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0 04:18:20

위르겐 클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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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클롭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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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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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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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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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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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클롭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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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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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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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 · 20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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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FIFA 올해의 감독
수상
유프 하인케스
2위
위르겐 클롭
3위
알렉스 퍼거슨

파일:ESPN 로고.svg파일:빌보드 로고 흰색.svg 선정 2024년 최고의 클럽 축구 감독 50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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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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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버풀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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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포르투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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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무리뉴
[[튀르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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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네르바체 SK
65 트레블 감독 (2010)
18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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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지 플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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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트레블 감독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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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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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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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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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우리치오 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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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58
36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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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토니오 콘테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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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SC 나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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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북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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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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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S 모나코
54
46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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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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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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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 모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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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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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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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버햄튼 원더러스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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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축구인
파일:Jürgen Klopp Red Bull.jpg
<colbgcolor=#eee,#191919><colcolor=#000,#e5e5e5> 이름 위르겐 클롭
Jürgen Klopp
본명 위르겐 노르베르트 클로프[1]
Jürgen Norbert Klopp
출생 1967년 6월 16일 ([age(1967-06-16)]세)
서독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슈투트가르트현 슈투트가르트
국적
[[독일|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신체 191cm / 체중 83kg[2]
직업 축구 선수 (스트라이커, 센터백 / 은퇴)
축구 감독
축구 행정가
주발 오른발
소속 <colbgcolor=#eee,#191919><colcolor=#000,#e5e5e5> 유스 SV 글라텐 (1972~1983)
TuS 에르겐징겐 (1983~1986)
선수 1. CfR 포르츠하임 (1987)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87~1988)
빅토리아 진들링겐 (1988~1989)
로트바이스 프랑크푸르트 (1989~1990)
1. FSV 마인츠 05 (1990~2001)
감독 1. FSV 마인츠 05 (2001~2008)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08~2015)
리버풀 FC (2015~2024)[3]
행정 레드불 풋볼 그룹 (2025~ / 글로벌 축구 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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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191919><colcolor=#000,#e5e5e5> 등번호 <colbgcolor=#fff,#191919>1. FSV 마인츠 05 - 2번, 4번, 8번, 9번, 11번, 13번, 14번
가족 아들 마크 클롭
종교 개신교 (루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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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감독 스타일5. 행정가 경력6. 기록
6.1. 선수
6.1.1. 대회 기록6.1.2. 출전 기록
6.2. 감독
6.2.1. 대회 기록6.2.2. 개인 수상6.2.3. 리그 성적6.2.4. 통산 기록
6.3. 수훈
7. 어록8. 클롭에 대한 헌사9. 여담10. 라이벌11. 관련 문헌12.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독일축구 선수 출신 감독.[4]

1. FSV 마인츠 05에서 11년동안 선수 생활을 하다 3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감독으로 부임하여 마인츠 창단 99년만의 1부 리그 승격을 이끌었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리버풀 FC을 지휘하며 리그 우승을 비롯한 수많은 대회에서 우승하였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는 바이에른 뮌헨의 독주를 깨고 분데스리가 2연패와 구단 창단 이후 최초의 더블을 기록하였고, 리버풀 FC에서는 리버풀의 30년만의 리그 우승과 14년만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 등 암흑기를 겪고 있던 전통의 명가들을 부활시키며 유럽의 강팀으로 변화시켰다.

개인 수상으로는 2019년과 2020년 FIFA 올해의 감독, 2019-20시즌과 2021-22 시즌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감독을 수상하였다.

2025년 1월부터 레드불 사단의 글로벌 축구 총괄직을 수행할 예정이다.

2. 선수 경력

1. FSV 마인츠 05에서 11년 간 선수 생활을 했으며, 처음은 스트라이커였다가 28살 때 수비수로 전향했다고 한다. 비록 화려한 선수 생활은 아니었지만 나름 밥값 하는 선수였던 듯. 수비수로 전향한 후에도 공격수 출신답게 종종 원더골을 보여주었다.

본인의 표현을 쓰자면 "기술적 역량은 5부 리그 수준, 전술적 이해도는 1부 리그 수준, 그래서 총합 2부 리그 수준의 축구선수"였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로 2. 분데스리가의 마인츠에서 11 시즌을 뛰면서 은퇴했다. 워낙 오래 뛰어서 그런지 마인츠 구단 역대 득점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사실상 선수로나 감독으로나 마인츠의 레전드 중 한명.

2000-01 시즌 후반기, 성적 악화로 감독 자리가 공석이 되자 구단은 선수로 뛰며 훌륭한 리더십과 전술 이해도를 보인 클롭에게 선수 겸 감독이 되어달라는 모험을 제안하였고, 클롭은 두 일을 병행하면 이도 저도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기에 아예 선수 생활 은퇴를 선언, 코칭 경험도 없었던 34살의 젊은 나이에 감독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3. 지도자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위르겐 클롭/지도자 경력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 감독 스타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위르겐 클롭/감독 스타일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 행정가 경력

현지 시각으로 2024년 10월 9일, 레드불 그룹의 '글로벌 축구 부문 총괄 책임자(Head of Global Soccer)'로 선임되었다. 활동은 2025년 1월 1일부터 시작. *

그러나 해당 선임에 대해 해외축구 여론은 영국, 독일 가릴 거 없이 상당히 냉담하고 비판적이다. 이는 은퇴를 선언한 듯한 발언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른 축구 구단의 직책을 맡은 것 때문에 욕을 먹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독일 축구계의 근본적인 시스템과 클롭의 평소 언행과 관련된 상당히 복잡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클롭은 평소 축구의 상업화를 자주 비판해 왔는데, 대표적으로 슈퍼 리그에 대해 상당히 불쾌하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할 만큼 축구계의 지나친 상업화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왔다. 그것도 리버풀 FC 구단 수뇌부들이 이미 슈퍼 리그에 참가하기로 결정한 상태에서 감독직을 걸고 소신 발언을 한 것이라서 당시 리버풀 팬들은 물론 독일과 해외 축구 팬들에게 '클롭은 돈 때문에 자기 신념을 팔 사람이 아니다'라는 강한 인상을 주기 충분했다. 그런데 정작 지나친 상업화와 꼼수 때문에 독일 축구계의 생태를 교란시킨[5] RB 라이프치히를 메인 클럽으로 내세우는 레드불 그룹의 수뇌부 직책을 덥석 받아물었으니 평소 자기 언행과 반대되는 행동을 보여주는 바람에 클롭을 지지하던 팬덤들이 깊은 배신감을 느끼는 것이다.

6. 기록

6.1. 선수

6.1.1. 대회 기록

6.1.2. 출전 기록

<rowcolor=#e0c9a5>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컵 대륙대회
<rowcolor=#e0c9a5>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90-91 1. FSV 마인츠 05 2. 분데스리가 33 10 0 0 - -
1991-92 1. FSV 마인츠 05 2. 분데스리가 32 8 0 0 - -
1992-93 1. FSV 마인츠 05 2. 분데스리가 41 3 0 0 - -
1993-94 1. FSV 마인츠 05 2. 분데스리가 34 7 0 0 - -
1994-95 1. FSV 마인츠 05 2. 분데스리가 33 7 0 0 - -
1995-96 1. FSV 마인츠 05 2. 분데스리가 29 2 0 0 - -
1996-97 1. FSV 마인츠 05 2. 분데스리가 24 3 0 0 - -
1997-98 1. FSV 마인츠 05 2. 분데스리가 31 4 0 0 - -
1998-99 1. FSV 마인츠 05 2. 분데스리가 29 4 0 0 - -
1999-00 1. FSV 마인츠 05 2. 분데스리가 30 4 0 0 - -
2000-01 1. FSV 마인츠 05 2. 분데스리가 9 0 0 0 - -

6.2. 감독

6.2.1. 대회 기록

6.2.2. 개인 수상

  • FIFA 올해의 감독[6]: 2019, 2020
  • 독일 올해의 축구 감독: 2011, 2012, 2019
  • 독일 올해의 축구인: 2012, 2019
  • VDV 올해의 감독: 2010-11
  •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감독: 2019-20, 2021-22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감독[7]: 2016년 9월, 2018년 12월, 2019년 3월 · 8월 · 9월 · 11월 · 12월, 2020년 1월, 2021년 5월, 2024년 1월
  • 옹즈도르 올해의 감독: 2019
  • 월드 사커 올해의 감독: 2019
  • 글로브 사커 어워즈 올해의 감독: 2019
  • IFFHS 세계 최고의 클럽 감독: 2019
  • IFFHS 월드팀: 2019
  • ESPN 올해의 감독: 2020
  • BBC 올해의 스포츠 인물 감독상: 2020
  • 키커 올해의 감독: 2004-05, 2010-11, 2011-12, 2013-14, 2014-15
  • 빌트 올해의 감독: 2019
  • LMA[8] 올해의 감독: 2019-20, 2021-22
  • LMA 명예의 전당: 2019
  • UK 코칭상 올해의 위대한 코칭 순간: 2019[9]
  • 허버트상[10]: 2007, 2009, 2011
  • 마인츠 미디어상: 2018
  • 독일 텔레비전상: 2006, 2010
  • 독일-영국 우정상: 2021[11]
  • 리버풀 명예시민 훈장: 2022[12]

