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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로동당

남조선노동당에서 넘어옴
조선공산당
(신설 합당)
남조선로동당 조선로동당
(신설 합당)
남조선신민당
(신설 합당)
사회노동당
(개별 합류)
조선인민당
(신설 합당)
근로인민당
(개별 합류)
파일:남조선로동당 기.svg
남조선로동당
<colcolor=#CC0000,#ffd700> 명칭 표기 <colbgcolor=#fff,#1c1d1f>남조선노동당 (표준어)
南朝鮮勞動黨 (한자)
Workers' Party of South Korea (영어)
약칭 남로당
창당일 1946년 11월 23일
해산일 1949년 6월 24일 (조선로동당으로 신설 합당)
목적 인민민주주의 정부 수립[1]
스펙트럼 극좌
위원장 허헌
부위원장 박헌영, 이기석
당원 수 약 377,000명
통합한 정당




(1946년 11월 23일 신설 합당)
중앙당사 서울특별시
기관지 노력인민

1. 개요2. 결성3. 남한
3.1. 활동3.2. 와해
4. 북한
4.1. 활동4.2. 숙청
5. 주요 인물 및 단체6. 둘러보기

1. 개요

파일:남조선로동당 결성대회.jpg

1946년 11월 23일 서울특별시에서 조선공산당, 남조선신민당, 조선인민당 등 3당 합당으로 결성되어 초창기에는 대중 정당을 지향했으나 결국에는 공산주의 정당이 되었다. 3당 합당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조선공산당의 계보를 잇는 정당이다. 잘 알려진 약칭은 남로당.

남한에 존재하던 좌익 계열 인사들을 거의 모두 망라했기 때문에 소속 인사들의 스펙트럼은 상당히 넓은 편이었으며, 모두가 박헌영과 박헌영의 노선을 지지했던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남로당에서 전향하거나 남로당을 비판하며 빠져나온 인사들의 주장을 보면 박한영의 노선에 동의하지 못하고 지금은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할 때라고 보았거나, 백남운이 주장한 신민주주의론을 따른 인사들이 대부분이다. 무장투쟁에 가담하지 않았거나 가담했더라도 일찍 손을 턴 전직 남로당 인사들은 제2공화국 때 혁신정당인 사회당(1960년)으로 이어진다.

2.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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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15 광복 이후 항일투쟁 공로를 대중에게 인정받은 조선공산당은 합법정당이자 최대정당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노동운동으로 전국에 노동자 조직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금방 전평 등의 노동조합도 만들 수 있었다. 같은 시기에 반파시즘 투쟁 공로로 프랑스 공산당, 이탈리아 공산당이 잘 나간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좌익 정치세력은 여운형 중심의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하기까지 하였으나 미군정의 탄압으로 민주주의민족전선으로 집결했다.

미군정은 1945년 말까지 이승만, 김구 계열을 적극 지원했지만 여론은 최악이었다. 우익세력은 민중들로부터 지지기반이 약했으나 1945년 모스크바 3상회의신탁통치 오보사건으로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1946년 5월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이후 공산당은 정치활동이 힘들어졌다. 신탁통치 오보사건 이후이며 정판사 사건의 재판이 진행 중이던 1946년 8월에 미군정이 실시한 국민여론조사에 따르면 당시 국민 중 약 70%가 사회주의를 지지하고 있었다. 저 시대 사람들이 경험한 자본주의는 일본 제국주의뿐이니 놀라운 일은 아니다.

정판사 사건과 이후 이어진 탄압에 대해 공산당은 9월 총파업으로 항의하였고 이 과정에서 미군정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대중에 의해 대구 10.1 사건이 일어났다. 박헌영과 공산당 주요 간부는 1946년 9월 7일 체포령을 받자 월북했다.

이런 상황에서 3당 합당으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3당 합당을 원했다.

좌익 정치 세력은 1946년 11월에 3당 합당을 통해[2] 남조선로동당을 조직하게 되었다.[3] 초창기 남로당은 적어도 '대중 정당'을 지향하려고 했다. 당시 기준으로 '노동당'이란 개념이 공산당의 개념이 아니었다.[4]

허헌이 남로당의 초대 위원장에 선출되었고 부위원장 박헌영이 선출되었지만 당내 주도권 장악 문제로 여운형과 박헌영은 지속적으로 갈등하였다. 여운형은 우익세력과 연대해서 좌우합작을 강조했지만 박헌영은 좌우합작을 반대했다.

