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tudio Albums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191919> ||<width=25%> ||<width=25%> ||<width=25%> ||
Whitney
Houston
(1985. 02. 14.)Whitney
(1987. 06. 02.)I'm Your Baby Tonight
(1990. 11. 06.)My Love Is Your Love
(1998. 11. 17.)Just Whitney
2002. 12. 10.One Wish
(2003. 11. 18.)I Look To You
(2009. 08. 28.)
- [ Soundtrack ]
- ||<tablebgcolor=#FFFFFF,#191919><tablecolor=#000000,#E5E5E5><tablewidth=100%><width=25%> ||<width=25%> ||<width=25%> ||<width=25%> ||
The Bodyguard OST
(1992. 11. 25.)Waiting to Exhale OST
(1995. 12. 22.)The Preacher's Wife OST
(1996. 11. 26.)Sparkle OST
(2012. 07. 31.)
- [ Compilations ]
- ||<tablebgcolor=#FFFFFF,#191919><tablecolor=#000000,#E5E5E5><tablewidth=100%><width=20%> ||<width=20%> ||<width=20%> ||<width=20%> ||
Whitney: The Greatest Hits
(2000. 05. 16.)Love, Whitney
(2001. 11. 20.)The Ultimate Collection
(2007. 10. 29.)The Collection
(2010. 04. 19.)The Best of
Whitney Houston
(2012. 11. 13.)
- [ Singles ]
- ||<tablebgcolor=#FFFFFF,#191919><tablecolor=#000000,#E5E5E5><tablewidth=100%><width=10%><colbgcolor=#efeee9><-2> ↓ 1980년대 ↓ ||
1984년 Hold Me[1] 1985년 Someone for Me[A] · Thinking about You[데뷔싱글] · You Give Good Love · All at Once · Saving All My Love for You · How Will I Know 1986년 Greatest Love of All 1987년 I Wanna Dance with Somebody (Who Loves Me) · Didn't We Almost Have It All · So Emotional 1988년 Where Do Broken Hearts Go · Love Will Save the Day · One Moment in Time · I Know Him So Well 1989년 It Isn't, It Wasn't, It Ain't Never Gonna Be[4] ↓ 1990년대 ↓ 1990년 I'm Your Baby Tonight · All the Man That I Need 1991년 The Star-Spangled Banner · Miracle · My Name Is Not Susan · I Belong to You 1992년 We Didn't Know[5] · I Will Always Love You 1993년 I'm Every Woman · I Have Nothing · Run to You · Queen of the Night · Something in Common[6] 1994년 — 1995년 Exhale (Shoop Shoop) 1996년 Count on Me[7] · Why Does It Hurt So Bad · I Believe in You and Me 1997년 Step by Step · My Heart Is Calling 1998년 When You Believe[8] · Heartbreak Hotel[9] 1999년 It's Not Right but It's Okay · My Love Is Your Love · I Learned from the Best ↓ 2000년대 ↓ 2000년 If I Told You That[10] · Could I Have This Kiss Forever[11] · Same Script, Different Cast[12] · Fine 2001년 The Star-Spangled Banner[재발매] 2002년 Whatchulookinat · One of Those Days 2003년 Try It on My Own · Love That Man · One Wish (for Christmas) 2004년
- 2008년— 2009년 I Look to You · Million Dollar Bill · I Didn't Know My Own Strength[A] ↓ 사후 ↓ 2012년 Celebration · His Eye Is on the Sparrow · I Look to You[15] 2016년 Memories[16] 2019년 Higher Love · Do You Hear What I Hear?[17] 2021년 How Will I Know[18] - [ 각주 ]
- [1] Teddy Pendergrass와의 합작[A] 프로모션용 싱글[데뷔싱글] [4] Aretha Franklin과 합작[5] Stevie Wonder와의 합작[6] Bobby Brown 싱글에 피처링[7] Cece Winans와 합작[8] Mariah Carey와 합작[9] Faith Evans, Kelly Price와 합작[10] George Michael과 합작[11] Enrique Iglesias와 합작[12] Deborah Cox와 합작[재발매] [A] [15] R. Kelly와의 듀엣 버전[16] Siti Nurhaliza와 듀엣 버전[17] Pentatonix와의 듀엣 버전[18] Clean Bandit과의 듀엣 버전
<colcolor=#110f10><colbgcolor=#efeee9> 휘트니 휴스턴 Whitney Houston | |
본명 | 휘트니 엘리자베스 휴스턴[1] Whitney Elizabeth Houston |
출생 | 1963년 8월 9일 |
미국 뉴저지 주 뉴어크 | |
사망 | 2012년 2월 11일 (향년 48세)[2] |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베벌리힐스 | |
묘소 | 미국 뉴저지 주 웨스트필드 페어뷰 묘지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73cm |
직업 | 가수, 배우, 프로듀서, 모델 |
가족 | 아버지 존 러셀 휴스턴 주니어(1920~2003) 어머니 씨씨 휴스턴(1933~2024) 딸 바비 크리스티나 브라운(1993~2015) |
배우자 | 바비 브라운(1992 결혼 - 2007 이혼) |
학력 | Mount Saint Dominic Academy[3] (졸업) (- 1981) |
종교 | 개신교(침례회)[4] |
활동 | 1977년 - 2012년 |
데뷔 | 1985년 싱글 'Thinking About You' |
장르 | 팝, 소울, R&B, 가스펠, 댄스 팝 |
별명 | The Voice[5] |
레이블 | Arista, RCA |
관련 링크 | 공식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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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사이트 링크 | | | | |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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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5년에 데뷔하여 현재까지도 대중음악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위대한 아티스트이다. 또한, 마돈나와 더불어 아직 여성 가수의 저변이 넓지 않았던 1980년대에 남성 가수들에 필적할 만한 상업적 성공을 거둔 개척자적 인물로도 여겨지고 있다.
휘트니 휴스턴을 시작으로 가창력이 뛰어난 여가수를 '디바(Diva)'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며, 그녀의 별명이 자잘한 수식어 없이 짧고 간결한 The Voice인 것이 그녀의 목소리 자체가 얼마나 높은 가치와 상징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2. 약력
2.1. 데뷔 전
휘트니 휴스턴의 부모는 모두 미국 흑인이고 외가 측 조상 중에는 인디언과 네덜란드계 조상이 있으며, 검은 피부와 곱슬을 가졌기 때문에 역시 인종차별을 많이 당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존 휴스턴으로, 육군 군인이었으며 1970년대 뉴어크 시장인 켄 깁슨 집권 시절 핵심 인물로서 도시 구획 개발사업의 수장이었다고 한다. 뉴어크 시에서는 꽤나 힘 있던 인물인 셈. 어머니는 씨씨 휴스턴으로, 가스펠 가수이며 아레사 프랭클린, 엘비스 프레슬리 등등 당대 탑스타들의 백보컬을 맡았었다. 엄마를 따라서 교회에 가서 가스펠이란 음악을 배우게 된 것을 시작으로 학창 시절에도 꾸준하게 어머니께 노래를 배웠다고 한다.공식 데뷔 이전에는 어머니와 함께 클럽 무대를 서거나 백보컬을 맡았다. 당시 단독 곡을 녹음하기도 했는데 미발표 상태였다가, 2023년에 앨범《I Go to the Rock: The Gospel Music of Whitney Houston》이 발매되면서 일부가 공개되었다.[7] 휴스턴은 생전 글래디스 나이트, 로버타 플랙, 샤카 칸, 아레사 프랭클린과 대모 달린 러브, 사촌 디안과 디디 워윅, 친모 씨씨 휴스턴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8]
2.2. 데뷔 이후
데뷔 이래 상업성과 영향력 두 분야 모두를 모두 쟁취하며 음반 판매량 및 빌보드 차트 모두 20세기 여자 가수 중 TOP 5안에 드는 실적을 냈으며 이 2가지 기준을 동시에 고려한 전체 상업성으로는 여자 가수 TOP 3안에 드는 커리어를 쌓았다. 미국 대중음악사에서 아레사 프랭클린, 다이애나 로스의 뒤를 이은 대중음악 역사상 최초이자 최고의 디바로 인정받은 흑인 여성이기도 하다.하지만 쇠락기도 생각보다 일찍 찾아오게 된다. 모범적인 자기 관리로 구설수와 큰 부침 없이 활동하고 있는 셀린 디옹, 한번 침체기를 겪고 다시 재기에 성공한 머라이어 캐리와는 달리 실패한 결혼 생활, 과다한 라이브 공연,[9] 자기 관리 실패(마약 · 알코올 중독, 흡연), 여러 구설수 등으로 생각보다 빠르게 몰락했으며, 2009년 《I Look To You》로 완벽한 재기에 실패했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10] 비록 말년엔 마약 남용[11][12]과 흡연으로 목소리의 상당부분을 잃어버렸지만, 여전히 많은 세계인들은 그녀를 "The Voice"로 추억한다.
전설적인 보컬과 가수 커리어로 인해, 그의 배우 활동과 프로듀서 활동은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성공적이었다. 그는 배우로서, 5편의 영화에서 주연으로 활약했고, 그 5편의 영화 중 <보디가드>나 <Waiting to Exhale>,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의 신데렐라>(TV 영화)를 상업적으로 성공시켰다. 또한 연기력 면에서도 전반적으로 호평을 받아 NACCP Image Awards에서[13]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한편 프로듀서로서 그는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의 신데렐라>, <프린세스 다이어리>, <치타 걸스> 총 3편의 영화를 공동 제작하였고, 이 세 영화 모두를 상업적으로 성공시켰다.
2012년 2월 휘트니 휴스턴은 베벌리힐스의 호텔에서 코카인 중독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48세의 나이에 사망하였다.[14] 그녀가 사망한 이후, 다큐의 성격을 띠는 전기 영화인 <휘트니>나, <Whitney: Can I Be Me?> 등등이 제작되었다. 추가로 휘트니에 대해 알고 싶다면 해당 영화를 직접 보는 것을 권한다.
3. 성취
3.1. 음악적 능력
휘트니 휴스턴의 전성기 시절 라이브 영상[15] (1986년 2월 25일 제28회 그래미 어워드에서의 "Saving All My Love for You" 공연) |
휘트니 휴스턴의 몰아치는 성량과 기교를 볼 수 있는 영상 (1986년 1월 27일 제13회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의 "How Will I Know" 공연) [16] |
흑인 보컬로서 흑인 음악의 두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가스펠과 리듬 앤 블루스 양자를 당대에 맞게 세련되게 풀어내는 해석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라이브 영상을 보면 같은 곡을 단 한 번도 동일하게 부르지 않는다. 본래 가스펠 음악 집안 출신으로 데뷔 초기엔 백인 취향 컨템퍼러리 팝에 흑인의 목소리만 얹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19] 하지만 L.A. Reid와 Babyface 등을 위시한 여러 흑인 아티스트들의 집중 지원을 받아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발점이라 할 수 있을 3집에 이르러선 흑인 사회에서도 그 예술성을 인정받기 시작한다.
'집대성'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흑인 보컬의 모든 것을 상징하는 인물이지만, 그 가창력의 핵심이라면 역시 특유의 음색과 그를 뒷받침하는 공명감이다. 중음에서는 깊고 풍부하면서도 한 음 한 음 섬세함과 부드러움이 느껴지며, 고음을 올라갈 때 '청량'이라는 말로 부족할 정도로 맑게 울리는 휘트니 휴스턴의 음색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의 감동을 준다.[20] 뿐만 아니라, 휘트니의 음색을 들어보면 막힘없이 쭉 뻗으면서도 깊은 배음이 울려서 아주 두텁고 단단한 공명감이 곡 전체에 울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니 아무리 노래를 잘 하는 보컬이 휘트니의 노래를 불러도 휘트니의 공명감보다 약하기 때문에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것. 쉽게 말하면 휘트니의 파워or목소리의 굵직한 느낌이 너무 강해 특유의 파워풀함이 덜한 것이다.
본래 데뷔했을 때엔 기존 흑인 알토들이 공유하던 비성으로 집중된 두성의 공명감을 사용했고, 이때에도 이미 따라올 사람이 없었지만 그 후로는 점점 더 공명감을 늘려갔고 벨팅, 특히 인 골라 테크닉까지 결합하기 시작했다. 즉 야구의 투수가 팔 근육을 뒤틀어 인간이 일반적으로 낼 수 없는 시속 140km의 공을 던지듯, 음을 만드는 조음부의 근육을 한계 이상으로 확장시켜 거대하게 울리는 소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휘트니 휴스턴의 위대함은 그 이후에 드러난다. 이런 식으로 조음부 근육을 확장시켜 깊은 소리를 만들어내면 당연히 벨팅에서 그렇듯이 섬세한 리듬감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휘트니는 그 한계까지 울리는 공명감을 가진 소리로 완벽한 발음과 그루브를 만들어 냈다. 두성은 아름다운 음색과 뛰어난 공명감을 가지고 있지만 발음이 부정확하고 파워가 딸리며, 믹스보이스는 성구 변환이 자유롭고 그루브를 타는 데 좋지만 얇고 약한 소리다. 벨팅은 발음을 정확히 하기 좋고 파워 하나만은 최강이지만 성대 근육이 긴장해서 리듬을 타기 어렵다. 휘트니 휴스턴은 그 모두를 섞어버렸고 그 모든 소리를 완벽히 컨트롤 해내었다. 그 대가는 혹독하게 치러야 했지만.[21]
멜리스마(melisma) 기교를 본격적으로 팝에 도입한 인물로, "Master of Melisma"로 불리기도 한다.# 멜리스마는 한 음절을 다양한 음으로 쪼개 부르는 기교를 말하는데, 멀리 갈 것도 없이 'I Will Always Love You'의 첫 소절이 대표적인 예. 'If I'에서 I라는, 한 음절에 불과한 가사를 8개의 음으로 쪼개서 부르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휘트니 휴스턴이 멜리스마를 최초로 사용한 아티스트인 것은 아니며 스티비 원더를 비롯한 흑인 아티스트들이 제한적으로 사용한 것을 휘트니가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 이후 멜리스마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기교의 머라이어 캐리가 등장하며 멜리스마는 기본적인 가창 기교로 자리 잡게 된다. 2010년대에 들어서야 개나소나 다 하는 멜리스마지만 당시에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휘트니 휴스턴의 고음역대를 알 수 있는 라이브 (1986년 뉴욕에서의 "I'm Changing" 공연) |
결론부터 말하자면 "The Voice"라 불리는 만큼, 팝음악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그녀를 능가하는 가창력을 지닌 가수는 사실상 거의 없다. 세계 최고의 여성 보컬리스트 중 한 명으로 불리는 만큼 발성으로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기량을 보여주는 가수이다.
저음 (Lows): 저음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억지로 후두를 내리지 않고 소리를 잘 투사하는 것인데, 소리의 투사란 일상에서 말하는 것처럼 분명하고(clearly) 강력하게(powerfully) 음을 내는 힘이다. 소리를 충분하게 투사하지 않는다면 공기가 과해지므로 충분히 투사된 저음을 내는 게 중요한 것이다. 휘트니는 전성기 기준으로 1옥타브 솔(G3)을 기술적으로 문제없이 완전히 투사하여(projected) 냈으며 '91년 Welcome Home Heroes 공연에서는 비브라토를 하며 잘 투사된 1옥타브 파(F#3)를 내기도 했다.[25] 92년 임신과 유산을 거쳐 음역이 낮아지면서,《The Bodyguard OST》시기에는 1옥타브 파(F3)까지 지지할 수 있었는데 주로 "I Will Always Love You" 마지막 부분에서 비브라토를 하며 분명한 F3를 선보였다. 자료1 보통 소프라노의 음역이 일반적으로 A3 혹은 Bb3 정도까지라는 점, 휘트니가 G3 이상의 음에서 꾸준히 비브라토를 하는 등 좋은 컨트롤을 보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휘트니의 저음역은 준수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휘트니의 거의 유일한 보컬적 약점으로 평가받는 중. [26] 이후 휘트니는 전성기 이후 나이를 먹고 음역이 낮아져, Eb3처럼 매우 낮은 음도 훌륭하게 내는 등, 말년에는 뛰어난 저음을 개발하게 되었다.