6.2.3. 리그 성적

<rowcolor=#e0c9a5> 연도 구단 리그 순위 경기 승점
2000-01[13] 1.FSV 마인츠 05 2. 분데스리가 14 12 6 3 3 17 13 21
2001-02 1. FSV 마인츠 05 2. 분데스리가 4 34 18 10 6 66 38 64
2002-03 1. FSV 마인츠 05 2. 분데스리가 4 34 19 5 10 64 39 62
2003-04 1. FSV 마인츠 05 2. 분데스리가 3 34 13 15 6 49 34 54
2004-05 1. FSV 마인츠 05 분데스리가 11 34 12 7 15 50 55 43
2005-06 1. FSV 마인츠 05 분데스리가 11 34 9 11 14 46 37 38
2006-07 1. FSV 마인츠 05 분데스리가 16 34 8 10 16 34 57 34
2007-08 1. FSV 마인츠 05 2. 분데스리가 4 34 16 10 8 62 36 58
2008-09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분데스리가 6 34 15 14 5 60 37 59
2009-10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분데스리가 5 34 16 9 9 54 42 57
2010-11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분데스리가 1 34 23 6 5 67 22 75
2011-12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분데스리가 1 34 25 6 3 80 25 81
2012-13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분데스리가 2 34 19 9 6 81 42 66
2013-14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분데스리가 2 34 22 5 7 80 38 71
2014-15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분데스리가 7 34 13 7 14 47 42 46
2015-16[14] 리버풀 FC 프리미어리그 8 30 13 9 8 55 40 48
2016-17 리버풀 FC 프리미어리그 4 38 22 10 6 78 42 76
2017-18 리버풀 FC 프리미어리그 4 38 21 12 5 84 38 75
2018-19 리버풀 FC 프리미어리그 2 38 30 7 1 89 22 97
2019-20 리버풀 FC 프리미어리그 1 38 32 3 3 85 33 99
2020-21 리버풀 FC 프리미어리그 3 38 20 9 9 68 42 69
2021-22 리버풀 FC 프리미어리그 2 38 28 8 2 94 26 92
2022-23 리버풀 FC 프리미어리그 5 38 19 10 9 75 47 67
2023-24 리버풀 FC 프리미어리그 3 38 24 10 4 86 41 82

6.2.4. 통산 기록

<rowcolor=#e0c9a5> 구단 연도 경기 승률
1. FSV 마인츠 05 2001.02.27 ~ 2008.06.30 270 109 78 83 40.4%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08.07.01 ~ 2015.06.30 319 180 69 70 56.4%
리버풀 FC 2015.10.08 ~ 2024.06.30 491 299 109 83 60.9%
통산 1,080 588 256 236 54.4%

6.3. 수훈

7. 어록

저는 평범한 사람(Normal One)[15]Ordinary다. Normal은 "정상적인"에 더 가깝다. 다만 원어민들에게도 딱히 큰 위화감을 주는 차이는 아니다. 한국어로 예시를 들면 '틀리다/다르다' 정도의 뉘앙스 차이.]입니다. #[16]
우리는 의심하는 자를 믿는 자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필요한 것은 오직 시간입니다.
동화같은 시작을 기대하지 마세요.
오늘을 잘하는 것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내일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선수들에게 최고가 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최고를 꺾을 수 있는 팀이 되라고 말합니다.
제가 도르트문트를 떠날 때 제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당신이 이 곳에 올 때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크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당신이 이 곳을 떠날 때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 지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호날두나 메시를 원하지 않습니다. 현재 리버풀에 만족하고 지금부터 시작할 생각입니다.
벵거는 볼을 소유하는 패싱축구를 좋아합니다. 마치 오케스트라와 같죠. 그러나 조용한 음악이기도 합니다. 저는 헤비메탈을 좋아합니다.[17]
11명이 함께 잘못된 전술을 하는 것이 각 선수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전술적인 요소만으로 승리를 할 수 없습니다. 감정이 차이를 만듭니다.
저는 절대 어떤 선수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 선수가 제 팀의 일원이라면 그는 충분히 좋은 선수이고, 그렇다면 그 선수의 부진은 제 책임입니다. 모든 패배는 저의 책임이고, 승리는 선수들 덕입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감독은 아닐 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가장 열정이 넘치는 감독일 것입니다.
패배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크게 져봐야 합니다. 이미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반 드라고가 아닌 록키 발보아다.
우리는 끝나지 않았다, 그러니 해 보자.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자.[18]
오늘 밤을 즐기면 된다. 그리고 훗날 우리들의 손자에게 오늘 밤이 특별했다고 말해주자.[19]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너희들이기 때문에 기회는 있다.
얘들아, 믿어라. 1~2골, 만약 15~20분에 우리가 한 골도 넣지 못하더라도, 65분 66분 67분에 우리가 골을 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라. 그리고 안필드가 우리의 뒤에 있다. 날 믿어라. 우린 할 수 있다.
저는 사소한 것들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사이드 라인에선 잘 보이고 싶지 않지만, 제 팀은 멋지게 보여야 합니다. 그게 제 목표죠.[20]
만약 F1이 제트기를 허용한다면, 더 빠른 제트기가 이길 겁니다. 하지만 자동차라는 룰이 지켜진다면 베스트 드라이버가 이길 겁니다.[21]
우리가 우승 후보여선 안 됩니다. 선수들의 간절함과 열정이 희석되죠. 늘 언더독의 자세로 팬들을 위한 축구를 한다면 자연스레 우승은 따라올 겁니다.
5년 전 저는 팬들에게 '의심하는 자에서 믿는 자로' 변해줄 것을 부탁했고, 여러분들은 그렇게 해줬습니다. 팬들이 우리를 챔피언으로 만들어 줬습니다.
아마 제가 순진한 걸 수도 있고, 어쩌면 저는 그저 미치고 늙은 몽상가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게임-축구-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저희 모두는 빌어먹을 정도로 잘 알고 있습니다. 이 게임은 꿈꾸는 자들을 위한 것이란 걸요.
기억하세요. 클럽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서포터입니다. 그들에게 방해가 될만한 것들은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필드 위에서 11명의 선수들이 설 수만 있다면 모두가 알고 있듯이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리버풀입니다. 힘든 일을 함께 겪었죠. 그리고 당신은 더 힘든 일을 겪었죠. 그걸로 힘을 내자고요. 정말 멋질 것 같아요. 이번 시즌에 모든 걸 다 쏟아부읍시다. 나중에 돌아봤을 때 웃을 수 있도록요.

