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통님 미국 가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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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fe2f5,#9fe2f5><colcolor=#d5aa0d,#d5aa0d> 장르 | 대체역사, 기업, 빙의 |
작가 | 민초냥이 |
출판사 | 문피아 |
연재처 | |
연재 기간 | 2024. 02. 13. ~ 연재 중 |
이용 등급 | 전체 이용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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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대체역사 웹소설. 작가는 민초냥이. 약칭은 미국총통 혹은 총통미국.2. 줄거리
1918년의 히틀러에 빙의했다.
이렇게 된 이상 미국으로 간다!
이렇게 된 이상 미국으로 간다!
3. 연재 현황
문피아에서 2024년 2월 13일부터 연재를 시작했다.4. 특징
《내가 히틀러라니!》, 《히틀러가 되었다》 같이 아돌프 히틀러에 빙의한 한국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대체역사물이지만 앞의 두 작품과 달리 원 역사대로 총통이 된 후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전쟁물이 아닌, 미국으로 이민 가서 사업가로 성공하는 기업물이다.작가가 고증에 굉장히 신경을 써서 자료조사를 철저히 하고 있으며, 매 화마다 작가의 말을 통해 꼬박꼬박 작중 설정에 관해 보충 설명을 한다.
5. 등장인물
자세한 내용은 총통님 미국 가신다!/등장인물 문서 참고하십시오.6. 개변된 역사
- 월스트리트 폭탄 테러 사건 저지
원 역사에서 1920년 9월 16일에 일어난 폭탄 테러를 히틀러가 예고하고, 이를 들은 잭 모건이 미리 범인을 잡으면서 폭탄 테러가 터지지 않았다. 원 역사에서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기에 누군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기서는 범인이 이탈리아에서 온 무정부주의자였다는 설정. 결과도 발표되지 않은 채 범인도 뒤에서 조용히 처리했다고 한다.
- 히틀러 컴퍼니 설립
히틀러가 주식을 통해 돈을 번 후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면서 설립된다. 그 뒤 미래지식을 통해 성공할 인물들을 대거 스카우트했다. 이렇게 끌어들인 이들을 지칭하는 이름은 히틀러 사단. 그리고 코카콜라나 워너 브라더스 등의 주식을 쓸어담아 대주주가 된다.
- 에디슨 고등 발명연구소 설립
히틀러에게 스카우트된 에디슨과 테슬라가 공식적으로 화해하면서 설립된다.
- 라디오 대중화
에디슨 고등 발명연구소에서 FM 기술을 연구하고, 야구장 독점중계권을 얻어낸 히틀러가 술집, 음식점에 라디오를 뿌리고 뉴욕 FM 라디오 방송국 '테슬라 라디오'를 설립한다. RCA는 이를 견제하려고 했지만 루스벨트가 손을 쓴 탓에 견제하지 못하면서 원 역사보다 빠르게 라디오 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야구 중계로 시작했지만 음악, 뉴스, 드라마, 재난 알림과 실종자 구조까지 라디오로 이뤄지면서 엄청나게 인기를 끌게 된다. 그리고 전국 각지에 있는 라디오 매니아들이 테슬라 라디오로 몰려들었고, 현대식 애프터 서비스를 지원하는 테슬라 스토어가 전국에 들어선다.
정치인들은 라디오를 주목하며 위험하다고 판단해 히틀러를 견제하려고 했지만, 되려 히틀러가 규제에 찬성하는 바람에 명분을 잃었고, RCA는 히틀러와 타협해 파이를 나눠먹게 된다.[1] 이후 원 역사에서 최초로 세워진 상업 라디오 방송국, 웨스팅하우스의 KDKA 방송국이 경쟁에 뛰어들어 공화당 후보 인터뷰를 따내자 히틀러는 반대로 민주당 후보 인터뷰를 따내고, 더 나아가 대선 토론과 개표 방송까지 라디오를 통해 이뤄지면서 라디오의 중요성이 어마어마하게 커지게 된다.
- 보드게임 캐피탈리즘, 호! 개발
모노폴리의 원형이 된 게임인 지주 게임을 인수한 히틀러가 개발했다. 모노폴리처럼 J. P. 모건을 캐릭터로 내세웠다. 오락거리가 별로 없던 시대라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대회까지 열리게 되었고 나중엔 잭 모건이 캐피탈리즘을 하다가 게임에서 파산패한 사진이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 히틀러의 자서전 출판
데일 카네기가 히틀러를 취재하면서 《내가 미국에서 보낸 2년, 어느 독일인의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자서전이 출간되었다. 출간 직후 미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끈 것은 물론,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도 출간되며 백만 권 넘게 팔린다.
- 폰지사기 방지
히틀러가 찰스 폰지가 사기꾼이라고 폭로하면서 주정부 차원에서 조사가 이뤄지면서 폰지사기가 들통난다. 이후 주정부에서 폰지의 계좌를 동결해버리고, 폰지는 잠적하고 도망치다 붙잡혀 사기 피해자들에게 구타당해 사망했으며, 사기 피해자들은 비록 전부는 아니지만 히틀러의 폭로로 연방정부에서 폰지의 계좌를 빨리 동결해 폰지가 사기 금액을 들고 달아나지 못하게 되며 피해 금액을 상당수 돌려받을 수 있었다. 허스트가 조금 과장해서 쓴 기사에 따르면 거의 6천만 달러어치나 되는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이 사건으로 히틀러는 명실상부한 영웅이 되면서 아메리카 이민자 연맹의 뉴욕 지부장이 된다. 덕분에 히틀러의 지지 세력 중에서도 폰지사기의 피해자들은 상당한 크기를 차지하며, 동시에 빚더미에서 자신들을 구해준 히틀러에게 열렬한 환호를 보내고 있다.
- 로켓맨 만화 출판
히틀러가 건즈백의 관심을 끌기 위해 시클그루버[2]라는 필명으로 스타워즈를 모티브로 한 로켓맨이라는 이름의 SF 만화 원고를 그려 보냈고, 이게 정식 출판되면서 미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미키 마우스 클럽처럼 로켓맨 클럽이 결성되고 어지간한 등장인물들은 다들 로켓맨을 볼 정도. 스토리는 지구를 통일한 제국을 무너트리고 세워진 민주주의 공화국[3]에 소속된 주인공 로켓맨과[4] 사이드킥인 말하는 고양이가 제국의 잔당 및 외계인들과 싸우는 내용으로, 제국의 경례 방식은 나치식 경례이며 그 외에도 스톰트루퍼, 라이트세이버, I Am Your Father 등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만화로 인해 로켓 재판이 벌어지거나 무솔리니가 로마 진군에 실패하고 이탈리아에서 내전이 터지는 등의 나비 효과가 일어난다.
- 미키 마우스 클럽 조기 창설
미키 마우스 클럽이 원 역사보다 더 빠르게 창설되어 예상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둔다.
- 로켓 개발
고다드가 히틀러의 지원을 받아 로켓 개발을 지속하면서 마침내 뉴 프론티어 1호의 발사에 성공한다. 해당 로켓을 발사한 장소의 이름은 다름 아닌 에어리어 51. 일부러 기밀인 척하는 여론플레이를 통해 발사는 성황리에 진행되었고 이후 로켓맨 만화의 매출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 소비에트-폴란드 전쟁
회귀한 트로츠키에 의해 원 역사와 반대로 붉은 군대가 차근차근 진격하여 폴란드를 압박하고 스탈린이 맡은 전선만 무리한 진격으로 폴란드군에게 격퇴당한다. 거기다 원 역사에서 무리하게 루마니아를 치다가 내분으로 5개월 만에 멸망한 헝가리 평의회 공화국도 멀쩡히 존속하고 있으며, 독일은 폴란드에 대한 감정도, 소련에 대한 감정도 좋지 않았기에 폴란드로 가는 연합군 물자를 방해할 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하지만 후술할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이 일어나면서 독일 내에서 반공 정서가 퍼지자 태도를 바꿔 폴란드로 가는 연합군 물자를 통과시킨다. 덕분에 폴란드의 숨통이 트이며 전세가 교착된 상태로 종전된다. 다만 폴란드가 불리한 상태로 종전되었기에 발트 3국의 독립과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분할은 이뤄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폴란드의 동부 영토가 소련에 넘어갔다.
- 영화 희망의 승리 개봉
워너와 그리피스가 히틀러의 자서전을 영화화하여 공동으로 제작해 개봉했다. 미국과 독일, 오스트리아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영국과 이탈리아에서도 관심을 보인다.
- 영화관에서의 팝콘과 콜라 제공
본래 영화관에서는 따로 음식을 팔지 않고, 바깥에서 사오는 간식이라고 해봐야 초코바나 사탕 정도였는데 마침 옥수수의 과잉 공급으로 옥수수 농부들이 힘든 점과 영화 희망의 승리가 인기를 끄는 점을 이용해, 히틀러가 한 달간 제휴 영화관에 오는 모든 관람객에게 팝콘과 콜라를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선언한다. 덕분에 농부들 사이에서도 히틀러의 영향력이 커졌으며, 팝콘과 콜라가 원 역사보다 더 빨리 영화관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된다. 옥수수의 운송은 잭 모건의 철도 회사에서 맡았다. 덤으로 옥수수 수요 증가를 위해 콘치즈도 개발했는데 히틀러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 에디슨과 테슬라의 노벨상 수상
원 역사와 달리 에디슨과 테슬라가 공동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히틀러는 노벨상 시상식 참가를 위해 스웨덴으로 가기 전 먼저 영국에 들러 케인스와 만나 향후 찾아올 대공황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고, 톨킨, 크리스티, 히치콕을 영입하였다. 이후 스웨덴에서 열린 시상식 당일, 히틀러 사단 멤버들은 히틀러 몰래 몰래카메라를 준비해 사진을 찍던 순간에 히틀러 콧수염을 달고 나왔다.
- 히틀러의 독일 방문과 H 클럽 창설
노벨상 시상식에서 슈트레제만과 만나 독일에 와달라는 부탁을 받자 히틀러는 마침 소비에트-폴란드 전쟁 문제도 해결할 겸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독일에 들르기로 한다. 그리고 독일에 오자 격한 환영을 받고, 히틀러의 팬클럽인 H 클럽을 창설한 헤스를 만나게 된다.
-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히틀러가 슈트레제만과 함께 맥주홀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오던 중 PTSD에 시달리는 반유대주의자이자 무정부주의자인 참전용사에게 암살당할 뻔한 사건이 터진다. 다행히 슈트레제만이 몸을 던져 막은 덕분에 히틀러는 별로 다치지 않았으나, 순간적으로 아이디어를 떠올린 히틀러가 꾀병을 부려 입원한 후 이 사건을 널리 소문냈고, 이번 사건이 마치 소련의 사주인 것처럼 선동하여 반공 정서를 퍼트려 독일이 폴란드로 가는 연합군 물자를 통과시키게 만든다. 그리고 미국에 이 사건이 알려지자 히틀러의 쾌유를 비는 행사가 전국적으로 열렸으며, 루스벨트는 아예 노스햄프턴급 중순양함을 보내[5] 그를 미국으로 데려온다.
- 자동차 브랜드 뉴프런티어 출범
히틀러가 포르셰를 영입하면서 보급형인 포드와 달리 좀 더 비싸고 고급스러운 자동차 브랜드 뉴프런티어를 출범하고, 뉴프런티어 911을 선보인다. 뉴프런티어의 로고는 다름 아닌 평화 기호. 포드는 당연히 이를 고깝게 보고 공격하면서 포드와의 질긴 악연이 시작된다.
