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15:28:02

한국군 병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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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명칭3. 특징4. 안전성5. 대한민국 국군 병영식의 역사
5.1. 6.25 전쟁 이후5.2. 1970년대5.3. 1980년대5.4. 1990년대5.5. 2000년대5.6. 2010년대5.7. 2020년대 이후
6. 문제점
6.1. 맛이 없는 이유는?6.2. 군납비리 및 군수비리6.3. 기타
7. 예비군의 병영식8. 결론9. 육군, 해군 육상부대, 공군 비행단 병영식10. 육군, 공군 비행단 외 기타 병영식11. 각종 루머
11.1. 정력 감퇴제 투입 루머11.2. 전염병과 육식11.3. 교도소소년원 배식과의 비교
12. 사건 사고1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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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국군의 병영식과 그 역사, 문제점이다.

2. 명칭

대한민국 국방부 정식 명칭은 병영식이다. 하지만 실제 언어생활에선 "짬밥"이 압도적인 편이다. 앞글자만 따서 ''이라고도 한다. 병영식이라는 말을 아예 못들어본 사람도 꽤 많을 정도. 심지어 한국군의 병영식 상세 항목은 문서에 등재되어 있었다.

군대 밥이 '짬밥'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설들이 있다.
  • 고참을 지칭할 때의 ''의 발음이 변형되었다는 설.
  • 1960년대 이전에는 식판이 없이 커다란 주발에 밥과 반찬을 배식한 뒤 국을 거기에 끼얹어 먹는 게 일반적이었고, 이것을 짬뽕밥이라고 불렀고 이게 축약된 게 짬밥이라는 설. 당시 원칙상 인당 양재기(주발) 두 개였지만, 증언에는 고참들이 반찬 주발과 국주발을 더 쓰면서 후임병들은 자연히 주발 하나에 밥과 국과 반찬을 모두 넣어먹어야 했다고 한다. 실제 플라스틱 식판 도입은 1960년대 중반이지만 완전 도입은 1970년대 중반이라고 한다. #
  • 남은 음식을 뜻하는 '잔반'[1]이 변형된 것이라는 설.
  • 솥에서 짓는 밥이 아니라 증기로 쪄서 만드는 군대식의 '찐 밥'에서 유래되었다는 설.[2]
  • 보통 노가다 등을 하면 나오는 점심식사를 새참 혹은 줄여서 참이라고 부르는 데 여기서 유래했다는 썰.

한편 약칭인 짬이라고 할 경우에는 '먹고 남은 음식쓰레기'의 의미가 부가적으로 생기며 이를 이용해 짬처리, 짬통 등의 어휘도 쓰인다. 짬을 수거해서 [3]돼지 사료로 쓰기 위해 부대와 계약한 민간인들이 있는데 이들은 보통 짬아저씨라 불리며 이들은 트럭에 커다란 짬통을 싣고 이 차는 짬차라 불린다. 지휘통제실마저도 "짬차 들어왔습니다" 하며 보고된다. 일부 부대는 용어가 좋지 못하다 하여 잔반수거차량이라는 불편한 용어를 쓰기도 한다.[4]

이 용어는, 징병제로 인해 군 출신자가 많은 한국에선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조차 잔반이나 음식물쓰레기를 뜻하는 말로 널리 쓰고 있다. "짬 시켜라" 라는 말은 "니가 알아서 파 묻으라"는 뜻으로 쓰이며, 나쁜 용례로는 은폐 축소 등을 포함한다. 이는 군대 나온 민간인들은 다 알아들으며, 사회에서도 심심찮게 쓰인다.

3. 특징

대규모의 인원에게, 한꺼번에, 일정한 식단을, 규칙적으로, 효율적으로, 위생적으로, 영양을 고려해 배식한다. 즉 급식이다. 물론 때문에 먹는 사람들의 만족도는 희생되기 마련이다. '짬내' 라는 표현이 있는데, 온갖 음식의 냄새가 대규모로 섞여 풍기는 형용하기 힘든 쇠 비슷한 냄새와 열기가 그것이다. 좋은 냄새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는 의외로 초중고교 시절 급식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한국군의 1일 급양비는 2022년 7월 기준으로 1인당 13,000원으로 배정되어 있어, 끼니당으로 보면 4,333원이다. 출처 병의 경우 3끼를 다 먹는데 영내 생활하는 군인들은 병영식을 먹을 수 없는 불가피한 사유로 지휘계통의 허가를 받지 않는 한 병영식을 먹어야만 한다.[5] 그렇기 때문에 급식전표를 작성해 식사를 했는지 체크하는 부대, 추가 배식 및 잔반 배출을 제한하거나 아예 금지한 부대도 있다.
사실 급양비만 놓고 보면 짬밥이 맛없을 이유는 없다. 통상 식당에서 사먹는 음식의 식재료비는 판매 가격의 3할에서 4할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재료비 4333원은 식당에서 만원에서 만오천원 사이의 음식을 사먹는 것에 해당하기 때문.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이론 상 그렇다는 것이고, 요리랑 별다른 연이 없는데 차출된 조리병의 기술 부족, 비효율적인 급양표, 식재료 수급에 생기는 자잘한 차질 등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당연하게도 식사의 질이 추락한다. 결국 급식의 질은 급양관과 조리병들이 일을 얼마나 잘 하는지에 달려있는 것. 만약 급양비 자체가 터무니없이 적은게 문제라면 밥이 맛있게 잘 나오는 부대 따위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6]

