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15:49:34

오릭스 버팔로즈/역대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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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시리즈 우승
★★★★★
1975 · 1976 · 1977 · 1996 · 2022
리그 우승
(15회)
1967 · 1968 · 1969 · 1971 · 1972 · 1975 · 1976 · 1977 · 1978 · 1984 · 1995 · 1996 · 2021 · 2022 · 2023
퍼시픽리그 전·후기 우승
(9회)
1973후기 · 1974전기 · 1975전기 · 1976전후기 · 1977전기 · 1978전후기 · 1979후기
클라이맥스 시리즈 2008 · 2014 · 2021 · 2022 · 2023
시즌 문서 2019 ·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현역 선수 경력 모리 토모야/선수 경력 · 니시카와 료마/선수 경력 · 야마자키 소이치로/선수 경력
경기장 1군 교세라 돔 오사카 · 홋토못토 필드 고베 · 2군 마이시마 베이스볼 스타디움 · 지방 홈구장 와카사 스타디움 교토
홈 중계 채널 파일:J SPORTS 3 로고.svg
주요 인물 감독 키시다 마모루 · 선수회장 스기모토 유타로 · 주장 공석
구단 상세 정보 역사 ·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 · 선수단 및 등번호 · 역대 선수 · 응원가 · 유니폼 · 버팔로 벨 · 10.2 결전 · 칠석의 비극 · 오릭스-라쿠텐 분배 드래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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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개막전 선발 투수(한큐-오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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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영구결번3. 준영구결번4. 투수5. 포수6. 내야수7. 외야수8. 구단 출신 메이저리거

1. 개요

오릭스 버팔로즈의 역대 선수들에 대해 서술한 문서.

2. 영구결번

3. 준영구결번

  • 51. 스즈키 이치로
    1990년대 중후반의 퍼시픽리그를 평정하고 메이저리그로 건너가서 미일 통산 최다 안타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에서만 통산 3000안타를 친 전설의 타자. 퇴단 이후 이 팀에서 51번을 단 선수가 1명도 없어서 사실상 준영구결번으로 남아 있다. 구단에서는 51번을 달아도 된다고 했지만 당연히 전 주인의 존재감이 존재감이다 보니 오릭스 선수들이 꺼리고 있다.

