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4 13:35:07

유언(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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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서(後漢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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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tablewidth=100%><tablebgcolor=#a11><width=50%> 11권 「유현유분자열전(劉玄劉盆子列傳)」 ||<-3><width=50%> 12권 「왕유장이팽노열전(王劉張李彭盧列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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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서(蜀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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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 | 劉焉
작위 <colbgcolor=#fff,#1f2023>양성후(陽城侯)
최종직위 익주목(益州牧) 겸 감군사자(監軍使者)
성씨 (劉)
(焉)
군랑(君郞)
조상 노공왕(魯恭王) 유여(劉餘)[1]
생몰연도 ?년 ~ 194년
고향 형주(荊州) 강하군(江夏郡) 경릉현(竟陵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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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중랑(中郞) 혹은 낭중[2] → 낙양현령 → 기주자사 →
남양태수 → 종정(宗正) → 태상(太常)
익주자사(益州刺史) → 감군사자(監軍使者) 겸 익주목(益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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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정사 삼국지3. 삼국지연의4. 가족 관계5. 평가6.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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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익주에 자리를 잡은 군벌.

형주 강하군 경릉현 사람으로, 그의 조상들은 한장제 원화(84년 ~ 87년) 연간에 이곳으로 이주하였다. 유표와 더불어 한경제 사남 노공왕(魯恭王) 유여(劉餘)의 후손이다.

유언이 세운 익주 세력은 아들 유장을 거쳐 고스란히 유비에게 넘어갔고, 거기에 기반해 촉한이 나온 만큼, 훗날 촉한시조와 같은 인물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그래서인지 정사 삼국지 촉서는 유비가 아니라 유언, 유장 부자로 시작한다.

2. 정사 삼국지

후한군웅할거 시대 당시 군웅할거를 개막한 동탁, 원소, 원술, 공손찬, 유표, 여포, 손견, 마등, 조조, 유비와 같은 1세대 군벌에 속한다. 다만 나이로만 보면 이들보다도 한 세대 위다.[3]

본래 익주에 오기 전에는 구경 대신 중 하나인 태상(太常)의 관직을 역임한 고관이었다. 그러나 유언은 중앙 정계가 혼란스러워지자 이에 염증을 느끼고 익주자사로의 부임을 요청하여 그곳을 평정, 자신의 왕국으로 쌓아올렸다.

원래는 벽지인 교주를 맡으려 했는데, 이유인 즉슨 조정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그만큼 힘을 키우기 쉬울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동부(董扶)라는 사람에게 전해들은 "낙양은 어지러워질 것이고 익주 지역에 천자의 기운이 있다."는 도참설을 믿고 익주로 갔다고 한다. 사실 익주로 가는 게 본인에게 더 이득이었는데, 교주는 완전 변방이기 때문에 사섭의 예와 같이 중앙의 간섭을 배제하고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기는 쉽지만 그만큼 중앙의 정세에 관여할 수 있는 여지도 적었기 때문. 하지만 익주는 사방이 꽉 막혀있어 방어에 유리할 뿐만 아니라 주변의 영향력도 배제할 수 있으며, 동시에 - 전한으로 이어지는 중원의 중심지 중 하나인 장안(= 관중) - 낙양(= 중원)과도 멀지 않기에 유사시 중앙에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유언에게도 한경제의 후손이니 잘만 하면 난세를 틈타 황제의 자리도 넘볼 수 있는 익주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결국 훗날 황제정말로 나오기는 나왔는데… 이게 유언은 아니었다. 물론 유언의 나이와 후한이 유언의 사후 28년을 더 존속했다는 걸 감안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언의 아들이 대신 황제가 된 것도 아니었다.

여하튼 익주 지역의 황제를 칭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유비였지만, 유언의 행보 덕분에 익주가 독립국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군웅할거 시기를 보낼 수 있었고 후에 유비가 익주를 차지한 뒤, 이를 바탕으로 칭제하였으므로 어떻게 보면 촉한의 시조 혹은 프로토타입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이때 익주는 전임 익주자시 극검[4]의 실정으로 마상, 조지 등이 스스로 황건적이라 칭하며 광한군 면죽현을 중심으로 들고 일어나 광한군, 촉군, 건위군, 파군을 휩쓸던 것을 익주종사 가룡이 막 평정한 터였다. 유언은 가룡을 교위(校尉)로 삼고 주도는 면죽으로 정해 관대하게 위무에 힘쓰며 민심을 모아 슬슬 독자 세력을 꾀하였다. 한편 유력 호족인 파군태수 왕함, 임공현장 이권 등 10여 명을 숙청해 익주에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였다.

