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8 22:35:04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폭탄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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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IS의 아프가니스탄 테러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폭탄 테러) }}}}}}}}}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폭탄 테러
Hamid Karzai International Airport Bombing Terror
2021 Kabul airport attack
حمله‌های ۱۴۰۰ میدان هوایی کابل
[1]
▲ 테러 당일 BBC의 보도
<colcolor=#fff><colbgcolor=#000000> 발생일 2021년 8월 26일 (현지 시각)
발생 위치
[[아프가니스탄|]][[틀:국기|]][[틀:국기|]]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에비게이트)·바론 호텔 인근
유형 자살 폭탄 테러
테러 배후 IS-K[2]
피해 <colcolor=#fff><colbgcolor=#000000> 사망 170명 이상(미군 13명, 영국인 3명 포함)[3]
부상 130명 이상

파일:_kabul_airport_blast_.png
테러 발생 위치[4]

파일:kabulairport-1.jpg
병원으로 이송되는 사람[5]

파일:kabulairport-2.jpg
시신이 담긴 관을 차에 싣는 희생자의 친척들[6]

1. 개요2. 사전 징후3. 테러 발생4. 범인과 배후5. 미국의 대응
5.1. 보복 예고5.2. 보복 타격5.3. 민간인 오폭5.4. 미국 내 비판 여론5.5. 미군 희생자와 유해 귀환
6. 탈레반의 대응
6.1. 규탄성명 발표6.2. ISKP 진압
7. 추가 공격 시도8. 국제사회의 반응
8.1. 철수 작전 관련국8.2. 입장표명 국가8.3. 국제 기구 및 단체

[clearfix]

1. 개요

2021년 8월 26일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의 아프가니스탄 지부인 ISKP에 의해 아프가니스탄 카불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자살 폭탄 테러.

아프가니스탄 내 미군 철수탈레반의 대대적 공세로 인해 아프간 정부가 공세 단 2개월만에 무너짐에 따라 공항 인근에 피난민들이 몰렸고 결국 혼잡한 틈 속에 IS의 자폭테러가 발생해 수백명의 사상자를 만들고 말았다.

2. 사전 징후

탈레반바그람 기지를 장악하면서 기지 내부에 수감되어 있던 알카에다 조직원은 석방하는 한편 IS 관련 조직원들은 풀어 주지 않았다(이유는 후술). 더불어 아프간 IS 지도자인 아부 오마르 호라사니와 그의 조직원 8명을 사살하기도 했다. #

이 테러가 발생하기 전부터 CIA를 비롯한 각종 정보기관들은 카불 공항을 타깃으로 한 테러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경고해 왔는데 당시 카불 공항이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시민들과 공항 내부 접근을 차단하려는 미군 병력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상태였으며 이렇게 대중이 밀집된 지역은 테러의 목표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 정부는 자국민에게 정부의 지시 없이는 카불 공항으로 이동하지 말라고 경고하였으며 프랑스, 네덜란드를 비롯한 나토 및 유럽 국가들은 급히 대피작전을 종료하기에 이르렀다. # 영국 국방부 정무차관 제임스 히피는 이슬람 국가(IS) 무장 세력이 곧장 카불 공항 테러를 계획하고 있다는 "매우 매우 믿을 만한" 정보가 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 CNN 등 외신에 따르면 8월 25일(현지시간) 테러 직전부터 미 정보 당국은 아프가니스탄 호라산 지방에 본부를 둔 ISIS-K가 카불 국제공항 밖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할 계획임을 나타내는 매우 구체적인 위협 흐름을 입수했다. ISIS-K는 2014년부터 아프간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4,000여 명이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탈레반과 같은 수니파 계열이지만 노선이 달라 서로 적대 관계를 형성한다. #

미국 국방부는 테러 발생 전 세 차례 전화 회의를 통해 테러 발생 가능성과 공항 출입구 중 하나인 애비 게이트 등의 폐쇄 문제를 논의했으나 인근에서 영국군이 철수 속도를 높이고 있어 폐쇄하지 않았다.#

3. 테러 발생

2021년 8월 26일 공항 외곽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폭발은 카불 공항 외곽 애비 게이트(Abbey Gate)에서 일어났다. 직후 당연하지만 현장은 아비규환의 패닉 상태가 되었다. 목격자들 증언에 따르면 토네이도에 비닐봉지가 휩쓸리듯 시신과 신체 조각들이 공중을 날아다녔다. '최후의 날'처럼 하수구에는 수십구의 사체들이 떠 있었고 외국행 꿈이 담긴 옷가지와 여행 가방 등이 공항 부근 도로에 널브러져 있었다. 부상자와 생존자가 뒤엉켜 탈출 행렬이 이어졌고 카불 시내의 병원들은 테러 현장에서 실려온 부상자들로 가득 찼다.#

폭탄 테러에 뒤이어 동쪽 문에서 총격전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미합중국 해병대 12명과 미합중국 해군 의무병 1명, 미합중국 육군 부사관 1명을 포함한 17여 명이 사망했으며 13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 https://www.the-sun.com/news/3544925/marines-killed-kabul-airport-explosion-taliban-afghanistan/

해병대와 해군이 있었는데 미국 해병대의 법무, 의무, 군사경찰 업무는 미국 해군이 맡고 있다. 미국 해병대의 의무부대에는 해군 군의관과 의무병이 배속되며 해군 군사경찰이 해병대 피복을 입고 근무한다. 법무는 순수 해병대 출신 법무관도 존재하지만 해군 법무실이 최상급 기관이라 수사, 재판 등은 해군 법무실의 이름으로 진행된다.

