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퀴즈 온 더 블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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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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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123화 방영 내용에 관한 문서.2. 첫번째 참가자: 김고은
||<tablebordercolor=#8258FA> 이것은 엔딩 크레딧 후에 나오는 추가 장면을 말합니다. 1903년 영화 '대열차 강도'가 끝나고 난 뒤 출연자가 다시 등장해 관객에게 총을 쏘는 장면이 이것의 시초인데요. 식사 후 디저트를 먹듯이 영화 상영 후에 관객에게 여운을 남긴다는 의미로 이름 붙여진 이것은 무엇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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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blebordercolor=#552582> 쿠키 영상 ||
- 로맨틱 코미디부터 누아르까지 모든 장르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인간 수채화 배우 김고은 자기가 '유 퀴즈'를 찾았다.
- 근황으로는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에 출연 예정이며, 드라마에 대해 잠깐 소개했다.
- 홍보 때문에 방송에 출연했지만, 초창기 때부터 본 유퀴저라고 한다.
- 자신은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이런 질문은 처음이라고 부끄럽다고 한다.
- 한예종 전설의 10학번 동기에 대해 설명했다.[1] 그는 동기들이 잘 돼서 뿌듯하다고 한다. 누가 뚜렷한 부각이 있었나는 질문에 다들 끼가 좋아서 잘될거라고 말하였다.
- 동료들 사이에서 인기있었냐는 질문에 나쁘지 않았다며 한예종 3대 여신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당황스럽다고 이야기했다.[2]
- 김고은 자기는 수업 중 쓰러졌던 일화를 공개했다. 당시 강의를 듣다가 몸이 안좋아져 화장실에 간다고 나오다가 신발 더미 위에 쓰러졌다고 한다. 이상이 자기가 뛰어오다가 엄지발가락이 다친 바람에 본인은 다른 동기가 업고 보건실에 가고 이상이 자기는 응급실에 갔다고 말했다.
- 웹찢 배우로 유명한데, 이에 김고은 자기는 시작 전엔 안 맞는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막상 시작하면 ‘그래도 괜찮네’라는 얘기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또한 큰 자기는 ‘도깨비’를 본격적으로 보게 된게, 캐나다 장면에서부터라고 한다. 원래 다 보는 드라마가 많지가 않지만 그 중에 하나가 도깨비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 도깨비가 끝나고 슬럼프가 왔다고 한다. 그는 작품이 잘 되고 그렇다 할 계기는 없었지만 '복에 겨운 소리 하네' '뭐가 힘들어'라며 스스로 채찍질 하면서 자신을 받아주지 않았던 게 한꺼번에 몰려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 데뷔작 은교가 화려하게 대박나고, 당시 시상식에서 신인상등을 휩쓸었다고 한다. 김고은 자기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막상 성공하고 주목을 받았을 때 그렇게 들뜨는 건 없었다고 당시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 이후 변산에서 학교 동기인 박정민 자기를 만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변산에서 만난 박정민 자기는 정말 크고 오빠를 받쳐주는 역할이라 부담감도 적었다고 하며 슬럼프를 이겨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 첫 작품 이후 복학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 윤여정, 김혜수, 전도연 등 대선배들과 작춤들을 많이 하냐는 질문에, 그는 더 많이 배우고 싶었고 스펙트럼도 넓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려면 선배들을 보고 어깨 너머로 배워야 했다고 설명했다.
- 윤여정 자기가 인터뷰에서 싹싹하지 않아서 좋았다고 말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의미에 대해 물어봤는데, 일단 선배들의 말을 많이 듣는 편이라고 한다. 본인은 진심이지만 상대방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 그래서 자신의 얘기를 물어보실 때까지 가만히 듣기만 했고, 물어보시면 그때 말씀드린 것 같다고 설명했다.
- 코찡끗하는게 의도나는 질문에 엄마도 역시 똑같다며 엄마 닮았다고 한다.
