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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조선)/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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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극에서는 단골 소재인 장희빈사도세자 사이에 등장하는 관계로 본인이 주역이 되기보다는 사도세자의 비극이나 정조와 관련해서 조연급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으며 장희빈이 주인공인 사극에서 아역으로 등장하고는 한다. 대중매체에서 영조를 다룰 경우 젊은 시절을 묘사할 때는 그의 뛰어난 통치력을 부각시키 영조 본인이 주가 되기보다는 박문수 등 동시대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대중매체에서 간접적으로 묘사되는 편. 주로 명신들의 활약에 대해 간신들이 모함을 하면 영조가 비호하는 식이다. 하지만 경종의 석연치않은 죽음에 대해 다룰 때는 젊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노련한 정치력이 부각되기도 한다. 대부분은 형인 경종을 고의로 독살했다는 식으로 나온다.

나이가 든 후를 묘사할 때 임오화변에서 드러난 냉혹한 면모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노론 음모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도세자를 희생시킨 것으로 묘사된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2010년대 이후 당대의 정치 상황이 대중들에게 확실히 알려지면서 대놓고 악인이나 위선자로 묘사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실제 역사에서는 노론이 되려 사도세자를 필사적으로 보호하는 입장이었고 영조가 이를 무시하면서 아들을 극심하게 학대했다가 끝내는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사실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탓이 크다. 때문에 이전에는 그를 성군으로 묘사하는 작품들이 많았으나 오늘날에는 막장 부모였던 악인으로만 나오는 편.

2. 드라마

파일:영조 최불암1.jpg
파일:영조 김성겸1.jpg
파일:인현왕후 연잉군.png 파일:한중록 영조.png
  • 1988년 MBC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 시리즈에서는 김정국(아역)과 배우 김성원이 연기했다. 8화 '인현왕후'에서는 어린 연잉군으로 등장했으며 갓난아기 때부터 희빈 장씨(전인화 분)에게 죽을 위기를 꽤 겪었어도 경종(김성환[1] 분)과 사이는 좋은 것으로 나왔다.[2] 9화 '한중록'에서는 즉위한지 1년 뒤에 경종의 능을 참배하러 가는 장면으로 처음 등장했으며 다혈질적인 성격은 잘 묘사되었다. 생모가 무수리라는 것에 큰 컴플렉스를 느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아들 사도세자를 경종의 처소였던 저승전에 머물게 하였다. 그러나 결국 아들을 죽였고 그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
파일:영조 박근형.jpg
  • 1998년 MBC 드라마 <대왕의 길>에서는 배우 박근형[4][5]이 연기했다. 드라마 전반적으로 살아있는 <한중록>의 말씨로 사료에 등장한 발언들을 쏟아내는데 그야말로 폭풍간지. 심지어 사도세자가 공부를 안 한다고 까는 장면에서도 영조의 괴팍스러움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특히나 영조의 자식 편애와 편집증적 심리 묘사를 섬세히 연기하여 극찬을 받았다.
파일:영조 최불암2.jpg
파일:영조 조민기.jpg
  • 2002년 MBC 드라마 <어사 박문수>에서는 배우 조민기가 연기했다. 중년의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운동을 좋아했던 사실을 반영했는지 격구를 하는 장면도 있을 정도.
파일:장희빈 이태리.jpg
  • 2002년 KBS 드라마 <장희빈>에서는 배우 이태리가 연기했다. 유년 시절 연잉군의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어릴 때부터 희빈 장씨(김혜수 분)의 손에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다. 그래도 경종(곽정욱 분)과의 사이는 돈독한 것으로 나온다.
파일:영조 김성겸2.jpg
  • 2007년 채널CGV 드라마 <정조암살미스터리: 8일>에서는 배우 김성겸[7]이 연기했다. 노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들 사도세자를 죽인 뒤 세손에게 금등치사를 남긴다.
파일:영조 이순재.jpg
  • 2007년 MBC 드라마 <이산>에서는 배우 이순재가 연기했다. 이순재의 연기도 인상적인데 특히 "나야 임금이니까 되는대로 떠든다지만 경들은 그렇게 밉보였다가 장차 어쩔려고 그러는게야?"라고 정곡을 찌르는 장면은 그야말로 폭풍 간지. 세손 정조(박지빈 분, 이서진 분)를 엄하게 훈육하고 대하지만 그래도 누구보다 세손을 아끼며 보호한다. 아들 사도세자(이창훈 분)를 죽인 것을 후회하며 죽기 전에 성송연(한지민 분)에게 사도세자의 초상화를 그리게 한 뒤 어머니 숙빈 최씨의 유품인 옥가락지를 준다.[8]
파일:동이 연잉군.jpg 파일:동이 영조.png
파일:영조 전국환.jpg
파일:영조 한석규.jpg
파일:영조 김명곤.jpg
파일:영조 여진구.jpg
  • 2016년 SBS 드라마 <대박>에서는 배우 여진구가 연기했다. 거의 처음으로 청년 영조가 나오는 작품[11]으로 주연이다. 내용은 영조의 치세가 아닌 메인 주연인 본인보다 먼저 태어났지만 버려진 왕자인 대길(장근석 분)이 이인좌에게 맞서 싸우는 스토리라 이인좌의 난을 진압할 때까지만 진행된다.
파일:해치_이금.jpg
  • 2019년 SBS 드라마 <해치>에서는 배우 정일우가 연기했다. 청년 시기의 영조를 다룬 몇 없는 드라마로 <이산>과 <동이> 등을 집필한 김이영 작가가 극본을 맡았다. 영조가 노론의 영수 민진헌(이경영 분)과 맞서서 왕위에 등극하는 것이 전체적인 스토리인데 문제는 애초에 연잉군의 지지 세력이 노론이다. 역사적 고증에 대한 문제는 해치의 고증 문단 참조.[12]
파일:옷소매붉은끝동_영조.jpg
  • 2021년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는 배우 이덕화가 연기했다. 여기서는 역사에서 공식적으로 진단 기록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매우 강하게 의심되는 치매가 묘사되며, 정신이 혼미할 때에는 아들과 손자를 분간하지 못하는 점이 중요한 설정으로 등장한다.
파일:사관은 논한다 등장인물 왕.png
2024년 KBS 드라마 스페셜 《사관은 논한다》
배우: 조한철

