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29 23:11:52

와다 가즈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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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003595><tablebgcolor=#003595> 파일:주니치 드래곤즈 엠블럼.svg주니치 드래곤즈
2024 시즌 코칭스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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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0,#e5e5e5
감독 73 타츠나미 카즈요시
1군 88 카타오카 아츠시(수석코치) · 76 오츠카 아키노리(투수코치) · 83 야마이 다이스케(투수코치)
75 와다 카즈히로(타격코치) · 86 우에다 요시노리(타격코치) · 80 오다 코헤이(포수코치)
71 도노우에 나오미치(내야수비·주루코치) · 79 오니시 다카유키(외야수비·주루코치)
2군 89 이노우에 카즈키(2군감독) · 77 오치아이 에이지(투수코치 겸 육성코치) · 82 아사오 타쿠야(투수코치)
78 모리노 마사히코(타격코치) · 84 후쿠다 노부마사(타격코치) · 72 오노 쇼타(포수코치)
81 모리코시 유토(내야수비·주루코치) · 87 나카무라 유타카(외야수비·주루코치) · 85 와타나베 히로유키(육성코치)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외야수육성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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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다 가즈히로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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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04_seibu.png
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2004

파일:2004 아테네 올림픽 로고.svg
2004 아테네 올림픽
{{{#bd5c24 동메달}}}
2004

파일: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로고.svg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c7bc69 우승 반지}}}
2006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10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MVP
알렉스 라미레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와다 가즈히로
(주니치 드래곤즈)
아사오 타쿠야
(주니치 드래곤즈)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2002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지명타자 부문 베스트 나인
프랭크 볼릭
(치바 롯데 마린즈)
와다 가즈히로
(세이부 라이온즈)
알렉스 카브레라
(세이부 라이온즈)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br] 2003~2006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외야수 부문 베스트 나인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10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외야수 부문 베스트나인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2005 퍼시픽 리그 수위타자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2005 퍼시픽 리그 최다 안타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10년 센트럴 리그 최고 출루율

세이부 라이온즈 등번호 22번
시미즈 요시유키
(1993~1996)
와다 가즈히로
(1997~1999)
나카지마 사토시
(2000~2002)
세이부 라이온즈 등번호 5번
나카지마 사토시
(1998~1999)
와다 가즈히로
(2000~2007)
이시이 요시히토
(2008~2011)
{{{#fff [[주니치 드래곤즈|주니치 드래곤즈]] 등번호 5번}}}
와타나베 히로유키
(1996~2007)
와다 가즈히로
(2008~2015)
아베 토시키
(2016~2022)
{{{#fff [[주니치 드래곤즈|주니치 드래곤즈]] 등번호 75번}}}
타케야마 신고
(2020~2021)
와다 가즈히로
(2023~)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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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와다 가즈히로.jpg
<colcolor=#ffffff> 주니치 드래곤즈 No.75
<colbgcolor=#003570> 와다 가즈히로
和田一浩 | Wada Kazuhiro
출생 1972년 6월 19일 ([age(1972-06-19)]세)
기후현 기후시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학력 기후현립 기후 상업 고등학교 - 토호쿠복지대학
신체 182cm, 90kg
포지션 외야수, 포수, 지명타자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6년 드래프트 4라운드 (전체 41번, 세이부)
소속팀 세이부 라이온즈 (1997~2007)
주니치 드래곤즈 (2008~2015)
지도자 주니치 드래곤즈 1군 타격코치 (2023~)
응원가 세이부 시절[1]
주니치 시절(2008~2014)[2]
주니치 시절(2015)[3]

1. 개요2. 플레이 스타일3. 선수 경력4. 통산 기록5. 여담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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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전 프로야구 선수.

현재는 NHK에서 야구해설자와 닛칸스포츠에서 야구평론가로써 활동하고 있으며, 2023년 주니치 드래곤즈의 신임 타격 코치 후보로 부상 중에 있다. 실제로 주니치 구단에서 와다에게 이미 취임 요청을 한 상황이라고.

2. 플레이 스타일

파일:和田一浩2004.gif 파일:和田一浩2009.gif
세이부 시절 타격폼[4] 주니치 시절 타격폼[5][6]
사회인야구 출신 대형 포수 유망주로 주목받았지만 30세가 되도록 제대로 기회를 못 잡다 외야수/지명타자로 전향한 뒤 타격 포텐이 대폭발한 선수로, 2000년대 전반~중반엔 세이부, 2000년대 후반부터 은퇴할 때까지는 FA 이적한 주니치에서 팀을 대표하는 슬러거로 활약한 우타자. 통산 안타의 90% 이상을 30대 이후에 때려낸, 일본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대기만성형 선수였다.

