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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D1C27,#222222><colcolor=white> 행 정 구 역 | <colbgcolor=#ED1C27,#222222><colcolor=white> 상위 | 평안북도 |
하위 | 49동 9리 | |
주 요 인 물 | 대의원 | |
시당 | 오영철[1] (신의주시당 책임비서) | |
인민위 | 리정렬[2] (신의주시 인민위원회 위원장) | |
면적 | 180㎢ | |
시간대 | UTC+9 | |
인구 | 359,341명 (2008년)[3] | |
인구밀도 | 1,996명/km² (2008년) |
신의주 풍경 (2017년) |
[clearfix]
1. 개요
북한 평안북도 서북쪽에 위치한 도시이며, 평안북도의 소재지[4]이다. 면적은 180㎢. 인구는 2008년 기준 359,341명. 출처 2019년의 신의주 사진 2020년 외국인이 드론으로 몰래 촬영한 신의주2. 도시 구조
압록강 하안에 위치해 있다. 중국 단둥시를 조중우의교[5]와 압록강철교[6]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동북쪽으로는 의주군, 동쪽으로는 피현군, 남쪽으로는 용천군[7]과 접하고 있다.압록강에 가까운 곳에 공업 지대가 형성되어 있고, 그 안쪽으로 주택가가 있다.
신의주의 위성사진을 보면 제방 내부에 타원형으로 형성된 원도심과 남신의주 지역이 분리되었다. 신의주 구도심 일대는 지대가 워낙 낮아, 제방으로 보호되고 있다지만 북한의 낙후된 수방시설+무너지거나 넘치면 답이 없음은 마찬가지라 지금도 홍수가 나면 상습적으로 침수되기로 악명 높고 1995년, 2010년, 2024년에도 대홍수로 침수되어 버렸다. # 위화도 지역이 편입되었는데 이곳도 2024년에 큰 홍수 피해를 입어서 SNS를 통해 그 모습이 퍼지기도 했다.
그래서 북한은 제방으로 보호가 불가능한 원도심 외곽 저지대는 거의 개발되지 않은 채로 두고, 비교적 지대가 높은 남신의주 지역을 개발하였다. 80년대에는 아예 시 중심을 남신의주로 옮기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상업기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주택가격은 원도심의 10% 가량이다. 2010년대 중반에는 원도심 지역을 중심으로 정경유착 관계에 있는 신흥상인계층이 도시 개발에 관여하였다.
3. 기후
평양과 마찬가지로 냉대 동계 건조 기후에 속하여 연교차가 크다. 연 평균 기온 10.1℃, 1월 평균 기온 -6.2℃, 8월 평균 기온 24.5℃로 겨울 기온은 서울보다 약 8도 낮고, 여름 기온은 약 2도 더 낮다. 사실 1월 평균 온도만 놓고보면 철원(-5.5℃)보다 더 낮고 최저기온도 -26.0℃까지 찍었던 혹한 지대다. 물론 여기도 함경도 산간 내지 개마고원보다는 다소 따뜻하다. 하지만 비슷한 위도에 있는 지중해안 지역은 물론, 미국 뉴욕(0.9℃)과 비교하면 확실히 추운 곳이다.연 강수량은 1066㎜인데, 대한민국의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여름에 집중되며 겨울에는 극도로 건조하다.
4.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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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개발 이전까지 의주군과 역사를 같이하던 곳으로 고구려의 영토였던 것으로 보이나 고려 시대에는 거란족이 점령했던 강동6주 지역으로, 제1차 여요전쟁 당시 서희가 외교담판을 통해 되찾았다. 이후 19세기까지는 의주부 관할이었다.
원래 신의주라는 지명은 없던 지명이다. 일본이 1904년에 러시아와 러일전쟁을 하기 위해 경의선을 급조하면서 1905년에 '새로운(新) 의주'라는 뜻에서 만든 곳이다. 이 당시 행정구역은 의주군(의주부) 광성면 신의주동이었다. 신의주는 20세기 초만 해도 상습적으로 침수되는 저지대로, 농사도 포기한 버려진 갈대밭에 지나지 않았던 것을 일제가 대륙 침략 기지로 개발하면서 시가지 주위에 수차례에 걸쳐 이중으로 제방을 쌓아 시가지를 이루게 되었다. 1914년에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의주군에서 분리해 신의주부로 승격시켰다. 비슷하게 일제가 안주시에 세운 신안주도 있다.