- 페니실린 조기 발견
히틀러가 세운 호프눙 재단의 의뢰로 플레밍이 푸른곰팡이 연구를 하면서 원 역사보다 더 빨리 페니실린이 발견된다. 작중에서는 컴파운드H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리고 옥수수와 멜론, X선을 이용해 정제법을 연구하고, 옥수수 농장이 많고 테네시 주와 라이벌 관계인 켄터키 주에 첫 컴파운드H 공장이 세워진다. 그 뒤 히틀러의 총력전 선포로 개량 및 양산에 성공한다. 이렇게 조기 발견된 페니실린의 등장은 원래 죽었어야 했을 인물들이 죽지 않게 되는 방향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 국제교류협회 창설
히틀러의 제안으로 미국과 독일 간에 청년들이 오가며 교류하는 국제교류협회가 창설된다. 프랑스도 참가 제의를 받았지만 반독 감정이 남아있는 탓에 꺼려서 일단 미국과 독일 간에만 교류가 이뤄진다. 이를 통해 베르너 폰 브라운이나 레니 리펜슈탈 등이 미국에 오게 된다.
- 로켓 재판
디트로이트 컨벤션에서 시클그루버의 정체가 히틀러라는 사실이 공개된 것을 계기로 로켓맨이 더더욱 인기를 끌자, 근본주의자들이 득실대는 테네시 주에서 반-성경주의라는 이유로 로켓맨을 금지시키는 촌극이 벌어진다. 이에 테네시 주의 두 청년이 일부러 로켓맨을 읽다가 체포되어 재판을 받자는 발상을 하면서 일명 로켓 재판, 혹은 시클그루버 재판이 벌어진다. 그리고 히틀러가 증인 출석 요구를 받자 조셉을 통해 재판관(판사)에게 뇌물을 먹여두고, 테네시 주의 라이벌인 켄터키 주에 컴파운드H 공장 건설 계획을 유치하고 루스벨트에게 연설을 배운 뒤 증인으로 선 당일, 증언을 아예 연설로 하여 과학계와 종교계 어느 한쪽 편을 드는 대신 오히려 이런 재판을 통해 보여지는 성숙한 미국의 민주주의를 찬양하며 그 둘을 하나로 합쳐서 칭찬하고, 화룡점정으로 자신이 도이치인인 동시에 미국인이라서 자랑스럽다고 선언하여 어마어마한 박수를 받는다.[6] 그리고 해당 재판이 라디오로 생중계되면서 히틀러의 이미지는 끝을 모르고 치솟았다. 한편 재판 자체는 유죄판결로 끝난 대신 주정부에서 무죄방면했고 해당 로켓맨 금지법도 얼마 안 가 폐기되었다.
- 피플 매거진 창설
히틀러와 허스트가 공동으로 유명인사들의 칼럼을 다루는 잡지, 피플 매거진을 창설한다.
- 히틀러의 켄터키 대령 직위 수여
켄터키 주에 첫 컴파운드H 공장을 세운 히틀러에게 켄터키 대령 직위가 수여된다.[7] 이를 전해들은 히틀러는 상병에서 대령이면 몇 계급 특진인지 잠깐 세어 보았고, 하얀 양복을 입고 치킨을 튀겨야 하는 거 아니냐고 자조한다.
- 투나잇 토크쇼
RCA가 무성영화 배우들을 초청하는 것과 반대로 테슬라 라디오에서 데일 카네기를 사회자로 내세워 유명인사들을 초청하는 라디오 토크쇼를 시작한다. 이들 중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한 명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미국 부통령 캘빈 쿨리지. 문제는 쿨리지가 워낙 과묵하고 딱딱한 성격이라 같이 등장한 히틀러와 채플린이 어떻게 토크쇼를 진행해야 할지 고민하는데, 쿨리지는 놀랍게도 둘이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고 웃는다. 이에 둘이 콤비로 만담을 선보여 쿨리지를 웃기며 토크쇼는 대히트를 친다.
- 라팔로 조약 체결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이 끝나고 히틀러의 귀띔을 받은 슈트레제만이 러시아와 조약을 체결한다. 이를 통해 힘러가 우크라이나 지역에 농장 관리인으로 파견된다.[8]
- 하딩 정권의 부패 스캔들 폭로
원 역사에서는 하딩이 죽고 나서야 폭로되었지만, 여기서는 히틀러와 루스벨트에 의해 하딩이 살아있을 때 폭로되었다. 처음에는 어마어마한 부패에 불륜, 사생아까지 있다는 말이 너무 황당해서 반신반의하던 사람들도 폭로 내용 대부분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하딩에게서 등을 돌려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이목을 분산시키려고 IRS가 히틀러 컴퍼니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했지만 너무 깨끗해서 오히려 대비만 되었다.[9] 결국 하딩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하원에서 통과되자 충격받은 하딩은 그대로 쓰러진 뒤 그나마 탄핵당하는 것만은 막으려는 아내에 의해 수면제 과다 투입으로 사망하고 부통령 쿨리지가 대통령직을 승계한다.
- KKK의 위축
히틀러를 고깝게 여긴 KKK가 히틀러를 공격하자 히틀러는 원 역사에서 슈퍼맨을 이용해 KKK를 비웃음거리로 만들었던 방법을 이용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최대한 귀여운 이미지로 KKK를 연상시키는 캐릭터, 꼬마유령 쿠스퍼를 등장시키는 것. 그리고 KKK의 행진 날짜에 맞춰 미키 마우스 클럽과 로켓맨 클럽 회원들이 먼저 행진을 하면서 KKK는 만화 캐릭터 취급을 받으며 비웃음거리로 전락한다.
이에 몇몇 단원들이 분위기를 반전시키려고 인기를 끌고 있는 흑인 뮤지션 루이 암스트롱을 습격했지만 실패하고 대중의 시선은 더 차가워졌고, 그 와중에 단원 한 명이 엉덩이에 총을 맞고 그 단원의 어머니가 히틀러에게 편지를 보내자 히틀러는 그 단원에게 컴파운드H를 투여해 살려주고 개과천선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며 컴파운드H에 대한 신뢰성 상승과 KKK에 대한 여론 악화, 히틀러 본인의 이미지 상승을 동시에 이뤄낸다.
- 컨테이너의 등장
모건 3세가 해운업을 성장시킬 방법을 고민하던 중 히틀러가 컨테이너를 제안하면서 원 역사보다 20~30년 더 빨리 등장한다. 그런데 컨테이너선 실험을 위해 IMM에서 유조선을 인수하면서 마치 JP모건이 석유업에 뛰어드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고, 이대로면 기존의 석유 회사들의 견제가 들어올 것이 뻔한지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히틀러는 기발한 생각을 떠올린다.
- 새 유전들의 발견
컨테이너 사업을 위해 눈속임을 하고자 히틀러가 심령술사, 점성술사, 마술사, 1세대 탐험가들을 고용하고 심지어 다우징 로드까지 동원해 석유 탐사에 나서서 실제로 유전을 여러 개 찾아낸 뒤,[10] 직접 채굴하는 대신 컴파운드H 양산을 위해 매각하겠다고 발표한다. 하지만 이 유전들의 실체는 석유가 나오긴 하지만 대부분 셰일 가스로 하나같이 채산성이 떨어지는 곳들. 미국 내 셰일 가스의 매장량은 천문학적이지만, 그 셰일 가스를 제대로 활용하는 셰일 혁명이 일어나기까지는 백 년 가까이 이른 상황. 그리고 로열더치쉘이 인수를 제안하자 정부는 영국 회사인 로열더치쉘의 인수를 허락해야 하는지 고심하다 미국 회사인 스탠더드와 히틀러의 협상을 유도하는 선에서 끝내기로 했지만, 이 소식을 들은 전국의 히틀러 팬들이 백악관, 히틀러 컴퍼니, 뉴저지 스탠더드에 단체로 편지를 보내면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 된다.
결국 스탠더드는 로열더치쉘보다 많은 1600만 달러에, 추후 발견되는 원유는 배럴당 45센트에 유전을 인수하고 대신 히틀러가 새로운 유전을 찾으면 스탠더드가 10년간 계약 우선협상권을 갖기로 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히틀러가 꿈에서 조지 워싱턴을 만났다고 하면서 동부 텍사스에서 채산성 높은 초대형 유전을 발견하고, 이를 그냥 대중에 공개해버리면서 스탠더드는 물을 먹게 된다. 이때 히틀러가 받은 편지들은 그대로 빅데이터로 사용된다.
- 질병에 대한 전면전 선포
제시 모건이 폐렴으로 쓰러지면서 히틀러가 질병에 대한 전면전, 총력전을 선포하자 전 세계 의학계에서 연구에 힘을 쓴 끝에 컴파운드H 개량에 성공한다.
- 이탈리아 내전
무솔리니가 로켓맨 만화를 따라했다는 오명을 쓰고 비웃음거리가 되면서 로마 진군으로 권력을 잡지 못하고, 대신 남부에서 세를 불린다. 한편 북부에서는 레닌의 수작으로 노동자들이 대규모 파업을 일으킨다. 그리고 국왕은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이탈리아는 삼국지마냥 정부군, 파시스트, 사회주의자 셋으로 나눠진 형국이 된다. 그리고 북부 노동자들의 파업 진압 과정에서 총격전이 일어나 그대로 사회주의 혁명군이 결성되어 내전이 터지고 만다.
영국과 미국은 사회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컨테이너선을 통해 구호물품을 보내고, 사회주의 의용군은 이탈리아 북부로 향해 혁명군에 합류하고, 무솔리니는 파시스트들을 이끌고 정부군에 합류해 내전을 사회주의자들의 책임으로 몰아 이미지를 세탁한다. 그리고 허스트 직원들이 파견되어 내전 장면을 유성영화 카메라로 촬영한 뒤 영화관에서 뉴스로 상영하면서 미국에 이탈리아의 상황이 대대적으로 알려진다. 덕분에 기부 행렬이 꼬리를 물었으며, 교황까지도 모든 미디어 매체를 총동원해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의 상황을 알리기로 한다. 그 뒤 정부와 파시스트 연합군이 볼로냐에서 대패하고 혁명군이 로마로 가는 길이 뚫리자 전 세계에서 로마와 교회를 지켜야 한다는 소리가 나온다. 그리고 비행선을 통해 교황의 연설이 생방송되며 혁명군에 대한 여론은 더더욱 안 좋아지고, 비행선을 습격한 혁명군 대부분이 격추당해 죽고 일부가 포로로 잡힌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전세가 뒤집히고, 소련이 지원을 끊어버리며 혁명군이 백기를 들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소련이 너무 갑작스럽게 지원을 끊어서 혁명군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정부군과 파시스트가 학살을 할 가능성이 커지자 내전의 결과는 바꾸지 않으면서 학살을 막기 위해 히틀러가 직접 로마를 방문한다. 그리고 무솔리니가 MI5의 지원을 받아 영국 스파이로 활동한 기록을 약점으로 잡아 섣불리 행동하지 못하게 만들고, 직접 혁명군과의 항복 협상에 나선다. 그리고 혁명군 측은 이를 받아들인다.
그 뒤 국제연맹과 파리에 모인 예술가들까지 동참해 이탈리아의 상황을 전 세계에 알렸고, 전쟁고아들을 고아원이나 미국, 유럽의 가정으로 입양 보냈으며, 진성 공산주의자 난민은 이탈리아 정부와 파시스트 둘 다 수용을 거부하면서 별수 없이 소련이 이들을 수용한다.
- 히틀러-모건랜드 건설
히틀러와 아멜리아가 결혼하게 되면서 아예 결혼식을 위해 전용 축제장을 만들고 결혼식이 끝나면 놀이공원으로 운영하기로 한다. 물론 이목을 끌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이 정도로 큰 축제장을 만들려면 당연히 노동자가 많이 필요하기에 컨테이너 도입 후 실직하게 될 부두 노동자들을 흡수하겠다는 목적도 있었다. 원래 히틀러는 디즈니랜드라는 이름을 붙이려고 했으나 히틀러의 결혼식을 위한 축제장인데다 히틀러의 인기가 더 높다는 이유로 디즈니가 거부해서 대신 히틀러-모건랜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건설된 곳은 뉴올리언스.