물론 민간인들도 많이 사망했으며 그 중엔 아기도 있었다.

#1 #2 펜타곤 발표 현장 상황1 현장 상황2. 현장 상황이 담긴 동영상은 모자이크 처리되지 않았으므로 열람시 주의.

8월 28일 미국 국방부는 사망한 미군 13명 중 12명이 아프간 전쟁의 단초가 된 2001년 9.11 테러 전후 태어난 20대 초반의 ‘9·11둥이들(9·11 babies)’이며 이 중 2명은 여군이라고 밝혔다. # 13명 중 5명은 2001년 태어났으며 7명은 2001년 당시 3세 미만의 아기였다. 유일하게 ‘9·11둥이’로 분류되지 않은 31세 최연장자도 11세 때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가 공격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후 “나라 지키는 군인이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

두 번째 폭발이 공항 인근 탈출 대기자 숙소인 바론 호텔(Baron Hotel)에서 일어났다고 알려졌으나 자폭 테러 공격은 1회뿐이었다고 펜타곤이 정정했다.#

이후에도 3번째, 4번째, 5번째 폭발 및 도시에서 6, 7번째 폭발이 발생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확인되지 않았다. #1 #2 #3 # 후속 폭발에 대해 탈레반은 트위터에 미군이 중앙정보부(CIA) 기지를 폭파한 데 따른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기지는 '이글 베이스(Eagle Base)'라는 곳으로, 처음에는 벽돌 공장을 개조한 작은 기지였으나 추후 아프간 정보기관의 대테러부대를 훈련하는 데 사용되는 등 활용도가 커졌으며 아프간전 초기부터 사용된 주요 기지라고 한다. 벽은 10피트 높이에 두꺼운 철문은 차량이 들어올 때만 신속하게 열렸다 닫히고 검문도 까다로워 매우 안전하고 침투도 거의 불가능하며 현지인들도 그 존재를 몰랐다.#

4. 범인과 배후

테러 몇 시간 뒤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약칭 ISIL 혹은 IS)의 아프간 지부인 ISIS-K(혹은 ISKP)가 이 폭탄 테러의 배후를 자처했다. 테러의 희생자 중에는 아프가니스탄의 집권 세력인 탈레반 소속도 있었으며 IS는 이에 대해 "탈레반이 미군과 평화 협정에 동의한 건 배교행위"라고 언급하였다. IS "카불 공항 폭탄테러, 미군 노린 우리 소행"…90명 사망

자신들이 이 테러의 배후라고 밝힌 ISIL의 지부격인 ISKP의 한국어 정식 명칭을 풀어서 쓰면 '호라산 이슬람 국가'(Islamic State of Khorasan Province)다. 호라산이란 동부, 중앙아시아, 아프가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지역을 아우르는 옛 지명이다. ISKP는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의 아프간 지부 격으로 가장 극단주의 색채가 강한 조직으로 알려졌다. ISKP는 IS가 시리아이라크를 중심으로 한창 맹위를 떨치던 2015년 1월에 발족됐으며 조직원들의 대부분이 아프간 탈레반 정권에 불만을 품고 이탈한 아프간과 파키스탄 과격주의자들로 구성됐다고 영국 BBC 방송이 전했다.#

한때 동지였던 이들이 탈레반을 이탈해 ISKP를 만든 것은 탈레반 정권이 충분히 과격하지 못하고 '유약'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탈레반이 무슬림의 의무인 '지하드'(성전)를 등한시한 채 평화적 해결 방안 모색 등에 집착했다고 강하게 반발해 왔다.

대다수 지하디스트들은 탈레반이나 알카에다보다는 IS를 더 매력적으로 여긴다. 탈레반이나 알카에다는 체계적인 이슬람 교육을 받지 못해 자체적인 교리 수준이 부실하지만 IS는 창설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바그다드 대학 이슬람학 박사 출신에 IS 창설 이전에는 다른 테러단체들에 이슬람 교리해석 자문을 받아주고 다녔다. 그래서 IS는 교리가 이론적으로는 탄탄하게 정리되어 있어 지하디스트들을 끌어모았다.