3. 영화

파일:상의원 유연석.jpg
  • 2014년 개봉한 영화 <상의원>에서는 배우 유연석이 연기했다. 영화 속 주인공인 조돌석과 이공진을 교묘하게 이간질하는 듯한 모습으로 경쟁을 시키는 모습으로 등장하며 중전과는 완벽한 쇼윈도 부부로 지내나 이미 그 사이가 파탄난 건 사방팔방 퍼진 상태로 나온다.[13] 단, 이 영화 속 임금은 영조를 모델로 한 것이지, 영조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작중에 훙서한 선왕이 형님이라고 언급되고 딸을 후궁으로 들이는 병조판서[14]의 입으로 주상은 어머니가 천한 무수리 출신이라는 언급이 나오며 조선에서 부부 사이가 이토록 최악이라 묘사된 건 영조와 첫 계비인 정성왕후 서씨 뿐이다.
파일:사도 영조.jpg
  • 2015년 개봉한 영화 <사도>에서는 배우 송강호가 연기했다. 폭풍간지를 보여주는데 사도세자(유아인 분)를 죽게 하면서 "내가 임금이 아니었더라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라는 말로 왕좌가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보여줬다. 특히 사도세자의 사망을 확인한 후 "개선가를 울려라!"라고 명하는 부분은 많은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장면. 자세한 건 영조(사도) 참조.
파일:궁합_왕.jpg
  • 2018년 개봉한 영화 <궁합>에서는 배우 김상경이 연기했다. 이 때는 아직 사도세자가 어리고 영조와 세자 이선(최우진 분)의 사이가 갈라지기 전이라서 영조는 세자를 사랑하고 세자의 어미 영빈 이씨(박선영 분)가 주인공 송화옹주(심은경 분)에게 저지른 추악한 음모가 드러났음에도 훗날의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세자를 하기는커녕 걱정스러운 얼굴로 세자를 따스하게 안아준다.