4. 투수

5. 포수

6. 내야수

  • 래리 레인즈 (1953 - 1954, 1962)
  • 로베르토 바르본 (1955 - 1964)
  • 타카이 야스히로 (1964 - 1982)
    • 프로 통산 27개의 대타홈런을 기록한 세계 최다 대타 홈런 기록 보유자. 1975년 지명타자 제도가 도입되자 주전 지명타자로 활약하며 1977년 지명타자 부문 베스트나인에 뽑히고 2년 연속 규정타석 3할을 기록하기도 했다.
  • 대릴 스펜서 (1964 - 1968, 1971 - 1972)
    • 30홈런을 3차례 기록했던 거포 내야수. 1965년엔 노무라 카츠야와 타격 3관왕 경쟁을 했지만 외국인 선수에게 타이틀을 넘겨줄 수 없다는 투수들의 기피와 교통사고로 인한 골절이 겹쳐 최고출루율 타이틀만 획득했다. 이때 타이틀 견제가 목적인 8연타석 고의사구를 기록하기도 했는데, 항의 차원에서 방망이를 거꾸로 잡고 타석에 서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또 같은 해에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지만 당시 일본프로야구는 이 기록에 대한 인식은 커녕 개념도 아예 없어서 이걸 언급하지 않은 기자들에게 의문을 제기해 이후 사이클링 히트가 공식 기록에 반영되는 계기가 되었다. 1968년을 끝으로 퇴단 후 개인 사업을 하다 주식투자 실패로 빈곤해진 생계를 지탱하기 위해 1971년에 선수 겸 코치로 복귀했으나 당시 나이가 이미 43세였던 탓에 한큐에서의 2번째 선수생활은 별 활약 없이 2년 만인 1972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은퇴 후 독립리그 감독 등으로 활동하다 2017년에 사망했다.
  • 카토 히데지 (1969 - 1982)
    • 같은 해에 함께 드래프트 지명을 받았던 후쿠모토 유타카[8], 야마다 히사시와 함께 한큐 브레이브스의 70년대 황금기를 이끌며 1975년 퍼시픽리그 MVP, 수위타자 2회, 타점왕 3회, 최고출루율 3회 수상의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 강타자 1루수. 노무라 카츠야의 뒤를 잇는 통산 희생 플라이 2위(105개) 보유자다. 다만 은퇴 때까지 한큐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았던 후쿠모토와 야마다와는 달리 카토는 저 둘보다 다소 빨리 기량 하락이 시작되면서 말년엔 한큐를 떠나 히로시마, 킨테츠, 요미우리, 난카이 4개팀을 떠도는 저니맨 생활을 했다. 다만 저니맨 생활을 했음에도 완전히 하락하진 않은 기량을 뽐내며 꾸준히 뛴 결과 현역 마지막 시즌인 1987년에 통산 2천안타를 달성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고 은퇴했다.
  • 오하시 유타카 (1972 - 1982)
  • 바비 마르카노 (1975 - 1982)
    • 베네수엘라 출신 야구선수로 한큐의 일본시리즈 3연패 당시 주전 2루수. 1978년 타점왕. 한큐에서 8년간 뛴 뒤 1983년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이적해 3년간 뛴 후 은퇴했다. 랜디 바스, 부머 웰즈 등처럼 화려한 플레이를 보여준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일본에서 긴 시간 동안 꾸준히 활약하면서 통산 1418안타, 232홈런, 817타점이라는 훌륭한 스탯을 기록했다. 은퇴 후 불과 5년 만인 1990년에 폐암으로 3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증조할아버지가 일본인이라는 설이 나돌았었지만 진상이 확인된 건 아니다.
  • 마츠나가 히로미 (1978 - 1992)
  • 유미오카 케이지로 (1981 - 1991)
  • 후쿠하라 미네오 (1982 - 1992)
  • 부머 웰즈 (1983 - 1991)
    • 한큐의 80년대 주전 거포. 1984년 일본프로야구 최초의 외국인 타격 3관왕을 달성했다. 한신 타이거스랜디 바스, 롯데 오리온즈의 레론 리 등과 더불어 일본 프로야구 역대 최고 외국인 선수 논쟁에 반드시 들어오는 선수이다. 1992년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로 이적해 그 해 타점왕 수상 후 노쇠화를 이유로 퇴단하며 은퇴.
  • 범프 윌스 (1983 - 1984)
    • LA 다저스의 레전드 모리 윌스의 아들. 메이저리그 통산 831경기 출장, 196도루의 나름 준수한 성적을 올려 4년 4억엔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에 계약했지만 워크에식이 좋지 않았던 탓에 일본에서는 폭망했다. 여담으로 당시 흥행 문제로 고심하던 한큐가 야구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이벤트로 후쿠모토 유타카와 함께 과 그라운드에서 60m 달리기 경주를 한 에피소드가 있다. 결과는 경주마가 인조잔디의 감촉에 당황해 기수의 지시를 듣지 않고 우왕좌왕한 끝에 윌스가 승리.
  • 후쿠라 준이치 (1985 - 1997)
    • 2016~2018 오릭스 1군 감독. 2019년 중반부터 GM(단장 및 팀 편성부장) 역임 중.
  • 오가와 히로후미 (1989 - 2000)
  • 마츠야마 히데아키 (1990 - 1998)
  • 트로이 닐 (1995 - 2000)
    • 이치로 등과 함께 오릭스의 중심타선을 이루며 1996년 일본시리즈 MVP를 수상했으나, 우리나라에선 2001년 두산 베어스에 입단했다가 폭행사건으로 퇴출된 먹튀로 유명하다(...)
  • 바바 토시후미 (1994 - 1997)
  • 오시마 코이치 (1996 - 2004)
  • 시오자키 마코토 (1997 - 2010)
  • 시오타니 가즈히코 (2002 - 2005)
  • 고토 미츠타카 (2002 - 2013)