8. 클롭에 대한 헌사

(클롭이 최대 라이벌인 것은) 우리가 10억번 정도는 맞붙었기 때문이다. 두번째 이유로는 그는 나를 많이 패배시켰고, 그를 상대하는 것은 언제나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를 계속, 계속, 계속해서 마주한다는 것은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를 존경한다. 적어도 나는 그를 엄청나게 존경하고 있다. 물론 우리가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난 그가 나를 패배시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그동안 서로를 마주한 시간의 양, 그리고 그를 패배시켰을 때의 기쁨으로 볼때에 그는 나의 가장 큰 라이벌이다. 그를 패배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두들 알기 때문이다.
(클롭의 리버풀 사임 소식을 듣고) 난 더 편히 잘 수 있을 것이다. 리버풀과 경기하기 바로 전의 날들은 거의 악몽과도 같았다. 물론 그를 그리워할 것이다. 나는 뉴스를 보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나는 마치 맨시티의 일부분이 떨어져나간 것처럼 느꼈다. 우리는 우리의 시대를 클롭과 리버풀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정의할 수 없다, 그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우리의 최대의 라이벌이었고, 개인적으로 내가 바이에른에 있고, 그가 도르트문트에 있을 때부터 그는 나의 최대의 라이벌이었다.
펩 과르디올라
마인츠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춤을 배울 수 있는 코스를 제공하곤 했다. 클럽의 회장 하랄트 슈트루츠는 그의 부인과 참여했고, 나는 내 부인 마리아네와 함께 참여했었다. 그 클래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클롭이었다. 사실 우리는 그의 춤실력을 그리 신뢰하지 않았다. 그의 축구실력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보니까 확실히 축구장에서 공 차는 것보다 춤을 더 잘 췄다.
스벤 데만트[22]
마인츠에서 선수생활을 할때에 시니어팀 그리고 주니어팀으로 나뉘어 연습경기를 치른 적이 있어요. 클롭은 시니어팀이고 저는 주니어팀이었어요. 주니어가 7-1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는데, 그 과정에서 서로를 할퀴었어요. 저와 클롭 둘 다 몹시 흥분한 상태였어요.저는 클롭에게 꿀밤을 맞고 클롭의 목을 졸랐습니다. 당시에 주장이었던 골키퍼 디모 바케가 골대에서 달려와서 또 우리 사이에 뒤섞이고 엉망진창이 됐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는 그 사건을 떠올리면서 하루종일 미친듯이 웃었어요.
잔드로 슈바르츠
기억에 가장 오랫동안 남아있는 건 그와 함께 나누었던 전화통화이다. 그때가 아마 2001년 3월 카니발 월요일이었을 것이다. 그때 마인츠는 재정적인 위기를 초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감독을 교체해야만 했다.나는 집 소파에 앉아 고민을 거듭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서 당분간은 감독 없이 훈련하라고 말해놨었다. 그당시 클롭은 팀의 전술적인 리더였다. 그때 클롭은 현역이어서 선수들과 훈련장 근처에 머물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호텔방으로 전화를 걸어서 감독을 바꿀 건데 네놈이 한 번 맡아보라고 말했다. 바깥이 축제중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가 혹시 술취했냐고 물어볼 줄 알았는데 그는 의외로 5초도 지나지 않아서 감독직을 수락했다. 그렇게 해서 선수였던 위르겐 클롭이 그 다음날부터 바로 감독 위르겐 클롭이 되었다. 그리고 그 녀석은... 이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앞두고 있다.
크리스티안 하이델
위르겐이 나를 1군 훈련장으로 불러들인 것은 내가 17살 때의 일이다. 그는 그자리에서 나와 면담을 했고 자신감을 심어줬다. 나는 그 날 들은 이야기를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르트문트에서 분데스리가에 데뷔했다. 내 어린시절에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것은 내게 큰 축복이었다. 그는 내게 축구의 아버지와 같으며 내게 성공으로 가는 길을 열어준 은인이다.
마리오 괴체
클롭은 이미 그때 감독이었고, 숙소에서는 나와 잔드로 슈바르츠가 방을 함께 썼다. 난 밤이 되면 배가 몹시 고파서 뉘른베르거 소세지를 시켰다. 좀 이따가 누가 방문을 똑똑 두드리길래 문을 열었더니 내가 레스토랑에 주문한 음식을 클롭이 들고 미친듯이 웃고 서 있었다.
미하엘 터크
2002년 마지막 경기에서 마인츠는 우니온 베를린을 상대로 1-3으로 패하는 바람에 승격에 실패했다.승격까지는 단 1점이 모자랐다. 승점 단 1점이. 감독이었던 클롭은 크게 자책했고, 그에게는 심리적으로 상당한 충격이었다. 그 이듬해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우리는 승격까지 단 한 골이 부족했었다. 우리는 브라운슈바이크를 상대로 4-1로 이겼지만, 프랑크푸르트는 로이틀링엔에게 6-3으로 이겼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들은 클롭이 락커룸으로 뛰어들어가서 앉아 있는 걸 봤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가 혼자 있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가만히 두었다. 딱 하루가 지나자 그는 팀을 이끌고 팬들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 우리는 다시 일어날 겁니다. 절대로 부서지지 않습니다. 우리 팀 말고 다른 팀을 올려줬던 호의는 이제 두 번 다시 누구에게도 베풀지 않을 겁니다. > 이러한 순간들이 기초가 되었기에 2004년의 승격이 가능했다고 본다. 감독으로서 매순간 사람을 매료시키는 그의 태도는 배운다고 해서 배워지는 게 아니다. 클롭은 마인츠에서 하나의 모토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세계 축구계에 널리 퍼지고 있다.
하랄트 슈트루츠 前 마인츠 회장
클롭은 언제나 정직한 단어들을 찾아냈어요. 난 그것들이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그는 내게 이런 식으로 인사를 했어요. < 여기서 모든 것을 불태우게 될 거야. 전력을 다하라고, 이 멍청아! > 그는 나를 비틀거나 바꾸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대해줬어요. 그리고 어느날 도르트문트 재정 문제 때문에 나를 완전이적시킬 수 없다고 직접 말하더라구요. 저는 그때 펑펑 울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내가 넘어졌을 때 내 두 발로 다시 딛고 일어설 수 있게 만들어준 클럽이었고, 많은 친구들이 있었으니까요. 저는 클롭을 인간으로서 그리고 트레이너로서 높이 평가해요. 그는 선수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팀들이 그와 함께하는 거고 언제나 전력을 다하는 겁니다.
케빈프린스 보아텡
내 선수 시절에 위르겐과 함께한 특별한 순간들이 많았어요. 그 중에 하나를 꼽기가 힘들 정도로 믿지 못할 일들이 많았습니다. 2013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앞둔 어느날 클롭은 선수들을 모아놓고 비디오 한 편을 보여줬어요. 그 비디오는 도르트문트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담은 영상이었습니다. 최고의 순간들, 감격적인 순간들이 영상으로 펼쳐졌어요. 아마 그는 리버풀에서도 그런 일을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팀에게 어마어마한 힘을 주니까요.
제바스티안 켈
2007년에 함부르크는 4명의 감독을 눈여겨보고 있었고 그 중에 위르겐 클롭도 있었다. 클롭이 2007-08 시즌을 마치고 마인츠를 떠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스카우터들은 후보자들이 어떻게 팀을 훈련시키고,  선수들에게 어떤 말을 하는지, 심지어 복장까지 주도면밀하게 관찰했다. 그런데 클롭은 청바지를 입고 출근을 했다. 그의 구멍 뚫린 청바지가 당시 우리 눈에는 좀 거슬렸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클롭을 제외하고 마틴 욜을 택했다. 그리고 2008-09 시즌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하지만 위르겐 클롭이 왔더라면 아마도 함부르크는 지금과는 다른 길을 걸었을 거다.
베른트 호프만 前 함부르크 회장
그와 나눈 대화가 기억난다. 2009년의 어느 날이었는데 그가 내게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원래 머리가 좀 모자라냐고. 당시에 나는 매번 제로에서 모든 걸 시작해야 하는 선수였고. 그는 지금 내 수준을 겸허히 인정하고 배워야만 한다고 조언했다. 나 역시 좋은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마침내 내 부족함을 인정하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모든게 잘 되었다. 2011년에 나는 프로 데뷔 이후 줄곧 염원하던 리그 우승컵을 들었고 여름에 도르트문트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할 수 있었다. 위르겐은 언제나 정직했고,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다. 나는 이 점을 매우 높이 평가한다.
누리 샤힌
위르겐 클롭과 서로 알고 지낸 건 꽤 오래 됐다. 특히 그가 도르트문트를 지휘하던 시절에 만날 일이 많았다. 당시 도르트문트 선수들이 대표팀에 여러 명 차출되면서 그와의 만남도 잦아졌다. 감독들끼리도 모였고 밤에도 이따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를 만나면 업무적으로만 좋았던 게 아니라 언제나 아주 즐겁고 유쾌했다.
요아힘 뢰브
위르겐 클롭과 TV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했을 때 한 주제를 놓고 서로 의견이 충돌한 적이 있다. 나는 그게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았고 비교적 편안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처럼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순간들을 경기를 마치고 난 뒤에 카메라 앞에서 종종 경험해 봤기 때문에 평정심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언쟁은 내겐 그리 대단한 문제는 아니었고 빨리 잊어버렸다.감정이 남았던 것도 아니고. 클롭이 자신은 이처럼 격렬하게 본질로 다가가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나 역시 언쟁 한 번 했다고 삐치거나 하는 어린아이는 아니다.
올리버 칸
클롭과의 첫만남은 굉장히 특별했다. 나는 2009년에 도르트문트로 이적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2부리가에서 뛰던 그저그런 선수에 불과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클롭은 첫 면담에서 나를 마치 슈퍼스타처럼 대해줬다. 그는 나에 대한 모든 걸 알고 있었고, 도르트문트의 컨셉을 설명한 뒤에 내가 왜 이 클럽에 중요한 선수인지를 말해 줬다. 나는 완전히 감명받았고 한시라도 빨리 경기장으로 뛰쳐나가고 싶어졌다. 그 뒤에 클롭은 선수들 앞에서 나를 아주 멋지게 소개했다. 그때 나는 클롭이 나에게서 특별한 퍼포먼스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케빈 그로스크로이츠
클롭 감독과 작별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마음을 돌리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실수였다. 차라리 클롭 감독 한 명이 아닌, 클롭 감독만 빼고 나머지 팀 전체를 보내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2018년 여름 나는 그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겠냐는 말을 했다. 나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 다시 그에게 돌아오라고 강력하게 요청하지 않은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 같다.
한스요아힘 바츠케[23]
내 생각에 위르겐 클롭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을 바꾼다면, 내가 생각하기로 2년이나 3년이면 리버풀 선수들이 보여주는 비슷한 모습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에게서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처음 클롭이 왔을때, 우리 모두 리버풀과 그 몇몇 선수들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돌이켜 보자. 그들 모두 다른 수준에 도달했다.
마이클 오웬
현재 위르겐 클롭은 모든 것의 기준점이다.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가 리버풀에서 어떻게 축구를 하는지, 유연성과 정신력, 불확실성, 아무리 힘든 시기일지라도 골을 넣고 역전을 가능하게 해준다. 위르겐 클롭이 리버풀을 위해 해온 것들을 과장할 수는 없으며, 그는 독일 감독으로서 독일 축구의 간판이다. 그것은 우리를 자랑스럽게 한다.
마티아스 잠머
클롭이 왔을때, 리버풀은(21-22시즌 맨유보다) 더 심각한 상태였고, 그로부터 2.5년뒤 그들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있었다..
클롭이 2015년에 부임한 이래 해온 일들을, 우승을 하고 팬들과 유대감을 이뤄낼 수 있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것이 리버풀의 팬이라면, 이 특별한 자주적인 모델에 그가 아닌 다른 누가 구단을 맡기를, 내가 원하지 않는 이유이다. 난 펩 과르디올라도 포함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제이미 캐러거
나는 그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고, 그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지만 그의 작품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대단하다. 그는 도르트문트뿐만 아니라 지금 리버풀에서도 수년에 걸쳐 보여주었다. 나는 그가 챔피언스리그와 프리미어리그에서 하고 있는 일을 매우 존경한다.
지네딘 지단