- 배우 김고은 자기는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의 배네핏을 공개했다. 할인이 안 되지만 대신 페이에서 일정 부분을 상품권처럼 교환을 해주며, 생일 때 선물을 보내주신다고 말했다.
- 김고은 자기는 어떻게 사냐는 질문에 솔직하게 살고 있다고 대답하였다.
- 30대에 접어들었지만 배우라는 직업은 여전히 김고은에게 도전과 과제다. 그는 지금도 행복한 감정이 들고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감사한 직업이면서도 연차사 쌓이는 만큼 묷을 해야햐는 부담감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의심하지 않을 때꺄지 배우 알을 멈추고 싶지 않다며 각오를 내비쳤다.
3. 두번째 참가자: 배윤슬
||<tablebordercolor=#8258FA> 이것은 한옥의 기둥 아래에 받치는 평평한 돌로, 이 돌을 제대로 놓아야 견고한 한옥을 지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유래해 오늘 날 이것은 어떠한 사물의 바탕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입니다. 흔히 어떤 일에 기반을 마련할 때 '이것을 다지다'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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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blebordercolor=#552582> 주춧돌 ||
- 매일 아침 새로운 벽 앞에서 꿈을 도배하는 2년차 29살[3] 도배사 배윤슬 자기는 독특한 이력으로 눈길을 끈다.
- 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다 지금은 '도배사'라는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
- 그는 아직 기술자는 아니고 전문가와 초보자 사이에 있다고 말했다.
- 도배사 이전에 전공을 살려 노인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 일을 2년간 했다고 한다. 전 직장을 그만둔 이유는 전 직장의 경우, 새로운 시도나 도전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며 그냥 하던대로 하큰 게 제일 좋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기는 하던대로 할 거면 굳이 내가 아니어도 누구든지 이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란 회의감이 들었다고 한다.
- 이직 초기에는 유사 직종을 준비했지만 본인은 처우나 임금이 안 좋아서 그만 둔게 아니라서 같은 직종으로 간다면 결국 이전에 부딪혔던 문제를 또 다시 부딪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고민 끝에 도배사로 전향했다고 한다. 그는 숙련된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이 속한 조직 내에 중요하고 가치있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생각들었다고 한다.
- 퇴사 계획서에서 쓴 내용을 보고서로 작성했는데, 당시 이미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독립을 한 상태여서 굳이 허락맡아야 할 상황을 아님에도 부모님의 지지를 받고 싶어 퇴사계획서[4]를 썼다고 한다. 이에 큰 자기는 본인 시절 때만 해도 살살 눈치를 보다가 안되면 밥안먹고 시위하고 무작정 밀어붙였는데 요즘은 다르다고 감탄했다.
- 부모님이 납득 갔냐는 질문에, 당연히 부모님은 "왜 하필 도배냐"며 처음에 납득이 어려웠고 밤새도록 심각하게 회의를 했지만 이내 허락했다고 한다.[5] 결국 부모님은 지지를 확실하게 해주자며 결단을 내렸고 그런 부모님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 도배사가 되기 위해 우선 학원에서 한달간 적지 않는 수강료를 내고 다녔다고 한다.[6] 한달간 매일 가서 붙여보고 자재도 다 준다고 한다. 교육 끝난 후 한달 만에 학원에서 연계하는 팀으로 갔다고 한다.
- 배윤슬 자기는 바로 벽지를 붙였는데, 학원에서 배운 것은 기억이 안났다고 한다. 또한 초보자는 사수인 반장님과 짝을 이뤄서 다니면서 일을 배웠는데, 처음에는 긴장했는데 오히려 혼내지는 않고 실수를 다독여준다고 한다.
- 도배사로 할 수 있을까 하면서 포기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처음에는 그런 생각 조차도 안 들 정도로 바로 기절했다고 한다. 그리고 일단은 일주일만 해보자는 생각했고 이를 반복했고 나중에는 한달이라는 단기 목표를 세워가며 버텼다고 한다.