ISKP의 거점은 파키스탄 접경 동부 낭가르하르 주로, 이곳은 마약 밀매와 인신매매의 대표적인 통로로 알려졌다. ISKP의 규모는 정확하지 않지만 500명에서 4000명 사이로 추산한다. #

탈레반이 감옥에서 수감 중이던 알카에다와 IS 대원들을 석방했다고 많이 보도되었지만 절반만 진실이다. 알카에다 대원들을 석방한 건 맞지만 IS 대원들은 풀어 주지 않았다. 중요 인물들이나 위험하다 싶은 자들은 따로 끌어내 재판도 거치지 않고 모두 즉각 사형을 집행했는데 주로 총살형으로 집행했다. IS 아프간 지역 사령관 아부 오마르 코라사니와 부하 8명을 처형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사실 탈레반과 알카에다, ISIL은 각각 목적과 성향이 제각각인데 다음과 같다. 극단주의자라고 해서 다 똑같은 목표를 지닌 게 아니기 때문이다.
  • 탈레반이슬람 근본주의를 행동원리로 삼긴 했지만 그 근본은 파슈툰족 토착 군벌세력이다. 제일 중요한 목적은 아프간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것이고 외국을 향해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를 하는 것에는 관심 없으며 오히려 서방을 포함한 국제 사회로부터 주권 국가로서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다.[7] 즉, 이들은 바로 옆동네처럼 파슈툰족이 주도하는 원리주의적 이슬람 신정 독재 국가를 만드는 게 목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서방 세력을 쫓아내긴 했으나 누가 뒤집으면 그 뒤집은 대상이 뒤집히는 목표가 되는 아프간의 전통상 국내 반탈레반 연합의 저항에 직면해 이미 2차 내전을 치러야 하는 상황인 데다 이미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민생을 어떻게 해결할지도 막막해 굳이 서방 세력을 자극해서 적을 늘릴 이유가 없다. 수도를 칸다하르로 옮기는 것도 고려한다느니, 이제 아프가니스탄인이 빠져나가는 게(특히 실무 인재들) 불쾌하다면서 외국인만 빠져나가는 것을 허용한다는 등의 메시지를 발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단 카불 점령과 기존 정부 전복에는 성공했지만 탈레반에게 주어진 과제는 너무 많다.
경제는 몇 년 전부터 기반도 없이 작살나 버렸다. 돈을 벌 방법이 없어서 양귀비를 이용한 아편 생산으로 먹고살던 게 바로 현재의 탈레반을 구성하는 군벌들이다. 당연히 현재 탈레반의 주 수입원은 바로 아편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데 국제 사회가 마약 판매를 주 산업으로 삼는 국가를 내버려두지 않을 게 뻔한 데다 탈레반에게 가장 우호적인 편에 속하는 중국마저 역사적 배경 때문에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그 누구도 봐주지 않으므로 이로 인한 갈등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나마 중국의 대외정책인 "타국의 내정에는 무관심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 나라가 독재정권이라도 친중이기만 하면 신경쓰지 않는다"에 따라 탈레반이 중국에 마약을 팔지만 않으면 여차저차 협력할 수 있겠지만 만일 탈레반이 만든 마약이 중국에 흘러들어가기라도 하는 것이 들키면 그날로 중국은 탈레반의 적대세력이 될 수도 있다.[8] 다만 예상외로 탈레반은 집권 후 모든 아편밭들을 대화회유를 통해(?) 강제로 갈아엎어 버렸다.
요약하자면 탈레반의 목표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자기들이 왕 노릇하면 그만이다.
  • 알카에다도 국제 테러조직이지만 이슬람 국가들에서 서방의 영향력을 축출하는 게 목표이지 서방 정복을 목적으로 한 건 아니다. 오사마 빈 라덴9.11 테러를 일으킨 목적도 미국과 서방이 중동에 개입하지 못하게 하여 현지의 과격주의자들이 마음놓고 정권을 잡게 판을 깔아 주는 것임을 이미 본인이 생전에 밝힌 바 있다. 당연히 알카에다는 어떤 지역을 통치하고 지배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테러 활동을 하려면 거점이 필요하니까 탈레반과 연합했고 탈레반은 이들이 아프가니스탄 지배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은신처를 제공하는 형태로 협력하는 관계였을 뿐이다. 알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과 당시 탈레반 수장이었던 모하마드 오마르가 사돈 관계인 것도 한몫 했다.
    어찌됐건 이슬람권에서 나가겠다는 서방권 국가들을 상대로 굳이 테러를 하려고 하는 수준까지는 아니기 때문에 탈레반도 이를 고려해서 감옥에서 풀어 줬다. 알카에다는 이슬람 국가들 내부의 세속주의 정권을 엎어 버리고 현지 과격주의자들이 권력을 잡도록 돕는 것이 목표이며 과격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으면 그들의 지원을 받으며 다른 세속 국가에 지부를 차리고 같은 짓을 하는 게 2020년대의 행동방식이다. 알샤바브알누스라 전선 등이 다 이런 목적으로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을 군사적으로 원조하기 위해서 조직된 집단이며 무장이나 전투력, 활동 방식 등도 서방의 특수부대를 벤치마킹했다.
    요약하자면 알 카에다의 목표는 중동 또는 이슬람권에서 세속주의 및 서방 세력을 축출하면 그만이다.
  • 반면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는 국제 테러 조직이면서 직접 통치와 지배를 하려는, 그러니까 이슬람 극단주의로 무장해 세계 정복을 이루는 게 목표다. 그래서 (아무도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알카에다는 할 생각도 안 하던 국가 선언까지 해 가면서 세력을 늘리려고 했다. 지금은 나이지리아 북부를 제외하고 가시적인 점유지역을 전부 잃었지만 적대적인 탈레반 상대로 은신처와 거점이라도 유지하려면 아프간이 가능한 혼란에 빠져있는 게 ISIL에게 유리하다. 그래서 탈레반과 영역 다툼을 하고 있고 그 결과가 이 테러다. 물론 탈레반도 이런 점을 알고 있어서 카불 감옥에서 ISIL 조직원들만은 절대 풀어 주지 않았지만 ISIS-K가 카불로 원정와서 자폭 테러를 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애초에 탈레반 병력 자체가 8~10만에 불과한 데다 북부 국경에도 병력을 상당히 할애해야 했기 때문에 병력을 최대한 동원해도 카불 전체를 통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징집병들까지 합치면 20만 정도로 추산되기도 하지만 이들은 아프가니스탄 정부 전복을 이유로 무리해서 임시로 끌어모은 사람들이라 더 싸우라고 할 명분도 부족한 판이다. 강제 징집병이기에 계속 유지하면 각 부족과 군벌들과 사이가 틀어질 것이고 자칫 잘못하면 탈레반 본인들이 '카불 정부' 신세가 되어 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9]바로 이 점이 탈레반이 ISIL을 곱게 보지 않는 이유다. 자신들은 외세를 축출해낸 이상 더 서방과 척지고 싶지 않은데 얘들이 자꾸 거기에 재를 뿌리기 때문이다.