한 달에 6번 정도, 즉 1주일에 한두 번은 군대리아가 나온다. 원칙적으로 영내거주 중인 하사나 양성과정 중인 후보생 신분 외 간부들은 병영식을 먹지 않기 때문에, 저 비용을 매달 수당 형식의 부식비로 받고 대신 자비로 밥을 사 먹어야 하며, 밥 먹을 일이 있으면 미리 신청을 해야 한다.

지금도 그런 악습이 남아 있는 부대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상적인 부대는 각 간부들이 영내 식당에서 밥을 먹은 횟수를 정리해서 달마다 정산하게 되어 있다. 자율보고식의 경우 적당히 낮춰서 보고해서 한두 푼 아끼는 수준은 가능해도 몽땅 떼어먹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정산은 행정병이 한다.

일부 당직자, 출동중인 함정이나 독립된 소부대라 간부들에게 식사를 판매하는 식당이 없는 곳, 병들과 거의 영내생활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간부들은 부분적 혹은 매 끼니 영내 식사를 할 수 있다. 이런 곳은 아예 부대 여건에 따라 매일 일정 끼니 수를 자동으로 영내에서 먹은 걸로 간주하고 부식비에서 까버리기에 안 먹으면 영외거주자 개인의 손해다.

육군 훈련병들은 조교들의 지시하에 '식사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하고 식사를 시작하게 했는데, 2020년 들어서 점점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감사해야 할 사람은 청춘을 희생하는 군인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들인데 왜 군인들이 감사의 기도를 해야 하느냐' 라는 논지의 커뮤니티 게시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해공군 훈련병들은 별도의 구호 제창 후 식사한다.

그래도 육군 병영식이 그나마 맛있게 나오는 경우는, 바로 간부식당과 병사식당이 합쳐져 있어 간부나 병사나 같은 밥을 먹게될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보통 식수 인원이 매우 적다는 뜻이고, 이는 식사의 양보다는 질에 조금이라도 더 신경을 쓸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 이런 곳이 지나치게 맛없으면 매일 같이 먹는 간부도 불평하기 때문에 맛없게 만들래야 만들 수가 없다. 해군 함정 병영식과 공군 대부분의 방공포대와 몇몇 정비대,[7] 사이트 병영식도 사정은 비슷하다.

2021년도 들어 식재료 납품에 있어서 위생문제가 지적되었음에도 입찰 경쟁을 벌여서 수입산 식품 위주로 편성될 수 있다는 우려를 사고 있다. # 이미 수입산 농수산물이 74.6%를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기사도 올라왔다.

4. 안전성

후술될 질이나 양의 문제점은 있지만 그래도 급식의 필수요소인 '안전성'은 높은 편이다. 군에서 식중독 사고가 난다면 곧바로 전투력 손실로 이어지고, 특히 부대 내에서 같은 밥을 먹는 군의 특성상 한두명이 아니라 부대원의 대부분이 식중독에 걸리게 되기 때문에 부대 전체가 마비되는[8]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식재료의 보급단계부터 철저한 관리와 검사가 있으며[9] 보급 후 식수하는 부대 내에서 조리가 완료되면 조리한 음식을 덜어 혹시나 있을 식중독 사고를 대비해 조사용 샘플로 보관하게 된다.[10] 게다가 육류나 어패류는 기본적으로 냉동상태로 유통되고, 조리 시에도 반드시 볶거나 삶거나 튀기거나 졸이는 등 멸균 효과가 높은 조리법을 고수한다.[11] 이렇게 굉장히 엄격하게 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식중독은 커녕 유당불내증이나 알레르기, 혹은 과식(주로 PX에서)을 하는 게 아닌 경우에는 배탈조차 나기 힘들다. 물론 전술했듯 병영식 특성상 진짜로 군 내에서 식중독 사고가 났다 하면 언론에 대서특필될만한 초대형 사고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확실하게 안전하다 할 수는 없는데 군 내에서 의외로 식중독 사고는 부대마다 소소하게 생긴다. 식중독이 터진 부대가 얼른 조치하거나 환자가 적어서 언론에 일일이 나지 않을 뿐이다. 또한 조리인력의 비전문성으로 인해 식품 변질이나 위상 관련 미준수율도 높다. 그도 그럴 것이 병영식을 조리하는 사병식당에 가 보면 확실히 청결하다는 느낌은 거의 안 든다.

