 호반건설 홍보성 기사도 지면에 많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부터는 확고하게 보수 우파 논조로 방향을 틀었다는 평이 일반적이다. 심지어 사설과 칼럼의 논조가 급격히 우경화하여, 제도권 언론중 가장 정치적으로 보수 우파적인 조선일보와 유사한 수준으로 변화했을 정도이다.

또한 2022년 8월에 벌어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수립 논란 때는 법원의 가처분 판단 이후, 심지어 조중동과 같은 보수 신문들마저도 국민의힘을 비판하는 사설을 썼지만, 유독 서울신문만은 '새 비대위 출범은 불가피한 조치'라며 국민의힘을 두둔하는 사설을 썼다. # 그리고 2022년 9월에 벌어진 윤석열 미국 순방 중 욕설 논란 때는 보수언론인 동아일보 마저도 '사과할 건 사과해야 한다'고 사설에 썼지만, 이번에도 조선일보와 서울신문이 나란히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며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 심지어 10월 4일에 발생한 강릉시 현무-IIC 미사일 낙탄 사고 때는 주요 일간지들이 사고원인을 철저히 규명하라고 촉구한 가운데, 조중동과 같은 다른 보수 언론에서도 주장하지 않은 문재인 정부 책임론을 서울신문만이 사설에서 혼자 주장했다. # 또한 2022년 10월 25일에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예산안 시정 연설에 대해 노골적인 칭찬을 하는 사설을 발행하여 윤비어천가라는 지적을 받기까지 했다. # 또한 이태원 압사 사고를 두고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기본소득당 등 야 3당이 국정조사 계획서를 공동 제출하자, 서울신문은 여당인 국민의힘을 옹호하고 야당을 비난하는 사설을 실었다. #

이러한 논조의 보수 우경화는 데이터로도 확인이 된다. 지식콘텐츠 스타트업 언더스코어와 미디어오늘은 2019년 1월1일부터 2023년 5월10일까지 신문사의 사설과 칼럼 성향의 추이를 파악했다. 조선일보중앙일보사설, 칼럼한겨레경향신문사설칼럼을 각각 보수와 진보 텍스트로 분류한 다음, 각 신문의 텍스트들을 분석해 봤더니, 서울신문의 논조 우경화가 가장 두드러진 수준으로 도출되었다고 한다. 특히 서울신문은 2021년 말을 기점으로 성향 변동 폭이 크게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는 호반건설이 서울신문을 인수한 시점과 정확히 맞물린다.#

이런 신문 논조의 급격한 우경화는 사주의 의중에서 기획된 것으로 보이는데, 일례로 2022년 6월에는 서울신문 기자 56명이 공동 성명을 내며 사주의 편집권 개입에 대해 성토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성명서에 따르면, 호반그룹의 김상열 회장이 서울신문 사원과의 간담회에서 "칭찬하는 신문"을 만들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이미 이러한 징조는 호반건설로의 인수 과정에서 예고되었다는 평이 많다. 실제 신문 인수협상 과정에서,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 측에서 요구한 신문 편집권 독립 관련 요구들을 호반건설 측이 대부분 거부했다고 한다.# 인수 이후 신문사 경영 사정은 과거보다 훨씬 나아졌지만, 아니나다를까 사주 측에 의해 신문의 편집권이나 논조가 휘둘리게 되었다.[11] 실제 호반건설로의 인수 이후, 호반건설 회장의 동정 보도나 호반건설 홍보성 기사가 서울신문의 지면 및 온라인 보도에 본격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1 #2

심지어 호반건설의 비리나 전횡을 비판하던 서울신문의 과거 기사 시리즈가 인수 이후 아예 삭제되기까지 했다. 이 호반건설 관련한 서울신문의 기사 시리즈는 호반의 서울신문 인수 직전인 2021년에 당시 신문사의 '6인 협의체' 차원에서[12] 삭제가 결정되었던 것인데, 신문사 인수에 대한 협상용 사전 정지작업 이었다는 평이 일반적이다. 이 기사 삭제 사태는 호반건설로의 인수 이후 기자단 내부에서 "(기사를 삭제한 우리들이)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는 평가가 터져나오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13]#