5. 미국의 대응

5.1. 보복 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성명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현지시간 오후 5시 30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대국민 연설을 발표했는데 연설에서 "우린 절대 용서하지 않고, 잊지 않겠다", "군 지휘부에 ISIL 주요 자산, 지도부, 시설 등을 타격할 작전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우리가 선택한 시점에 무력으로 대응할 것" 이라며 IS에 대한 무력보복을 예고했다.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미국인과 아프간 협력자들을 계속 대피시킬 것"이라며 대피작전은 계속 이루어질 것임을 밝혔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IS에 대한 보복을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위기를 맞이했다.#1 #2 #3 아프가니스탄 참전용사 출신으로 한 쪽 눈을 잃었던 공화당 댄 크렌쇼 의원이 미군 철수가 너무 성급하고 엉성하게 이루어졌다고 이의를 제기하며 동시에 해당 테러 관련하여 “이제는 IS 제거를 위해 탈레반과 협조하자니 용납할 수 없다.”며 조 바이든을 질타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를 포함한 아프간전 참전 용사 출신 공화당 의원들은 탈레반과 타협하는 대신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을 직접 지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의 승인 없이 '이슬람국가 호라산'(IS-K) 관련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도록 국방부에 전권을 부여했다.#

5.2. 보복 타격

  • 2021년 8월 28일 한국 시간 오전 10시 40분경 미군은 파키스탄 접경지대인 아프간 낭가르하르 주 내 IS에 무인기를 동원한 무력 공습에 돌입했다. 바이든이 보복을 예고한 지 단 이틀 만에 바로 작전이 개시된 셈이다. 펜타곤의 후속 발표에 따르면 해당 공습으로 이번 테러를 자처한 ISIS-K의 테러 기획자와 조력자를 성공적으로 제거했으며, 민간인 피해는 없다고 밝혔다. 표적이 탑승한 후 이동 중이던 차량을 공중에서 정밀 폭격한 것이다. 헬파이어 미사일 R9X 모델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모델은 탄두 폭발 없이 미사일의 운동에너지+탄두 외부에 장착된 칼날만을 이용하여 차 천장을 뚫고 내려와 타겟의 머리를 날려버리는 방식이라 거의 100% 타겟만 죽고 끝이며 무고한 민간인은 물론이고 심지어 함께 차량에 동승 중인 타인조차도 거의 피해를 받지 않는다. #1#2 "이것이 끝이 아니며 ISIS-K를 테러의 배후로 지목하고 끝까지 추적해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하겠다"는 성명을 추가적으로 내놓았다.
당시 공습을 당한 자택의 모습
  • 이에 대해 탈레반은 이는 아프간 영토에 대한 공격 행위라고 반발했다.# 사실 보복 공격에 대해 탈레반과 협의할 필요가 있는데 일단 탈레반이 집권세력이며 지하드 단체들은 어떤 의미에서 미국보다도 직접민주주의가 더 발달해 있는데 지하디스트들은 투표권 대신 자기 몸과 총을 들고 탈레반에서 IS로 옮기는 것으로 의사표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테러단체 하위조직원들이 어제는 탈레반, 오늘은 알카에다, 내일은 IS 등으로 소속을 옮기는건 흔하디 흔한 일이다. 이렇게 탈레반이 미국에 대해 유약한 모습을 계속 보인다면 젊은 반미 전사들의 IS로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이런식으로 IS 조직원 한둘 죽이고 IS 조직원이 열명 백명씩 충원되는 히드라 머리자르기식 참수작전을 계속하면 최악의 경우 결국 IS가 아프간을 장악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잠재적 과격주의자들을 모두 잡아내자니 얼마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중동 과격주의자들 사이에서는 IS 수립을 서방이 의도적으로 방기했다는 음모론까지 나올 정도다. 어차피 찾아내는 것도 골치니 IS로 가도록 묵인한 다음 인권 같은 거 신경 안쓰는 중동 현지군을 지원해서 싹쓸이를 했다는 것인데 진실은 저 너머에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정말 그렇게 됐다.

