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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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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그리스도교에서
2.1. 특징2.2. 역사2.3. 기타
2.3.1. 환속2.3.2. 외부와의 접촉이 금지된 곳들
2.4. 실존 인물
2.4.1. 남자2.4.2. 여자
3. 창작물에서
3.1. 특징
3.1.1. 전투력3.1.2. 매력
3.2. 수도자 설정의 가상 직업/유닛3.3. 수도자 설정의 가상 인물
3.3.1. 남자3.3.2. 여자
4. 관련 문서

1. 개요

수도자/수도녀(/[1])는 종교를 믿고 세속의 향락과 쾌락을 멀리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도를 닦으면서 사는 사람이다. 관련 어휘로 수도승, 구도자, 수행자 등이 있다. 사전적으로는 불교승려도교도사 또는 가톨릭, 정교회 같은 그리스도교 계통의 교단의 수도자를 모두 말하지만, 보통 '수도자'라고 하면 그리스도교의 수도자를 지칭한다. 수도사(修道士)라고도 하지만, 한국 가톨릭에서는 대개 남자 수도자를 "수사"로 여자 수도자를 "수녀"로 부른다.

영어로는 Ascetic[2], Cenobite[3], Monk[4] / Nun[5], Friar[6], Brothers[7]/Sisters[8], Hermit[9], Anchorite[10] 등의 표현을 사용한다.

2. 그리스도교에서

파일:attachment/friars.jpg
가톨릭 수사들의 모습. 왼쪽부터 베네딕토회, 프란치스코회(작은형제회), 도미니코회 수사들의 모습.
파일:/storage/upload/2010/02/18/375103031_1265941601.jpg
가톨릭 프란치스코회 수녀의 모습
파일:/storage/upload/2010/02/36/375155349_1265941601.jpg
정교회 수녀의 모습
동정이며 가난하신 그리스도,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복종하심으로써 인간을 구속하시고 성화이신 그리스도를 따라 자기를 하느님께 특별한 방법으로 봉헌하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수도생활의 쇄신적응에 관한 교령 1조
의도적인 청빈(淸貧)[11], 영구한 정결(貞潔)[12], 완전한 순명(順命)[13][14]

2.1. 특징

일반적으로 남성수사(修士, Brother), 여성수녀(修女, Sister)라고 칭하며 수도복을 입고 다닌다. 학교마다 교복이 다른 것처럼 수도회마다 수도복이 조금씩 다르며,[15] 아예 수도복 없이 사복을 입는 수도회도 있다.[16] 그리고 수도회마다 창립 목적도 다르고, 중점으로 하는 사도직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다. 예를 들어, 프란치스코회 내에서 작은형제회는 겸손하고 청빈한 수도 생활을 추구하고,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조금 더 속세지향적이며, 카푸친 작은형제회는 더욱 은둔적이면서 관상생활을 중시한다. 도미니코회는 설교중심적이고 예수회는 교육을 중시한다. 카르투시오회는 고독을 중시하며 천주의 성요한 수도회는 의료봉사를 중시한다.

수도회에 입회하기 위해서는 일정 연령 이하의 독신이어야 하는데, 연령에 대한 기준은 수도회마다 조금씩 다르다. 한국 가톨릭의 경우, 대개 만 18세부터 만 30~35세.[17] 학력은 최소 고졸 이상. 최소 6개월에서 1년간 수도회의 성소(聖召)[18] 모임에 참여하면서 수도회와 성소자 모두 서로를 관찰하고 탐색하고, 양측의 뜻이 서로 맞으면 입회하게 된다.

수도회에 입회하면 지원기(6개월~1년)와 청원기(6개월~1년)를 거쳐 수련기(2년)에 들어간다. 수련기에 들어갈 때 수도명을 받고, 정식 수도복을 입고(착복식), 여성 수도자(수녀)의 경우 하얀 베일을 쓰게 된다.

수련기가 끝나면 첫 서원을 하는데, 이때 하얀 베일에서 유색 베일로 바뀌고, 본격적으로 수도회의 사도직을 하고, 여러 교육도 받는다. 서원은 몇 년 단위로 갱신하며, 이렇게 기한이 정해진 유기서원기(4~5년)가 끝나면 죽을 때까지 수도자로 살겠다는 종신서원을 한다. 여기까지 대략 10년 가까이가 걸린다. 서원(청빈, 정결, 순명)[19]을 발함으로서 정식으로 축성되고 수도자로 인정받는다.

매일 미사 참례 및 기도(대표적으로 성무일도), 교리, 성경, 신학 등의 공부를 해야 하고 수도회별로 특화된 여러 가지 영성과 회칙을 익혀야 하기에 상당한 고생을 해야 한다.

남성 수도자가 사제서품을 받은 수도사제[20]라는 성직도 있으며, 부제서품을 받은 수도부제도 있다.[21] 교구사제, 부제 지망 신학생들은 신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지만, 수도회 소속 신학생들은 수도원에 살며 신학교에 통학한다. 수도사제는 교구사제처럼 일선 본당들을 돌아다니지는 않고, 수도원 내에 계속 있으면서 수도자들을 위한 미사 집전을 하거나, 판공 미사에 파견되거나 성경 연구 및 기도 주관 등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예수회도미니코회 등과 같이 "성직 수도회"라고 불리는 수도회들이 있는데, 이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전원 서품을 받아 사제가 된다. 예수회는 평수사가 있지만 도미니코회는 평수사가 극히 드물다.

가장 오래된 평수사회이자 의료봉사 수도회인 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마리스타 교육 수사회는 수도사제가 극히 적거나 없다.

교육 업무를 담당하는 수도회가 운영하는 가톨릭계 미션스쿨에는 수녀 교사들이 있다. 수녀 교사들도 당연히 교원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인데, 수도원 입회 전 사회에서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 졸업을 통해 교원 자격증을 땄거나 수도원 입회 후 교원 자격을 갖춘 이들이다. 정규 수업 시간으로 편성된 종교 강의를 맡는 경우도 있지만 학급의 담임교사를 맡거나 교감, 교장, 교목을 맡는 경우도 있다.
상술한 수도회 형태와는 다르지만, 해외선교를 주목적으로 하는 파리외방전교회 등 '선교회' 들을 "사도생활단(Society of Apostolic Life)"이라 부른다. 성직 사제들이 선교를 목적으로 수도원이 아닌 선교지에서 사도직을 수행하는 경우 일종의 수도회로 취급된다. 그러나 성직이 없는 여성 사도생활단은 수도회의 범주에 포함시키기 어렵다.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Daughters of the Charity of St. Vincent de Paul)"와 같은 여성 사도생활단은 바깥 출입이 어려웠던 수녀원을 탈피하여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봉헌 생활을 하게 되고 교황청의 승인을 받은 사도생활단인 데 반해, 신원의 모호한 한계를 지닌 채 수도회와 유사하게 생활하며 '수녀'로 불리는 사도생활단도 있다. 재속회(Secular Institutes)는 수도원이 아닌 일상 속에서 완화된 수도생활을 하는 평신도다. 세속에서 살아가되, 회칙에 따라 수도생활을 하는 평신도들의 모임이다. 혼인 여부에 구애받지 않으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정기 모임과 매일 상당한 기도, 관련 학습을 병행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며, 종신서원을 하기 전까지 매년 담당 수도자와 재속회 참사회의 평가를 받아 통과/유보 결정이 나므로(유보가 일정 횟수 이상이면 탈퇴해야 할 수도 있다) 하고 싶어도 계속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보다 다양한 형태의 축성 생활회를 살펴 보려면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매년 발표하는 "한국 천주교회 통계"를 참고한다.

