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1-01 11:37:04

사카모토 류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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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사카모토 류이치
坂本 龍一 | Ryuichi Sakam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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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2년 1월 17일
도쿄도 나카노구
사망 2023년 3월 28일 (향년 71세)
도쿄도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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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 170cm
부모 아버지 사카모토 카즈키(1921~2002)[2]
어머니 사카모토 케이코(1925~2010)[3]
자녀 장녀 사카모토 아키코(1972~)[4]
장남 사카모토 후타(1975~)[5]
차녀 사카모토 미우(1980~)[6]
차남 소라 네오(1991~)[7]
학력 세타가야구립 소시가야 초등학교 (졸업)
세타가야구립 치토세 중학교 (졸업)
도쿄도립 신주쿠 고등학교 (졸업)[8]
도쿄예술대학 음악학부 (작곡과 / 학사)
도쿄예술대학 대학원 (음악연구과 작곡전공 / 석사)
직업 음악가, 작곡가, 편곡가, 프로듀서, 피아니스트, 키보디스트, 배우
레이블 일본 컬럼비아(1978 - 1979)
알파 레코드(1978 - 1983)
MIDI / SCHOOL(1984 - 1986)
CBS 소니 / TERRAPIN(1987)
버진 레코드(1989 - 1991)
도시바 EMI(1993)
포 라이프 레코드 / güt(1994 - 1997)
워너 뮤직 재팬(1998 - 2006)
commmons(2006 -)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파일:유튜브 아이콘.svg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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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이름3. 생애4. 음악 스타일5. 디스코그래피
5.1. 정규 앨범5.2. EP5.3. 사운드트랙
6. 필모그래피7. 오토바이오그래피8. 류이치사카모토소셜프로젝트코리아9. 다른 아티스트와의 관계10. 논란 및 사건 사고11. 여담

1. 개요

일본작곡가이자 뮤지션.

세계적으로 높은 인지도의 음악가로, 특히 영화 음악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골든글로브상그래미 어워드[9]를 수상한 인물이자 아시아 최초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자다.

2. 이름

坂本龍一 는 일본인의 인명이므로 일본에서는 당연히 '사카모토 류이치'라고 읽지만, 서양에서는 일본인들의 해외 진출시 또는 서구권에 본인들을 알리던 관례대로 성씨와 명을 도치시킨 ‘류이치 사카모토’로 소개되었고, 이 이름이 한국에도 그대로 소개되어 아직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서양식 표기대로 '류이치 사카모토'라고 부른다.[10] 비슷한 예로는 마찬가지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음악가 구라모토 유키 역시 '유키 구라모토'로서 훨씬 많이 알려져있다.

네이버에 '사카모토 류이치'라고 검색해도 '류이치 사카모토'라고 등재된 프로필이 표시되는데, 법적으로는 엄연히 잘못된 표기이다.[11] 허나, 네이버에 등재된 그의 인적 사항은 본인 또는 대리인이 직접 기재하였다고 적혀 있으므로, 일본 외의 모든 국가에선 서양식 로마자 표기법을 기준으로 자신을 소개하길 원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는 외국인들에게 류이치 사카모토라고 알려지길 원한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그것과 국가나 공적 문서 등에서 그를 공식적으로 표기하는 기준을 따지는 것은 다른 문제일 것이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일본인이며, 그는 별도의 국적을 가진 이중국적자 또한 아니다. 일본은 이중국적에 관해 한국과 유사한 법적 명시 사항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그가 서구에 이름을 알린 동양인이고 오랜 시간 미국을 왕래하며 살아왔다 하더라도 그는 법적 복수국적을 취득하거나 국적을 변경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그가 공식적인 서류나 인물 등재 자료, 언론 기사 등에 기재될 시 법적으로 명시된 권고 사항과 형평성 유지 등의 원칙에 따라 그의 이름은 '성' 과 '이름' 순으로 적힌 '사카모토 류이치' 라고 적는 것이 권고된다고 할 수 있다.

3. 생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사카모토 류이치/생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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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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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사카모토 류이치/생애#s-|]]번 문단을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사카모토 류이치/생애#|]]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 음악 스타일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클로드 드뷔시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동시에 많은 공부를 했다고 밝혔다. 자서전에서는 한때는 진지하게 자신이 드뷔시의 환생이라고 믿었을 정도였다.[12] 실제로 그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바흐의 곡으로 피아노 연습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그의 기악곡 여러 곳에 바흐와 드뷔시의 음악적 구조가 발견된다. 실제로 헐리우드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로 유명해진 OST곡은 드뷔시의 달빛과 매우 유사한 구조를 보이고 핵심 인 반복되는 멜로디 조차 비슷하다.