당시 편집국장은 정치부장과 지면 편집 방향이 충돌하자, 인사 발령을 받은지 19일 밖에 되지 않은 정치부장을 일방적으로 경질하고, 정직 1개월 징계를 처분하는 등 신문사 편집국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이리저리 언론계를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했다.#[14]

4. 역대 사시

4.1. 1965~1998년: (구)서울신문의 다짐

  • 나라의 이익을 앞세운다
  • 정치를 바른길로 이끌어준다
  • 경제를 뻗게 하는 길잡이가 된다
  • 사회를 밝게 하는 횃불이 된다
  • 문화를 꽃피우는 샘터가 된다

4.2. 1998~2003년: 대한매일의 다짐

  • 공공이익을 앞세우는 신문
  • 국민복지에 앞장서는 신문
  • 민족화합을 앞당기는 신문
  • 2000년대에 앞서가는 신문

4.3. 2004년 이후: (신)서울신문의 다짐

  • 바른 보도로 미래를 밝힌다
  • 공공이익과 민족화합에 앞장선다

5. 사옥

파일:external/aha114.co.kr/A001_0.jpg

과거 본사 사무실은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의 한국프레스센터에 위치한 바 있으며, 현재의 건물은 1984년 12월에 완공되었다. 저 건물은 한국언론진흥재단,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공익광고협의회) 등이 입주하고 있다. 2021년 본사가 호반건설에 매각된 이후 2022년 한국프레스센터 재건축 추진을 위해 9월 30일부터 서초구 우면동 호반파크로 이전되었고, 기존 사옥은 취재/제작지원 업무만 하도록 했다. #

6. 지배 구조

주주명 보유 주식 수 지분율
기획재정부 2,535,973 30.49%
서울미디어홀딩스[15] 2,153,088 25.88%
호반건설 1,614,000 19.40%
자사주 1,078,705 12.97%
한국방송공사 672,164 8.08%
우리사주조합 190,953 2.30%
소액주주 73,150 0.88%
총계 8,318,033 100.00%

호반건설이 서울신문 인수를 완료한 2022년 1분기 기준, 호반건설과 호반건설의 자회사인 서울미디어홀딩스가 지분 합계 45.29%, 의결권 기준 합계 53.4%를 점유해 최대 주주이자 경영권을 보유한 소유주가 됐다.

7. 역사

7.1. 대한매일신보 시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대한매일신보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904년 7월 18일에 창간된 대한제국 시대의 신문이다. 영국인 어니스트 베델이 양기탁 등 민족계몽 계열 독립운동가들의 지원을 받아 세웠다.

7.2. 매일신보 시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매일신보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910년 8월 30일부터 1945년 11월까지 조선총독부의 기관지로 존재했던 시대. 자세한 내용은 매일신보 항목 참고.

7.3. 서울신문 시대

8.15 광복 후 한동안 좌익계열의 사원자치위원회가 운영하다가 미군정과 갈등을 빚어 1945년 11월 10일 군정 당국이 정간처분을 내렸다. 그후 11월 22일에 위창 오세창 사장, 하경덕 부사장, 성재 이관구(1898~1991) 주필, 홍기문(1903~1992) 편집국장[16] 등의 경영진과 필진을 새로 구성하여 '서울신문'이란 이름으로 변경하고 속간하였다. 지령은 대한매일신보와 매일신보를 모두 계승하여 1만 3738호로 발행하였다.

이후 여러 번 기사내용을 시비로 공보처의 간섭과 감독을 받게 되어 1950년대에는 이승만 정권의 어용신문으로서 자유당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다가 4.19 혁명이 일어나면서 시위대들이 사옥과 시설을 홀랑 불태워 버려 수많은 희귀 자료들이 손실되었고, 이승만 퇴진 이후 허정 과도정권기 들어 전 한국일보 주필인 석천 오종식(1906~1976)이 사장직에 부임했으나, 당연하게도 이후 독자층이 대거 이탈하면서 재정난 크리에 빠져 1961년 5월 9일 휴간되었다. 5.16이 일어난 후인 12월 22일에 주 36면 석간 단간제로 다시 속간되었고 박정희, 전두환 등 군사 독재정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나팔수 노릇을 계속했다. 매일신보 시절에 버금가는 흑역사 시절.