한국 가톨릭의 수도자는 놀랍게도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다. 수도회에서 일종의 월급 같은 걸 줄 때 납세의 의무에 의거하여 일부를 세금으로 내며, 4대보험도 지원해 준다고 한다. 이게 쌓여서 나이가 들면 국민연금으로 지급된다. 이건 교구 소속 사제도 동일하다.[22] 일반적으로 수도원에서 단체로 모여 살거나 교회학교, 병원 등에 몇 명 정도가 파견되어 있는 것이 보통.

보통 이런 수도자들은 가톨릭이 가장 유명하지만, 같은 사도전승의 교회인 정교회 그리고 중동의 오리엔트 정교회네스토리우스파[다만]는 물론 심지어 개신교 종파인 성공회북유럽 루터교회[24]에도 존재한다. 특히 오리엔트 정교회 중 하나인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수도원 제도가 발달되어 있으며, 속세를 떠나 극한 고행과 기도생활을 하는 바히타위(bahitawi,bahtawi)라는 은둔 수도승이 존재한다. '수도자'라서 그런지 어느 교파이건, 심지어는 사제의 결혼을 허용하는 종파에서도 이들의 결혼만큼은 금하고 있다.

정교회 수도생활의 유형은 은수생활, 반은수생활(半隱修生活), 공동체 수도생활 등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반은수생활은 은수생활과 공동체 수도생활의 중간 형태인데, 속세를 떠나 은수(隱修) 생활을 하는 수도자들 2-5명 정도가 수도원에 모여 살며 수도생활을 하는 형태를 말한다.[25] 은수 생활은 아토스정상에서 은둔하며 수도생활을 하는 이들처럼, 완전히 속세와 접촉하지 않는 이들이다. 동방 정교회와 오리엔트 정교회엔 아직도 은수자, 은둔 수도자 전통이 남아 있으나, 서방 가톨릭에선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이다. 가톨릭은 은둔 수도자보단 수도회 중심으로 수도생활이 발달해 왔다.

공식적인 구분은 아니지만, 흔히 하루에 3시간씩 6년을 기도하면 사제, 4시간씩 기도하면 수도자, 7시간씩 기도하면 관상 수도자, 10시간씩 기도하면 사막 교부같은 은둔 수도자라는 개념도 있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 가톨릭 수도회 내에서 평수사들은 수도사제들에 비해 차별과 홀대를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로인해 한국에선 평수사로 50세 이상 버틴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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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가톨릭

가톨릭 수도자의 특징은, 주로 공동생활 위주로 수도생활을 한다는 것이며, 일부 트라피스트회 수도자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전부 공동생활이다. 카르투시오회조차도 공동생활이 기본이다. 아우구스티노회역시 공동생활을 중시하며, 프란치스코회역시 공동생활 위주의 활동수도회이다. 그 외에 도미니코회예수회 등도 전부 같다. 결론은 소수의 트라피스트회 일부 수도자를 제외하면 가톨릭엔 은둔 수도자는 사실상 없다. 수도회라는 조직이 없는 정교회와 달리 수도회별로 추구하는 카리스마가 전부 다르며, 이에 따라 원하는 수도회를 고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수녀가 수사보다 10배 가까이 많고 수사는 비교적 적다. 또한 수사들은 수녀처럼 수도복을 항상 입지 않기 때문에 그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의외로 수도자가 되는 조건은 간단한 편인데, 세례를 받은지 3년정도 지나고 견진성사를 받았다면 웬만한 수도회에선 받아준다. 다만 가정방문과 심리검사, 신체검사등을 철저히 진행한다.

한국 가톨릭 수도회에서는 정신적, 신체적 장애나 질병이 있는 자를 뽑지 않는 편인데, 이는 수도생활을 하다가 병세가 더 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 수도회의 경우는, 수도회에 따라 다르지만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있더라도 받아주는 경우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서울 광진구에 장애인들로 구성된 수도회인 '작은예수수도회'가 있다. 한때 회원 수가 30명 가까이 된 적도 있었으나, 현재는 거의 다 환속하고 전국에 6명의 수사만 남았다.[26] 카푸친 작은형제회아우구스티노회등 한국에 진출해 있는 탁발 수도회에 따르면, 새로운 수도자들이 점점 잘 들어오지 않고, 들어온다 해도 힘든 수도생활을 잘 버티지 못한다고 한다. 2024년 현재, 사제성소보다 더 빠르게 수도성소는 감소하는 추세이다.

일례로, 2024년 현재 전 세계사제 숫자는 대략 41만명 정도 된다. 그리고 수도자의 숫자는 전체 다 합쳐서 약 60만명 정도 된다. 하지만, 1955년의 통계에 따르면, 그때 당시 사제는 44만명, 수도자는 대략 106만명 정도로, 70여년이 흐르는 동안에 사제의 숫자는 3만 정도가 감소했으나 수도자는 거의 40만이 넘는 숫자가 감소하여 사제의 감소율보다 10배 이상이 되는 엄청난 숫자가 감소했다. 게다가 1955년 당시에는 가톨릭신자가 10억도 되지 않았으며, 그 당시 선교가 되지 않은 지역도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절대적인 세계인구가톨릭신자가 급증한 지금 현시점에서 사제성소와 수도자성소는 급감하고 있는 추세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도 유럽등 전통적인 가톨릭 지역에서는 너무 성소자가 없어서 대륙별로 수도회 신학교를 묶어놓은 상태이며, 수도회도 문닫기 직전인 곳이 많다고 한다. 이는 필리핀가톨릭이나 일본가톨릭도 비슷하다. 일본의 경우에는 아예 주교조차도 외국인이 맡는 교구가 있을 정도이다.

주로 외국 가톨릭의 경우에는, 사제서품만 받으면 교구건 수도회선교회건 자유자재로 변경이 가능한 편이다. 한국 가톨릭의 경우는 아직까지는 많이 경직되어있지만, 현재는 성소자도 갈 수록 없어지는 추세기 때문에 곧 외국처럼 바뀔지도 모른다.

2.1.2. 정교회

정교회에선 가톨릭과 달리, 공동생활보다 은수생활을 더 높게 쳐준다. 또한 조직적인 수도회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직도 은수자문화가 남아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가톨릭보다도 훨씬 더 엄격하고 고된 고행생활을 하는 수도자들이 많다.대표적으로는 수도원 공화국인 아토스성산이 있으며, 이곳에 수많은 고행자들과 은둔 수도자들이 살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규모가 작은 한국 정교회에는 아직까지는 남성 수도자가 상주하지는 않는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정교회의 남성 수도원강원도 양구군 동면에 존재한다. 여성 수녀원의 경우에는 가평에 있으며, 한국인 수녀 한명과 견습 수녀 한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정교회의 경우에는, 원래 수도원이 한 곳 있었으나, 현재도 운영되고 있는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2.1.3. 오리엔트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중 에티오피아 정교회에는 바히타위라는 은수자가 존재한다. 아직까지 한국에는 오리엔트 정교회수도원은 존재하지 않고 있으며, 수도자역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 진출한 오리엔트 정교회는 현재 콥트 정교회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27]가 있다.