    • 오릭스 블루웨이브 출신 선수로는 가장 오랫동안 버팔로즈에 남았던 선수이자 마지막 블루웨이브 출신 선수. 한국에서는 이대호의 일본 진출 첫 해의 3번 타자로 기억될 것이다. 장타력은 센터 내야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나름 준수했으나 선구안이 나쁜 탓에 출루율이 낮았고 부진한 와중에도 중심타선에 배치되다보니 이대호의 팬들에게는 갖은 욕을 얻어먹었다. 아무튼 블루웨이브 출신으로는 오릭스에서 마지막까지 트레이드되지 않고 주전으로 남아 오랫동안 활약한 프랜차이즈 스타였으나 기량 저하로 츠치야 텟페이와 트레이드되어 라쿠텐으로 이적했고, 2016년을 끝으로 방출되어 은퇴한 뒤 2020년까지 오릭스에서 코치를 맡다가 2021년부터 독립리그 구단인 이시카와 밀리언 스타즈에서 지도자를 맡고 있다. 이시카와에선 2022년부터 선수 겸 감독으로 현역에 복귀했다.
  • 히라노 케이이치 (2002 - 2007, 2013 - 2015)
    • 팀 최후의 오릭스 블루웨이브 출신 선수 중 하나. 괴짜스러운 언행과 성격으로 컬트적인 인기가 있던 선수로, 키는 작았지만 평균 이상의 컨택과 수비력을 가졌다. 2004년부터 주전 2루수를 차지했지만 2006년 수비 도중 부상당하면서 몰락했고, 한 수 아래로 평가받던 고토에게 밀려버리면서[9] 결국 한신으로 이적했다. 한신 이적후에 타격포텐이 다시 터지면서 2010년에 타율 .350[10]을 기록하기까지 하는 등의 교타자로 활약했고 내외야를 오가며 호수비를 보여주다 FA로 친정팀에 금의환향했다. 그러나 FA 이적 후 또다시 부진한 성적을 거두면서 타니 요시토모와 같은 해 은퇴했다.
  • 야마사키 타케시 (2003 - 2004)
  • 호세 오티스 (2003 - 2004)
  • 시마무라 잇키 (2004 - 2010)
  • 미즈구치 에이지 (2005 - 2007)
  • 아베 마사히로 (2005 - 2009)
  • 키타가와 히로토시 (2005 - 2012)
    •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 문서에 나오는 9회 말 3점차로 뒤진 상황에서 터진 세계 유일의 '대타 역전 만루 끝내기 리그 우승 홈런'의 주인공.
  • 클리프 브룸바 (2005 - 2006)
  • 기요하라 가즈히로 (2006 - 2008)
  • 나카무라 노리히로 (2006)
  • 그렉 라로카 (2007 - 2010)
  • 알렉스 카브레라 (2008 - 2010)
  • 호세 페르난데스(1974) (2009, 2013)
  • 아롬 발디리스 (2010 - 2013)
  • 이승엽 (2011)
  • 이대호 (2012 - 2013)
  • 코지마 슈헤이 (2012 - 2020)

    • 내, 외야를 두루 보는 유틸리티 플레이어였으나 타격이 나빠서 백업에 머무르다 2020년을 끝으로 전력외통보를 받고 은퇴. 이후 코치로 전임했다.
  • 윌리 모 페냐 (2014)
  • 오쿠나미 쿄 (2013 - 2017)

    • 구단의 흑역사. 2017년 5월 17일 속도위반 운전으로 적발되어 면허정지 30일에 처해졌는데, 불과 5일 만에 오사카 시내에서 면허정지 상태에서 접촉사고로 2명을 경상에 빠트린 바람에 무기한 근신 처분을 받고 결국 동년 8월에 방출되었다. 방출 이후 야구선수로서 재기를 모색하는 듯 했으나 여고생 성매매 혐의로 2019년 3월 14일 경찰에 체포되는 것도 모자라, 같은 해에 경찰로 가장하여 현금이나 카드를 갈취한 혐의로 5월 30일에 다시 경찰에 체포되었고 끝내 9월 24일 성매매 혐의, 사기 혐의에 대해 고베 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이 선고되며 빨간줄이 그이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실 야구 선수로서의 재기 자체도 본인의 불성실함으로 무산시켰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멘탈레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 코야노 에이이치 (2015 - 2018)