- 컨테이너의 본격적인 도입과 IWW의 파업
컨테이너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은 이를 수많은 부두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행위라고 비난하며 파업을 벌인다. IWW는 파업을 끝내는 조건으로 터무니없는 조건을 내세우며 루스벨트의 중재안도 무시하는데, 사실 이들은 소련의 지령을 받고 있으며,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파업을 통해 이탈리아 정부군을 지원하는 컨테이너선을 멈추는 것이 진짜 목적이기 때문.
갈수록 쿨리지 행정부와 IWW의 충돌이 격해질 때쯤 히틀러가 IWW와 협상하겠다고 선언해 충돌을 막고, 협상 과정을 라디오와 유성영화 카메라로 생중계하기로 한다. 사실 히틀러 역시 IWW의 요구를 들어줄 생각은 없었고 IWW가 터무니없는 조건을 내세우는 점을 부각시켜 여론을 악화시키는 것이 진짜 목적이기 때문. 그리고 히틀러의 의도대로 지지부진한 토론이 이어지는 것에 더해 이탈리아 내전 상황도 알려지면서 IWW에 대한 여론이 갈수록 악화되었고, 결국 IWW는 분열되고 파업은 흐지부지된다. 그리고 이 모습에 실망한 헬렌 켈러는 IWW를 떠난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은 컨테이너 도입에 미적지근한 반응이었고, 이에 히틀러는 이탈리아 내전 당시 컨테이너를 활용한 자료를 공개하여 컨테이너의 가치를 증명하며 사실상의 공개입찰을 진행한다. 여기에 슘페터의 서적에서도 컨테이너가 소개되며 점차 컨테이너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진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이 서로 컨테이너를 먼저 확보하려고 하자, 히틀러는 양국이 합동 위원회를 구성해 각자 공급받을 컨테이너와 크레인의 비율을 조정하자고 제안한다. 이후 미국, 영국,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일본 등이 협상을 통해 컨테이너를 공급받았지만, 프랑스는 악감정 때문에 컨테이너를 도입하지 않는다. 다만 일본은 협상에 참가했음에도 공급받은 컨테이너가 현저히 적어 국제 청소년 교류 위원회 설립 반대로 보복을 시도한다.
- 히틀러와 아멜리아의 결혼
뉴올리언스에 히틀러-모건랜드 건설이 완료되면서 마침내 둘의 결혼식이 이뤄진다. 결혼식은 대규모 축제 형식으로 이뤄져 미국 전역에서 이를 구경하러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며, 디즈니가 결혼식을 기념해 만든 애니메이션 환타지아를 상영하고 이에 걸맞은 음료수로 환타를 개발해 선보였다. 웨딩드레스는 샤넬이 직접 디자인했고, 리펜슈탈은 퍼레이드를 기획했으며, 그리피스는 결혼식 과정을 촬영해 다큐멘터리로 제작했고 해당 영상은 전국의 영화관에서 상영되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본 사람들의 히틀러-모건랜드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진다.
-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혼란
히틀러의 명성이 높아지며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도 히틀러에 대한 지지 여론이 높아졌지만, 반대로 배후중상설을 믿으며 반유대주의로 똘똘 뭉친 자유군단 같은 극우 세력도 세를 불리기 시작한다. 이들은 컴파운드H가 사람들의 정신을 조종하기 위한 유대인들의 음모라고 주장하고, 공화주의, 민주주의를 반대하며, PTSD 치료를 위해 지어지는 제대군인 병원 건설을 막는 등의 모습을 보이고, 이에 맞서 H 클럽과 툴레 협회, 로켓맨과 던전&워리어의 팬인 젊은이들은 히틀러와 공화국을 찬양하며 충돌이 격해진다. 히틀러는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아멜리아의 제안으로 원래 하와이로 가려던 신혼여행을 독일과 오스트리아로 가기로 한다.
- 히틀러의 두 번째 독일 방문
히틀러가 두 번째로 독일을 방문하자 로켓맨 팬들이 공화국군과 제국군 코스프레를 하고 나올 정도로 격한 환영을 받는다. 이때 양쪽에서 광선검을 내밀자 히틀러가 한쪽을 선택하면 제국이나 공화국을 선택했다는 소리가 퍼질 것 같아 두 광선검을 양손에 동시에 든다. 하지만 후겐베르크 등의 반유대주의자와 일부 사회주의 세력은 히틀러를 고깝게 보고 신문을 통해 공격한다. 이에 히틀러는 먼저 괴벨스를 스카우트하고, 레마르크에게 소설 공동 집필을 제안하고, 샤흐트를 만나서 마르크를 빌리며 향후 찾아올 독일의 인플레이션에 대비한다.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출간
히틀러가 레마르크에게 소설 공동 집필을 제안하고 스토리 플롯을 건네주면서 원 역사보다 빠르게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출간된다. 먼저 후겐베르크 계열이 아닌 소규모 영세 신문사에서 연재했는데, 히틀러의 이름값 덕분에 신문 판매량은 높았지만 사람들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후겐베르크와 일부 보수 인사들, 융커들은 이때다 싶어 마구마구 공격을 퍼붓는다.
하지만 사실 대전쟁을 겪었던 사람들은 대놓고 열광하는 대신 차가운 분노만을 느끼고 있었기에 미적지근한 것처럼 보인 것이었고, 오히려 스트라이샌드 효과로 서부 전선 이상 없다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연재되는 신문 판매량은 상승, 후겐베르크의 신문 판매량은 하락한다. 거기다 미국을 비롯한 외국에서도 관심을 보인다. 덕분에 독일의 여론도 바뀌어 제대군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오던 제대군인 한 명이 자유군단에게 습격을 당하자, 자유군단이 인파에게 돌팔매질을 당하는 일이 일어난다. 거기다 H 클럽 회원들은 자진해서 병원과 컴파운드H 공장의 경비를 선다.
-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방문
오스트리아는 인플레이션에 식량난으로 독일 이상으로 혼란에 휩싸여 시민들은 매일같이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심지어 소련은 오스트리아를 거쳐 이탈리아 내전에 개입하고 있는데, 오스트리아 정부는 이를 제대로 단속하지도 못하는 상황. 이에 슈트레제만과 에케너의 제안으로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로 갈 때 제국의회 대표진과 함께 체펠린 비행선을 타고 가기로 한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도이치인인 만큼 양국의 화합에 딱 맞는 인물이기 때문. 이에 히틀러는 비행선을 통해 글을 홍보하고, 혹시나 찾아올지도 모르는 비행선 사고에 대비해 비행선에 헬륨을 사용하는 조건으로 승낙한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히틀러의 투자를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최소한 시민들의 불만이라도 잠재우기 위해 히틀러에게 로켓맨에 등장하는 다크 로드 복장을 입고 와달라고 하고, 히틀러가 오스트리아에 방문하자 시민들은 처음으로 시위가 아닌 환영식에 모여들고, 크로네의 가치가 잠시나마 안정되는 기적이 일어나며 히틀러에게 신용을 창조하는 사나이라는 별명이 붙는다. 이때 히틀러의 가족들과도 만난다.
- 오스트리아의 인플레이션 해결
히틀러의 인기와 크로네의 가치가 잠시나마 안정된 점까지 더해져 시민들이 "아돌프 히틀러를 재무장관으로!"라고 외치고 다니자 총리마저 진짜로 재무장관 직을 맡을 의사가 있는지 묻는다. 물론 히틀러는 거절했고 그 결과 크로네의 가치가 다시 급락했으며, 사회주의 세력이 준동하기 시작하고,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국제연맹 금융위원회도 지원을 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히틀러가 "형제들은 서로를 도울 의무가 있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안슐루스가 일어날 수 있다는 떡밥을 던지고, 슈트레제만도 여기에 동참하자 국제연맹 금융위원회도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된다. 거기에 오스트리아의 상황을 신문, 영상, 라디오 등으로 알려 지원을 받아내기로 한다. 마침 이탈리아 내전으로 바티칸도 위험해지자 교황까지도 모든 미디어 매체를 총동원해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의 상황을 알리기로 한다.
결국 국제연맹 금융위원회는 자금 지원을 결정했고,[11] 크로네의 가치가 다시 안정되었으며, 다시 재무장관에 임명된 슘페터가 계속해서 케인스, 샤흐트와 논의하며 재정 정책을 이끌어 인플레이션을 해결해나간다. 거기다 한때 싸웠던 폴란드까지 오스트리아를 지원하며 식량 가격도 안정된다.
- 공화국 기사단 창설
히틀러가 바이마르 공화국의 유지를 위해 자유군단 같은 극우 세력과 융커들에게 공식적으로 맞설 조직을 창설할 생각을 한다. 실제 히틀러와 나치 독일이 상징에 집착했고, 나치의 만행에도 불구하고 친위대 군복 같은 게 현대까지도 인기를 끌었다는 점을 이용해 역으로 공화국 기사단의 군복을 그걸로 차용하기로 한다. 물론 색깔은 남색으로 바꾸고 흑적금 국기 패치를 다는 등 개조는 거쳤다. 첫 단원들은 H 클럽 회원들 중 자원자로 뽑았다. 공화국 기사단은 이후 독일만이 아니라 미국, 영국, 프랑스, 튀르키예 등 타국에서도 지부가 창설되어 가입하는 사람들이 늘었으며, 개중 일부는 공화국 기사단 복장을 입고 메이시스 추수감사절 퍼레이드에 참가하기도 했다.
- 교황의 연설 생방송
모든 미디어 매체를 총동원해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의 상황을 알려 지원을 받아내는데 성공했지만, 분위기를 확고하게 할 만한 대형 이벤트가 필요했기에 교황의 연설을 라디오를 통해 생방송으로 내보낸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테슬라는 바다에 배를 띄워 중계국으로 활용하면 라디오 전파를 보낼 수 있지만, 이탈리아-오스트리아 국경 지대를 비롯해 네덜란드, 독일, 유럽 중부에는 라디오 방송국이 없어 전파를 보낼 수 없고 새로 지으려면 반년은 걸린다고 지적한다. 이에 히틀러는 비행선을 중계국으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하지만 프로젝트에 워낙 많은 인원이 투입되어 정보가 새나갔고, 이탈리아 혁명군이 비행선을 직접 공격할 수도 있어 호위 전투기를 투입해야 하는데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전투기 보유가 금지된 상황. 히틀러는 전투기 자체는 민간 비행기에 기관총을 달아서 만들기로 하고, 통제위원회의 허락을 받기 위해 시민들을 공략하기로 한다.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공개해서 이번 프로젝트가 신앙을 수호하기 위한 십자군인 것처럼 홍보하고, 전 유럽에서 파일럿 지원자들을 받았다.
프랑스 정부는 이를 극렬하게 반대하고, 프랑스인이 호위대에 지원하는 것도 금지한다. 이로 인해 가톨릭 지지층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고집을 꺾지 않지만, 히틀러가 보란 듯이 프랑스인 파일럿들을 제외시켜 버리고 폴란드군 소속 파견군을 지원받아 생제르맹 조약을 우회하며 호위대를 꾸리자 결국 프랑스 정부는 자국민의 호위대 참가 금지를 철회하며 사실상 백기를 든다.
그리고 마침내 연설 당일, 이탈리아 혁명군이 비행선을 습격하는 일이 일어나지만 1차대전의 베테랑 에이스 조종사들로 구성된 호위대의 분투로 우세한 교환비를 내며 비행선을 지켜냈고, 교황의 연설은 무사히 라디오로 생중계되었다.[12] 덕분에 독일 내에서는 국뽕 분위기가 치솟았고, 독일의 각 주에서 히틀러의 방문을 요청하는 전화가 빗발친다. 한편 비행선을 습격한 혁명군 대부분은 격추당해 죽었지만 일부가 포로로 잡혔으나 혁명군 측에서는 히틀러 측의 자작극으로 우기면서 오리발을 내민다. 이후 해당 비행선 습격 사건 당시의 영상은 뉴스 릴과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된다.