2.1.4. 개신교

주로 성공회루터교회에 수도생활 문화가 남아 있으나, 개혁주의 개신교에도 수도원이 있는 경우가 있다. 개신교의 특성상, 가톨릭처럼 체계적인 시스템은 없는 편이다. 떼제기도로 유명한 로제 수사 역시 개신교 수사이다.

개신교의 특성상, 통상적으로는 입회방식이 가톨릭보다 덜 엄격하고, 체계적이지 않은 편이다. 또한 조직적인 수도회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 장로회에도 나실인수도원 이라는 수도원이 있다. 장로교 신자인 윤뵈뵈[28]원장이 성 프란치스코등 여러 수도생활에 관한 책을 읽은 뒤 설립했다. 또한, 충주에는 봉쇄수도원이 존재한다.

2.1.5. 아시리아 동방교회

아시리아 동방교회에서는 과거수도자수도회가 존재했었으나, 현재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에 들어서는 아시리아 동방교회수도자 문화는 거의 소멸된 상태이다. 하지만 이들 교회가 수도원전통이 없었던 것은 절대로 아니며, 중동아시아지역에 걸쳐서 아주 중요하고 핵심적인 수도원전통을 이들도 역사적으로 갖고 있었다. 네스토리우스파로 소급되는 과거 아시리아 동방교회에서는 수도원전통과 문화가 매우 활발했으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기타 그리스도교종파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대략 기원후 4세기경 부터 7세기무렵 까지는 아시리아 동방교회수도원문화가 융성하여 꽃피었던 시기라고 할 수 있었다. 이 당시 네스토리우스파수도원 문화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며, 메소포타미아페르시아지방을 넘어, 중앙아시아지방과 심지어는 인도중국까지도 그 영향력이 뻗쳐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하지만, 중세시대 이후에는 상황이 악화되었다. 전통적으로 정교회네스토리우스파가 정착해 있던 지역인 중동근동지방, 메소포타미아지방은 이슬람의 태동과 더불어서 동시다발적인 위기를 맞게 되었다. 현재도 러시아그리스를 제외하면, 동방교회가 위치한 지역은 그리스도교보다 이슬람의 교세가 훨씬 강한 곳이 절대 다수이다. 이 때문에 정교회가톨릭과는 다르게, 상대적으로 이슬람의 위세에 눌려 한국에서의 인식과 더불어 세계사에서도 별로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않는 편이다. 게다가, 아시리아 동방교회내부의 여러 정치적 문제들과 전쟁등으로 인하여 상당수의 수도원들이 이 시기에 파괴되었다. 20세기초에는 오스만 제국에 의해서 시모노프 학살이 자행되어 동방교회는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 때문에 수도원제도 역시도 커다란 충격을 입어 그 회복이 어렵게 되었다.

결론은, 아시리아 동방교회에서 현재 수도원제도는 사실상 거의 소멸된 것이 맞으며, 수도원영성보다는 교구사제를 통한 영성이 강조되는 편이다. 같은 계열의 그리스도교이자, 같은 네스토리우스파에 속했던 동방 고대교회에는 수도원제도가 아직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동방 고대교회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너무 작아서 별로 영향을 끼칠 수 있을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2.1.6. 성직자와의 차이점

한국 가톨릭은 남성 수도자(수사)보다는 여성 수도자(수녀)가 압도적으로 많다. 2021년 기준으로 수녀와 수사의 비율은 10대 1에 달할 정도이다. 그리고 수녀들과 달리 수사들은 외부에 수도복을 잘 입고 다니지 않아서인지, 가톨릭을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이나 지식이 깊지 못한 신자는 수녀에 대응하는 남성을 수사가 아닌 신부, 즉 성직자라고 생각하기도 한다.[29]

그러나 수녀는 신부가 아닌 수사에 대응되며, 신분이 다르다. 수사/수녀는 성직자가 아니라 수도자이다.(성직수사의 경우, 수도자이면서 성직자) 가톨릭에서 성직자는 주교>신부>부제이며, 남자만 된다.[30] (교황추기경주교이다.)[31]

또한 아래 동영상과 같이 수사와 성직자 둘 다 될 수 있다. 이를 수도사제 혹은 수사신부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교구 소속 사제가 월등히 많아서 수도사제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가 별로 높지 않으나, 멘델의 법칙을 발견한 그레고어 멘델에서부터 현직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예수회 출신의 수도사제이다. 또한 정순택 베드로 서울대교구장 역시 가르멜회 출신으로 서울대교구 역사상 최초의 수도회 출신 교구장이다.



과거 유럽수도원에서는 맥주포도주와 같은 주요 생활음료가 제조되기도 했으며, 특히 미사에 사용되는 포도주는 지금도 수도원이나 성당에서 제조되기도 한다.[32] 현재는 수도원에서 만들었던 베네딕틴(베네딕도회), 샤르트뢰즈(카르투시오회), 트라피스트 에일(트라피스트회) 등의 제조가 거의 기업으로 넘어갔고, 수도회에서는 품질 관리만 맡는 경우가 많다.

2.2. 역사

기독교의 수도생활은 멀리 박해시대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적잖은 남녀 신자들이 하느님을 찾기 위하여 광야와 산기슭, 기둥 꼭대기에서 은둔생활을 한 데서 수도생활의 시초를 찾을 수 있다.[33] 수도생활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집트의 성 안토니오이집트 사막에서 은거하던 수도승이었다.

혼자서 수도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5세기 이후에는 대부분 자기와 뜻이 맞은 사람 여럿을 모아서 수도생활을 하였다. 이들 중 유명한 이가 바로 누르시아의 성 베네딕토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이며, 각각 베네딕토회프란치스코회를 창시하였다.

프란치스코도미니코의 탁발 수도회가 생겨나기 전에는, 수도원이라고 하면 베네딕토회의 수도원 같은 자치 구역에서 정주 생활을 하면서 개별 수도원장은 거의 영주나 다름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수사들이 직접 필요한 것들을 자급자족하도록 하는 청빈한 삶을 장려하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 그래서 이런 형식의 수도회가 대다수를 이루었던 중세시대 유럽의 수사들은 매일 아침 일찍 밭일하러 나갔다가, 저녁 때서야 퇴근하고는 그 후에도 성경을 필사하거나[34] 그리스어로 된 성경이나 여러 교양 서적들을 번역하는 작업에 매달리는 매우 피곤한 삶을 살았다. 고대 그리스고대 로마의 수많은 고전 문학 작품들과 철학 사상 및 과학이론들은 전부 자치 수도회의 수사들에 의해 전승된 것이다.[35] 탁발 수도회는 외딴 곳에 정주하지 않고 도시에 가서 순회 설교와 미사를 드리고 헌금을 조금씩 받아 생활했다. 그래서 현대에도 베네딕토회는 수도원 부지 자체가 넓고 여러가지 자급자족 시설이 많으며 수도원의 분원이 별로 없지만, 도미니코회프란치스코회는 자체 수도원 부지는 딱 필요한 만큼만 차지하며, 분원을 각지에 설치하는 형태이다.

