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tis |
Volkswagen Iltis / Type 138 |
1. 개요
폭스바겐에서 독일 군용으로 제작한 군용 차량. 캐나다 봄바디어가 라이선스를 받아 제작한 차량이기도 하며 이전 작인 181형을 대체했다. 1978년부터 제작되어 1988년까지 10년 간 9,547대가 생산되었다.2. 상세
1960년대 후반부터 독일군은 여러 참여국가들의 각국 정부에서 사용 중인 소형 수송 차량을 대체할 수 있는 수륙양용 4륜 구동 차량, 일명 '유로파 지프'를 만들기 위한 협력 노력의 일환으로 차량 개발에 참여했다. 개발이 예상보다 오래 걸리자 독일군은 유로파 지프 프로젝트가 설계 연구 단계에 있는 동안 추가적으로 소형 수송 차량에 대한 필요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저렴한 비용으로 소량 생산할 수 있는 차량을 요청했다. 이 요청에 응한 폭스바겐은 퀴벨바겐의 업데이트 버전을 설계하고 이를 181형(타입 181)로 명명했다. 하지만 1979년에 이르러 유로파 지프 프로젝트는 치솟는 비용과 어려운 개발의 희생양이 되어 완전히 무너졌다. 유로파 지프를 대신할 적절한 사륜구동 차량이 필요했던 독일 정부는 여러 제조업체에 군용으로 사용할 프로토타입 차량을 설계 및 제작해 달라는 요청을 보냈다.독일군은 181형이 등장하기 이전에 DKW에서 제조한 경형 지프인 뭉가(Munga)를 수천 대 구매했지만 1968년 뭉가 생산이 종료된 후 폭스바겐은 이전의 아우토 우니온 브랜드를 단일 회사로 통합하고, 기존의 아우토 우니온을 구성했던 다양한 브랜드의 이름으로 차량을 계속 생산하는 대신 아우디라는 이름을 다시 사용해 제조사 명칭을 변경했다. 아우토 우니온 인수로 확보한 기술을 즉시 활용하고 싶었던 폭스바겐은 이 무렵에 생산이 중단된 지 몇 년이 지난 뭉가 지프를 개량하여 차기 독일 군용 차량 공급 경쟁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독일군은 낡은 2행정 기계를 교체하고 싶어 했고 그 결과 이해관계가 맞아 탄생한 프로토타입은 구형과 신형 기술을 결합해 폭스바겐의 군용 디자인과 조화를 이루었다. 폭스바겐 측 경영진은 기존 폭스바겐 181형과의 연계를 도모하고 경쟁 군용 차량들보다 우위를 점하기 위해 아우디가 아닌 폭스바겐 배지로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폭스바겐의 일티스는 독일 정부의 테스트를 무난히 통과했고, 성능은 동등하지만 더 비싼 메르세데스-벤츠의 G바겐을 제치고 정식으로 선정되었다. 1978년 여름부터 생산이 시작되어 11월에 200대가 첫 인도되었고, 1979년 말까지 약 2,000 여대가 인도되어 독일 공군에 310대, 독일 해군에 20대가 인도되었다. 생산 차량 대부분은 상단이 개방된 4도어형이었지만 구급차, 대전차, 포병 측량, 지휘 및 야전 통신 차량 등, 소량 생산분도 생산되었다.
민간용 모델도 제공되었는데 1979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된 민간용은 군용보다 실용적인 소프트 탑만 장착한 채 생산에 들어갔다. 민간용 일티스는 가격과 실용적인 특성으로 인해 181형보다 훨씬 적은 수만 판매되었다.
3. 사양
주로 MG3, FN MAG 또는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으로 무장되었으며 차량 중량은 1,300 kg대에 전장은 3,880 mm, 전고는 2,020 mm, 엔진은 1.7L 가솔린 I4, 1.6L 디젤 I4로 나뉜다. 8.2 : 1의 낮은 압축비를 가지고 있어 저 옥탄가 가솔린으로 작동 할 수 있다. 4륜 구동은 옵션으로 제공되는 디퍼렌셜 잠금장치와 마찬가지로 바닥에 있는 레버로 작동한다. 랙 앤 피니언 스티어링이 장착되어 있으며 4륜 모두 서스펜션 부품들이 동일하다. 내부는 최소한으로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만 폭스바겐 파사트에서 가져온 좌석이 의외로 편안한 편이라고 한다. 뒷좌석에는 작게 개별적으로 접을 수 있는 두 개의 등받이가 있고 이를 임시 좌석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4. 파생형
4.1. 1980년 파리-다카르 랠리 우승 차량
아우디에서 개발했으며, 데카베 뭉가의 플랫폼을 변형하여 서스펜션 부품을 새롭게 변경하고 아우디 100의 부품을 사용해 사륜구동 시스템을 만들어 75PS 1.7L 4기통 폭스바겐 엔진을 탑재했다.[1] 그해 초 프레디 코툴린스키와 게르트 뢰펠만은 아우디가 준비한 일티스를 타고 파리-다카르 랠리에서 우승했다.