- 리히터 암살 시도와 자유군단의 위축
오스카 디를레방어가 자신을 따르는 자유군단 멤버들과 함께 히틀러를 유대인의 꼭두각시로 여기고 리히터를 암살하려 한다. 자유군단은 지부마다 통일된 조직이 아니라서 과격파 몇 명이 계획한 일이기에 자유군단 측에서 순순히 디를레방어를 넘기면 되겠지만, 자유군단 측에서는 계속 발뺌하는 상황. 히틀러는 이 사건을 계기로 이 참에 자유군단을 뿌리 뽑을 생각을 한다. 지금 독일의 모든 주 총리가 자신을 원하는 상황을 이용해 모든 방문 약속을 취소하고 허겁지겁 미국으로 돌아가려는 모습을 보인 뒤, 언론에 히틀러를 향한 암살 계획이 있다는 정보를 흘려 현지 경찰의 협조를 받아 독일 전역에서 자유군단이 벌인 범죄행각을 드러내는 것. 그렇게 되면 자유군단은 물론 그 뒤를 봐주는 융커 군부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된다.
히틀러의 계획은 성공해 자유군단을 향한 여론은 급격히 나빠지고 단원들은 줄줄이 탈퇴한다. 이에 젝트가 히틀러와 독대하여 이번 사건은 군부와 무관하다고 말하면서도 범죄자를 잡는 건 경찰의 일이라며 선을 긋는다. 물론 실상은 자유군단이 공격받게 내버려두면 유사시 예비병력이 줄어들고 우익 세력도 타격을 받아 독일의 재무장 가능성도 물건너갈 게 뻔한데, 그렇다고 자유군단을 지키면 군부의 중립성이라는 환상이 깨지니 이도 저도 아닌 입장을 취하는 것. 하지만 히틀러가 무조건 디를레방어와 다른 가담자들의 목을 가져오라며 선을 그어버리자 젝트는 더 이상 고집 부리길 포기한다. 그리고 히틀러는 취소했던 일정을 다시 재개한다. 이후 디를레방어는 도피 중 지인의 집에 들렀다가 그의 현상금을 노린 지인이 대접한 청산가리를 탄 수프를 먹고 사망한다.
- 히틀러의 그리스도 최고 기사단 훈장 수여와 로마 교회의 재정운용
교황의 연설을 생방송으로 내보낸 공로로 히틀러에게 그리스도 최고 기사단 훈장이 수여된다. 아무리 큰 공을 세웠어도 이런 훈장은 몇 년은 걸려야 받을 수 있고, 훈장 자체도 너무 격이 높아서 당장 수여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는데, 사실 이는 일종의 뇌물이었다. 히틀러 컴퍼니와 모건 하우스에 로마 교회의 재정운용을 맡기기 위한 것.[13] 그렇게 되면 히틀러를 로마 교회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물론, 상상을 초월하는 돈을 긁어모아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로마 교회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 자동차 브랜드 리퍼블릭 출범
히틀러가 유럽에도 자동차를 보급하기 위해 새로운 브랜드 리퍼블릭을 출범한다. 유럽에 고급 브랜드인 뉴프런티어를 출시해봐야 안 팔릴 게 뻔하니 포드처럼 보급형 자동차를 만들어 팔기로 한 것. 히틀러는 처음엔 폭스바겐이라는 이름을 생각했으나 폭스바겐을 번역하면 '국민차'라 너무 심심한 이름이라며 리퍼블릭이라고 지었다. 여기에는 공화국이라는 이름을 브랜드로 사용해서 일반 대중도 공화국에 친숙한 감정을 느끼게 만들기 위한 숨겨진 목적도 있었다. 리퍼블릭에서 출시한 차는 다름 아닌 리퍼블릭 비틀. 사전예약 방식도 독특하게 전용 예금계좌를 개설해 매주 돈을 채워넣고 기간이 되면 차를 읻도받거나, 은행 대출을 받아 차를 사는 할부 형식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 메이시스 추수감사절 퍼레이드
미국에서 히틀러에 대한 지지가 높아졌다지만 여전히 독일을 향한 시선은 좋지 않은 상황. 마침 슈트레제만이 원 역사보다 더 빠르게 바이마르 공화국 총리로 임명되자, 히틀러가 곧이어 찾아올 루르 점령에 대비하고 도스 안을 앞당기기 위해 독일에 대한 여론을 돌릴 방안을 고민하다 비행선을 미국과 독일의 우호의 상징으로 내세우기로 한다. 체펠린 비행선은 미국의 발주로 독일에서 만들어져 미국으로 건너온 물건인데다 교황의 연설 건으로 비행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에 딱 좋은 선택지였다. 이를 위해 1924년부터 메이시즈백화점 일대에서 열리던 메이시스 추수감사절 퍼레이드를 앞당겨 열기로 한다. 비행선은 물론 미키 마우스, 꼬마유령 쿠스퍼 등 인기 많은 캐릭터들의 풍선을 만들어 퍼레이드를 여는 것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으기로 한 것. 루스벨트가 뉴욕 주지사로 재임 중이었기에 매우 쉽게 허가를 받아낼 수 있었고, 루스벨트는 더 나아가 퍼레이드 날 진짜 비행선을 깜짝 등장시키자는 아이디어를 낸다.
한편 포드 모터스 쪽에서는 이를 의식해 자기들도 추수감사절 퍼레이드를 열기로 하고, 기부 재단 규모도 세 배 이상 늘리겠다고 발표한다. 히틀러는 기부가 늘면 좋은 일이라며 무대응하기로 했지만 공화국 기사단에서 포드에 맞서서 자체 기부 캠페인을 시작했고, 로켓맨과 뉴프런티어 팬들, 컴파운드H로 목숨을 구한 환자와 가족들, 텍사스의 초대형 유전으로 부를 움켜쥔 중소업체들, 콘벨트의 농부들, 가톨릭 교회 등등도 잇따라 기부 행렬에 동참했다.
그리고 당일 퍼레이드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 배상금 협상과 루르 점령 저지 및 히틀러 플랜
프랑스의 푸앵카레 대통령이 루르 점령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대충 봐도 프랑스가 독일을 선제침공하는 모습이라 역풍을 우려한 벨기에가 발을 빼려 하는 것과 독일이 배상금 내길 거부하는 것, 교황의 비행선 연설 때 프랑스의 비협조적인 태도 때문에 호위대가 위험에 처했다는 여론이 커져 불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히틀러의 방법을 따라하기로 한다. 독일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하며 소비가 활성화된 점을 이용해 독일인들이 돈을 쓰는 모습을 영화관에서 뉴스로 보여주기로 한 것. 이를 통해 독일의 경제는 견고하며 배상금을 못 내겠다는 독일의 요구는 부당하다고 설파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독일 마르크의 가치는 계속 하락하고 있으며, 독일인들은 인플레이션이 심해지자 돈의 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사재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프랑스인들도 독일에 와서 물건을 싹쓸이해가며 돈의 가치는 떨어지고 물가는 치솟고 있다. 하지만 푸앵카레는 고의적으로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독일이 잘 사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에 히틀러가 언론왕 허스트를 움직여 프랑스가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려고 루르 점령을 준비하고 있다고 선동하자 이걸 부정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던 푸앵카레는 미국 대사를 불러 적당히 항의했으나 그 정도로 멈출 생각이 없던 히틀러와 허스트는 더더욱 선동을 이어갔고, 또 끔찍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분위기에 전쟁의 잔흔이 남아 있던 미국인들도 동요한다. 이 때문에 배상금에 관한 협상 자리에 미국과 영국에서도 대표단을 보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진다. 이 상황에서 히틀러가 대표단 합류 제의를 받지만, 거절한다. 물론 진짜로 합류하지 않으려던 것은 아니고 거절하는 모양새를 보여 지지 여론을 만들기 위한 것.
그리고 본격적으로 선전선동을 시작한다. 먼저 프랑스에서 비행선 습격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의 프랑스판 버전을 상영했는데, 러닝타임의 70% 이상이 르네 퐁크를 다루고 있어 프랑스인들의 국뽕을 채워주는 동시에, 전투를 마치고 돌아온 퐁크가 독일인 파일럿 우데트와 포옹하는 장면을 넣어 반독 여론을 잠재운다. 프랑스 정부는 스크린 쿼터제를 도입해봤지만 소용없었고, 후술할 투탕카멘의 무덤 발견까지 겹쳐 여론은 점점 식어간다.
그리고 히틀러는 대표단에 합류, 아멜리아, 조셉과 함께 프랑스로 간다. 어차피 협상 자체는 실패할 수밖에 없으니 협상장 밖에서 예술가들과 인맥을 만들어 시민들을 공략하기로 한다. 그리고 협상 자리에서는 100% 기계적 중립을 고수하고, 회의가 끝날 때는 아멜리아와 함께 샤넬이 디자인한 옷을 입고 나와 기자들의 관심을 끌고, 예술가들과 자주 만난다. 거기에 다양한 레스토랑을 찾아 식도락을 즐기는 모습을 보이고, 이집트 테마의 카드 게임을 개발했으며, 파리의 모든 예술가들을 초청한 대규모 연회를 열겠다고 선언한다. 덕분에 세간의 시선은 협상 자리보다 히틀러 부부의 행보에 집중된다.
한편 루르 지역에서는 프랑스와 벨기에 관료들에 대한 반발심이 커지던 중 누군가에 의한 선로 폭파로 열차 사고가 발생한다.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히틀러의 귀띔을 들은 아데나워가 프랑스가 붉은 세기라는 공산주의자들을 후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이 사실을 폭로해 프랑스의 자작극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로 인해 프랑스의 여론은 분열되고, 이런 상황에도 푸앵카레는 루르 점령 계획을 강행한다. 이런 상황에서 히틀러는 연회를 앞두고 연설을 준비한다.
그리고 연회 당일, 히틀러는 자유를 강조한 연설을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미적지근한 반응이었고, 되려 루르 점령에 찬성하는 여론이 커진다. 하지만 사실 히틀러의 연설은 프랑스를 향한 것이 아니었고, 프랑스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이후 50억 프랑에 달하는 배상금을 갚았다는 점에 자극받은 독일에서 배상금을 갚겠다며 금 모으기 운동이 일어난다. 독일인들이 자발적으로 단결해서 벌인 일인데다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타국에서도 우호적인 여론이 커지자 프랑스도 루르를 점령할 수 없게 된다. 여기에 융커들은 기부 행렬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융커들에 대한 여론도 악화된다.[14]
후겐베르크는 여전히 음모론을 떠들며 히틀러를 공격하려고 했지만, 내부의 히틀러 지지자를 통해 이를 알게 된 히틀러가 해결방안을 고심하다 아멜리아의 제안으로 부부 싸움을 하는 척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 이유가 독일의 배상금 액수 때문인 것처럼 소문을 내고, 극적인 화해를 준비한다. 마침 아멜리아의 임신 사실이 드러나며 쉽게 화해할 수 있었고, 배상금 협상에 관해서는 프랑스에서는 예술가들을 이용해 평화를 향한 프랑스인들의 열망 덕분에 협상이 가능했다는 분위기를, 독일에서는 독일인들이 금 모으기 운동의 강인함을 보여준 덕분에 협상이 가능했다는 분위기를 만들어 양쪽의 국뽕을 채워준다. 결국 프랑스 정부는 루르 점령 계획을 포기하며 사실상 히틀러에게 굴복한다.
그 뒤에는 루이 암스트롱을 비롯한 유명 뮤지션들을 불러 평화를 기원하는 축제를 열기로 하고, 유명 뮤지션들이 모두 참가하는 평화를 기원하는 노래를 작곡하여 부른다. 제목은 세계의 아이들(Children of the World). 이 노래는 유럽 각국에 라디오로 송출되어 큰 인기를 끌었고, 협상 결과 독일의 배상금 액수가 확 줄어들었으며 이 결과는 히틀러 플랜이라고 불렸다. 그 덕분에 독일은 물론 영국, 프랑스의 경제도 안정되면서 유럽 국가들이 점차 뭉치기 시작한다.
