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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캔디/들장미 소녀 캔디 キャンディ♥キャンディ | |
장르 | 순정 |
작가 | 스토리: 나기타 케이코[1] 작화: 이가라시 유미코 |
연재 기간 | 1975년 4월호 ~ 1979년 9월호 |
연재처 | 나카요시 |
출판사 | 코단샤 |
레이블 | KC나카요시 |
단행본 권수 | 9권 (1979. 03. 19. 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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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차 세계대전 전후의 영국과 미국을 배경으로 한 일본의 순정만화. 스토리는 나기타 케이코(名木田恵子)[2], 작화는 이가라시 유미코(いがらしゆみこ)[3]가 담당했다.원제는 중간에 하트가 들어간 '캔디♥캔디'. 잘 알려진 들장미 소녀 캔디는 한국 TV판 제목인데 이게 의외로 잘 맞는다. 요즘 애니와는 달리 고전애니가 여타 그렇듯 원작보다 더빙으로 다 본 경우가 많아서 후자의 제목이 대한민국에선 전자보다 매우 익숙하다. 다만 한국 판본 중에 원제가 캔디♥캔디인 해적판 단행본도 존재한다.
2. 발매 현황
만화판은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코단샤의 <나카요시>에서 연재된 바 있으며, 초판은 KC나카요시 레이블로 나왔다가 1991년 2권짜리 애장판, 1992년 5권짜리 특장판으로 각각 다시 나왔고, 1995년 중앙공론사를 통해 총 6권짜리 문고판을 냈다.3. 줄거리
다 읽고 나면 이게 소녀 성장물인지 운명적인 사랑이야기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지만, 기본적으로 캔디라는 밝고 씩씩한 고아 소녀가 성장하여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간다는 큰 틀 속에 있다는 점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캔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의도적으로 잘난 남자를 만나 신분 상승할 생각은 1%도 없었는데,[4] 어쩌다 보니 오만 잘난 남자들이 꼬이게 된 것. 어떻게 보면 키다리 아저씨 포지션.등장인물들의 주요 활동 무대를 기준으로 레이크우드 편, 런던 편,
전체 스토리가 주인공 캔디스 화이트 아드레이의 시점에서 전개되므로 구체적인 에피소드는 해당 문서 참조.
4. 등장인물
자세한 내용은 캔디캔디/등장인물 문서 참고하십시오.5. 수상
일본 걸작 만화(쇼와편) | ||
{{{#!wiki style="margin: 0 -1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 2009년 아사히 신문은 '일본 만화 역사의 길이 남을 걸작 쇼와 시대 만화 순위'를 발표했다. | |
1위 | 《내일의 죠》 | |
2위 | 《사자에상》 | |
3위 | 《심술쟁이 할머니 (いじわるばあさん)》 | |
4위 | 《거인의 별》 | |
5위 | 《철완 아톰》 | |
6위 | 《우주전함 야마토》 | |
7위 | 《카무이전》 | |
8위 | 《붉은 갑의 스즈노스케 (赤胴鈴之助)》 | |
9위 | 《블랙 잭》 | |
10위 | 《터치》 | |
11위 | 《베르사이유의 장미》 | |
12위 | 《불새》 | |
13위 | 《고르고13》 | |
14위 | 《맛의 달인》 | |
15위 | 《에이스를 노려라!》 | |
16위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 |
17위 | 《오소마츠 군》 | |
18위 | 《도라에몽》 | |
19위 | 《루팡 3세》 | |
20위 | 《은하철도 999》 | |
21위 | 《오바케의 Q타로》 | |
22위 | 《도카벤》 | |
23위 | 《시끌별 녀석들》 | |
24위 | 《유리가면》 | |
25위 | 《겐지모노가타리》 | |
26위 | 《하이카라씨가 간다 (はいからさんが通る)》 | |