중고음역 벨트 (Mid-Belt): 휘트니의 보컬적 강점 중 하나는 2옥타브 솔(G4)에서 3옥타브 레(D5)에 이르는 중고음, 중단 벨트(Mid-Belt)인데, 여기서 휘트니는 특유의 강력한 흉성 발달(Chest Development)과 오버드라이브(Overdrive) 모드를 활용함으로써 훨씬 더 깊이 있고 굵고 단단하며 꽉 찬 소리를 낼 수 있다.[27] 오버드라이브 모드는 CVT(Complete Vocal Technique)기준 4가지 발성 방식(Vocal Mode)의 일종으로 음을 '메탈'(Metal)로 가득 채워 소리를 내는 방식인데, 목소리 내에 '메탈'의 양이 많을수록 혹은 '메탈릭 톤'(Metalic Tone)이 더 분명할수록 더 단단하고, 직접적이며 큰 소리가 난다. 참조 휘트니는 보컬적 전성기[28] 동안 D5와 Eb5까지 이 발성 방식을 활용하였고, 그 방식이 그녀의 훌륭한 흉성 발달과 함께 어우러지며 굉장한 굵기와 크기의 소리를 중단 벨트에서 낼 수 있던 것이다. 특히 중단 벨트 음역대에서도 I Will Always Love You의 Bb4와 B4, 그리고 Greatest Love of All의 C#5는 그녀의 Money Note라고[29] 꼽힐 정도이며, 그 중에서도 1988년 웸블리 아레나 "Greatest Love of All" 공연의 C#5는[30] 최고로 여겨진다.[31] 종합적으로, 이 음역대 전반에 걸친 강력한 목소리 발달 및 오버드라이브 모드 사용 뿐만 아니라, (1)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말까지 수많은 라이브 퍼포먼스에도 그 기량을 유지하는 일관성을 보여왔다는 점, (2) 2옥타브 레(D4) 와 같이 매우 낮은 음도 벨트할 수 있다는 점, (3) 비브라토, 그로울(Growl)와 같은 보컬 효과(Vocal Effect)에 대한 능수능란한 통제, (4) 흠 없는 호흡 관리 등까지도 고려할 때, 휘트니는 의문의 여지 없이 이 음역에서 완벽한 숙련도를 자랑하는 보컬리스트 중 하나이다. 자료2 자료4
고음역 벨트 (Upper-Belt): 3옥타브 미b(Eb5) 이상의 음역으로서 휘트니의 또 다른 강점이지만 종종 과소평가되는 부분이다.[32] 그러나 이 음역대 Eb5는 휘트니의 Money Note로 꼽힌다는 점에서 휘트니가 고음역 벨트에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생각은 사실이 아님이 드러난다. 휘트니는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말까지 Eb5 음에서 놀라운 일관성을 보여주었으며 특히 이 공연처럼[33] 불필요한 긴장이나 막힘이 전혀 없이 완벽한 상태의 Eb5를 수월하게 해냈다.[34] 게다가 (1) 3옥타브 파#(F#5)도 무리 없이 지지할 수 있었으며 더욱이 F#5를 적절한 비브라토와 함께 음을 유지(sustain)할 수 있었다는 점, (2) 때때로[35] G5까지 지지를 하고 (3) G#5까지 흉성을 가져갈 수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휘트니는 고음역 벨트에도 상당한 강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자료1 자료2 자료3 셀린의 경우 F5 이상의 음으로 갈 때는 믹싱(Mixing)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특히 더 가벼운 접근법인 헤디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고, 머라이어의 경우도 믹스보이스 창법을 적극 사용했던 '95~'96년에야 F#5와 G5 음을 낼 수 있었는데, 이에 반해 휘트니는 믹싱을 하기 보다도 E5 이상으로 흉성을 끌어올리기로 선택하였고 훌륭히 그 일을 수행해냈다.[36] 때문에 일반적인 믹싱보다 휘트니의 고음역 벨트는 덜 자유로운 것처럼 들린다.[37] 이렇게 믹싱보다 "무겁고" 숙달하기 힘든, 흉성 중심의 발성을 이어가면서도 훌륭한 컨트롤로 전성기 6-7년간 꾸준히 고음역 벨트를 할 수 있었다.[38]
두성 (Head Voice): 휘트니 휴스턴의 가장 큰 보컬적 강점 중 하나이다. 4옥타브 도(C6)까지 무리 없이 지지할 수 있으며 기량이 가장 발전한 '89~'91년에 이르러서는 4옥타브 도#(C#6)도 지지할 수 있었다. 휘트니는 흉성 벨트에 관여하는 조음부 근육만큼이나 두성에 관여하는 조음부 근육이 굉장히 발달해 있는데,[39] 그럼에도 흉성보다 더 뛰어난 통제력을 보일 정도의 완벽한 숙련도를 자랑한다.[40] 전체 범위, 특히 C6 아래에서 두성의 음질과 컨트롤이 굉장히 뛰어나며, 그래서 비브라토(vibrato) 넣기, 음량 조절, 런/리프 구사하기, 음을 지속하기(sustain), 흉성→두성→흉성으로 성구전환하기 등.. 쉽게 말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다. 심지어 이 컨트롤을 전부 한 번에 해낼 정도이다! 기본적으로 (1) 흉성→두성 성구전환 직후 3옥타브 시를(B5) 비브라토와 함께 지속할(sustain) 수 있고, (2) 지지된 C#6를 포함하여 4옥타브 대에서 빠르게 내려가는 보컬 런을 구사할 수 있으며, (3) 마이크와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도 완벽한 포르티시모(fortissimo) G5로 오페라를 소화할 수 있었다.[41] 자료1[42] 자료2 자료3 데/크레센도, Messa di voce는[43] 기본이고 (4) 무려 Dal Niente를[44] 할 수 있다. 자료4 가장 발달된 음역이었던 만큼 휘트니는 두성에서 정말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2010년대 그녀가 《I Look to You》앨범으로 콘서트에 다닐 때에도 흉성 벨팅과 달리 그녀의 두성, 특히 D5~G5는 그 퀄리티를 거의 잃지 않고 유지되었다. 자료
보컬 민첩성 (Agility): 음과 음 사이를 빠르고 정확하고 매끄럽게 오가는 능력을 말하며, 얼마나 보컬 런/리프(Vocal Run/Riff)를 뛰어나게 수행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휘트니는 상당히 복잡하고 빠르며 완성도 높은 리프를 수행하면서도 음정이 굉장히 정확하다. 기본적으로 (1) 1초 미만의 짧은 시간동안[45] 7개의 음을 내려가는 굉장히 빠른 런을 구사할 수 있으며, (2) 복잡한 스타카토와 함께 최고 B5의 음에서 빠르게 두성으로 내려가는 보컬 런, (3) 상당한 흉성을 동반한 벨팅을 구사하면서 최고 G#5 음을 포함하는 복잡한 리프를 수행할 수 있었다. 자료1 자료2 자료3 보통 발달된 흉성을 가져서 힘 있고 강력한(Powerful) 목소리를 가지면 민첩(Agile)하지 않고, 반대로 민첩한 목소리를 가지면 흉성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 강력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휘트니는 굉장히 발달한 흉성을 가져 매우 강력하면서도 매우 민첩한 목소리를 가졌다.[46][47] 휘트니의 보컬 민첩성은 1990년대 초반까지도 매우 훌륭한 수준이었으나, 그 전까지는 보컬 런/리프를 잘 수행하지 않다가 《The Bodyguard OST》 시기에 이르러서야 휘트니는 본격적으로 보컬 런/리프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이르러서 휘트니는 데뷔 이후 가장 빈번하게 보컬 런/리프를 구사하는데, 흉성-두성 간의 보이지 않는 매끄러운 성구전환(Transition)을 하면서도 매우 빠른 보컬 런을[48] 구사하는 1996년 MTV 영화 시상식 공연이 대표적 예시이다. 2003년 발매된《One Wish: The Holiday Album》에 수록된 음원 O come O come Emmanuel에서는 약 4.5초 이내에 37개 음을 이동하면서[49] 휘트니 자신의 리프로서는 가장 빠른 보컬 리프를 선보인다. 자료 경력 후반기로 갈수록 더 복잡한 보컬 런/리프를 더 잦게 사용하는 것은 흡연에 따라 호흡 관리 능력이 감퇴하면서 휘트니가 더 이상 음을 한 호흡에 오래 유지할 수 없었던 것과도 관련이 있다.
셈여림 (Dynamics): 소리의 음량(세기)를 조절하는 보컬 운영. 예를 들어, 피아니시모, 포르티시모 등등. 휘트니 휴스턴은 이 분야에서도 최고 수준의 기량을 보여준다. 참고로, 의외로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데, 셈여림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노래를 부른다면 호흡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음정이 불안해지고 체력도 빨리 달게 되는 원인이 된다. 그 예시로, 이 링크를 보면 한 학생이 휘트니 휴스턴의 I Have Nothing을 커버했는데 피아노로 불러야할 파트를 포르테로 불러서 처음부터 끝까지 강하게 부르다보니 클라이맥스로 갈때 음정이 불안해졌다.#
정리하자면 휘트니 휴스턴은 안정적인 저음과 굉장한 중단 벨트와 상단 벨트에도 강점을 보이며, 두성, 보컬 민첩성, 셈여림까지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는 디바이다.
전성기 기준[50]으로 휘트니는 저음은 1옥타브 솔(G3)까지, 흉성은 3옥타브 파#(F#5), 두성도 4옥타브 도(C6)까지 지지를 할 수 있었다. 앨범 음원이든[51] 라이브 공연에서든[52] 보컬 기량이 최절정에 달했던 기간인 1985년 ~ 1991년에는 상당한 정도의 흉성을 동반하면서 Upper Register라 불리는 E5 이상의 음에서 벨팅으로 훌륭한 보컬 운영을 보여준 바 있다.
80년대 중후반에는 특히 You Give Good Love, I'm Changing 과 같은 곡에서, 90년대 초반에는 《I'm Your Baby Tonight》시절 다수의 라이브에서 완전히 지지되고 불필요한 긴장이 없는 F#5와 G5를 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53] 또한 휘트니는 C#6음을 5-6초간 유지하고 C6 음을 큰 호흡 없이 간단히 낼 수 있었으며, 비브라토를 동반한 B5를 두성으로 내는 등 두성에서도 훌륭한 보컬 기량을 보여주었다.
데뷔 이후 휘트니의 보컬은 90년대 초까지 꾸준히 발달하면서도 음색은 어두워졌는데, 특히 《I'm Your Baby Tonight》활동 전후인 '89-'91년에 그 정점을 찍었다. 이때 휘트니는 저음은 F#3까지, 흉성은 G5까지, 두성은 C#6까지 지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91년 <I'm Your Baby Tonight World Tour>에서 목 건강 이상을 겪고, 1992년 임신과 유산을 겪으면서 음역이 낮아지는데, 이것은 AMA와 무하마드 알리 헌정 공연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이후 《The Bodyguard OST》활동기 시절 기량이 하락하면서, 실제 공연에서 F5 이상의 음은 잘 내지 않았다.[54] 이 시기에는 저음은 1옥타브 파(F3)까지 지지할 수 있었지만, 흉성은 3옥타브 파(F5), 두성은 3옥타브 시(B5)까지를 지지할 수 있게 되면서 상단 벨트(Upper Belt)와 4옥타브에 대한 용이성이 줄었다. 이 시기 이후로는 보컬 역량이 점차적으로 악화하면서 음역이 축소되고 음색도 매우 짙어지게 된다.
휘트니는 심화되는 마약, 담배, 알코올 중독과 과다한 라이브 공연, 지나치게 위험한 보컬 활용 등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목소리를 잃어갔고 말년엔 손상된 소프라노가 되었다. 즉 전성기 시절엔 어린 나이에서 오는 피지컬과 신에게 받은 재능으로 음역대를 벗어난 고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했지만, 피지컬이 떨어진 말년에는 과거의 고음을 구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대중들은 전성기 당시 휘트니의 하늘을 찌를 듯한 파워와 고음을 기억하지만, 경력 후반기의 앨범과 싱글에서는 휘트니의 깊은 음색과 편안한 그루브를 들을 수 있다.
참고로, 휘트니와 비견되는 3대 디바도 성종으로는 소프라노였는데, 머라이어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셀린 역시 소프라노이다. 다만 이들 모두 꾀꼬리 같은 소프라노 목소리로 곱게 올라가는 것이 아닌, 고음에 강렬한 힘과 공명감을 더해 전설적인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도록 재능을 타고난 보컬이었던 것이다.[55]
3.2. 상업성
1994년 휘트니 휴스턴은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한 번에 8개의 상을 수상했다. |
여성 가수의 상업성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가수로 평가받는다.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여자 가수이자, 가장 많이 팔린 여가수 앨범[56][57], 싱글[58]을 모두 보유한 아티스트. 즉 압도적인 가창력을 지닌 가수가 얼마나 상업적으로 대단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첫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휘트니의 데뷔 전에도 노래를 잘하는 가수는 많았지만, 휘트니 휴스턴이 거둔 상업적 성공만큼을 이룬 여자 가수는 휘트니 휴스턴 이전에는 아예 없었다. 모든 가수를 놓고 봐도 휘트니 휴스턴이 거둔 상업적 성취 그 이상을 거둔 가수는 열 손가락 안에 꼽는다. 또한 휘트니는 흑인 가수 중 2번째로 큰 성공을 거둔 가수로 인정받는다.[59]
조금 더 자세히 그의 상업적 성취를 들여다보자. 먼저 총 판매량은 영어판 위키피디아 기준 2억 장,[60] 여러 뉴스에 따르면 1억 7000만 장 ~ 2억 장 정도이다. 이는 역대 여자 가수 판매량 TOP 4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음반을 가장 잘 팔던 전성기 시절[61]에 정규 음반 4장, OST 2장, 컴필레이션 1장 총 7장의 음반만이 발매되었음을 고려하면 이는 매우 높은 수치이다. 비공식 기록이긴 하지만, Chartmaster 기준으로 여자 솔로 가수 역대 4위이다. Chartmaster 기준 실물 판매량을[62][63] 모두 합산하면, 1위가 마돈나(2억 8,600만 장), 2위가 셀린 디옹(2억 1,600만 장), 3위가 머라이어 캐리(1억 9,600만 장), 4위가 휘트니 휴스턴(1억 8,000만 장)이다.
이외에도 2,0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 음반 3장, 1,000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한 음반 6장을 배출했고, 빌보드 200 1위 음반도 총 4장을 배출해냈다. 여성 아티스트 최초로 빌보드 200에서 1위로 데뷔하기도 했다. 또한 2개의 음반을 빌보드 200 연말차트 1위에 올려 놓음으로써 여성 아티스트 최초로 빌보드 200 연말차트 1위를 2번 차지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휘트니는 한편 세 개의 음반이 다이아몬드 인증을 받은 최초의 흑인 가수이다.
판매량으로 보았을 때, 휘트니 휴스턴의 싱글은 큰 인기를 얻었다. 전세계적인 인기 싱글을 찍어내는 수준이었는데, 100만 장 이상 판매된 싱글을 총 22개 만들어냈으며, 200만 장 이상 판매된 싱글을 총 4개, 300만 장 이상 판매된 싱글을 총 2개 만들어냈다. 비공식 기록이긴 하지만 Mediatraffic 기준으로 총 2개의 연말차트 1위 곡을 만들어냈다.
특히 경력 후반기 《The Preacher's Wife: OST》나 《My Love Is Your Love》 활동 시기 음반 판매량이 하락세를 겪던 것과 달리, 싱글 판매량은 여전한 화력을 자랑했다. 《The Preacher's Wife: OST》음반에서는 총 2개의 100만 장 이상 판매된 싱글을 배출했고, 특히《My Love Is Your Love》음반에서는 5개 중 4개의 싱글이 모두 13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거두는 등 연이은 싱글 히트를 기록했으며 총 744만 장의 놀라운 싱글 판매량을 달성했다. 이때 발매된 타이틀 싱글 "My Love Is Your Love" 역시 총 264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여 휘트니 휴스턴의 3번째로 많이 팔린 싱글이 되었다. 비공식 기록이긴 하지만, Chartmaster에 따르면 마돈나에 이어 실물 싱글을 2번째로 많이 판 여성 아티스트이다. 3대 디바 중에선 싱글 판매에서 가장 성공했던 셈. 여성 아티스트의 실물 싱글 판매량 순위는 1위 마돈나(7,521만 장), 2위 휘트니 휴스턴(4,952만 장), 3위 셰어(4,622만 장), 4위 자넷 잭슨(4,064만 장) 순이다.[64]
덧붙여, 미국 내에서는 2004년까지 총 약 1,650만 장의 실물 싱글 판매고를 올려 '역사상 가장 많은 실물 싱글을 판매한 여성 가수'의 타이틀을 갖고 있으며, 영국 내에서는 총 약 950만 장의 실물 싱글 판매고를 올려 역대 가장 많은 실물 싱글을 판매한 여성 가수 Top5안에 들었다.자료
커리어 내내 휘트니 휴스턴은 총 11개의 빌보드 핫 100 1위 곡을 10년여에 걸쳐 만들어냈으며,[65] 23개의 빌보드 Top 10 곡을 만들어냈다. '88년 ~ '96년까지는 가장 많은 빌보드 핫 100 1위 곡을 가진 여자 가수였다.[66][67] 빌보드 연말 차트에서 연말차트 1위 1곡, Top5 3곡, Top10 5곡을[68] 배출해냈으며 연속으로 발매된 7개의 싱글이 모두 1위를 차지하는 대기록을 쓰기도 했다.[69] 명실상부한 그 시대의 '차트폭격기'라고 할 정도. UK차트에서도 4개의 1위 곡을 만들어냈으며 연말차트 Top3 2곡을 배출해냈다.[70]
휘트니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여성 아티스트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으며,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상을 받은 아티스트이다.[71]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22개의 상을 수상하였고 그래미 어워드도 6개에 그 중 제너럴 필드에 해당하는 상인 Album of the Year, Record of the Year도 수상함으로써 상업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성취한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3.3. 영향력
2020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정 기념 영상 |
또한 컨템퍼러리 R&B라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장르의 시초이기도 하다. 휘트니 휴스턴은 어린 시절부터 다져온 가스펠과 소울을 결합한 흑인 창법으로 당시 음악계에 부재했던, 그러나 대중들이 갈망했던 어덜트 컨템퍼러리 장르의 음악을 소화해냈다. 이는 당시 팝계에 큰 반향을 불러왔으며 1집 《Whitney Houston》과 2집 《Whitney》의 성공을 이끌었고, 종국엔 컨템퍼러리 R&B 장르를 탄생시켰다. # 그의 대표곡 "I Will Always Love You"는 초창기 컨템퍼러리 R&B의 전성기를 견인했던 곡이며, 이 장르의 역사를 짚을 때 빠지지 않고 꼽히는 상징적인 곡들 중 하나이다. 또한 이 장르를 상징하는 또 다른 인물 머라이어 캐리의 데뷔에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며,[72] 그와 함께 90년대 대중음악계에서 전성기를 누렸다. 이런 이유로 휘트니 휴스턴은 컨템퍼러리 R&B의 시조로 여겨진다.