이 외에도 고전음악을 바탕으로 한 음악학도답게 많은 작곡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동시에 그는 다양한 나라들의 민속음악에도 관심이 많고 자신의 음악에 접목하기를 좋아하는데, 이는 마지막 황제의 사운드트랙 제작 당시 의뢰를 받고 중국으로 날아가기 전 중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의 OST인 만큼 구할 수 있는 중국 음악의 음반을 모조리 구해서 공부하고 갔다고 자서전에서도 밝힌 바 있다. 한국의 민속음악에도 관심이 많아 아주 오랫동안 교류하는 국악인들이 많이 있다.

재즈, 탱고, 보사노바, 영화음악을 비롯해 일렉트로니카와 월드뮤직[13][14], 뉴에이지, 힙합까지 아우르는 음악적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싫어하는 음악으론 헤비메탈, 비주얼계를 꼽았다. 헤비메탈에서 더 마니악한 데스메탈은 들어보고 싶지도 않다고 하며 비주얼계는 촌스럽다는 것이 이유. 젊은 시절에는 컨트리 뮤직, 하와이안 음악을 싫어했는데 나이를 먹어가고 하와이를 직접 방문해보면서 좋아졌다고 한다.

많은 수의 영화 음악을 맡은 만큼 그가 작곡한 오리지널 스코어에도 명곡이 많은데, 앞서 언급된 《전장의 크리스마스》나 《마지막 황제》 외에도 《The Sheltering Sky》의 동명 테마곡 The Sheltering Sky, 《철도원》의 테마곡 Popoya, 《바벨》 중에 나오는 Bibo No Aozora[15] 등이 유명하다.

대표곡들은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YMO) 시절부터 엄청나게 많다.[16] YMO 시절 곡들을 피아노로 편곡해서 연주한 곡들의 느낌도 각별한데, 각각의 원곡과 피아노 편곡 중 하나씩만 알고 있기에는 대단히 아쉬울 것이다. 인기있는 필수적인 몇 곡만 들어보고 싶다면 Self-Portrait(페이지 상단의 곡), Technopolis, Tong Poo, Energy Flow, Tibetan Dance, Merry Christmas Mr. Lawrence 등. 아마도 그의 곡 중에 제목을 몰라도 어느 한 곡 정도는 들어봤다 싶을 것이다. 은근히 한국의 광고 음악으로도 사용되기 때문에 아는 곡도 있을 것이다.

그가 가장 관심 있어했고 꾸준하게 창작활동을 벌인 쪽은 전자음악, 환경음악 쪽이다. Async와 영화음악 중에서 베스트를 추려 3인조 실내악 편성으로 편곡한 1996이 있다. 솔로 디스코그래피 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꼽히는 경이로우면서 아름다운 앙상블을 느낄 수 있다. 이외에 솔로 연주는 BTTB나 Playing The piano가 유명하다.

5. 디스코그래피

5.1. 정규 앨범

5.2. EP

  • Zero Landmine(2001)[17]

5.3. 사운드트랙

6. 필모그래피

7. 오토바이오그래피

  •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2009)
  •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2023)

GQ JAPAN의 전편집장 스즈키 마사후미와 사카모토 류이치의 대담이 자서전 형식으로 출판된 책이다. 일반적으로 '자서전'은 작가 본인과 관계 소속사와 출판사의 첨삭을 거쳐 기획되는 형태인데, 오토바이오그래피는 인터뷰어가 추가되어 기획과 첨삭을 함께 하며 인터뷰어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인터뷰어 지승호가 신해철 등과 이런 형태의 작업을 해왔는데, 차이가 있다면 지승호와 신해철이 함께한 '쾌변독설'에서는 지승호의 존재가 드러나있고, 사카모토 류이치의 책은 스즈키 마사후미의 존재가 드러나지는 않는다(지승호의 작업은 그래서 오토바이오그래피보다는 인터뷰집에 해당한다.).

이례적으로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에서 스즈키 마사후미 본인의 후일담이 담긴 챕터가 마지막으로 실려있다. 이는 이 책이 사카모토 류이치의 사실상 마지막 책이기 때문에, 그가 죽기 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그와 대화를 하고 또 사망에 이르는 과정을 듣고 지켜본 타인, 인터뷰어이기 때문에, 그가 경험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전제에서 작성 된 내용이다.

모두 출판사 신쵸의 기획으로 수록 내용 일부는 신쵸의 월간지에서 미리 공개됐고, 추가 내용이 더해져 단행본으로 나왔다.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이후 14년만에 두 번째 책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가 출간됐다.