- 평소 하루 일과에 대해 이야기했다. 5시에 일어나서 6시 30분이 현장에 미리 도착한 다음, 아버지가 싸준 샌드위치 먹는다고 한다. 오전 7시에 팀원끼리 믹스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7] 12시에 점심을 먹고[8] 오후 6시에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며 마무리를 짓는다고 한다.
- 자기의 팀원은 본인을 포함하여 소장님이랑 사모님(소장님 부인), 반장님 총 4명 있다고 한다.
- 일하면서 아픈게 있냐는 질문에, 반복 노동에다가 벌서는 자세로 계속 도배를 하다보니 처음 요령이 없을 때는 여기저기 쑤시고 아팠지만 지금은 괜찮다고 한다.
- 건설 헌장의 어려운 점은 아파트 건설 현장은 창문이나 현관문이 달려 있지 않는 곳이 있다보니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덥다고 한다. 또한 도배사들이 풀을 닦을 때 물을 많이 사용하는데, 손에 물을 닿으면 순식간에 얼어붙는다고 한다. 게다가 지난 겨울에 열심히 붙은 벽지가 얼어붙어 떨어졌는데, 속상한 마음에 포기할까 하다가 포기하는 게 너무 아까워 일단 끝까지 가봐야겠다고 다짐했다.
- 2년 간 일하면서 보람찬 일이 있냐는 질문에 이사한 집을 본인이 직접 도배했다고 한다. 이때 가족들에겐 처음으로 도배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가족들이 멋있다면 난리났다고 한다. 또한 소장님이 이사갈 집의 벽지와 부자재를 직접 제공해줬다고 한다.
- 자기님의 상사인 소장님에 대해 무뚝뚝하지만 툭 칭찬해준다고 한다. 올 초에 툭 던지듯이 했던 말에 고마움을 느껴 혼나도 그 말을 기억하며 힘을 얻는다면서 고마움을 전했다. 이후 소장님이 직접 개인 인터뷰를 공개했다.
- 도배일을 하면서 다소 안좋은 주변의 편견에 의해 속상했지만 막상 본인이 직접 해보니까 사라지지 않을 기술을 터득하면서 값지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 이직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그는 “이직을 고민하는 큰 이유 중 하는 주변의 시선이나 평가 때문인데, 그런 부정적인 시선과 평가는 한 순간이라고 한다. 직장 생활은 오래 해야 하는데, 그 찰나의 평가나 잠깐의 말들 때문에 평생 원치 않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소신을 드러냈다.
4. 세번째 참가자: 김보성
||<tablebordercolor=#8258FA>이것은 불교에서 10의 마이너스 21승을 뜻하는 수의 단위입니다. 이것은 먼지 만 번 나눈 것을 다시 만 번 나누고, 또다시 만 번을 나눈 것이라고 하는데요. 아무 것도 없이 깨끗한 것과 마찬가지일 정도의 작은 수라는 뜻으로, 오늘날 맑고 깨끗한 것을 의미하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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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blebordercolor=#552582> 청정 ||
- 본명과 예명, 모두에게 의리를 지키는 의리 계몽운동가 허석김보성 자기님은 유쾌한 입담을 뽐낸다. 새로운 이름을 맞이한 새로운 세상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내 웃음을 선사한다.
- 그가 말한 의리계몽운동가는의리라는 말을 존중하는 사람으로서 의리를 전파하기 위해 애쓴다고 설명했다. 또한 오랜만에 광고를 찍었는데, 내용[9]을 보고 바로 택했다고 한다.