5. 대한민국 국군 병영식의 역사

대한민국 국군은 사실 해방 이후 여러가지의 군사 단체가 난립하던 도중[12] 미 군정의 주도 하에 한반도 남부의 치안 유지를 위해 나머지 단체를 해체/흡수하여 만들어진 단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군+만주군+국민혁명군 군기[13][14]와 미국식 장비가 혼재한 상태에서 시작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군인복무규율도 1965년이 되어서야 제정되었으며 군 공통 조달 시스템도 1970년이 되어서야 확립된다. 그 전까지는 각 군의 군위부대, 각 군 본부, 국방부 합동조달본부에서 각각 따로 물품을 조달했다. 그래서 1980년대까지 설치되어 있던 것이 군관구사령부였다.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진 군대다 보니 창군 당시부터 매우 부실하게 구성된 것이 있었는데 바로 급양이었다. 이상하게도 "군인은 좀 굶어도 되는 사람들" 이라거나 "군대는 원래 춥고 배고픈 곳", "군대는 편하면 안 되는 곳" 이라는 개념이 뿌리박힌다. 사실 유교문화권 자체가 문치주의의 폐해로 인해 사고방식이 대체로 이랬다. 중국의 경우도 '좋은 사람은 군인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군을 천시했다. 일본은 한술 더 떠서 어떤 장교라는 인간이 길가에 풀을 뜯어먹으며 싸우자는 되도않는 소리까지 했을 정도이다.[15]

심지어 이런 '사소한' 문제를 제기하면 "나라 지키고 싸워야 되는 사람들이 이런 걸로 불평해서 적군 쳐들어오면 어떻게 싸우겠단 거야?"라는 유서 깊은 똥군기 드립이 내리꽂힌다.

사실 급양과 관련해서는 이른바 똥군기에 무개념이라는 구 일본군조차도 1930년대 이후로 외형상으로는 군인들에겐 최소한 밥 한끼라도 먹여주려고 노력했던 편이다. 특히 일본 육군보다 일본 해군의 식사가 훨씬 더 양질이었는데, 대형 함선의 경우 고급장교들이 자기들 잘 먹으려고 여객선 요리사나 주방장 등을 함선 조리병으로 투입해서 식사를 만든 점, 일본 해군이 참고를 많이했던 영국 해군 식사가 육류 배식에 신경 쓴 점이 많은 작용을 했다. 전함 야마토 승무원의 수기 중에 주말에 카레라이스와 사과가 들어간 마카로니 샐러드를 먹으면서 '내가 이런 훌륭한 음식을 먹어도 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라는 게 있었다.[16] 이 때 일본은 한창 막장으로 치달아가는 전시상황이라 한창 궁핍했을 때였고, 야마토 승조원들이 이렇게 잘 먹는 동안 일본 본토에서조차 굶어죽는 민간인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물론 일본군의 보급은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도 이미 특정 부대나 주둔지 등 특수한 곳에서만 정상적이었고, 전장 등 나머지 장소에서는 기본적인 보급 상태가 타 국가와 비교하자면 굉장히 열악했지만 그래도 보급 체계가 붕괴된 시점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 중인 1943년부터이다. 물론 이 보급 체계의 공급을 위해서 식민지 등에서 수탈까지 병행한 상황이었지만 중일전쟁태평양 전쟁 등으로 너무 늘어난 병력 수, 제공권과 제해권을 잃어 보급품 수송에 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보급 능력 자체가 무너지면서 아무거나 먹어야 하는 상황이 오고 말았던 것이다.

일본군이 조선인 지원병을 받기 시작한 것이 중일전쟁 이후인 1938년이고 그 이후 특별지원병 제도가 점점 확대되다가 조선인에게 징병제가 실시된 것이 1944년이다. 즉, 일본군이 막장 수준이 되었을 때 일본군에 입대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 그러다보니 그 막장 일로를 달리던 당시 일본군의 군기 문화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한국군의 간부로 임명되어서 한국군에 똥군기를 전수시킨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물론, 꽤 많은 똥군기가 짬밥 냄새도 제대로 못 맡아본 사람들에 의해 저지른다는 점을 봤을 때,[17] 그냥 윗선 편하려고 갖다 붙인 거겠지만. 따지고 보면 그냥 군대를 천시하던 유교문화가 일제와 군사독재 시대를 거치며 해방 이후로 존속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제의 군국주의 체제로 징발과 착취를 겪고 6.25와 군사독재를 겪으면서 군에 대한 인식이 더욱 나쁘고 편협해졌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인식이 나쁠수록 관심 역시 멀어지니 군대에 문제가 생겨도 '군대는 원래 그런 시궁창임'이라고 넘어가 버리는 것이다.