위에서 보듯이, 휘트니 휴스턴은 컨템퍼러리 R&B 장르를 탄생시킴으로써 R&B 장르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에 다수의 음악 평론가들은 휘트니의 R&B 장르에 대한 영향력을 인정하고 있다. 휘트니는 2014년 "알앤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빌보드 선정 가장 위대한 R&B 아티스트 9위, Essence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R&B 아티스트 6위 등에 선정되었다.
대중음악 최초의 디바답게, 휘트니의 등장 이후 노래를 부르고 싶어하는 거의 모든 가수들은[73] 그의 영향력 하에 있었는데 1990년대 트로이카로 불렸던 셀린 디옹, 머라이어 캐리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이러한 경력으로 인해 가창력으로는 항상 빠지지 않고 회자되는데, 'Queen of Soul'로 불리는 아레사 프랭클린의 뒤를 잇거나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며, 전세계적으로 'The Vocal Trinity'로 꼽힌다. '가창력의 휘트니 휴스턴, 기교의 머라이어 캐리, 음색의 셀린 디옹'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 특히 머라이어 캐리와는 매체들의 기사 소재 발굴 때문에 라이벌로 표현되기도 했다.[74][75]
그가 특히 큰 영향을 미친 아티스트들은 바로 흑인 여성 가수들이다. 휘트니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아직 사회 곳곳에 남아있던 1980년대에, 흑인 여성이라는 매우 불리한 정체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음악계에서 백인 남성들 뺨치는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이로써 기존 음악계에 존재하던 흑인, 여성을 향한 유리천장을 깨부숨으로써, 후대 흑인/여성 가수들이 대중음악계에 진출 및 성공할 수 있는 기틀을 다져놓았다. 실제로, 휘트니 휴스턴이 1집 《Whitney Houston》으로 성공을 거둔 후부터 음악계에 다양한 흑인 여자 가수들이 진출하여 성공할 수 있었다. 대표적 예시가 자넷 잭슨[76], 아니타 베이커, 머라이어 캐리,[77] 메리 제이 블라이즈, 토니 브랙스턴, TLC, 브랜디, 모니카,[78] 비욘세, 앨리샤 키스, 리아나, 제니퍼 허드슨 등등. 그 중에서도 가창력에 비중이 있는 가수에게는 더욱 더 큰 영향을 끼쳤다.
마이클 잭슨, 프린스, 조지 마이클과 같이 큰 인기를 끌던 여성 가수들이 흔치 않았던 1980년대에 휘트니 휴스턴은 데뷔와 동시에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싱글과 앨범을 발매하는 족족 성공시켰다.[79][80] 그 결과 마돈나와 함께 80년대를 대표하는 여자 가수가 되었고, 1980년대에 남자 가수들에 필적할 만한 인기를 얻었던 둘 뿐인 여성 가수로서 남게 되었다.[81] 1990년대에는 스스로가 주도했던 R&B 열풍과 맞물려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가창력이 좀 더 크게 조명받으며 팝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휘트니가 90년대 음악계에 미친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최초의 디바의 전형을 제시하고 컨템퍼러리 R&B 장르의 탄생에 직간접적 영향을 끼쳤으며, 흑인/여성 가수들의 대중음악계 진출길을 닦아놓음으로써 1990년대 음악계의 전개를 주도했기 때문이다.[82][83][84]
1988년 뉴욕 자선 행사에서 마이클 잭슨과 |
휘트니 휴스턴 - The Star Spangled Banner |
91년 2월 열린 제25회 슈퍼볼에서 제창한 이 국가는 휘트니 이후 대형 이벤트에서 불리는 국가 스타일 그 자체를 바꿔 놓았다. 이 버전을 위해 박자는 기존의 3/4 박자에서 4/4 박자로 편곡해 한음 한음 곱씹어 부를 수 있게 바뀌었고, 대대적인 가스펠 풍 편곡이 가미됐으며 하이라이트 부분인 "free" 부분에서 가성 애드립을 처음으로 선보인 곡이다. 이 노래가 나온 뒤부터 대형 행사에 등장한 미국 국가에서 이 애드립이 빠진 적이 거의 없다. 곡이 대중에게 인식되는 방식 자체를 바꿔버린 것이다.[86]
립싱크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었는데, 공식 발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변인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립싱크였음을 인정한 바 있다.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라이브 느낌을 낸 '사전 녹음'. 사실 음향 장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경기장에서, 그것도 국가 제창과 같은 중대한 행사의 경우 립싱크를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커다란 흠이라고 할 것은 못 된다. 다만, 1992년 당시는 밀리 바닐리의 립싱크 파동 직후였기 때문에 립싱크에 대한 미국 여론이 살기등등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밀리 바닐리야 다른 보컬이 대리녹음한 앨범으로 립싱크만 한 것이라 크게 문제가 되었지만, 휘트니 휴스턴의 경우는 어쨋든간에 사전 녹음이라고 해도 본인이 직접 노래를 불러서 녹음한 것이라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고 이후 실력이 모자란다는 설은 공연을 통해 어불성설이란 것을 직접 증명해 보였다.
역대 슈퍼볼 국가를 제창하면서 츄리닝에 머리띠만을 두르고 나온 유일한 사람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link
원래 미국 국가는 가사에 서린 인종 차별과 노예 제도의 이미지 때문에 흑인에게 꺼려지는 노래였다. 그런데 가장 보배와도 같은 흑인 디바가 미국을 대표해 이 곡을 부름으로써 흑인이 국가를 부르는게 자랑스러워지는 효과를 낸 것이다.
휘트니 휴스턴의 1980년대 뮤비속에서의 모습 |
다만 본인이 적극적으로 인권 운동에 나서지 않았다는 의견과 달리, 휘트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반(反) 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의 열성적인 지지자였다. 가수 데뷔 전 모델 활동 시기에도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펼치던 남아공과 거래하는 에이전시와는 계약을 하지 않았다. 1988년 6월 11일, Moment of Truth World Tour 유럽 일정 중에는 다른 음악인들과 함께 당시 투옥 중이었던 넬슨 만델라의 70회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자선 콘서트에 참여했다. 72,000명 이상의 관중들이 입장한 이 콘서트는 전 세계에서 10억명 이상의 사람들이 시청했고,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인식을 일깨우며 100만 달러 이상이 모금된 거대한 행사였다. 그 해 8월에는 뉴옥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흑인연합장학재단(United Negro College Fund)을 위한 콘서트를 열어 25만 달러를 기부했다.
1994년 10월, 휴스턴은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된 남아공에서 대통령이 된 넬슨 만델라의 미국 방문을 기념하는 만찬에 참석하여 "Love's in Need of Love Today", "People", "Greatest Love of All" 과 같은 곡들을 불렀다. 또한 1994년 11월, 넬슨 만델라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 선출을 기념하기 위해 남아공의 세 개 도시에서 Whitney - The Concert for a New South Africa로 이름 붙여진 세 번의 콘서트를 개최하며 2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휴스턴은 만델라의 선출 이후 새롭게 통합된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방문한 첫 번째 주요 뮤지션이었고, 이 공연은 만델라 취임식 이후 가장 크게 펼쳐진 미디어 행사로 간주되었다. 세 번의 공연 가운데 11월 12일 요하네스버그에서 치러진 콘서트는 HBO를 통해 생중계되었고, 공연 수익은 모두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자선 활동을 위해 기부되었다.
4. 커리어
자세한 내용은 휘트니 휴스턴/커리어 문서 참고하십시오.4.1. 리메이크
상업적으로 성공한 휘트니 휴스턴의 싱글들 중에는 다른 아티스트의 곡을 편곡한 리메이크 곡들이 많다.[87]휘트니는 총 8개의 리메이크 싱글을 각각 100만 장 이상 팔아치웠으며 이 중 4개나 되는 리메이크 곡을 빌보드 핫 100 1위에 올리는 기록을 세웠다. 대표적으로, "I Will Always Love You"는 돌리 파튼이 불렀던 컨트리 장르의 곡을 데이비드 포스터가 컨템퍼러리 R&B 곡으로 프로듀싱한 리메이크 곡이다. 빌보드에서 3주 1위를 기록하며 휘트니의 대표곡 중 하나인 "Greatest Love of All"도, 1977년 조지 벤슨의 "The Greatest Love of All"을 편곡한 것이었다. 1991년 2주 1위를 기록한 "All the Man That I Need" 역시 린다 클리포드의 1981년 발매된 원곡을 편곡한 것이다.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휘트니 최초의 빌보드 1위곡으로써 그녀를 메인스트림에 본격 등장시킨 "Saving All My Love for You"도 리메이크 곡이다. 원래는 가수 Marilyn McCoo와 Billy Davis Jr.가 1978년 발매된 Marilyn & Billy 앨범을 위해 녹음한 곡이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샤카 칸의 원곡을 편곡했던 "I'm Every Woman", The Four Tops의 1983년 발매된 원곡을 편곡했던 "I Believe in You and Me" 등이 있다. 이들 역시 각각 빌보드 최고 순위 4위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100만 장 이상 팔리는 등 꽤 큰 규모의 히트를 기록했다. "Step by Step"도 애니 레녹스 녹음 버전의 리메이크인데, 빌보드 최고 순위는 15위로 다소 낮지만 전세계적으로는 130만 장 가까이 팔리면서 역시 히트를 기록했다.
그리고 휘트니 휴스턴의 예술성을 상징하는 "The Star-Spangled Banner"도 바로 리메이크 싱글에 속한다. 너무나도 유명하고 상징적인 국가제창이라서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중대박급 규모의 히트 싱글 뺨치는 성공을 거두었다. RIAA 1×플래티넘 인증을 받았고 빌보드 최고 순위 6위를 기록하여 빌보드 Top10에 진입까지 했다! 현재까지도 "I Will Always Love You"와 함께 두고두고 회자되는 휘트니의 대표 리메이크 곡이다.
이외에도 휘트니 휴스턴 음반의 곳곳에 리메이크 곡들을 찾아볼 수 있다.《Whitney》의 "I Know Him So Well",[88] 《I'm Your Baby Tonight》의 "Higher Love",[89] 《My Love Is Your Love》의 "I Was Made to Love Him"[90] 등...
4.2. 과작
휘트니 휴스턴의 음악 커리어의 큰 특징 중 하나는 바로 과작을 했다는 것이다.마이클 잭슨과 유사하게, 휘트니 휴스턴은 활동기 사이사이에 긴 휴식기를 취했다. 그래서 전성기인 90년대에 고작 정규 음반 2장만을 발매했을 정도. OST까지 합쳐도 4장이다. 동시대에 전성기를 맞았던 머라이어 캐리가 90년대에 총 8개 음반을, 셀린 디옹이 총 7개 음반을 발매했던 것을[91] 생각하면 아주 적은 수준이다.[92]
그나마 90년대에 발매한 2개의 정규 음반 중 1개인 《My Love Is Your Love》는 원래 베스트 앨범을 내려다가 작업한 수록곡들 중 좋은 곡들이 많아 정규 음반으로 선회했었다고.
2012년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휘트니 휴스턴은 정규 음반 7장, OST 2장, 컴필레이션 5장으로 총 14장의 음반을 발매했다. 같은 시기 마돈나가 정규 음반만 12장, 머라이어 캐리는 정규 음반만 13장, 한참 후배인 브리트니 스피어스도 정규 음반만 7장을 냈다는 점을 생각하면 휘트니의 음반 수가 훨씬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다 보니 발매된 싱글 자체도 적은 상황이다. 휘트니는 사후 발매된 싱글을 제하면, 공식 싱글 50개 + 홍보용 싱글 3개 총 53개의 싱글을 발매했는데, 이는 동시기에 활동한 다른 가수들이 발매한 싱글 수의 절반도 안 되는 정도이다.
무엇보다도 아쉬운 점은 <보디가드> 시기 영화, OST 음반, 삽입곡의 상업적 대성공 이후 활동을 근 6년 간 쉬었다는 점. 이때 휘트니는 가수로서 이룰 수 있는 커리어나 성공, 명예를 다 이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음반을 내지 않고 쉬는 바람에 <보디가드>로 치솟은 인기가 금방 식을 수 밖에 없었다.