1959년 3월 23일에 갑자기 대한매일신보매일신보로 이어지던 지령을 폐기했다.

1998년 11월 11일에는 대한매일신보 지령은 다시 추가했다. 그러면서도 친일 기관지 시절이던 매일신보 시절은 자신들 역사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인지 매일신보 지령만 빼고 계산하는 괴상한 계산법을 선보였다. 일종의 친일 역사 세탁. 2020년 현재까지도 이 희한한 지령 계산법을 쓰고 있는 중이다.

한겨레보다 앞서 한글전용을 실행한 전력이 있다. 1958년과 1968년에 한글전용판을 발행하였지만 호응이 시원치 않아서 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국한문혼용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신문 발행에 있어서 글자배열이나 편집체제, 문장 등을 한글판에 맞도록 연구하는 등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20년 후 창간하는 한겨레의 한글전용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셈.

또 1983년부터 국내 일간신문 최초로[17] 신문 제작방식의 주류인 납활자판을 버리고 컴퓨터 제작 시스템(CTS, Computerized Typesetting System)을 도입하여 프레스센터 준공 직후인 1985년 신정부터 실시해 타 언론사보다 먼저 신문 제작의 전산화를 꾀하였다. 이를 1988년 한겨레신문, 국민일보, 1989년 세계일보, 1992년 조선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1993년 한국일보, 1994년 동아일보가 뒤따르게 되었다.

7.3.1. 6.25 전쟁 도중: 수복신문과 진중신문 발행

수도 서울이 6.25 전쟁의 전란에 휩싸여 있을 때 당대의 메이저 신문사 중 유일하게 서울에서 신문을 발행한 역사가 있다. 북한의 기습 이후 다른 신문사가 모두 피난을 가는 와중에도 직원들은 끝까지 서울에 남아서 전시 상황에 관한 호외를 찍어내다 납북을 당하기도 하였으며, 서울 수복 때에도 가장 먼저 서울로 돌아와서 수복신문이라는 제호로 신문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이후 중공군의 개입으로 1.4 후퇴가 진행되면서 다른 신문사들이 서울을 완벽히 재수복하기까지 모두 수원이나 영남권 등의 후방에서 신문을 찍어내고 있을 때, 중공군의 공세가 한창이던 1951년 4월에 오히려 다시 서울로 선발대를 보내며 진중신문이라는 제호로 신문을 발간하였다. 이때 전시라 신문 찍어내는데 전기를 쓸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일일이 손으로 평판 인쇄(!)를 했다고 한다.

7.4. 민주화 이후 현황

1987년 6월 항쟁6.29 선언, 노동자 대투쟁은 서울신문의 역사를 전환케 했다. 1988년 4월에 권영길 외신부장을 중심으로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1989년 9월 사원지주제, 사후평가제, 제작 3개 국장 임명동의제 관철 등을 목표로 26일간 파업을 벌여 부분적으로 관철시켰다. 1995년에는 '서울신문 뉴스넷'이란 이름으로 인터넷신문 서비스를 개시하고 1996년부터 가로쓰기로 바꾸었다. 1997년에는 세계 최초로 구동축이 없는 '타워형 샤프트리스 윤전기'를 도입해 가동시키고 전면컬러 제작이 가능한 '5세대 CTS'를 가동시켰다.