아무튼 창군 초기의 급양 관리 실태는 엉망이었다. 국방경비대 시절 이등병으로 입대하여 장군으로 전역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인물인 최갑석 장군의 회고록에 따르면 식사라고 나온 게 찰기 없는 부실한 밥에 콩나물이나 무가 한두어 개 떠다니는 된장국이 전부였다고 한다.# 여러 증언에 따르면 당시에는 식기도 변변치 않아서 그냥 반합에 먹거나 주발에 넣어서 먹었다고 한다.

실제로 당시 쓰던 '밥그릇'이 종종 동묘공원 근처 시장 같은 곳에서 발견되곤 하는 것 같다.# 단기 4293년이니까 1960년에 만들어진 밥그릇. 급양 관리 기준도 없어서 어림짐작으로 양을 가늠해서 대충 만들어서 대충 주는 시스템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급양의 상당 부분을 미군전투식량인 C-레이션에 의지했다.#

물론 소수의 예외는 있었다. 당시의 육군사관학교인 조선경비대 사관학교에서는 미군 장병의 급양 기준을 따라서 매일 쇠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달걀, 생선 등이 나왔고 주식인 밥도 매일 10홉(1,800cc) 정도 나왔기 때문에 꽤 풍족하게 먹었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도 푸대접한 사례는 존재했다. 해병대의 경우 제2차 세계 대전 때 아직도 스프링필드 M1903을 쓰던 해병대가 육군의 총기인 M1 개런드를 훔쳐 쓴 적이 있을 정도였고 이후 시간이 흘러 1980년대 말~1990년대 초반의 걸프 전쟁 때도 그리 차이는 없어서 해병대원들은 필요한 물품들은 자기네 돈 주고 사서 운용한 사례도 있었고 기갑장비의 경우도 육군은 M1 에이브람스 계열을 운용하고 있을때 해병대는 M60 패튼을 운용한 것이 그 사례이다.

물론 미군의 경우에는 다른 국가와 다르게 예산 분배의 영향이 주 원인이다. 해병대의 경우 다른 군(육군, 해군, 공군)에 비해 예산 순위가 최하위로 장비나 보급품 전반으로 상당히 인색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다른 국가에 비하면 일반적인 급양, 보급 상황은 매우 우수하다. 대한민국 국군이 군대리아를 먹을 때 미군은 군대리아보다 퀄리티가 엄청 높은 잭슨 버거를 먹는다.

5.1. 6.25 전쟁 이후

창군 초기부터 개판 5분전이던 대한민국 국군의 체계는 6.25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가닥을 잡았다. 좀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1954년에 한미 급식위원회에서 하루 열량 섭취 목표를 3800Kcal로 설정한 것이다. 장병들에게 1인당 적어도 이 정도의 열량을 섭취할 수 있는 식량을 보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당시는 6.25 직후라 경제 사정이 매우 어려웠던 데다가 비리가 심해서 식량이 수송되는 동안 중간에서 이리저리 떼어먹는 바람에, 전방의 장병들에겐 항상 식량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았다. 비리의 근본적인 이유중 하나는 월급이 적어서 이다. 이승만 대통령부터가 "군인은 좀 배고파야해!"라며 월급 적은것을 당연시 여겼기 때문에 당시 장교 월급은 입에 풀칠할 정도도 안되었다.[18] 이런 상황에서 결혼하여 처자식 있는 장교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쌀이나 부식거리를 좋든 싫든 빼가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할 정도이다.[19] 장교가 그 정도면 그 아래 하사관 월급은 얼마나 적겠는가? 이러니 양의 차이만 있을 뿐 부대 지휘관에서 장교, 하사관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떼먹으니 병들에게 돌아갈 병영식은 더욱 적어졌다.이승만 시절, 한국 군인들의 열악한 처우 상태1, 이승만 시절, 한국 군인들의 열악한 처우 상태2

그렇기 때문에 병사들은 막사 근처에 밭농사를 지으며 소 키우고, 돼지 키우고, 양어장을 만들어 물고기 키우는 것이 당시 군인들의 주된 일과였다. 돼지 담당 쫄병이 돼지가 죽어 선임하사에게 얻어터졌다는게 북한군 얘기가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 국군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모습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상급부대로 올라갈수록 물자가 풍부했으므로, 있는 집 자식들은 부모가 과 돈을 써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높은 부대의 본부로 보내려고 했다. 게다가 지금과 달라서 정량배식이었기 때문에 한 명당 먹는 밥의 양이 모두 똑같았다.