5. 기록
-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 (2020)
- R&B 명예의 전당 헌액 (2014)
- 빌보드 올타임 아티스트 11위
- 빌보드 올타임 여성 아티스트 5위
- 빌보드 핫 100 아티스트 9위
- 빌보드 200 아티스트 15위
- 빌보드 선정 올타임 위대한 R&B 가수 9위
- 빌보드 선정 1990년대 아티스트 8위
- CoS 선정 100대 가수 6위
- VH1 선정 아티스트 60위
- 롤링 스톤 선정 가장 위대한 보컬리스트 2위 (2023년)
- 롤링 스톤 선정 가장 위대한 보컬리스트 34위 (2008년)
- MTV 선정 위대한 팝 디바 1위
- AMA 인터내셔널 아티스트상 수상[93]
- BBMA 밀레니엄 어워즈 수상[94]
- BET 어워드 평생공로상 (Lifetime Achievement) 수상
- 역대 총 음반 판매량 약 2억장 이상[95]
- 역대 여가수 총 음반 판매량 4위[96][97]
- 역대 솔로가수 총 음반 판매량 7위[98][99]
- 역대 가수 총 음반 판매량 10위[100][101]
- 빌보드 200 통산 46주 1위[102]
- 역대 여가수 빌보드 200 1위 달성 기간 2위[103]
- 역대 여가수 유일 빌보드 200 10주 이상 1위 기록 앨범 3개 보유[104]
- 2000만 장 이상 판매된 앨범 3개 보유[105]
- 1000만 장 이상 판매된 앨범 6개 보유[106]
- 역대 여자 가수 최초 빌보드 200 연말차트 1위[107]
- 역대 여자 가수 최초 빌보드 200 연말차트 2회 1위[108][109]
- 역대 여자 가수 최초 데뷔앨범 빌보드 200 1위 달성
- 빌보드 200에 여가수 최초로 1위로 차트 진입 (핫샷 데뷔) - 〈Whitney〉[110]
- 빌보드 핫 100 1위 4곡을 배출한 앨범 :《Whitney》[111]
- RIAA 다이아몬드 인증을 획득한 사상 3번째의 여성 가수 앨범 :《Whitney Houston》[112]
- 역대 앨범 중 빌보드 핫 100 1위곡을 3번째로 많이 보유한 앨범 - 〈Whitney〉[113]
- 빌보드 올타임 12위 앨범 : 〈Whitney Houston〉
- 빌보드 올타임 25위 앨범 : 〈The Bodyguard OST〉
- 〈The Bodyguard OST〉빌보드 200 20주 1위 달성
- 〈The Bodyguard OST〉판매량 약 4100만장 이상[114]
- 세계 역대 음반 판매량 순위 3위 : 〈The Bodyguard OST〉
-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여가수 음반 : 〈The Bodyguard OST〉
-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사운드트랙 음반 : 〈The Bodyguard OST〉
-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가스펠 음반 : 〈The Preacher's Wife OST〉[115]
- 빌보드 핫 100 1위 곡 11개 보유
- 역대 여가수 빌보드 핫 100 1위 곡 보유 수 4위[A][117]
- 역대 솔로가수 빌보드 핫 100 1위 곡 보유 수 5위[A][119]
- 역대 가수 빌보드 핫 100 1위 곡 보유 수 7위[A][121]
- 빌보드 핫 100 1위 기간 통산 31주
- 빌보드 핫 100 TOP 10 기록 곡 23개 보유
- 연속 7개 싱글이 빌보드 핫 100 1위 달성한 아티스트[122][123]
- 4연대 연속 빌보드 핫 100 Top5 히트곡 배출[124]
- 4연대 연속 UK Official 싱글차트 Top5 히트곡 배출[125]
- ''I Will Always Love You" 빌보드 HOT 100 14주 1위
- "I Will Always Love You" UK Official 싱글차트 10주 1위
- 역대 빌보드 핫 100 장기간 1위곡 순위 5위 - "I Will Always Love You"[126][127]
- 빌보드 1990년대 Decade - End Charts 7위 곡 - "I Will Always Love You"
- 빌보드 올타임 60위 곡 - "I Will Always Love You"
- "I Will Always Love You" 싱글 판매량 약 2000만장 이상
- 가장 많이 팔린 여자 가수의 실물 싱글 (1056만 장) - "I Will Always Love You"[128]
- 세계 역대 실물 싱글 판매량 순위 2위 - "I Will Always Love You"
- 빌보드 사상 3번째로 1위로 차트에 데뷔한 곡 - "Exhale (Shoop Shoop)"[129]
- 빌보드 사상 역대 최다 연속 2위 기록 곡 - "Exhale (Shoop Shoop)[130][131]
- 100만 장 이상 판매된 싱글 22개
- 실물 싱글 판매량 약 5000만 장[132]
- 역대 가수 실물 싱글 판매량 순위 7위[여가수2위][134]
- 통산 600회 이상 수상[135]
- 역대 가장 많은 상을 수상한 여가수[136][기네스북등재]
- RIAA 다이아몬드 인증 싱글과 앨범을 모두 보유한 여자 가수[138][139]
- RIAA 다이아몬드 인증 앨범을 가장 많이 보유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가수[140]
- RIAA 인증 20세기에 가장 많은 음반 판매고를 기록한 여성 R&B 아티스트[141]
- BPI 인증 Brits Billion Award 수상[142]
- AMA 시상식 한 회에 가장 많은 상을 수상한 여가수 (8개)
- AMA 역대 최다 수상자 3위 (통산 22회)[143]
- BBMA 시상식 한 회에 가장 많은 상을 수상한 여가수 (11개)
- 스포티파이에서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1980년대 여자 가수의 노래 - "I Wanna Dance with Somebody (Who Loves Me)"(10억 1000만)
- 스포티파이에서 3번째로 많이 스트리밍된 1990년대 여자 가수의 노래 - "I Will Always Love You"(6억)
- 스포티파이에서 두 번째로 많이 스트리밍된 1990년 이전 데뷔 여자 가수(65억 6천만)[144]
- 스포티파이 10억 이상 스트리밍된 1곡 보유[145]
- 스포티파이 5억 이상 스트리밍된 3곡 보유[146]
- 스포티파이 1억 이상 스트리밍된 11곡 보유[147]
6. 디스코그래피
6.1. 음반
자세한 내용은 휘트니 휴스턴/음반 문서 참고하십시오.6.2. 싱글
자세한 내용은 휘트니 휴스턴/싱글 문서 참고하십시오.6.3. 차트
6.3.1. 음반
휘트니 휴스턴의 음반 판매량 | |||
<rowcolor=#010101> 발매일 | 제목 | 리드 싱글 | 세계 판매량 |
1985. 02. 14. | Whitney Houston | Thinking About You | 2200만 장 |
1987. 06. 02. | Whitney | I Wanna Dance with Somebody | 2000만 장 |
1990. 11. 04. | I'm Your Baby Tonight | I'm Your Baby Tonight | 1000만 장 |
1992. 11. 27. | The Bodyguard OST | I Will Always Love You | 4500만 장 |
1995. 11. 14 | Waiting to Exhale OST | Exhale (Shoop Shoop) | 1200만 장[148] |
1996. 11. 27. | The Preacher's Wife OST | I Believe in You and Me | 600만 장 |
1998. 11. 17. | My Love Is Your Love | When You Believe | 1000만 장 |
2000. 05. 16. | Whitney: The Greatest Hits | If I Told You That | 1000만 장 |
2002. 12. 10. | Just Whitney | Whatchulookinat | 200만 장 |
2003. 11. 18. | One Wish: The Holiday Album | - | 100만 장 |
2009. 08. 31. | I Look To You | I Look to You | 250만 장 |
<rowcolor=#010101> 총 판매고 : 1억 2850만장 1000만 장 이상 판매된 음반 : 6개 |
6.3.1.1. 빌보드
Whitney Houston 200 HITS / 미국 판매량 | |||||
발매일 | 제목 | 리드 싱글 | 빌보드 차트 (1위 기간) | 연말 차트 | 미국 판매량 |
1985. 02. 14. | Whitney Houston | Thinking About You | #1 (14주) | #29 (1985) #1 (1986) #22 (1987) #198 (2012) | 1300만 장 |
1987. 06. 02. | Whitney | I Wanna Dance with Somebody | #1 (11주) | #23 (1987) #12 (1988) | 1000만 장 |
1990. 11. 04. | I'm Your Baby Tonight | I'm Your Baby Tonight | #3 | #10 (1991) | 400만 장 |
1992. 11. 27. | The Bodyguard OST | I Will Always Love You | #1 (20주) | #1 (1993) #27 (1994) #145 (2012) | 1800만 장 |
1995. 11. 14 | Waiting to Exhale OST | Exhale (Shoop Shoop) | #1 (5주) | #4 (1996) | 700만 장 |
1996. 11. 27. | The Preacher's Wife OST | I Believe in You and Me | #3 | #17 (1997) | 300만 장 |
1998. 11. 17. | My Love Is Your Love | When You Believe | #13 | #30 (1999) #184 (2000) | 400만 장 |
2000. 05. 16. | Whitney: The Greatest Hits | If I Told You That | #2 | #81 (2000) #18 (2012) | 500만 장 |
2002. 12. 10. | Just Whitney | Whatchulookinat | #9 | #101 (2003) | 100만 장 |
2003. 11. 18. | One Wish: The Holiday Album | - | #49 | - | 50만 장 |
2009. 08. 31. | I Look To You | I Look to You | #1 | #29 (2009) | 100만 장 |
<colbgcolor=#e9d8b2> 1위 앨범 | 4개 | ||||
연말 1위 앨범 | 2개 | ||||
연말 Top10 앨범 | 4개 | ||||
총 판매고 | 6000만 장 | ||||
DIAMOND 인증 음반 | 3개 |
6.3.1.2. UK차트
Whitney Houston HITS / 영국 판매량 | |||||
발매일 | 제목 | 리드 싱글 | UK 차트 (1위 기간) | 연말 차트 | 영국 판매량 |
1985. 02. 14. | Whitney Houston | Thinking About You | #2 | #5 (1986) | 180만 장 |
1987. 06. 02. | Whitney | I Wanna Dance with Somebody | #1 (6주) | #3 (1987) | 210만 장 |
1990. 11. 04. | I'm Your Baby Tonight | I'm Your Baby Tonight | #4 | #25 | 30만 장 |
1992. 11. 27. | The Bodyguard OST | I Will Always Love You | -[C] | -[C] | 210만 장 |
1995. 11. 14 | Waiting to Exhale OST | Exhale (Shoop Shoop) | -[C] | -[C] | - |
1996. 11. 27. | The Preacher's Wife OST | I Believe in You and Me | #35 | - | 6만 장 |
1998. 11. 17. | My Love Is Your Love | When You Believe | #4 | #18 (1999) | 90만 장 |
2000. 05. 16. | Whitney: The Greatest Hits | If I Told You That | #1 (2주) | #9 (2000) #111 (2001) #179 (2004) #152 (2006) | 150만 장 |
2002. 12. 10. | Just Whitney | Whatchulookinat | #76 | - | 4만 2천 장 |
2003. 11. 18. | One Wish: The Holiday Album | - | - | - | - |
2009. 08. 31. | I Look To You | I Look to You | #3 | #70 (2009) | 30만 장 |
<colbgcolor=#e9d8b2> 1위 앨범 | 2개 | ||||
연말 Top10 앨범 | 3개 | ||||
총 판매량 | 1000만 장 |
6.3.2. 싱글
6.3.2.1. 빌보드
Whitney Houston HOT 100 HITS | ||||
최고 순위기간 | 차트인 기간 | 발매 시기 | 곡명 | 연말 차트 |
#11주 | 22주 | '85 | Saving All My Love for You | #23'85 |
#12주 | 24주 | How Will I Know | #6'86 | |
#13주 | 20주 | '86 | Greatest Love of All | #11'86 |
#12주 | 20주 | '87 | I Wanna Dance with Somebody | #4'87 |
#12주 | 17주 | Didn't We Almost Have It All | #22'87 | |
#11주 | 19주 | So Emotional | #6'88 | |
#12주 | 18주 | '88 | Where Do Broken Hearts Go | #33'88 |
#11주 | 19주 | '90 | I'm Your Baby Tonight | #42'91 |
#12주 | 23주 | '91 | All the Man That I Need | #16'91 |
#1^^14주[153]5번째로 오래 1위를 유지한 것이다.]^^ | 29주 | '92 | I Will Always Love You | #1'93 |
#11주 | 21주 | '95 | Exhale (Shoop Shoop) | #14'96 |
#23주 | 28주 | '98 | Heartbreak Hotel | #4'99 |
#31주 | 21주 | '85 | You Give Good Love | #47'85 |
#4 | 23주 | '93 | I'm Every Woman | #39'93 |
20주 | I Have Nothing | #30'93 | ||
20주 | '96 | I Believe in You and Me | #33'97 | |
20주 | '99 | It's Not Right but It's Okay | #44'99 | |
28주 | My Love Is Your Love | #73'99 #47'00 | ||
#5 | 17주 | '88 | One Moment in Time | #89'89 |
#6 | 27주 | '91 | The Star-Spangled Banner[154] | - |
#8 | 20주 | '96 | Count on Me | #48'96 |
#9 | 16주 | '88 | Love Will Save the Day[155] | - |
14주 | '91 | Miracle | ||
#15 | 17주 | '97 | Step by Step | |
17주 | '98 | When You Believe | #99'99 | |
#20 | 10주 | '91 | My Name Is Not Susan | - |
#26 | 20주 | '96 | Why Does It Hurt So Bad | |
#27 | 11주 | '99 | I Learned from the Best | |
#31 | 20주 | '93 | Run to You | |
#41 | 8주 | '89 | It Isn't, It Wasn't, It Ain't Never Gonna Be | |
#46 | 18주 | '84 | Hold Me | |
#52 | 19주 | '00 | Could I Have This Kiss Forever | |
#63 | 9주 | '19 | Higher Love | |
#70 | 9주 | '00 | Same Script, Different Cast | |
6주 | '09 | I Look to You | ||
#72 | 19주 | '02 | One of Those Days | |
#77 | 4주 | '97 | My Heart Is Calling | |
#84 | 12주 | '03 | Try It on My Own | |
#96 | 3주 | '02 | Whatchulookinat | |
#100 | 1주 | '09 | Million Dollar Bill | |
<colbgcolor=#e9d8b2> 1위 곡 | 11곡 | |||
연말 1위 곡 | 1곡 | |||
연말 Top5 곡 | 3곡 | |||
연말 Top10 곡 | 5곡 | |||
차트인 곡 | 40곡 |
6.3.2.2. UK차트
Whitney Houston TOP 100 HITS | ||||
최고 순위기간 | 차트인 기간 | 발매 시기 | 곡명 | 연말 차트 |
#12주 | 19주 | '85 | Saving All My Love for You | #17'85 |
#12주 | 18주 | '87 | I Wanna Dance with Somebody | #3'87 |
#12주 | 16주 | '88 | One Moment in Time | #14'88 |
#110주 | 32주 | '92 | I Will Always Love You | #1'92 #9'93 |
#2 | 13주 | '99 | My Love Is Your Love | #19'99 |
49주 | '19 | Higher Love | #26'19 | |
#3 | 12주 | '93 | I Have Nothing | #59'93 |
18주 | '99 | It's Not Right but It's Okay | #25'99 | |
#4 | 11주 | '93 | I'm Every Woman | #51'93 |
16주 | '98 | When You Believe | #110'98 | |
#5 | 13주 | '85 | How Will I Know | #59'86 |
11주 | '87 | So Emotional | - | |
'90 | I'm Your Baby Tonight | |||
16주 | '09 | Million Dollar Bill | ||
#7 | 8주 | '00 | Could I Have This Kiss Forever | |
#8 | 13주 | '86 | Greatest Love of All | |
#9 | 11주 | '00 | If I Told You That | |
#10 | 7주 | '88 | Love Will Save The Day | |
#11 | 11주 | '95 | Exhale (Shoop Shoop) | |
#12 | 9주 | '96 | Count on Me | |
#13 | 10주 | '90 | All the Man That I Need | |
13주 | '97 | Step by Step | ||
3주 | '02 | Whatchulookinat | ||
#14 | 9주 | '87 | Didn't We Almost Have It All | |
'88 | Where Do Broken Hearts Go | |||
5주 | '93 | Queen of the Night | ||
#15 | 7주 | '93 | Run to You | |
#16 | 3주 | '93 | Something in Common | |
8주 | '96 | I Believe in You and Me | ||
#19 | 14주 | '99 | I Learned from the Best | |
#25 | 9주 | '98 | Heartbreak Hotel | |
#29 | 5주 | '89 | It Isn't, It Wasn't, It Ain't Never Gonna Be | |
'91 | My Name Is Not Susan | |||
#44 | 7주 | '84 | Hold Me | |
3주 | '09 | I Didn't Know My Own Strength | ||
#54 | 2주 | '91 | I Belong to You | |
#93 | 1주 | '85 | You Give Good Love | |
<colbgcolor=#e9d8b2> 1위 곡 | 4개 | |||
연말차트 1위 곡 | 1개 | |||
연말차트 Top10 곡 | 2개 | |||
차트인 곡 | 37개 |
7. 필모그래피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
The Bodyguard 1992. 11. 25. | |||||
Waiting To Exhale 1995. 12. 22. | The Preacher's Wife 1996. 12. 13. | Cinderella 1997. 11. 2. | Sparkle 2012. 8. 27. | ||
- The Bodyguard (1992)
- Waiting to Exhale (1995)
- The Preacher's Wife (1996)
-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의 신데렐라 (1997)
- Sparkle (2012)[156]
미국의 많은 가수들이 배우를 겸업하듯, 휘트니 휴스턴도 1990년대에 배우활동을 했다. 그러나 배우로서 활동한 작품의 수는 총 5편으로 적은 편이다. 동시대에 활동한 마돈나가 20편 넘는 영화에서, 머라이어 캐리가 9편의 영화에서 활동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비교적 활동한 작품 수가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휘트니 휴스턴은 1990년대의 최고의 인기 가수였고, 그 덕에 그녀가 90년대에 출연한 영화들은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첫 작품인 영화 <The Bodyguard>의 경우 OST의 대성공에 가려져서 그렇지, 전세계적으로 제작비 2500만 달러의 16배가 넘는 4억 1190만 달러의 수입을 거두며 1992년 개봉작 중 가장 높은 수익을 거둔 영화 2위[157] 및 당시 기준 10번째로 가장 높은 수익을 거둔 영화의 기록을 차지하는 등 대성공을 하였다. 그의 2번째 영화 <Waiting to Exhale> 역시 전세계적으로 제작비 1600만 달러의 5배가 넘는 8200만 달러의 수입을 거두며 성공하였다. 4번째 영화 <Cinderella>는 6천만 관객에게 상영되었으며, 그 당시 가장 높은 수익을 거둔 TV영화였다.
휘트니 휴스턴의 연기는 배우 활동 초반에는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으나, 배우 활동을 이어갈수록 좋은 평가를 받았다. 주연으로 활약한 첫 영화 <보디가드>에서 그는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의 '최악의 여우주연상'에 후보지명되기도 했었으나, 두 번째 영화 <Waiting to Exhale>에서는 NAACP Image Awards의 여우주연상에 후보지명되었으며, 세 번째 영화 <The Preacher's Wife>에서는 마침내 NACCP Image Awards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를 바탕으로, 휘트니 휴스턴은 영화에서도 상업적, 비평적 성공을 달성하면서 자신의 배우 커리어를 성공적으로 장식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여담으로, 영화배우로서의 커리어는 동시대에 활동한 마돈나의 커리어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마돈나는 무려 2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다작을 했지만 휘트니 휴스턴은 일생동안 5편의 영화에만 출연하여 과작을 했다. 또 마돈나는 <에비타>를[158] 제외하면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에서 '최악의 여우주연상' • '최악의 여우조연상' 2부문 도합 7회 수상 및 9회 후보지명 되는 등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휘트니 휴스턴은 <보디가드>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연기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8. 수상
자세한 내용은 휘트니 휴스턴/수상 문서 참고하십시오.9. 인간관계
9.1. 셀린 디옹
휘트니의 곡을 커버하는 셀린의 모습. 셀린은 휘트니 휴스턴 사후 휘트니의 팬이었음을 밝혔다.[159] |
세계 3대 디바 모두 서로 사이가 좋았으며[160] 휘트니와 셀린도 서로를 존중, 존경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셀린의 영어권 데뷔에 마이클 잭슨이 끼친 영향력 만큼이나, 휘트니도 이에 못지 않게 영향력을 주었으며, 영어권 데뷔 이전에도 위 영상에서 보듯 "Saving All My Love for You", "Greatest Love of All"을 커버했다. 한편 휘트니도 셀린이 첫 그래미 상을 탔을때 남편 르네 앙젤릴을 통해 꽃과 편지를 보내며 좋은 사이임을 암시했다. 또한 인터뷰에서도 셀린에 대한 칭찬 역시 아낌없이 했다.