9. 여담

  •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성격이 굉장히 유쾌하고 입담도 재치있기로도 유명하다. 실제로도 인터뷰를 할 때의 모습을 보면 특유의 유쾌한 성격과 재치 있는 입담으로 기자들에게 웃긴 답변도 해주면서 분위기메이커 같은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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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수 시절인 1995년에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에서 스포츠 과학을 공부한 인텔리이기도 하다.
  • 형인 알렌 클롭은 위르겐의 도르트문트 감독 시절 에딘 테르지치와 함께 선수 스카우터로 활동했다.
  • 본문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다른 세계적인 감독들[24]과 달리 선수 생활 은퇴 후 지도자 경력을 쌓지 않고 바로 감독으로 데뷔해 성공한 매우 흔하지 않은 케이스에 속한다.
  • 이혼 경력이 있으며 전 부인과의 사이에 낳은 아들이 하나 있다. 그리고 재혼한 현 부인이 데려온 양아들이 있다.
  • 2006년 월드컵 때 축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김동완 해설위원의 말에 따르면, 독일 특유 딱딱한 방송과는 다르게, 위트가 넘치는 멘트와 함께 쉽고 편하면서도 상세한 해설을 함으로서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25][26]
  • 2013-14 시즌부터 겨울 이적시장에서 지동원을 영입하였다. 정확히는 선덜랜드, 아우크스부르크와의 삼자 협상 끝에 데려오는 것으로,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반 시즌을 뛰다가 도르트문트에 자유계약으로 와 2014-15 시즌부터 뛰는 특이한 형태이다. 이로서 선덜랜드는 안 쓰는 선수를 처분한데다가 돈까지 받아 좋고, 아우크스부르크는 단기간에 골가뭄 해결할 수 있어서 좋고, 도르트문트는 스쿼드를 보강할 수 있어서 좋은 윈윈윈 계약을 맺게 되었다. 그런데 그 지동원이 분데스리가 복귀전인 도르트문트전에서 교체투입된지 2분만에 골을 넣어 경기를 무승부로 만드는 바람에 도르트문트의 2위 탈환에 제동을 걸었다. 한편, 지동원을 영입하고 기자들에게 "골 못 넣는 공격수를 키우는 것도 재밌겠지."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지동원의 이름을 마음에 들어했다.
  • 독일에서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부활시킨 명장인데다가 큰 키와 미중년스러운 간지나는 외모, 그리고 재치있는 입담 등으로 인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독일 축구계 최고의 인기 스타라고 한다.[27] 푸마나 자동차 회사인 오펠, 그리고 여러 의류 용품 회사에서 모델을 하고 있다고 한다.
  • 2014년 8월 10일, 리버풀은 프리시즌에 도르트문트와 친선 경기를 갖게 되었는데 당시의 도르트문트 감독이 바로 위르겐 클롭이었다. 그 때 위의 사진처럼, 안필드를 방문한 클롭이 'This Is Anfield' 액자를 손으로 터치하는 모습이 잡혀 일부 콥들은 뭔가 묘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약 1년 후, 그는 리버풀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일종의 시그널로서 재조명 받게 되었다.
    파일:Klopp_This Is Anfield.gif
  • 그 이후 또 다른 일화로, 막상 저 이후 도르트문트는 리버풀에게 4-0으로 박살났고, 2015년 리버풀의 감독으로 부임한 클롭은 리스펙트 차원에서 사인의 터치를 금지했다. 그리고 18-19 시즌에 빅 이어를 들어올리며 리버풀의 선수들은 터치 자격을 얻게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철칙으로, 현재 리버풀 1군 멤버 중 바이세티치와 학포부터는 이 사인을 터치할 수 없다고 한다.
  • 2015년 10월 리버풀 부임 기자회견 당시, 4년 안에 우승 트로피를 들지 못 한다면 스위스로 가겠다는 말을 했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리버풀이 우승컵을 놓칠 때마다 클롭이 스위스로 갈 것이라며 안티들이 조롱했었다.[28] 그러나 2019년 6월,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그 약속을 지켰고 리버풀을 기나긴 무관에서 탈출시켜 이후 그것에 대한 조롱도 사라졌다. 그런데 클롭이 왜 하필 스위스를 언급했는가에 대해 한 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아 리버풀 팬들도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었다. 후에 클롭이 밝히기로는 마인츠 시절, 그의 멘토 매니저가 사망하기 전에 클롭에게 나는 스위스 산 속에 묻혀있을 테니 후에 자신을 찾아와 그가 겪은 이야기들을 얘기해달라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냥, 스위스에 가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은퇴를 각오하고 했던 말들이었던 것.
  • 안필드에서 무려 50년째 장내 아나운서를 맡고 있는 조지 세프턴의 말에 의하면, 클롭을 처음 보고 인사와 함께 "저는 조지에요!" 말을 건네자 곧바로 "아! 당신이 바로 그 안필드의 유명한 목소리이시군요!"라고 알아보며 악수를 하고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고 한다. 또한 자신에게만 그런게 아니라 클롭은 당시 부임한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시니어 선수들과 유스 선수들, 훈련장의 스태프들, 요리하는 직원들, 구단의 미화원 아주머니와 사무실 사람들 이름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고 세프턴은 전했다.#
  • 감독으로서 워낙 능력이 좋기 때문에 매번 여러 빅클럽들의 오퍼를 받지만, 의외로 데려오기 쉽지 않은 감독이기도 하다. 커리어를 봐도 알겠지만 본인이 이적을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이 전혀 아니기 때문. 도르트문트 오기 전에 마인츠에서는 선수 시절부터 감독 생활까지 합해 무려 18년이나 있었다.[29] 참고로 알렉스 퍼거슨이 맨유를 감독한 기간이 27년이라는 걸 생각하면 클롭 역시 한 팀에 매우 진득하게 있는 사람이라는 것. 그만큼 자신이 속한 팀에 상당한 의리를 가지고 있으며 계약 기간도 매우 충실히 지키는 편. 리버풀 부임 이후에도 이런 성향은 바뀌지 않았는지 꾸준히 소속팀에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인터뷰에 따르면 오래 전부터 리버풀의 팬이었고, 60세 이전에 은퇴할 계획이며 자신이 맡았던 팀이 마인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리버풀 세 팀으로 마무리 되기를 희망한다고 한다.
  • 팀을 맡을 때 속된 말로 본인이 '꽂힌' 팀을 선호하는 편이다. 마인츠의 감독으로 부임할 때도 권유를 들은지 거의 5초만에 '까짓 거 한 번 해보지'라며 바로 결정했고, 마인츠에서 나올 때 바이에른 뮌헨도 클롭을 노렸다는데 칼 하인츠 루메니게가 자기가 술 먹고 클린스만을 선택했었다고 반 농담 반 한탄조로 얘기한 적이 있다. 또한 도르트문트 지휘봉을 내려 놓고 쉬는 동안 유수의 클럽들이 감독직을 제안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그 이유가 걸작인데 '땡기지 않아서', '내 팀이란 생각이 들지 않아서'라고. 2019년 로비 파울러의 인터뷰에 따르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알 마드리드 같은 슈퍼리치 클럽들이 감독직 제안을 해왔지만 축구보다 상업적인 면에 중점을 두는 것이 싫어 거절했고 재정, 역사, 팬 등 모든 요소들을 고려해서 리버풀을 선택했다고 한다. 클롭 역시 도르트문트 감독직을 내려놓고 한동안 쉬고 싶었지만 리버풀의 제의는 듣자마자 거절할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30] 또한 필 톰슨에 의하면 클롭에게 맨유 감독 제의가 왔을 때 클롭의 아내가 만류하였고, 이후 리버풀의 감독으로 부임하자 그의 아내는 옳은 결정이라며 지지하였다고 한다.#
  •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레전드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은 클롭이 리버풀에 부임할 당시 인터뷰에서, "리버풀이 클롭 감독을 선임한 것은 아주 좋은 계약이다. 나는 그를 존경하며 리버풀에서 잘 해낼 거라고 생각한다"라 했다. 또 이후로도 퍼거슨은 클롭의 열정이 리버풀의 정체성을 회복시켰다고 찬사를 보냈고,# 제이미 캐러거 역시 퍼거슨과의 개인적 일화를 통해 클롭이 리버풀을 성공으로 이끌 것을 전부터 확신했다고 밝혔다. 물론 클롭 역시 퍼거슨에게 여러 차례 존경을 표한 바 있다.