그리고 이 시기 가장 큰 특징은 식판이 없었다는 것이다. 밥그릇, 국그릇 딱 2개로 해결했다. 왜냐고? 밥과 국만 주는데 무슨 식판이 필요한가? 몇십 년 전 일본군 시절은 물론[20] 어떤 면에선 구한 말 조선중앙군이나 대한제국군 급식 상태와 비교해도 형편 없을 정도로 심각해진 것이 이 시절의 대한민국군이었다.[21] 해당 링크의 블로거에 의하면 가끔 건빵과 통조림만 먹다가 물린 일본군도 얻어 먹었다. #[22][23] 대한민국 국군은 창설 당시에도 10만의 병력은 국력에 비해 지나치게 많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고[24], 미군의 지원도 썩 좋은 편은 못 되었다.[25] 밥과 국 여기에 김치 몇쪼가리 주는게 전부였다.[26] 50년대 전방부대 식사 장면을 찍은 영상을 보면 심지어 장교들 조차 점심에는 개인 국그릇이 없이 밥그릇 하나씩만 앞에두고 국 한그릇을 공용 반찬으로 조심스럽게 한수저씩 나눠먹는 정도다.

본국사정과는 관계 없이 번외편으로 1965년 이후 베트남전 당시 파병된 군인들은 베트남까지 가던 중에 미군 수송선을 타게되면서 미군 식사를 먹게된다. 처음에는 고기와 계란 등이 나오자 좋아하던 병사들이 일주일 정도 그렇게 먹자 질려서 야채와 채소를 찾다가 "졸병들은 지겨운 고기만 주고 장교놈들은 채소만 먹는다."라는 행복한 불평을 하게 이른다. 여기서는 아예 스테이크가 덩어리채로 날마다 나오는 신세계였다. 이 때문에 당시를 배경으로 하는 문학작품을 보면 군인들이 씨레이션에서 과일이 든 캔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모습이 묘사된다. 물론 고기가 든 씨레이션은 쫄병에게 남겨주었다.

이 시기 이후 국과 밥만 보급되던 것에서 약간 더 확대돼서 밥, 국, 반찬(사실상 김치)의 1식 2찬의 식사로 발전했다. 이 1식 2찬 시스템은 1970년대 중반까지 유지된다. 어느 부대가 오래된 취사장 지붕을 수리하다가 1960년대 당시의 식단표를 발견했는데, 무와 콩나물로만 이루어진 1식 2찬의 엽기적인 식단이 줄줄이 써있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고 한다.# 물론 이때도 간부들은 따로 식사를 했고, 병(兵)들의 식사와는 구분되는 식단으로 밥을 먹었다.

이 시기 병사들의 식사 모습은 황석영 작가의 수필집 『황석영의 밥도둑』에 잘 표현되어 있다.
내가 군에 갔던 육십년대에는 나라의 경제가 신통치 않은 때여서 부식이 정말로 형편없었다. 일 년 삼백육십오 일을 콩나물국만 먹었다. ...(중략)... 멀건 된장에 배추 오래기나 콩나물이 떠 있고 두부가 가끔 나타났으며 '왕건이'라야 통째로 넣은 꽁치가 고작이었다. 그것도 취장에서부터 유리한 부서 순으로, 다시 막사에 오기전에 고참 순으로 건져내어 나중에는 꼬리나 대가리나 가시만 바닥에 가라앉아 있다. 맛을 내고 간을 맞추는 데 양념이라고는 된장, 고추장, 그리고 소금이 전부였다. 특히 생선이 '헤엄만 치고 지나간' 콩나물국은 거의 소금국이었다. ...(중략)...
신병이 부대에 배치되어서 가자마자 하는 일이 고참들의 식사 당번인데, 제일 먼저 매점에 가서 화학조미료를 사다가 군복 윗주머니에 지참해두어야 한다. 국을 받아오면 제일 먼저 국을 맛있게 드시라고 조미료를 적당량 털어넣는다. 자기 것은 포기하더라도 아랫것들 국 속에서 건더기를 건져서 따로 반찬거리를 만든다. 콩나물은 건져내어 알토란같이 아껴 쓰는 박카스 병에 담긴 참기름을 치고 관급 고추장에 비벼서 콩나물무침을 만들고, 두부는 건져서 간장과 참기름을 쳐서 두부무침을 만들고, 뭇국의 무를 따로 건져서 고춧가루 조금 치고 간장 쳐서 무나물을 만든다.

1970년대 당시 군대의 식사 시간을 촬영한 영상. # 보이다시피 식판에 반찬 부분이 2칸인 데다가 보리잡곡밥, 똥국을 배급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찬도 하얀 무김치에 김이 전부다.