- 투탕카멘의 무덤 발견
히틀러가 하워드 카터를 후원하면서 투탕카멘의 무덤 발견을 예언했고, 발굴 현장에 프랑스인 영화감독과 애거서 크리스티 등을 동행시켰다. 그리고 정말로 투탕카멘의 무덤이 발견되면서 전 세계로 소식이 퍼져나갔고, 특히 프랑스에서 발굴 현장을 촬영한 영화관 뉴스를 상영하며 자연스레 이쪽에 사람들의 눈길이 쏠려 독일에 대한 관심은 식어갔다.
- 투탕카멘 카드 개발
투탕카멘의 무덤 발견으로 이집트에 관한 열풍이 불자 이를 이어가기 위해 히틀러가 이집트 테마의 카드 게임을 개발한다. 히틀러가 따로 이름을 붙이진 않았지만, 사람들이 투탕카멘 카드라고 부르면서 이 이름으로 굳어진다. 이집트에 관한 열풍 덕도 있었지만 그 자체로도 재밌어서 엄청난 히트를 친다.
- 국제연맹의 국제 청소년 교류 위원회 설립 및 히틀러의 위원장 추천
국제연맹이 이탈리아 내전을 끝낸 히틀러를 새로 창설할 국제 청소년 교류 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추천한다. 이는 국제연맹이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히틀러가 문화를 마음대로 퍼트려도 좋다고 허락한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일본이 컨테이너 문제 때문에 설립을 반대하자 히틀러는 외무성 내의 파벌을 압박하고 에스코피에 셰프가 열 연회를 이용해 민주당과 공화당의 힘을 합친 초당적 협력을 해보기로 한다.
- 무솔리니의 위기
이탈리아 내전은 끝났지만, 히틀러는 아예 무솔리니를 포함한 파시스트들을 치워버리기로 한다. 이탈리아의 공화주의자, 민주주의자들은 이미 파시스트들에게 탄압당해 대부분 사라졌으나, 그 무솔리니조차도 교회만큼은 건드리지 못했다는 점을 이용해 교회를 대안으로 밀어주고 신부와 목사들을 선거에 내보내기로 한 것. 그리고 헤밍웨이가 무솔리니를 비판하는 기사를 내고, 국제연맹에서 전쟁범죄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어 무솔리니를 조사하면서 무솔리니는 궁지에 몰린다.
- 에드워드 왕자와 리펜슈탈의 스캔들
에드워드 왕자와 리펜슈탈이 눈이 맞은 뒤 파리에서 밀회를 나누던 장면이 파파라치들에게 딱 걸려 스캔들이 터진다. 이에 히틀러는 아예 그 둘을 이어주고 리펜슈탈을 차기 왕비로 만들기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 두 사람을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만들고자 먼저 두 사람이 헤어진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 히틀러의 노벨평화상 수상
프랑스의 배상금 협상과 이탈리아 내전 종식까지 활약한 히틀러에게 만장일치로 노벨평화상 수여가 결정된다. 이때 푸앵카레가 히틀러가 국제연맹의 국제 청소년 교류 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것을 반대하자 히틀러가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을 제안하여 외통수에 빠트린다. 결국 푸앵카레는 히틀러의 제안을 승낙한다.
- CIA의 창설
기존의 정보망에 한계를 느낀 히틀러가 통일된 정보조직을 만든다. 이를 위해 탐정 회사들을 인수하기로 하지만, 탐정업은 기본적으로 인맥 관리인데 탐정 회사들에는 능력 없이 인맥 하나로 높은 자리에 오른 무능한 간부들이 득실거리는 상황. 그러나 무능하다고 이들을 쳐내면 인맥도 날아가버린다. 이에 히틀러는 후버의 도움을 받아 이들이 불법을 저지른 증거들을 찾아내고 협박해 사직시킨다. 그리고 유능하지만 빛을 못 본 이들을 빈자리에 앉힌다. 여기에 케렌스키의 도움을 받아 러시아 정보망, 인맥을 얻어낸다.
- 일본의 상황 변화
일본에도 히틀러주의와 로켓맨 등이 퍼졌지만 일본 정부가 반제국주의 성향이라는 이유로 로켓맨을 금지시키려 하자 제3제국[15] 잡지 출판사와 구독자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일어난다. 여기에 일본이 컨테이너 문제 때문에 국제 청소년 교류 위원회 설립을 반대하자 히틀러는 외무성 내의 파벌을 압박하고 민주당과 공화당의 초당적 협력을 통해 일본을 흔들기 시작한다.
- 뉴프런티어 가이드 발간
히틀러가 프랑스의 민심을 사로잡기 위해 미쉐린 가이드를 떠올린다. 프랑스인들에게 음식은 국가적 자부심이기에 음식 평론가들을 동원해 프랑스의 레스토랑들을 소개하는 가이드북을 발간하기로 한 것. 에스코피에는 이 소식을 듣고 히틀러를 시험해볼 겸 연회를 여는데, 히틀러의 지식은 깊지만 프랑스 요리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꿰뚫어본다. 하지만 뉴프런티어 가이드북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출판에 도움이 되겠다는 뜻을 밝힌다. 그리고 히틀러가 디저트를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려 밀크셰이크를 만들자 감탄하면서 프랑스에 소개해야겠다고 하고, 히틀러 셰이크만 아니면 된다는 말에 히틀러 셰이크로 이름을 붙인다(...). 이후 밀크셰이크는 아예 프랜차이즈를 차려 판다. 그리고 뉴프런티어 가이드가 정식 출간되자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 블랙 카드 출시
히틀러가 VVIP 고객들에게 블랙 카드를 선물하고 쇼핑, 집 관리 등에서 특권을 제공한다. 일종의 한정 멤버십 클럽을 만들어 VVIP들과의 인맥을 만드는 것은 물론, 그들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는지 실시간으로 정보가 들어오는 효과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블랙 카드를 악용하는 간부들이 나오자, 오히려 블랙 카드의 혜택을 대폭 강화해 간부들이 블랙 카드만 쓰도록 유도하여 서로의 회사 계좌를 감시하게 만들고, 등급마다 혜택에 차등을 두어 승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게 만들었다.
- 세계 청소년들을 위한 캠핑장 건설
히틀러가 탐정 훈련을 위해 몬태나에 광활한 부지를 구입해 몰래 시설을 건설하던 중, 뉴욕 월드가 냄새를 맡고 이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보도가 나가면 히틀러의 이미지에 타격이 생길 것이 뻔했고, 그렇다고 건설을 취소하면 더더욱 수상하게 보일 테니 일단은 뉴욕 월드의 장단에 맞춰서 꽁꽁 숨기는 척하면서 아예 훈련 시설을 캠핑장으로 바꿔버린다.
이후 뉴욕 월드의 보도가 나갔으나 의심스러운 정황에도 불구하고 히틀러를 의심하는 여론보다 지지하는 여론이 압도적이었고, 뉴욕 월드 기자들이 취재를 거부당하는 일이 일어난다. 그리고 마침내 주정부 차원에서 조사가 시작되지만, 진실이 드러나자 뉴욕 월드의 이미지는 대폭락한다. 결국 뉴욕 월드는 신문 2면에 한 달간 공짜로 몬태나의 캠핑장에 대한 특집 기사를 싣는 것으로 용서받는다. 이후 밝혀진 사실은 히틀러에 의해 쫓겨난 탐정 회사 간부가 뉴욕 월드에 정보를 흘린 것이었다.
이후 월트 디즈니가 이 캠핑장의 존재를 알게 된 후 흥분해서 히틀러의 허락 하에 건설을 진두지휘하여 진정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든다.
- 미국의 국제연맹 가입 논의
국제 청소년 교류 위원회가 창설되고, 히틀러가 몬태나에 캠핑장을 지은 것을 계기로 윌슨이 미국의 국제연맹 가입에 도움을 요청한다. 여당인 공화당은 국제연맹 가입에 부정적이었지만, 이들은 히틀러에게 빚을 지고 있었기에 다루기 쉬웠다. 특히 상기한 캠핑장을 미국 각 주에 지으면 그만큼 수입도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므로 이를 미끼로 사용해서 쉽게 요리할 수 있었다. 당연히 그만큼 히틀러의 인맥은 더더욱 넓어지고 끈끈해졌다. 사무실에 앉아서 정치를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 것.
- 로스차일드의 독일 국채의 매입과 프랑스의 반유대주의 정서 확산
로스차일드가 뜬금없이 독일 국채를 마구잡이로 사들이기 시작하는데, 사실 이것은 모건 하우스가 독점하는 국채 유통에 숟가락을 얹으려는 심산이었다. 만약 로스차일드가 매입한 물량을 한번에 풀어서 국채의 가격을 폭락시켜 히틀러 플랜을 흔들고, 독일 국채의 2차 발행도 막히면 자연스레 독일은 로스차일드에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기 때문. 당연히 독일 입장에서는 안 좋은 일이지만, 정작 프랑스 입장에서는 마치 로스차일드가 프랑스인들의 돈을 독일로 보내는 것처럼 보였기에 반유대주의 정서가 퍼진다. 물론 이것 때문만은 아니고, 자신들은 기껏 승전국이 되었는데도 경제적으로 빌빌거리고 있건만 정작 패전국인 독일은 히틀러 플랜으로 빠르게 경제회복 중인 것을 보고 불만을 품으면서 증오할 대상을 찾게 된 것. 기껏 독일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에서 극우와 파시스트들을 무너트렸는데 이대로라면 내독나없이나 카이저살마냥 프랑스에 파시스트 정권이 들어설 확률이 높았다.
히틀러는 일단 프랑스에서 반유대주의 성향이 가장 큰 왕당파 가톨릭 정당인 악시옹 프랑세즈를 견제하기 위해 교황에게 연락을 취하여 이를 금서목록으로 지정하고 모든 가톨릭 종교 운동과 평신도 단체가 교계의 통제를 받도록 하여 시간을 번다. 그리고 모건 하우스와 협력하여 로스차일드의 공세를 막기로 한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폭동이 일어나 유대인들이 약탈과 폭행을 당하는 일이 벌어지는데, 놀랍게도 공화국 기사단 견습단원들이 스스로 반유대주의에 맞서 유대인들을 보호한다. 히틀러는 이들이 위험에 빠질까봐 적당히 통제만 한 후, 미국 내부에서도 퍼지는 반유대주의를 잡기 위해 찰스 코글린을 만나 경고한다. 그러다가 유대인 문제는 유대인이 해결하면 된다는 생각을 떠올리고 리히터를 써먹기로 한다.
이후 리히터가 파리까지 직접 찾아가 바롱 에드몽드 드 로스차일드를 만나는데, 막상 로스차일드는 유럽에 반유대주의 정서가 퍼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자 리히터는 그의 진짜 목적은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가 활성화되도록 하여 이스라엘을 건국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리히터가 전 세계의 유대 공동체에서 로스차일드가 이 일에서 손을 떼길 촉구하는 서명을 보여주자 로스차일드는 잠시 할 말을 잃는다. 그리고 만약 로스차일드의 의도대로 된다면 많은 돈을 벌겠지만 유럽 경제가 무너질 테고, 사람들은 로스차일드와 유대인에게 책임을 돌릴 거라고 지적한다. 이를 보여주듯 전 세계의 각기 다른 유대인 공동체들은 프랑스에서 벌어진 일과 로스차일드에 관심을 보이며 어디까지가 유대인인지, 유대인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논쟁했지만, 대부분 히틀러주의를 따라 히틀러 컴퍼니를 지지하자는 결론을 내리며 서명을 모았다.
한편 미국에서는 케렌스키가 히틀러에게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들을 데려오고, 로스차일드가 국채를 시장에 풀지 못하면서 모건 하우스가 반사이익을 본다. 결국 로스차일드가 채권 흔들기를 포기하며 반유대주의 정서 확산은 멈춘다.