8. 류이치사카모토소셜프로젝트코리아



한국에 <Ryuichi Sakamoto Social Project, Korea 류이치사카모토소셜프로젝트코리아> 가 있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2010년 12월 소셜 미디어를 활용한 실험 프로젝트 「skmtSocial Project 사카모토 소셜 프로젝트(통칭, #skmts)」가 본래 명칭이며, 여기에 Korea를 붙여, 한국 팬들에게 집중된 정보를 제공하고자 <itmusiccreative 잇뮤직크리에이티브>에서 운영하고 있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각종 뉴스를 한국어로 전달하며, 생전 사카모토 류이치 본인과 자주 소통했으며, 그의 유족들과도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

파일:2011skmt.jpg

2011년 1월 9일 사카모토 류이치의 단독 콘서트 <Ryuichi Sakamoto|Playing the Piano - Korea 2011> 당시 사카모토 류이치의 내한을 주관하던 에이전시 측은 내한 일정 정보를 정확히 공유하지않았다.(인력 부족, SNS에 대한 필요성을 못느꼈던 때) 이에 팬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컸고, 잇뮤직크리에이티브측에서 에이젼시측과 협의 후 사카모토 류이치의 각종 정보를 공유 받아 안내하기 시작했다. 당시 윤상은 자신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들의 활동을 언급하기도 했다.

파일:skmttrio2021.jpg

2012년 12월 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류이치 사카모토 트리오 내한 공연 <Ryuichi Sakamoto Trio Tour 2012|Japan & Korea> 에서 부터는 정식으로 프로모션 업무에 협력한다.

파일:LIFELIFEposter.jpg

2018년 서울 Piknic 에서 열린 사카모토 류이치의 특별전 [RYUICHI SAKAMOTO: LIFE, LIFE] 에도 참여했다. 사카모토 류이치 측에서 이들의 참여를 먼저 제안했다고 한다. 이후 사적으로 친분이 꽤나 두터워진 것으로 보인다.

파일:piknic2023.jpg

사카모토 류이치의 사후 출간된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가 한국의 위즈덤하우스에서 한국어판으로 발간. 출간 기념 추모전 기획도 참여했다. 이 행사는 서울 Piknic에서 열렸고 2023년 7월 13일부터 7월 31일까지 3주동안 진행됐다. 추모전 소식이 위즈덤하우스와 류이치사카모토소셜코리아에서 동시에 선공개되었다.

파일: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메인 포스터.jpg

이후 사카모토 류이치의 유작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오퍼스> 한국 개봉 프로모션에도 참가, 사카모토 류이치와 관련된 대부분의 한국내 프로모션에 지속적으로 참여했다.

그외 사카모토 류이치와 YMO 중심의 음악감상회 등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잇뮤직크리에이티브가 운영하는 류이치사카모토소셜프로젝트코리아의 SNS 채널은 해당 링크#에서 확인 할 수 있다.

9. 다른 아티스트와의 관계

  • 호소노 하루오미
    5살 이상 나이 차이가 나지만 동료 이상으로 친하다. 물론 풍파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호소노 하루오미의 앨범 중에는 사카모토가 세션으로 참여했었던 앨범이 많았고, YMO 초기에도 호소노의 명성을 빌려[21] 활동했었던 만큼 사카모토의 초기 명성 증대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YMO 시절 타카하시 유키히로의 중재에도 불구, 장기간 반목하며 해산했지만 각자의 경력을 쌓던 십여년의 기간이 지난 후에는 다시 만남을 이어나갔다. 이후 호소노 하루오미는 그 시절의 류이치를 두고 '파더 콤플렉스'라며 다섯 살 많은 본인에게 억눌린 자아를 해소하는 느낌을 받았다는 소감을 남겼으며 사카모토 류이치는 그때의 자신을 만난다면 '두들겨 패주고 싶을 것이다'라며 간단한 회고.

    호소노 하루오미는 사카모토 류이치 사후 본인의 안부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류이치는 몇 년에 걸쳐 준비를 하고 영면했으며, 본인이나 가족도 후회없이 떠났기 때문에... 저도 그걸 알고 난 후에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라며 자신의 근황을 전했다.
  • 타카하시 유키히로
    동년배이지만 생일로 치면 사카모토가 5개월 빨리 태어났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정규 1집 앨범 <Thousand Knives>의 앨범 자켓 디자인과 코디네이팅은 물론 초기 작품 전체의 드럼으로 참여를 줄곧 해왔다. [22]

    상술했듯 둘은 막역한 사이로 보여져왔는데, 타카하시가 지난 2023년 1월 11일 먼저 사망했다. 2020년 8월 심한 편두통으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여기서 뇌종양 판정을 받았고, 몇차례의 수술과 재발을 반복해왔고, 최근까지 활동을 중지한 채로 요양중이었다. [23]

    사카모토 류이치의 마지막 정규 앨범으로 보고 있는 <12>가 그의 생일인 1월 17일에 발매되었는데, 정식 발매가 되기 며칠전에 다카하시 유키히로가 사망하면서 큰 상실감에 빠진것으로 알려져있다. 결국 2개월 뒤 사카모토도 세상을 떠났다.
  • 야마시타 타츠로
    시티팝의 거장 야마시타 타츠로가 아주 선호한 키보디스트 셋(사토 히로시, 사카모토 류이치, 히로유키 남바)중 1인. 타츠로의 앨범 SPACY(1977) 활동기 및 커리어 초창기에 사카모토가 늘 함께했다. 젊은 시절부터 세션을 많이 해준 덕인지 타츠로도 사카모토의 정식 데뷔앨범을 포함해 많은 앨범에 참여했다.