27위 | 《이가의 카케마루 (伊賀の影丸)》 | |
28위 | 《사이보그 009》 | |
29위 | 《캔디 캔디》 | |
30위 | 《철인 28호》 | |
공동 31위 | 《어택 넘버원 (アタックNo.1) | |
《메종일각》 | ||
33위 | 《리본의 기사》 | |
34위 | 《나의 하늘 (俺の空)》 | |
공동 35위 | 《노라쿠로 (のらくろ)》 | |
《후지 산타로 (フジ三太郎)》 | ||
공동 37위 | 《캡틴》 | |
《게게게의 키타로》 | ||
《드래곤볼》 | ||
40위 | 《아돌프에게 고한다》 | |
공동 41위 | 《아이와 마코토 (愛と誠)》 | |
《시마 과장》 | ||
43위 | 《3번가의 석양 (三丁目の夕日)》 | |
44위 | 《꼬마숙녀 치에》 | |
45위 | 《천재 바카본》 | |
공동 46위 | 《닥터 슬럼프》 | |
《웃는 세일즈맨》 | ||
공동 48위 | 《여기는 잘나가는 파출소》 | |
《북두의 권》 | ||
50위 | 《에이트맨》 | |
출처 |
2021년 일본 만화 총선거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2021년 1월 2일 테레비 아사히가 발표한 신년 특집 '만화총선거 일본 국민 15만명이 뽑은 좋아하는 만화 베스트 100'의 결과다. 전 세대를 대상으로 조사했고 한 사람당 좋아하는 만화 5개를 적었다. 중복 투표는 금지됐다. | |
<colbgcolor=#1034a6><colcolor=#fff> 1위 | 《원피스》 (포인트: 33,600점) | |
2위 | 《귀멸의 칼날》 (29,100점) | |
3위 | 《슬램덩크》 (26,700점) | |
4위 | 《명탐정 코난》 (25,400점) | |
5위 | 《드래곤볼》 (22,400점) | |
6위 | 《진격의 거인》 (21,900점) | |
7위 | 《나루토》 (19,800점) | |
8위 | 《하이큐!!》 (18,700점) | |
9위 | 《강철의 연금술사》(18,500점) | |
10위 | 《죠죠의 기묘한 모험》 (17,100점) | |
11위 | 《헌터×헌터》 (16,200점) | |
12위 | 《은혼》 (16,100점) | |
13위 | 《킹덤》 (15,200점) | |
14위 | 《월드 트리거》 (11,700점) | |
15위 | 《도라에몽》 (11,300점) | |
16위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10,900점) | |
17위 | 《유유백서》 (8,600점) | |
18위 | 《블랙 잭》 (8,200점) | |
19위 | 《주술회전》 (8,000점) | |
20위 | 《나츠메 우인장》 (7,400점) | |
21위 | 《유리가면》 (7,100점) | |
22위 | 《북두의 권》 (7,000점) | |
23위 | 《블리치》 (6,950점) | |
24위 | 《터치》 (6,900점) | |
25위 | 《불새》 (6,800점) | |
26위 | 《바나나 피쉬》 (5,800점) | |
27위 | 《베르사이유의 장미》 (5,600점) | |
28위 | 《이누야샤》 (5,300점) | |
29위 | 《내일의 죠》 (5,100점) | |
30위 | 《드래곤 퀘스트 다이의 대모험》 (4,950점) | |
31위 | 《바람의 검심 -메이지 검객 낭만기-》 (4,900점) | |
32위 | 《메종일각》 (4,600점) | |
33위 | 《금색의 갓슈!!》 (4,400점) | |
34위 | 《포의 일족》 (4,100점) | |
35위 | 《여기는 잘나가는 파출소》 (4,080점) | |
36위 | 《고르고13》 (4,060점) | |
37위 | 《사자에상》 (4,040점) | |
38위 | 《거인의 별》 (4,020점) | |
39위 | 《철완 아톰》 (4,000점) | |
40위 | 《골든 카무이》 (3,950점) | |
41위 | 《도쿄 구울》 (3,900점) | |
42위 | 《도카벤》 (3,850점) | |
43위 | 《5등분의 신부》 (3,800점) | |
44위 | 《에이스를 노려라!》 (3,600점) | |
45위 | 《동물의사 Dr.스쿠르》 (3,450점) | |
46위 | 《약속의 네버랜드》 (3,400점) | |
47위 | 《더 화이팅》 (3,100점) | |
48위 | 《요괴소년 호야》 (3,000점) | |