반면 동방교회에서는 탁발수도회라는 개념이 없다.

12세기에 탁발 수도회가 많아졌지만 교황 인노첸시오 3세도미니코회, 프란치스코회 2개만 정식 수도회로 인정하였고, 후임 호노리오 3세가르멜회를, 알렉산데르 4세아우구스티노회를 마지막으로 인정[36]하여 오늘날 까지 이어지는 5대 탁발수도회가 되었으며 이들 수도회는 수도회 명칭 앞에 'Ordo'라는 명칭 및[37] 교황청 직속으로서 각 교구 주교들의 교도권에 구속되지 않는 특례를 받는다.[38]

탁발수도회 중 프란치스코회는 다시 도시에서 사는 공동체(작은형제회)와 산속에서 좀 더 은수적으로 사는 공동체(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도시에서 엄격한 청빈을 추구하는 공동체(카푸친 작은형제회)로 나뉘었다.

베네딕토회는 통일된 하나의 수도회라기보단, 베네딕토 규칙서를 지키는 수도회들의 모임이라는 성격이 강하며, 각 수도원마다 서로 크게 간섭하거나 종속되지않는다. 이는 초창기 아우구스티노 수도회도 비슷했다가 이젠 통합되어 중앙집권화된 것과는 다르게, 베네딕토회는 총 연합회를 두었을 뿐 아직까진 각 수도원마다 독자운영[39] 형태가 계속되고 있다.

중세의 수도자들이 로마 고전과 사서 등을 필사를 통해 많이 남겼기 때문에, 고대 로마의 문학, 역사 등이 끊기지 않고 보존된 것에 이들의 역할이 크다. 또한 유물 등 문화재를 보존하고, 농법이나 건축술, 심지어 맥주 공법에 이르기까지 많은 기술들을 계승/발전시켜 낸 공로가 있다.

소식하며 검소한 생활을 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중세 유럽 수도원의 한끼 식사량은 900kcal 정도로 결코 적은 양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검소한 식사'라고 기록한 이유는 중세 중기까지만 해도 귀족들의 연회라는 것은 모두가 더이상 먹을 수 없을 때까지 배터지게 먹고 마시다가 쓰러지는 것이었기 때문.[40]

16세기에는 이냐시오 데 로욜라에 의해 예수회가 창설되어 종교개혁으로 피폐해진 가톨릭을 영적으로 복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고, 중국일본동아시아라틴아메리카에 그리스도교 최초의 선교를 하게 된다.[41]

2.3. 기타

한국에서는 경상남도 마산시(現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위치한 시토회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여자 수도원STX 조선소 유치에 반대하여, 22년만에 봉쇄를 풀어 주목을 받았다. 수녀들은 "조선소가 들어서면 환경오염으로 인해 마을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사라진다. STX 측이 수녀원에만 이주대책을 마련해주겠다고 회유했으나, 주민들을 버려두고 수녀들만 이주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정신에 어긋난다."며, 봉쇄까지 풀고 주민들과 함께 상경 시위를 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다만 최종적으로는 패소했다.대판 2010두2005 그러나 이 판결 이후 STX가 순식간에 망하면서 조선소는 없던 일이 되었다.

84년만에 외출하는 103세 수녀가 화제가 되었다. 이 수녀는 지난 2013년에 사망했다.#

이탈리아의 현직 수녀가 현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이후 앨범이 발매되었다.

미국에서는 무려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하여 완주한 86세의 수녀가 있다. 기사 53살 때부터 철인 3종 경기를 했는데 단 한 번도 완주에 실패한 적이 없다.

한국 전쟁 당시 수많은 피난민들을 구한 인물이 훗날 수도자가 되기도 했다. 흥남철수 때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선장이었던 제너드 라루는, 전쟁이 끝난 후 미국으로 귀국해 베네딕토회에 입회하여 '마리너스'라는 수도명을 받고 수도자가 되었다. 마리너스 수사는 2001년에 사망했고, 사망 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마리너스 수사가 생전에 지내던 미국 베네딕토회 수도원은 경영난으로 폐쇄될 뻔했으나, 경상북도 칠곡군에 있는 베네딕토회 수도원에서 맡아 복구했다. 마리너스 수사의 이야기는 공지영 마리아 작가의 장편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에서 소재로 쓰이기도 했다.[42]

영국에서 24년차 수녀가 처음 본 수사와 사랑에 빠져 결국 결혼에 골인하여 환속한 일이 일어나 이슈다.

2.3.1. 환속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 들어올 수 없지만 나갈 때는 자유다. 개인의 의지로 수사나 수녀의 지위를 포기하고 수도생활을 그만두고 나가는 건 막지 않으며, 이걸 막으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세속 국가에서 보장하는 거주이전과 여행의 자유를 수도회에서 막을 권리는 없다.

수도회 측에서도 사이비가 아닌 한 의지를 상실한 이의 수도생활을 강제해 봐야 수도원 분위기만 나빠지니, 딱히 강제로 막을 생각도 안 한다. 환속을 위한 상담 중 "조금만 더 다시 생각해 보지 않겠느냐??"고 설득하는 정도에서 끝낸다. 오히려 고민이 있는 수사나 수녀에게 환속을 제의하는 경우도 있다.[43]

가끔 드라마에서 보면 성직자/수도자가 성직/수도직을 그만두고 일반 평신도가 되는 것을 파계라고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는 잘못된 용어다. 파계는 원래 불교 용어이며, 불교에서 비구계를 받은 승려가 4가지 바라이죄[44]를 저질렀을 때 파계했다고 보고 파계승으로 취급한다. 가톨릭의 경우 스스로의 의사로 사제직을 내려놓으려 하거나, 혹은 사제가 어떤 중요한 잘못을 저지르거나 해서 교구 차원에서 해당 사제가 사제직을 수행할 권리를 상실토록 하는 경우 '면직' 되었다고 하며, 교회법상 큰 죄를 지어 아예 가톨릭 신자로서 성사를 볼 권리 자체를 박탈당하는 것을 파문당했다고 한다. 따라서 수도자가 본인의 자유의지에 따라 수도직을 그만두는 것은 파계라 볼 수 없고, 이건 그냥 환속이다.[45]

또한 성직/수도직이 계명에 따른 것이 아닌 만큼 성직/수도직을 떠나는 것이 본인의 자유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닐지라도, 이를 파계라고 하지 않는다. 이 경우에도 환속이 맞다.

대표적인 경우로 인천에서 노숙인을 위한 무료식당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는 서영남 (베드로) 대표를 들 수 있다. 서영남 대표는 20대 시절부터 25년 동안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에서 수사로 살다가, 2000년에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 수도회에서 나왔다. 그리고 2003년부터 인천에서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탈퇴와 인준 철회의 시간적 선후 관계는 불분명하지만 천주교 인천교구 사회사목국은 2014년에 민들레국수집에 대한 교구 사회복지 인준을 철회했고, 민들레국수집은 교구 인준 시설에서 탈퇴해 홈페이지에 2014년 3월 이후 천주교 인천교구의 사회복지시설이 아니라고 공지했다. 민들레국수집, 천주교 인천교구 소속 아니다.