4. 만화

  • <야뇌 백동수>에서는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기로 하지만 차마 죽일 수 없었기 때문에 임수웅을 시켜서 미리 탈출시켜 놓고 노론에게서 구출하는 계획을 세운다.
  • 정조 시대가 주된 배경인 이윤창 작가의 웹툰 <타임인조선>에서는 손주가 보고 있는 앞에서 아들 사도세자를 향해 그 죄상을 열거하며 죽으라고 호령하는 장면으로 과거 회상에서 짧게 등장한다.
  • <밤을 걷는 선비>에서는 잘못된 자식 교육으로 억압받아온 아들을 이해하기는커녕 그런 아들이 점점 엇나가기 시작하자 자신의 권력왕실의 안위를 위해 귀를 이용해 사도세자를 죽이려 한다. 오래 전부터 동질감을 느껴 동성애를 가져온 귀가 사도세자를 죽이지 못하고 사도세자를 흡혈귀로 만들어버리자 이에 분노한 영조는 귀와 사도세자를 같이 불태우게 되는데 귀는 가까스로 살아남고 사도세자는 불에 타죽게 된다. 영조는 이에 대한 후회는커녕 그 잘못을 귀에게 돌리고 귀와 사생결단을 내려는 모습을 보인다. 귀 역시 이때의 일을 계기로 자신을 멋대로 사역하는이방원 일가를 없애버리기로 마음먹게 된다.

5. 소설

  • <승은궁녀스캔들>에서는 아직 연잉군이던 시절로 나오는데 여주인공 순심에게 관심이 많으며 왕세제가 된 후에 형인 윤(경종)에게 복잡한 마음을 품고 있다. 윤이 죽은걸로 위장하고 을 나온 이후에 보위에 오른다.
  • <사도세자가 되었다>에서는 주인공이 원래 역사와 반대 행보를 보이며 곤혹을 치렀고 결국 반정으로 쫓겨난다. 반정 당시에 아들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내가 잘못했다"라고 뒤늦게 비는 등 영조가 묘사된 모든 대중매체를 통틀어 가장 비참하고 비굴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 <감자세자와 뒤주대왕>에서는 사도세자와 프리드리히 2세의 영혼이 바꾸는데 프리드리히도 막장아버지에게 시달렸으나 영조를 보고 자식을 증오하는 눈이라며 경악하고 결국 폐세자를 하기로 굳혔다고 판단해 유럽식 화승총을 만들었고 외행중 저격수에게 4발을 맞는데 세손(정조)을 후계자로 해달라는 유언을 남기나 프리드리히는 귓속말로 누가 저격을 사주했다고 생각하냐며 제사상은 챙겨주겠다고 조롱한다.[16] 그 유언이 실행되면 예송논쟁이나 왕자의 난은 장난으로 보일정도의 혼란이 일어날 거란 독백하는데 시호는 영종으로[17] 제사상에는 간장게장과 생감이 올라가는 고인모욕을 당했다.[18] 218화에서 무덤이 드러났는데 벽돌이 혼용되고 장식은 최소한에 난간석도 마감이 대충이고, 정자각은 구조가 엉성하여 빗물이 샌다고 나온다. 이선은 여기서 자신은 황제가 되었다며 당신은 후계자의 자질을 못 알아본 멍청이라고 역사에 남을 것이라며 저주와 분노를 쏟아내던 것을 프리드리히가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자며 뜯어말리는 모습이 나온다. 이에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화해라도 했는데 여기서 가장 안 좋은 꼴을 당했다는 반응도 나왔다.
  • <탐관오리가 상태창을 숨김>에서는 실록을 참조하여 자신의 컴플렉스 방어와 권력 사수와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부끄러움도, 죄의식도, 거리낌도 없이 아들과 신하들과 백성들을 괴롭히고 이용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면모와 형수인 선의왕후의 상중에 사도세자의 생모이던 귀인 이씨를 영빈으로 올리고 큰 잔치를 베푼다거나 맏며느리 효순왕후 상중에 그 시녀였던 숙의 문씨를 보고 눈이 맞아 그녀를 취하는 등 영조의 수많은 패륜과 각종 사이코패스적인 면모들이 가감없이 묘사된다. 작중 서술에서 '영조'라는 묘호로 그를 지칭하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이며, 늘상 영조의 휘인 '이금'으로 불리울 정도로 영조를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다. 아예 작품 표지에 나온 영조의 곤룡포의 용보에 용이 아니라 의 모습이 그려져 있을 정도. 주인공 김운행 덕분에 사도세자가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정신적으로 성장하자 이에 이성을 잃고 세자가 청나라를 끌어들여 역모를 꾸민다고 주장하며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으나 세자와 김운행을 따르는 군대와의 무력 충돌에서 패배하고, 반강제로 세자에게 양위하고 이름뿐인 상왕이 되어 남한산성에 연금된다.
  • <사도세자는 편하게 살고 싶다>에서도 나라는 자신만이 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고 자신의 뜻에 어긋나는 것은 설령 아들일지라도 굴복시키거나 말살해야 한다고 진심으로 믿는 심각한 편집증 환자로 인원대비와 정성왕후의 국상 중에 아들이 15일이나 혼수상태에 빠졌다 깨어났는데도[19] 이를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은 불충이자 불효라고 꾸짖으러 왔다가 이훤이 "그따위로 지랄할거면 차라리 폐세자해달라" 라는 식으로 들이받자 제 화에 못이겨 진노하여 계단을 내려가다가 이훤이 내관 김한채를 위해 계단에 깔아놓은 장작을 잘못 밟고 넘어지며 머리를 섬돌에 찧어 3일 후인 1757년 5월 25일 원역사보다 19년 빨리 사망한다.