강원도의 부대는 감자가 반찬의 주를 이루어서 감자탕, 감자볶음, 감자조림, 감자찌개 등의 반찬들만 나왔다고 한다. 거기다 이 시기에는 감자의 종자도 좋지 않아 뒤끝에 아린 맛이 강해서 이 시절에 강원도에서 군생활 하신 어르신들은 감자라면 학을 뗄 정도. 이때도 식판 같은 게 없어서 그냥 그릇같은 데 담아먹었고, 일부 부대에서는 취사장에서 음식을 받아와서 내무반에 상펴고 먹기도 했다고 한다.

아무튼 먹는 게 부실하다 보니 보리빵도 지급되곤 했는데, 베트남 전쟁 참전 후로 부대내 식량 사정이 좋아지고[27] 라면 같은 부식들도 슬슬 나오면서 예전에는 없어서 못 먹던 보리빵을 관물대에 넣어두고 안 먹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28]

5.2. 1970년대


1976년에는 군급양에서 1식 3찬 시스템이 확립된다.# 밥과 국과 반찬 2가지로 이루어진 식사가 정착된 것이다. 그래서 당시 식판은 반찬 담는 칸이 2개였다. 그리고 플라스틱이었다. 플라스틱 식판은 1990년대 중후반까지 쓰였다. 물론 그럼에도 당시에는 정량 배식이었고 식사의 질은 그렇게 높지 않았기 때문에, 짬이 좀 되는 병사들은 집에서 보내준 돈으로 몰래 부대 밖 가게에서 이것저것 사먹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FM 군대가 아닌 경우가 의외로 많았기 때문에, 상병장쯤 되는 선임병들이 업무상 필요에 의해[29] 잠시 부대 밖을 다녀오는 일도 제법 있었다. 심지어 병장들이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부대 철조망을 뜯어 수육과 막걸리로 바꿔먹은 일화도 존재한다. 연대본부에 일이 있어서 갔다온다고 해 놓고, 1종창고에서 쌀을 몰래 빼다가 인근 민가에 좀 주고 제대로 된 밥을 한상 거하게 받아먹고 돌아오는, 참으로 전설적인 이야기가 가능했던 게 바로 그 시절이다.[30]

급양은 부실하고, 운영은 주먹구구였던 1970년대 무렵에는 이런 식으로 주변 민가와 일종의 거래를 해서 배고픔을 해결하는 사례가 많았다. 상기된 것처럼 군 창고에서 쌀을 꺼내다가 민가에 주면서 찐밥이 아닌 제대로 된 밥을 지어달라고 한다던지[31] 군용 라면 보급이 시작되었지만 취사설비 미비로 라면을 끓이기 힘든 상황에서 짬 좀 찬 병사가 라면 여러 개를 몰래 가져가서 하나만 끓여주고 나머지는 그 집에 준 경우 등이 있다.

실제 사례 중에는 수완 좋은 할머니가 아예 라면 끓여주는 일을 사업으로 시작하다시피 해서, 이병은 1:1, 일등병은 1:2, 상병은 1:3, 병장은 1:5로 계급별 차등 가격까지 책정한 경우가 있을 정도. 즉, 이등병은 라면 2봉을 가져가면 1봉을 끓여주고 1봉은 할머니가 가지지만, 병장은 6봉을 가져가면 1봉만 끓여주고 5봉은 할머니 몫이 되는 것이다.[32]

덕분에 이 할머니 집 창고에는 항상 군용 라면이 그득그득 쌓여 있었고, "자식 같은 군인들이 배고프다니 도와주는 거지, 군용 라면은 봉지부터 티가 나서 어디에 팔아먹지도 못한다"고 말하는 것과는 달리, 수개월에 한번씩 쌓여 있던 라면이 싹 사라지는 걸로 봐서 어디 판로를 개척한 것으로 보였다고 한다.[33]

또 1980년대까지만 해도 쇠가 귀해서 부대 철조망을 끊어 몰래 개구멍으로 나가서 막걸리며 각종 사제 간식을 바꿔먹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물론 걸리면 영창이다. 당시 배식이 형편없고, 부식이 부족해서 나타났던 현상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대한민국의 섬유산업이 융성하던 때여서 을 키우는 목장들도 꽤 있었는데, 털을 깎고 난 양들은 고기가 되어 군대로 납품되는 일이 꽤 있었다. 1970년대 군생활을 추억하는 사람들 중에는 군대에서 양고기를 먹어본 사람들이 꽤 있다. 당연히 대부분의 부대에서 섬세한 처리는 힘들었고, 결국은 노린내와 함께 양고기를 씹어야 했다. 당시 군생활을 했었던 사람들의 회고에 따르면 "심할 경우 취사장 근처에 며칠씩 누린내가 진동할 정도였으며, 양고기가 나오는 날에 고참들이 가혹행위로 자기들 것까지 후임들에게 먹였다"는 경험담도 있다.