군사 독재 정부 시절, 중앙일간지 가운데서는 친정부 성향 관영 보수 언론으로는 사실상 경향신문과 쌍벽을 이루었으며,[18] 이는 노태우 정권 때도 이는 이어져서 1990년 경향신문이 한화그룹에 인수된 이후부터는, 사실상 홀로 독보적인 정부 기관지의 역할을 하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편파보도로 까였던 조선일보를 이 점에서는 안드로메다급으로 능가했을 정도였다. 일례로 1992년 대선 국면 당시 서울신문 송정숙 논설위원은 자신의 기명 칼럼에서 "YS가 우리에게 미소를 머금게 한다"는 식의 주장을 늘어놓았는데, 이러한 노골적인 YS 찬양때문에 "YS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라면서 자사 기자들에게도 까였을 정도였다. 편집국이 뒤집어질 정도로 당시 이 사태가 워낙 엄청났던 터라, 수도권에 발송된 인쇄 초판에만 게재되었고, 지방판에서는 아예 지면에서 삭제되는 일까지 벌어졌다.[19] 뿐만 아니라 노골적으로 야당을 공격하고 여당쪽을 두둔하는 보도를 일삼았다. "계도지"라고 해서 서울신문을 관공서나 통장집에서 정부예산으로 구독했고, 이렇게 정부예산으로 구독을 해주니 논조가 어떨진 뻔한 내용. 뭐 그렇긴 해도 문민정부 이후로는 노조도 있어서인지 노태우 정권 이전보다는 논조가 완화되기는 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인 11월 6일에는 <서울신문 영욕의 53년 나래 접으며>라는 제목으로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한답시고 저런 칼럼을 실은 뒤, 동월 10일자부터 제호를 대한매일신보의 후신을 자처하는 의미에서 사명은 '(주)대한매일신보사', 제호는 '대한매일'로 각각 변경하고 도메인도 'www.kdaily.com'으로 바꾸면서 매일신보 기간을 제외한[20] 대한매일신보의 지령을 합산하기 시작했다. 이후엔 김대중 정권 입맛에 맞춘답시고 갑자기 진보 성향의 매체로 변신하여 한동안 한겨레, 경향신문과 함께 '한경대'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런 상향은 노무현 정부 때도 계속 이어졌으니, 결국 어느 정부가 들어서건 친정부 언론이었던 셈.

1999년에는 스포츠서울 부문을 '스포츠서울21(주)'로 독립시켰고, 2000년부터 편집국장 선출방식을 직선제로 바꾸고 2002년부터 본사 사원들로 구성된 우리사주조합이 지분을 인수해 대주주가 되어 사장 선출방식을 공모제로 바꾸었다. 2004년 1월 1일을 기해 다시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환원했지만 지령은 대한매일신보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계산하고 있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출범 이후에는 다시 예전의 보수 우파 성향 정부 기관지 수준으로 후퇴할까 싶었지만, 2009년 이동화 사장 취임 즈음에는 기자단의 끈질긴 요구로 인해 편집국장 선출 방식이 9년만에 임명동의제로 바뀌게 되면서, 정부 비판 기사나 칼럼도 간혹 나오는 등 나름 독립적인 색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긴 하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예전 만큼의 강경 보수는 아니어도 어디까지나 온건 보수 우파 성향 신문으로 분류되긴 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2018년부터는 한겨레 사장 출신인 고광현이 사장으로 임명되면서 다시 진보 성향으로 논조가 바뀌나 했지만, 이내 문재인 정권에 대한 비판으로 사설과 칼럼을 자주 쏟아내면서, 진보적 논조와는 뚜렷하게 선을 긋는 듯했다.

2010년에는 CBS, 머니투데이 등과 함께 보도전문채널 사업 신청서를 제출하였으나, 연합뉴스에 밀려 탈락되었다. 해당 기사

2017년부터 이덕일에게 연재 지면을 주면서 논란이 되고 있기도 하다. 이덕일은 해당 지면에서 최소한의 사료 검증도 안된 자신의 망상을 마음껏 펼치고 있는 중이다.

2018년 7월부터는 토요일자 신문을 발행하지 않는다. 주52시간 노동시간 단축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종합일간지 신문사[21] 중 최초로 주 5일 발행을 하게 되었다. # 대신 평일판의 지면수가 늘어날 예정이다.