4.2. 시트로엥 C-44
1970년대 후반, 프랑스 정부는 노후화된 호치키스 지프 차량을 교체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고 독일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역시 자국 자동차 제조사들에게 제안을 요청했다. 그러나 프랑스에는 적합한 차량을 보유한 회사가 없었고, 처음부터 새로 설계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제작을 제안 받은 제조업체인 메르세데스-벤츠와 협력했다. 푸조는 메르세데스와 협력하여 G바겐에 504 가솔린 또는 디젤 엔진을 장착하여 P4[2], 사비엠이 피아트 캄파뇰라 섀시에 1647cc 르노 20 엔진을 장착하여 만든 TRM500, 시트로엥은 폭스바겐 일티스 기반 차량에 75마력 1.8L 두브린(Douvrin) 엔진을 장착한 시트로엥 C-44를 만들었다.최종적으로는 푸조의 P4가 선정되어 푸조가 계약을 따냈고 다른 두 프로젝트는 폐기되었다. 이후 1981년 파리-다카르 랠리에 한 팀이 C-44를 타고 출전했는데 레이스를 완주하지는 못했다.
4.3. 봄바디어 일티스
폭스바겐은 봄바디어가 캐나다에서의 일티스 생산권을 획득한 후 1억 캐나다 달러 규모의 공장 건설을 발표했다. 폭스바겐은 처음에는 온타리오주 배리를 선택했지만, 봄바디어는 퀘벡주 발쿠르에서 차량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1983년 오타와는 생산 라인 확장을 위해 130만 캐나다 달러의 보조금과 민간용 버전의 일티스를 제조 및 판매하기 위해 봄바디어에 70만 캐나다 달러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1,900대의 일티스를 6,800만 캐나다 달러에 구매한다고 발표했다. 1984년, 봄바디어가 만든 일티스는 벨기에에 판매되어 수출되었고 1985년 오타와는 1,500만 캐나다 달러 어치의 계약을 맺어 일티스 600대를 구매했다. 봄바디어 일티스는 1986년에 생산 중단되었다.5. 운용국
현재 아르헨티나군, 그리스군, 북마케도니아 공화국 군대에서 운용 중이며, 과거 운영국으로는 벨기에군[3], 캐나다군[4], 카메룬군, 독일군, 말리군, 오만군이 있었다.6. 둘러보기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00184F><tablealign=center><tablebgcolor=#00184F> |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2px -12px" | 차급 | 생산 차량 | 단종 차량 |
<colbgcolor=#00184F> 경차 | - | 업! · 루포 · 폭스 | |
소형차 | 폴로 | 비틀/뉴 비틀/더 비틀 · 포인터 · 아메오 · 벤토ㆍ골 | |
준중형차 | 제타 · 보라 · C-트랙 · 골프 · 라만도 · 라비다 · ID.3 · 버츄스 | 1500/1600 · 브라질리아 · 코라도 · 이오스 · 시로코 · 산타나(2세대) | |
중형차 | 파사트 · 마고탄 · 아테온 | 411/412 · CC · 코르사 · 산타나(1세대) | |
준대형차 | ID.7 | - | |
대형차 | 피데온 | 페이톤 | |
스포츠카 | - | 카르만 기아 · SP2 · XL1 | |
초소형 SUV | T-크로스/타쿠아/타이군 | 크로스폴로 | |
소형 SUV | 티록 | - | |
엔트리 준중형 SUV | 타루/타오스 | - | |
준중형 SUV | 티구안 · 테이론 · ID.4 · ID.유닉스 | - | |
중형 SUV | 타벤더 | - | |
준대형 SUV | 투아렉 · 아틀라스/테라몬트 · 탈라곤 · ID.6 | - | |
쿠페형 SUV | 타이고/니부스 · 티구안 X · 테이론 X · 테라몬트 X · ID.5 | - | |
MPV | 투란 · 비로란 | 골프 플러스 · 골프 스포츠밴 · 루탄 · 수란 · 샤란 · 크로스투란 | |
픽업트럭 | 아마록 · 사베이로 | - | |
LCV | 크래프터 · 트랜스포터 · 카라벨 · ID.버즈 | LT80 · 캐디 | |
군용 차량 | - | 일티스 | }}}}}}}}} |
기타 각 국가별 군용 차량 관련 틀 | ||||||||||||||||||||||||||||||||||||||||||||||||||||||||||||||||||||||||||||||||||||||||||||||||||||||||||||||||||||||||||||||||||||||||||||||||||||||||||||||||||||||||||||||||||||||||||||||||||||||||||||||||||||||||||||||||||||||||||||||||||||||||||||||||||||||||||||||||||||||||||||||||||||||||
|
[1] 이 사륜구동 시스템의 설계는 4년 후인 1980년 오리지널 아우디 콰트로에서 데뷔한 아우디의 콰트로 시스템의 기초가 되었다.[2] 원래 이름은 VLTT.[3] 봄바디어에서 벨기에군이 주문한 2,673대를 생산했었다.[4] 기존 M151A2, M38A1 및 CJ-7 차량을 교체하기 위해 2,500대의 차량을 주문했으며 2000년대 후반에 G바겐으로 교체되었다. 이 중에서 1대는 캐나다군 오타와 기지의 전기 및 기계 엔지니어 워크숍에서 전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또 다른 한 대는 제15야전포병연대 박물관 및 기록보관소에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