49위 | 《마스터 키튼》 (2,900점) | |
50위 | 《카구야 님은 고백받고 싶어 ~천재들의 연애 두뇌전~》 (2,850점) | |
51위 | 《암살교실》 (2,800점) | |
52위 | 《쿠로코의 농구》 (2,750점) | |
53위 | 《흑집사》 (2,700점) | |
54위 | 《테니스의 왕자》 (2,650점) | |
55위 | 《하이카라씨가 간다》 (2,600점) | |
56위 | 《캔디캔디》 (2,300점) | |
57위 | 《시티헌터》 (2,290점) | |
58위 | 《체인소 맨》 (2,260점) | |
59위 | 《노다메 칸타빌레》 (2,230점) | |
60위 | 《기생수》 (2,200점) | |
61위 | 《시끌별 녀석들》 (2,000점) | |
62위 | 《카드캡터 사쿠라》 (1,900점) | |
63위 | 《근육맨》 (1,850점) | |
64위 | 《문호 스트레이독스》 (1,800점) | |
65위 | 《페어리 테일》 (1,790점) | |
66위 | 《두근두근 투나잇》 (1,760점) | |
67위 | 《가정교사 히트맨 REBORN!》 (1,730점) | |
68위 | 《봉신연의》 (1,700점) | |
69위 | 《사이보그 009》 (1,550점) | |
70위 | 《꽃보다 남자》 (1,500점) | |
71위 | 《철인 28호》 (1,300점) | |
72위 | 《H2》 (1,250점) | |
73위 | 《은하철도 999》 (1,200점) | |
74위 | 《데빌맨》 (1,160점) | |
75위 | 《마기》 (1,130점) | |
76위 | 《맛의 달인》 (1,100점) | |
77위 | 《아부상》 (1,050점) | |
78위 | 《우주전함 야마토》 (1,000점) | |
79위 | 《바사라》 (990점) | |
80위 | 《캡틴》 (980점) | |
81위 | 《바리바리 전설》 (960점) | |
82위 | 《히카루의 바둑》 (950점) | |
83위 | 《메이저》 (930점) | |
84위 | 《불꽃 소방대》 (920점) | |
85위 | 《지박소년 하나코 군》 (900점) | |
86위 | 《꼭두각시 서커스》 (890점) | |
87위 | 《후르츠 바스켓》 (860점) | |
88위 | 《바람의 대지》 (830점) | |
89위 | 《유한클럽》 (800점) | |
90위 | 《ARIA》 (780점) | |
91위 | 《베르세르크》 (760점) | |
92위 | 《마카로니 호렌소》 (740점) | |
93위 | 《리본의 기사》 (720점) | |
94위 | 《여친, 빌리겠습니다》 (700점) | |
95위 | 《D.Gray-man》 (690점) | |
96위 | 《스켓》 (660점) | |
97위 | 《캡틴 츠바사》 (640점) | |
98위 | 《천사가 아니야》 (600점) | |
99위 | 《3월의 라이온》 (580점) | |
100위 | 《닥터 스톤》 (560점) | |
같이 보기: 만화 총선거, 애니송 총선거 | ||
2021년 발표, 출처 1 / 출처 2 | }}}}}}}}} |
6. 한국에서의 캔디
1970년대에 '캔디캔디' 란 제목의 해적판 만화로 처음 한국에 등장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경사에서 정식으로 발매하기 위해 당시 김병준이 출장을 가서 이가라시 유미코를 만난 적이 있는데, 스토리는 빨간머리 앤과 키다리 아저씨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고 한다. 기사1977년 9월 19일부터[5] 1980년 1월 21일까지 MBC에서 매주 월요일 오후 6시마다 '캔디' 란 제목으로 애니메이션을 방영하면서 더더욱 인기를 끌었다.
1981년에는 실사판 영화까지 만들었을 정도. 특이하게 감독은 사극 전문인 최인현이 맡았다.
1983년 4월 3일부터[6] 1984년 5월 27일까지 들장미 소녀 캔디 란 제목으로 동일 방송사에서 재더빙해[7][8] 매주 일요일 아침 8시부터 1회당 2편씩 총 50분을 방영했으며 역시나 큰 인기를 얻었다. 안소니와 테리우스를 맡았던 권혁수는 오빠부대를 몰고다닐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1980년대의 대표적인 미소년, 미청년 역 전담 성우로 자리잡았다.