당권을 장악한 박헌영이 종래 여운형의 좌우합작 노선을 비판했고 여운형은 실의에 빠진 채 탈당과 함께 정계은퇴 선언을 했지만 1947년 5월에 제2차 미소공위가 개최되자 여운형은 다시 좌우합작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3. 남한

3.1. 활동

남로당 결성 초기 여론조사에서 정당 지지율 1위가 남로당, 2위가 근로인민당이었다.(출처: 김상숙, 10월 항쟁) 지지는 여순사건 이후부터 지속된 반공 선전, 정부 주도 학살에 대한 공포, 토지개혁, 빨치산들의 약탈에 대한 반감 등 복합적 이유로 조금씩 잃었다.

그러나 단독정부 수립이 본격적으로 전개 및 가시화되자 남로당은 단독정부 수립 운동 노선에 반발하여 급진적인 성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무렵에 통일임시정부 수립을 목표로 했던 좌우합작 세력 등 중도파 세력들은 여운형 암살 이후 구심점을 잃었기 때문에 사실상 명망 있는 이승만이 주창하던대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 기정사실이 되었다. 그러자 남로당은 기존의 파업활동을 넘어서 각종 테러나 무장폭동, 게릴라전, 노동자 총파업 등을 주도하면서 남한 정부를 흔들어 놓았다. 대표적으로 1948년에 발생한 2.7 총파업 사건이나 제주 4.3 사건, 여수·순천 10.19 사건이 있다.

3.2. 와해

남로당은 1950년 3월 남한 내 남로당 핵심 간부였던 김삼룡이주하가 검거되면서 완전히 붕괴되었다. 이후 여러번 재건을 시도했으나 모두 검거되며 조직 자체가 완전히 붕괴 직전에 내몰렸고, 살아남은 조직도 6.25를 계기로 북한으로 넘어가면서 남한에서는 완전히 씨가 마른다. 1951년 10월 남한에 극소수 남은 잔당이 남로당을 재건하려다 발각된 것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역사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김삼룡과 이주하 검거 과정은 여러 목격자의 증언이 엇갈린다. 검사는 김삼룡을 쫓는 과정에서 이주하를 발견하여 이주하 먼저 체포했다고 한다. 그런데 체포현장 목격자 중 하나인 박헌영 아들 원경은 김삼룡 먼저 체포되고 이주하가 김삼룡을 구할 방법을 고민하며 경찰서 근처에 있다가 체포되었다고 한다.

정태식은 또 이들을 구하려다 체포되었다.

김삼룡과 이주하는 1950년 6월 북한에 의해 역시 북한에 수감되어 있던 조만식과의 상호교환이 제안되었으나 이는 남침 이전에 벌인 평화공작이자 북한의 기만 전술이었고 결국 교환합의가 오가는 와중에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국군이 후퇴하는 과정에서 총살되었다.

그러나 완전히 반대되는 의견도 있다. 북한에서는 박헌영이 김삼룡과 이주하를 받아오기 위해 적극적으로 교환 공세를 하였는데 남한에서는 이승만이 자신의 라이벌이 될 만한 사람이자 북한의 영향력 있는 민족주의조만식을 부담스러워하여 소극적이어서 결국 부결되었다는 것이다. 상황적인 논리로만 보면 박헌영이 전쟁나기 전에 얼른 남로당 핵심인물을 받아 오기 위해 적극적이었을 가능성은 높다. 문제는 이승만의 적극성 여부인데 조선 민족주의자 여운형, 임시정부 실력자 김구 등에게 어떻게 대접했는지 생각해 보면 그럴 듯한 논리이기는 하다. 이승만2인자를 인정하지도 않고 주요 독립운동가 중 실력자들과는 전부 거리를 두고 있었다. 주로 경찰공무원, 청년들을 장악하여 자신의 지지 기반으로 삼았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을 때 조만식을 부담스러워했을 개연성 자체는 충분하다. 그러나 검거 시점인 1950년 3월이면 이미 전쟁 개시 시점이 확정된 상황이었고 굳이 3개월씩이나 시간을 끈 다음 전쟁이 임박한 6월에 가서야 맞교환을 제의할 이유가 전혀 없으며 그러한 국가급 협상이 불과 며칠 만에 끝날 사항도 아니다.

