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21 22:51:20

사마규(고양왕)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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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0080><colcolor=#fff> 고양원왕(高陽元王)
司馬珪 | 사마규
시호 원(元)
작위 고양향후(高陽鄕侯) → 정양현자(湞陽縣子) → 고양왕(高陽王)
성씨 사마(司馬)
이름 규(珪)
자장(子璋)
부친 사마부
생몰기간 ? ~ 274년

1. 개요2. 생애3.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서진의 종실로 자는 자장(子璋). 안평헌왕(安平獻王) 사마부의 7남이다.

2. 생애

젊은 시절에 재주와 명망이 있었다. 조위에서는 고양향후(高陽鄕侯)로 봉해졌으며, 하남현령(河南縣令)을 역임하였다. 뒤에 정양현자(湞陽縣子)로 진봉되었으며, 급사황문시랑(給事黃門侍郞)으로 임명되었다.

265년, 조위의 진왕 사마염이 조환으로부터 선양을 받아 제위에 오르고 진나라를 건국하니 이가 초대 황제인 무제였다. 사마규는 고양왕(高陽王)에 봉해졌고 식읍 5,570호를 받았으며, 북중랑장(北中郞將), 독업성수제군사(督鄴城守諸軍事)를 역임하였다.

270년에 입조하였는데, 당시 아버지 사마부가 고령이었기에 수도에 남아서 공양할 것을 청했다. 271년 상서우복야로 임명되었다. 이후 명성과 권세를 독점하려던 가충이 사마규를 이용하여 임개를 면직시켰다. 사마규는 274년에 훙서하였다. 무제 사마염은 당대에 명성이 높았던 사마규의 죽음을 매우 안타까워하여 거기장군(車騎將軍), 의동삼사(儀同三司)로 추증하고 원(元)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사마규는 슬하에 아들이 없어서 무제가 태원왕 사마보의 아들 사마집(司馬緝)을 사마규의 후사로 입적시켰다. 사마집은 278년에 훙서하여 애(哀)라는 시호를 받았다. 사마집도 슬하에 아들이 없어서 무제가 281년 사마옹의 아들을 사마집의 후사로 입적시킨 뒤 진정현후(眞定縣侯)로 봉하였다.

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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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계(出系)는 취소선을 치고 계자(系子)는 밑줄을 친다.
각주 [ 펼치기 · 접기 ]

[추존] [2] 황제로서의 뚜렷한 존호를 헌상받지 못했으나 다른 추존 황제와 동격배향(同格配享).[3] 친부는 의양성왕[4] 친부는 안평헌왕[5] 숙부(실제로는 종숙) 창무정후에게 출계(出系)[추존] [추존] [8] 친부는 진문제[9] 종숙(실제로는 숙부) 요동도혜왕에게 출계[10] 종숙(실제로는 숙부) 광한상왕에게 출계[추존] [12] 적장자나 두 살에 요절하여 혜제가 사실상 장남이 되었다. 항목이 존재하고 추봉(追封)되었기에 기재[13] 친부는 회남충장왕[14] 여기까지 서진[15] 친부는 오효왕[16] 백부 진헌왕에게 출계[17] 숙부 성양애왕에게 출계[18] 친부는 사마유(동래왕)[19] 백부 진헌왕에게 출계[20] 적장자였던 비릉도왕처럼 한 살에 요절했으나 추봉(追封)되었기에 기재한다.[21] 직접 난을 일으킨 적은 없는 여남문성왕 대신 팔왕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22] 백부 진세종에게 출계.[23] 친부는 진무제[24] 친부는 제헌왕[25] 백부 성도왕에게 출계[26] 친부는 제헌왕[27] 숙부 연왕 경에게 출계[28] 난을 일으킨 적은 없기에 팔왕에서 빼고 대신 효회황제를 넣는 시각도 있다.[29] 여기부터 동진[30] 친부는 진문제[31] 윤통(閏統)[32] 숙부 사마익에게 출계[33] 숙부 사마형에게 출계[34] 백부 사마랑에게 출계[35] 숙부 하비헌왕에게 출계[36] 숙부 안평왕에게 출계[37] 친부는 남궁현왕[38] 진안이 장사만 황제의 예로 올리고 시호는 왕으로 하였다.[39] 종조부 사마민에게 출계했다지만 이러면 소목에 어긋나 항렬이 꼬임[40] 종실에서 팔왕의 난에 아니 가담하고 난이 끝나가는 직전까지 살았다.[41] 친부는 단수현후. 다만 종조부에게 출계하면 항렬이 꼬여서 친부가 법적으로 종형이 되는데 이 문제는 어찌 된 건지 몰?루[추존] [43] 아니 추존되었으나 칠묘에 동격배향(同格配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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