    • 2014년 시즌 후 FA를 선언해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서 오릭스로 이적했으나 크게 활약하진 못하고 2018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라쿠텐 코치를 거쳐 오릭스에 코치로 복귀했다가 2024년 시즌 종료 후 사임.
  • 크리스 마레로 (2017 - 2019)
    일본프로야구 10만호 홈런의 주인공인데, 일본에서 첫 홈런을 쳤을 때 누의 공과를 저질러 그 홈런이 무산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누의 공과 덕분에 10만호 홈런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러나 첫 해 이후론 공갈포 먹튀에 그친채 2019년을 끝으로 방출. 메이저리그에선 드래프트 1라운더에 뽑힐 만큼 기대를 받은 유망주였지만 일본에서도 성공하지 못했다. 사촌동생 데븐 마레로도 똑같이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1라운더인데 이쪽 역시 메이저리그에선 성공하지 못했고, 형 크리스찬 마레로[11], 삼촌 엘리 마레로[12], 오촌 조카 엘리 마레로[13]도 야구선수.
  • 시라사키 히로유키 (2018 - 2020)
    •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에서 포수 타카조 슈토와 함께 2018년 트레이드로 입단했다. 오릭스에서는 포수 이토 히카루와 투수 아카마 켄을 보냈다.
  • 아델린 로드리게스 (2020)
    • 2019년 시즌 전에 치바 롯데 마린즈의 입단 테스트를 받았으나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는 이유로 탈락시켜줄 것을 요구하고 중도귀국한 흑역사가 있다. 다만 2019년에도 트리플 A에서만 뛰면서 일본행.