5.3. 민간인 오폭


* 8월 29일, 카불로 향하던 IS의 자폭차량을 미국이 공습으로 폭격했다. 미군 측 발표에 의하면 민간인 피해는 없었다고 한다. 이전에 미국은 IS의 추가 테러가 임박했다는 첩보를 입수했고 바이든은 미군의 IS 타격에 대한 전권을 위임한 가운데 벌어진 미군의 추가 보복 타격인 셈이다. 미 대통령의 사전 승인 없이 미군이 IS 목표물을 확인하는 즉시 군사적 타격작전을 벌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 민간인 피해가 없었다고 주장했으나 실제론 어린이 6명을 포함한 일가족 9명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걸로 밝혀졌다.# 미사일이 차량에 실린 폭탄을 건드려 유폭이 일어나면서 2차폭발에 휘말렸다. 공습에 사용된 헬파이어 R9X 미사일은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폭발성 탄두 없이 미사일의 운동에너지와 미사일에 달린 칼날의 절단력만으로 특정 목표물만 제거하도록 설계되어 별명이 '닌자 미사일' 이었으나 예상치 못하게 2차 폭발을 일으켜 한계가 있음이 드러났다.
  • 그런데 9월 11일 공습의 표적이었던 차량 운전자가 미국 구호단체의 협력자였다는 뉴욕타임스의 보도가 나왔다.# 차량에 실은 것은 폭탄이 아니라 집에 물이 안 나와서 물통을 실은 것이었고 폭발물 폭발이 아니라 단순 차량 폭발 및 화재로 어린이를 비롯한 민간인 10명이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 결국 펜타곤이 민간인 오폭을 인정했다. 앞서 보도된 대로 ISIS-K 대원은 없었으며 최종적으로 어린이 7명을 포함한 민간인 10명이 희생되었다고 발표했다.# 해당 공습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강행되었으며 처음부터 엉성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정부는 오폭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자신을 변호해 왔음이 밝혀졌다.#
  • 미국 국방부가 유족에게 조의금과 미국 이주를 제안했다.#
  • 미 국방부가 오폭에 대한 처벌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유족들은 울분을 토했다. 유족들은 심지어 미국 정부의 이러한 결정을 언론을 통해서만 접했으며 미국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하였다고 한다. 조의금과 미국 이주 제안도 말로만 그쳤고 실제로는 유족들에게 연락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5.4. 미국 내 비판 여론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의 성급한 철군 과정과 탈레반의 카불 조기점령에 겹쳐 국제공항 폭탄 테러로 미군 13명이 전사하고 상당수가 부상을 당하면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입지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철수를 계획한 대통령 자체는 도널드 트럼프지만 아프가니스탄 여성 인권을 문제로 철군을 한 차례 이상 연기했던 바 있었다.# 이 테러로 인한 미군 전사자 대다수가 9.11 테러 당시 3살 이하거나 9.11 테러 이후에 태어난 10대, 20대 젊은이들이며 전사자 중 한 명인 니콜 지 병장(여/23세)이 해당 테러 일주일 전 아프간인 아기를 안고 찍은 사진이 회자되면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 테러가 일어나고 나서 이러한 만행에 분노한 8해병 연대 1대대 소속과 2해병 연대 1대대 소속의 미 해병대원들이 카불 국제공항내 벽면과 공항 외부 방벽에 IS와 탈레반에 대한 저주섞인 쌍욕으로 이루어진 락카로 쓴 그래피티들을[10] 남겼고 이를 촬영한 사진이 인스타그램에 올라왔지만 상부의 탈레반을 자극하지 마라는 경고로 인해 삭제되었다고 한다. 당시 현장의 어느 해병대원의 증언에 따르면 그래피티 자체도 지우라는 명령이 있었다고 한다.

다만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보편적인 미국 국민들은 바이든의 철수 결정 자체는 지지했다는 것이다. 20년간 자신들의 혈세로 전쟁을 끌어왔는데 패도 패도 여전히 쓰러지지 않고 오히려 강성해져만 가는 탈레반 + 도대체가 변하지 않는 아프간 특유의 폐쇄적인 부족주의 내지 배외주의 + 비상식적 종교 원리주의로 인한 제자리 걸음의 민주주의 시도 내지 체제 교체, 아프간 정부의 답이 없는 부정부패로 인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지원 등등으로 인해 아프가니스탄에 질릴 대로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탈레반에 쫓기듯이 떠나는 모습에 불만이 많았던 차에 폭탄테러가 바이든 비판 여론에 기름을 부은 셈이 되었다.