라임 사태의 핵심인물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전 회장이 야당 정치인과 검사에게 로비를 했단 주장이 담긴 김 전 회장의 자필편지를 단독 입수해 공개했다.#

2022년에는 조직개편에 따라 편집부문을 '콘텐츠본부'로 확대 개편한 후, 기존의 편집국을 취재국의 위치로 낮추고 신문국, 뉴미디어국까지 새로 만들었다.#

7.5. 호반건설의 인수

2019년 6월 포스코의 지분전량(19.4%)을 호반건설이 매입했다. 이에 서울신문사 구성원들은 언론을 민간건설 자본에 넘기지 않겠다며 ‘1대 주주 지위 회복’을 위해 노력중이다. #1 아울러 호반건설의 언론사 대주주로서 가져야 할 도덕성 여부를 검증하는 측면에서 호반건설의 편법 승계 의혹을 취재하였다. #2 또한 전 지분 소유주였던 호반건설과 포스코를 정면비판하는 기사를 헤드라인으로 내보냈다.#3

2020년 들어 정부에서 YTN과 서울신문의 지분 매각을 검토하자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은 기재부 주식을 인수하여 명실상부한 독립언론으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앞서 호반건설은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과 보유 중인 주식을 매각하고 우리사주조합의 동의 없이 추가매입을 하지 않으며, 우리사주조합 활동을 지지한다는 양해각서를 체결, 사실상 서울신문 지분에 대한 포기 의사를 밝혀와 서울신문이 독립하는 데에 걸림돌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우리사주조합은 기재부 주식을 인수할 수 있는 자금이 없었고, 수백억원에 달하는 인수자금을 사원들이 대출 받고 10년간 원리금을 상환하겠다는 인수 계획을 발표, 투표에 부쳤으나 부결되고 만다.

이에 호반건설은 우리사주조합에 지분인수 의사를 타진하게 되고, 우리사주조합 총회에 부의, 투표 결과 가결되어 우리사주조합 지분이 호반건설에 매각된다.

2년 전인 2019년에 호반건설이 포스코 보유 서울신문 지분 19.4%를 매입했을 때 서울신문 내부에서 극렬한 반대를 보였던 것에 완전히 반대되는, 갑작스런 지분 매각 협상 착수였다. 이 협상이 타결되면 자동적으로 서울신문의 의결권 과반이 넘는 지분을 확보하여, 기재부 지분에 관계 없이 그야말로 확고한 지배 주주에 등극하게 된다.

2021년 10월 8일 호반건설이 서울신문을 인수하기로 최종 확정되었다. 기사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 지분 29%를 추가 인수하여 호반건설은 서울신문의 지분율 52%를 장악, 단독 과반수를 점한 최대주주에 오르게 된다. 호반건설은 서울미디어홀딩스를 설립하여 서울신문, 전자신문, EBN 3사를 토대로 종합미디어그룹으로 거듭나려 하고 있다.

2022년 1월 16일 편집국장이 공지를 통해 호반건설의 인수에 맞서 특별취재팀을 꾸려 작성한 호반대해부 관련 기사를 삭제한다고 공지했다. '상생을 위한 판단'이라는 명분 아래 소속 기자들이 몇 달간 취재한 기사를 하루 아침에 삭제한다는 점에서 비판 여론이 뜨겁다. 미디어오늘의 보도 이후 널리 알려졌으며 전국언론노조도 성명 발표를 통해 비판했다.

한편 KBS의 시사고발 프로그램인 시사기획 창이 이 사건에 대한 고발 보도를 '누가 회장님 기사를 지웠나'라는 제목으로 2022년 4월 5일에 방송할 예정이는 사실이 알려지자, 호반건설 측이 4월 4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 해당 편에 대한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에 4월 5일에 시사기획 창의 유튜브 공식 계정은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해 미디어오늘의 기사 링크를 첨부하고 본방사수를 언급하며 대놓고 홍보를 했다. 당연히 가처분 신청은 기각되었고, 해당 방송은 정상적으로 방영되었다. 해당 방영분

2022년 7월에는 주니어급 기자 5명이 한겨레신문 경력직으로 이직했다. 한 기수가 통으로 날아간 것이라고 한다. # 심지어 2022년 하반기 퇴사자는 무려 20명에 달했으며,# 호반건설 인수 후 약 1여년 간의 퇴사자를 모두 합쳐 보면 무려 33명에 달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22]

8. 관련 문서

9. 관련 문헌

10. 역대 임원

10.1. 명예사장

10.2. 회장

이승만 정권기 시절에는 공보실장이 회장직을 겸했다.