- 반유대주의 정서 타파 시도
로스차일드 사건은 끝났지만 유대인 문제는 여전히 잠재적인 위협으로 남아있는 상황.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로스차일드처럼 시오니즘을 지지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문제가 많기에, 반대로 유대인들이 각 나라의 국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돕기로 한다. 당시에는 유대인이지만 유대인보다는 유대교를 믿는 미국인, 영국인, 독일인, 프랑스인 등 각 나라의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한 유대인들이 많았기에, 이런 유대인들의 노력을 보여주며 반유대주의 정서를 타파하기로 한다. 우선 유대계 독일인인 프리츠 하버의 행적을 프로파간다로 활용하고, 레니 리펜슈탈을 그 과정을 촬영할 감독으로 쓰기로 한다.
- 포드 대 뉴프런티어
포드의 반유대주의 성향과 히틀러의 에디슨, 포르셰 영입 등으로 포드 모터스와 히틀러 컴퍼니는 사사건건 충돌해왔다. 지분 싸움과 추수감사절 퍼레이드 이후로도 포드가 계속해서 포드 자동차가 안전하다고 선전하며, 반유대주의 기사를 신문에 실어 히틀러를 간접 공격하고, 심지어 자사 신문을 통해 뉴프런티어 자동차가 위험하다고 선전하고, 자사 딜러들도 여기에 동참한다. 히틀러는 우선 사고 통계를 이용해 뉴프런티어의 안전장치의 법제화를 추진하고, 충돌 테스트를 하고 이를 촬영해 영화관에서 상영하기로 한다. 여기 등장하는 더미 캐릭터의 이름은 덤 앤 더머. 또한 보험 회사들은 자동차 사고로 인한 중상자와 사망자가 줄어든다면 오히려 이득이었기에 히틀러 컴퍼니를 지지한다.
히틀러가 내놓은 충돌 테스트 영상은 상당한 인기를 끌었고, 대중의 관심이 커지면 청문회가 열릴 테고, 그 자리에서 안전벨트 로열티를 공짜로 풀면 다른 자동차 회사들도 안전장치의 법제화에 반대할 명분이 사라질 것이었다. 하지만 포드도 그 정도는 예상하고 다른 자동차 회사들과 연합해 로비를 준비할 테고, 그럼 히틀러라고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따라서 히틀러는 로비가 아닌 여론으로 상대하기로 한다. 이미 여론은 히틀러를 지지하고 있지만,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기에 여론조사를 위해 조지 갤럽을 영입하고, 미네소타에서 농민노동당이 압승할 거라는 예측을 발표, 이를 증명하여 여론조사의 힘을 증명한다. 그리고 자동차 안전장치 법제화에 대한 여론조사를 시작하는데, 자동차 안전장치 법제화에 찬성하는 비율이 무려 89%나 된다는 결과가 나왔고, 여론을 무시할 수 없던 정치인, 기업인들도 줄줄이 포드에게서 등을 돌린다. 그리고 포드 자동차의 판매량도 급감한다. 결국 충격을 받은 헨리 포드는 회사 일은 아들에게 맡기고 한동안 별장에서 요양하기로 했고, 에드셀 포드가 회사를 맡은 뒤 히틀러와 협력 관계로 돌아선다.
- 중국의 상황 변화
위안스카이 사후 군벌들이 난립해 개판이 된 중국에 소련이 손을 뻗자 히틀러도 따라서 손을 뻗기로 한다. 원 역사와 달리 소련이 쑨원이 아닌 천중밍을 후원하자, 히틀러는 자신들이 쑨원을 지원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우선 쑨원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점을 이용해 중국에 진출한 교회를 이용해 존 레이튼 스튜어트 목사를 통해 쑨원과 장제스에게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기로 한다. 하지만 천중밍이 탄광을 빼앗기 위해 북상하는 상황에서 쑨원을 지원해도 천중밍에게 도로 빼앗길 확률이 큰 상황. 이에 히틀러는 그 탄광을 자기가 사들여버리기로 한다. 그럼 탄광은 미국인의 사유재산이 되고, 미국은 자본주의 체제로서 개인과 기업의 정당한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기 때문에 만약 탄광을 천중밍에게 빼앗기는 일이 벌어지면 중립을 지키는 쿨리지 대통령도 자국 기업의 사유재산과 이익을 지키기 위해 외교적으로 압박을 가하는 등 어떻게든 움직이게 될 테니 천중밍도 함부로 손댈 수 없다. 지원 자금은 탄광 매입으로 꾸며서 송금하고 운영 권한은 혁명 정부가 유지한다고 명시하면 탄광을 지키면서 자금도 지원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애초에 미국인들은 중국에 관심이 없었기에, 판다 외교를 떠올리고 판다로 관심을 끌기로 한다. 판다 이름은 푸로 짓고, 쿵푸를 하는 판다를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도 만들기로 한다. 그리고 장쭤린은 동북 3성의 군수물자 생산 확대를 위한 도움을 요청하고, 독일 군부는 소련에서 군사훈련을 하겠다고 하자, 이 세 가지를 연결하여 장쭤린에게 치장물자를 사들여 쑨원에게 지원하고, 그 대가로 공작기계와 비행기, 비행선을 제공하고, 독일 군부의 군사훈련 장소를 소련 대신 만주로 하고 독일 장교들로 이루어진 군사고문단을 쑨원에게 파견하기로 한다. 수송은 IMM에 싼 가격으로 맡기면 그만.
그러나 정작 젝트는 이 제안을 거절할 가능성이 컸기에, 아예 독일 방위군을 사들여버리기로 하고 독일 장교들을 매수한다. 어차피 미국은 일본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환영할 테고, 변수는 영국. 영국도 공산주의라면 기를 쓰고 막겠지만 영국 정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고, 독일 장교들처럼 매수하기엔 돈이 너무 많이 드니 영국의 암호체계를 깨부수자는 발상을 한다. 쉽게 말해 통신을 감청하겠다는 것.
한편 장제스가 미국으로 오는 길에 아돌프 이오페에 의한 암살 시도가 있었지만 유람선을 통째로 매수해 연극을 벌인 CIA에게 그대로 가로막혀 실패한다. 만약을 대비해 그 뒤로도 장제스를 철저히 호위하고, 괴벨스를 통해 쑨원과 장제스를 중국 공산화에 맞서는 첨탑으로 포장한다. 여기에 공화국 기사단까지 중국에 진출한다. 그리고 판다 '푸'와 '피글렛'이 미국에 도착하자 엄청난 인기를 끌고, 디즈니에서 '용의 전사, 판다!'라는 이름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도 대인기를 끈다.
- 튀르키예의 상황 변화
일단 중국 문제는 넘겼지만, 히틀러가 소련에 있는 미래를 아는 누군가가 진심으로 공산주의를 신봉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본격적으로 나서기 전에 선수를 쳐야 한다고 판단한다. 그러기 위해서 소련과 가까운 중동에 손을 뻗기로 하고, 먼저 튀르키예의 아타튀르크를 끌어들이려 한다. 마침 아타튀르크는 튀르키예 독립 전쟁이 마무리되어가자 로잔 조약 협상 과정에서 모술을 튀르키예와 이라크 어느 쪽에 귀속시켜야 할지 논의하던 중이었고, 협상에 미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미국 기업들에게 대규모 개발권을 부여하려는 차에, 모술에 석유가 있다는 말을 듣고 로잔 조약 협상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의 기본방침, 모술에서 석유가 발견되었을 때 각국이 보일 반응까지 전해듣고 경악하고, 모술의 석유 지분 일부를 히틀러 컴퍼니에 넘기고 튀르키예 개발 사업에서 우선권을 가지는 대가로 협력 관계를 맺는다. 거기다 튀르키예에 공화국 기사단 지부까지 설립된다.
그리고 허버트 후버가 히틀러를 찾아와 일본이 적백내전에 개입하기 위해 시베리아에 출병한 뒤 아직도 거기 주둔하고 있고, 장쭤린과도 가깝게 지내는 등 만주에 진출하려는 낌새를 보인다며 장쭤린을 미국의 영향권 아래로 끌어들일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고 부탁한다. 히틀러는 그 대가로 모술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었고 튀르키예가 미국 기업들에게 대규모 개발권을 부여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말해주며 미국 정부가 튀르키예를 지원한다면 자신도 장쭤린을 지원하겠다고 하고, 이 소식에 기겁한 후버는 당장 백악관과 히틀러 컴퍼니 간에 핫라인을 깔아야겠다고 한다.
이후 모술의 유전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고 튀르키예의 태도가 180도 바뀌자 영국은 튀르키예에게 협박과 회유를 했지만 아타튀르크는 히틀러 컴퍼니를 통해 실시간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정보를 전달받고 있었기에 소용없었고, 여기에 튀르키예에서의 이권을 노린 미국도 끼어들면서 난항을 겪은 끝에 협상이 끝나고, 마침내 로잔 조약이 체결되고 모술은 원 역사와 달리 이라크가 아닌 튀르키예에 넘어가게 되면서 아타튀르크에 대한 지지율은 하늘을 치솟는다. 그리고 튀르키예에도 공화국 기사단 지부가 창설되고 투탕카멘 카드와 캐피탈리즘, 호!와 던전&워리어 등이 들어오면서 히틀러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도 커진다.
- 트럭 운송업의 발전과 주간 고속도로 건설
히틀러가 아이젠하워와 폰 노이만을 영입해 컨테이너 운송을 위한 트럭 운송업을 발전시키고, 자동차 안전장치 건으로 충격을 받은 헨리 포드가 요양을 위해 물러나고 에드셀 포드가 회사를 맡으면서 히틀러 컴퍼니와 협력을 결정, 히틀러 컴퍼니와 포드 모터스를 비롯한 각종 자동차 기업들과 연방정부까지 주간 고속도로 건설에 끌어들여보는데, 연방정부는 여론을 의식해 지원법을 통과시키나 다른 자동차 기업들은 발을 뺀다.
- 악시옹 프랑세즈의 분서 사건과 구텐베르크 프로젝트
프랑스에서 샤를 모라스의 주도하에 극우 정치인, 지지자들이 집회를 열어 히틀러의 책들과 뉴프런티어 가이드북, 세계의 아이들 음반 등을 불태우는 일이 일어난다. 분서 대상이 된 작가들은 분노해서 비판 성명을 냈으며, 프랑스인들 중에서는 5~8% 정도만이 악시옹 프랑세즈를 지지했다. 하지만 5~8% 정도라도 상당한 숫자였고, 프랑스의 경제회복이 더딘 상황에서는 언제든 50%, 80%로 늘어날 수 있었기에 히틀러는 대책을 세우기로 한다.
프랑스가 경제회복이 늦은 것은 반독 감정 때문에 다른 나라와 달리 컨테이너를 도입하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히틀러를 적대하는 프랑스 정부에 공짜로 컨테이너를 제공할 수는 없고, 아마 프랑스 정부는 관세장벽을 세우려고 하겠지만 그럼 경제회복은 더더욱 늦어진다. 히틀러는 고민 끝에 책을 불태웠으니 책이 해답이라고 판단해 분서 대상이 된 책들을 싸고 읽기 쉬운 페이퍼백으로 출판하기로 한다. 마침 분서 사건 덕분에 분서 대상이 된 책들에 대한 관심이 더 늘어난 참이었기 때문. 그리고 신문과 작가들, 사서들까지 동원해 판다 북스라는 출판사를 세워 페이퍼백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구텐베르크 프로젝트를 실행한다.
신문에 연일 구텐베르크 프로젝트 선정 도서와 분서 사건에 관한 이야기가 실리면서 자연스레 책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고, 심지어 아서 코난 도일은 새로운 셜록 홈즈 시리즈를 페이퍼백 한정으로 발매하기로 한다. 그러나 고속도로 프로젝트와 구텐베르크 프로젝트로 공화당에 대한 지지율도 높아지면서 위기를 느낀 민주당은 '연방 공무원이 정치적 내용이 담긴 서적을 공적인 장소에서 추천하는 걸 금지한다'는 정치적 중립을 내세운 애매모호한 법안의 입법을 추진한다. 이에 히틀러는 '정치적 내용'이 들어간 책을 그냥 다 빼버리는 식으로 응수한다. 심지어 셜록 홈즈 시리즈도 대영제국에 대한 지지가 들어갔으니 빼버렸다.