존재하는 지역의 일부 혹은 외곽을 새로운 도시로 발전시켜 새로운 도시이름이라고 이름지었다는 면에서 영국령 인도에 의해 지어진 델리 북쪽 뉴델리시와 유사하다.
그런데 조선시대 의주부 지도를 보면 # 현 신의주 시가지 지역이 '고읍면'으로 편제되어 있다. 즉 정확한 시기는 불명이나 과거 의주의 읍치는 현 의주읍이 아니라 현 신의주 본시가지 혹은 인접지역에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과거 의주군의 소재지가 있었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 맞다. # 다만 현재의 신의주의 중심 지역에서 다소 동쪽(마전동, 삼교리 일대)에 떨어져 있다. 조선 중종 시기에 의주성을 새로 쌓는다는 기록이 있었으며#, 여러 시행착오 끝에 새 성을 쌓는 일이 1523년에 마무리된다. # 의주의 읍치는 그러다가 '주내면' 지역으로 바뀌었다. #
경의선 철도 때문에 의주군에 있던 평안북도청이 1924년 신의주로 이전되었다.
당초 신의주부의 관할 지역은 제방 안쪽 면적인 6.2 ㎢(여의도의 대략 2배)에 불과했으나, 1941년 행정구역 대확장으로 17.7배 확장된 109.7 ㎢로 면적이 크게 늘어났다.#
1945년에 8.15 광복을 맞으면서 신의주부는 신의주시로 개칭되었다. 1970년대 초반까지 '세계 최초의 반소 항쟁'이나 2.28 학생민주의거 같은 학생의 정신을 상징하는 의거로 기념된 신의주 반공학생사건이라는 봉기가 소련군정기에 일어나기도 했다. 20명 이상이 사망한 광복 이후 현재의 북한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일어난 것으로 확인된 최대의 시위다. 당시만 해도 신의주를 비롯한 평안도는 우익이 우세한 지역이었다. 다만 이곳의 경우 좌익에게도 아주 적대적이지는 않았지만, 그 봉기에서도 공산주의라는 미명하에 숨은 악덕 분자를 문제 삼았다는 시각도 있다. # 6.25 전쟁 때는 이북 5도의 다섯 도청 소재지 중 국군이 유일하게 점령하지 못한 도시였다.[8] 전쟁이 끝난 뒤로는 2~3년마다 행정구역이 바뀌었다.
1970년대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현지지도 교시에 의해 중앙에 의한 대대적인 개발사업이 진행되었다. 이 사업은 신의주를 국경 관문 도시, 다시 말해서 접대·선전용 도시로 건설하는 것을 목적으로, 연간 5천 세대 주택 건설, 신의주-남신의주 지하철 건설, 평양 금수산 여관에 준하는 대규모 여관 신설, 신의주공항의 민간공항 전환과 외국인 입국 초대소 설치 등의 세부계획이 수립되었다.
실제로 신의주시는 청진시나 함흥시처럼 직할시 승격 이력이 없음에도 1989년 12월 강안구역, 남구역, 광명구역 등 3개 구역이 설치되는 등 대대적인 개발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개발 과정에서 신의주가 대외 선전용 도시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이 내려져 이 개발사업은 흐지부지되었다. 1989년에 설치되었던 구역들 역시 1991년에 폐지되었다. 그래도 중국과 인접해있다는 특성 때문에 1990년대 이후의 북한에서는 상대적으로 잘사는 축에 드는 도시이기도 하다. 중국산 제품들이 신의주를 통해 평안도-황해도까지 이어지기까지도 하니.