미국인들이 분노의 목소리를 낸 가장 큰 이유는 이번 철수가 1975년 사이공이 양반으로 보일 정도로 너무나도 지리멸렬하고 엉망진창이라서 국제 사회에서 이를 철수가 아니라 사실상 패주로 간주하는 데 있다.[11] 게다가 철수 기간 결정권의 칼자루마저도 탈레반이 쥐고 있다보니 여기에 미국이 일개 민병대 집단한테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녀서 생긴 굴욕감, 그리고 뒤죽박죽 철수로 인한 혼란 과정에서 이런 참사가 터졌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해병대 장교가 군 수뇌부의 아프가니스탄 사태 대처를 크게 비판하는 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지휘권을 박탈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5.5. 미군 희생자와 유해 귀환

United States Congressional Gold Medal
미합중국 의회 명예 황금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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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6년 1777년 1779년 1781년
조지 워싱턴 소장 호레이쇼 게이츠 소장 앤서니 웨인 사령관 헨리 리 3세 준장 대니얼 모건
1781년 1787년 1800년 1805년 1813년
소장 너새니얼 그린 존 폴 존스 대령 토머스 트럭스턴 준장 에드워드 프레블 대령 아이작 헐
대령 스티븐 디케이터
대령 제이콥 존스
1813년 1814년
대령 윌리엄 베인브리지 대령 올리버 해저드 페리
대령 제시 엘리엇
대위 윌리엄 워드 버로스 2세
대위 에드워드 매콜
대령 제임스 로렌스 대령 토머스 맥도너
대령 로버트 헨리
대위 스티븐 카신
1814년 1814년, 1848년 1814년
대령 루이스 워링턴 대령 존스턴 블레이클리 소장 제이콥 브라운 소장 윈필드 스콧 소장 피터 부엘 포터
준장 엘리저 윌락 리플리
대령 제임스 밀러
1814년 1815년 1816년
소장 에드먼드 P. 게인스 소장 알렉산더 마콤 소장 앤드루 잭슨 대령 찰스 스튜어트 대령 제임스 비들
1818년 1835년 1846년, 1847년, 1848년 1847년 1854년
소장 윌리엄 해리슨
주지사 아이작 셸비
대령 조지 크로간 소장 재커리 테일러 소머스 호
장교 및 승무원 구출
중령 덩컨 잉그함
1858년 1863년 1864년 1866년 1867년
프레더릭 로즈 소장 율리시스 S. 그랜트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로버트 크레이튼
에드윈 J. 로
조지 C. 스투퍼
사이러스 웨스트 필드
1867년 1871년 1873년 1874년, 1904년 1883년
조지 피바디 조지 F. 로빈슨 대령 재러드 크랜달 그 외 존 혼 주니어 존 폭스 슬레이터
1888년 1890년 1900년 1902년 1909년
조셉 프랜시스 수석 엔지니어 조지 W. 멜빌 그 외 중위 프랭크 H. 뉴컴 중위 데이비드 H. 자비스
소위 엘스워스 P. 버트홀프
새뮤얼 J. 콜 박사
라이트 형제
1912년 1914년 1915년 1928년
선장 아서 로스트론 폴 H. 크라이봄 그 외 로물로 세바스티안 나온
에두아르도 수아레스 무히카
찰스 린드버그 로알 아문센
움베르토 노빌
1928년 1929년 1930년 1936년
토머스 에디슨 최초로 성공한 대서양 횡단 비행사 소령 월터 리드 준장 리처드 에벌린 버드 링컨 엘즈워스
1936년 1938년 1939년 1940년
조지 M. 코핸 리처드 올드 리치 부인
안나 불리니
하워드 휴즈 목사 프랜시스 퀸 윌리엄 시넛
1942년 1945년 1946년
롤런드 바우처 1939~1941년 미국 남극 탐험대 육군 원수 조지 C. 마셜
해군 원수 어니스트 킹
육군 원수 존 조지프 퍼싱 준장 빌리 미첼
1949년 1954년 1955년 1956년 1958년
앨번 W. 바클리 어빙 벌린 조너스 소크 박사 남북 전쟁의 참전 용사 준장 하이먼 리코버
1959년 1960년 1961년 1962년
로버트 고다드 로버트 프로스트 토머스 앤서니 둘리 3세 밥 호프 샘 레이번
1962년 1968년 1969년 1973년 1977년
육군 원수 더글러스 맥아더 월트 디즈니 윈스턴 처칠 로베르토 클레멘테 매리언 앤더슨
1978년 1979년
중장 아이라 이커 로버트 F. 케네디 존 웨인 벤 아브러조
맥시 앤더슨
래리 뉴먼
휴버트 험프리
1979년 1980년 1982년
미국 적십자 케네스 테일러 1980 미국 하계 올림픽 팀 베아트릭스 여왕 대장 하이먼 리코버
1982년 1983년
프레드 워링 조 루이스 루이스 라머 레오 라이언 대니 토머스
1984년 1985년
해리 S. 트루먼 레이디 버드 존슨 엘리 비젤 로이 윌킨스 조지 거슈윈
아이라 거슈윈
1986년 1987년 1988년
네이선 샤란스키
에비탈 샤란스키
해리 차핀 에런 코플런드 메리 래스커 제시 오언스
1988년 1990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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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996년 1997년
랍비 메나헴 멘델 쉬니어슨 루스 그레이엄
빌리 그레이엄
프랭크 시나트라 마더 테레사 바르톨로메오스 1세
1998년 1999년
넬슨 만델라 리틀록 9인 제럴드 포드
베티 포드
로자 파크스 시어도어 헤스버그
2000년
존 오코너 찰스 M. 슐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로널드 레이건
낸시 레이건
나바호족 코드 토커
2002년 2003년
대장 휴 셸턴 토니 블레어 재키 로빈슨 도러시 하이트 박사 조셉 디레인
해리 & 일라이자 브릭스
레비 피어슨
2004년 2006년
마틴 루터 킹
코레타 스콧 킹
터스키기 에어맨 달라이 라마 14세 바이런 넬슨 노먼 볼로그 박사
2007년 2008년
마이클 데바키 박사 아웅 산 수 치 콘스탄티노 브루미디 에드워드 윌리엄 브룩 3세 아메리카 원주민 코드 토커
2009년 2010년
여성 공군 군무원 조종사 닐 암스트롱
버즈 올드린
존 글렌
아널드 파머 무함마드 유누스 제100 보병대대
제442 보병연대 전투단
군사정보국
2011년 2012년 2013년
몬트포드 포인트 해병전우회 9.11 테러 참사 사망자 라울 발렌베리 애디 메이 콜린스
데니스 맥네어
캐럴 로버트슨
신시아 웨슬리
제1 특수임무단
2014년
둘리틀 특공대 멤버 미국의 공군 에이스 제2차 세계 대전
민간 항공 초계 부대 멤버
시몬 페레스 모뉴먼츠 맨
2014년 2015년 2016년
제65 보병연대 잭 니클라우스 셀마 몽고메리 행진 제2차 세계 대전 필리핀인 참전 용사 OSS
2017년 2018년
밥 돌 래리 도비 제2차 세계 대전
중국계 미국인 참전 용사
USS 인디애나폴리스 승무원 안와르 사다트
2019년
스티브 글리슨 캐서린 존슨 크리스틴 다든 도로시 본 메리 잭슨
2019년 2020년 2021년
무명의 수여자들 그렉 르몬드 미국 국회의사당 경찰
워싱턴 광역 경찰국 소속 경찰관
제369 보병연대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전사한 13명의 장병
2022년 2023년
미 육군 제23부대 본부 특수부대
제3133 신호 복무 중대
제6888 중앙우편대대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상선 선원
에밋 틸
메이미 틸모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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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카불 공항 테러 희생 미군 13명.jpg