애니메이션 방영 이후 한국에서 고난을 헤쳐나가는 주인공은 '캔디형 주인공' 이라 불리게 되었고 머리 좀 장발로 기른 미남 남자 연예인이 나왔다 하면 별명이 테리우스가 되었으며 이러한 현상은 2010년대 이후에도 현재진행형이다.
7. 미디어 믹스
7.1. 애니메이션
캔디캔디 (1976~1979) キャンディ♡キャンディ | |||
{{{#373a3c,#dddddd {{{#!wiki style="margin: 0px -11px" {{{#!folding 작품 정보 ▼ | 원작 | 미즈키 쿄코(水木杏子) | |
치프 디렉터 | 이마자와 테츠오 시다라 히로시(設楽 博) | ||
캐릭터 설계 / 감수 | 신도 미츠오 | ||
미술 설정 | 우라타 마타지(浦田又治) | ||
음악 | 와타나베 타케오 | ||
애니메이션 제작 | 토에이 동화 | ||
제작 | NET TV 아사히 통신사 토에이 | ||
방영 기간 | 1976. 10. 01. ~ 1979. 02. 02. | ||
방송국 | NET TV / (금) 19:00 MBC | ||
한국 정식발매 | 화인프로덕션 (VHS) | ||
편당 러닝타임 | 24분 | ||
화수 | 115화 | ||
시청 등급 | 연소자 관람가 (VHS) |
한국 정식 방영 명칭 | |
MBC | 캔디(본방판) 들장미 소녀 캔디(재방판) |
화인프로덕션 | 들장미 소녀 캔디 캔디 |
애니판은 토에이 애니메이션에서 제작해 1976년 10월 1일부터 1979년 2월 2일까지 테레비 아사히계 민방을 통해 방영됐으며, 감독은 이마자와 테츠오&시다라 히로시.
7.1.1. 주제가
주제가 작곡은 와타나베 타케오가, 작사는 원작 스토리를 쓴 나기타 케이코가 했으며, 가사 속에서 캔디의 밝은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하지만 "웃으면서 달려가자 푸른 들을" 이라든가 "나 홀로 있을 땐 어쩐지 쓸쓸해지지만 그럴 땐 얘기를 나누자 거울 속의 나하고" 같은 구절 때문에 농담삼아 캔디 광년이 설이 나오기도 했다. 게이머즈에서 만화로 그려지기도 했다(...)
워낙 작품이 큰 인기를 끈 덕분에 애니메이션 주제가 역시 한일 양국에서 모두 히트를 쳤다.
오프닝의 전조부 '외로워도~슬퍼도~ 나는 안울어~'부분과 전국 노래자랑 BGM에서 실로폰 소리가 끝난 후 바로 나오는 부분의 멜로디와 비슷하다는 의견이 있다. 실제로 이를 섞어놓은 사람이 있는데 한번 직접 들어보자.
일본판은 호리에 미츠코[9]가 불렀다. 이 캔디캔디가 얼마나 메가히트를 했는지 호리에 미츠코는 해당 주제곡에 짓눌렸다고 한다. 그리고 원래 음반사에서는 동요와 같이 처리되던 애니메이션 노래가 별도 부서로 분리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발매사인 일본 컬럼비아에서 호리에 미츠코는 미소라 히바리 다음가는 거물로 취급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야말로 충공깽.
한국판은 몇가지 버전이 있는데, 1977년 더빙판은 당시 선화여자중학교 1학년생이던 소프라노 곽현주[10]가 부른 바 있고, 정여진씨가 부른 버전도 가장 잘 알려져 있고 인기 가수 혜은이도 1983년 더빙판 주제가를 불렀을 정도였다.[11] 원래 방송용은 준비 과정에서 석혜원[12]이 불렀다가 MBC 자체적으로 이런저런 얘기가 나온 끝에 혜은이가 방송용까지 맡았다.