7. 외야수

  • 나가이케 아츠시[14] (1966 - 1979)
  • 후쿠모토 유타카 (1969 - 1988)
    • 리키 헨더슨이 경신하기 전까지 통산 1065도루로 통산 도루 세계기록 보유자였다. 물론 현재도 일본 기록 보유자. 1시즌 106도루를 기록한 적이 있는 세기의 도루왕.
  • 미노다 코지(1976 - 1987)
    • 30-30 클럽 2회 가입자.(1980, 1983) 1983년은 3할 타율까지 찍으면서 '트리플 스리'도 달성했다. 1980년에는 그보다 더 진기한 기록인 30홈런-30도루-30희생타(...)를 기록하기도 했던 다재다능한 선수. 쉽게 설명하자면 박건우 상위호환이 되시것다. 하지만 85시즌 헤드샷을 당한 직후 노쇠화기미가 보인데다가, 어느 프런트 직원의 설사 유망주 발언으로[15] 프런트와도 불화가 심해지면서 87시즌 직후 본인이 트레이드 요구했던 고향팀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아닌 저 멀리 도쿄에 있는 요미우리로 쫓겨났다. 요미우리에선 1989년 일본시리즈 역스윕때 4차전에서 포문을 여는 홈주루를 시전하고 5~7차전도 4차전처럼 1번타자로 선발출장하면서 고향팀에게 털렸던 1984년 일본시리즈의 한을 풀었다. 담해 은퇴하고 코치까지 지냈다.
  • 코바야시 신야 (1978 - 1987)
  • 야마모리 마사후미 (1979 - 1994)
  • 이시미네 가즈히코 (1979 - 1993)
    • 통산 269홈런, 베스트나인 3회(외야수 1회 - 1983, 지명타자 2회 - 1986-87), 1990년 타점왕 등의 기록을 남긴 우타 거포로 오키나와 출신으로서는 최고의 성적을 남긴 타자다. 2014년 고양 원더스, 2015년 kt wiz의 타격코치를 지냈다.
  • 쿠마노 테루미츠 (1985 - 1991, 1994)
    1985년 신인왕. 하지만 이쪽도 전년도 신인왕이었던 같은 팀의 후지타 히로마사처럼 그 해 이후론 신인왕 시즌만큼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1992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었다가 1994년 복귀해 그 해를 끝으로 은퇴했다.
  • 모토니시 아츠히로 (1987 - 1997)
  • 후지이 야스오 (1987 - 2002)
  • 카도타 히로미츠 (1989 - 1990)
  • 타구치 소 (1992 - 2001, 2010 - 2011)
  • 스즈키 이치로 (1992 - 2000)
  • 타니 요시토모 (1997 - 2006, 2014 - 2015)
    • 히라노와 함께 팀 최후의 오릭스 블루웨이브 출신 선수 중 하나. 암흑기 블루웨이브의 자존심과도 같았던 선수로 정교한 타격과 빠른 발을 앞세워 전성기 리그 정상급 외야수로 활약했다. 2000안타를 얼마 안 남기고 요미우리에서 기량저하로 방출된 뒤 친정팀에서 2000안타를 노렸으나 노쇠화가 완연한 탓에 이 기록을 달성하지 못하고 히라노와 같은 해 은퇴했다.
  • 하비 풀리엄 (1998 - 1999)
  • 로베르토 페레즈 (1999)
  • 아이카와 료타 (1999 - 2010)
  • 하야카와 다이스케 (2002 - 2006)
  • 무라마츠 아리히토 (2004 - 2008)
  • 사카구치 토모타카 (2005 - 2015)
    • 팀 최후의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 출신 타자.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빠른 발과 정교한 타격을 자랑했던 교타자로 오이시 다이지로-오카다 아키노부 감독 시기의 부동의 리드오프 중견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2012년부터 타격 침체와 잦은 부상 등으로 성적이 저하되면서 2015년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고, 이후 이적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리드오프의 한 축을 맡아 재기에 성공하며 제2의 전성기를 열어가다 2022년 은퇴했다.
  • 시모야마 신지 (2005 - 2011)
  • 카림 가르시아 (2005 - 2006)
  • 터피 로즈 (2007 - 2009)
  • 오제 히로유키 (2008 - 2009)
    • 오릭스 버팔로즈 시즌 항목에 언급된 2010년 스프링캠프 기간 도중 사망한 젊은 외야수. 세상을 떠난 시기가 2010년 시즌 전이라 활동 기간을 2009년까지로 서술했다.
  • 오무라 나오유키 (2009 - 2010)
  • 스테판 로메로 (2017 - 2019, 2021)
    • 2017년에 입단한 용병으로 2017년에는 잘 했으나 2018년부터 2019년 시즌 초반까지 엄청난 부진에 빠져있었다. 2019년 시즌 중반부터 미친듯이 몰아치면서 완벽한 먹튀였던 2018년과는 달리 2019년에는 꽤 괜찮은 성적을 냈지만 결국 방출. 이것은 방출이라기 보다는 로메로 대리인의 연봉협상 실패라고 보는 게 맞다. 이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주워가면서 2020년에도 일본에서 뛰게 되었다. 2021년 친정팀에 복귀했으나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시즌 도중 방출.
  • 조이 메네세스 (2019)
    • 2018년 트리플 A IL 홈런왕, 타격왕. 사실 트리플A 첫 시즌이 2018년이라 존버하면 메이저리그 콜업 가능성은 꽤 높았음에도 불구하고[16] 2019시즌에 바로 일본행을 택한 케이스. 그러나 2019년 5월부터는 부진에 빠져 2군에 가 있었다가, 금지약물 복용 사실이 적발되어 6월에 퇴출되었다.
  • 마츠이 유스케 (2019 - 2020)
  • 니시우라 하야토 (2018 - 2021)
    • 2018년 드래프트 6순위로 입단한 수비가 강점인 고졸 외야 유망주로, 2020년 11월 경기 도중 통증을 느껴 병원 검진 결과 왼쪽 대퇴골 골절 진단을 받았는데, 추가 정밀 검진 결과 난치병인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17] 판정을 받은 뒤 2020년 12월에 왼쪽 대퇴골두, 2021년 2월에 오른쪽 대퇴골두 이식 수술을 받고 당해 육성선수로 전환되어 재활에 매진하다가 결국 버티지 못하고 2021 시즌 막바지 즈음에 1999년생(만 21세)이라는 한창 젊은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다. 2022년 1월에 야구 유튜브 qooninTV를 통해 오랜만에 그라운드에 복귀하여 연식야구 데뷔전을 가졌다. 스윙에는 크게 문제가 없을 만큼 상태는 갈수록 호전되는 모양.[18]