1995년에 프랑스에서 셀린은 자신의 리무진에서 인터뷰를 가졌는데, 《Falling into You》를 녹음하던 당시 휘트니가 옆 스튜디오에 있었고[161] 서로가 서로의 곡을 들었다고 밝혔다. 인터뷰 내용을 봐서는 그 이전에 몇 번 더 만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공식석상에서는 1999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에 셀린은 "The Prayer", 휘트니는 머라이어와 함께 "When You Believe" 공연으로 초대받아서 조우했다. 2004년 World Music Awards 때도 두 가수가 만났는데, 휘트니의 공연을 셀린이 놓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하고 직접 TV 볼륨을 올려서 집중하여 보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감상이 끝난 후에 박수를 치며 휘트니의 귀환에 매우 기뻐하는 모습도 보였다.2004
휘트니 사망 전 휘트니와 셀린은 마지막으로 2011년 여름 한 LA의 호텔에서 만나 10분 가량 얘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2012년 휘트니 사망 직후 셀린은 'Good Morning America'에서 "휘트니는 나에게 놀라운 영감을 주었다. 나는 그녀와 같은 커리어를 가지고 싶었고, 그녀와 같이 노래하고 싶었고, 그녀처럼 아름답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그 후 2018년 독일에서만 개봉된[162] 다큐멘터리에서도 셀린은 휘트니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을 드러냈다. 2012 2018
9.2. 머라이어 캐리
1999년 3월 21일, 제 71회 OSCAR 시상식에서 휘트니와 머라이어가 웃으며 서로를 안고 있는 모습. 이날 시상식에서 둘은 "When You Believe" 듀엣 공연을 했다. |
오랫동안 라이벌로 묘사되어 왔지만 사실은 정말 친한 친구이다. 또 휘트니는 머라이어가 존경하는 몇 안되는 인물 중 하나이다. 머라이어 캐리는 휘트니와 관련한 질문들을 받을 때마다 "그녀를 존경한다."고 대답해왔고 실제로 그러했다. 머라이어는 Sweet Sweet Fantasy 유럽 투어에서 휘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When You Believe"를 부르기도 했으며, 이후에도 머라이어는 휘트니의 기일이 되면 자신의 sns에서 휘트니를 언급한다. 2020년 휘트니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을 때 인터뷰에 응해서 "그녀의 모든 것에 영감을 받았다."고도 이야기했다.
1990년, 소니 레코드의 토미 머톨라가 휴스턴의 아성에 대적하기 위해 머라이어를 발굴해서 데뷔시키자 마자, 평론가들은 머라이어의 보컬을 두고 "휘트니 휴스턴이 생각나는 보컬"이라고 평가하며 두 가수를 비교했다. 이후 머라이어의 1집 《Mariah Carey》가 빌보드 200 11주 1위, 1991년 빌보드 200 연말차트 1위를 달성하는 등 성공을 거두는 반면, 휘트니의 3집 《I'm Your Baby Tonight》이 비교적 부진하자, 두 가수를 비교하는 식의 언론 보도는 점차 심해진다. 일례로, 1990년 한 인터뷰에서 휘트니는 인터뷰어에게 "머라이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영상 1 이는 머라이어도 마찬가지였다.영상 2
사실, 1991년 당시 머라이어는 데뷔 음반을 성공시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신인 가수, 라이징 스타의 입지였으나, 휘트니는 앞선 두 음반을 이미 굉장히 성공시켰던 세계적 탑스타의 입지였고,[163] 비록 3집이 앞의 두 음반에 비해 부진했어도 여전히 업계 기준으로는 성공한 음반이었기에 휘트니의 입지나 인기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므로 이 당시 상업적 성취를 갖고서 머라이어와 휘트니를 비교하는 데 무리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이는 1992년 휘트니가 《The Bodyguard OST》를 발매하며 남녀 가수 통틀어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성공을 거두면서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휘트니가 휴식기를 취하고 배우 활동에 집중하는 동안, 1994년부터 머라이어가 연이어 세계적인 히트작을[164] 내면서 당대 탑스타의 입지를 확고히 한다.[165]
이렇듯 90년대 중반까지[166] 두 디바가 영향력을 양분하면서, 차트 상에서의 경쟁이 심화하는 양상을 보이자, 언론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이 경쟁을 긍정적으로 비추기보다는 팬덤을 부추기면서 자극적인 기사를 써냈고 수많은 루머들을 양산했다.
1998년, 두 디바가 합심하여 이집트 왕자 OST "When You Believe"를 발매한다. 녹음할 때 누구 이름을 먼저 넣는지로 싸웠다거나, 사이가 너무 안 좋아서 서로 얼굴조차 마주치지 않고 따로 녹음을 했다는 둥 여전히 루머는 많았지만 둘은 같은 녹음실에서 한 게 맞다며 루머를 공식적으로 부정했고 자신들이 좋은 친구라고 말했다.
이 루머는 녹음할 때 테이크를 따로 가져간 것이 와전된 듯한데, 원래 듀엣곡은 '듀엣이면 사이좋게 녹음실에 들어가서 같이 해야지'라는 대중의 인식과는 달리 두 보컬이 따로 녹음을 해서 한 트랙으로 합치는 것이다. 그래야 한사람 한사람의 목소리를 깔끔하게 뽑아낼 수 있기 때문.[167] 즉 두 사람이 사이가 안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 원래 따로 하는 게 맞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동시에 부르는 파트는 서로 합을 맞춰 부르는게 낫기에 한날 한시에 녹음하는게 더 낫긴 하다. 아니면 가수 개개인만의 곡의 이해도가 달라 그루브가 다르기 때문. 따로 하면 먼저 녹음한 쪽에 맞춰야 한다. 결국 따로 한단 건 각각의 마이크로 서로 모니터링 하며 다른 부스에서 부를 뿐이란 것이다.
결과적으로 "When You Believe"는 빌보드 최고 15위라는 이름값에 비해 아쉬운 결과를 내고 만다.[168] 이후 휘트니 휴스턴은 2002년 《Just Whitney..》 음반 활동기에 실망스러운 라이브를 보여주며 내리막길을 걷다 재기의 발걸음을 내디뎠으나 결국 사망했고, 머라이어 캐리는 2001년 《Glitter》프로젝트의 참패 이후 몇 년 간 암흑기를 겪다 2005년 《The Emancipation of Mimi》로 재기에 성공한다.
하지만 "When You Believe"는 시간이 흐를수록 '전설적인 두 디바가 함께한 명곡' 등으로 화제되면서 스포티파이나 유튜브 같은 신세대 플랫폼과 매체 등에서 꾸준히 소비가 되고 있다. 현재는 두 가수 모두에게 의미있는 곡이 되었다.
두 가수는 "When You Believe" 활동을 계기로 처음 대화를 주고받았으며, 막상 대화를 해 보니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서로 말이 잘 통했다고 한다.자료 두 가수의 우정은 이후 쭉 이어졌고, 2012년에 휘트니가 사망했을 때 그해 BET 어워드에서 머라이어가 추도사를 낭독하기도 했다.
이 두 사람 간의 라이벌 관계는 90년대 내내 핫토픽이었는데, 1998년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도 언급되고 후에 한국의 프로그램 서프라이즈에서도 특집으로 다뤄질 정도. '역사상 최고의 라이벌리'로 꼽히기도 한다. 90년대 당시 최고의 여자 가수였던 만큼 두 팬덤 간의 라이벌 의식도 엄청났고 관심도 쏟아졌던 듯하다.
9.3. 브랜디
1997년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의 신데렐라> TV 영화 시사회에서 휘트니와 브랜디의 모습.[169] |
1995년 제8회 니켈로디언 키즈 초이스 어워드의 비하인드. 휘트니가 이 시상식의 호스트였고, 여기서 브랜디는 생애 최초로 우상인 휘트니를 만난다.[170] |
1994년에 데뷔한 가수 브랜디는 데뷔 초부터 그녀의 우상이 휘트니 휴스턴임을 밝혀왔으며, 휘트니를 평생의 멘토이자 아이콘으로 여겨왔다.# 데뷔하기 전부터 브랜디는 휘트니를 존경하는 모습을 여럿 보여주는데, 어렸을 적 어머니께 "나는 휘트니 휴스턴처럼 되고 싶다"고 말하거나, 14살 때 콘서트[171]를 끝내고 무대에서 내려온 휘트니를 만나기 위해 백스테이지에 찾아가서 기다리거나, Atlantic Records와 처음으로 성공적인 음반 계약을 맺기 전, 오디션에서 "Greatest Love of All"을 불렀다는 것이 예시이다. 그리고 위 영상에서 보듯이, 1995년 니켈로디언 키즈 초이스 어워드에서 최초로 브랜디는 휘트니를 실제로 만난다.
첫 만남 이후 휘트니는 이후 자신이 참여하는 프로젝트에서 브랜디와 함께 활동한다. 1995년《Waiting to Exhale OST》에서 브랜디는 곡 "Sittin' Up in My Room"을 부르며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1997년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의 신데렐라> 제작 당시에는 브랜디가 신데렐라 역을 맡도록 휘트니가 제안했으며 "Impossible"이라는 듀엣곡을 내기도 했다![172] 이후 둘은 친한 친구로서 인간관계를 맺는다. 베이비페이스의 말에 따르면, 휘트니는 브랜디가 후세대 음악계에서 거물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한다. 브랜디가 휘트니를 존경하는 만큼이나 휘트니도 스스로의 팬이자 후배 가수인 브랜디를 아꼈던 듯 하다.
97년 휘트니와의 영화 촬영 이후 브랜디는 온갖 음악적 천재들이 활동했던 1990년대 후반 음악계에서 살아남았고 성공적인 음악 커리어를 쌓았다. 일생 동안 빌보드 1위곡 2곡을 배출했으며, 그 중 하나는 1998년에 무려 빌보드 13주 1위를 기록했던 모니카와의 듀엣곡인 "The Boy Is Mine"이다. 그 외에 전세계적으로 4000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고,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하는 등, '1990년대 R&B 프린세스'로서 대중음악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배우로서도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의 신데렐라>를 기점으로 커리어를 쌓아나가면서 여러 편의 영화를 촬영하였으며 브로드웨이에도 진출했다. 휘트니만큼은 아니더라도 음악·영화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으니, 휘트니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간 것은 아닌 셈이다.
2012년 2월 11일 휘트니가 죽은 후 브랜디는 그 해 7월 BET 어워드 시상식에서 휘트니의 죽음을 추모하는 헌정 공연으로서, "I'm Your Baby Tonight", "I Wanna Dance with Somebody (Who Loves Me)" 메들리 공연을 선보였다. 이후 그 해 10월 자신의 생일을 기념함과 동시에 휘트니의 죽음을 추모하는 음반 《Two Eleven》을 발매했다.[173]
2022년 현재까지도 많은 인터뷰에 출연하여 휘트니와 함께 영화를 촬영할 당시를 회고하고 휘트니를 향한 존경심을 표하고 있다. 매년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8월 9일과[174] 2월 11일에[175] 휘트니 관련 영상이나 사진을 올리고 있다. 2021년 2월에는 디즈니+에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의 신데렐라>가 추가될 것을 앞두고 언론과 인터뷰를 하며 휘트니를 회상했으며, 그해 8월에는 A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휘트니는 모든 흑인 여성 아티스트, 모든 흑인 아티스트, 모든 아티스트들을 위한 문을 열었다."고 했다.
2022년에는 저널리스트 Gerrick Kennedy가 휘트니의 삶과 타블로이드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집필한 책 <Didn't We Almost Have It All: in Defense of Whitney Houston>의[176] 서문을 작성했으며, 여기서 브랜디는 "그녀(휘트니)는 천사였고 내가 정확히 닮고 싶은 사람이었다."고 밝혔다.
자세한 내용은 여러 기사들에 나온다.
9.4.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2001년 6월 19일, 제1회 BET 어워드 시상식에서 휘트니가 평생공로상[177] 수상 소감을 말하는 모습. 위 시상식에서 크리스티나는 휘트니를 향한 헌정 공연을 펼쳤다.[178] |
참고로, 위 사진에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맨 왼쪽에 있고, 왼쪽에서 2번째가 루서 밴드로스, 가운데가 메리 제이 블라이즈이며 그 오른쪽에 휘트니가 있다. 맨 오른쪽에는 휘트니의 어머니 씨씨 휴스턴과 하나뿐인 그의 딸 바비 크리스티나 브라운이 있다.
브랜디와 마찬가지로, 크리스티나에게 휘트니 휴스턴은 영원한 우상이었으며 존경하는 인물이었다. 크리스티나가 8살 때 처음으로 한 탤런트 쇼에 출연하여 부른 곡이 "I Wanna Dance with Somebody (Who Loves Me)"였고, 9살 때는 한 무대에서 "Greatest Love of All"을 불렀던 적이 있다.자료 이후 12살 때 휘트니의 "I Have Nothing", RCA의 오디션 때 "I Believe in You and Me"를 부르거나, 애니메이션 영화 뮬란의 사운드트랙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Run to You"를 부른 영상을 보내는 등.. 어릴 때부터 휘트니의 노래를 즐겨 들었으며 그에게 큰 감명을 받은 모습을 여럿 보여준다.
현재까지 확인되는 것들 중 공식석상에서 크리스티나가 처음으로 휘트니를 만난 때는 휘트니가 2000년 9월 7일 VMA의 'Viedo of the Year' 부문의 시상자로 나섰을 때이다. 이때 당대의 인기 있는 틴 팝 아이돌이었던 크리스티나는 라이벌로 여겨졌던 브리트니와 함께 휘트니를 소개했고, 곧이어 휘트니가 "I Will Always Love You"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부르면서 나온다.
이후 2001년 6월 19일, 크리스티나는 제1회 BET 어워드에서 첫 번째 BET 평생공로상 수상자가 된 휘트니를 위한 헌정 공연으로 "Run to You"를 열창한다. 이에 수상소감을 말하러 나온 휘트니가 맨 먼저 "우선 크리스티나에게 고맙다고 하고 싶네요. 당신은 오늘날 음악에서 제가 가장 즐겨듣는 가수 중 한 명입니다. 나 다음으로 "Run to You"를 가장 잘 부르기도 하고요."라며 가벼운 농담과 함께 크리스티나의 실력을 인정하기도 했다.
이후 휘트니가 여러 개인적 어려움을 겪고 재기에 나선 2009년에 한 라디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크리스티나의 노래와 목소리가 마음에 든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7년에는 크리스티나가 AMAs에서 휘트니 휴스턴 및 《The Bodyguard OST》Tribute 공연을 진행했다. "I Will Always Love You" - "I Have Nothing" - "Run to You" - "I'm Every Woman" 순서로 8분 내외의 짧은 스케치 메들리 형식의 공연을 선보였는데, 반응은 호불호가 갈리는 편.자료[179]
크리스티나가 휘트니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휘트니도 크리스티나를 좋아하는 모습이 여럿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두 가수가 따로 활동을 같이 하진 못했는데, 그 이유는 시기가 어긋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크리스티나의 1집과 휘트니의 4집 활동 시기가 '99 ~ '00년으로 겹쳤고, 그 이후에는 휘트니가 여러 개인적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사실상 활동을 같이 하기에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9.5. 앨리샤 키스
2009년 7월 21일, 휘트니의 6년만의 컴백을 기념하는 《I Look To You》NYC Listening Party에서 휘트니와 앨리샤가 웃으며 서로를 안고 있는 모습. |
10. 미디어
10.1. 유튜브
유튜브 공식계정의 소개글 |
(원문) With a bold, confident, unique voice and a body of work boasting some of the most upbeat and romantic recordings ever heard, Whitney Houston has long solidified her place as one of the 20th century's most beloved performers. |
|
휘트니 휴스턴 공식 유튜브 계정 'Whitney Houston'과 뮤직비디오를 게시하는 'WhitneyHoustonVEVO' 채널이 있다. 공식 유튜브 계정의 구독자는 약 815만 명이고,[180] 유튜브 활동은 거의 없지만 간간히 커뮤니티를 통해 휘트니 휴스턴의 과거 사진들을 게시하는 등의 활동을 한다. 2022년 들어서 쇼츠 영상을 올리기도 한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가수들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의 노래들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휘트니 휴스턴은 14억 조회수 뮤직비디오 1개,[181] 7억 조회수 뮤직비디오 1개,[182] 4억 조회수 뮤직비디오 2개,[183] 2억 조회수 뮤직비디오 3개,[184] 1억 조회수 뮤직비디오 5개[185] 등 총 11개의 1억 조회수 이상 뮤직비디오를 갖고 있다.