4. 북한

4.1. 활동

1949년 6월에는 북조선로동당과 통합해 하나의 조선로동당이 되었으며 동시에 북한 정부의 '무력 적화통일' 노선을 지지하는 단체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남한에서만 신경을 쓰는 사이 북한에서의 주도권은 상당 부분 잃어버렸다.[5] 실제로 남북조선로동당이 합당하여 탄생한 조선로동당의 창립기념일은 합당일이 아니라 북조선로동당(정확히는 조선로동당 북조선 분국)의 창립일로 지정되어 있는데 남로계를 완벽히 무시한 처사라고 할 수 있다. 박헌영은 그래도 명목상 북한의 부수상이었다. 월북한 남로당계 인물들이 수천에서 만까지 이르게 있었고 이들에게는 박헌영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월북 남로당계는 박헌영을 그야말로 우상숭배하듯 받드는 인물들이 많았으며 특히 젊은 청년들에게는 박헌영 헌시나 박헌영 선집이 자발적으로 발간되는 등 인기가 극에 달했다고 하지만 결국 기반이 남한에 있었고 김일성이 북한을 장악하고 있는 이상 박헌영은 북한에 넘어오는 순간 이미 정치생명은 거의 끝났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이름뿐인 부수상 겸 외무상 자리를 가졌을 뿐 박헌영은 실질적으로 김일성 눈치 보면서 정치 활동을 했다.

이 때문에 박헌영은 1950년 당시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남쪽 동지들이 호응하면 남조선 괴뢰는 무너집니다. 스탈린 동지만 도와주면 미국 애들 오기 전에 적화통일이 완료될 것입니다."라며 자신감을 표출했지만 정작 김일성은 그 주장에 대해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북한은 이를 의도적으로 미제간첩 박헌영의 의도적 공화국 전복 기도로 포장하지만 김일성은 박헌영의 '남조선 20만 남로당원 봉기설'을 믿은 것이 아니라 모택동과 스탈린의 지원을 믿었을 뿐이다.[6] 박헌영은 전황이 불리해지자 계속해서 김일성과 미군에 휴전 내지 종전을 제안하였으나 김일성은 그것을 무시했다. 그러나 북한은 '박헌영의 간첩질과 거짓말 때문에 조국통일전쟁이 실패했다'며 일방적으로 박헌영에게 책임을 전가하였다.

사실 6.25 전쟁이 벌어지기 전부터 대한민국에서는 1948년 여수·순천 10.19 사건(14연대 반란사건)을 계기로 국가보안법 제정, 국군과 경찰까지 동원해서 무고한 사람들까지 마구잡이로 쓸어버리는 잔혹한 토벌 작전을 강행했고 결국 전쟁 발발하기 몇 달 전의 남로당 세력은 거의 전멸해 버렸다. 그러나 박헌영은 김일성의 지속적인 정치적 공격으로 위기로 몰렸고 이러한 상황에서 최후의 도박으로 '남로당 봉기설'을 주장했다. 결국 전후 박헌영은 김일성에 의해서 "미제의 간첩"이라며 숙청당했다.

4.2. 숙청

전쟁은 초반에는 파죽지세로 흘러갔으나 국군과 UN군의 맹렬한 반격과 인천 상륙 작전으로 전세가 뒤집히기 시작했으며 박헌영이 의도하던 빨치산의 봉기는 당연히 일어나지 않았다.

1951년을 기점으로 전선은 고착화되었다. 전쟁을 지속해서 미군의 전비를 고갈시키고 그 사이에 유럽 전체를 집어삼키겠다면서 휴전을 끝까지 거부한 스탈린이 1953년에 사망했다. 유럽을 점령하겠다는 계획은 마셜 플랜으로 역공당했다. 막대한 전비에 학을 뗀 소련 공산당은 승산없는 전쟁을 매듭짓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고 UN측에 정전협정을 제안했는데 이를 계기로 정전협정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 자연히 미국의 전면 개입이 있기도 전에 적화통일을 한다는 북한의 지도부가 책임을 져야 할 일이었고 남한에 잠복한 20만 당원 총궐기를 주장하다가 입지가 극도로 좁아진 남로당계에게 덤터기를 씌우게 되는 계기였다.