파일:0003636873_001_20210829223204452.jpg
  • 이 사진은 전사자 중 하나인 미 해병대 제3원정 전투대대 소속 니콜 지(Nicole Gee/23세)[12][13] 병장이 고아를 돌보는 사진이다. 니콜 지 병장은 이 사진과 함께 "I love my job(내 일을 사랑한다)"라고 SNS에 글을 올렸다. 5일 뒤 그녀는 아프간 전쟁에서 희생된 마지막 미군 장병 중 하나가 되었다. ##
미군 희생자 유해 운구 장면

이 테러로 사망한 13명의 미군 전사자 유해는 현지시간 8월 29일 미국 델라웨어 공군기지로 귀환하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질 바이든 여사,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 등 내외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운구식이 거행되었다. 유족의 요청으로 비공개 운구한 2명의 전사자를 제외한 11명의 전사 장병의 운구 장면이 TV로 생중계 되었다. 더 불행한 건 카불테러로 희생당한 미군들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마지막 미군 전사자이자 9.11 테러가 발생한 2001년 또는 그 이후에 태어난 군인들이었다는 점이다.

파일:바이든이 시계를 보는 그 장면.jpg

조 바이든 대통령은 영결식에서 하품을 하거나 시계를 보는 등 부적절한 처신을 보이면서 비난받았다.

2021년 12월 16일 이들은 미국에서 가장 명예로운 훈장인 의회 명예 황금 훈장을 추서받았다.