김정일 시대 때 경제특구로 지정되어 북한의 홍콩으로 개발하겠다는 야심찬 목표 하에 중국인 사업가인 39세의 양빈이 전격적으로 부총리급 행정장관에 임명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으나 중국 측이 양빈을 체포하여 18년형을 선고하면서 물거품이 되었다. 물론 양빈이 부임했어도 딱히 경제적 메리트가 없는 신의주가 북한의 홍콩이 될리는 만무했겠지만. 이후 북한은 박태준에게 후임 장관 자리를 제시했다는 풍문도 돌았는데 결국 마땅한 후임자를 찾지 못하고 특구 지정이 해제되었다.
5. 인문
5.1. 경제
북중 무역의 80%를 차지하는 북한 내에서 관문 역할을 하는 도시다. # 북한에서 평양 다음으로 평성시와 더불어 2~3위 정도로 잘 사는 도시로 평가받는다. 청진시, 사리원시보다 시장화가 진전되어 있다는 국토연구원의 평가가 있다.모든 측면에서 사경제가 활성화되어 있으며, 주민 대부분이 사경제에 의존하여 생활하고 있다. 일부 공장이 운영되고 있지만 그것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며, 대부분의 주민들은 중국과의 무역과 이와 관련된 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권력층으로부터 무역허가(일명 '와크')를 받은 무역기관 종사자들이 신의주 경제의 핵심동력이라고 국토연구원이 평가한다. 부유층이 기존 권력자의 지위를 위협하는 현상마저 존재하는 곳이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방적, 직조, 염색 및 방적사와 고급 천을 생산하는 방직공업과 모직, 안감천, 담요, 편직물 등을 생산하는 편직물공업이 발달하였다. 이밖에도 신발, 화장품, 칠기제품 등의 생산도 활발하며, 아울러 중소규모의 공장에서 음식료품, 전기일용품, 수지용품, 학용품, 가구, 완구 등도 생산되고 있다. 중국에서 물건을 받아 가공하여 되파는 임가공업도 발달한 곳이다.
국토연구원이 밝힌 주요 공장으로는 기계부문의 낙원기계연합기업소, 신의주기계공장, 북중기계공장(종업원 1천~2천 명, 선박엔진생산), 신의주 화학섬유연합기업소(연간 인견스프 2만 톤, 종이 3만 톤 생산), 봉화화학공장(종업원 2천~3천 명), 신의주 마이신공장(종업원 500~600명), 신의주방직공장(종업원 2만여 명), 신의주편직공장, 신의주 신발공장 등이 있다.
도시의 중심부는 채하동, 오일동, 관문동 일대다. 2013년까지만 해도 '채하시장(현 남중동시장)'이라는 시장이 있었으나 위치를 이전하였고, 그 자리에 스케이트 공원이 들어서더니 2년 후에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국가가 주도해서 지은 아파트라기보다는, 남한으로 따지면 자본가가 자금을 조달해 아파트를 지은 것이다. # 중국 단둥시나 한국의 비슷한 규모의 도시와는 비교가 안 되지만, 그래도 기존 북한 이미지에서 다소 벗어나 있는 건물이 있다. 규모가 2배는 되는 청진시나 함흥시보다 더 공사 규모가 크다고 한다.
이곳 아파트는 관리비를 걷어 자체 발전기를 가동하며, 따라서 수도나 엘리베이터도 건설 초기와 달리# 이용이 가능한 수준으로는 운행할 수 있다. # 중국에서 잘 안 보이는 곳까지 아파트가 지어진다고 한다. # 2019년에는 뼈대만 있는 아파트가 15만 달러라는 주장까지 있었다. # 다만 북중 교역의 양과 당국의 개발 관여에 따라 가격이 널뛰기 한다고 알려져 있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관문동, 청송동, 본부동, 신원동, 백사동, 하하동, 송남동, 개혁동, 남중동에는 부유한 계층이 거주하고 있다. 본부동, 관문동에는 무역하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개혁동, 송남동, 채하동은 유통업 밀수를 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본부동에는 도당 아파트가 있어 간부들이 밀집해 있다. 신의주 시가지의 동편과 서편은 홍수 침수가 잦아 빈곤계층이 거주하고 있다.