2010년대 이후로 양고기가 대중화가 되면서 양고기를 싫어 했다는게 이해가 안 갈수도 있는데, 털을 깎을 정도로 다 자란 양은 머튼 (mutton)이라 하여 누린내가 많이 나는 것으로서, 1990년대 후반 까지도 대한민국에서는 정통 식육용으로 어울리지 않는 고기로 분류 되었다. 우리가 지금 먹는 어린 양고기는 램 (lamb) 이라고 불리며 양고기가 익숙한 곳에서 머튼은 램과 아예 다른 고기로 취급되고, 그에 맞는 요리법이 따로 있다.[34] 하지만 제대로 된 양고기 조리법을 모르는 조리병들이 질기고 냄새가 강한 머튼을 적절하게 요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머튼을 맛있게 요리하려면 누린내를 줄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고기에서 피를 철저히 빼내고 지방도 충분히 제거해야 하며 후추, 민트(박하), 로즈마리, 고수, 커민, 카다몸과 같은 다양한 향신료 및 조미료를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사실 솥에 넣고 오랫 시간을 조리해야 되는 머튼의 특성상 향신료만 준비되면 대량배식에 오히려 잘 맞아서 중동 지역의 뷔페를 가면 머튼이 들어간 요리가 꼭 하나씩 포함되어 있는걸 볼 수 있다. 다만 문제는 당시의 대한민국에서 조리병들에게나 병사들에게 양고기가 익숙지 않은 고기였다는 것과 향신료들이 풍족하게 배급되지 않았다는것이다. 물론 이 당시에도 마늘, 꺂잎, 생강, 김치, 된장을 이용해 누린내를 줄이는 요리법 자체는 당연히 흔했지만, 취사병들이 죄다 누린내를 잡는데 능숙할리가 없고, 된장국도 밍밍한 맛이 나서 똥국 소리가 나왔던 것이 당대의 사정이었다.

그런데 1970년대는 사병들의 배식이 하급부대로 내려갈수록 고급식재는 부족하던 시기인지라, 오히려 귀한 고기가 나왔다고 좋아하며 누린내에도 불구하고 맛있게 먹은 경우들도 많다고 한다.

5.3. 1980년대


1980년대부터 때마침 경제 호황을 탄 덕분에 군 급양도 자연스레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한다. 메뉴에 닭튀김을 비롯한 젊은이들의 입맛에 맞는 고열량 메뉴가 추가되었고 1982년에는 군대리아로 유명한 햄버거시범적으로 처음 배급됐다.[35]

이후 1985년에는 우유가 보급되기 시작했으며 공군 기준으로 수도권 부대에는 서울우유, 강원도에는 춘천우유(구 농협우유), 영남권 부대에는 부산우유가 보급되었지만 1976년부터 정착된 1식 3찬으로 유지되어 군 급양은 여전히 열악했다. 위의 영상의 3분 52초 이후 구간을 보면 녹색의 플라스틱 식판에 밥, 국, 반찬 2개로 1식 3찬이며 다른 식사 사진을 봐도 1식 3찬임이 잘 드러난다. 그리고 이 당시에는 지금과 다르게 생활관 내부에 술 반입이 허용되던 시절이었다.[36]

군대리아가 이 때부터 2020년대 현재까지 잼이 있는 이유로는 1980년대 막 도입될 당시 대다수 조리병이나 간부들이 햄버거가 어떤 재료로 만들어지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물론 일부 의견에서는 신메뉴 담당자가 롯데리아 가서 한번 사먹어보고 먹는 방법을 지도하는 정도의 성의는 보였어야 한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는데 국내에 롯데리아가 설립된 것은 1979년 10월 25일이지만 1980년대 초중반에는 햄버거를 취급하는 음식점이 적었고, 가격대도 비쌌기 때문에, 대다수 대중들에게 햄버거란 미국 만화영화나 헐리웃 영화, 외화 시리즈 같은데서나 등장하던 음식이었고, 햄버거가 지방에서도 쉽게 맛볼수있는 음식이 된것은 달라스 햄버거와 빅웨이 같은 햄버거 체인점들이 문을 열기 시작한 1980년대 말이었다. 그러하니 1980년대 초중반의 병사들이 햄버거의 이름과 모양만 알고있었지, 맛이 어떤지는 잘 알지는 못했고, 햄버거 빵에 잼을 발라먹었던것도 외화드라마나 외국영화에서 빵에 잼 발라먹으니까 우리도 그렇게 먹자고 생각해서 그렇게 된것이다.