  • 잉글랜드의 악명 높은 타블로이드지이자 리버풀 시민들에게는 철천지 원수 언론사이기도 한[31] The Sun을 좋아하지 않는다. 기자회견 중, The Sun의 기자가 질문을 하려고 하자, 질문하고 있는 기자의 말을 끊고, "난 The Sun과 인터뷰 하지 않습니다."고 쏘아 붙이며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 적이 있는데, 후에 밝혀지기로는 The Sun지가 데얀 로브렌의 사생활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가십성 기사를 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르트문트 감독 시절에도 더 선 기자가 질문을 하자 "The Sun? 넌 내가 바보로 보이냐?"라며 질문을 거부했다.
  • 또한 흡연을 즐기는 애연가다. 자신의 와이프랑 맞담배 피우는 모습이 SNS에 올라왔고 위 사진처럼 아내랑 함께 바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찍히기도 했다.
    파일:external/i3.irishmirror.ie/PAY-Jurgen-Klopp-on-a-night-out-in-Liverpool.jpg
  • 지금까지 이루어 온 클롭의 업적은 그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낸 것이 아니다. 마인츠 시절부터 함께 한 젤리코 부바치, 페터 크라비에츠의 공도 크다고 볼 수 있다. 예상대로 클롭은 리버풀에 부임하면서 부바치와 크라비에츠를 어시스턴트 코치로 선임할 것을 클럽에 요청하였다.[32] 선임 후 부바치는 전술 계획을, 크라비에츠는 전력 분석을 담당하고 있다. 도르트문트의 미드필더인 누리 샤힌은 클롭 감독과 부바치 코치를 "마치 쌍둥이와 같다"고 표현할 정도로 서로 간의 호흡이 좋았다.[33] 그런데 클롭과 부바치는 2017-18 시즌 후반기에 모종의 이유로 결별하게 되었는데 큰 불화가 이유로 추정된다. 이에 펩 레인더스 코치가 승격되어 부바치의 자리를 대신하여 2인자가 됐다.[34]
    파일:external/i4.mirror.co.uk/Liverpool-FC-Training-1410.jpg
  • 바이에른 출신의 피지컬 코치인 안드레아스 콘마이어[35]와 상당히 닮았다. 현재는 콘마이어가 안경을 벗고 장발로 변신하며 이 같은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파일:클롭 분신술 1.jpg
    파일:클롭 분신술2.jpg
  • 다른 외국인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영국 언론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2017년 12월 인터뷰에서 퍼거슨이나 벵거 같은 장기집권에 대해 묻자 "지금의 언론과 함께라면 그건 불가능할 것 같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보다 좀 전인 12월 10일 에버튼 전 경기 후 인터뷰에서 로브렌의 파울로 인한 페널티킥을 가지고 스카이스포츠 기자와 설전을 벌인 적도 있다.[36] 특히나 영국 언론들은 폼이 좋지 않은 선수들을 물어뜯으려 안달난 반면 클롭은 자신의 선수들은 공식석상에서만큼은 무한히 쉴드쳐주는 경향이 있어 여기에서 마찰이 많다.[37] 클롭은 선수들이 외부의 비난을 받고 휘둘리거나 상처받는 일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며, 비판을 받더라도 오직 자신만이 받아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 대한민국 선수들과 이런 저런 인연이 많은 감독이다. 마인츠 시절 차두리를 측면 공격수에서 오른쪽 풀백으로 포지션 전환을 시킨 감독이며, 도르트문트를 맡은 후 차두리에게 문의 끝에 이영표를 영입하기도 했다. 지동원 또한 본인의 희망으로 영입했으며 이 과정에서 차두리에게 지동원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다고 한다. 손흥민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 도르트문트 감독 시절 손흥민의 영입을 희망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독일 현지에서 슛포러브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 정치적으로는 좌파 성향인 것으로 추정된다. 절대로 세금을 깎는 우파정당에는 투표하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 리버풀의 영원한 캡틴 스티븐 제라드와 사제지간으로 보낸 시기는 없지만, 제라드가 클롭에 대해 굉장한 신뢰와 지지를 여러 차례 표했다. 몇 가지 일화로, 제라드가 코치 라이선스 과정 일환으로 클롭에게 인터뷰 15분을 요청했는데, 클롭은 무려 90분이나 인터뷰에 응했다고 한다. 이에 "내가 클롭을 만날 때마다 느낀 건 그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무엇을 요청할 때마다 그 이상을 줬다"며 극찬하였다.# 또 한번은 "내가 클롭을 위해 플레이 하는 것을 상상해 보라. 나는 클롭 감독 밑에서 뛸 만큼 운이 좋지 않았다. 난 너무 늙었고, 시기를 놓쳤다. 그래서 나는 리버풀 선수들을 질투한다"라고 뼈있는 농담을 던졌고, "클롭과 이야기를 한 후 그의 사무실에서 나와 훈련장을 거닐었을 때, 다시 걸어 들어가 그와 함께 앉고 싶었다. 유니폼을 다시 입고, 리버풀을 위해 달려가서 열심히 뛰고 싶었다. 그는 전염성이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라며 클롭을 높게 치켜세웠다.#[38]
  • 이 밖에도 클롭과 함께 경력을 보낸 적이 없으나 과거 리버풀에서 좋은 활약을 했던 다니엘 아게르, 사비 알론소 등이 코멘트를 남겼는데, 아게르는 "정말 클롭의 멘탈리티와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을 좋아했다. 그는 항상 자신의 선수들을 응원하는 사람이며, 많은 걸 요구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감독이라면 이런 게 필요하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알론소 역시 "클롭의 열정적 지도 방식을 한 번 쯤 경험해보고 싶다. 그는 최고의 감독이고, 열정을 보면 감탄이 나온다. 선수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승리를 위해 모든 걸 집중하는 훌륭한 감독이다"라며 극찬을 건넸다.#
  • 세계 최장 스로인 기록(51.33 미터)을 보유 중인 그뢴마크 코치를 스태프로 합류시켜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는 "클롭은 혁신가다. 클럽을 발전시킬 수 있는 지식이 있다면 기꺼이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말하는 리더"라고 밝혔다.# 이밖에도 단체 라이딩과 프리시즌 중 프로 서퍼를 고용해 리버풀 선수들이 축구 스트레스를 극복하도록 정신력 강의를 듣게 한 적도 있다. #
  • 리버풀에서 제공하는 매치데이 터널캠 영상인 ‘Inside Anfield’를 유심히 살펴보면 소소하면서도 재밌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로 항상 하프 타임 휘슬이 울리자마자 선수들보다도 먼저 라커룸을 향해 가볍게 뛰어들어가는 그의 모습. 많은 감독들이 천천히 걸어들어가는 것들과 대비되는 또다른 포인트이기도 하다. 한 인터뷰에 따르면 하프타임 15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함이라고.
  • 경기장에서 대체로 운동용 캡에 트레이닝 상하의 차림을 고수한다. 한 인터뷰에 따르면 슈트를 입지 않는 이유로 편안함을 느낄 수 없고, 처음엔 의무인 줄 알았으나 일부 다른 감독이 입지 않은 걸 본 이후 끊었다고 한다.#
  • 2018년 가을에 머지사이드에 있는 저택에 입주했는데 이 집의 소유주가 전임 감독인 브렌던 로저스라고 한다. 이로서 집주인 - 세입자 관계가 되었다. 이 집은 2019년 리버풀 구단이 로저스에게서 매입하고 클롭에게 무상으로 임대해줬다.
  • 수입에 비해 상당히 검소하다고 한다. 프리미어리그 빅클럽 감독으로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데도 불구하고, 3,000만원 상당의 오펠제 차량을 이용한다고 알려져 있다.[40]
  • 2019 FIFA 올해의 감독 수상 소감에서 구단과 선수들에 대한 감사 인사 후, 커먼 골[41]이란 자선단체에 가입한 사실과 홍보 등을 하여 화제가 되었다. EPL 감독 중에선 최초로 이 단체에 가입했으며, 수상 소감에서 언급한 이후 커먼 골 홈페이지가 일시적으로 마비될 만큼 파급력이 상당하였다.#
  • 2019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한스 요하임 바츠케 회장이 자서전을 통해 클롭을 놓아준 걸 여전히 후회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차라리 클롭만 빼고 나머지 팀 전체를 내보내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회상했으며, 또 "우리는 서로에게 맹목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관계였다. 클롭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항상 정직했고, 그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그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클롭의 정직한 성격을 치켜세웠다.#