상업적인 중심지로 불릴 만한 곳은 없으나 시장 6곳이 있다. 통일연구원에 따르면 남중동시장은 규모가 너무 커져서 규모 확장을 위해 이전한 것이라고 한다. 이름이 바뀌어도 채하시장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 남신의주시장: 풍서2동 소재, 면적 6,553 ㎡
- 락원1동시장: 락원1동 소재, 면적 1,443 ㎡
- 신포동시장: 신포동 소재, 면적 2,711 ㎡
- 친선1동시장: 친선1동 소재, 면적 3,507 ㎡
- 남중동시장: 남중동 소재, 면적 1만 1,797 ㎡
- 연하동시장: 연하동 소재, 면적 865 ㎡
2019년까진 괜찮게 돌아갔으나, 코로나19가 발병한 후 1년이 지나자 시장의 판매대의 절반 이상이 비어버렸다고 한다. #
허나 빈부격차가 극심한 것으로 보인다. 2024년 압록강 유역 대홍수 당시 침수된 신의주의 모습만 봐도 확인 가능하다.
5.2. 신의주특별행정구
자세한 내용은 신의주특별행정구 문서 참고하십시오.2018년 이후 형해화되었다. 문서 참조.
5.3. 관광
서방국가의 외국인들에게 관광이 개방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 물론 남한에서 하듯 자유관광은 아니고 당일치기 단체여행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또, 중국인 관광객들에 한해서 당일치기 단체여행의 비자면제를 해주며 여권 대신 중국 신분증을 이용할 수도 있다.단둥시에서 통행증만 있으면 자기 차 몰고 신의주 관광하는 것과 유람선을 타고 단둥과 신의주를 오가는 것이 검토 중으로 알려져있다.#
현재는 중국인도 신의주관광은 불가하며 그저 유람선(작은 보트이다)을 타고 강가 한바퀴를 둘러보는 것이 끝.. 그나마 남아있는 관광도 직접 신의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 멀리서 가이드가 중국어로 해설을 해 주는 정도이다.
6. 교통
목포에서 출발한 한국 1번 국도의 명목상 종점이 있다. 다만 남북분단으로 인하여 실질적인 종점은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까지이다. 서울에서의 육로 거리는 약 500㎞. 직선 거리는 360㎞[9] 이다. 이곳에 있는 신의주청년역은 한국 경의선의 명목상 종점이다.북한에서 평양, 라선 다음으로 2016년쯤에 세 번째로 택시가 운영된 곳이다. # 신의주-평양 항공편을 구매하면 공항까지 택시 서비스가 있다고 한다. # 2018년에는 휴대전화를 이용하는 콜택시가 등장하였다. 일반 택시보다 3배 비싸다고 한다. # 자가용은 제도적인 특징으로 이용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10]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 301번 시내버스가 신의주시까지 들어온다. 다만 국경을 넘나드는 버스인 만큼 타 교통수단과 마찬가지로 엄격한 출입국 심사를 마쳐야 하고, 주로 화물 운송에 쓰여 일반적인 시내버스라고 볼 수는 없다.
7. 기타
- 혜산시, 개성시[11]와 더불어 북한에서 한류가 많이 퍼지는 곳이라고 한다. 한국 문물이 담긴 USB, SD카드가 많이 돌아다닌다고 알려져 있다. 2019년에는 한국의 방송을 어린 아이들부터 노인들까지 몰래 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1990년대생 이전은 국가가 단속하면 피하지만, 그 이후 세대는 반항을 한다고 한다. 한국물을 많이 먹고 자라서 '말하는 것부터 다른 지역과 많이 다르다.' 라는 주장이 존재한다. #
- 2023년에도 항저우 아시안 게임을 검열에 대비해 숨겨놓은 액정 텔레비전을 통해 중국 채널 등을 몰래 시청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당국이 숨긴 한국팀에 대한 북한 대표팀의 패배를 알았고, 북한팀을 비난했다고 한다. 국가보위성은 자신이 심은 밀고자를 통해서 이런 사람들을 잡아들였다고 한다. #
- 한국에서는 유독 순대국밥집 이름으로 많이 쓰이는 지명인데, 2006년 정흥순 명인이 '신의주찹쌀순대'라는 순대국밥집을 열고 프랜차이즈화가 된 이래 해당 체인점과 유사 점포가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해 있다. 이 때문에 신의주찹쌀순대는 아예 브랜드 이름을 '거성 신의주'[12]라고 짧게 줄여버렸다. 그런데 정작 신의주는 찹쌀순대로 그다지 유명하지 않다고 한다.[13] 신의주찹쌀순대 홈페이지에도 왜 이름이 신의주인지는 안 나와 있다.