남로당 숙청과정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게 남로당 2인자 리승엽이 '미제와 내통했다'는 혐의가 시초였다. 리승엽이 숙청당하고 '리승엽 간첩사건'으로 구실잡은 김일성은 이어 남로당 지도자인 박헌영을 숙청할 빌미를 마련했다. 1953년 3월에 박헌영은 부수상직을 상실하고 구속당했으며 남로당 간부들도 연이어 구속당했다. 휴전 협정 후 1953년에 김남천과 임화 등의 문학가들이 남로당 숙청이 시작되면서 총살당했다. 1953년~1955년까지 2년간 박헌영은 모진 고문을 받고 1955년 12월 북한 재판정에서 '미제의 간첩'으로 선고받았고 재판이 끝난 즉시 남로당 간부들은 즉결처형당했다. 그러나 박헌영만은 즉시 처형을 못 했는데 '증거불충분'이었다. 박헌영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게 그를 급히 처형했다가는 소련중국의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1956년에 8월 종파사건이 터지면서 김일성이 즉결처형을 지시해 1956년 7월 19일[7] 처형당했다. 이렇게 북한에서는 남로당이 완전히 숙청당했다.[8]

북한에서 찍은 드라마인 <한 검찰일군의 수기>에서는 완전히 권력에 눈이 먼 종자나 미국의 간첩으로 나오게 됨으로서 북한에서의 남로당은 완전히 미제반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됨으로서 북한 역사에서 완전히 숙청되었다.