  • 2019-20 시즌 프리미어 리그 우승 후, 과거에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내비쳤다. 아버지는 젊었을 때, 아마추어 리그의 골키퍼로 선수 생활을 하셨고 아들이 프로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할 때, 축구 감독이 되라고 자주 격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들이 선수 은퇴하기 4개월 전에 돌아가셨다고. 또 자신이 젊었을 적엔 아버지를 닮았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최근 거울을 보면서 나이가 든 아버지와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똑같다는 걸 느꼈다고 밝혔다.
  • 대표적인 교체선수 5인제 찬성론자이다. 20-21 시즌에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전세계 주요 리그가 프리시즌 훈련을 짧게 가졌고, 여기에 더불어 시즌 일정도 빡빡했기 때문에 계속 5인제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해당 시즌에 리버풀은 EPL 구단 중 부상자 수 1위를 달리고 있었다.[42] 이후로도 선수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5인 교체룰을 밀고 있으며, 22-23 시즌부터 결국 현실화되었다.
  • 2021년 3월 리버풀 U-8 선수들과 랜선 미팅을 가졌다. 선수들이 하나씩 질문을 준비하고 클롭이 답하는 방식으로 약 10분간 진행되었다.
  • 고향팀인 VfB 슈투트가르트와 올랭피크 마르세유에서 뛴 센터백 카를하인츠 푀르스터를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선수시절 등번호는 항상 4번이었다.
  • 리버풀 시절 유럽 대항전에서 라리가 클럽들에게 유독 약한 모습을 보였다. 토너먼트에서 바르셀로나를 꺾고 챔스 우승을 달성한 18-19 시즌과 세리에 A의 아탈란타에게 패배하며 탈락한 23-24 시즌을 제외한 나머지 유럽 대항전 진출 시즌에서 모두 라리가 클럽에게 패해 탈락했다.[43] 특히 세비야를 상대로는 마인츠-도르트문트 시절부터 유럽대항전 악연을 이어가고 있다.
  • 클롭이 리버풀에서 3년의 리빌딩 후 네번째 시즌에 트로피를 들자 국내외를 막론하고 아무리 감독이 부진하더라도 시간을 길게 주어야 한다는 축구 팬들의 믿음이 한층 커졌다. 아예 몇몇 감독들의 입에서 직접 자신들도 클롭처럼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기까지 했을 정도. 하지만 이건 현실을 전혀 모르고 하는 헛소리이다. 클롭은 리버풀이 답도 없던 15-16 시즌 중반에 부임하여 환골탈태한 경기력을 선보이고,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을지언정 유로파리그 결승 진출이라는 성과를 바로 이루었다. 이후 첫번째 풀 시즌이던 16-17 시즌에 리그 4위 탈환, 17-18 시즌에는 2시즌 연속 4위권 수성과 챔스 결승 진출이라는 결과를 내며 꾸준히 팀의 성적을 상승시켰고 그 결과, 18-19 시즌과 19-20 시즌에 각각 챔스와 리그 등에서 우승이라는 열매를 따냈다. 만약 클롭이 16-17 시즌과 17-18 시즌에 챔스는 커녕 리그 중위권이나 유로파 리그권을 전전했다면 클롭 역시 그냥 경질당했을 것이다. 즉, 클롭은 오히려 일반 팬들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감독에게 주어지는 시간과 믿음은 감독 스스로가 실력으로 증명해서 얻어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인 셈.
  • 경기에 지거나 해서 감정을 조절해야 할 때는 하루 동안 잔다고 한다.
  • 슈퍼 리그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반대 입장을 고수해왔다.
  • 현 시점 주제 무리뉴의 최대 천적이다. 12-13 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무리뉴의 레알 마드리드를 만나 1차전 4-1로 털어버리며 결승 진출에 성공, 이 시즌 이후 무리뉴는 경질되었다. 15-16 시즌에는 리버풀로 넘어와 부진을 거듭하던 무리뉴의 첼시를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1-3으로 격침시키며 무리뉴의 경질에 사실상 결정타를 날렸고, 18-19 시즌 역시 휘청거리던 무리뉴의 맨유를 3-1로 털어버리며 무리뉴를 손수 실업자로 만들어줬다. 20-21 시즌에는 아예 무리뉴의 토트넘에게 더블을 따냈다. 무리뉴 상대 통산 7승 4무 2패로 압도적인 전적을 유지 중이다. 이러면서도 두 감독의 사이는 험악하지 않다. 인터뷰에서 서로 뼈 있는 한 마디 씩 주고 받긴 하지만 오히려 살갑게 인사하는 장면이 더 많이 잡힐 정도.
  • 반대로 카를로 안첼로티레알 마드리드에게는 상당히 약하다. 도르트문트 시절에는 레알 마드리드와 12-13 시즌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1승 1무를 주고 받고 4강에서는 1차전 4-1로 대승을 거두며 2차전 2-0 패배에도 불구하고 결승에 진출하고, 13-14 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는 1차전을 3-0으로 내주었지만 2차전 2-0으로 잡으며[44] 거의 탈락 직전까지 몰고 가는 등 레알 마드리드 상대 전적이 준수했으나, 리버풀로 적을 옮긴 뒤에는 무려 4번이나 레알 마드리드에게 챔피언스리그에서 탈락할 정도.[45] 결승전 패배도 2번이고 20-21 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는 1무 1패로 탈락, 22-23 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는 2패로 탈락하면서 6경기 1무 5패라는 최악의 전적을 기록 중이다. 안첼로티를 상대로도 전적은 최악인데, 13-14 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안첼로티가 이끌던 레알 마드리드에게 거둔 1승과 18-19 시즌 나폴리와 붙으며 얻어낸 1승, 19-20 시즌 FA컵 64강 에버튼을 상대로 얻은 1승 외에는 전적이 매우 좋지 않다. 안첼로티의 레알 마드리드에게는 무려 4패, 나폴리에게 1승 1무 2패, 그리고 심지어 전력 상으로 압도적인 우위에 있는 에버튼에게도 1승 2무 1패를 거뒀다.[46]
  • 21-22 시즌을 앞두고 레이저 치료를 받고 자신의 오랜 트레이드 마크였던 안경을 벗었다. 몇 년 동안 안경이 더 이상 시력을 교정할 수 없다 생각하고 수술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안경을 벗고나서 보여준 인상은 굉장히 사나워보인다는 평이 많다. 저 인상에 떡대까지 크니 실제로 보면 굉장히 무서울 거라고.
  • 21-22 시즌 맨시티와의 경기를 앞둔 기자회견에서 기자가 '맨시티와 리버풀의 경기가 프리미어리그에서 제일 재미있는 라이벌전이라는 얘기가 있다'고 묻자, 누가 그렇게 얘기 했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기자가 제이미 캐러거가 그렇게 말했다고 답하자 “그러면 맞는 말이네요”라고 대답했다. 리버풀 레전드인 캐러거의 말을 존중해주는 모습을 보인 셈. 클롭의 센스를 엿볼 수 있는 답변이다.
  • 목소리가 굉장히 낮고 울린다. 전형적인 동굴 목소리.
  • 감독으로서는 드물게 아디다스에 개인적인 협찬을 받고 있다. 때문에 다른 개인적인 스폰서가 있는 선수들처럼 훈련이나 경기 중일 때 상•하의•모자는 구단 스폰서인 나이키 제품을 착용하지만 신발은 아디다스 제품을 착용한다.
  • 2023년 5월 1일 프리미어 리그의 리버풀과 토트넘의 경기에서 후반전 리버풀의 디오구 조타가 역전 극장골을 넣었을 때 위르겐 클롭이 기뻐하면서 뛰어다니다가 햄스트링 부상을 입어서(...) 감독이 경기 중에 세레머니를 하다가 다치는 사례로 화제가 되었다.#
  • 모국인 독일어와 현재 부임해있는 영국의 영어 외에 프랑스어에 능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에서 선수나 코치생활을 하지 않았음에도 프랑스어를 쓸 줄 아는 이유는 아마도 그의 고향이 프랑스 국경과 가깝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가 자란 곳은 슈투트가르트 인근에 있는 글라텐이라는 시골마을로 프랑스 도시 스트라스부르와의 거리가 50km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프랑스어가 공용어인 기니 출신의 나비 케이타가 입단했을 때는 주로 프랑스어로 그와 대화했다고.
  • 최근 손흥민과 관련해서 가짜 뉴스에 시달리고 있다. 당연히 이는 명백히 가짜이며, 아무 관련이 없는 인터뷰의 배경을 가져와서 손흥민의 이적이나 선수 평가 한국 축구 관련 옹호 표현 등 가짜뉴스로 조회 수를 얻는 영상을 올려 시청자의 눈쌀을 찌푸리고 있다.
  • 축구 팬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에로틱 보이스 밈"으로 잘 알려졌다. 2019년 어느 인터뷰 도중, 세네갈인 인터뷰어의 프랑스어로 된 질문을 받았는데 당시 불-영 남성 동시통역사의 목소리가 유난히 힘 빠진 듯 나른한 데다가, 얕은 숨소리가 섞이는 바람에 오묘하게 색기가 돌았고 이에 클롭 본인이 "대단히 에로틱한 목소리군요. 또 들려줄래요?"[48] 하며 너스레를 떤 장면을 포착한 영상 클립이 인터넷 상에서 퍼지며 크게 화제되고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 2024년 7월, 리버풀 FC 재단(LFC foundation)의 첫 번째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10. 라이벌