6. 탈레반의 대응

6.1. 규탄성명 발표

탈레반의 자비불라 대변인은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의 국제공항 테러에 대해 강력히 규탄하였으며 자국민의 안전과 보호에 세심한 보호를 기울이며 악순환을 철저히 차단할 것이라는 논평을 내놓았다. # 더불어 미군 관할 지역에서 일어난 테러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통제에서 벗어난 일이며 자신들이 외국 군대에 테러 위험을 경고했는데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비난하였다. # #

탈레반 입장에서도 황당할 수밖에 없다. 이 테러의 희생자들 중에는 탈레반 대원들마저 다수 포함되어 있으며 자신들이 명실공히 공식적인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 일단 주변 국가들을 안심시켜야 하는 상황에 IS가 제대로 찬물을 끼얹어 놨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주권 세력으로 인정받기 위해 국경과 접해 있는 두 강대국들(인도, 중국)의 협조가 절실했고 훗날 서방 국가와의 수교를 위해서도 서구 국민들의 대피를 도와주는 중이었지만 이번 테러로 지금까지 조심했던 것들이 말짱 도루묵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신경을 잔뜩 곤두세웠다. 특히 자국 외에 피해를 입은 국가가 (탈레반 입장에서) 가장 골칫덩어리인 미국이며 9.11 테러 이후 미국을 자극해서 좋을 게 없다는 걸 뼈저리게 배웠기 때문에 하필이면 미국을 건드린 IS의 행보에 날을 세우는 건 당연한 상황이었다.

6.2. ISKP 진압

8월 29일, 탈레반의 범죄수사 책임자 사이폴라 모하메드는 카불 서부에서 총격전을 거쳐 6명을 체포했으며 4명은 자국민이지만 2명은 말레이시아인이라고 더 타임스에 밝혔다. #

7. 추가 공격 시도

8월 30일, ISKP는 공항을 겨냥해 로켓포를 발사했다. 미군은 방공요격체계 C-RAM을 통해 이를 차단했다고 밝혔다.#

8. 국제사회의 반응

8.1. 철수 작전 관련국

8.2. 입장표명 국가

  • 대한민국 역시 외교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해당 테러 행위를 강력 규탄했다.#
    • 대한민국은 이 테러와 관련해서 상당히 아찔한 일이 있었다. 이 테러가 발생하기 직전 아프간 협력자들을 한국으로 대피시키는 미라클 작전이 진행되고 있었고 테러가 발생하기 바로 전날인 8월 26일에 대피가 완료되었다. 즉, 하루이틀만 작전이 지연되었다면 이 테러에 휘말려서 대한민국 측 전사자가 발생하는 등 사상자가 발생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테러로 인해 카르자이 공항이 폐쇄되어서 작전이 실패했을 가능성이 컸다.
  • 러시아도 해당 테러 행위와 관련해 테러 행위를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악으로 규정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

8.3. 국제 기구 및 단체



[1] 다리어, Hamlahā-ye 1400 maydān-e hawāyī-ye Kābol[2] Islamic State - Khorasan Province. 번역하자면 "이슬람 국가 호라산 주"로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IS)의 서아시아-중앙아시아-남아시아 지부이며 호라산이란 동부, 아프가니스탄 서부, 그리고 투르크메니스탄 지역의 역사적 지명이다. 줄여서 IS-K, ISIS-K로 불리며 테러 단체들 중에서도 극단주의, 폭력적인 성향이 강하다.[3] 2024년 CNN 보도 출처 #[4] BBC 보도[5] 뉴욕타임스 보도[6] CNN 보도[7] 여기서 탈레반의 모순이 드러난다. 여태껏 반외세를 외쳤지만 정작 안정적인 집권과 정상적인 무역을 위해서는 타국들의 외교적 승인이 필요하다. 중국러시아는 탈레반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때 어찌어찌 포섭할 수 있지만 그간의 행보와 이미지를 생각해보면 탈레반이 아무리 숙여 봐야 엔나흐다처럼 파격적으로 전향하지 않는 한 인도 내지 서방 국가들이 탈레반 정권을 승인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8] 중국 입장에서 보면 미국 위상 떨어뜨리니 좋고 자기를 적대하지 않는다길래 걍 내버려둔 지역 군벌들이 정권 잡더니 지들 돈 번답시고 자국에 마약을 유통시키는 짓거리를 하는 셈이다. 심지어 그게 범죄조직이 하는 거면 그냥 때려잡으면 그만인데 얘들은 마약 생산이 하나의 주력 산업이다.[9] 사실 카불 정부나 마찬가지이다. 미국이 20년동안 지방 군벌들에 엄청난 돈을 줘서 돈맛을 알았는데 미국이 철수하니 이들은 당연히 그 많은 돈이 날아갔다. 탈레반은 그 돈을 줄 건덕지도 없고 사실상 탈레반이 카불 입성하던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처럼 지방 군벌에게 탈레반은 반목대상이었다.[10] 각각의 내용인 즉슨 개같은 탈레반+ 좆같은 ISIS 쓰레기놈들, 엿이나 많이 처먹고 사이좋게 나가 뒤져라. 2021년 아프간(AFG 2021).[11] 소련의 철수는 2021년처럼 수라장이 아니었고 병력을 빼면서도 극단파가 득세하지 못하도록 조치는 해 놓고 나갔으며 친소파였던 나지불라 정권은 소련군이 철수한 후에도 수년간 버텼다.[12] 파일:sgt. Nicole Gee.png[13] 파일:sgt. Nicole Gee 2.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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