    2023년에는 그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2주에 걸쳐 추도 특집을 진행하기도 했다. 방송중 코멘트 일부를 옮긴다.

    '''여러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사카모토군은 도쿄 예대 작곡과를 나온 분으로 매우 아카데믹한 분입니다. 그는 프랑스 근대 작곡을 공부한 선생님으로부터 수업을 받았고. 그래서 당시 클래식 작곡 배운 분 중에서도 조금은 다른 테이스트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 자신도 그런 근대 프랑스의 분위기를 굉장히 좋아했기 때문에 여러가지 것을 배웠던거 같습니다.

    Naigara Triangle의 「Parade」 이후 오랜 시간 아이디어를 주고 받았습니다. 76년부터 함께 하기 시작해 77, 78과 3년 정도는 정말 사이 좋은 친구였네요. 그가 YMO를 만들고 테크노 뮤직쪽으로 향했을땐 저 자신도브레이크가 있어서 점점 거리가 멀어졌습니다만. 마지막까지도 그가 제 친구였던 것은 전혀 바뀌지 않습니다.'''
  • 야노 아키코
    전 부인. 과거 YMO 세션을 많이 도와준 덕인지 자신도 도움을 많이 받고 결혼까지 했으나 사카모토의 불륜 문제와 야노의 종교 문제로 별거에 돌입, 사카모토는 이후 지금의 아내인 소라 노리카와 함께 살면서 두명의 아들을 낳았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WORLD HAPPINESS 페스티벌에서 함께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야노 아키코가 YMO의 두 멤버 다카하시 유키히로와 호소노 하루오미와는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있기 때문.[24]

    사카모토 류이치의 대표곡 <Merry Christmas Mr. Lawrence>의 퍼블리싱을 야노 아키코의 회사에서 현재까지도 관리하고 있다. 이 두사람이 별거 상태가 된것은 80년대 후반, 그리고 법률상 이혼이 확실시 된 시점은 2006년 무렵이라 이렇게 오랜 시간 이혼을 조정해온 원인이 <Merry Christmas Mr. Lawrence>의 저작권 관리 문제가 아니냐는 해석이 있다.
  • 오오누키 타에코
    대학 시절부터 오랜 친구로 야마시타 타츠로, 새디스틱 미카 밴드의 다카나카 마사요시등과 자취방에서 우동을 만들어 먹으며 곡 작업도 하는 등 동고동락을 해온 절친으로 데뷔 시절 세션을 많이 도와주는 등 사카모토 류이치는 오오누키의 작품성향을 만드는데 도움을 많이 주었다. 그래서 사카모토가 어려워 하는 뮤지션이면서 동시에 사카모토에게 조언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뮤지션 중 한명이다.

    20대 시절 사카모토 류이치와 함께 살았던 과거가 있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자서전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에서 사카모토 류이치가 서술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이미 일본의 오랜 팬들 사이에선 카더라로 돌았던 내용인데 이를 인정한 것. 헤어지게 된 배경에는 사카모토 류이치가 갑자기 다른 사람이 생겼다는 이유. (...) 이후 사카모토 류이치는 잇뮤직크리에이티브와의 인터뷰에서 그녀의 음악 작업에 참여할때마다 늘 봉사하는 마음으로 임한다고 밝혔다.

    2010년 무렵 사카모토 류이치의 곡에 오오누키 다에코가 가사를 붙여 완성한 앨범 <UTUA>가 발매되었다.