10.3. 부회장

  • 조억헌 (2022~ )

10.4. 대표이사 사장

대한매일신보와 매일신보 시절 사장 목록은 해당 항목 참조. 11~19대까지는 한국신문협회 회장을 자동 겸임하였다.
  • 초대 오세창 (1945)
  • 2대 하경덕 (1945~1949)
  • 3대 박종화 (1949~1954)
  • 4대 정등운 (1954~1956)
  • 5대 장기봉[24] (1956)
  • 6대 김형근[25] (1956~1958)
  • 7대 김법린 (1958~1959)
  • 8대 손도심 (1959~1960)
  • 최정우 (1960, 불취임)
  • 9대 오종식 (1960~1962)
  • 10대 양순직 (1962~1963)
  • 사장대행 김창엽 (1963~1964)
  • 사장대행 이상조 (1964)
  • 11대 김여원[26] (1964~1965)
  • 12대 장태화[27] (1965~1972)
  • 13대 신범식 (1972~1974)
  • 14대 김종규[28] (1974~1980)
  • 15대 문태갑 (1980~1984)
  • 16대 이우세[29] (1984~1986)
  • 17대 이진희 (1986~1987)
  • 18대 이광표 (1987~1988)
  • 19대 서기원 (1988~1990)[30]
  • 20대 신우식 (1990~1992)
  • 21대 윤형섭 (1992~1993)
  • 22대 이한수 (1993~1995)
  • 23대 손주환 (1995~1998)
  • 사장대행 김문진 (1998)
  • 24대 차일석[31] (1998~2001)
  • 25대 전만길 (2001~2002)
  • 26대 유승삼[32] (2002~2003)
  • 27대 채수삼[33] (2003~2006)
  • 28대 노진환 (2006~2009)
  • 29대 이동화 (2009~2012)
  • 30대 이철휘 (2012~2015)
  • 31대 김영만 (2015~2018)
  • 32대 고광헌[34] (2018 ~ 2021)
  • 33대 곽태헌 (2021.10.~ )

10.5. 부사장

  • 하경덕 (1945~1946)
  • 홍천 (1961)
  • 김창엽 (1963~1964)
  • 이상조 (1964~1965)
  • 윤흥렬[35] (1999~2002)
  • 김행수 (2002~2003)
  • 안용수 (2015/2018)
  • 윤여권 (2015~2018)

10.6. 콘텐츠본부장

  • 이종락 (2022~, 상무)

11. 주요 간부

11.1. 주필

  • 이관구 (1945~1946/1946~1947)
  • 홍기문 (1946)
  • 김무상 (1947)
  • 이건혁 (1948~1949)
  • 오종식 (1949~1952)
  • 정인봉 (1954~1956)
  • 전홍진 (1956~1958)
  • 김영진 (1958~1960)
  • 주원 (1964~1966)
  • 이종극 (1966~1973)
  • 한태연 (1973)
  • 남재희 (1977~1978)
  • 이진희 (1979~1980)
  • 주영관 (1980~1982)
  • 이우세 (1982~1984)
  • 이한수 (1987~1988)
  • 이동화 (1993~1996)
  • 김삼웅 (1998~2002)
  • 임영숙 (2003~2005)
  • 박재범 (2009~2012)
  • 이경형 (2015~2018)

11.2. 논설주간

  • 이한수 (1986~1987)
  • 이정연 (1991~1992)
  • 이재근 (1992~1992)
  • 김호준 (1997~1998)
  • 임춘웅 (1998~1999)
  • 우홍제 (1999~2000)
  • 손성진 (2017~2018)

11.3. 논설위원실장

  • 이정연 (1988~1989)
  • 박화진 (1993~1996)
  • 김호준 (1996~1997)
  • 우홍제 (1997~1999)
  • 임영숙 (2000~2001)
  • 이경형 (2001~2003)
  • 최홍운 (2003~2004)
  • 김영만 (2004~2005)
  • 신연숙 (2005~2006)
  • 염주영 (2006~2008)
  • 최태환 (2008~2009)
  • 박재범 (2009)
  • 이목희 (2009~2010)
  • 구본영 (2010/2012~2014)
  • 오병남 (2010~2012)
  • 곽태헌 (2014~2015)
  • 손성진 (2015~2017)
  • 문소영 (2018~2021)
  • 황성기 (2021~2022)
  • 진경호 (2022~ )