극단적인 오픈 스탠스 타격폼[7] 에서 나오는 허리의 회전력과 높이 들어올린 배트 헤드가 등에 닿을 만큼의 풀스윙으로 장타를 쭉쭉 뽑아내는 타자. 오픈 스탠스로 타격함에도 불구하고 몸쪽 공 공략도 수준급으로 해내었으며, 좌투수를 상대하면서도 안정적인 타율과 장타력을 뽐냈다.[8] 코어 근육과 오른손의 손목힘을 타고났기 때문에 밀어치는 홈런도 굉장히 많이 기록하였다. 2009년 비시즌에 오치아이 히로미츠 당시 주니치 감독으로부터 "쓸데없는 것을 없애라"며 조언을 듣고 왼다리를 덜 벌리고 일반적인 스퀘어 스탠스 폼과 비슷하게 타격하였는데, 이 폼이 완벽히 자리를 잡은 2010년에 커리어 하이 성적을 기록한다. 허나 2011년 도입된 통일구의 영향으로 타율과 홈런이 뚝 떨어지자 2013년부터 세이부 시절의 중간만큼만 벌리며 절충된 타격폼을 사용. 잠깐의 회광반조를 이룬 후 에이징 커브의 영향으로 타격면에서의 완만한 하강곡선을 그렸다. 사실 성적만 놓고 보면 팀 내에서도 한 손에 들 수 있을 정도로 좋았는데, 직전인 2014 시즌 말미 무릎 수술을 받고 2015년에 2달 정도 경기를 빠졌을 때에 "생각대로 경기가 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고 한다.

30홈런 이상을 여러 차례 기록한 장타자임에도 타구의 탄도가 나카무라 타케야알렉스 카브레라처럼 높지는 않은데, 본인은 홈런을 안타의 연장이라고 생각하기에 의식적으로 타구를 높이 띄우려고 어퍼스윙을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마쓰나카 노부히코와 비슷하게 레벨스윙을 하며 공에 백스핀을 걸어 타구를 멀리 보내는 유형. 반면 타구의 속도는 위의 움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정말 엄청나게 빠르다. 축이 되는 오른발에 모든 체중을 싣고 임팩트 순간에 모든 힘을 배트 중심에 이동시키기에 가능한 것. 거기다가 배트 스피드는 NPB 최고라는 것이 이견의 여지가 없을 만큼 빠르기도 하고.[9] 그렇기에 와다의 홈런은 일명 문샷보다는 빠르게 넘어가는 라인드라이브성 홈런이 많다.

3. 선수 경력

3.1. 세이부 라이온즈

토호쿠 복지대학과 사회인야구팀 코베 제철을 거쳐 1996년 드래프트 4순위로 세이부 라이온즈에 입단하게 되었다.

당초엔 포수로 입단했지만 당시 주전 포수였던 이토 츠토무가 건재했고 거기에 오릭스에서 주전 포수를 맡았던 나카지마 사토시까지 와서 경쟁을 벌이는 통에 데뷔 초반엔 출장 기회를 많이 받지 못했고, 출장 기회와 타격 실력을 살리기 위해 외야수에도 도전하게 된다.

그러다 2000년부터 서서히 1군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외야수로 완전히 전향한 2002년에 지명타자 롤을 맡아 만 30세의 나이로 데뷔 이래 처음으로 규정타석을 채워 타율 .319/OPS .968, 33홈런 81타점이란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단박에 세이부의 새로운 주포로 부상했고, 지명타자 베스트나인을 수상했다.[10]

이후에도 2004년까지 3년 연속 3할-30홈런, 2003~2006년 4년 연속으로 외야수 베스트나인을 수상하며 계속해서 세이부의 중심타자로 활약했고, 2005년엔 27홈런에 그치며 아쉽게 4년 연속 30홈런에 실패했지만 153안타, 타율 .322로 퍼시픽리그 수위타자, 최다안타를 수상했다.

2007년 시즌 종료 후 FA를 선언했고, 연봉 2억 8천만엔+성과금의 3년 계약으로 주니치 드래곤즈와 계약했다.[11]

3.2. 주니치 드래곤즈

주니치에서도 중심타자를 맡으며 3년 연속 3할을 기록하는 등 순조롭게 활약을 이어갔고, 2010년엔 타율 .337/OPS 1.061[12] 37홈런 93타점의 커리어하이를 찍으며 주니치의 리그 우승을 이끈 공로로 센트럴리그 MVP를 수상했다. 당시 와다의 나이는 38세로 2016년 아라이 타카히로(39세) 이전까지 센트럴리그 역대 최고령 MVP 수상이었다. 같은 해 일본시리즈에서는 아쉽게 치바 롯데 마린즈하극상을 바라봐야 했지만 타율 .414(29타수 12안타) 1홈런 6타점으로 활약하며 시리즈 감투선수상을 수상했다.

