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30 21:19:09

혁명가


1. 개요2. 정치
2.1. 혁명 사상2.2. 혁명가 목록 (시대순)
2.2.1. 전근대
2.2.1.1. 동양: 역성혁명2.2.1.2. 서양: 민주정공화정의 등장
2.2.2. 근대
2.2.2.1. 16~18세기: 절대왕정의 쇠퇴와 시민혁명2.2.2.2. 19세기 ~ 20세기 전반: 혁명적 들의 확산과 식민지의 독립혁명
2.2.3. 현대
3. 과학
3.1. 근세: 과학이라는 개념의 탄생3.2. 근대: 세상의 비밀을 밝혀내다3.3. 현대: 과학문명의 정립
4. 관련 어록5. 관련 항목6. 창작 매체의 혁명가
6.1. 혁명가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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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혁명가(革命家)는 말 그대로 혁명을 하는 사람이다. 인류 문명의 구 체제를 엎거나, 엎은 뒤 새 체제를 이끌어낸 사람을 가리킨다. 의미만으로는 혁명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이 해당되지만, 많은 경우 혁명의 주요 인물, 또는 그 중에서도 혁명을 주도했던 지휘자가 혁명가라 칭해진다.

2. 정치

혁명가 명칭의 제1선. 왕조, 낡은 사회체제를 뒤엎거나 식민지를 해방하고 근현대 국가를 건국하며 역사를 바꾼 위인들 전반이 여기 해당한다.

2.1. 혁명 사상

  • 혁명적 사회주의 - 20세기 이후 생겨난 조류. 흔히들 생각하는 무장 투쟁이나 전위대에 의한 공산 혁명을 따르는 사상을 이야기한다. 참고로 카를 마르크스도 혁명적 사회주의를 구체화한 적은 없고, 단순히 "노동자가 단결하여 봉기한 후, 구체제가 타도되면 자본주의는 망한다."까지만 말하였다. 혁명적 사회주의가 구체화된 것은 제2인터내셔널 이후 블라디미르 레닌을 위시한 볼셰비키들이 등장한 이후이다. 물론 레닌의 경우 '혁명적 공산주의'로 더 세세하게 분류될 수 있다.
  • 보수적 혁명주의 - 19세기 후반부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충돌을 몸으로 경험한 세대들이 근대적 이성을 따르는 사회 변혁을 보수주의에 입각하여 벌이고자 한 운동. 독일에서 일어났다. 이들은 흔히들 제3의 위치의 시작으로 평가된다. 독일의 문학가 융어나 생디칼리즘의 아버지 소렐의 사상과 근대 보수주의의 사상을 혼합한 방식. 이 조류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준 사람이 바로 무솔리니다. 이들은 초기 파시즘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훗날 나치의 성립에 크나큰 영향을 준다.

2.2. 혁명가 목록 (시대순)

2.2.1. 전근대

2.2.1.1. 동양: 역성혁명[1]
2.2.1.2. 서양: 민주정공화정의 등장

2.2.2. 근대

2.2.2.1. 16~18세기: 절대왕정의 쇠퇴와 시민혁명
2.2.2.2. 19세기 ~ 20세기 전반: 혁명적 들의 확산과 식민지의 독립혁명

2.2.3. 현대

2.2.3.1. 냉전: 자유진영, 공산진영, 그리고 제3진영
2.2.3.2. 냉전 종식탈냉전

3. 과학

3.1. 근세: 과학이라는 개념의 탄생

3.2. 근대: 세상의 비밀을 밝혀내다

3.3. 현대: 과학문명의 정립

4. 관련 어록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진정한 혁명가를 이끄는 것은 위대한 사랑의 감정이다, 이런 자질이 없는 혁명가는 생각할 수 없다.
체 게바라
가장 급진적인 혁명가는 혁명 다음날 보수주의자가 된다.
The most radical revolutionary will become a conservative the day after the revolution.
한나 아렌트