11.4. 수석논설위원[36]

  • 이동구 (?~2021)
  • 진경호 (2022)
  • 안미현 (2021~ )
  • 황수정 (2022~ )

11.5. 논설고문

  • 주영관 (1984~1988)
  • 반영환 (1993~1996)
  • 송정숙 (1994~1997)
  • 장윤환 (1998~2002)
  • 구본영 (2014~2016)
  • 곽병찬 (2018~2021)
  • 손성진 (2018~2021)
  • 김균미[37] (2022.10~)
  • 황성기 (2022~ )

11.6. 편집 책임자

  • 편집국장(취재국장)
    • 이관구 (1945~1946)
    • 홍기문 (1946)
    • 김무삼 (1946~1947)
    • 정우홍 (1947~1948)
    • 이건혁 (1948~1949)
    • 우승규 (1949~1952)
    • 최상덕 (1952)
    • 고제경 (1953~1954/1956~1960)
    • 조동훈 (1954~1955)
    • 유완희 (1955~1956)
    • 김광섭 (1960~1961)
    • 김용장 (1961~1962)
    • 김현제 (1962~1963)
    • 박창수 (1963~1964)
    • 조기홍 (1964~1965)
    • 조용중 (1965~1966)
    • 전민호 (1966~1968)
    • 이자헌 (1968~1972)
    • 남재희 (1972~1977)
    • 이우세 (1977~1981)
    • 이한수 (1982~1986)
    • 함정훈 (1986~1987)
    • 김문진 (1987~1989/1990~1991)
    • 이정연 (1989~1990)
    • 서건일 (1991~1992)
    • 최광일 (1992~1993)
    • 이동화 (1993)
    • 김호준 (1993~1996)
    • 우홍제 (1996~1997)
    • 장정행 (1997~1998)
    • 정신모 (1998)
    • 황병선 (1998~1999)
    • 이경형 (1999~2000)
    • 최홍운 (2000~2002)
    • 김영만 (2002~2004)
    • 최태환 (2004~2006)
    • 강석진 (2006~2008)
    • 오병남 (2008~2010)
    • 이목희 (2010~2012)
    • 손성진 (2012~2013)
    • 곽태헌 (2013~2014)
    • 오승호 (2014~2016)
    • 김균미 (2016~2017)
    • 박홍기 (2017~2018)
    • 박찬구 (2018~2019)
    • 안미현 (2019~2021)
    • 황수정 (2021~2022)
    • 이지운 (2022~ )
  • 신문국장
    • 김은정 (2022~ )
  • 뉴미디어국장
    • 김태균 (2022~ )

11.7. 편집위원실장

  • 임동수 (1982~1984)