2011년엔 특유의 오픈스탠스 타격폼이 허리에 부담을 줄 것을 우려한 오치아이 히로미츠 감독에 의해 새롭게 스퀘어스탠스 타격폼으로 바꿨으나 저반발력 공인구 도입으로 인한 투고타저시력 저하가 겹치면서 타율 .232/OPS .724, 12홈런 54타점으로 지난 해보다 성적이 오히려 반토막나고 말았다. 다음 해인 2012년에 다시 기존의 타격폼으로 복귀하여 타율은 .285로 회복되었지만 9홈런에 그치며 장타력 하락이 완연한 모습을 보였으나, 2013년에 타율이 소폭 하락한 대신 18홈런을 치며 부활에 성공했고 이후 출장기회가 서서히 감소해 가는 와중에도 쇠하지 않은 타격을 보여주며 베테랑으로써의 관록을 과시하다 은퇴 시즌인 2015년에 통산 2000안타를 기록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4. 통산 기록

5. 여담

대머리 선수로 유명했다. 선수생활 초창기부터 노안 속성에[13] 이마가 후퇴해가는 기미가 보였는데, 나중엔 윗머리가 거의 안 남게 되어 준 스킨헤드처럼 옆머리를 아주 짧게 유지한 스타일이 되었다. 일본 웹상에선 야구실력을 얻는 대신 머리카락을 내주는 악마와의 계약을 했다는 드립이 흥할 정도(...)

6. 관련 문서



[1] 青き流星輝く グランドの海を 進めどこまでも 和田一浩(푸른 유성이 빛나는 그라운드의 바다를 나아가라 어디까지라도 와다 카즈히로) 본래는 1984~1995시즌까지 세이부에서 포수로 뛰었던 나카다 히데지라는 선수의 응원가였으나(#CD음원) 나카다가 은퇴한 후 한동안 주인이 없어졌다가 가사를 바꿔서 와다에게 유용되었다.[2] 勇む力 踊る鼓動 快音を打ち鳴らして 夢奏で沸かすリズム 刻め一浩(솟구치는 힘 내뛰는 고동, 쾌음을 울려라 꿈을 연주하며 열광하는 리듬을 새겨라 카즈히로) 주니치 이적 직후 쓰던 응원가로 2015년 응원가가 전면적으로 물갈이되며 새 응원가로 교체되었다.[3] その鋭いスイング武器に 今豪快なアーチ放て 誇り胸に進め一浩 球史に名を刻め(그 예리한 스윙을 무기로 지금 호쾌한 아치를 날려라 긍지를 가슴에 안고 나아가라 카즈히로 야구사에 이름을 새겨라) 2015년 새로 제작된 응원가로 이해 시즌 종료 후 은퇴하면서 이 응원가가 현역 시절 사용한 마지막 응원가가 되었다.[4] 2004년 10월 24일 주니치와의 일본시리즈 6차전, 투수는 오치아이 에이지.[5] 2009년 4월 19일 한신 타이거스전, 투수는 후지카와 큐지.[6] 현재까지도 야구팬들의 토론거리가 되고 있는 타구. 일본 등지에서 불가사의한 (어떻게 넘어갔는지 모르겠는) 홈런 순위를 뽑을 때에는 3위 밖으로 밀려나는 일이 없다. 엄청나게 낮은 발사각과 엄청나게 빠른 타구 속도로 라인드라이브 홈런을 만들어낸 와다를 상징하는 홈런.[7] 도이 마사히로 코치에게서 "스탠스가 타격 도중 열리지 않게 아예 처음부터 스탠스를 열어라"라는 조언을 듣고 만들어 냈다고 한다.[8] 언더핸드 스로를 상대했을 때는 2할대 초중반 타율을 기록.[9] 약 0.15초로 0.16~18초를 넘나드는 스즈키 이치로, 마쓰이 히데키보다도 빠른 속도.[10] 다만 같은 해 일본시리즈에선 15타수 0안타로 타격을 완전히 말아먹는 바람에 세이부가 구단 사상 최초로 일본시리즈 스윕패를 당하는 큰 원인이 되고 말았다.[11] 여담으로 주니치랑 협상했을때 당시 걸린시간이 단 20분만에 계약을 완료했다.[12] 출루율(.437), 장타율(.624) 모두 리그 1위를 기록했다. 따라서 최고출루율 타이틀도 수상.[13] 초창기부터 아니라 이분은 태어나서 부터 노안이였다. 심지어 중학교때 중학교 학생 답지못한 외모였다(.....)#이분 중학생 맞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