뮤직비디오 이외에, 그의 라이브 퍼포먼스도 여전히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91년 슈퍼볼에서의 상징적인 국가 제창은 약 3920만 조회수를 기록하면서,[186] 역대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슈퍼볼 국가 제창 영상으로 남아있다. 또한 '99년 VH1 Divas Live 99 공연에서의 "I Will Always Love You" 라이브는 공식 유튜브 영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려 1억 조회수를 기록하였다!
10.2. 전기 영화
소니 픽처스 제작으로 한 <Whitney Houston: I Wanna Dance with Somebody>이다.[187]# 2022년 12월 23일에 개봉되었으며, 나오미 애키가 휘트니 휴스턴 역을 맡았다.11. 여담
- 팝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의 상업적 성공과 영향력을 보유한 아티스트이지만, 1995년에 위원회 측으로부터 제안받은 입성 제의를 거절하여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는 입성하지 않았다.[188] 후일 휘트니 사망 후 올케 Pat Houston이 거절 이유를 밝혔는데, 휘트니 휴스턴은 자신의 이름이 남의 발에 밟히는 걸 원치 않아 거절했다고 한다.
- 자신만의 신념이 굉장히 확고한 인물이기도 하다. 위에 나온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도 그렇지만 더 유명한 것은 헤어스타일이다. 흔히들 휘트니 헤어를 보면 떠오르는것이 한국의 아줌마 헤어스타일이다. 휘트니 본인만이 선호하는 스타일이라 한다. 그래서 휘트니 헤어스타일을 보면 웬만한 경우를 제외 긴 생머리 스타일을 보기 어렵다. 휘트니 본인이 신념을 밝히길 가수는 노래에만 집중하면 된다 한다.[189]
- 의외로 댄스에도 소질이 있다.[190] 엄청난 가창력이[191] 주 능력 이었지만 90년대 라이브 공연을 보면 댄스곡에서도 유연한 댄스 능력을 보여주었다.
- 1990년대를 살았다면 다른 곡은 몰라도 "I Will Always Love You"는 다들 알 것이다. 휘트니 휴스턴의 대표곡 'I Will Always Love You'는 본인의 주연작 보디가드 OST로 널리 알려졌으며, 워낙 유명한지라 한국에서도 심심치 않게 패러디된다.
- 자넷 잭슨하고의 친분도 두텁다. 휘트니는 자넷의 Rhythm Nation을 좋아한다고 밝혔으며, 87년 투어에서 자넷의 히트곡 Control을 커버하기도 했다. 한번은 자넷이 인터뷰에 나와 휘트니와 같은 목소리로 노래 하고 싶었지만 신은 나에게 그런 재능을 주지 않았나보다. 라고 말한적도 있었다.
11.1. 홀로그램 투어
2020년 2월 25일 부터 휘트니와 저녁(An Evening with Whitney) 이라는 이름으로 홀로그램 투어를 진행한다. 일부 장면을 빼면 휘트니와 생김새가 전혀 달라서 비난을 받는 중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투어를 돈 뒤 라스베가스 레지던시 투어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감염증으로 인해 대부분 취소되었다.투팍이나 로이 오비슨같은 아티스트들이 사후(posthumous) 홀로그램 투어를 진행한 바 있고 마이클 잭슨도 이런 홀로그램 무대가 있다. 이 중 로이 오비슨의 투어를 진행한 베이스 홀로그램(Base Hologram)이라는 회사에서 기이할 정도로 휘트니 휴스턴의 홀로그램 투어에 공을 들여, 마침내 투어를 진행하였다. 베이스 홀로그램은 이미 2016년 더 보이스 결승전 녹화에서 보컬 코치로 출연했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휘트니 휴스턴의 듀엣 무대를 선보였으나, '기술적 결함'을 이유로 실제 방송으로 내보내지는 않았다. 이때 관객들이 찍은 핸드폰 영상이 인터넷에 유출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베이스 홀로그램의 휘트니 휴스턴 홀로그램 투어에 대한 집착을 두고 팬들은 대부분 소름끼친다(creepy)는 반응. 다만 사후 홀로그램 투어가 진행된다면 휘트니 휴스턴이 적절하다는 평가이기는 하다. 팬들이 본인 사후 홀로그램으로라도 공연을 보러 갈 정도로 슈퍼스타이고, 다양한 음원이 기록되어 있고, 가창력을 보여주는 발라드 중심이면서도 댄스 히트곡도 제법 가지고 있어 댄서들과 무대를 꾸미기 쉬운 데다가, 직계 유족이 없어 유족과의 저작권 협의마저도 어렵지 않은 등이다. 실제로 마이클 잭슨의 무대가 그의 현란한 댄스를 구현하는 데 실패하여 욕을 먹었던 데 비해 휘트니 휴스턴의 사후 홀로그램 투어는 나름 반응이 좋았다.
Greatest Love of All 공연 |
I Will Always Love You 공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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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액 부문 | 공연자 (Performers) | ||
멤버 | (개인 자격) | ||
입성 연도 | 2020년 | ||
후보자격 연도 | 2010년 | ||
후보선정 연도 | 2020년 | }}}}}}}}}''' |
<colbgcolor=#000><colcolor=gold> 알앤비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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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 | (개인 자격) | ||
입성 연도 | 2014년[출처A] | }}}}}}}}}''' |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 수상자 '''[[틀: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 수상자(1980년~1999년)|Grammy Award for Album of the Yea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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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t Slow Down | No Jacket Required | Graceland | The Joshua Tree | Faith | |
라이오넬 리치 | 필 콜린스 | 폴 사이먼 | U2 | 조지 마이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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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2002년 등재 |
엔리코 카루소, 오페라 <팔리아치> 중 "Vesti la giubba" (1907)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즈 밴드, "Tiger Rag" (1918) 베시 스미스, "Down Hearted Blues" (1923) 조지 거슈윈, 랩소디 인 블루 (1924) 케이트 스미스, "God Bless America" (1938년 11월 11일) 빌리 홀리데이, "Strange Fruit" (1939) 빙 크로스비, "White Christmas" (1942) 우디 거스리, "This Land is Your Land" (1944) 찰리 파커, 마일스 데이비스, 디지 길레스피 등, "Ko Ko" (1945) 레스 폴, 메리 포드, "How High the Moon" (1951) 레이 찰스, "What'd I Say" (1959) 아레사 프랭클린, "Respect" (1967)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 더 퓨리어스 파이브, "The Message" (1982) | |
2003년 등재 | |
레드 벨리, "Goodnight, Irene" (1933) 척 베리, "Roll Over Beethoven" (1956) 오티스 레딩, "I've Been Loving You Too Long (To Stop Now)" (1965) | |
2004년 등재 | |
마 레이니, "See See Rider Blues" (1924) 프레드 아스테어, 아델 아스테어, 조지 거슈윈, "Fasinating Rhythm" (1926) 지미 로저스, "Blue Yodel No.1 (T for Texas)" (1927) 글렌 밀러 오케스트라, "In the Mood" (1939) 디지 길레스피 빅 밴드, 차노 포소, "Manteca" (1947) 행크 윌리엄스, "Lovesick Blues" (1949) 머디 워터스, "I'm Your Hoochie Coochie Man" (1954) | |
2005년 등재 | |
노라 베이스, "Over There" (1917) 카운트 베이시, "One O'Clock Jump" (1937) 냇 킹 콜, "Straighten Up and Fly Right" (1943) 패츠 도미노, "Blueberry Hill" (1956) 버디 홀리 & 크리켓츠, "That'll Be the Day" (1957) 제리 리 루이스, "Whole Lotta Shakin' Goin' On" (1957) 마사 앤 더 반델라스, "Dancing in the Street" (1964) 에드윈 호킨스 싱어즈, "Oh Happy Day" (1967) 질스콧 헤론, "The Revolution Will Not Be Televised" (1970) | |
2006년 등재 | |
칼 퍼킨스, "Blue Suede Shoes" (1955) 로네츠, "Be My Baby” (1963) 샘 쿡, "A Change Is Gonna Come” (1964) 롤링 스톤즈, "(I Can't Get No) Satisfaction” (1965) | |
2007년 등재 | |
로사 폰셀, 오페라 <노르마>(빈첸조 벨리니) 중 "Casta Diva" (1928년 12월 31일, 1929년 1월 30일) 아트 테이텀, "Sweet Lorraine" (1940) 로이 오비슨, "Oh, Pretty Woman" (1964) 스모키 로빈슨 앤 더 미라클스, "The Tracks of My Tears" (196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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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스 시스터즈, "Bei Mir Bist Du Schoen" (1938) 존 리 후커, "Boogie Chillen'" (1948) 에타 제임스, "At Last" (1961) 조지 존스, "He Stopped Loving Her Today" (198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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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프 에드워즈, "When You Wish Upon a Star" (1940) 리틀 리처드, "Tutti Frutti" (1955) 하울링 울프, "Smokestack Lightning" (1956) 맥스 매튜스 등, "Daisy Bell (Bicycle Built for Two)” (1961) 로레타 린, "Coal Miner's Daughter" (1970) R.E.M., "Radio Free Europe" (1981) 투팍 샤커, "Dear Mama" (19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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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미커, "Take Me Out to the Ball Game" (1908) Sons of the Pioneers, "Tumbling Tumbleweeds" (1934) 태미 와이넷, "Stand By Your Man" (1968) 알 그린, "Let's Stay Together" (1971) | |
2011년 등재 | |
보 디들리, "Bo Diddley" (1955) 부커 티 앤 더 엠지스, "Green Onions" (1962) 돌리 파튼, "Coat of Many Colors" (1971) 도나 서머, "I Feel Love" (1977) 슈거힐 갱, "Rapper's Delight" (1979) | |
2012년 등재 | |
지미 데이비스, "You Are My Sunshine" (1940) 밴 클라이번,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1958년 4월 11일) 처비 체커, "The Twist" (1960) | |
2013년 등재 | |
조지 W. 존슨, "The Laughing Song" (1896년경) 빙 크로스비/루디 밸리, "Brother, Can You Spare a Dime?" (1932) 엘모어 제임스, "Dust My Broom" (1951) 에벌리 브라더스, "Cathy's Clown" (1960)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 "Fortunate Son" (1969) 제프 버클리, "Hallelujah" (1994) | |
2014년 등재 | |
블라인드 레몬 제퍼슨, "That Black Snake Moan"/"Matchbox Blues" (1928) 제리 멀리건 콰르텟, 쳇 베이커, "My Funny Valentine" (1954) 벤 E. 킹, "Stand by Me" (1961) 라이처스 브라더스, "You've Lost That Lovin' Feelin'" (1964) | |
2015년 등재 | |
블라인드 윌리 맥텔, "Statesboro Blues" (1928) 줄리 런던, "Cry Me A River" (1955) 루이 암스트롱/바비 다린, "Mack The Knife" (1956/1959) 슈프림즈, "Where Did Our Love Go" (1964) 임프레션스, "People Get Ready" (1965) 빌리 조엘, "Piano Man" (1973) 글로리아 게이너, "I Will Survive" (1978) | |
2016년 등재 | |
주디 갈란드, "Over the Rainbow" (1939) 빅 마마 손튼, "Hound Dog" (1952) 윌슨 피켓, "In the Midnight Hour" (1965) 멀 해거드, "Mama Tried" (1968) 주디 콜린스, "Amazing Grace" (1970) 돈 맥클린, "American Pie" (1971) 시스터 슬레지, "We Are Family" (1979) | |
2017년 등재 | |
잉크 스파츠, "If I Didn't Care" (1939) 빌 헤일리 앤 더 코메츠, "(We're Gonna) Rock Around The Clock" (1954) 토니 베넷,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1962) 템테이션스, "My Girl" (1964) 케니 로저스, "The Gambler" (1978) Chic, "Le Freak" (1978) 케니 로긴스, "Footloose" (1984) 글로리아 에스테판 앤 마이애미 사운드 머신, "Rhythm Is Gonna Get You" (1987) | |
2018년 등재 | |
캡 캘러웨이, "Minnie the Moocher" (1931) 리치 발렌스, "La Bamba" (1958) 니나 시몬, "Mississippi Goddam" (1964) 닐 다이아몬드, "Sweet Caroline" (1969) | |
2019년 등재 | |
글렌 캠벨, "Wichita Lineman" (1968) 빌리지 피플, "YMCA" (1978) 휘트니 휴스턴, "I Will Always Love You" (1992) |
역대 평생공로상 수상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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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정 TV를 뒤흔든 100가지 순간 | |||||||||||||||||||||||||||||||||||||||||||||||||||||||||||||||||||||||||||||||||||||||||||||||||||||||||||||||||||||||||||||||||||||||||||||||||||||||||||||||||||||||||||||||||||||||||||||||||||||||||||||||||||||||||||||||||||||||||||||||||||||||||||||||||||||||||||||||||||||||||||||||||||||||||||||||||||||||||||||||||||||||||||||||||||||||||||||||||||||||||||||||||||||||||||||||||||||||||||||||||||||||||||||||||||||||||||||||||||||||||||||||||||||||||||||||||||||||||||||||||||||||||||||||||||||||||||||||||||||||||||||||||||||||||||||||||||||||||||||||||||||||||||||||||||||||||||||||||||||||||||||||||||||||||||||||||||||||||||||||||||||||||||||||||||||||||||||||||||||||||||||||||||||||||||||||||||||||||||||||||||||||||||||||||||||||||||||||||||||||||||||||||||||||||
※ 미국의 케이블 음악채널 VH1에서 'TV를 뒤흔든 100가지 가장 중요한 순간'을 선정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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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의 MTV 1회 시상식에서의 "Like a Virgin" 무대 (1984년) | ||||||||||||||||||||||||||||||||||||||||||||||||||||||||||||||||||||||||||||||||||||||||||||||||||||||||||||||||||||||||||||||||||||||||||||||||||||||||||||||||||||||||||||||||||||||||||||||||||||||||||||||||||||||||||||||||||||||||||||||||||||||||||||||||||||||||||||||||||||||||||||||||||||||||||||||||||||||||||||||||||||||||||||||||||||||||||||||||||||||||||||||||||||||||||||||||||||||||||||||||||||||||||||||||||||||||||||||||||||||||||||||||||||||||||||||||||||||||||||||||||||||||||||||||||||||||||||||||||||||||||||||||||||||||||||||||||||||||||||||||||||||||||||||||||||||||||||||||||||||||||||||||||||||||||||||||||||||||||||||||||||||||||||||||||||||||||||||||||||||||||||||||||||||||||||||||||||||||||||||||||||||||||||||||||||||||||||||||||||||||||||||||||||||||||
