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6 07:08:40

수도가 여러 개인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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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목록
2.1. 법적으로 수도가 여러 개 존재2.2. 법적인 수도 외에 행정수도가 따로 존재2.3. 천도가 완료되지 않음2.4. 그 외 특이한 경우
3. 과거 사례
3.1. 목록

1. 개요

수도는 보통 한 나라 당 하나씩 있지만, 나라에 따라서 수도를 여러 개 두는 경우도 있다. 그 이유는 각 나라마다 다르지만, 권력을 분산시키거나, 나라 전체의 원활한 통치를 위해서거나, 기후 문제로 계절마다 다른 곳을 수도로 삼는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공적 권한을 나누어 여러 수도를 지정한 경우에는 '이곳이 대표 수도이다'라는 규정이 없을 때 굳이 하나를 수도로 꼽아야 한다면 통상적으로 행정부의 소재지를 수도로 본다.

관점에 따라 임시수도와 명목상의 수도가 존재하는 국가를 이 케이스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2. 목록

2.1. 법적으로 수도가 여러 개 존재

  • 파일: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기.svg 남아프리카 공화국 - 프리토리아 (행정수도), 케이프타운 (입법수도), 블룸폰테인 (사법수도)
    1910년 남아프리카 연방 결성 당시 트란스발 식민지의 수도인 프리토리아에 행정부를, 케이프 식민지의 수도인 케이프시티에 입법부를, 오렌지 강 식민지의 수도인 블룸폰테인에 사법부를 둔 것에서 유래했다.
  • 파일:에스와티니 국기.svg 에스와티니 - 로밤바 (왕정·입법수도), 음바바네 (행정수도)
    1968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왕궁이 있는 로밤바를 입법수도로, 영국의 보호령 시절 중심지였던 음바바네를 행정수도로 정했다.

2.2. 법적인 수도 외에 행정수도가 따로 존재

  •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네덜란드 - 암스테르담 (헌법상의 수도), 헤이그 (왕정·입법·행정수도)
    1814년 네덜란드 연합왕국 건국 당시 빌럼 1세와 암스테르담의 공화파 간의 타협으로 법적 수도 암스테르담과 실질적 수도 헤이그로 나뉘게 되었다.
  •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말레이시아 - 쿠알라룸푸르 (헌법상·왕정·입법수도), 푸트라자야 (행정수도)
    수도권 과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9년에 행정부를 푸트라자야로 이전했다. 하지만 푸트라자야는 쿠알라룸푸르와 약 30km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다.
  • 파일:베냉 국기.svg 베냉 - 포르토노보 (헌법상·입법수도), 코토누 (행정수도)
    1963년에 다호메이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위베르 마가가 독재에 대한 야당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야당의 지지세가 높았던 코토누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겼다. 정작 마가 대통령은 같은 해에 일어난 쿠데타로 축출되었다.
  • 파일:볼리비아 국기.svg 볼리비아 - 수크레 (헌법상·사법수도), 라파스 (입법·행정수도)
    원래 수크레가 볼리비아의 명실상부한 수도였으나, 라파스 인근에 주석 광산이 발견되어 경제적 중요성이 증대하자 1898년에 입법부와 행정부를 라파스로 이전했다.

2.3. 천도가 완료되지 않음

법적으로는 새로운 곳으로 수도를 옮겼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정부부처를 전부 옮기지 못해서 이전의 수도에 아직도 일부가 남아있는 경우다.
  • 파일:부룬디 국기.svg 부룬디 - 기테가 (현 수도), 부줌부라 (전 수도)
    2019년에 부줌부라에서 기테가로 천도했다.[1] 하지만 아직 상원 의사당 정도만 기테가로 이전했으며, 행정부, 하원 의사당, 사법부는 여전히 부줌부라에 소재하고 있다.
  • 파일:스리랑카 국기.svg 스리랑카 - 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코테 (현 수도), 콜롬보 (전 수도)
    1985년에 콜롬보에서 코테[2]로 천도했다. 하지만 아직 입법부만 코테로 이전했으며, 행정부 및 사법부는 여전히 콜롬보에 소재하고 있다. 콜롬보와 코테는 서로 거리가 10km도 안될 정도로 가깝다.
  • 파일:코트디부아르 국기.svg 코트디부아르 - 야무수크로 (현 수도), 아비장 (전 수도)
    1983년에 아비장에서 야무수크로로 천도했다. 하지만 아직 상원 의사당 정도만 야무수크로로 이전했으며,[3] 행정부, 하원 의사당, 사법부는 여전히 아비장에 소재하고 있다.