10.1. vs 펩 과르디올라

파일:0_Screenshot-2021-1214-at-202833.png

상대 전적 11승 9무 10패.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펩 과르디올라 vs 위르겐 클롭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0.2. vs 주제 무리뉴

파일:external/static.t13.cl/1446305889-klop.jpg

상대 전적 7승 4무 2패. 원사이드하게 압도하고 있다.

11. 관련 문헌

  • 위르겐 클롭: 선수, 클럽, 서포터 모두에게 사랑받는 명장의 철학 - 엘마 네벨링 저/이성모, 이지호 역. 한스미디어. 2016
  • 킹 클로프: 리버풀 왕조를 재건한 클로프의 전술 콘셉트 - 리 스콧 저/이용훈 역. 삼호미디어. 2021.

12.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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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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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건
(페이건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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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
달글리시
(달글리시 체제(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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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대(대행)
모란
(모란 체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14대
수네스
(수네스 체제)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15대
에반스
(에반스 체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15·16대
에반스·울리에
(에반스·울리에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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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울리에
(울리에 체제)
파일:프랑스 국기.svg
★★
17대
베니테스
(베니테스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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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호지슨
(호지슨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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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달글리시
(달글리시 체제(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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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로저스
(로저스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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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클롭
(클롭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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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ˈjʏʁɡn̩ ˈklɔp/. 외래어 표기법에 맞게 적으면 위르겐 클로프.[2] 1. FSV 마인츠 05 아카이브 프로필[3] 2015-16 시즌 중도 부임하였으며, 기존 계약은 2026년까지였으나 2023-24 시즌을 끝으로 자진 사임하였다.[4] 위르겐 클롭 소개 영상[5] 분데스리가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독일 축구계는 50+1 규정로 대표되는 지역 기반의 풀뿌리 운영 철학 덕분에 금전적인 이득보다 지역 서포터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런데 RB 라이프치히는 이러한 독일 축구계의 철학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행보를 보여왔는데, 5부 리그 구단인 SSV 마르크란슈테트를 인수할 때도 거대한 자본을 앞세우는 바람에 주변 구단들의 반발을 사지를 않나, '독일 축구 구단은 구단명에 기업 이름을 넣어선 안 된다'라는 원칙을 비웃기라도 하듯 구단명에다가 레드불(Red Bull)을 연상시키는 'Rasen Ball'을 붙이는 꼼수를 쓰는 바람에 사실상 독일 축구계에선 공공의 적이나 마찬가지인 취급을 당했었다.[6] FIFA 올해의 감독 역사상 최초의 2회 수상자이자, 2회 연속 수상자에 등극하였다.[7] 2019-20 시즌 5회 수상으로 단일 시즌 이달의 감독 역대 최다 수상자에 등극했다.[8] 리그감독협회[9] 2018-19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2경기 2차전 리버풀 vs 바르셀로나, #[10] '최고의 스포츠 전문가' 부문[11] 독일 주재 영국 상공회의소와 영국 대사관 주관으로, 양국 간의 특별한 관계 증진에 헌신한 인물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참고로 클롭 감독이 초대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며, 시상식은 친정팀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홈구장인 지그날 이두나 파크에서 진행되었다.[12] 리버풀 감독으로서 이뤄낸 공로를 인정받아, 리버풀 시로부터 명예시민 지위가 수여되었다. 참고로 클롭 감독의 명예시민 훈장 수여는 시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으며 기존에 수여된 밥 페이즐리, 케니 달글리쉬, 스티븐 제라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13] 00/01 시즌의 마인츠는 굉장히 불안정했다. 임시 감독까지 포함하여 감독이 4번이나 바뀌었기 때문이다. 99/00 시즌 도중(4월)에 부임하여 짧게 팀을 수습했던 Dirk Karkuth(2003년, 41세에 뇌졸중으로 사망)를 대신하여 00/01 시즌 새로운 감독 René Vandereycken가 들어왔다. 하지만 14경기에서 4승 3무 7패 13득점 22실점이라는, 경기당 승점을 1.07점만 따내는 졸전을 거듭하다 경질되었다. 이후 마인츠의 2군팀 감독이었던 만프레드 로렌즈(Manfred Lorenz)가 1경기를 맡아 무승부.(1득점 1실점) 전임자 René을 수습하기 위해 소방수로 에크하르트 크라우춘(Eckhard Krautzun) 감독이 부임하였으나, 뚜껑을 열어보니 René의 성적이 좀 더 나았다. 에크하르트는 9경기에서 1승 3무 5패 7득점 13실점을 하며 경기당 0.67점의 승점을 쌓았고 얼마 못 가 경질되었다. 이후에야 비로소 위르겐 클롭이 후임으로 부임하였다. 00/01 시즌, 마인츠의 최종 전적은 10승 10무 14패 37득점 45실점이다.[14] 경질된 브렌던 로저스의 후임으로 시즌 도중에 부임하였다. 로저스는 15년 10월 4일 에버튼 전까지 리버풀 감독이었으며, 이때까지 3승 3무 2패 8득점 10실점을 기록하였다. 15/16시즌의 리버풀 총 전적은 16승 12무 10패 63득점 50실점 승점 60점이다.