참고로 인근 의주는 전통적으로 중국과의 주요 교역지점이었던 터라 중국에서 넘어와 토착화된 왕만두로 유명했다. 평안북도가 원래 꿩이 많이 잡히는 동네이기도 하다.
- 2021년에 북한이 신의주시에 철책, 경비초소를 늘렸다.#
8. 남북통일 이후 전망
통일이 된다면 중국과의 무역으로 라선시와 더불어 가장 많은 이득을 볼 뿐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주목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바로 중국 본토와 직접적으로 맞닿은 대도시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수도 베이징시와 근접한 지역이라 통일이 될 경우, 중국 정부가 민감하게 여기게 될 곳이다.[14] 물론 국경지역이라 무턱대고 최전방화한다면 중국이 불쾌하게 여길 것이 뻔한 관계로[15] 이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할 것이다. 사실 중국과의 직접적인 문제보다도 중앙아시아, 심지어 아프리카에서 국경을 넘어와서 대한민국 또는 일본으로 밀입국하려는 캐러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높은데, 신의주 부근에는 당연히 법무부의 검문이 심할 것이고, 부산과 목포, 광양 등지로 가는 길목마다 법무부가 검문을 서서 불법체류 외국인들을 검문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신의주는 중국 입장에서도 자국이 국경을 접한 외국 도시들 가운데서 가장 큰 도시다. 하바롭스크만 해도 중러국경에서 20km 넘게 떨어져 있는 데 비해, 신의주는 단동 도심과 강을 끼고 바로 맞닥뜨려 있다.
이러한 시나리오와 비슷한 사례가 중국과 접경한 대도시이자 요충지이면서도 일국양제로 중국 본토와는 다른 체제를 적용받고 있는 홍콩인데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자 일단 중국의 영토이기 때문에 중국 측에서 국가안전법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제압했지만, 상술한 상황이 이루어졌을 경우의 신의주는 대한민국의 영토일 것이기 때문에 중국의 그러한 방법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것을 생각해보면 통일이 이루어질 경우 한국이 아니라 오히려 중국 측에서 국경을 막으려 할 가능성도 있기는 하다. 다만 이럴 경우, 단둥시측의 반발이 심할 것이다. 사실 단둥시를 비롯한 동북 3성은 중국 경제성장의 결실을 공유하지 못한 곳인데다 통일 한국과의 경제협력및 무역이 중요해질 곳이여서 이를 무시할 수도 없다.
한편 경제적인 면으로는 중국의 심장부와 근접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까닭에 대중국 무역에서 상당한 강세를 나타낼 지역이다. 신의주가 다른 이북의 도시들보다 이점을 가지고 있는 점이라면, 바로 중국 접경에 위치한 도시들 중에서 가장 큰 도시라는 것이다. 나진의 경우 낭림산맥이라는 험지로 인해 개발시간이 걸린다는 게 걸림돌이 되어 있음을 생각해 보면, 상당한 이점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신의주 지역이 국경분쟁의 장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신의주 일대[16] 국경 귀속문제는 이미 일제강점기에 다 끝이 난 상태다. 황금평은 이미 1926년에 조선 소속으로 확정된 곳인데다가 이를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도 인정한 마당에 분쟁이고 뭐고 근거가 전혀 없다. 오히려 북한 당국에서도 위화도와 묶어 중앙급 경제지대로 육성하고자 하고 있고, 중국도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국경분쟁 가능성은 없다고 보면 된다. 황금평 귀속문제가 궁금하면 이 두 연구를 참고하자. 설령 일제강점기 이후 중국측이 북한에 넘겨준 영토가 있다 하더라도 북한은 국제법적으로 승인된 국가로 그 외교적 행위는 남한이 국내법적으로 북한을 보는 관점과 상관없이 인정된다.