8. 구단 출신 메이저리거


[1] 정확히는 최다탈삼진을 1956~57년 2년 연속으로 기록한 적이 있었으나, 당시엔 탈삼진 타이틀을 시상하지 않았다.[2] 다만 카지모토 본인이 타이틀에 욕심을 가지는 성격이 아니었던 점도 있었다. 실제로 시즌 막판에 감독이 카지모토에게 다승왕을 주기 위해 이기는 경기에서 구원 등판을 시키려고 했으나 "남의 승리를 가로채는 짓은 참아 주십시오"라고 등판을 거부한 적도 있었고, 본인이 승리투수가 되는 것에도 별 집착이 없었기 때문에 은퇴 시즌인 1973년에는 자신의 통산 승리가 통산 패전을 웃돌 수 있게 마찬가지로 이기는 경기에서 구원 등판을 시키려는 니시모토 유키오 감독의 제안에도 이를 거부한 적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선 카지모토 본인이 어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10대 0으로 이기는 것보다는 0대 1로 지는 게 좋다. 승패보다는 충실한 투구를 했는지의 여부가 나한테는 더 중요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성격 때문인지 현역 시절이나 지도자 시절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존경을 받았다. 심지어 경쟁 상대였던 노무라 카츠야는 "투수가 아니라 부처님 같은 성격이다"하고 했을 정도(...)[3] 그러나 플레이오프에서 킨테츠 버팔로즈에게 패배해 킨테츠의 첫 리그 우승을 허용했다.[4] 애니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보면 타키가와 크리스 유우의 아버지가 있는데 그 분 모델이 이 분으로 추정된다. 현역시절 일본에서 좋은 성적을 낸 후 은퇴 뒤에 연기나 예능계에서 활약했다는 점이 유사하다.[5] 한화 이글스에서 뛰었던 그 선수가 맞다. 심지어 한화 시절보다 훨씬 잘 던졌다![6] 다만 판정 자체는 옳았다. 다음 날 신문에 도이 쇼조의 발이 에 닿은 사진이 올라온 것.[7] 오 본인의 언급에 의하면 일본시리즈에서 자신이 타석에 설 때마다 나카자와가 뜬금없는 타이밍에 이상한 구호를 외치는 등의 기행을 계속해서 저지르는 통에 집중을 하기 힘들어서 계속 흔들리게 되었다고 한다.[8] 이쪽은 파나소닉(당시엔 마츠시타) 사회인 야구팀 동기이기도 하다. 후쿠모토는 아예 카토 덕에 프로 데뷔가 가능했다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9] 입단 당시 히라노는 자유획득제도(상위지명 후보가 희망 팀 선언 후 우선 교섭을 하던 제도로, 이전의 역지명 제도와 비슷하다. 2006년 폐지)로 입단한 사실상 1라운더였고, 고토는 같은 해에 10라운더로 입단한 하위픽이었다. 하지만 입단 후 히라노가 못한 건 아니지만 고토가 예상 외로 잘하는 바람에 거의 동급의 선수로 평가 받게 되었다.[10] 아오키 노리치카에게 밀려 수위타자 수상엔 실패했다.[11] 메이저리그 22라운드 지명자로 지명 때부터 동생이랑 사촌동생보다 기대치가 낮았고 트리플 A가 최고기록이었다. 2015년에는 멕시칸리그에 입단하였으나 두 달 만에 방출.[12]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3라운드 출신으로 10년 동안 724경기에 출장. 일가들 중 가장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다.[13]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8라운드 지명. 현재 2년차인데 싱글 A에서 멘도사 라인의 타격을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 엘리 마레로와는 한글 표기법은 같지만 알파벳이 달라서 주니어가 아니다.[14] 1978년까진 나가이케 토쿠지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1979년부터 개명.[15] 경기 관련 문제 때문에 경기 직전 설사를 해서 화장실로 달려갔던 경우가 많았다.[16] 그러나 성장세가 느려서 유망주라고 하기엔 나이가 꽤 많았다. 그래서 메이저리그 콜업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는 의견도 있었다. 뭐 약쟁이로 밝혀진 지금이야...[17] KBO 리그에서 뛰었던 "캐넌" 김재현이 앓았던 그 병이 맞다.[18] 경기에서도 4타석 3타수 2안타 1볼넷으로 프로출신 어디 안 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뛰는것에는 한계가 있어서 수비를 할 수 없는 탓에 지명타자로 출전했고 출루시에는 특별규정을 적용해 주루 플레이만 대신 해주는 대주자를 따로 두고 경기를 치렀다. 어느정도로 한계가 있었냐면 4번째 타석에선 우익수 키를 넘기는 큰 타구를 치고도 1루에 겨우 도착하는 수준이었다.해당 영상[19] 2016년 기준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마지막 현역 선수였고 2019년 은퇴하며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모든 선수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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