그런데 한국판 오프닝 가사는 일본 오프닝 가사와 내용이 다르다. 원래 가사는 자신의 주근깨도 좋다는 내용이었는데 대한민국에서는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등등 어려움 속에서도 강인한 인내심으로 고난을 이겨낸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진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설에 의하면 당시 인고를 견뎌내는 어머니적 여성상을 심어주기 위해 이렇게 개사하라는 상부의 압박 때문이라고도 한다. 어찌되었든 한국판 오프닝의 작사자는 다른 이도 아닌 윤석중 선생이시다.
참고로 77년도의 첫 한국판 오프닝 가사는 위의 77년도 음원 파일을 들으면 알 수 있듯이 '외로워도'가 아니고 '괴로워도'이다. 끝부분에서도 '들장미 소녀야'는 없고 그냥 '웃어라 웃어라 웃어라 캔디야. 울면은 바보다. 캔디 캔디여.'이다.
2005학년도 수능 듣기평가에서 캔디 노래와 비교하는 지문이 출제되었다. 또 KBS2 1 대 100 158회 후반전 3단계에서 원제목에 관해 문제를 냈는데 64명 중 25명이 탈락했다.(25*7=175만원 적립)
7.1.2. 회차 목록
8. 저작권 분쟁
저작권 관련 사건 사고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5px -13px" | [[대한민국| 대한민국]] | 엘림넷과 하이온넷 사건 · 리니지 원작자와 게임사간의 불화T ·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저작권 분쟁 · 구름빵 저작권 분쟁 · 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사태 · 뽀롱뽀롱 뽀로로 저작자 확인 소송 · 수학술사 세미 EBS와 양스마일 픽쳐스간 저작권 분쟁 T · 검정 고무신 애니메이션 저작권 논란T · 그르메따라 저작권 논란 · KBO 리그 응원가 저작권 사태 · 야인시대 2차 창작물 저작권 위반 논란 · 안전가족 합성물 차단 사태 · Dark and Darker/프로젝트 애셋 도용 및 반출 논란 · 누누스터디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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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파생작, 미디어 믹스에 발생함 |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1995년경 작화가인 이가라시 유미코가 닛폰 애니메이션 사이에서 캔디캔디의 리메이크 얘기를 꺼내면서 코단샤와 20년동안 맺었던 저작권 관리계약을 해제[13]한 데에서 비롯된다. 이에 닛폰 애니메이션 측도 글쓴이인 나기타 케이코에게 시나리오 제작을 맡기고자 제안했으나, 나기타 측은 이미 끝난 작품이라는 이유로 그 요청을 거절했다. 동년 11월에 나기타와 이가라시 양측은 영리 목적의 이용 및 상품화 시 쌍방이 동의해야 한다는 저작권 계약을 맺었으나, 관리자가 없어서 흐지부지되었다.
그 사이 이가라시는 1997년, 반프레스토 및 홍콩 캔디 코퍼레이션 측과 계약을 맺어 해당 작품의 캐릭터를 이용한 스티커 카메라를 출시했고, 홍콩 옥황조출판유한공사와도 독단적으로 계약을 맺어 광둥어판 만화책을 내기도 했다. 또한 후지산케이애드워크(현 콰라스) 등지와 계약을 맺어 고급 판화를 팔거나 오카야마현 구라사키시에 본인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세워 굿즈를 파는 등, 이런 식으로 각종 캐릭터 사업을 벌인 게 점차 발각된 후 문제가 되어 원작자인 나기타 케이코가 1997년 11월에 이가라시와 후지산케이애드워크를 상대로 '복제판화 판매/배포금지'를 청구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업에 앞선 1995년 11월에 이가라시 유미코와 나기타 케이코는 캔디를 이용한 부가 사업의 경우 쌍방이 협의하에 결정하기로 계약을 한 상태였음에도 이가라시 유미코는 이를 무시했던 것이다.
이에 이가라시는 이전에 원작자와 맺은 계약을 부정하며 '나기타 케이코는 원작자도 아니고 캔디에 대한 권리도 없다'는 식으로 주장하면서 재판 도중에도 이가라시 본인과 변호사는 "항소 중이므로 결정난 건 없다"느니, "이미 원작자랑 화해한 상태이다." 등 변명으로 일관한 채 캔디 캐릭터를 이용한 사업을 벌였다. 하지만 1999년 도쿄 지방법원과 2000년 도쿄 고등법원에서의 승소를 거쳐 2001년 10월, 일본 최고재판소는 나기타 케이코의 원작자로서의 권리를 인정하는 걸로 마무리되었다.