또한 KTX 경의선의 최북단역이자 종착역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기존에는 남북분단으로 인해 사용할 수 있는 경의선 구간은 서울역에서 도라산역까지 고작 약 56km에 불과했지만 통일 이후에는 휴전선이 뚫려 서울역에서 신의주역까지 약 500km[17]가 되어 경부고속선 기준, 부산역에서 신의주역까지 KTX로 갈 수 있게 된다. 이때 거리는 약 900km로 KTX로도 5시간에서 5시간 30분이 소요되며,[18] 구형 새마을호로 간다면 약 9시간, 자동차로 간다면 약 12시간 이상 소요되는 엄청난 거리이다.[19]
9. 신의주시의 하위 행정구역
- 2004년 기준이며 그 이후의 기준과는 다를 수 있다.
2023년 7월 15일에는 '신선동'이라는 지명이 언급되었고, 2020년에도 이 근방의 '신선초급중학교'에 대한 기사가 보도되었다. #
9.1. 동(洞)
- 원도심 일대 (옛 강안구역)
- 신원동 新元洞
- 본부동 本部洞
- 압강동 鴨江洞
- 청송동 靑松洞
- 역전동 驛前洞
- 백사동 白沙洞
- 근화동 芹花洞
- 채하동 彩霞洞
- 오일동(5·1동) 五一洞
- 남중동 南中洞
- 남상동 南上洞
- 남서동 南西洞
- 백운동 白雲洞
- 개혁동 改革洞
- 남송동 南松洞
- 신남동 新南洞
- 남하동 南下洞
- 해방동 解放洞
- 평화동 平和洞
- 신포동 新浦洞
- 민포동 敏浦洞
- 수문동 水門洞
- 평의선 동쪽의 동 (옛 광명구역)
- 마전동 麻田洞
- 동하동 東下洞
- 동중동 東中洞
- 동상동 東上洞
- 친선1동 親善1洞
- 친선2동 親善2洞
- 방직동 紡織洞
- 고성동 古城洞
- 연하동 煙下洞
- 선상동 仙上洞
- 관문동 關門洞
- 남신의주 일대 (옛 남구역)
- 련상1동 蓮上1洞
- 련상2동 蓮上2洞
- 류상1동 柳上1洞
- 류상2동 柳上2洞
- 와이동 瓦耳洞
- 락원1동 樂元1洞
- 락원2동 樂元2洞
- 송한동 送瀚洞
- 석하1동 石下一洞
- 석하2동 石下二洞
- 풍서1동 豊西一洞
- 풍서2동 豊西二洞
- 백토동 白土洞
- 남민동 南敏洞
- 락청1동 樂淸1洞
- 락청2동 樂淸2洞
9.2. 리(里)
- 압록강의 하중도의 리
- 다지리 多智里
- 상단리 上端里
- 하단리 下端里
- 류초리 柳草里
- 남신의주와 인접한 교외 지역
- 중제리 中齊里
- 삼교리 三橋里
- 삼룡리 三龍里
- 토성리 土城里
- 성서리 城西里
10. 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
{{{#!wiki style="margin:-12px -0px" | <tablebordercolor=#003764> | }}} | ||||||||
{{{#!wiki style="color: #fff; margin: -0px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or: #181818" | 시 | 신의주시 | ||||||||
군 | 의주군 | 용천군 | 철산군 | 선천군 | 강계군 | |||||
정주군 | 박천군 | 태천군 | 영변군 | 자성군 | ||||||
운산군 | 구성군 | 창성군 | 벽동군 | 후창군 | ||||||
삭주군 | 초산군 | 위원군 | 희천군 | |||||||
명목상 도청소재지 : 신의주시 | }}}}}}}}} |
<colbgcolor=#14223F><colcolor=#ffffff> 시청 소재지 | 신의주시 앵동 | ||
상위 행정구역 | 평안북도 | ||
하위 행정구역 | 49동 9리 | ||
면적 | 9.63㎢(1945년) | ||
인구 | 127,535명(1943년) | ||
인구밀도 | 1,996/㎢(2008년) | ||
명예시장 | 장경운 (제22대) | ||
명예동장 | 10석 | ||
홈페이지 | 이북5도위원회 신의주시 소개 |
현재의 행정구역은 49개 동과 9개 리(상단, 하단, 중제, 삼교, 삼룡, 토성, 성서, 다지, 류초)로 되어 있다. 신의주에는 평안북도 예술극장, 경기장, 영화관, 도서관, 유원지가 있으며 차광수신의주제1사범대학, 신의주제2사범대학, 신의주교원대학, 신의주의학대학, 신의주농업대학을 비롯한 전문학교, 인민학교, 고등중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의료시설로는 신의주의학대학병원과 신의주 제1병원이 있다.