[1] 청소년 배우로 1950년생 배우와는 동명이인이다.[2] '인현왕후'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한 장면은 경종과 가위 바위 보를 하며 즐겁게 노는 모습이었다.[3] <조선왕조 500년 - 한중록>에서 영조 역을 맡은 김성원이 다시 역을 맡았다. <조선왕조 500년 - 인현왕후>에서 영조의 아버지 숙종을 연기한 강석우가 이 작품에서는 영조의 손자인 정조를 연기했다.[4] 많은 배우들이 영조를 맡았지만 그 중 박근형이 연기한 영조가 최고의 영조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것에는 거의 이견이 없다. 게다가 외모도 전해지는 어진과 거의 동일인 수준으로 닮았다.[5] 가끔 등장하는 회상씬에서는 곽정욱이 아역으로 등장했다.[6] 최불암은 <안국동 아씨>에 이어 22년만에 다시 역을 맡았다.[7] 김성겸은 <하늘아 하늘아>에 이어 18년만에 다시 역을 맡았다.[8] 12년 후 다른 세계관의 손자가 영조 역할을 맡는다.[9] 영특한 모습과 어린 아이 특유의 귀여움으로 화제가 되었다.[10] 마지막회에서는 영조 역으로 2009년 MBC 드라마 <탐나는도다>의 얀으로 알려진 이선호가 출연했다.[11] <동이>는 특별 출연.[12] 12년 전 할아버지가 영조 역할을 맡았다.[13] 정경부인들도 중전을 우습게 보고 있으며 새로이 후궁이 되는 병조판서의 여식 또한 중전을 얕잡아 본다.[14] 배우 박경근이 연기했다.[15] 동명의 드라마로 방영.[16] 이 때 멱살을 잡으려했으나 얼마 못가 숨을 거둔다.[17] 실제 역사에서 영종이었다가 대한제국이 선포될 때 영조로 추존되었지만 후기를 보면 21세기에도 영종으로 남았다.[18] 한의학적으로 간장게장과 생감은 같이 먹으면 안좋은 음식이다.[19] 이는 2020년대 북한에 있는 명산들의 산신령들이 도탄에 빠진 북한을 구하기 위해 김일성의 조상에게 선약을 먹여 죽이려던 게 일이 꼬여 사도세자가 그 약을 먹고 혼수상태에 빠진 15일 동안 현대 대한민국의 청년으로 15년을 살고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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