    2023년 3월, 사카모토 류이치가 진행하는 RADIO SAKAMOTO의 마지막 방송을 그녀에게 일임했다.
  • 스즈키 시게루
    핫피 엔도에서 호소노 하루오미와 함께 활약한 멤버로, 그의 소개로 1978년부터 키보드를 쳐주었고 그 당시 앨범들을 보면 수준급이라고 한다.
  • 타카나카 마사요시
    타카하시 유키히로가 속했던 사디스틱 미카 밴드의 기타리스트. YMO의 1집 기타 레코딩에 참여하는 등의 교류를 했다. 사카모토 류이치 또한 타카나카 마사요시의 앨범인 JUNGLE JANE, Ballade 등에 참여하기도 했다.
  • 김덕수
    사카모토 류이치와 TBS가 함께한 "ZERO 지뢰폭탄 제거 프로젝트 <NO MORE LAND MINE>"에서 사실상 처음 협연했다. 인연은 그 이전부터 있어온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후 김덕수와는 영화 <남한산성>에서 다시 협연했다. 특히 한국 전통 악기 (북, 장고등)과 판소리가 가능한 여성 보컬이 필요로 했는데 당시 김덕수가 그와 함께 해온 제자, 동료들을 소개해주었다. 그래서 당시 남한산성의 사운드트랙 마감을 위해 사카모토 류이치는 비공개로 한국에 방문했다. 녹음은 서울 강북구 미아동 성신여대 캠퍼스에 소속된 Brickwall Sound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사적으로도 오랜 시간 친분이 있어 한국에 방문하면 꼭 만나고 가는 지인이며, 가족끼리도 친해서 매번 만날때마다 김덕수의 아내분이 직접 김치를 만들어 선물한다고.
  • 정재일
    2000년 초반 서울 혜화동에서 처음 만난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카모토 류이치와 TBS가 함께한 "ZERO 지뢰폭탄 제거 프로젝트 <NO MORE LAND MINE>"를 위해 김덕수와의 레코딩 당시 김덕수가 소개해 준것으로 알려져있는데 확실치는 않다. 하지만 정재일이 어린시절부터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을 구사해왔기 때문에 (현대음악은 물론 국악에도 재능이 높아 판소리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국립극장에서도 자주 공연을 올리고 있다.) 당시 김덕수는 물론 음악계 어른들 사이에서 눈여겨 보는 젊은 재목으로 유명했다.

    이후 2018년 PIKNIC 개관 전시를 진행하면서 프로모션의 일환으로 정재일과 17년만에 조우했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당시 만찬과 환송식에서의 축하 무대를 두사람이 함께 하기로 했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함께 하지 못한것이 알려졌다.

    2024년 1월 <류이치 사카모토|오퍼스> 한국 개봉 당시 재즈피플의 김광현 기자와 정재일이 GV를 진행했는데, 여기서 정재일은 사카모토 류이치가 평양냉면을 좋아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평양냉면 밀키트를 구입. 직접 항공 우편으로 잔뜩 보냈다는 일화를 전한바 있다.
  • MC 스나이퍼
    2003년경 MC 스나이퍼가 사카모토에게 The Sheltering Sky의 샘플링 허락을 직접 맡았고, 그 곡을 샘플링하여 MC 스나이퍼는 자신의 2집 앨범 수록곡 Baby don't cry를 작곡하였다. 그 외에도 사카모토와 함께 1개월 동안 일본 현지에서 공연과 같은 음악적 활동을 하였으며# ##, 직접 사카모토의 녹음실에 소주를 보내기도 하였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이때 사카모토의 매니저는 더이상 소주를 선생님 녹음실에 보내지 말아달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유는 사카모토가 소주를 먹고 항상 녹음실에서 잔다고… 또한 사카모토 류이치가 세상을 떠난 후 인스타에 추모글을 올리기도 하였다.#
  • 슈가(방탄소년단)
    2022년 9월 슈가의 바람으로 비공개 만남을 가졌다. 슈가는 인스타그램에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를 연주한 곡을 올리는 등 팬심을 드러내오기도 했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이때의 만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니 교만함이 없는 청년으로 음악 활동에 매우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국내기사 사카모토 류이치 별세 시에 슈가는 SNS에서 애도의 뜻을 표했다.
  • 크라프트베르크
    1981년 크라프트베르크의 일본 투어 이후로 친분이 생겼고, 사카모토 류이치에게 건강 문제가 생겼을 때 랄프 휘터가 일본어로 그의 쾌유를 기원하기도 했다.

10. 논란 및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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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11. 여담