행정동 | 법정동·리 | 비고 |
낙화동(樂化洞) | 낙원동(樂園洞)·낙청동(樂淸洞)·미륵동(彌勒洞)·연상동(蓮上洞)·창포동(倉浦洞)·토교동(土橋洞)·풍서동(豊西洞)·풍하동(豊下洞)·하동(霞洞)·화평동(化坪洞) | |
남산동(南山洞) | 남재동(南齋洞)·대화동(大和洞)·동재동(東齋洞)·서재동(西齋洞)·석상동(石上洞)·석중동(石中洞)·석하동(石下洞) | |
마본동(麻本洞) | 남민동(南敏洞)·동마전동(東麻田洞)·마전동(麻田洞)·민포동(敏浦洞)·본부동(本部洞)·서마전동(西麻田洞)·욱동(旭洞) | |
상반동(上攀洞) | 상반동1가(上攀洞1街)·상반동2가·상반동3가·상반동4가·상반동5가·상반동6가·상반동7가·상반동8가·상반동9가·연제동(煙諸洞) | 시청 소재지 (상반동4가) |
서연동(書煙洞) | 남미륵동(南彌勒洞)·동초동(東草洞)·백사동(白砂洞)·서당동(書堂洞)·성외동(城外洞)·수문동(水門洞)·연대동(煙臺洞)·정심동(正心洞)·토성동(土城洞) | |
신탑동(新塔洞) | 동중동(東中洞)·송한동(送鷴洞)·신평동(新坪洞)·유초동(柳草洞)·탑상동(塔上洞)·탑중동(塔中洞)·탑하동(塔下洞) | |
약초동(若草洞) | 매지동(梅池洞)·약죽동(若竹洞)·와이동(瓦耳洞)·운정동(雲亭洞)·창동(倉洞)·초음동(草陰洞)·향교동(鄕校洞) | |
영빈동(榮濱洞) | 빈동(濱洞)·앵동(櫻洞)·영동1가(榮洞1街)·영동2가·영동3가·영동4가·영동5가·영동6가·영동7가·채하동(彩霞洞) | 도청 소재지 (영빈동) |
용서동(龍西洞) | 대석동(大石洞)·서린동(西麟洞)·선상동(仙上洞)·선하동(仙下洞)·용상동(龍上洞)·용연동(龍淵洞)·용하동(龍下洞)·중재동(中齋洞) | |
진사동(津沙洞) | 노송동(老松洞)·녹동(麓洞)·압천동(鴨川洞)·진사동1가(津沙洞)·진사동2가·진사동3가·진사동4가·진사동5가·진사동6가·진사동7가 |
연혁
- 조선 말기: 방(坊)을 면(面)으로 개칭하면서 광성면·고읍면·진리면으로 개편
- 광성면: 동초동·마전동·미륵동·민포동·백토동·서당동·성외동·수문동·신의주동·연대동·연상동·와이동·유초동·정심동·토성동·풍서동·풍하동·화평동
- 고읍면: 구장동·남재동·대석동·동린동·동재동·서린동·서재동·연제동·용상동·용연동·용하동·중재동·창동·향교동
- 진리면: 낙원동·낙청동·남미륵동·석상동·석중동·석하동·선상동·선하동·송한동·창포동·탑상동·탑중동·탑하동·토교동
- 1914년 4월 1일: 부군면 통폐합
- 광성면 미륵동·민포동·신의주동의 각 일부가 신의주부로 승격, 의주군에서 분리.