188년, 각종 반란과 부패 · 혼란으로 엉망이 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군 태수들을 감찰하는 역할에 머물렀던 주자사를 실권을 가진 주목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의 자사와 태수는 상하관계가 명확치 않았기 때문에 지방에서 대규모 반란이 발생해서 지방군만으로도 통제가 불가능할 때 딴 마음을 품은 유언이 정식으로 이와 관련된 상소를 올려 익주목 감군사자(益州牧 監軍使者)라는 파격적인 관직에 오르게 된다. 유언이 감군사자가 되어 익주을 겸하고 한 일은 먼저 익주자사 극검의 죄를 묻는 것이었고 이후 익주 내부의 치안을 다스리는 것이다. 내부의 치안을 다스리는 행위는 익주목의 직무 영역이므로 능히 이해되는데, 극검의 죄를 묻는 직무는 익주목의 영역이라기보다는 감군사자의 직무라 보인다. 즉, <유언전>에서 보인 극검을 잡아들여 죄를 다스려 벌을 주는 것을 맡게(當收儉治罪)하기 위해 감군사자로 임명한 것이다.[5] 그러나 후한 말기의 주목에게 주어진 주의 행정과 군정에 대한 권한을 살펴볼 때 이후 익주 내의 여러 사건들에 대해 벌이는 유언의 활동들에서 감군사자와 주목의 역할을 분리해 이해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는 감군사자 영(領) 익주목을 계승한 유장에 대해서도 같다.

191년에는 무기를 든 가룡건위태수 임기도 진압하고 죽였다. 유언이 주목 설치를 건의한 이래, 십상시의 난으로부터 시작된 멸망으로의 행진곡을 연주하고 있던 한나라 중앙정부는 이를 데 없이 강력한 권한을 가진 익주목 유언과 형주목 유표 등의 주목 설치로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동탁과 이각·곽사 정권 때문에 그 권위에 치명상을 입은 한나라 정부가 주도적으로 뭘 할 수는 없었으니까. 유언은 이 상황을 이용해 익주를 장악해 적극적으로 할거에 나선 것이다.

미녀 노씨가 유언의 집에 자주 드나들자, 유언은 노씨의 아들 장로(張魯)를 발탁해 독의사마(督義司馬)로 삼아 장수(張脩)와 함께 한중에 파견해 한중태수 소고(蘇固)를 공격해 차지하고 포야곡도를 봉쇄하여 조정과의 연락을 차단하기도 했고[6], 황제의 의복 · 깃발 등을 대량으로 만들어서 황제 흉내를 내려고 했지만, 형주를 맡고 있던 유표가 이를 조정에 고자질했다. 그런데 정작 유표 본인이 더했고, 전한까지 거슬러 갈 필요 없이 광무제의 후손이라 황실 본가와 훨씬 가까웠던 유우유총 등은 정작 저런 일을 벌인 적이 없는 것이 아이러니 하다. 이런 탓에 정사에서 유언은 유표, 원술, 원소, 동탁과 똑같은 한적(漢敵)으로 취급받는다.[7]

이각곽사를 몰아내기 위해 마등한수가 난을 일으켜 장안으로 향하자, 유언은 교위 손조에게 촉병 5,000명을 주어 이를 뒤에서 몰래 후원하기도 했다. 결국 이들의 난이 어이없게 실패하고 패배하자 중앙에서 관직을 지내던 유언의 장남 유범(劉範)이 살해되고 황도에 있던 차남 유탄(劉誕)이 사형되었다. 여기에 면죽에 화재까지 덮쳐 온통 불바다가 되어버렸다.

유언은 도참설에 심취해 있었고, 오의의 여동생이 귀인이 될 상이라는 관상이 나오자 그녀를 아들 유모와 결혼시켰다. 그런데 유모는 아내보다 먼저 죽었고, 과부가 된 오의의 여동생은 훗날 유비에게 재가해서 목황후가 되었다. 유언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이러한 예언들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곤란하고 진실성에는 의심 할 필요가 있는데, 이를 기록한 진수 자신이 익주에서 성장했고, 그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초주 역시 도참설의 신봉자였기 때문이다. "익주황제의 기운이 서려있다."거나 "어떤 인물이 귀인이 될 상이다." 같은 내용은 공식 문서에 남을만한 내용이 아니며, 후세에 짜깁기 되었을 수도 있다. 애초에 예언 대상 자체가 유비와 맞물려 있는 만큼, 유비가 입촉 후 칭제하면서 "예전부터 이 땅에는 황제의 기운이 서려있었고 과거 유언에게 이런 썰들이 있었기에 칭제는 정당하다."는 식으로 도참설이 나중에 생겼을 확률도 무시할 순 없다.