- 개명된 신분증을 보여주고 이름을 개명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본명 '허석'으로 28년, 예명 '김보성'으로 28년을 살았는데, 김보성이라는 이름도 영광스러운 이름이라서 이 둘을 하나로 합쳤다고 한다. 또한 생을 마감하더라도 김보성을 옆에 붙이면 그래도 본명을 기억해 주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새 신분증을 공개해였고 부모님과 사랑을 주는 팬들을 모두 품은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 이에 맥컬리 맥컬리 컬킨 컬킨에 대해 언급했다. 처음엔 두 자기 모두 폭소했지만 실제 개명했다는 제작진의 설명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를 큰 자기가 김보성 자기에게 다시 알렸다. 이에 허석김보성 자기는 "진짜냐, 그 사람이 내 소식을 들은 거냐"라고 물어 웃음을 자아냈다.
- 허석김보성 자기는 1989년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로 데뷔해 하이틴 스타로 인기를 얻었다. 그는 “당시 과분하게 하루에 팬레터를 100통씩 받았다”라고 회상했다. 이후 청춘스타에서 거친 이미지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 의리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데뷔하고 20대 때부터 외치기 시작했는데, 초반에는 다 편집이 됐다고 한다. 그래서 약간의 희화화하면서 '의리!'라고 하니까 퍼지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 허석김보성 자기은 젊을 때 3명의 괴한과 싸우는 상황에 대해 전하면서 "붕 날아서 2단 회축으로 빡! 한 방에 딱 끝나버려요"라고 이야기했다. 이를 들은 큰 자기는 세명을 어떻기게 한방에 끝내냐는 질문에 김보성 자기는 이에 굴하지 않고 당시 상황을 재연하며 자신만의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 허석김보성은 영화계 데뷔하고 후에도 그런 것이 무지하게 많았고 길거시 싸움을 본 증인들도 많았다고 자신있게 대답했다. 급기야 큰 자기는 이를 저지하기도 했다.
- 의리를 지키다가 손해를 본 적이 있는데, 이 중 돈을 빌려주고 받은 적이 많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 분들도 어떤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나중에는 그냥 의리로 주고 상황이 좋아지면 그때 갚으라고 했다고 말했다.
- 2020년 3월 대구광역시가 코로나 19로 인해 힘든 시기에 빠졌을 때, 직접 대구에 가서 마스크를 전달했다. 당시 편지를 받았고 편지를 읽다가 눈물을 흘리신 분이 있으면 따라 울었다고 한다. 이후 혹시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갈까봐 집에서 셀프 자가격리를 했다고 한다.
- 요즘에는 어떤 것을 지키냐는 말에 의리의 단계를 설명하면서 지금은 무아의 의리를 지킨다고 한다. 여기서 무아가 뭔지 이야기했다.
- 예전부터 꾸준히 시를 썼는데, 무아에 대해 쓴 시를 현장에서 공개했다.
- 김보성 자기는 아들이 본인을 닮아 친구가 위기 상황이 오면 그냥 달려간다고 한다. 이를 본 김보성 자기는 본인은 어떻게 가든 상관없는데 사랑하는 아들에게 문제가 생길까 덜컥 겁이 난다고 한다.
- 또한 아들이 복싱을 하고 싶어하는데, 과거 김보성 자기도 소아아 환우를 위해 격투를 했다고 한다. 당시 200억 가까이 기부했지만 부상으로 그나마 잘 보이던 눈도 2mm가 함몰됐다고 한다.
- 아들과는 사춘기 때 관계가 소홀해졌다고 한다. 이후 영상편지를 보냈다.
5. 네번째 참가자: 최현준
||<tablebordercolor=#8258FA> 1965년 디자이너 입생로랑은 이 화가의 대표작인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에서 영감을 받아 드레스를 만들었는데요. 이는 패션과 예술을 접목한 최초의 사례로 '이 화가' 룩이라는 용어는 패션 사전에 등재되어 있기도 합니다. 네덜란드 대표 화가로 20세기 추상화의 선구자로 불리는 이 화가는 무엇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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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blebordercolor=#552582> 몬드리안 ||
- 한국 남자 모델 최초로 세계 저명 브랜드인 생로랑 런웨이에 서게 된 모델 최현준 자기는 유퀴즈에 나와 영화 같은 모델 도전기를 공개했다.