2014년의 상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영남 대표의 환속이 본인의 자유 의지에 따라 이루어졌다는 사실 관계가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이후 천주교 인천교구에서 교구 사회복지 인준을 철회한 이유가 밝혀졌는데, 서영남 대표는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기부금을 얻기 위한 프로그램을 하지 않으며, 생색내는 돈을 받지 않고, 후원조직을 만들지 않는다는 취지로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고 있으나, 문제는 교구 인준을 받기 위해서는 후원금 사용 내역과 영수증 처리, 금전출납부에 대해 감사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때문에 서영남 대표는 교구에 폐를 끼치지 않겠다며 교구인준시설에서 탈퇴해 독자적인 운영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46] 이에 따라 민들레국수집은 교구로부터 지원받았던 민들레 희망지원센터 건물을 반납하고 인천교구 사회복지회 가입시설에서도 탈퇴했다.#

2.3.2. 외부와의 접촉이 금지된 곳들

수도생활을 하는 곳 중에는 봉쇄수녀원과 봉쇄수도원이 있다. 봉쇄수도/수녀원이란 외부인이 들어올 수 없는 것은 물론, 수사/수녀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도 금지된 수도/수녀원을 말한다. 한국에는 봉쇄수도원과 수녀원을 합쳐 총 8곳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진출한 가르멜 수도회들을 예로 들면 맨발의 가르멜 수도회와 전교 가르멜 수녀회 2군데 중 전자는 봉쇄수녀원이고 후자는 사목활동에 활발히 참여하는 수녀원으로 성격이 각각 다르다.

봉쇄수도원 중에는 수도자들끼리도 기도 시간을 제외하면 말을 하지 않고 독방에서 은수자적 생활을 하는 곳도 있다. 물론 모든 수도원이 이렇게 봉쇄된 것이 아니고, 개방된 곳도 많다. 수도의 방향을 어디로 맞추느냐에 따라 개방의 정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외부인 출입금지라지만 출입이 가능한 구역이 있는데, 수녀 중에 신부가 있을 리 없으므로[47] 최소한 외부인 신부는 출입할 수 있어야 하고 수녀원 내부에서 필요한 물건을 100% 자체 생산할 수도 없으므로 어느 정도는 외부와 교류할 곳이 필요하다. 이들 출입가능 구역은 출입금지 구역과 분리되어 있다. 실제로 이런 봉쇄수녀원에 딸린 성당에 가 보면, 수녀들이 미사를 드리는 구역은 쇠창살 등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내부의 수도자들도 10년에 한 번씩 짧은 외출이 허락된다. 대부분은 외출 때 문화적 충격을 크게 받는다고 한다. 가끔 특별한 사정이 있어 정기 외출 때가 아닐 때에도 수도원 밖으로 나가는데, 이 때는 해당 봉쇄수도원의 총 본원에 연락하여 미리 허락을 받곤 한다. 당연히 그런 사례는 의료 목적 등에 한하며 횟수도 매우 드물다. 응급환자나 화재, 범죄 발생 등의 이유로 허락을 구하지 않고도 외부의 공무원이 급히 출입하거나 수도자가 후송될 순 있다. 봉쇄수도원도 위에서 언급했듯, 수도생활을 그만두고 나가겠다면 막을 수도 없고, 막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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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스 산에서 수행 중인 정교회 수사

그리스에는 정교회 수사들의 자치 마을이 따로 존재한다. 그리스 정교회와 세속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아토스 산에 한해서 교회의 자치가 이루어진 것. 이 빅딜은 이미 동로마 제국 시절부터 있어왔으며, 오스만 제국에서도 별 무리 없이 용인했다.

이곳은 현재도 동로마 제국의 문장인 쌍두독수리 깃발을 국기로 사용한다. 심지어 달력도 옛 율리우스력을 고집해 현대 그레고리력보다 느리고 시간대도 옛 로마식을 따르기 때문에 세속의 시간과 전혀 다르다.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12시간으로 나뉘며 태양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일몰시간이 12시로 일몰시간을 기준으로 하루가 바뀌며, 자정은 3시, 일출은 6시, 정오는 9시가 된다. 때문에 현대 시간대와 비교하면 시간이 매일 매일 바뀌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기년법 또한 고대 로마 시대의 전통을 살려 히브리력의 세계창조년(기원전 3761년)과 비슷하게 기원전 5509년 9월 1일을 천지창조일로 여기고 이를 기준으로 서력과 병기표기한다. 즉 2016년 11월 7일 오전 07시는 로마 달력에 따르면 7525(2016)년 10월 25일 6시 30분에 해당된다.

그리스어로 '성스러운 산'이라는 뜻인 '아기온 오로스(Άγιον Όρος 아욘 오로스)'라고도 하는 아토스 산(Όρος Άθως 오로스 아소스)에는 아무나 접근할 수 없다. 일단 여자는 무조건 출입 금지고, 암컷 동물조차도 출입이 금지된다.[48] 남자라도 교회로부터 허가를 받아야만 수사들의 수도생활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3일간 체류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만약 가톨릭 신자라면 엄중한 면접 혹은 여러가지 통과 절차를 거쳐야만 가능하며, 개신교 신자 또한 마찬가지며 수도원에 다녀왔다는 개신교 목사의 글이 있다(링크) 사진기나 휴대전화 등 일체의 세속 물품의 반입은 원래 금지되었으나, 슬슬 허용되는 추세다.

산 속 여기저기에 자리잡은 수도원에서는 매일 새벽 3시부터 밤 10시까지 규칙적인 일상생활과 수도생활이 이어지며, 수사들은 성물을 만들거나 이콘을 그려 파는 것을 생업으로 삼는다. 대부분의 수사들은 그리스러시아에서 왔으며, 상당히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영어 등 다른 언어를 말할 수 있으며 심지어 예언을 하는 수사도 있다고 한다. 또한 이곳에서 만드는 십자가 목걸이는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고 안에는 약간의 공간이 있다. 이 공간 안에는 성인의 유해의 일부나 성스러운 십자가 조각 같은 유물들을 보관한다. 만약 이런 목걸이를 구했다면 소중히 간직하고 가능하면 열어보지 말기를.

2.4. 실존 인물

2.4.1. 남자

2.4.2. 여자

3. 창작물에서

3.1. 특징

3.1.1. 전투력

서양권에도 퍼진 《소림사》의 영향으로 수도자 = 권법가로 취급하는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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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드라마 닥터후 시즌2 중 한 장면

대충 이렇게.