5. 주요 인물 및 단체

  • 박헌영
  • 여운형
  • 허헌 - 남로당 당수. 합법적으로 정치활동이 가능했던 시절 '얼굴 간판'용으로 자주 활동했다. 당시 허헌은 변호사 출신으로 김병로, 이인과 더불어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인권변호사 3인 중 한 명으로 대중들로부터 명망 있던 인물이었다. 1951년에 사고사해서 숙청되지 않았다.
  • 박상희 - 박정희의 형이자 김종필국무총리의 장인. 김종필의 아내 박영옥이 박상희의 장녀다. 박상희는 남로당이 결성되기 직전인 대구 10.1 사건 때 경찰의 무력 진압 과정에서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정확히 보자면 박상희는 조선공산당 및 민전에서 활동했다고 보는 게 맞는데, 해당 조직이 대구 10.1 사건 직후에 남로당으로 탈바꿈하기 때문.
  • 박정희 - 대한민국의 제5-9대 대통령. 1945년 해방 이후 남로당의 군사총책이자, 남로당에서 군에 심어 놓은 프락치 상태로 활동하고 있었다. 1948년 여수·순천 10.19 사건 당시 토벌사령부에 작전참모로 차출되었으나, 진압 이후 숙군 과정에서 김창룡에 의해 남로당과의 연루가 밝혀져 체포되었다. 이때 관련 혐의로 군법회의에서 사형 구형, 무기징역 선고까지 받았던 사실이 훗날 제5대 대선 과정에서 상대 후보 윤보선매카시즘 공격으로 폭로되기도 했다. 당시 숙군 과정에서 박정희는 군부 내의 남로당 프락치들을 모두 밀고하는 조건으로 겨우 살아남았고, 이후 강제 전역을 당한 뒤 민간인 신분의 문관(文官)[9]으로 군에서 근무하였는데, 이후 한국전쟁이 터진 뒤에야 특별 조치로 다시 군인 신분으로 복귀하게 된다.
  • 김종필 - 박정희와 함께 5.16 군사정변을 도모했던 김종필도 해방 이후 한때 남로당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인물이라는 연구가 많다. 자세한 사항은 김종필/일생 항목 참조.
  • 김성곤 - 쌍용그룹 창업주, 정치인. 박정희 정권 당시 집권 여당인 민주공화당의 재정위원장을 오랫동안 지냈을 정도로 박정희의 깊은 신임을 받았다. 과거 박정희의 형인 박상희, 그리고 황태성 등과도 절친한 사이였으며, 해방 이후 남로당 간부로 활발한 활동을 했다. 대구 10.1 사건에도 박상희, 황태성 등과 함께 깊이 연관되어 있다.
  • 권오석 - 영부인 권양숙 여사의 부친. 즉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인이다.
  • 김달삼 - 제주 4.3 사건을 일으킨 반란 수괴
  • 김수영 - 1945년경 입당, 1949년 탈당.[10]
  • 이덕구
  • 김삼룡
  • 이주하
  • 리강국
  • 임화
  • 리승엽
  • 박갑동
  • 지창수 - 여수·순천 10.19 사건 14연대 반란사건 당시 주모자. 계급 상사. 일본군 출신.
  • 신불출
  • 심영 - 야인시대 방영 이후에 내가 고자라니로 유명한 그 사람이다.
  • 조선인민유격대
  • 남부군
  • 이재복 - 남로당 군사총책으로 박정희의 형이었던 박상희와 막역한 사이였으며 박정희도 그를 '삼촌'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다. 이후 박정희가 남로당에 가입하는 데 한 몫했다.
  • 이현상
  • 남도부
  • 허성택 -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의 위원장. 박헌영의 심복 중 한명으로 그와 같이 남한에서 활동하다가 걸려서 감옥에 갔다. 이후 박헌영을 따라 월복했으나 1958년 1차 당대표자회 때 오기섭, 류축운등 살아남은 국내파들과 함께 처벌당했다. 야인시대에서는 허성탁으로 나온다.
  • 황철
  • 김순남 - 당대 최고의 찬사를 받았던 작곡가. 1948년 월북
  • 김태준
  • 설정식 - 시인, 소설가, 영문학자. 미국 유학통 출신 지식인으로 해방 직후 조선문학가동맹 맹원으로 활동했고 미군정청 공보처에서 관료로 일한 적 있었다. 6.25 전쟁 발발 후 월북했고 휴전회담 때 북한측 대표 통역관을 하다가 1953년 남로당 숙청 사건 때 얽혀서 숙청되었다. 배우 김보성의 외조부이다.
  • 권오직
  • 이응렬
  • 신표성
  • 이순금
  • 박진홍
  • 이원조
  • 박치우
  • 신남철
  • 양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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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공산당 시절의 부르주아민주주의 추구에서 입장을 변경한 것이다. 출처: 김상숙, 10월 항쟁[2] 조선공산당, 조선인민당, 남조선신민당[3] 1946년 6월 22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북조선공산당'으로 바뀌면서 사실상 분리되었고 8월 29일 연안파의 조선독립동맹계열이 세운 조선신민당(남조선신민당은 이 조선신민당의 남쪽분국쯤 된다.)과 통합해서 북조선로동당<일명 북로당>이 되면서 기존의 조선공산당의 위치가 약화된 것도 영향을 받았다.[4] 당시 기준으로 '공산당' 이란 소련 공산당스탈린주의 노선을 명확히 지지하는 이념 정당을 뜻하는 정당명이었고 '노동당'은 이보다는 좀 넓은, 즉 스탈린주의 이외에 범 사회주의/공산주의 계열 좌파 그룹을 모두 포괄할 수 있고 이념적 선명성보다는 노동자 계급의 입장 대변을 우선시하는 것을 의미하는 정당이었다.[5] 1945년 해방정국에서 한반도의 주요 정치단체들은 대부분 한반도의 중심지인 서울로 몰려들었는데 박헌영과 조선공산당도 통일정부가 세워진다면 당연히 서울이 수도가 될 거라는 생각이였는지 주요 인물들이 서울에 모였다. 물론 평남은 기독교와 조만식으로 대표되는 비타협적 민족주의 인사들이 세력을 형성하여 평남 건국준비위원회를 구성하였지만 함경도는 토착 공산주의자들의 세력이 제법 강했던 지역이였는데 이들은 조선공산당 중앙부와 단절되면서 김일성 세력이 주도권을 잡았다.[6] "이 자식아, 전쟁지면 너도 책임있어" 김일성, 박헌영에 잉크병 집어 던져[7] 1955년 12월에 처형당했다고 하지만 당시 여러 정황 상 보면 7월 19일이 유력하다.#[8] 살아남은 사람으로는 박갑동이 있는데 이 사람은 사형선고까지 언도받았으나 스탈린 격하 운동으로 석방되어 북한을 기적적으로 탈출해 중국, 홍콩을 거쳐 일본으로 망명하여 현재 일본 도쿄에서 살며 반북 운동을 지휘 중이다. 자신이 남로당 중요간부 출신이라고 자칭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해방정국 시기 조선공산당 기관지 해방일보 기자이자 남로당 하급간부 출신이며 남로당 어떤 간부 명단을 봐도 안 나오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쓴 회고록과 주장들은 자신이 직접 겪은 회고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 사실관계 부분에 잘못된 정보들이 많으므로 걸러 들을 필요성이 있다.[9] 민간인 신분이지만, 군부대에 근무하는 사람. 오늘날의 군무원과 비슷하다.[10] 사실상의 강제 탈당이다. 자세한 내용은 김수영 항목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