12위 | ||||||||||||||||||||||||||||||||||||||||||||||||||||||||||||||||||||||||||||||||||||||||||||||||||||||||||||||||||||||||||||||||||||||||||||||||||||||||||||||||||||||||||||||||||||||||||||||||||||||||||||||||||||||||||||||||||||||||||||||||||||||||||||||||||||||||||||||||||||||||||||||||||||||||||||||||||||||||||||||||||||||||||||||||||||||||||||||||||||||||||||||||||||||||||||||||||||||||||||||||||||||||||||||||||||||||||||||||||||||||||||||||||||||||||||||||||||||||||||||||||||||||||||||||||||||||||||||||||||||||||||||||||||||||||||||||||||||||||||||||||||||||||||||||||||||||||||||||||||||||||||||||||||||||||||||||||||||||||||||||||||||||||||||||||||||||||||||||||||||||||||||||||||||||||||||||||||||||||||||||||||||||||||||||||||||||||||||||||||||||||||||||||||||||||
휘트니 휴스턴의 슈퍼볼에서의 "The Star-Spangled Banner" 무대 (1991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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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니 휴스턴의 주요 기록 및 등재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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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에서는 "윗니 휴스튼"에 가깝게 읽는다. "브리트니"를 "브릿니"로 읽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2] 코카인 중독으로 인한 심장마비와 욕조의 물이 폐로 들어간 익사.[3] 뉴저지에 위치한 카톨릭계 고등학교.[4] 전국침례교총회(#) 소속의 뉴호프침례교회(#)에서 평생 신앙 생활을 했다. 5살 때 교회 합창단에 합류하여 피아노를 배웠고 장례식도 뉴호프침례교회에서 치러졌다. 휘트니의 이종사촌 디안 워윅, 디디 워윅 자매도 뉴호프침례교회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며 성장했다. 휘트니의 어머니 씨씨 휴스턴도 뉴호프침례교회의 평생 교인으로 현재도 집사위원회의 일원으로서 봉사하고 있다.[5] #[6] 원래 이 호칭으로 불리는 가수는 프랭크 시내트라다.[7] "He Can Use Me", "Testimony", "I Found a Wonderful Way" 총 3곡이다.[8] 출처: 1993년 RollingStone의 인터뷰 / ABC 뉴스[9] 첫 투어인 US Summer Tour(1985)부터 시작해서 25년동안 11번의 투어에서 601번의 공연을 펼쳤다.[10] 그래도 90년대 후반까지 전성기를 이어나가서 2000년에 그래미 상도 받았기 때문에 절대로 전성기가 짧았다고 할 수는 없다. 전성기는 1985년 후반기 ~ 2000년까지 대략 15년 정도로, 머라이어 캐리('90~'00, '05~'08), 자넷 잭슨('86~'01)도 비슷한 정도로 전성기를 이어나갔다. 이 점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휘트니의 전성기는 긴 편이다. 다만 유독 쇠락기가 일찍 찾아왔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전성기 시절 발매한 음반이 매우 적었기 때문일 수 있다.[11] 마약은 전성기인 보디가드 시절 이전부터 시작했다. 아래에 후술된 다큐멘터리 휘트니에서 나온 바로는 친오빠들과 그 무리들에 영향을 받아 16살때부터 마약을 접해온 것으로 드러난다. 그 이전에 휘트니의 모친 씨시 휴스턴이 쓴 회고록도 휘트니의 친오빠를 원인으로 지목했다.링크[12] 심지어 친오빠들이 해당 영화에서 대놓고 밝힌 바로는 바비 브라운은 마약을 그렇게 하던 사람이 아니었는데 오히려 본인들과 바비가 어울리다보니 복용량이 늘게되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바비의 타고난 마약 복용량이 대단치 못해서 휘트니 휴스턴과 그 형제들이 마약을 하는 타이밍에는 따로 빠져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술로 치면 주량이 대단치 못한 셈. 즉, 휘트니가 바비보다 마약을 더 했음 더 했고, 마약을 오히려 소개해준 입장에 가깝지, '바비 브라운이 아무것도 모르던 휘트니에게 마약을 건네줬다'는 둥의 얘기는 루머라고 볼 수 있다.[13] 미국 내 소수인종, 민족만을 대상으로 하는 시상식이다.[14] 정확히는 이 심장마비로 인해 의식을 잃고 쓰러졌으며, 물이 가득 차 있던 욕조에 얼굴을 담그면서 물이 폐로 들어와 사망에 이르렀다.[15] 참고로 이 공연은 그 예술성을 인정받아서 1986년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Outstanding Individual Performance in a Variety or Music Program(버라이어티 및 음악 프로그램에서의 최우수 개인 공연)' 부문을 수상했다.[16] 이 공연에서 특히 휘트니의 순간적인 센스가 드러난다.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신인이 첫 시작 배경음악이 끊긴 걸 알고 두번 째 가사인 'He's the one I dream of'부터 불렀던 것이다.[17] 여기서 'the'는 보통명사를 강조하여 고유명사화하는 정관사이고 강형(强形)인 /ði/로 읽는다. '(누구나 아는) 바로 그 목소리', '유일한 목소리', '궁극의 목소리' 등으로 해석된다.[18] 단순히 어려운 보컬 이론을 벗어나서 목소리 하나만으로 사람들에게 감정을 전달하는것도 휘트니 휴스턴 이라고 거론된다.[19] 어쩔 수가 없었던게, 이때만 해도 인종간의 갈등이 매우 극심했다. 흑인은 흑인음악만 듣고, 백인은 백인음악만 듣는 게 대부분이었다. 마이클 잭슨과 휘트니 휴스턴의 노력으로 이러한 장벽이 부서진 것이다.[20] 괜히 휘트니처럼 소리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은 게 아니다.[21] 머라이어는 두성을 거의 활용하지 않고 벨팅과 믹스보이스를 주로 활용했으며, 셀린 디옹은 두성과, 특히 E5 이상의 Upper Register에서 믹싱(Mixing)을 하는 등 적절히 잘 섞어쓰며 가창력만큼은 2022년까지 잘 보존해왔다.[22] 한국식으로는, 1옥타브 도에서 4옥타브 도#까지. 대략 3옥타브 정도이다.[23] 한국식으로는 0옥타브 시b ~ 4옥타브 도#으로 대략 3.2 옥타브이다.[24] 1999년 11월 <My Love Is Your Love World Tour>에서 Heartbreak Hotel 라이브를 할 때 휘트니가 두성 Eb6 라이브를 보여주었다고도 하는데, 사실 그 공연 녹음본의 음질이 매우 좋지 않아 정확히 확인할 수 없으며 90년대 후반 휘트니의 목소리가 상당히 많이 손상되었음을 감안하면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낮다. 일단 직접 들어보고 판단해보자. 1999-11-08[25] 0:38초 "~ and the twilight's last gleaming ~", 1:06초 "~ were so gallantly streaming? ~"[26] 사실 휘트니도 저음이 준수한 편이지만 세계 3대 디바 중 머라이어나 셀린은 저음에 강점을 보이기 때문에 그 둘에 비교되어 이렇게 보일 수 있다. 애초에 휘트니는 인식과 달리 메조가 아니라 소프라노이기도 하다.[27] 바로 이 때문에 휘트니가 내는 음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실제 음보다 몇 단계 높게 들린다.[28] '85년 ~ '90/'91년[29] 자세한 설명은 여기 참조. 심지어 영어 위키피디아에서도 휘트니의 I Will Always Love You B4를 Money Note의 예시로 들었다.[30] 5:56초 "~ the greatest love of all ~", 6:56초 "~ find your strength ~"[31] 휘트니의 C#5는 여기서 더 감상할 수 있다. 최고의 C#5 모음 / 연도별 C#5 모음[32] 그래서 세계 3대 디바 중 가장 고음에 약하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당연히 이는 사실이 아니며 인식과 달리 3대 디바 중 흉성 고음에서 가장 강하다 평가받는다. 특히 휘트니가 더욱 대단한 건, 고음에서 얇아지지 않고 흉성 중심의 발성을 이어나가면서도 고음역의 스태미너, 유지력, 일관성이 굉장하다는 점이다.[33] 0:43초 "~ can last forever ~"[34] 휘트니의 Eb5는 여기서 더 감상할 수 있다. 최고의 Eb5 모음 / 연도별 Eb5 모음 / 1999년 Eb5[35] 특히 '86년, '90-'91년[36] 다만 여기에 있어서는, 휘트니가 믹싱(Mixing) 테크닉을 사용했지만 주로 흉성의 비중이 높은 체스티를 사용했던 것인지, 아니면 순수 흉성을 사용했던 것인지 견해가 분분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가수들 대부분이 선택했던 헤디나 밸런스드가 아닌 흉성 중심의 발성을 고집했던 것이다.[37] 그래서 종종 휘트니의 고음역 벨트가 날카롭고(shrill) 긴장했다(strained)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당연히 사실이 아니며 보컬 전성기 동안 휘트니는 이 음역에서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38] 휘트니의 고음역 특히 F#5나 G5의 경우는 '90-'91년 이후 잘 들을 수 없는데, 그 이유는 '91년 <I'm Your Baby Tonight World Tour> 스케쥴로 인해 성대 부상을 입고 92년 임신을 하여 음역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조금 여유있는 투어 스케줄을 진행하여 성대 부상을 입지 않았다면 '91년에 휘트니의 더 많은 F#5와 G5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39] 이 근육이 극도로 발달해서 세밀한 컨트롤까지 가능하게 된 가수들이 오페라 소프라노들이다.[40] 그래서 휘트니는 음량 조절(Dynamics)도 주로 흉성보다는 두성을 통해 선보였으며, 두성을 활용할 때에 보컬 런/리프를 더 빠르게 수행할 수 있었다.[41] 오페라 여가수들은 폭넓은 범위에서 두성을 매우 자주 활용하고 이를 위한 고전적 훈련을 받기 때문에, 발달된 두성을 갖지 않은 일반 팝 소프라노들은 오페라를 소화할 수 조차 없다. 당연히 마이크 증폭을 거의 활용하지 않고 소화하는 건 더욱 어렵다.[42] 심지어 이때는 휘트니가 아플 때였다.[43] 같은 음에서 크레센도 후 데크레센도[44] 피아니시모(pianissimo)보다 여리게 한 음을 시작한 뒤 페이드 인(Fade-In)하여 마지막에 소리를 세게 내는 것.[45] 정확히는 0.95±a초 동안 7개 음을 넣었다. 1초에 7.2-7.3개 음 꼴이다.[46] 보컬 코치 Dileesa의 분석 영상. (5분 50초) 정확히 Dileesa는 휘트니처럼 매우 민첩하고, 매우 강력하며, 보컬적 아름다움(Vocal Beauty) 세 개를 모두 갖춘 가수는 드물다고 평했다.[47] 휘트니처럼 1초에 7개가 넘는 음을 넣을 정도의 민첩성을 보여주는 가수도 드물고, 휘트니처럼 매우 발달된 흉성을 가진 가수도 아주 드물지만, 두 개를 동시에 겸비한 가수는 찾아보기 힘들다.[48] 두성으로 9개 음, 그 후 두성→흉성으로 성구전환, 그 후 흉성으로 9개 음을 이동하면서, 2.3초에 18개 음을 이동하는 상당한 수준의 민첩성을 보여주었다. 1초에 7.8개 음 꼴이다.[49] F4-G#4-F4-Eb4-C#4-(Eb4-F4-Eb4-C#4)×7-(Eb4)×4 순서대로 음을 이동한다. 정확한 시간은 4~4.5초 사이로 보이며 대략 이 속도는 1초에 8.3-9개 음 꼴이다.[50] 1985 ~ 1991년[51] 사실 음원에서는 F5 이상을 비교적 많이 내진 않았다. 물론 1집 ~ 3집에는 백그라운드 보컬 포함해서 F5, F#5가 꽤 많고 특히 Higher Love에 F5, F#5가, Love Will Save the Day에 G5가 많다. 《The Bodyguard OST》와 《The Preacher's Wife OST》에도 F5-F#5가 있지만 상당수가 지지되지 않거나 음이 갈라진다.[52] 수많은 라이브마다 다른 애드립을 넣으면서 F5 이상의 음을 자유자재로 선보였다. 특히 '86년 Heart to Heart나 I'm Changing 공연에서 G5를 많이 선보였다.[53] 1986년 당시 <The Greatest Love World Tour>의 셋리스트의 첫 번째 곡인 마이클 잭슨의 Wanna Be Startin' Somethin'을 공연할 때 Bb5음을 두성이 아닌 믹스 보이스로 내기도 했고 최대 G#5(혹은 A5)를 벨팅으로 냈었다. 일본 공연(86년 11월) (해당 영상 기준 - 2분 4초/Bb5, 6분 21초/G#5)[54] 목 관리를 위해서 고음을 자제했을 수 있다. 물론 E5 이하의 음은 꾸준히 벨팅으로 소화했는데 I'm Every Woman의 하이라이트 부분이나 I Have Nothing의 하이라이트 부분도 전부 E5였다. Ain't No Way의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가끔 F5를 냈었다.[55] 이것은 남자도 마찬가지인데, 바리톤 중 고음을 커버할 수 있는 하이 바리톤들은 압도적인 파워로 호평받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프레디 머큐리로, 이쪽도 휘트니 휴스턴과 함께 세계에서 한 손에 꼽히는 최정상급의 보컬로 평가받는다. 프레디는 한국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어느 설문에서 휘트니 휴스턴과 함께 9표를 받아 공동으로 "가장 노래를 잘 하는 가수 1위"로 꼽히기도 했었다.[56] The Bodyguard OST[57] 한국에서도 130만장으로 팝가수 중 가장 많이 팔린 앨범[58] "I Will Always Love You"[59] 1위는 명실상부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오늘날 흑인 사회에서는 휘트니가 마이클 잭슨과 더불어 추앙받는다.[60] 사실 영어판 위키피디아도 믿을만한 자료가 못된다. 실물 판매량은 낮은 편인 리아나나 테일러 스위프트가 각각 7위, 공동 11위에 위치해있기 때문. 때문에 스트리밍이 포함된 자료라고 보는 게 합당하다.[61] '85 ~ '00년[62] 실물 판매량 = 정규 음반 판매량 + 기타 LP 판매량 + 실물 싱글 판매량[63] Chartmaster의 CSPC는 자기들만의 기준으로 판매량을 계산하여 합산한 것으로, 인용하지 않았다.[64] 이어서 셀린, 머라이어, 바브라 순으로 5,6,7위이다.[65] '85년 3분기 "Saving All My Love for You" ~ '95년 4분기 "Exhale (Shoop Shoop)"까지.[66] '88년에 "Where Do Broken Hearts Go"로 빌보드 1위 곡 총 7개를 만들어내면서 단독 1위로 올라섰다가, 이후 마돈나랑 엎치락뒤치락하면서 한동안 공동 1위 타이틀을 가져간다. 이후 마돈나와 휘트니의 커리어가 조금씩 하향세를 타면서 더 이상의 1위곡을 내놓지 못하던 '97년에, 한창 커리어 전성기를 달리던 머라이어 캐리가 12개의 1위 곡을 만들어내면서 그에게 타이틀을 내주게 된다.[67] 머라이어, 휘트니, 마돈나 등 여자 가수들의 커리어가 수명을 다한 2022년 시점에서, 머라이어 캐리가 총 19개의 빌보드 1위곡을 가져서 가장 많은 빌보드 1위 곡을 가진 여자 가수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68] "I Will Always Love You"(1위), "I Wanna Dance with Somebody (Who Loves Me)"(4위), "Heartbreak Hotel"(4위), "How Will I Know"(6위), "So Emotional"(6위)[69] "Saving All My Love for You" ~ "Where Do Broken Hearts Go"[70] "I Will Always Love You"(1위, 9위), "I Wanna Dance with Somebody (Who Loves Me)"(3위)[71] 1위는 마이클 잭슨.[72] 당시 세계적인 탑스타였던 휘트니의 아성에 맞설 대항마로 당시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CEO였던 토미 머톨라가 발굴한 신인 가수가 바로 머라이어 캐리이다.[73] 특히 여성 가수들[74] 비교를 하자면, 휘트니 휴스턴의 데뷔는 1985년으로, 1990년에 첫 월드와이드 앨범을 낸 셀린 디옹이나 머라이어 캐리보다 5년 빨랐다. 또 셀린 디옹은 월드와이드 데뷔 이후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96년 《Falling into You》 와 1998년 "My Heart Will Go On"의 대성공을 거둔 반면,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는 데뷔 직후부터 대성공을 거뒀다는 차이점이 있다.[75] 사실 셀린 디옹의 데뷔는 1981년으로, 휘트니 휴스턴보다 5년 빠르지만 이때의 데뷔는 캐나다 한정이었다. 월드와이드 데뷔는 1990년이었기 때문에, 이 셋 중 데뷔는 휘트니 휴스턴이 가장 빠르다고 할 수 있다.[76] 실제로 자넷은 1,2집은 모두 실패하다가, 휘트니가 85년 1집으로 대성공을 거둔 이듬해인 86년 3집부터 대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이 시기 자넷이 잭슨 패밀리로 부터 독립해 스스로의 음악적 세계관을 구축했다는 점이 성공 요인이지만, 흑인 여가수의 위상을 뒤바꿔버린 휘트니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는 없다. 어쨌든, 자넷은 89년 4집까지 히트시키며 휘트니와 함께 80년대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여가수였다.[77] 흑백 혼혈이다. 그 당시 미국에는 One-Drop Rule이 잔재했었는데, 외형이 백인에 매우 가깝더라도 한 방울의 흑인 피라도 섞였다면 흑인으로 여겨지곤 했다. 또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정체성을 흑인으로 규정짓기도 했다.