  • 별명으로는 교수(教授)가 대표적이다.# 세계의 사카모토(世界のサカモト)도 있다. 국내에서는 한자이름을 그대로 읽은 "용일"이라고도 부른다.
  • 의외로 다양한 예능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우타방[25]이나 HEY!HEY!HEY!뮤직 챔프#와 같은 토크 방송 뿐만 아니라 80년대에 YMO 멤버들과 함께 THE MANZAI의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고 우리들은 익살족에 출연하기도 했고# 1990년대 초 일본의 유명 콩트 프로그램인 '곳츠에에칸지'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아호아호맨'이라는 코미디 연기를 펼쳐 쓸대없이 고퀄리티의 연주를 보여주기도 했고# 몰카 콩트도 존재한다. 아카시야 산마 항목 하단 보면 알겠지만 여장을 하고 산마를 덮치기도 했다.
  • 뉴욕과 도쿄 양 쪽에 집을 가지고 있지만 2000년대 이후는 뉴욕 맨해튼의 집과 스튜디오가 주거지이다. 뉴욕에서 애용하는 단골 일식당의 BGM이 도저히 못 들어줄 수준이어서 직접 플레이리스트를 짜준 일화가 있다. NY타임즈 기사
  • 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전위예술가 백남준 선생의 영향을 받아 그를 위한 곡 'A Tribute to N.J.P.' 를 내기도 했다. 2004년 발매한 개인 앨범 'Chasm'에 MC 스나이퍼가 한국어로 랩을 한 곡 Undercooled가 1번 트랙으로 포함되었는데, 전세계로 판매되는 해외 아티스트의 공식 앨범에 한국 래퍼가 한국어로 랩을 한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이는 MC 스나이퍼가 그의 곡 'Baby don't cry'에서 사카모토의 The Sheltering Sky의 피아노 샘플을 사용하기 위해 연락을 하고 가사의 의미나 주제를 설명하며 교류를 가지게 되었는데, 당시 사카모토는 9.11 테러에 꽂혀 이 곡을 작업하였고 '반전'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적당한 래퍼를 섭외하려고 했는데,[26] 마침 교류중이었던 MC 스나이퍼가 표현하는 가사의 주제 등에 호감을 가져서 그를 참여시킨 것이라고 한다.[27] 2011년 1월 자서전인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를 한국에 출간했으며, 2011년 1월 8, 9일 서울에서 10년만의 내한 연주회를 하였는데, 이는 한국 팬들이 트위터로 공연해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안 그래도 그런 고려를 하고 있다'라고 이야기가 나온 뒤 공연이 확정된 것이었기에 팬들의 기대를 들어주는 아티스트로 공인되었다. 스스로도 한국을 친하게 느끼며 이후에도 가능한 한 자주 들르고 싶다고 이야기하였다.[28] 그러나 10년만의 내한 공연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그냥 그의 해외공연을 쫓아가서 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011년 이후로는 약 1년마다 한국에 오기 때문에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 듯. 그러던 게 12월 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트리오 공연이 확정. 이미 공연 예매는 여름쯤에 완료된 상황이다. 2018년 10월 4일에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가하여 2019년 개봉하는 영화 '안녕, 티라노'의 OST를 피아노 독주로 연주한다고 한다. 사카모토는 이 영화의 음악 감독을 맡았다.#
  • 2000년도 들어서 특이하게 Alva Noto라는 앰비언트 뮤지션과 자주 합작을 하곤 했는데, 굉장히 실험적인 성향이 강했다. 심지어 몇 차례 공연도 했던 모양. 앰비언트에 내성이 없는 사람들은 엄청난 아스트랄함을 느낄 수 있다. 해당 영상 그 외 Fennesz라는 앰비언트 뮤지션하고도 자주 합작하는 편이라고 한다.
  • 2018년 기사에 따르면 한국의 음악 프로듀서 정재일과 밴드 새소년에 관심이 많다 한다. 그리고 같은 해 뉴욕에서 새소년을 만났다. 새소년 에코백을 착용한 사진이 화제가 되었다. 링크
  • 2017년 10월 3일 개봉된 남한산성에서 음악감독을 맡았다. 한국 영화음악은 처음 참여한 것이다. 결국 <남한산성> 음악감독으로 2017년 11월 9일에 영평상(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음악상을 수상하였다. 자세한 건 링크 참조 이 후 대종상에서도 음악상을 수상하였으나 그는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트로트 가수 한사랑이 그와 김지연 대표(싸이런 픽쳐스)를 대신하여 대리수상을 하였다. 그런데 작품과 전혀 상관 없는 사람이 대리수상했다는 논란이 커져 영화제의 위상이 많이 떨어졌다.[31]