- 현장에서는 후배 최현준을 응원하기 위해 최소라 자기가 직접 방문했고 간단한 인사를 나눴는데, 정작 최현준 자기하고는 두 번째 만남이라고 말해 깜짝놀랬다.[10] 또한 머리를 숏컷으로 잘랐는데, 자른 이유는 샤워하고 나왔더니 머리가 귀찮아서라고 밝혔다.
- 유퀴즈에 출연을 망설인 이유는 교정한지 얼마되지 않아 토크쇼인데도 발음을 듣는 분들이 조금 불편할까봐.. 이에 큰 자기는 "저 만큼 돌아갔겠냐"라고 하자 현준 자기는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라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
- '샛노랑' 런웨이가 드림쇼로 불리는 이유에 대해 묻자 최현준 자기는 "어느 남자 모델을 붙잡고 어느 쇼에 서고 싶냐고 물으면 꼭 나오는게 샛노랑이다"라고 말했다.
- 깐깐하기로 유명한 곳인데, 신발도 딱 원하는 실루엣이 있어서 특정한 사이즈로만 제작한다고 한다. 만약, 신발이 안 맞으면 모델이 합격했어도 떨어진다고 한다.
- 샛노랑 런웨이에 무대의 비하인드에 공개했다. 평범한 카이스트 수학과를 다니는 공대생[11]인데,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갔으며 모델 일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았다고 한다.[12]
- 그러자 두 자기는 공대생에 전문 모델이 아님에도 4개월 만에 꿈의 무대를 섰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냐며 비현실적인 일이다라며 의아해했다. 이에 최소라 자기에게도 이런 일이 자주있냐고 묻자 거의 없으며 정말 특별 케이스다라고 증언했다.
- 꿈의 무대에 서게 된 과정은 본래 고등학교때부터 모델의 꿈을 키워왔는데, 본래는 다른 브랜드 오디션을 보러 갔었는데, 아쉽게도 그 브랜드는 떨어졌다고 한다. 이에 귀국하려고 할 찰나에, 소속사 대표가 프랑스 간 김에 파리에 가서 현지 에이전시를 구해 보지 않겠냐면서 지도를 줬다.
- 직접 지도를 보면서 현지 에이전시를 찾아갔으나 못 들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총괄자의 눈을 띄여 계약했고, 다음날 생노랑에 프로필을 보내 본사로 갔다고 한다. 이후 또 한번의 오디션을 거쳐 합격했다고 한다.[13]
- 그의 말을 들은 큰 자기는 진짜 비현실적이다하고 말했고 최소라 자기도 해외에서나 간간히 일어날법한 일이라고 말했다.
- 이렇게 갑작스럽게 행운이 찾아오냐는 질문에 그는 다아나믹하게 찾아왔다고 한다.
- 생로랑 수석 디자이너들 앞에서 워킹을 했고 그들을 사로잡은 일명 양재천 산책 워킹 비화에 대해 이야기했다.[14] 이후 양재천 워킹을 직접 선보였다. 최소라 자기도 너무 잘 걸어서 놀랐다. 이후 최소라 자기와 함께 워킹 컬래버를 선보였다.
- 이후 2차 캐스팅을 봐야했다고 한다.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나 생각했다는 최현준 자기는 자신이 튈려면 남들처럼 입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에 옷을 대충 입고 가서 반팔, 반바지에 운동화 신고 갔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지만 정작 수석 디자이너는 최현준 자기를 보고는 한숨과 착잡한 눈빛을 보냈다고 한다. 이에 최현준 자기는 떨어졌다고 생각했지만 다음날 피팅하라고 모델로 발탁되었다고 한다.
- 이후의 스케줄로는 한국에 있는 모든 메이저 잡지 촬영을 했고 해외 활동도 준비 중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생로랑 쇼가 끝나고 디자이너가 모델을 위한 한정판 가방을 어머니에게 드렸다고 한다.