[78] 흑백 혼혈[79] '7연속 발매 싱글 1위 달성', '여자 가수 음반으로서 최초의 빌보드 200 1위 데뷔', '한 음반에서 4개의 1위 싱글 배출', '여자 가수 음반으로서 최초의 빌보드 200 연말차트 1위 달성' 등 휘트니의 대표 기록들 상당수가 80년대 때 성취되었다. 데뷔하자마자 얼마나 큰 인기를 끌었는지 파악할 수 있는 부분.[80] 2020년대 시점에서, 휘트니는 프린스, 조지 마이클, 필 콜린스, 브루스 스프링스틴, 라이오넬 리치 등 80년대 대성한 쟁쟁한 남성 가수들을 제치고 더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81] 그 외의 인기를 누린 가수는 자넷 잭슨, 폴라 압둘, 샤데이가 있으나, 이들의 80년대 판매량은 1천만 정도로 휘트니와 마돈나만큼은 아니었다. 다만 이 중 자넷은 1990년대에 여자 댄스가수로는 마돈나와 투탑체제를 유지하며 레전드 반열에 올랐다.[82] 90년대에, 컨템퍼러리 R&B 장르가 가장 인기가 많았던 장르였으며 또 대형 여자 솔로 가수들이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는 속칭 '디바 시대'가 펼쳐졌다. 또 80년대에 비교적 적었던 흑인 여성 가수들이 휘트니 휴스턴의 대성공을 기점으로 90년대부터 서서히 대중음악계에 진출하게 된다.[83] 속칭 '디바 시대'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90년대 중반(95년 말 - 97년). 이때 차트 상에서 '디바 전쟁'이 벌어졌는데, 이때 당시 빌보드 1위를 머라이어의 "Fantasy" (8주) - 휘트니의 "Exhale (Shoop Shoop)" (1주) - 머라이어 & 보이즈 투 멘 "One Sweet Day" (16주) - 셀린 디옹 "Because You Loved Me" (6주) 순서로 3대 디바가 번갈아가면서 차지하기도 했다. 또한 토니 브랙스턴이 "Un-Break My Heart"로 빌보드 11주 1위를 차지하며 인기를 끌었고, 자넷 잭슨과 마돈나는 컴필레이션 음반 활동으로 중박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었다.[84] 앨범 활동 기간까지 포함한다면 1993년 역시 휘트니(The Bodyguard OST), 머라이어(Music Box), 셀린(The Colour of My Love), 마돈나(Erotica), 자넷(janet.)이 동시에 활동했던 시기였다. 사실 이때 머라이어와 자넷은 자체 앨범 최고판매량을 올렸으나 휘트니가 워낙 압도적 전성기를 누렸던 시점이라 덜 부각되었고, 셀린은 아직 신인이었고, 마돈나 역시 커리어 침체기에 들어서는 시점이었기에 잘 부각되지는 않았다.[85] 실제로 마이클 잭슨은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연예인'으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되었다.[86] 2018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Whitney"(한국에선 8월 23일에 개봉)에서 해당 곡을 편곡한 작곡가의 인터뷰가 실렸다. 마빈 게이가 1983년 NBA 올스타전에서 불렀을 당시 특유의 느낌을 살린 것에 감명받았고 흑인 음악의 느낌을 살려 휘트니가 곡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마빈 게이 버전 들어보기. 그런데 당시 반주를 맡은 밴드의 반응이 매우 안 좋았고, 설상가상으로 휘트니는 노래를 부르기 직전까지 편곡된 버전을 들어보지 않았다고 한다. 한번 들어보고 나서 바로 부른 버전이 최종본이었다고. 과장이 섞였을 순 있겠지만 연습을 많이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감각적으로 음악을 살린 것은 맞는 듯.[87] 이건 셀린도 마찬가지다. 다만 휘트니처럼 빌보드의 기록으로 큰 히트를 치진 못했지만 자신의 예술성을 보이는데에는 큰 영향을 주었다.[88] 원곡은 뮤지컬 <Chess> OST[89] I'm Your Baby Tonight의 일본어 특별판(Japanese Bonus Track)에 수록되어 있다. 스티브 윈우드의 곡이 원곡이며, 나중에 Kygo가 프로듀싱한 Tropical Remix 버전이 2019년에 발매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90] 스티비 원더의 "I Was Made to Love Her"이 원곡이다. 성별만 바꿔서 리메이크했다.[91] 프랑스어 음반 제외[92] 다만 두 디바가 당시에 다른 가수들에 비해서도 작업량이 많았던 것도 감안해야 한다.... 당시 머라이어 캐리 남편이자 사장이었던 토미 머톨라는 소속 가수들에게 아내인 머라이어 캐리 라도 상관없이 음반 발매 주기를 최대한 줄여서 발매시키게 했다. 그래서 완벽주의자 성향이었던 마이클 잭슨과 소니 뮤직(토미 머톨라)의 사이가 완전 험악했었다...[93] 휘트니 휴스턴 포함 마이클 잭슨, 레드 제플린, 비 지스, 비욘세 등 총 7명의 아티스트만이 수상함[94] 휘트니 휴스턴, 비욘세, 브리트니 스피어스 총 3명의 아티스트만이 수상함[95] #[96] #[97] 마돈나가 음반을 총 약 3억장 이상을 판매하며 이 분야 1위에 올랐다. 뒤를 이어 머라이어 캐리가 2위, 셀린 디온이 3위이다.[98] #[99] 엘비스 프레슬리가 음반을 총 약 5억장 이상을 판매하며 이 분야 1위에 올랐다. 뒤를 이어 마이클 잭슨이 2위, 마돈나가 3위, 엘튼 존이 4위, 머라이어 캐리가 5위, 셀린 디온이 6위이다.[100] #[101] 비틀즈가 음반을 총 약 6억장 이상을 판매하며 이 분야 1위에 올랐다. 뒤를 이어 엘비스 프레슬리가 2위, 마이클 잭슨이 3위, 마돈나가 4위, 엘튼 존이 5위, 레드 제플린이 6위, 핑크 플로이드가 7위, 머라이어 캐리가 8위, 셀린 디온이 9위이다.[102] 〈Whitney Houston〉(14주), 〈Whitney〉(11주), 〈The Bodyguard OST〉(20주), 〈I Look To You〉(1주)[103] 테일러 스위프트가 통산 47주 1위를 달성하면서 이 분야 1위이다. 이 기록은 1993년 이후 장장 27년 동안 깨지지 않았으나, 테일러 스위프트의 evermore가 3주 1위를 기록하며 깨졌다.[104] 〈Whitney Houston〉(14주), 〈Whitney〉(11주), 〈The Bodyguard OST〉(20주)[105] 〈Whitney Houston〉(약 2200만장), 〈Whitney〉(약 2000만장), 〈The Bodyguard OST〉(약 4100만장)[106] 《Whitney Houston》(약 2200만장),《Whitney》(약 2000만장),《I'm Your Baby Tonight》(약 1000만장) ,《The Bodyguard OST》(약 4100만장), 《My Love Is Your Love》(약 1000만장), 《Whitney: The Greatest Hits》(약 1000만장)[107] 《Whitney Houston》이 1986년 빌보드 200 연말차트 1위를 달성했다. 여성 멤버가 속한 그룹 플리트우드 맥의 《Rumours》앨범이 1977년 연말 1위를 달성한 바 있으나 그 기록이 오롯이 여자 가수의 공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예외로 했다. 만약《Rumours》 앨범을 포함하더라도, 역대 여자 솔로 가수 최초로 빌보드 200 연말차트 1위에 오른 것은 변함이 없다.[108] 〈Whitney Houston〉(1986년 1위), 〈The Bodyguard OST〉(1993년 1위)[109] 이후 테일러 스위프트가 앨범 Fearless, 1989로 빌보드 200 연말차트 2회 1위를 2번째로 달성했다. 뒤를 이어 아델이 21과 25로 세 번째로 기록을 달성했다.[110] #[111] "I Wanna Dance with Somebody (Who Loves Me)", "Didn't We Almost Have It All", "So Emotional", "Where Do Broken Hearts Go"가 1위를 달성했다.[112] 여성 가수의 앨범으로서는 캐롤 킹의 《Tapestry》가 최초로, 마돈나의 《Like a Virgin》이 2번째로 RIAA 다이아몬드 인증을 받았다.[113] 마이클 잭슨의 〈Bad〉와 케이티 페리의 〈Teenage Dream〉앨범이 5개의 1위 곡을 보유하면서 이 분야 공동 1위이다.[114] #[115] #[A] 빌보드 핫 100 문서 4.11 문단으로.[117] 머라이어 캐리가 19곡 1위를 달성하면서 이 분야 1위에 올랐다. 뒤를 이어 리아나가 2위, 마돈나가 3위이다.[A] [119] 머라이어 캐리가 19곡 1위를 달성하면서 이 분야 1위에 올랐다. 뒤를 이어 리아나가 2위, 마이클 잭슨이 3위, 마돈나가 4위이다.[A] [121] 비틀즈가 20곡 1위를 달성하면서 이 분야 1위에 올랐다. 뒤를 이어 머라이어 캐리가 2위, 리아나이 3위, 마이클 잭슨가 4위, 슈프림스&마돈나가 5위이다.[122] Saving All My Love for You부터 Where Do Broken Hearts Go까지 7개 싱글이 연속해서 1위에 올랐다.[123] 1988년에 이 기록이 세워진 이후 33년이 지난 2021년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124]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My Love Is Your Love"가 2000년 첫째 주와 둘째 주에 4위를 달성했으며, 휘트니 사망 후인 2012년 "I Will Always Love You"가 3위를 달성한 바 있다.[125]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2009년에 발매된 "Million Dollar Bill"이 최고 5위를 달성했으며 2019년에 발매된 Kygo가 프로듀싱한 "Higher Love"가 최고 2위를 달성한 바 있다.[126] 빌보드 핫 100 4.1문단으로.[127] 릴 나스 엑스의 "Old Town Road"가 19주 1위를 달성하면서 이 분야 1위이다. 뒤를 이어 머라이어 캐리 & 보이즈 투 멘의 "One Sweet Day", 루이스 폰시 & 대디 양키의 "Despacito"가 16주 1위를 달성하며 공동 2위이다. 4위는 해리 스타일스의 "As It Was".[128] #[129] 마이클 잭슨의 "You Are Not Alone"이 빌보드 사상 최초로 1위로 차트에 데뷔했다. 뒤이어 머라이어 캐리의 "Fantasy"가 2번째로 1위로 차트에 데뷔했다.[130] 11주 연속 2위를 기록하였다.[131] "Exhale (Shoop Shoop)"은 빌보드 역사상 가장 긴 기간 동안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기록은 저스틴 비버 & 더 키드 라로이의 "STAY"가 통산 15주 2위를 기록하며 26년 만에 깨졌다.[132] 정확히는 약 4952만 장[여가수2위] [134] 여기로. 1위가 비틀즈, 2위가 마이클 잭슨, 3위가 마돈나, 4위가 비 지스, 5위가 롤링 스톤스, 6위가 ABBA이다. 해당 자료에는 조지 마이클이 7위인데 이는 Wham! 활동기의 판매량도 합친 것이다.[135] #[136] #[기네스북등재] [138] 싱글은 "I Will Always Love You"가, 앨범은《Whitney Houston》,《Whitney》,《The Bodyguard OST》가 다이아몬드 인증을 받았다.[139] RIAA 다이아몬드 인증 싱글과 앨범을 모두 보유한 또 다른 여자 가수로는 테일러 스위프트와 머라이어 캐리가 있다.[140] 총 3개의 앨범,《Whitney Houston》,《Whitney》,《The Bodyguard OST》가 다이아몬드 인증을 받았다.[141] RIAA 인증 20세기에 가장 많은 음반 판매고를 기록한 남성 R&B 아티스트는 바로 마이클 잭슨이다.[142] Brits Billion Award는 BPI가 영국에서만 커리어 내내 10억 이상의 스트리밍을 기록한 아티스트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휘트니는 ABBA, 머라이어 캐리, 콜드플레이 등과 함께 2023년 5월 4일 해당 상을 최초로 수상하였다.[143] 역대 최다 수상자 1위는 통산 40회를 수상한 테일러 스위프트. 역대 2위는 통산 26회를 수상한 마이클 잭슨.[144] 여기 참조. 1위는 마돈나이며 총 스트리밍 약 80억 4천만으로, 휘트니와는 대략 15억 차이가 난다. 하지만 스포티파이에 등록된 휘트니의 노래 수는 314개인 반면, 마돈나의 노래 수는 935개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2위도 대단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 기준으로는 274위이다.[145] "I Wanna Dance with Somebody (Who Loves Me)"[146] "I Wanna Dance with Somebody (Who Loves Me)", "Higher Love", "I Will Always Love You"[147] "I Wanna Dance with Somebody (Who Loves Me)", "Higher Love", "I Will Always Love You", "I Have Nothing", "How Will I Know", "My Love Is Your Love", "Greatest Love of All", "Saving All My Love for You", "When You Believe", "Where Do Broken Hearts Go", "How Will I Know"(Clean Bandit Version)[148] 휘트니 휴스턴이 참여한 음반이라서 휘트니 휴스턴의 기록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C] 1989년부터 컴필레이션 앨범은 UK차트의 메인차트에서 배제되었다. 이 앨범은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분류되었고 따라서 1위 기록이 없다.[C] [C] [C] [153] 14주 1위 기록은 빌보드 핫 100 차트 역사상[154] 미국 국가[155] 이 곡으로 연속 7곡 1위 기록이 깨졌다.[156] 휘트니 휴스턴이 세상을 떠난 지 6개월 뒤인 8월에 개봉했다.[157] 알라딘이 1992년 개봉작 중 1위였다.[158]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뮤지컬 • 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함[159] 특히 인터뷰에서 서로의 질문을 받았을 때 사랑한다 했을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160] 반면에 3대 디바의 팬들은 '디바'의 타이틀과 보컬 능력, 상업성 등을 기준으로 다퉈왔다. 물론 지금은 3대 디바 모두가 커리어를 다한 후 대중음악계의 전설이 되었기 때문에 이런 팬덤 간 논쟁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까지도 이따금씩 발생하기도 한다. 비단 3대 디바 뿐만 아니라, 라이벌끼리는 친한데 정작 그 팬덤이 사이가 안 좋은 경우는 사례가 많다.[161] 이때 휘트니는 《Waiting to Exhale OST》를 녹음하고 있었으며, 타이틀곡 "Exhale (Shoop Shoop)"의 녹음일이 95년 10월 3일인 걸로 미루어 보아, 이 곡을 녹음했을 것으로 추측된다.[162] exclusively released in Germany[163] 당시 기준으로, 휘트니의 1집과 2집은 여성 가수의 음반으로서는 유례 없는 성공을 거둔 것이었다. 당시에 이 두 음반과 비슷한 성공을 거둔 여성 가수의 음반은 마돈나의 《Like a Virgin》, 《True Blue》와 캐롤 킹의 《Tapestry》, 트레이시 채프먼의 《Tracy Chapman》 뿐이었다.[164] 《Music Box》('93~'94), 《Merry Christmas》('94), 《Daydream》('95~'96). 세 음반 합쳐서 총 판매고 6000만 장에 달하는 판매고를 기록했고 이 3개의 음반에서 빌보드 1위곡이 6개, 빌보드 연말차트 Top10곡이 5개나 나왔다. 명실상부한 머라이어의 전성기[165] 머라이어는 3집 《Music Box》를 기점으로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1·2집은 미국 등지에 한정된 인기였다.[166] 96년 이후로는 머라이어나 휘트니 모두 커리어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셀린 디옹의 독주가 90년대 말까지 이어진다.[167] 피아노 따로, 드럼 따로, 베이스 따로, 현악기 따로, 보컬 따로, 코러스 따로. 이렇게 트랙을 하나하나 녹음하고 멀티 트랙으로 합치는 것이 바로 믹싱이다.[168] 곡의 부진은 두 가수의 인기 하락세, 영화사, 휘트니, 머라이어 셋의 프로모션 의견차 등등의 원인이 있었다.[169] 옆에 휘트니의 전 남편인 바비 브라운도 함께 있었지만 사진에선 잘렸다. 자세히 보면 사진 맨 오른쪽에 그의 귀가 있다.[170] 영상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브랜디가 시상식에 온 이유는 휘트니를 만나기 위해서고, 오자마자 휘트니가 어디 있는지부터 찾았다(...) 휘트니를 향한 브랜디의 마음이 드러나는 부분이다.[171] 시기 상 The Bodyguard World Tour[172] 물론 이 영화의 OST 발매가 좌초되는 바람에 싱글로 발매되진 못했다.[173] 2월 11일은 브랜디의 생일이자 휘트니의 기일이다.[174] 휘트니의 생일이다.[175] 휘트니의 기일이다.[176] "Didn't We Almost Have It All"은 휘트니 휴스턴 정규 2집 《Whitney》의 2번째 싱글이다.[177] Lifetime Achievement. 2020년 코로나19로 시상식이 취소됐던 걸 제외하고, 2021년까지 BET 측에서 20년 내리 시상하고 있는 부문이다.[178] "Run to You"를 열창했다.[179] 음악계에서 사이가 안 좋기로 소문난 크리스티나의 라이벌리 P!nk가 Tribute 공연 중 지은 찡그리는 듯한 표정이 SNS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만 이것은 오해로 판명났고 이 시기 핑크와 아길레라는 화해한 후였으며 찡그린듯한 표정 역시 크리스티나의 라이브에 감명받아 그런 표정을 지은것이라고 트위터를 통해 해명했다. 뒷부분을 보면 핑크가 일어나서 박수를 치기도 한다.[180] 2023년 6월 4일 기준[181] "I Will Always Love You"[182] "I Have Nothing"[183] "When You Believe", "I Wanna Dance with Somebody (Who Loves Me)"[184] "Greatest Love of All", "I Look to You", "Run to You"[185] "Higher Love", "How Will I Know", "Could I Have This Kiss Forever", "It's Not Right But It's Okay"[186] 2022년 3월 19일 기준[187] 영화 제목은 그의 2집 앨범 《Whitney》의 대표곡에서 따왔다.[188] 정확히는 입성하겠다는 의사를 5년 내에 밝히지 않아 자동으로 제안이 거부되었다.[189] 오죽하면 휘트니 부모님도 보수적인 생각을 버리라고 할 정도라고 했다.[190] 해당 공연은 <I'm Your Baby Tonight World Tour>에서 진행된 것으로, 1991년 3월 15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개최되었다.[191] 휘트니 난이도의 곡으로 댄스까지 하는게 말이 안되긴 하다.[출처A] #1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