당연히 여론은 불타올랐고 아서 코난 도일이 셜록 홈즈 신작의 출판까지 보류하겠다고 하자 전 세계의 셜로키언들이 민주당에 대해 분노하였고, 민주당은 황급히 여론을 달래기 위해 형사처벌 조항을 삭제하고 규제 대상도 명백한 정치적 선동물로 한정하는 등 법안을 개정한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와 악시옹 프랑세즈의 분서 덕분에 프랑스의 책벌레들이 모인 부키니스트 거리가 더더욱 활성화되고 악시옹 프랑세즈에 악감정이 깊어지는데, 악시옹 프랑세즈는 화형식에서 태울 책이 없어 그런 곳에서라도 기부를 받는 형편이 된다. 그 와중에 애독가 한 명이 이를 역이용해 화형식에서 군주정 옹호, 반유대주의 서적을 불태운다는 아이디어를 낸다. 기자 친구까지 불러서 대대적으로 알리려는 건 덤. 덕분에 악시옹 프랑세즈에 대한 지지율은 되려 3~4%로 떨어지고, 반대 시위에 이어 예술가들과 가톨릭 신도들까지 이들을 비판하고 나선다.
- 일본의 시베리아 개입 실패
일본이 시베리아에서 곧 철수하려던 타이밍에 갑자기 대규모로 들이닥친 소련군에 의해 이틀 만에 도시를 잃고 5천 명 이상이 투항하는 일이 벌어진다. 관동 대지진 직전에 벌어진 일이라 이번 패배로 일본 사회는 흔들릴 게 분명하고, 이제 와서 추가 파병도 불가능한 상황. 하지만 소련군이 만주까지 접근하는 건 영국과 미국도 원하지 않을 테니, 히틀러는 제3제국에 연락을 넣어 일본에 있는 패를 늘리고, 협상 과정에 끼어들기 위해 백악관에 연락한다. 이상한 점은 소련군이 아무리 일본군이 방심하고 있다고 해도 굳이 자신들의 피해도 클 게 뻔한 시가전과 포위전을 택하고, 대규모 포로수용소를 미리 지어놨다는 것인데, 히틀러는 실제로 소련과 중국이 포로들을 대상으로 공산주의 세뇌 프로그램을 벌인 민주 운동을 하려는 것으로 추측한다. 그리고 구텐베르크 프로젝트 건으로 빚이 있는 민주당의 협력을 받기로 한다.
한편 일본인 두 명이 굳이 히틀러가 아닌 리히터에게 찾아와서 일본인과 유대인은 같은 민족이라며 일본인은 북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하면서 사라진 잃어버린 10부족의 후예라는 주장을 하고, 리히터는 근처 정신병원에서 동양인 두 명이 탈출했나(...) 생각하면서도 정신병자는 정신병자대로 써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한편 일본에서는 시베리아 소식이 전해지면서 완전히 난리가 났는데, 육군이 책임을 피하기 위해 히틀러 컴퍼니에 책임을 덮어씌우려 든다. 대략 '미국이 모종의 음모를 꾸며서 일본군이 습격을 받았고, 그 중심엔 최근 만주에 진출한 히틀러 컴퍼니가 있다'는 주장. 일본 외무성은 그 소문을 최대한 가라앉히려 하고 있지만 공화국 기사단 일본 지부가 이런 헛소문으로 인해 피해를 입으면 곤란하니, 워너 형제에게 연락해서 일본에 촬영진을 보내기로 한다. 어차피 곧 관동 대지진도 터질 테니 이를 이용하면 여론을 반전시킬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이 경우 조선 독립에도 영향이 갈 텐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 유일한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고, 그에게 중국, 조선, 일본을 맡기기로 한다.
그러나 일본 육군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여론은 점차 험악해지고, 사회에 기여하는 히틀러 컴퍼니와 달리 부를 빨아들이기만 하는 일본 재벌에 대한 여론도 안 좋아진다. 그러던 중 트로츠키에 의해 공화국 기사단 일본 지부에 사회주의자들이 침입, 음모론을 사실로 만들어 히틀러 컴퍼니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키려는 음모가 일어나지만 다행히 히틀러가 사전에 이를 발견하여 오명을 쓰는 길을 피하고, 모건 하우스를 통해 소련이 직접 운용하는 유럽의 투자사들을 조사한다. 그리고 괴벨스와 테슬라를 위해 준비된 비행선 노틸러스 호를 관동 대지진이 터지는 타이밍에 보내 피난민들을 지원하고 학살을 방지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기기로 한다. 조사 결과 소련은 일본의 경제 폭락에 베팅했다. 관동 대지진을 이용해 돈을 벌어들이려는 것. 그러나 이것은 히틀러 컴퍼니도 마찬가지였던지라, 히틀러는 고민하다 아멜리아의 충고를 받아들여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걷기로 한다.
그리고 마침내 노틸러스 호가 출항하고, 괴벨스와 테슬라가 히틀러주의를 홍보하며 전 세계에서 격한 환영을 받는 동안 일본에서만큼은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며, 군부와 재벌을 비롯해 일부 자경단까지 폭동을 벌이며 반히틀러주의를 떠들고 다니고, 반대로 공화국 기사단이나 제3제국 등 다이쇼 데모크라시를 이끄는 이들은 히틀러 컴퍼니를 지지하며 갈수록 일본의 혼란은 심해진다.
- 관동 대지진
1923년 9월 1일, 원 역사대로 관동 대지진이 터지고 관동이 초토화되는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 후 흉흉한 소문이 나며 자경단이 결성되어 관동대학살이 벌어지...려던 찰나, 히틀러가 보낸 외국인 촬영진이 이 장면을 다 찍은 덕분에 의화단 운동처럼 열강이 개입할 것을 우려한 경찰과 헌병들이 나서서 자경단을 해산하고 정부에서도 자경단의 활동에 제동을 걸며 학살을 막았다. 그리고 노틸러스 호가 예정대로 비상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아 관동 전역에 라디오 전파를 쏘며 대피소와 현황을 알리고, 창고에 쌓인 컵라면을 무료로 배급하고, 그나마 상태가 나았던 항구에 IMM 소속 컨테이너선들을 입항시켜 지진으로 집을 잃은 피난민들에게 컨테이너를 임시 숙소로 제공하는 등 구호에 힘쓴다. 정작 히틀러 컴퍼니를 욕하던 언론과 재벌들은 모조리 도망가버렸고, 촬영진을 통해 학살이 벌어질 뻔한 광경을 본 외국인들은 기부에 소극적으로 돌아서면서 히틀러 컴퍼니가 일본의 유일한 희망이 된다.
이 덕분에 공화국 기사단에 기부금이 폭증하고, 히틀러가 맡은 국제 청소년 교류 위원회도 거대 조직으로 성장할 기회가 생기면서 이를 통해 국제연맹을 집어삼킬 생각을 한다.
다만 당장 급한 문제는 컵라면 공급인데, 이 일로 지진 피해가 수습된 뒤에도 컵라면의 수요는 계속해서 늘어날 테니 생산비용을 낮추기 위해 밀가루의 단가를 낮추고자 상무장관이던 후버와 협상해 군 비축 밀가루를 공급받기로 한다. 물론 군 비축 물자를 민간기업에 함부로 내줄 수는 없지만, 지진이라는 특수한 상황인데다, 군 비축 밀가루도 엄밀히 말하면 농가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인데 앞으로 밀 생산량이 늘어나더라도 수요가 그만큼 따라가질 못하면 농가는 파산할 텐데, 그 밀로 라면을 만들어 아시아 시장에 수출하면 밀 농가가 수출 판로를 얻으면서 안정될 것이라는 논리로 설득하였다.
이후 소련에서 프라우다를 통해 히틀러 컴퍼니가 지진을 이용해 일본에서 돈을 벌어들이고, 심지어는 테슬라가 만든 지진 발생기로 지진을 일으켰다는 음모론까지 주장하며 히틀러를 공격하자, 히틀러는 모건 하우스를 통해 조사한 소련이 직접 운용하는 유럽의 투자사들에 대한 정보를 풀어 반격한다. 소련을 맹신하는 사회주의자들은 소련을 따라 히틀러를 공격했지만, 그동안의 행보 덕분에 오히려 히틀러를 지지하는 사회주의자들도 많이 나타난다. 하지만 모건 하우스를 통해 알아낸 정보만으로 모두를 설득하기엔 부족해서 로스차일드의 힘을 빌리기로 한다. 로스차일드와는 저번에 국채 매입 건으로 충돌했지만, 얼마 전 프랑스에서 있었던 악시옹 프랑세즈의 분서 사건과 반유대주의 정서를 가라앉힌 것은 히틀러 컴퍼니였기에 오히려 로스차일드 쪽에서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처지였기에 쉽게 설득이 가능했다.
그리고 로스차일드에게 받아낸 정보를 어떻게 터트려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 영국에 딱 맞는 인물, 미친 불독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 윈스턴 처칠에게 이 정보를 넘긴다. 그 뒤 이브닝 스탠더드를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고 오히려 소련에 대한 파장이 커지면서 자연스레 히틀러 컴퍼니를 향한 음모론은 가라앉는다. 이제 일본에 쐐기를 꽂기 위해 공화국 기사단원들을 모아 퍼레이드를 하기로 한다. 이걸 막았다간 일본 황실이 히틀러 컴퍼니를 견제하는 꼴이라 여론만 악화될 게 뻔해서 허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 더군다나 이번 지진 관련 수훈자 중 유일한의 공로가 매우 컸는데, 알다시피 유일한은 조선인이고 독립운동까지 했기에 일본 황실은 유일한에게 훈장을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결국 훈장 대신 감사장을, 그것도 황실이 직접 수여하지는 않는 것으로 타협한다.
히틀러는 이번 기회에 국제 청소년 교류 위원회 권한을 넓혀 지진 같은 비상상황에 국제적인 구호 활동을 조직, 지휘하는 국제협력 위원회를 만들어 국제연맹에서 힘을 얻기로 한다. 또한 독일 정부나 기업들이 일본에 대규모 지원을 하게 만들어 독일을 국제연맹에 가입시키고, 최종적으로 미국까지 가입시킬 생각을 한다. 그런데 히틀러가 저번에 관동 대지진을 예언한 덕분에 히틀러가 부탁하기도 전에 크루프와 지멘스 등에서 줄줄이 기부 행렬이 이어졌고, 덕분에 손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아직 보험 문제가 남아있었다. 히틀러가 일본에 컨테이너 항구를 지으면서 값비싼 보험 계약들을 맺었는데 관동 대지진 덕분에 엄청난 보험금이 들어오게 생겼지만, 아무래도 일본으로서는 그 정도의 돈을 지불하기 부담되는 데다 이를 억지로 뜯어내면 일본 내 반발도 커질 게 뻔한 상황. 결국 현직 대장대신인 다카하시 고레키요가 파견되어 히틀러와 협상에 나선다. 고레키요는 일본 내 복구 과정에서 사업 우선권을 부여하겠다고 제안하나, 히틀러는 일본에 돈만 쏟아붓고 돌아오는 이익도 없는 제안을 거부하고 대신 만철 지분과 그 뒤에 있는 황실의 재산을 거론한다. 일본 황실은 어떤 재벌보다 더 큰 부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 일단 협상은 결론을 내지 못하고 미뤄졌으나, 관동 대지진 이후 복구 과정에서의 정경유착이 1927년 쇼와 금융공황으로 이어진다는 걸 아는 히틀러는 여유롭게 그 실체를 들춰낸다. 그리고 스캔들이 터지면서 일본 재벌에 대한 여론 악화는 물론, 해외자금도 빠져나가면서 일본의 국가 이미지 자체가 박살 난다. 그 와중에 유일한은 박용만에게 사비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다.
- 독일의 국제연맹 협력국 지위 부여
히틀러의 활약으로 독일에 국제연맹 협력국 지위가 부여된다.