재판 이후에는 법적으로 나기타 케이코와 이가라시 유미코 둘의 동의가 있어야만 이가라시가 쓴 작화의 활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가라시 유미코는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원작자 쪽의 권리를 부정하고 이에 대해 나기타 케이코 측도 격분하는 일이 계속되면서[14] 결국 두 사람이 관련사항에 동의해야만 사용 가능한 캔디의 저작권은 사실상 봉인되었다.
사이는 상당히 험악해서 나기타가 쓴 소설판이 다시 나왔을 때랑 캔디캔디 애니메이션 디지털 리마스터링 앨범이 2015년에 일본 콜롬비아를 통해 판매되었을 때 둘 다 이가라시의 그림이 일체 들어가지 않았다. 캔디캔디의 인기 요인에 이가라시의 그림도 무시하지 못한다는 걸 생각하면 나기타 쪽에서 상당히 강경한 입장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위와 같은 문제로 인해 만화판이건 애니판이건 다른 작화가를 쓰지 않는 이상[15] 다시 나오는 것도 요원하다. 이러다보니 일본에서는 어른의 사정으로 환상의 작품이 된 케이스로 자주 거론되며, 현지 법률/저작권 전문가들과 출판업계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많이 언급되는 판례이기도 하다.
이렇게 일본 내에서 저작권 문제가 생겨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보니 해외에서의 저작권은 누구도 신경쓰지 못하고 붕 떠버린 것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다. 즉, 한국어 번역판이나 IPTV를 통해 서비스되는 캔디 애니메이션은 몽땅 해적판인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본에서는 DVD 혹은 유료 VOD 형태로 발매가 되지 못하고 있지만 정작 대한민국에서는 화인프로덕션에서 해적판 DVD를 발매하였다. 전편 115화 20 디스크라는 분량임에도 5만원 이하로 쉽게 구하는 것이 가능. 일본에는 발매되지도 않은 DVD인데다가 가격까지도 5천엔으로 매우 저렴하여 역수입해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당연히 해적판인 만큼 한국 정식발매 항목에는 포함하지 않는다.
하지만 2004년에 캔디 주제가를 이용한 교보생명 CF[16]는 정식 판권이니 오해하지 말 것. 원작자가 특별히 허가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저작권료를 한국의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전액 기부하는 대인배스런 면모까지 보여주었다.
소설판의 경우에는 나기타 케이코가 권리를 온전히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다. 물론 이미 1980년대부터 해적판이 나왔다.
토에이 애니메이션 사이트로 들어가보면 캔디캔디 항목은 안 나온다. 누르면 그냥 처음으로 보내고 끝. 이는 전술한 원작자들 간의 저작권 분쟁 때문이다. 1992년에 총집편 극장판도 나왔다. 이때도 호리에 미츠코가 주제가를 불렀다. 단 시대가 시대인지라 성우는 몇몇 바뀌었다.
9. 패러디
- 엉덩국: 들짐승소녀 캔디. 후술할 정글고와 관련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엉덩국도 패러디를 그린 적이 있다.
- 입시명문 사립 정글고등학교: 들짐승소녀 캔듸로 패러디되었다.