2.4. 그 외 특이한 경우

3. 과거 사례

전근대 시기의 중국한국에서는 유도(留都)나 배도(陪都)라는 준(準)수도를 운용하는 다경제(多京制)를 운영하기도 했었다.[6] 중국에서는 주나라호경낙읍을 양도로 삼았던 것을 시작으로 기본적으로 낙양을 동도(東都), 장안을 서도(西都)로 부르며 중시하는 양경제가 오랫동안 시행되었다. 송나라의 수도는 낙양 동쪽의 개봉이었기 때문에 낙양이 서경(西京) 하남부, 개봉이 동경(東京) 개봉부가 되었다. 원나라대도상도를 양도로 삼았다. 명나라는 경사(京師)인 북경(北京) 순천부와 남경(南京) 응천부를 양경으로 삼았다. 이는 지금도 베이징난징이라는 도시 이름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수도들은 방위를 앞에 붙인 이름(동경, 서경, 남경, 북경, 상경, 상도)을 자주 썼다.

한국사에서도 고구려, 신라, 발해, 고려, 대한제국에서 수도를 여러 곳을 두는 다경제를 시행했다. 이런 다경제는 당시 중국을 모방한 것으로 황제국의 제도로 여겨졌기 때문에 외왕내제의 일환이기도 했다. 고구려는 후기에 수도 평양성을 비롯해 옛 수도인 국내성, 남부의 중심도시인 한성(지금의 황해도 재령군)을 합해 3경이라 했다.

신라는 수도 서라벌 외에 '작은 수도'라는 의미의 소경(小京)을 현대의 광역시처럼 전국 주요 지점에 설치하였다. 통일 이전에도 아시촌소경(함안군 또는 의성군), 국원소경(충주시), 북소경(강릉시)을 두었지만 통일 이후 북원소경(원주시), 서원소경(청주시), 중원경(충주시), 남원소경(남원시), 금관소경(김해시) 5곳을 정해, 전국을 9개 단위로 나눈 9주와 함께 9주 5소경을 설치하였다. 이들은 옛 고구려 지역에 2곳, 옛 백제 지역 2곳, 옛 가야 지역 1곳(가야를 원 신라 지역으로 볼 경우 수도 경주시를 포함해 2곳)으로 삼한일통 사상에 의해 지역안배 균등 분배했다.

발해는 수도인 상경용천부를 비롯해 중경현덕부, 동경용원부, 남경남해부, 서경압록부 5경을 두었다. 이 발해의 5경제는 이후 발해의 영토 기반에서 성장한 요나라, 금나라의 5경제로 계승되었다.

고려는 수도인 개경(개성시) 외에 동경(경주시), 서경(평양시), 남경(서울시)을 따로 두었다. 다만 이 넷을 동시에 4경이라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격이 다른 개경을 빼고 나머지 셋을 세거나, 개경에 더해 시기에 따라 동경이나 남경을 빼고 세서 3경이라 했다.

조선은 다경제를 시행하지 않았다. 강력한 중앙집권화를 꾀했던 국가답게 수도 한성에 큰 역량을 집중시켰기 때문이다. 국초에는 경도(京都) 한성부를 한경(漢京)으로, 구도(舊都) 개성유후사를 개경(開京) 또는 송경(松京)이라고 부르며 둘을 아울러 양경(兩京)이라고 일컬었지만, 세종 연간에 한성부가 단독 수도로 굳어졌다. 세조양성지가 상경(서울시), 중경(개성시), 동경(경주시), 남경(전주시), 서경(평양시), 북경(함흥시)로 지정하자고 주장했지만 실제로 이루어지진 않았다. 그러다 대한제국 때에 중국의 전례를 본떠 1903년부터 평양서경(西京)으로 육성하려고 풍경궁을 짓는 등의 조치를 했으나 계획이 구체화되기 전에 경술국치로 국권이 피탈되었다.

일본의 경우 과거 천황의 조정과 정이대장군막부로 이루어진 이중적인 권력 구조로 인해, 천황이 기거하는 교토 이외에 가마쿠라 막부가 위치한 가마쿠라에도 막부가 위치한 에도가 실질적인 양대 수도로 취급받았다. 무로마치 막부의 경우 막부가 교토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다 메이지 유신 이후 교토에 있던 천황이 거처를 에도로 옮기고 에도를 도쿄라 개명하면서 도쿄가 유일한 수도가 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3.1. 목록



[1] 기테가는 부룬디 왕국 시절 수도였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환도다.[2] 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코테라는 지명은 스리랑카 현지인들에게도 너무 길기 때문에 보통 코테로 줄여서 부른다.[3] 야무수크로에 새로운 대통령궁이 건설되긴 했지만 지금도 코트디부아르 대통령은 아비장에 있는 기존의 대통령궁에서 집무를 보고 있다.[4] 독일국 시기에는 대법원이 라이프치히에 있었다.[5] 스위스는 법적으로 정해진 수도가 없다.[6] 유도(留都)는 전수도, 배도(陪都)는 준수도를 이르는 것으로 당연히 유도가 배도보다 급이 높았다. 말하자면 '유도는 전처, 배도는 첩'으로 비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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