- 중국 공산당 일제 암살 사건
장쭤린이 관동 대지진을 틈타 일본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히틀러에게 만철과 별개로 만주 철도부설 독점권을 맡긴다. 히틀러는 이 참에 장쭤린과 장제스까지 합쳐 소련을 향한 반격과 조선 독립운동까지 손댈 생각으로 장쭤린에게 친서를 보낸다. 그리고 장제스에게 청방과 홍방의 인맥이 필요하다고 요청한다. 그리고 이들을 이용해 공산당원들을 모조리 제거하기로 한다. 그러던 중 갑자기 중국에 있던 CIA 요원 몇 명의 정체가 들통 나는 일이 벌어진다. 그 주체는 코민테른도 천중밍도 아닌 영국의 MI6로, CIA와 접촉한 것도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 협력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MI6와 CIA가 연계하여 중국 공산당을 쓸어버리기로 하고, 마오쩌둥을 비롯해 목표로 했던 인물 대부분을 암살하는데 성공한다.
- 언론의 극단주의 타파와 TV의 발명
관동 대지진 이후 일본의 재벌들이 언론을 통해 히틀러 컴퍼니를 깎아내릴 것을 우려한 히틀러가 서로 다른 당파들을 대변하는 언론인들을 만들고, 진실만을 보여주면서 극단주의를 조금씩 줄여나가는 식으로 세계정세를 안정시키고, 에디슨 고등발명연구소에 TV의 발명을 의뢰하기로 한다.
- 가라유키상의 구출
후세 다쓰지가 국제연맹의 국제 청소년 교류 위원회와 협력해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유곽을 폐쇄하고 가라유키상을 구출한다. 그리고 이 사실이 알려지며 일본의 이미지는 바닥을 친다. 그리고 이렇게 구출된 이들은 히틀러 컴퍼니의 도움을 받아 어린이들은 해외로 입양되고, 성인 여성들은 새로운 일자리와 숙소를 얻게 된다.
- 유일한 암살 미수 사건
일본에서 예정대로 퍼레이드가 이뤄지고, 히틀러 컴퍼니에 대한 지지와 재벌들과 사회주의자들에 관한 비난 여론이 커지던 찰나, 일본 경찰 한 명이 퍼레이드 한복판에서 유일한을 암살하려고 시도하는 사건이 터진다. 다행히 유일한은 어깨에 총을 맞고 살아남았으나 이 사건이 알려지면 조선에서 독립운동이 더 거세지고 그럼 일본이 군대를 동원하면서 유혈사태가 일어날 게 뻔했고, 이게 범인의 진짜 목적일 수도 있는 상황. 히틀러는 이 상황을 국가개조의 기회로 삼기로 한다.
이미 일본에서는 오쓰 사건이 터진 적이 있는 데다 퍼레이드 현장에는 수많은 외국인이 있었기에 이 사실은 널리 알려졌고, 유일한과 조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다. 사회 각계의 유명인사들은 물론 로마 교황청까지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는 성명문을 발표할 정도. 이에 일본 전국에서 히틀러에게 보내는 사과문이 쏟아지고, 노틸러스 호는 경성으로 간다. 일본으로서는 공채 발행이 막히면 끝장이라 어떻게든 히틀러의 마음을 돌려야 했고, 히틀러는 무려 천황이 직접 사과하라는 조건을 건다. 물론 이것은 아무리 그래도 무리였던지라 황족 중 한 명이 유감을 표하는 것으로 타협했고, 동시에 조선으로 가는 비행선과 홍보팀을 방해하지 말라는 조건을 건다.
그리고 조선에서는 예상대로 시위가 일어났지만, 히틀러의 의도대로 어떠한 폭력 사태도 일어나지 않고 평화롭게 진행되었고, 노틸러스 호와 외국 기자들이 철통 감시를 하면서 일본군도 전혀 손대지 못한다. 오히려 유일한에게 동조하는 일본인들도 나오는 지경. 결국 노부히토가 나서서 유감을 표하기로 했고, 여기에 히틀러가 유대인의 하수인이라고 믿는 히로히토와 내각이 그들을 써먹을 요량으로 유대인들의 일본 이민을 허가한다. 그렇게 유대인들은 홋카이도에 자리를 잡게 된다. 그동안 시온주의를 지지하던 로스차일드 프랑스 방계는 안 좋아하겠지만, 영국 방계는 오히려 좋아할 테니 그들을 분열시켜 지배하기로 한다.
- 히틀러의 노벨평화상 수상
이탈리아 내전, 관동 대지진, 조선의 시위를 해결한 히틀러에게 노벨평화상 수상이 결정된다. 하지만 아멜리아의 출산이 가깝다는 이유로 히틀러는 직접 받는 것을 거절하고 조셉에게 대리 수상을 맡긴다.
- 히틀러 컴퍼니 신사옥 건설
히틀러 컴퍼니의 사옥을 새로 짓기로 하는데, 최종 디자인 시안으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펜타곤이 낙점된다. 둘 중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하는 히틀러에게 아멜리아가 그냥 둘 다 지으면 된다고 충고했고, 그에 따라 펜타곤 가운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세워진 모습으로 짓기로 한다. 이 사실이 알려진 후 각 주에서 유치 경쟁이 벌어졌지만, 히틀러는 뉴욕에 남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뉴욕에는 히틀러 컴퍼니의 신사옥이자 새로운 랜드마크, 일명 펜타곤 타워가 들어선다.
- 로켓 퍼레이드
전 세계의 공화국 기사단 단원들이 히틀러의 득녀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로켓 모형을 만들어 퍼레이드를 벌였다.
- 히틀러 컴퍼니의 악마의 대변인 임명
히틀러 컴퍼니의 규모가 커지면서 히틀러도 모든 것을 살필 수 없어 조금씩 부패나 횡령을 일삼는 간부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던 차에, 엘리자베스 네인이라는 뉴욕 월드 기자가 이를 파헤치다가 히틀러의 눈에 띄게 된다. 히틀러는 그녀를 아예 악마의 대변인으로 삼아 히틀러 컴퍼니가 깨끗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관리하기로 한다.
- 폴란드의 상황 변화
독일 내에서 반폴란드 정서가, 폴란드 내에서 반독 정서가 커지는 와중에도 히틀러 컴퍼니가 폴란드에서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오히려 폴란드 내에서 히틀러 컴퍼니와 공화국 기사단에 대한 지지율은 갈수록 치솟는다. 그러던 중 피우수트스키가 원 역사처럼 쿠데타를 일으키고, 대통령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독일과는 외교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이며, 공화국 기사단은 아무런 문제가 없고 히틀러는 존경할 만한 사내라는 말을 남긴다.
7.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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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9.25 / 10 | 조회 수 43만 2024-11-01 기준 |
초반에는 주인공이 히틀러라는 것 말고는 별다른 특징 없는 대체역사물의 탈을 쓴 기업물에 가까워서 '굳이 히틀러가 주인공일 이유가 있느냐'는 혹평이 많았다. 그러나 동시대의 트로츠키가 회귀자라는 사실이 밝혀진 54화부터 어느 정도 분위기가 반전되었고, 이후 미국 외의 국가들에서도 주인공의 행동이 영향을 미치면서 역사가 변하는 모습을 보여줘 대체역사물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호평이 늘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엄연한 대체역사물이 맞는데다 히틀러 개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동안 널리 쓰이던 평행우주 히틀러 화가 드립[16]을 세부적인 직업만 좀 바꿔서 그대로 쓰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 점을 감안하더라도 무슨 일이 터지면 히틀러가 주변인물과 몇 마디 문답을 나눈 뒤 해결방안을 내놓는 식으로 전개 방식이 내내 똑같아서 지루하게 느껴지기 쉽다.
8. 기타
- 제목은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의 패러디로 보인다.
- 표지가 히틀러가 미키 마우스 모자를 쓰고 평화 기호 배지를 단 채 자유의 여신상 포즈를 따라한 모습이라 뭔가 나치식 경례를 닮았는데 엄청나게 뒤틀려서 웃기다는 평가가 많다. 사실 원안은 캡틴 아메리카 방패에 미키 마우스 인형까지 들고 있었는데 편집자가 말렸다고. # 왼손 동작의 모티브는 연설 연습 중에 찍은 사진 중 하나로 이 사진. 출처
[1] 워낙 제대로 물먹은 탓에 훗날 사장이 되는 협상인으로 왔던 사르노프마저 "히틀러씨 당신은 정말 좆같은 사람입니다"라며 대놓고 욕이 섞인 비꼬는 칭찬을 할 정도.[2] 히틀러의 예전 성이다.[3] 히틀러 본인은 스타워즈에서 따온 거지만, 마침 독일도 제국이 무너지고 공화국이 세워진 상황이라 독일을 모티브로 한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다. 한편 중국에서는 청나라를 무너트리고 중화민국이 세워진 자기들 상황을 따왔다고 생각했고, 일본 제국에서는 반제국주의라는 위험사상을 다룬 작품으로 인식했다.[4] 그리고 거미 인간, 박쥐 인간 같이 중간에 폐기한 아이디어도 언급된다.[5] 루스벨트의 입지가 강화된 것인지, 아니면 해군이 예산을 더 탔는지 노스햄프턴급 중 한 척인 '시카고(CA-29)'가 원 역사보다 훨씬 일찍 나온다. 함장은 태평양 전쟁의 전설 체스터 니미츠.[6] 이 모습은 맥주홀 폭동 이후 체포된 히틀러의 재판 과정을 오마주한 것으로 보인다.[7] 할랜드 샌더스가 이 직위를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8] 사실 이는 소련에 있는 누군가가 미래를 아는지 확인하기 위해 히틀러가 SS급 카나리아 역할로 보낸 것이었다.[9] 이때 세무조사 지표 자료 정리를 진두지휘한 리히터는 여자랑 하룻밤 잔 것보다 더 끝내주는 상황이었다며 피로에 찌든 상태에서도 매우 흥분해있었다.[10] 당연히 다우징 로드 같은 걸로 찾아낸 건 아니고, 자료 노트에 유전의 위치가 있었기 때문에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11] 프랑스는 히틀러를 고깝게 보고 있어 자금 지원에 반대했으나, 미국,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모두 히틀러를 지지하고 있었고, 특히 미국과 영국은 안슐루스가 일어나 기껏 족쇄를 채운 독일이 폭주하거나 오스트리아까지 공산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뿐더러 미국은 히틀러가 이탈리아 내전 상황을 미디어 매체로 알린 덕에 이탈리아를 수월하게 지원할 수 있었고, 영국은 히틀러가 개발한 컨테이너 도입을 추진 중이었기에 자금 지원에 흔쾌히 찬성했다. 결국 혼자서 반대를 이어나갈 수 없었던 프랑스도 타협 끝에 자금 지원에 찬성한다.[12] 연설은 이탈리아어로 했기 때문에 같이 송출된 통역 방송까지 듣지 못하거나, 가톨릭 교회에 직접 가서 신부들의 통역을 듣지 못한 사람들은 무슨 내용인지 알아듣지 못했으나, 교황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전율했다.[13] 원 역사에서도 로마 교회는 모건 하우스에 재정운용을 맡겼다.[14] 그나마 힌덴부르크는 금 모으기 운동 초창기 때 본인이 거주 중인 저택을 기부하였고, 여론이 안 좋아지는 것을 파악한 융커들도 뒤늦게 기부를 하긴 했으나 욕을 먹는 건 피할 수 없었다.[15] 1913년 일본에서 창간된 실존하는 잡지로, 나치 독일과는 아무 상관없다. 반제국주의, 반군국주의 성향을 보이면서 만주와 조선의 포기를 주장했다. 원래는 사회주의 성향이었으나 작중에서는 이탈리아 내전 이후 분위기가 돌아섰다고 한다.[16] 평행우주에서 히틀러가 빈 미대에 붙어 독재자가 아니라 평범한 화가로 남은 여생을 보낸다거나 찰스 맨슨이 세계적인 뮤지션이 된다거나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