어쨌거나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는 해도 중앙 정부로부터 단단히 찍혀버린 유언은 익주의 치소를 광한 낙현에서 촉군 성도현으로 옮겼으며, 두 아들의 잇따른 비보에 큰 충격을 받았는지 심신이 쇠약해져 4남 유장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고 은퇴하여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했다. 유언이 사망하자 측근들은 유장으로 유언을 승계하려고 했지만, 유언의 부하 중 감녕만 유일하게 중앙에서 파견한 관리에게 승계시키려고 했다.

그래서 싸움이 붙었는데 감녕이 패했다. 감녕 개인의 싸움 실력은 엄청났지만 제 아무리 감녕이라 해도 혼자서는 중과부적이었다. 할 수 없이 감녕은 형주로 도망쳤고 유장이 유언을 승계했다.

이 양반이 익주 지역의 민심을 잡고 삼보의 난 등의 전란을 피해 외부민들이 무수히 유입되고 유언 본인도 동주병 등의 외부 세력을 적극적으로 끌어 오면서 호족들을 짓밟고 눌러놓은 탓에, 지역에 비해 후에 촉한이 될 익주는 호족보다 외부 세력이 대부분인 중앙 정권의 모습을 보인다.《정사 삼국지》에서도 유언 · 유장을 촉한 정권의 선구적 통치자로 보아《촉서》에 배치하였다.

하지만 제대로 다 정리하기 전에 저 세상 가는 바람에 유언 사후 익주는 유언이 끌어들인 동주병[8]과 토착 호족, 북쪽의 강족저족, 남쪽의 만족이 뒤엉켜 어지러웠다. 유언의 뒤를 이은 유장이 이에 대해서 눈치를 많이 보기도 했고 말이다. 이후 유비가 익주에 들어오면서 대부분 평정하였으나, 유비가 이릉에서 대패하자 반란이 다시금 일어났고 결국 제갈량이 나서서 진압을 해야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유비제갈량의 통치를 통해 익주는 안정을 찾게 된다.

3. 삼국지연의

연의에서는 황건적의 난 시절에 유주태수를 지내면서 유비와 인연을 맺는다. 실제로는 유주태수는 존재하지도 않는 관직[9]이며 유언은 유주 쪽에서 태수나 자사를 지낸 적도 없다. 유주자사를 지낸 사람은 공손찬에게 죽은 유우였다. 연의에서는 유비가 입촉할 때, 의용군 시절의 인연을 들며 유장과 관계를 독실하게 하는 요소가 되는 한편 유장을 배신한 유비를 더 배은망덕한 인간으로 만드는 기믹이 되기도 한다. 다만 연의에서도 유언과 유장의 부자 관계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4. 가족 관계

5. 평가

여러 매체를 통해서 인자한 사람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으나 실제로는 그런 거 없고, 유비 못지않은 야심가였다. 위에 서술된 도참설을 믿고 익주로 이동한 일도 그렇고, 오의의 여동생이 고귀한 신분이 될 것이라는 관상가의 말을 듣고 그녀를 아들 유모의 부인으로 맞이했다. 물론 오의의 여동생을 고귀하게 만든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다.

6.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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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경제의 사남[2] 《삼국지》<유언전>은 중랑,《후한서》<유언전>은 낭중.[3] 서술된 손견이나 마등, 조조, 유비 등은 반동탁 연맹 결성 당시 20~30대에 불과했는데, 유언은 언제 태어났는지 알 수 없지만 정황상 동탁이나 유표, 노식, 황보숭, 주준과 같은 세대의 노신이었다.[4] 극정의 조부.[5] 유언이 받은 감군사자의 직무 범위를 살펴보면 비록 후한 초기 마무의 지휘를 받는 두고가 감군사자로서 군사 활동을 한 적이 있긴 하나 후한 후기 장창의 사례를 살펴보면 감시 · 감독 · 감찰의 권한이 주요 직무로 봄이 맞다고 보인다.[6] 그래놓고 미적(米賊)이 조정과의 연락을 막는다며 핑계를 대면서 상서를 올렸다고 한다.[7] 다만 원소는 다른 의미로 분류해야 하는 게 더 맞지만.[8] 남양과 삼보 등지에서 유입된 수만 가를 친위 세력화하여 동주병(東州兵) 내지 동주사(東州士)라 불렀다.[9] 유주군이라는 행정 구역이 없기 때문이다.[10] 황완의 고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