중세 수도자들은 의외로 싸움에 능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단 수도자들은 대체로 외딴 곳, 사람들이 잘 찾아올 수 없는 떨어진 곳에 수도원을 세워놓고 거기서 지냈는데, 그곳에는 바깥에선 잘 나돌지 않는 귀한 서적이나 물건의 반입, 반출이 잦았다. 따라서 바이킹이라든지 산적, 강도, 도둑과 같은 자들이 자주 침입과 약탈을 일삼게 되었기에 수도자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호신을 위한 무술을 익히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십자군 전쟁 시기에는 아예 수도자가 기사나 군인을 겸하는 일도 많았으며, 성전기사단과 같은 십자군 기사단의 경우 기사단이자 수도회이기도 했으므로 기사단원 전체가 수도자였다. 한국에서도 고려, 조선 시대에 불교 사찰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산적 등의 습격에 대비해 자체적인 무력을 갖췄던 것과 비슷하다.[51]

반대로 교통의 요지나 대도시 근처에 수도원이 세워질 경우, 수도원이 숙박시설 겸 역참 역할도 했다. 이런 시설이 다 그렇듯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몰리는데다, 가난한 수도자들이라도 이들의 재산을 노리는 범죄자들이 쳐들어올 수도 있으니, 자연히 무력을 갖출 수 밖에 없다.

또한 은퇴한 군인이나 기사가 더 이상 속세에서 할 일이 없어서 수도회에 입회하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52] 단순히 할일이 없어서 그런 것만은 아닌데, 당연하겠지만 군인 계급의 사람들이 평생 해온 일은 손에 피를 묻히는 일들이었고, 전쟁의 동기가 어찌되건 그들의 마음 속에는 수많은 살생으로 인한 죄책감이 크든 작든 쌓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은퇴 후에 속죄하는 의미로 수도원에서 고행의 삶을 택하는 이들이 많았다. 실제로 중세의 기록 중에는 기사가 수사에게 레슬링 기술을 배웠다는 기록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중세 검술 서적인 I.33 (Royal Armouries MS I.33) 검술서는 수사가 젊은이들에게 소드&버클러 검술을 가르치는 것을 기록으로 남긴 것도 있다. 즉 환경과 여러가지 요인이 겹쳐서 나름대로의 무력을 저절로 지니게 되었던 셈. 이는 비단 서양만의 일은 아니고, 동양의 들도 같은 이유로 승려들이나 절에서 무력을 갖추고 요새화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 외에도, 중세 시대에는 수도원이라는 곳이 이런저런 서적이 보관되고 거쳐가면서 필사되는 곳이었기 때문에, 수도자 상당수가 라틴어를 포함한 글을 읽을 수 있었고, 자체적으로 식량도 재배하고 포도주도 만들고 하는 식으로 농업에도 능숙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오랜 기간 동안 성직자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자주 동원되었는데, 보통은 문맹이 많던 시기 글과 학술을 아는 지식인으로서 행정업무를 지원할 겸, 병사들에게 심리적으로 위안을 주고 환자들을 도우기 위해 동원되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직접 무기 들고 싸우기도 했지만. 근대 시대에도 수녀들이 병원에서 간호를 맡거나, 수사들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레고어 멘델이 수도원장이 되기 전에 한 일이, 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덤으로 뭔가 신통력이 있는 이미지도 역시 남아있다. 그래서 힐러로도 자주 나타나는 편. 물론 권법가 이미지는 어디 가지 않기 때문에, 공격은 공격대로 하고 힐은 힐대로 하는 전형적인 딜힐캐가 되기 십상이다.

3.1.2.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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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로소프의 1880년작 '죄' 블루 아카이브의 시스터후드

현대 일본의 오타쿠 서브컬쳐에서 모에화되어 자주 등장하며, 현실의 수녀와 다르게 가슴을 노골적으로 강조하거나 옆트임을 넣는 등 섹스어필이 잔뜩 들어간 모습으로 그려지곤 한다. 그러나 이렇게 수녀를 성적 대상으로 보는 것은 일본 오타쿠 문화에서 시작된 현상이 아니다. 실제 중세 시대에 남녀 수도자들은 술과 도박은 물론 성관계까지 하는 등 수많은 일탈을 저질렀으며 유럽에는 이런 이야기를 다룬 미술이나 문학 작품이 수도 없이 많다. 현대 오타쿠 서브컬쳐는 오히려 이를 적당히 순화하고 미화해서 포장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쪽의 게임이나 만화에서는 수도복의 디자인도 색이 파랗거나[53], 레이스가 마구 붙어있거나, 금속계 장식이 붙어있거나 몸매가 드러나도록 착 달라붙는다거나 해서 원조와는 안드로메다급 차이가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54] 실제로 뭔가 이런 물로 인해 큰 일은 벌어지기 어려운 듯. 정확한 종교적 표현도 사실 잘 나오지 않고 두루뭉실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 편[55]이며.[56] 사교나 이교와 같은 걸로 치부하는 경우도 있고. 현실에서 창작물에서 이런 묘사로 표현된다는 것을 수도자들이 알고 있어도 창작물의 일종으로 보고 현실과 다르다는 걸 이해해주는 경우도 많다.

카드파이트!! 뱅가드에 등장하는 카드군인 배틀 시스터는 전원 전투 교단【생츄어리 가디언】에 소속된 에이전트이며, 표면적으로는 교회 소속이기 때문에 수도복이 전투복을 겸하는 식으로 되어있다. 역시 일본 창작물의 영향 아래 있는 만큼 설정상으로도 개성이 넘치는 인물이 많다는 듯.

2010년대의 조사에서 일본 18금 문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직업" 중 수녀는 3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1위는 여교사, 2위는 간호사. 다만 "직업"이기 때문에 여고생 등은 포함하지 않는다고 한다.

세계 팝송의 흥행지표가 되는 빌보드 차트에 수녀가 부른 곡이 무려 4주 동안 1위를 기록한 적이 있다. 벨기에 출신인 도미니코회의 수녀 루크 가브리엘 수녀(본명 Jeanine Deckers)[57]The Singing Nun이라는 이름으로 부른, 도미니코 성인을 주제로 한 Dominique라는 노래가 1963년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달성하였던 것. 이 곡은 프랑스어 노래로 영어가 아닌 노래가 빌보드 차트 1위를 한 6곡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또한 이 곡은 한국에서도 1970년대 서수남, 하청일 남성 듀오가 번안해서 벙글벙글 웃어주세요란 제목으로 건전 가요, 동요 느낌으로 불러 어느 정도 인기를 끌기도 했으므로, 곡조만 들으면 '아 그 노래' 할 것이다.