  • 2020년 12월 12일 도쿄의 스튜디오에서 온라인 라이브 콘서트를 열었다. 일본에서 연말에 여는 피아노 콘서트는 2013년 이후 7년만이며, 이 피아노 라이브 콘서트는 한국 포함 세계 12개 국가 및 지역에서 동시에 중계되었다.
  • 전성기 시절의 마돈나의 뮤직비디오 Rain에 출연하여 감독으로 연기한 바 있다. 자신이 음악적 참여를 하거나 연출을 한 것은 아니고 그냥 단순 출연. 93년도 MTV뮤직 어워드에서 예술상과 촬영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최신 뮤직비디오보다도 영상미가 오히려 더 뛰어나다.
  • 2003년 3월 5일부터 2023년 3월 5일까지 두달 간격으로 비정기 팟캐스트 방식으로 Radio Sakamoto를 진행했다.# 라디오 방송국 J-WAVE에서 내보내기도 했고 진행시간은 0시부터 약 한두시간 정도로 진행했고 사회돌아가는 이야기, 음악 이야기, 자신의 음악을 보내서 사카모토에게 오디션을 보내는 코너, 자신의 플레이리스트를 소개하는 코너 등으로 구성되었다. 마지막 회 방송은 타카하시 유키히로 추모 방송으로 오오누키 타에코가 진행을 담당했다.
  • 스코틀랜드 밴드 모과이의 2021년 곡 '리치 새크라맨토(Ritchie Sacramento)'의 제목은 사카모토 류이치의 이름에서 따왔다. 인터뷰에 따르면 모과이 멤버들이 사카모토의 이름을 잘못 이해한 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 독일의 스피커 브랜드 ME Gaithain(이하 가이타인)을 매우 애용했으며 전시 활동, 유럽 투어등에서 항상 사용했다. 가이타인을 고집한 이유는 꾸밈없고 정확하며 투명에 가까운 소리를 전달하기 때문이라고.
  • 생전에 종교는 없었지만 티베트 불교에 친근감을 많이 느꼈다고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달라이 라마를 세 번에 걸쳐 친견하여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사카모토가 기억하는 달라이 라마는 거의 매일 암살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어 경호원을 대동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1] 코로나 사태로 2019년도에 열릴 시상식이 2020년으로 미뤄졌다[2] 가정적으로 굉장히 보수적이고 엄격한 아버지였고, 사카모토 류이치의 연예계 활동에 대해서도 오히려 "내가 너 딴따라나 해라고 음악학교 보낸줄 알아?"라고 못마땅하게 여겨서 부자간 갈등을 일으켰고, 연예활동에서 성공한 이후로 축하받을 때에도 "저놈은 저놈이고, 저는 저입니다"라면서 여전히 나쁘게 생각했다. 그러나 사후 발견된 일기에서는 오히려 아들의 탄생을 반기고 YMO의 일정을 세심하게 챙기는 등 아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음이 드러났고, 이를 안 류이치는 결국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3] 결혼전 성은 시타무라(下村)[4] 대학 시절 결혼했다 이혼한 첫째 부인과의 사이 소생[5] 둘째 부인 야노 아키코가 데려온 양아들로, 사카모토가 야노 아키코와의 결혼 후 정식 입양했다.[6] 야노 아키코 사이 소생[7] 매니저 소라 노리카와의 불륜으로 태어난 혼외자. 그 후에 야노 아키코와 별거하기 시작했고, 결국 2006년에 이혼하였다. 그 후 정식 배우자는 없지만, 소라 네오가 태어날 때부터 소라 노리카와 동거하며 지냈다. 아버지 다큐멘터리 연작을 찍으면서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으며 2024년 해피엔드로 극영화 데뷔했다.[8] 동급생으로 시오자키 야스히사 전 관방장관이 있다.[9] 제31회 그래미 어워드 "마지막 황제"로 수상[10] 일본에서는 공문서를 포함하여 일본인의 씨명을 로마자로 표기할때는 서양식인 이름-씨 순서로 사용하는 것이 공식이었다. 2019년에서야 이 원칙이 폐기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적으로는 자신들의 씨와 이름명을 이름-씨 순으로 표기하는 예가 여전히 많다.[11] 나무위키, 위키피디아 등에선 인명 법칙에 따라 사카모토 류이치라고 표기하고 있다.[12] 2008년도 인터뷰에서 밝히길 14살 즈음에 드뷔시의 환생임을 반쯤 믿으며 그의 싸인을 연습해보는 정신이 좀 이상한 아이였다고 회고한다. 실제로 거칠고 반항적이었던 청년기적 인성과 여성편력도 닮았으며, 말년에 성품이 온화해진 것도 비슷하다. 우연의 일치라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결말이나 끝내 그도 드뷔시와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13] 특히, 대학시절부터 민속 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고 학위를 받은만큼 전 세계의 민속 음악들과 전자음악을 결합한 실험적인 음악들이 많다. 