- 원래부터 공부를 잘했냐는 질문에, 중학교 1학년때 키작고 힘이 약해 왜소하다는 이유로 심하게 따돌림과 왕따를 당했다고 한다.[15] 처음에는 잘못없다고 생각했지만 1년 동안 심하게 왕따를 당하니까 자신에게 문제가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심지어 엄마 아빠한테도 ‘어쩌면 내가 이상한 거’라고 했다”고 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 공부를 시작한 계기도 그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않을려고 미친듯이 공부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중학교 2학년 때 반 2등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1등에 대한 강박이 심해져 잠자는 시간을 빼놓고 18시간 동안 공부를 했는데, 당시 살이 20kg이 빠질 정도로 말라버려서 오죽하면 부모님이 말렸다고 한다. 지금 보면 장기적으로 좋은 영향이었겠지만 그때는 힘들었다고 말했다.
- 앞으로의 계획은 목표는 크게 잡는 게 좋다고 하니 최소라 선배님처럼 남들이 들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모델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 이후의 인터뷰에서 "모델 할 때는 너무 즐겁다. 그냥 미쳐있다. 다른 사람이 되어있다. 돈이나 명예를 떠나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만으로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며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털어놨다.
- 지금의 나를 수학기호를 표현하자는 질문에 인테그랄(∫)이라는 적분기호를 표현했다.
6. 기타
- 나만의 세계 특집.
- 추석을 앞두고 상금(또는 상품)과 함께 고기세트를 줬다.[16]
[1] 10학번 동기로는 이상이, 안은진, 박소담, 김성철, 박정민 등이 있다.[2] 이에 반해, 아기자기는 학생 수가 별로 없었다고 서로가 서로를 좋아한다고 한다.[3] 2019년 10월달 부터 시작해서 2021년 9월 기준으로 만 2년이 되었다고 한다.[4] 퇴사하게된 계기, 퇴사 후 무슨 일을 할건지, 새로운일은 어떻게 시작할 건지, 몇년 동안 도전할 건지, 모아둔 돈은 얼마인지, 버틸 수 있는지[5] 배윤슬 자기가 나중에 전해 듣기로는 아버지는 한번 하게 둬보자라고 하셨고 어머니는 주변의 도배사들에게 직접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6] 좀 더 싼 국비지원 학원이 있지만 수강생도 많다면서 자기는 일부러 수강생이 적은 곳으로 갔다고 한다.[7] 본래는 아메리카노 파인데, 일할 때마다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게 되면서 이제는 하루에 거의 세잔 정도 마실 정도로 필수가 되었다고 전했다.[8] 건설 현장 안에 있는 작은 식당(함바집)에서 먹는데, 만약 점심에 고기가 안 나올 때가 있으면 너무 힘들다고 한다.[9] 학원 폭력, 직장 내 갑질, 그리고 인신매매를 손가락 하나로 날려보낸다”라고 내용.[10] 여담으로 둘은 같은 국내 소속사에 속해있다.[11] 지금도 재학중이라고 한다. 또한 유퀴즈에서 카이스트에서 촬영한 당시 학교 도서관에 있었다고 말해 두 자기를 깜짝 놀랬다.[12] 친구 브랜드 촬영한 것은 1년, 소속사에 들어간 것은 4개월이라고 덧붙였다.[13] 계약서에 오전에 사인하고 그날 바로 디자이너를 보러 오후에 갔다고 한다.[14] 그는 직접 워킹을 배운 적이 없고 집앞에 있는 양재천 걷는 것처럼 걸었다고 하였다.[15] 그는 일진 친구들이 급식당번을 하면 저만 급식을 조금 준다든지, 맛있는 건 안 줄 때도 있었다. 또 그림 그리려 하면 다 찢어버렸다고 한다.[16] 김고은 자기와 허석김보성 자기는 편집됐지만 최현준 자기는 최소라 자기와 함께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