3.2. 수도자 설정의 가상 직업/유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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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수도자 설정의 가상 인물

3.3.1. 남자

3.3.2. 여자

4. 관련 문서



[1] '수녀'는 '수도녀'의 준말이다.[2] 금욕주의asceticism의 어원이며, 뒤에 제시된 단어들보다 종교 중립적이고, 인격신 숭앙 이전에 금욕을 좀 더 강조하는 표현이다.[3] 공동생활 수도사.[4] 주로 봉쇄수도원에 거주하는 수도자 내지는 수도승. 대개 베네딕토 수도회, 가르멜 수도회, 트라피스트 수도회 등의 수도자가 이에 해당된다.[5] 원래는 Monk와 마찬가지로 봉쇄수도원에 거주하거나 장원 형태의 수도원에 사는 여성 수도자를 지칭한다. 현대 영어에서는 Sister와 Nun의 구분이 모호하거나 없지만, 가톨릭에서는 여전히 필요하다면 엄격히 구분한다.[6] 탁발 수도자. 도미니코 수도회, 프란치스코 수도회 등의 수도자가 이에 속한다.[7] 일반적 의미의 남성 수도자. 수도회의 형태나 종류를 가리지 않고 쓸 수 있다.[8] 일반적 의미의 여성 수도자. 수도회의 형태나 종류에 상관없이 쓸 수 있다. 사도생활단은 수도회와 구분되므로 수녀라고 부르지 않는다.[9] 은자 혹은 은둔자, 단독으로 광야 등지에서 생활하는 경우.[10] 은수자, 격리된 독방에서 생활하는 경우.[11] 루카 복음서 18, 22[12] 마태오 복음서 19, 11-12.[13] 마르코 복음서 9, 35.[14] 수도자는 수도서원을 통해 이 3가지를 선서한다.[15] 같은 지역에 있는 성당인데 수녀들의 옷이 다르다면 각각 다른 수녀회랑 계약해서라고 보면 된다.[16] 예를 들어 서울 성심여자중학교성심여자고등학교를 운영하는 성심수녀회. 겉모습만 언뜻 보면 일반 여성과 잘 구분되지 않는다. 다만 성심여중고 졸업생의 증언에 의하면, "무언가 일반인과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고. 또한 한국에 들어와서 활동하는 수도회 중 프랑스에서 창설된 '느베르 애덕 수녀회' 또한 사복을 입는 수도회이다. 다만 사복 수도회라고 해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캐쥬얼 또는 원피스 같은 차림 등의 세속적인 옷이 아닌 무채색의 폴라티, 흰 블라우스에 가디건, 울 소재의 치마 정장같은, 세속의 평신도 또는 일반인이 보기에도 지극히 차분한 옷차림을 지향하므로, 겉모습으로도 어느 정도 예사 인물이 아님은 짐작 가능하다.[17] 단 이보다 더 제한 연령이 높은 수도회도 간혹 있다. 카르투시오회는 44세까지 입회 가능. 요즘은 출산율도 줄어들고 성소자도 줄어, 저보다 더 늦은 나이에 입회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해외의 경우 이보다 제한 연령이 더 높은 나라도 있다고. 수도회 입회 연령은 교회법에 규정이 있는 게 아니라 여러 수도자가 조화롭게 살기에는 젊어서 입회하는 게 더 유리하다는, 편의적인 이유에서 정해놓은 것이기 때문에 특정 수도회 입회 연령이 넘어가도 수도원장이 관면하면 입회가 가능하다.[18]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이라는 뜻으로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용어. 넓은 의미로는 모든 삶, 직업, 직분이 성소이다. 좁은 의미로는 사제나 수도자, 혼인으로의 부르심을 성소라고 한다. 그냥 '성소'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사제로서의 사명을 받는 사제성소를 의미하지만, '수도성소'나 '혼인성소', '독신성소'라는 표현도 자주 사용된다. 특히 현대로 오면서 성인이면 무조건 결혼을 하던 과거와는 달리 독신주의를 고수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기혼자들도 이혼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다보니 평신도들이 결혼하여 화목하게 사는 것도 하느님의 부름이고 인내와 순명을 요하는 엄연한 성소라는 인식이 높아졌다.[19] 교구사제는 청빈 서원을 하지 않고, 정결과 순명 서원만 한다. 또한 정결과 순명은 성직자와 수도자뿐 아니라, 모든 가톨릭 신자가 지켜야 할 사항이다. 가톨릭 신자들은 주님 앞에서 부부로서의 서약(혼인성사)을 맺은 배우자와의 부부관계를 벗어난 혼외 성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혼전 성관계, 간통, 자위행위, 성매매, 포르노 등등 금지). 또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순명해야 한다(현대의 대표적 불순명의 사례로, 나주 성모동산 사건이 있다).[20] '수사신부'라고도 함.[21] 이렇게 성직을 받은 수도자를 '성직수사'라고 부른다.[22] 사족으로 가톨릭 수도회, 교구 소속 단체는 회계감사를 자체적으로 시행하고 그 결과를 공개한다. 납세 의무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특정 종교의 납세관련 논란이 터질때마다 가톨릭은 언급조차 안되는 이유기도 하다.[다만] 네스토리우스파 중 하나인 동방 고대교회는 수도회가 없어졌다고 한다.[24] 독일어권과 동유럽의 루터교회는 다른 개신교 종파 대다수처럼 수도자가 없다.[25] 가톨릭으로 치면 카르투시오회가 이에 해당한다.[26] 거제도에 2명, 서울에 4명[27] 경기도 광명시[28] 뵈뵈는 일반적인 번역으로 포이베라고 부른다(굳이 영어식으로 발음하자면 '피비'). 가톨릭 쪽에서는 포이베를 쓴다.[29] 사실 현실적으로 이렇게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같은 그리스도인들도 남자는 신부, 여자는 수녀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들이 아주 많다.[30] "세례 받은 남자만이 (거룩한) 서품을 유효하게 받는다(가톨릭교회법 제1024조)."[31] 신부(남성 사제)에 해당하는 여성 그리스도인은 성공회의 여성 사제다.[32] 현재 한국 천주교에서 제주로 주로 쓰이고 있는 마주앙은 롯데칠성음료 경산공장(구 동양맥주)에서 생산되나, 미사주로 공급되는 분량(마주앙 미사주)의 품질관리는 베네딕토회 수사들이 담당한다. 그 외에도 각 교구별로 성당이나 수도원에서 소량 생산하는 포도주를 쓰는 경우가 있다.[33] 주로 시리아의 기독교 신자들이 이런 일을 했는데, 특히 초대 기독교회에서는 기둥 위로 올라가 다른 사람들이 주는 음식만 받아 먹으며 기도만 하던 이른바 '주상성자'들이 유명했다. 이 주상성자들이 남긴 유물은 동로마 황제들이 수집하는데 열을 올리기도 했다.[34]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만 해도 중세 유럽에서는 을 가지려면 원서를 직접 필사해서 제본하는 법밖에 없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책값이 너무 비싸서 신부나 수사들이 쓸 성경도 자기들이 알아서 필사해서 마련하는 수밖에 없었다.[35] 물론 정주 생활하는 수도회의 존재가 이런 긍정적인 영향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따금씩 창부정치아비뇽 유수니 하면서 그리스도교계가 개판이 되는 상황이 되어서 수사들이 타락에 빠지면, 장미의 이름에서 나오는 수도원같은 개막장스럽게 운영되는 수도원이 이런 수도회에서 나타나는 일이 왕왕 있었다.