5. 관련 항목

6. 창작 매체의 혁명가

6.1. 혁명가 캐릭터



[1] 왕조의 교체일 뿐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는 아니라서 근대적 혁명의 개념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목록에 있는 자들 중에서 실제로는 역성혁명으로 군주가 되지 않은 자들이 다수 껴있다.[2] 다만 실제로는 문자 그대로 군신관계에서 신하가 주군을 치는 역성혁명이었다기 보다는, 신흥 강국이 기존 국제질서를 주도하던 강대국을 멸망시킨 사례에 가까웠다.[3] "인(仁)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하며, 잔적한 이는 (왕으로써의 권위를 이미 상실한) 필부일 뿐이니, "무왕께서 '주'라는 자를 주살하였다"라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시해하였다"라는 말은 들어 본 바 없습니다.[4] 왕과 제후, 장군, 재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는가![5] 마치니는 끝까지 당대 기준으로 혁명적 사상이었던 공화주의를 고수했고, 가리발디는 비록 사르데냐 왕국과의 타협으로 통일을 이뤘으나 개인적으로는 공화주의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다만 마치니, 가리발디와 함께 통일의 주역으로 평가받는 카밀로 카보우르는 처음부터 끝까지 기성 체제의 일부였던 사르데냐 왕국의 관료였기에 혁명가라 보기엔 무리가 있다.[6]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7] 그들 이전에도 공산주의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사상을 내세운 이들은 있었지만, 오늘날 공산주의의 실질적인 뿌리라 할 수 있는 사상은 공산당 선언, 자본론 등 그들의 저서에서 나왔다.[8] 이전에도 난방공화국, 에조 공화국, 필리핀 제1공화국, 타이완 민주국 등이 있었으나, 해당 국가들은 국제 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했거나 단명했다.[9] 갈릴레오에 대한 흔한 오해로, 갈릴레오를 '미신적인 광신에 맞선, 과학의 순교자'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으나, 사실 이는 매우 잘못된 인식이다. 우선 지동설에 가장 격렬하게 반대한 것은 당시의 주류 과학계(자연철학자들)였다. 또한 갈릴레오는 행성이 완전한 원 궤도로 공전한다고 생각하였기에 그의 지동설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도 많았으며, 심지어 천동설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보다는 더 간단하기까지 했다. 물론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에 넘어간 것은 맞지만, 종교재판은 '과학에 대한 견해'보다는 '프로테스탄트와 갈릴레오의 연관성'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또한 당시 재판에서는 "지동설을 가지고 프로테스탄트들이 성경의 개인적 해석을 옹호하는 개소리에 악용하는데, 그거를 생각해서 지동설 퍼트리는거 자제좀 해주세요"라는 결론이 나왔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갈릴레오는 (가톨릭 신자 입장에서) 그러한 개소리에 지동설이 악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지동설을 퍼트리는 것을 그만두었다. 오히려 갈릴레오는 교회 내부에서도 인기가 있던 학자였으며, 교황 우르바노 8세와는 절친한 사이이기까지 했다. 참고로 코페르니쿠스의 경우도 매우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으며, 애초에 이 사람은 성직자다.[10] 정확히 말하면 다윈은 '창조론'의 대적자가 아니라 '창조과학'의 대적자에 해당한다. 다윈 자신은 말년을 기준으로 유신론적 진화론이신론이 결합된 형태의 종교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신에 의한 천지창조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고, 다만 이것을 인간의 눈으로 본다면 '자연선택 등이 일어나는 변화하는 세계'라고 해석한 것이다.[11] 본래는 우국지사형 인물이었으나, The Dark Templar Saga에서 혁명가로 바뀌었다.[12] 초기에는 과격파였지만 긴토키와 아쿠마츠와 만나면서 온건노선을 타게 된다.[13] 처음에는 단순히 템플 기사단에 대한 복수만 바랐으나 이후 미국 독립 혁명의 동조자로 활약했다. 하지만 자유와 평등을 골자로 하는 아메리카의 독립에도 이에 핍박을 받는 약자들이 있음을 긴 시간 동안 깨닫고, "모든 이들의 보편적 자유를 위해 핍박받은 이들을 위한 또 다른 혁명을 이어갈 것"임을 다짐한다. 어쌔신 크리드 3 이후 코너는 대번포트에 거주하며 미국으로부터 핍박받는 흑인 노예들을 해방하며 그 혁명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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