[1] 호반건설 창업주이자 초대 회장[2] 의결권 기준으로는 지분률이 53.4%로써, 단독 최대 주주이자 지배 주주다.[A] 2023년 5월 14일 기준[A] 2023년 5월 14일 기준[5] 호반건설 측에서 임직원의 우리사주조합 소유 지분을 사들여, 단독 과점 최대 주주가 되었다.[6] 원래는 미국의 잡지로, 세계 여러 국가에서 각자 국가에 맞는 사정으로 출판되었다. 다만 국립중앙도서관에 1999년부터 2013년까지 본사 출판국의 후신인 스포츠서울21, 매거진플러스 측이 각각 낸 복간본 내지 프로토타입으로 보이는 판본(제865~879호)이 소장되어 있다. 실제로 2007년 복간설도 나왔으나 서울신문사 측은 사실 무근이라고 했다.[7] 일본에도 週刊TVガイド가 있으나, 전세계에 전개되는 미국 TV 가이드와는 관계가 없는 동명이지로 보인다. 아예 무관하지는 않은게 週刊TVガイド는 창간자가 미국 출장 도중 TV 가이드의 영향력에서 영감받아 창간한 것이라고 한다. (참조) 이 일본의 TVガイド는 정확히 '슈칸테레비가이도'(주간TV가이드)로 불리며, 일본의 뉴스 에이전시중 하나인 도쿄뉴스통신사에서 발행하고 있다.[8] 그러나 포스코는 2002년 이후 민영화되어 정부 지분이 아니다.[9] 2013년 적자 기업이었던 서울신문이 14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이익을 내고 있다는 인데, 2013년 서울신문의 경상손익은 –59억이었으나, 그 이후 매년 꾸준히 경상이익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손실이 나는 비신문 부문에 대한 꾸준한 정리를 통해 수익성을 개선해 온 것이다. 다만 이것은 사양 산업이 된 종이신문 업계에서 모두 하고 있는 일이라서, 서울신문만의 특징이라고 볼 수는 없다.[10] 특히 서울신문은 당시 이른바 '계도지'의 역할을 수행하였는데, 동네 단위로 반상회를 주도하는 전국 통반장들에게 무료로 배포되어 노골적인 정권 홍보 창구로써 동원이 되었다. 지금도 이 '계도지' 제도의 흔적이 남아있어서, 전국의 각 지역 주민센터에서 서울신문 의무 구독을 대량으로 하고 있는 형편이다.[11] 실제 문화일보가 이런 식으로 2004년 현대중공업 측의 경영 재참여 및 편집권 간섭 이후 '보수언론'으로 급격히 변화한 예가 있다.[12] 사장, 편집이사, 우리사주조합장, 노조위원장, 호반TF팀장[13] 미디어오늘 2022년 2월 10일자. '서울신문 노조 “기사 협상카드로 사용한 우리 스스로 반성해야”'[14] 해당 정치부장에 대한 구제신청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화해조서에 의해 종료되었다.[15] 서울미디어홀딩스는 호반건설이 서울신문 인수를 위해 지분 100%를 출자하여 설립한 자회사이다.[16] 벽초 홍명희의 장남. 1948년 월북.[17] 1975년부터 코리아헤럴드가 먼저 CTS를 도입하였으나, 한글 신문으로는 서울신문이 처음이다.[18] 1974년부터 1981년까진 경향신문은 문화방송과 통합된 형태였으나, 그 뒤에는 MBC와 떨어져 사단법인화되기도 하는 등 정부의 입김을 많이 받던 관제 보수 언론이었다.[19] 송정숙은 이때의 공로 덕분인지,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YS에 의해 보건사회부 장관이 되었다가, 1994년에 장관직을 내려놓고 본사 논설고문으로 다시 영입되었다. 그러다가 1997년 15대 대선 때 이회창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여 다시 물의를 빚었고, 심지어 논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한국당 선거대책본부 비상임 부위원장을 맡아 활동하기도 했다. 결국 그해 말에 논설고문직을 내려놓고 퇴사하였다. 이후에는 뉴라이트 단체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꾸준히 다양한 극우-보수 단체에서 활동하기도 했다.[20] 그러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친일 행적은 비판하면서 서울신문이 매일신보 시절을 도려낸 데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이중성을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았다.[21] 스포츠신문은 2013년 초 무렵부터 토요일자를 발행하지 않았다.[22] 33명의 퇴사라면, 전체 편집국의 약 3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이다.[23] 호반건설 창업주이자 호반건설 초대 회장[24] 1980년에 언론통폐합으로 사라진 신아일보의 창업주이기도 했다.[25] 1957년에 생긴 한국일간신문발행인협회 초대 회장도 겸임.[26]민주공화당 중앙상무위원.[27]중앙정보부장 고문, 민주공화당 의장고문.[28]한국일보 사장.[29] 대구일보조선일보 출신. 이후 한국언론회관 및 한국언론인금고 이사장 역임.[30] 서울신문 사장을 역임한 직후 바로 한국방송공사 사장으로 임명되어 영전했고 당시 KBS 노동조합이 낙하산 사장이라며 반대해 1990년 KBS 사태를 야기했다.[31]국민일보 사장.[32] 본사 최초의 민선(공모제) 사장. 중앙일보 논설고문 역임.[33]금강기획 사장, 그레이프커뮤니케이션즈 회장.[34]한겨레 사장.[35] TV 광고 감독 출신.[36] 2명이 공동으로 하고 있다.[37] 이전에 바로 편집인을 지냈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