- 당시 신의주부: 노송정·녹정·대화정·매지정·본정·빈정·상반정·압천정·앵정·약죽정·영정·욱정·운정정·진사정·초음정·하정
녹정 | ||||||||||
압천정 | 빈정 | 본정 | 상반정 | 영정 | 진사정 | 노송정 | 매지정 | 약죽정 | 초음정 | 하정 |
대화정 | 욱정 | 앵정 | 운정정 |
- 고읍면과 진리면이 합병되어 고진면 출범, 고읍면 구장동·동린동은 위원면에 편입, 용상동 일부가 남미륵동에 편입.
- 1929년 4월 1일: 광성면 마전동(일부)·미륵동(일부)·민포동(일부)가 신의주부에 편입.
- 1941년 4월 1일: 광성면, 고진면 전체가 신의주부에 편입.
- 광복 직후 본정이 본부동으로, 압천정이 압강리로, 노송정이 청송리로, 매지정이 한매리로, 약죽정이 설죽리로, 진사정이 백사리로, 초음정이 근화리로, 하정이 채하리로, 운정정이 백운동으로 개칭.[20]
11. 출신 인물
12. 참고 자료
- 북한의 도시계획 및 도시개발 실태분석과 정책과제(국토연구원)(2016): 신의주에서 2016년, 2014년 탈북한 무역 종사자 출신 탈북자의 구체적인 증언이 있다. 북한 문헌도 참고하여 구체적인 신의주의 지도도 첨부한 보고서다.
[1] 2022년[2] 2022년[3] 통계청 북한통계(2008년).[4] 중심지에 대한 자세한 개념은 북한/행정구역 문서 참조. 북한에서는 단일한 지점으로 나타낼 수 있는 행정중심지가 존재하지 않는다.[5] 도로교.[6] 남만주철도 철교.[7] 1945년 광복 당시 기준으로는 북쪽으로 의주군, 남쪽으로 용천군.[8] 청진시는 11월 25일 일시 점령.[9] 남한 기준 전라남도 해남군 땅끝마을, 완도군, 진도군 서쪽 끝(정확히 말하면 진도항), 흑산도, 경상남도 거제시 남쪽 앞바다와 비슷한 거리에 있다. 그래도 북중국경 도시 중에서는 서울에서 제일 가깝다.[10] 생활 시설을 계획적으로 배치하는 사회주의 경제라는 구실을 들어 자가용을 허용하지 않고 있으나, 소련, 동독 등에서도 라다나 트라반트 같은 자가용을 보급하고는 했다. 정작 특권계층만 자가용, 그것도 자본주의 국가의 벤츠 같은 것을 대놓고 선물 받는 지경이라 자원을 통제하여 권력을 공고하게 하기 위함이 더 크다.[11] 개성공단으로 한국 국적자와 접촉한 사람이 많았고, 가동 중단 이후에도 한국 것을 찾는 수요가 강하다고 알려졌다.[12] 법인명이 (주)거성푸드다.[13] 출처 : 주성하 기자의 글.[14] 특히 라선과 신의주는 미국과 중국이 눈에 불을 켜고 집중할 이북 도시들이란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때문에 통일 후 이 두 지역은 미.중 두 강대국들의 첨예한 신경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이것에 대한 대비가 상당히 필요할 것이다. 특히 라선은 러시아 극동지방과도 연결이 된지라 미.중.러의 강대국간의 신경전도 벌어질 수 있다.[15] 때문에 국경을 대비하기 위한 경찰력이나 국경수비대로 충분하다.[16] 황금평 포함[17] 정확히는 약 486km[18] 참고로 현재 무궁화호로 서울-부산이 5시간 30분이 소요되며, 90년대 구형 새마을호로도 최단 4시간 10분이 소요되었었다.[19] 소위 말하는 서울에서 부산이 신의주에서 부산으로 바뀔지도 모른다.[20] 이외에 평안북도청 소재지를 근거로 하여 앵정이 신원리로 개칭된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