[15] 옳은 표현은 Normal이 아닌[16] 리버풀 감독 취임 당시 한 기자가 "무리뉴첼시 FC 감독으로 부임할 때 스스로를 특별한 사람(Special One)이라 소개했는데, 클롭 당신은 어떻게 소개할겁니까?"라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이 위트있는 대답은 현장에 있던 기자들을 박장대소하게 만들었고, 한 기자는 이것을 두고 "클롭이 말 한 마디로 언론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라고 했다. 실제로 이러한 클롭의 유머러스하고 센스있는 인터뷰 덕에 축구인들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영국 언론도 클롭 감독에겐 그나마 호의적이다.[17] 클롭의 도르트문트 재임 시절, 아스날의 벵거 스타일과 유사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같이 답하였다. 이어서 벵거에 대한 존경을 표했고 다만 추구하는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 듯 하다.[18] 2018-19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2차전 리버풀과 바르셀로나 간의 경기를 앞두고 한 말이다. 1차전에서 0:3으로 완패하며 모두가 결승 진출이 힘들다고 보았는데...[19] 경기 전 선수들에게 한 말이며, 도르트문트와의 15-16 시즌 유로파리그 8강 2차전 때도 하프타임 당시 '우리의 손자들에게 자랑할 만한 위대한 밤을 만들자'는 스피치를 했었는데 그 날의 스피치를 오마주한 것으로 보인다.[20] 클롭은 경기장에서 여타 감독들처럼 멋있는 정장이 아닌 늘상 편안한 트레이닝 복을 고수하는데, 그것에 관해 한 말이다.[21] UEFA FFP 룰에 관련한 발언이다.[22] Sven Demandt: 클롭과 마인츠에서 선수로 함께 뛰었고 은퇴 후 로트바이스 에센 감독 등을 역임했다.[23] 클롭의 도르트문트 시절 CEO(재임기간 2005~2025)[24] 펩 과르디올라, 지네딘 지단, 루이스 엔리케, 카를로 안첼로티, 토마스 투헬 등 현 시대의 명감독들 대다수는 코치 및 2군/유스 팀 감독으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이는 후세대에 해당하는 샤비 알론소, 미켈 아르테타, 시모네 인자기, 미첼 산체스 등에게도 마찬가지. 물론 알렉스 퍼거슨, 요한 크루이프, 디에고 시메오네, 로베르토 데제르비 등의 예외도 있다. 특히 디에고 시메오네와는 선수 시절 마지막 팀에서 바로 감독으로 승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25] 네이버 풋볼엔토크에서 언급한 사항.[26] 원래부터 클롭은 재치있는 말솜씨로 유명했다. 노말 원 드립이 그 예.[27] 그 유명한 베켄바워도, 클롭의 팬임을 자처했다.[28] 조롱이 극에 달했을 때에는 네이버에서도 클롭 스위스가 연결되어 검색됐었다.[29] 그런데 클롭보다 더한 감독이 있다. 베르더 브레멘 레전드인 토마스 샤프인데 이 사람은 브레멘에서 유소년, 1군 선수, 유소년 코치, 2군 코치, 감독까지 하면서 40년 동안 베르더 브레멘에만 있었다.[30] 돌이켜 보았을 때 당시의 클롭은, 본인의 이런 언더독 성향이 아니었다면 리버풀로 부임할 만한 하등의 이유가 없는 인물이었다. 이미 도르트문트를 유럽 정상권으로 올려놓은 지도력, 위에서 얘기한 호감형의 인상과 언변에서 기인한 스타성, 감독치고는 젊은 나이, 확고한 전술적 철학 등, 당장 감독 교체를 염두에 두거나 성적이 불만족스러운 빅클럽이라면 노리지 않을 이유가 없는 감독계의 최대어였다. 그에 반해 당시 리버풀은 답이 없는 침체기와 연고지의 불리함, 현실에 비해 높은 팬들의 기대치로 인해 감독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메리트가 없는 클럽이었고 실제로 클롭과의 링크가 나왔을 때 대다수의 리버풀 팬들은 현실적이지 않으니 기대하지 말자는 의견이 많았다.[31] 힐스버러 참사 때 리버풀에게 매우 악의적인, 전혀 사실이 아닌 거짓 내용으로 피해자들과 리버풀을 모욕하였기 때문으로, 이때 이후로 지금까지도 리버풀 FC와 에버튼 FC는 The Sun과 공식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32] 이 두 코치는 클롭 감독과 함께 도르트문트에서 물러나 쉬고 있는 상황이었고, 로저스와 함께 일했던 오드리스콜과 맥칼리스터 코치는 부임한지 한 시즌도 안되어 일자리를 잃었다.[33] 추후 인터뷰에서 얘기한 바로는, 마인츠에서 함께 선수생활을 했던 부바치와 클롭은 둘 중 한 명이 먼저 감독이 될 경우 나머지 한 명은 그 사람의 코치로 들어가기로 약속했었다고 한다. 이후 클롭이 먼저 감독이 됐고 부바치는 약속을 지켰다. 클롭은 부바치에게 일반적인 어시스턴트 코치 이상의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상 이 둘이 있던 시절의 리버풀에는 2명의 감독이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34] 직함으로는 레인더스와 크라비에츠 둘이 리버풀의 공동 수석코치였으나 레인더스가 클롭에게 사정이 있을 때 대신 기자회견에 나오는 등 감독의 역할을 대신했고 크라비에츠는 3인자 자리를 유지했다.[35] 바이에른 1군 코치였는데 도르트문트 시절 클롭이 콘마이어를 눈여겨 봤고 리버풀로 부임한 뒤 그를 영입했다.[36] 기자가 PK에 대한 의견를 집요하게 묻자 클롭은 처음에는 대답을 거부했으나 나중에 PK감이 아니라고 하였다. 기자는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설전을 벌였고 클롭은 "축구를 좀 아는 사람과 대화하고 싶다"라며 다소 감정적인 말을 하였다. 기자는 여기에 우리도 선수 출신과 같은 전문가를 데리고 있는데 이들도 PK 맞다고 한다며 속을 더 긁었다.[37] 영국 언론들은 특히 독일 감독에 대해 적대적인데, 펠릭스 마가트풀럼을 맡았다가 영국 언론에 의해서 재임 중 맹폭을 당했으며, 물러난 후 몇년 후인 2018년까지도 종종 끄집어 내어져 조롱과 굴욕을 당하고 있다.[38] 실제로 많은 리버풀 팬들은 가끔씩 ‘만약 제라드가 클롭의 리버풀에서 뛰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에 빠지곤 한다.[39] 하지만 정작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포레스트 검프라고 한다.[40] 덕분에 몇 번 오펠 광고를 찍기도 했다.[41] 커먼 골은 설립자 후안 마타를 비롯해 축구선수와 감독 등이 연봉의 1%씩을 기부하여 사회에 기여하자는 취지로 운영되는 자선단체이다.[42] 이로 인해 5인 교체론을 대표적으로 반대하던 셰필드 유나이티드크리스 와일더 감독과 기싸움을 하게 되었는데, 와일더가 “클롭은 이기적이다. 5교체는 뎁스가 두터운 상위권 팀들에게만 유리하고 하위권 팀들에게는 불리하다"라고 공격해오자 클롭은 “그렇게 좋아하는 3교체로 리그 꼴등이냐?”라는 핵폭탄급 팩트폭력을 가했다.[43] 세비야, 레알 마드리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패해 탈락.[44] 헨리크 미키타리안의 결정력 부족이 아니었다면 도르트문트가 2차전을 대승하며 4강으로 향했을 것이라는 평이 많다.[45] 리버풀 부임 이후 참여한 6시즌의 챔피언스리그에서 무려 4시즌을 레알 마드리드에게 탈락했다. 나머지 한 번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탈락.[46] 애초에 안첼로티가 이스탄불의 기적의 피해자여서 그런지 유독 리버풀 상대 전적이 매우 좋은 편이다. 밀란 시절, 첼시 시절, 에버튼 시절에는 동률이며, 레알 마드리드로는 5전 5승이라는 압도적인 전적을 가지고 있고, 나폴리 시절 역시 전적 우세이다.[47] 아예 '자네가 맨유를 잔인하게 0-5로 이긴건 괜찮고...?'라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48] "내일 경기가 굉장히 중요하죠. 파리를 상대로 어떻게 하실 건가요? (So it's a very important game tomorrow... How are you gonna play against Paris tomorrow?)" "그나저나 대단히 에로틱한 목소리군요, 통역사분. 어 그게 - 축하드려요. 와우. 한 번 더 해봐요. (Very erotic voice by the way, translator. You know what - congratulations. Wow. Again plea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