[36] 아우구스티노회 또한 베네딕토회와 마찬가지로 창립년도는 서기 400년으로 오래되었지만, 규칙서만 가지고 여기저기 흩어져 서로 독립된 수도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교황의 소집령과 통합명령으로 합쳐지게 되었다.[37] ex: 베네딕토회=Ordo Sancti Benedicti=OSB/아우구스티노회=OSA/도미니코회=OP[38]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순회설교나 미사를 드려야 하는데 각 지역의 주교의 지침에 따라 자체적인 수도회 방침과 영성을 이리저리 마구잡이로 바꿀 순 없었고, 현재도 각 관구와 지부가 전세계에 퍼져있다 보니…[39] 연합회에조차 가입되어 있지 않은 베네딕토회도 있다![40] 이는 중세 이전의 로마 시대에도 마찬가지여서 로마 귀족들은 연회를 여는 장소에 아예 구토실이라는 별개의 장소를 마련해 놓고 음식을 잔뜩 먹어 더 이상 못 먹을 지경이 되면 구토실에 들어가서 몽땅 토해놓고는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가서 음식을 또 배터지게 먹는 일을 반복했다. 심지어 로마 귀족들이 긴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서 음식을 먹었던 것도 그렇게 하면 위장이 늘어나 평소보다 음식을 더 많이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41] 예수회 또한 위 탁발수도회와 같은 교황청 직속이다.[42] 주인공 정 요한 수사신부의 할머니가 흥남 철수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남쪽으로 피난을 왔다. 피난 도중 메러디스 빅토리호에서 정 요한 신부의 아버지가 태어났으며, 훗날 정 요한이 베네딕토회에 입회하여 수사신부가 된 후 미국 베네딕토회 수도원을 보존하는 일에 참여하게 된다.[43] 프랑스의 조각가인 오귀스트 로댕이 그 예다. 한때 자신을 뒷바라지해준 누나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아 수도회에 입회했으나, 수도원 생활이 영 안 맞았던 탓에 그의 조각가로서의 재능을 알아본 수도원장의 권유로 환속한 바 있다.[44] 음행, 살생, 도둑질, 심각한 거짓말[45] 환속 역시 자발적으로 승려가 속세로 돌아오는 것을 뜻하는 불교 용어였으나, 현재는 의미가 확장되었다.[46] 때문에 민들레국수집은 홈페이지에 매달 후원자 명단과 총 후원금액, 후원받은 물품을 공개하고, 각 시설의 활동소식을 전하고 있다[47]성공회는 여성 사제가 가능하기에, 사제서품을 받은 수녀도 있다. 대한성공회에서도 2007년에 최초의 여성 수도사제가 배출되었다(성가수녀회 소속 오인숙 가타리나 수녀).[48] 암컷 고양이에 한해서는 허용된다는 말도 있다. 이유는 를 잡기 위해서.[49] '소화(小花) 테레사'라는 호칭으로도 알려져 있다.[50] 소화 테레사와 구별하기 위해, '대(大) 테레사'라는 호칭으로도 불린다.[51] 신라의 원효의상도 신라 화랑 출신으로 전투에 참전한 적이 있다.[52] 옛날에는 이런 동기로 수도회에 입회하거나 본인의 의사에 반해 억지로 수도원에 보내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세상으로부터 도피할 목적으로 수도원의 문을 두드린 사람의 입회를 받아주지 않으며, 강제로 수도원에 집어넣는 일도 없고, 본인이 원할 경우 언제든지 속세로 돌아갈 수 있다.[53] 이는 일본에서도 대인기였던 라그나로크 온라인의 영향이다. 파란색의 수도복은 실제 존재하긴 한다. 서울 명동 등지의 성바오로서원에 가 보면 진파란색 동복을 입은 바오로딸 수녀들을 볼 수 있다. 다만 수도복다운 디자인일 뿐.[54] 가톨릭의 수녀들은 당연히 이렇게 꽉 끼거나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지 않는다. 애초에 세속적인 욕망을 모조리 버리고 수도원에 들어갔는데, 성적인 매력을 드러내는 옷을 입는게 더 이상한 거다. 수녀들은 웬만하면 머리카락을 드러내지도 않는 것도 큰 차이점. 그리고 정교회 수녀들은, 잘 모르는 사람들은 무슬림으로 착각할 만큼 온몸을 완전무장한 복장을 하고 있어 차도르로 보이기 때문에 한국에 사는 정교회 수녀들은 이 오해를 막기 위해 머리 앞쪽에 하얀 깃을 넣고 다니기도 한다.[55] 이렇게 가톨릭에서 모티브를 따왔지만 다른 신이나 여신을 숭배하는 가상의 종교가 나오는 작품을 TV Tropes에서는 Crystal Dragon Jesus라는 클리셰로 넣는다. 이렇게 가톨릭을 베이스로 하면서도 표현을 바꾸는 경우는 핍진성을 지키고, 신성모독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56] 대부분의 일본 창작물에서 수도자와 사제와의 구분을 그닥 신경쓰지 않는다. 수녀가 수도원이 아닌 일반 교구에서 활동하면서 고해성사까지 해주는 작품이 매우 많다.[57] 나중에 환속했다.[58] 다만 이쪽은 정식으로 수도자가 된 상태는 아니다.[59] 수도사제[60] 이쪽은 자칭 수도자.[61] 사실 기본 편제 단위가 교구로 번역되는 챕터(Chapter)인 것이나 챕터의 근거지를 요새 수도원(Fortress Monastery)이라고 부르는 것에 알 수 있듯 스페이스 마린은 기본적으로 기사+수도승의 이미지를 지니는 집단이다.[62] 조시마 장로의 얘기를 듣고 후반부에서 환속한다.[63] 왜 취소선이 쳐져 있는지는 해당 항목으로.[64] 영장 형태가 수녀복(타입: 시스터) 형상일 뿐이다. 실제 직업은 만화가이고 성격도 직업상 음욕과 거리를 두는 수녀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65] 수녀 복장을 했지만, 진짜 정체는 CIA 요원이다.[66] 안정원에게는 누나들 말고도 형도 둘이나 있는데, 문제는 형들도 출가해서 신부가 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안정원 본인도 형들처럼 신부가 되는 것이 꿈이다보니, 그 어머니인 정로사는 재벌 그룹을 물려줄 자식들이 죄다 재산을 버리고 출가한다며 멘붕한 상황이다.[67] 우피 골드버그가 연기한 작중 인물로 원래는 수녀가 아닌 밤무대 가수로 갱단의 두목인 남자친구와 갱단 조직원들의 추적을 피해 수녀원에 수녀로 위장해 들어오지만, 나중에는 수녀회에 입회해 정식 수녀가 된다.[68] 복장 컨셉만.[69] 정확히는 부제다.[70] 일단 직책과 겉모습은 수녀지만 하는 일은 파계승의 수녀 버전이다.[71] 다만 캬롯은 정식 사제가 아니라 사제복만 입은 명예사제이다. 그래도 명색이 사제라서 교단 지하에 들어갈 수 있었으나 본의아니게 세계수 뿌리에 테러를 자행해서 출입금지 당했다.[72] 베로니카 역의 윤보라의 캐스팅 기사가 나갈 당시에, 일부 기사에서 '씨스타 출신 보라, 수녀되다.'라는 식의 제목을 붙여 그녀가 진짜 수녀가 되었다는 오해를 사게끔 했다. 이에 보라 본인이 직접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해명을 하는 해프닝이 일기도 했다. 본인도 제목을 보고 많이 놀랬다고...[73] 사실 진짜 수녀는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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