- 해리와 몬스터 - 캔디-유미코
10. 속편
2007년에 속편이 나왔다. 제목은 '캔디캔디 파이널 스토리'이다. 작가 나기타 케이코는 더 이상의 속편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작가의 구성 배경 및 의도는 여기에 나와있다. 파이널 스토리가 프랑스에 발매되었을 때의 인터뷰도 존재한다.#11. 기타
- 1996년에는 일본 정보센터 출판국을 통해 이론서 <캔디캔디 박스>가 출간된 바 있는데, 당시 세타가야 미술관 학예원이던 카와카미 치에코와 잡지 편집장이던 콘도 메구미가 공동으로 썼다. 이 책에선 주인공 캔디의 이력과 신체 사이즈, 명대사, 명장면, 패션의 변화, 극중 이동경로, 족보, 타 등장인물 정보 등이 담겼으며 극중 지명 해설, 작화가 이가라시와의 인터뷰, 용어까지 담아냈다.[17]
[1] 캔디 원작을 맡을 당시 필명은 미즈키 교코(水木杏子)였다. 이 외에 다른 필명이 몇 개 더 있다.[2] 본업은 아동문학가로, 1949년 11월 28일 도쿄도에서 신문기자 나기타 카즈오(1913~1962)의 딸로 태어나 8세 때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 모지 지방으로 이주했다가 도쿄 오치아이로 또 옮겼으며, 부모를 초등학교 및 고등학교 때 각각 잃고 숙부 밑에서 자랐다. 도립 사기노미야 고등학교(東京都立鷺宮高等学校) 2학년 때 쇼가쿠칸 <여학생의 친구> 지 신인단편소설상에 입선한 뒤, 1968년 <よみがえり、そして夏は…>으로 문단에 등단하고 분카가쿠인대학 문과를 졸업했다. 한국에 번역돼서 출판된 아동문학(명랑소설, 소녀소설)로 수수께끼 러브레터 사건이 있다.#1 #2[3] 1950년 8월 26일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시 출생. 삿포로 아사히가오카 고등학교(北海道札幌旭丘高等学校) 출신 여성 만화가. 스튜디오 지브리 사장인 호시노 코지와 같은 학교 출신이다. 고교 3학년 때인 1968년에 슈에이샤 《리본》 증간호를 통해 <백상어가 있는 섬(白い鮫のいる島)>으로 데뷔하여 주로 코단샤에서 활동했다. 참고로 아들도 만화가인데, 여장남자로 유명하다. 자세한 것은 이가라시 나나미 문서 참고.(공식 홈페이지, 블로그, 페이스북)[4] 오히려 신분 상승을 꿈꾼 쪽은 캔디의 소꿉 친구인 애니 브라이튼이다.[5] 그 이전에는 미국 해나 바바라 애니 <걸리버 여행기>가 편성됐다.[6] 그 이전에는 <천년여왕>이 편성됐다.[7] 1977년본은 흑백이며, 1983년본은 컬러다.[8] 재더빙한 이유는 1977년 방영본이 유실되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1977년은 MBC 본사가 정동(현재 경향신문 사옥)에 있었으며, 1982년 언론통폐합 당시 MBC와 경향신문이 분리되어 여의도 사옥으로 옮겨갔다. 이 과정에서 방영본이 유실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은하철도 999도 유사한 상황이어서 1996년 재방송 당시 재더빙을 거쳤다.[9] 가수 겸 성우이기도 한데,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세일러 스타즈의 세일러 갤럭시아의 성우가 이 사람이다.[10] 어릴 적부터 어머니 손에 이끌려 KBS 아기노래회에서 노래를 배워 4살 무렵에 김자경오페라단에 최연소 단원으로 입단하여 오페라에서 주로 아역을 도맡았고, KBS 어린이합창단과 리틀엔젤스예술단을 거치며 국제 무대 경험도 쌓았다. 그 사이 선화여자중학교/예술고등학교-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졸업한 후, 줄리아드 스쿨에서 전문 연주자 과정을 받고 스토니브룩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땄다. 음악 커리어 동안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 오디션, 로렌 재커리 소사이어티 콩쿠르 등지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참고 자료)[11] SBS 강심장 2011년 12월 6일 방영분에서 직접 말했다.[12] 석혜원 버전은 1983년에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은하철도 999 앨범에 실려있다.[13] 이럴 경우 애니메이션판 판권을 맺은 토에이 애니메이션(당시 토에이 동화)과도 자동 결별된다.[14] 2007년 캔디캔디랑 비슷한 짝퉁 캐릭터를 들고 대만 행사에 참여한 기록이 있다. 당연하겠지만 엄청나게 까였다.[15] 어디까지나 이가라시가 쓴 작화에 의한 만화의 2차 사용만 둘의 동의가 필요하지, 원고 자체의 권리는 원작자에게 있어서 이가라시의 작화를 쓰지 않는다면 독자적으로 권리를 쓸 수 있다.[16] 배우 김희애가 해당 광고에서 캔디 주제가 개사곡을 불렀다.[17] 출처: <망가 vs 만화> - 손상익 저. 초록배매직스. 2000. p8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