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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후미 (압하스) Sukhumi |
러시아어: Суху́м(и)(Sukhum(i), 수후미 또는 수훔)
압하스어: Аҟәа(Aqʷʼa, 아콰)
조지아어: სოხუმი(Sokhumi, 소후미)
아르메니아어: Սուխում(Sukhum, 수훔)
튀르키예어: Sohum(소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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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압하지야 |
인구 | 65,439명 (2018년 기준) |
시간대 | UTC+3[1] |
수후미시 홈페이지[2] |
[clearfix]
1. 개요
캅카스, 동유럽 사이 지역에 있는 미승인국 압하지야의 수도이며, 흑해를 끼고 있는 항구 도시다.[3] 인구는 2011년 기준 62,914명. 소련 말기인 1989년에는 12만 시민 중 조지아인 41.5%, 러시아인 21.6%이고 압하스인은 12.5%에 불과했으나, 1992-93년의 압하스 전쟁을 거치고 난 2011년에는 주민의 67.3%가 압하스인이 되었다. 아르메니아인도 2011년 기준 주민의 9.8%를 차지하여 압하스인과 러시아인 다음으로 많은 인구수를 차지하고 있다.2. 명칭
외국에는 수후미로 알려져 있지만, 압하지야 정부에서 'ㅣ'는 접미사이기 때문에 수훔으로 불러달라고 요청하면서, 2008년 이후 러시아와 압하지야 쪽에서는 수훔이라고 쓰고 있다. 압하스어로는 '돌이 많은 해변'을 의미하는 아콰(Аҟәа)라고 불린다.3. 역사
1912년 수후미 전경 (컬러)고대 기원전 6세기 무렵 건설된 고도이다. 밀레투스 지역의 그리스인들이 흑해 동부 연안에 건설한 식민도시 '디오스쿠리아스'(Διοσκουριάς)가 그 기원이다. 그리스 로마 시기 콜키스 지역에서 번영을 구가하던 도시 중 하나였으나, 8세기 이슬람 세력의 침력으로 황폐화되었다. 이후 12세기 압하지야 공국의 중심도시가 되어 조지아 지역과 유럽을 잇는 항구도시로 다시 번성하였다. 중세 시대 이름은 '츠호미' 혹은 '츠후미'(ცხომი/ცხუმი)였는데, 이는 인근의 스반(Svan) 언어로 '서어나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4]
이후 16세기 오스만 제국이 서부 조지아 지역을 점령하고 소훔칼레(Sohumkale)로 불렸다가, 18세기 러시아 제국이 카르틀리 왕국의 요청으로 조지아 지역을 점령한 이후 정식적으로 '수훔'(Сухум)으로 불리게 되었다.
1917년 러시아 제국이 멸망한 이후 조지아 민주 공화국에 속하였다. 1922년 소련이 조지아를 재합병한 이후 자캅카스 SFSR 내 구성국 중 하나인 압하지야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가, 1931년 압하지야 SSR이 그루지야 SSR의 자치공화국으로 격하되면서 조지아의 도시가 되었다. 이에 따라 수훔이라는 명칭도 조지아어의 접미사가 붙은 '수후미'(Сухуми)로 불리어, 수후미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명칭이 되었다.
소련 붕괴 이후 압하지야 전쟁의 격전장이 되었고, 압하지야가 조지아로부터 사실상 독립한 이후 압하지야의 수도로 기능하고 있다. 소련 붕괴 직전 1989년 수후미의 인구는 11만명으로 트빌리시, 쿠타이시, 루스타비, 바투미에 이은 조지아 제 5의 도시였으나, 압하지야 전쟁 이후 조지아인이 대규모로 추방되고 인구가 급감하여 2018년 기준 인구는 6만 5천명 수준이다.
4. 기후
최한월인 1월에도 평균온도 5도로 따뜻한 온난 습윤 기후(Cfa)다.5. 교통
수후미 기차역에서 시작해 소치를 거쳐 러시아로 갈 수 있는 기차편이 존재한다. 소련 시대에는 기차로 조지아, 아르메니아 등 캅카스 지역으로도 갈 수 있었지만 현재는 폐쇄되었다. 수후미 항구를 통해 러시아로 갈 수 있는 부정기 여객선 편도 존재한다. 1996년까지는 튀르키예 트라브존과 통하는 여객선 편도 존재했었다.시가지에는 트롤리버스 노선이 존재한다.
6. 관광
흑해 동안의 온난한 기후를 갖춘 도시로, 러시아 제국 및 소련 시기부터 크림 반도, 소치 등과 함께 인기있는 휴양지였다. 비록 압하지야가 미승인국으로서 국제적으로 불안정한 지위에 있지만, 현재에도 러시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등 압하지야를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구 소련 국가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도시이다. 제3 국가의 국민이 관광을 위해 압하지야를 방문하게 된다면, 비자 신청을 완료하고 국경을 통과한 후 수후미 시의 압하지야 외교부 영사관을 방문하여 비자를 수령해야 한다.그러나 압하지야 전쟁으로 시가지의 상당부분이 파괴된 이후 아직 복구하지 못한 부분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압하지야 국회나 수후미 기차역 등은 압하지야 전쟁 이후 지금까지 복구되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다. 압하지야의 국경일에는 방치된 국회 앞 광장에서 대규모 행사를 하는데 방치된 건물의 쇠락한 모습이 대조를 이룬다.
7. 둘러보기
[1] 압하지야를 인정하지 않는 조지아에서는 자국의 시간대인 UTC+4로 인식한다.[2] 압하지야의 국가도메인이 없기 때문에 러시아 도메인인 .ru를 쓰고 있다.[3] 명목상 조지아의 도시[4] 남오세티야의 수도인 츠힌발리의 어원도 이와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