인터뷰 때마다 인도네시아 발리 섬은 뉴욕 바로 옆에 있는 것 같고, 일본 팝 음악은 마치 아랍 억양처럼 들리는 것 같다고 말했듯, 두 가지 이상의 문화를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게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특히, 한국의 국악에도 엄청 관심이 많다. 윤상의 음악에도 이러한 영향을 받아서 음악적인 다양한 시도가 많다.[14] 음악도감 작업 기간 도중에 촬영된 다큐멘터리에는 월드뮤직으로 차있는 플로피 디스크를 Fairlight 신디사이저에 삽입하는 장면이 수록되기도 하였다. 이날 그가 작업한 곡은 음악도감 2015년 재발매판에 수록된 M31 TOKYO MELODY.[15] 영화 속에 포함된 건 피아노 & 바이올린 어레인지 버젼. 원곡은 힙합 느낌이고 스스로 노래도 불렀다. 또한 Trey Songz가 부른 Can't Be Friends의 샘플 원곡이기도 하다.[16] 사카모토 류이치 스스로도 솜씨가 뛰어난 작곡가였지만, YMO로 발표한 음악은 마찬가지로 능력있는 작곡가인 나머지 두 멤버들과 의견이나 발상을 주고받은 곡들이다. 사카모토의 자서전에 의하면, 멤버들은 자신이 생각해내지 못 한 재밌는 발상을 제시했으며 그들과 함께가 아니었다면 결코 만들지 못 했을 작업이었다고 밝혔다.[17] 지구촌에 매설된 지뢰들을 제거해 무고한 희생자를 양산하지 말자는 취지의 기획앨범이다. 참여진만 해도 그 면면이 화려한데, 일본 측 아티스트들만 해도 UA, 테루(GLAY), CHARA, 사쿠라이 카즈토시, SUGIZO 등이 참여하는 등 일본음악 매니아들이 들으면 군침을 흘릴 구성. 해외 참여진도 브라이언 이노, 한국의 김덕수 사물놀이패 등등이 참여하는 등 그 면면이 화려하다.[18] 사카모토 류이치가 음악을 담당한 처음이자 마지막 한국영화다.[19] 2022년 온라인 콘서트 'Ryuichi Sakamoto: Playing the Piano 2022'를 영화한 작품[20] 2024년 NHK 다큐멘터리 'Ryuichi Sakamoto: Last Days'를 영화화 한 작품[21] '해리 호소노와 옐로 매직 밴드'나 '호소노 하루오미의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 등의 명의를 썼다.[22] 사카모토 류이치의 Self-Portrait 역시 다카하시의 드럼.[23]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사망 직전 부쩍 마른 모습, 그리고 그의 요양 생활을 함께 해온 아내 키요미 다카하시의 사진이 올라와있다.[24] 다만 이혼 원인이 불륜과 종교라는 예민한 문제였음에도 후일 서로 관계는 나쁘지 않았는지, 사카모토의 사망 이후 야노 아키코가 직접 트위터에 추도 메시지를 남겼다.[25] 2004년 출연했을때 좌중을 압도하는 화려한 입담을 선보였다. 해당 방송에서 MC 스나이퍼와 콜라보한 undercooled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26] 원래는 m-flo의 Verbal과 작업을 하려고 했었다고 한다.[27] 한국 공연시 특별 게스트로 참여하기도 했으며, 유희열이 피아노 연주를 대신하여 지상파 방송에서 공연한 버젼도 있다. 유희열도 사카모토를 매우 좋아하기에 이뤄진 퍼포먼스라고 함. 실제로 내한 공연에 유희열을 포함한 여러 아티스트가 다녀갔다.[28] 일본이나 영미권에서는 주로 40~50대의 중년 남성들이 그의 팬인데, 한국에 와서 봤더니 10대부터 30대에 이르는 젊은 사람들이 싸인회에 와 줄 서있는 걸 보고 여러 가지 의미로 감격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일본 대중문화가 90년대 말에 개방되었기 때문에 한국의 중년들은 이 사람을 알기가 어렵다.[29] 작곡은 사카모토 류이치가 맡았고, 작사는 유키코의 같은 사무소 선배 마츠다 세이코(Seiko 명의로 참여). 화려한 작곡진과 절정에 이른 유키코의 인기로 커리어 처음으로 오리콘 1위를 차지하나, 몇달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해 동시에 마지막 1위 곡이기도 하다.[30] 1993년 나카모리 아키나의 27번째 싱글 Everlasting Love, NOT CRAZY TO ME 등의 악곡을 작곡했다.[31] 본인이 근황올림픽에서 상황을 밝혔는데, 친분있던 작곡가가 시상식 당일 오전에 부탁받아 참석했는데, 당시 대본은 물론이고 어떠한 가이드도 없는바람에 수상소감에서 축하합니다라고 짧게 말했고, 본인이 누군지는 밝혀야 할꺼같아서 가수겸 탤런트 한사랑입니다로 말했는데 무명 연예인 홍보를 하러 내보냈다며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32] 실제로 보고 충격받을 사람들을 위해 내용을 요약하자면 여장하고 아카시야 산마를 덮치는 그런 내용이다. 당당하게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나 방송에서 딜리버리 헬스(출장 성매매)로 개그를 치는 모습은 한국인이 보기엔 꽤 충격적일 것이다.[33] 어쩌면 이러한 관심 때문에 하츠네 미쿠 오케스트라라는 YMO 커버 앨범도 정식으로 허가를 내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