게다가 현재 요리 예능 프로그램들과 달리 당시 TV의 요리 프로들만 봐도 일반 가정에선 엄두도 못 낼 레시피를 소개하거나, 시청자의 편의에 맞는 재료들로 요리를 하지도 않았다. 진행자는 가정에서 흔한 거라고 하는데, 정작 1980년대 일반 서민 가정에서는 듣도보도 못한 게 많았고 호텔 요리사 출신이 아닌 일반 가정 출신이 많은 간부와 조리병 둘 다 모르니 당시에 소스를 어떻게 만들고 공급해야 할지 개념이 잡히지 않았다.[37][38] 그러다보니 그들의 입장에서 가장 잘 아는 재료인데다가 햄버거에 들어가는 정체불명의 소스보다 구하고 납품받기도 훨씬 쉬운 잼이 들어가게 되었고 이게 현재까지 정착된 것이다.

5.4. 1990년대


1990년대 초반까지는 1980년대 중후반 급양 상태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우선적으로 식판이 플라스틱에서 스테인리스로 전방부터 순차적으로 교체되기 시작했다. 1992년 11월 18일에 제작된 대한뉴스 제 1932호 영상과 비교하면 1994년 1월 6일에 제작된 대한뉴스 제 1991호의 경우 1분 29초 구간을 보면 플라스틱 식판에서 스테인리스 식판으로 개선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1980년대 중후반 시기에 비해 1990년대 초반부터 식단도 개선되기 시작하여 1994년부터 시범적으로 전방 부대부터 1식 3찬에서 4찬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시작했고 이후 1997년 전군에 1식 4찬으로 업그레이드되면서 반찬이 하나 늘었다. 또한 돈가스, 짜장면을 비롯하여 1982년부터 시범적으로 처음 배급이 시작되기 시작한 군대리아가 1994년부터 공식적으로 전군에 배급되기 시작되고 동시에 콜라 등의 탄산음료도 보급이 시작[39]되면서 다양한 메뉴가 추가된 것도 이 시기부터이다.

1996년부터는 정부양곡[40]에도 변화가 있어서 사실상 몇 년 이상 묵은 쌀로 취급되던 통일미가 사라지고 이전 년도 가을에 생산된 쌀을 가공해서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쌀(일반미)로 밥을 짓기 시작했다.#

또한 이 시기를 전후해서 김치 또한 지역 농협에서 사다 먹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위의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대한뉴스 제 1932호로 1992년 11월 18일에 제작된 영상인데 38초 구간부터 김치가 군대에 납품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1998년도부터는 김치도 다양해져서 아삭아삭 총각김치와 속이 꽉 찬 시원한 오이소박이가 식탁에 올랐고, 1999년에는 밋밋하던 떡국에 만두가 추가됐다.

물론 한 때 1997년 말~1998년에는 잠시 보급이 엉망이 되었던 때가 있어서 일시적으로 1식 3찬으로 후퇴했다가 다시 복구된 적이 있다. 원인은 바로 1997년 외환 위기. 이 시기에 군납업체가 여럿 부도나면서 몇몇 식자재 보급이 끊겼고 경제 위기로 인한 예산 삭감의 영향으로 반찬을 일시적으로 줄였다. 다행히 이 사태는 새로운 군납업체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예산이 다시 좋아지면서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김치가 군대에 납품되기 전까지는 각 부대별로 구덩이를 파고 병사들과 간부들의 부인들이 동원되어 김치를 담가서 땅에 묻었다. 김장독도 없어서 구덩이를 대충 파고 구덩이 안에 시멘트나 벽돌을 대충 쌓아 방벽을 만든 뒤 그 안에 김치를 넣는 것[41]이었는데 물론 군대이다 보니 액젓이나 젓갈 등의 재료가 매우 부족한 현실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지만 김치가 아니라 단순히 짠지 수준의 맛이었다고 하며 여기에 1970년대까지만 해도 "김치를 창고에 그대로 보관하다 보니, 창고 서까래 위를 달리던 가 김치 더미에 빠져 같이 숙성되어 있더라"는 경험담도 있었으며 여기에 장병의 부모(주로 어머니)들을 불러다가 병사들이 먹을 김치를 담그게 한 사례까지 있었다.[42]

5.5. 2000년대

1990년대까지만 해도 고압의 증기를 이용한 스팀 다단식 취사기(디젤 증기식 취반기)를 운용했었지만 2001년부터 가스를 이용한 가스 다단식 취사기(가스압력솥/가스 자동 취반기)로 순차적으로 교체되어 밥맛도 개선되었다.#[43] 또한 반찬도 생선까스, 삼계탕, 돼지갈비 등 다양한 메뉴가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2003년부터는 창군 55년 이래 최초로 흰 쌀밥이 제공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의무적으로 보리[44]를 일정 비율 혼합하여 밥을 해야 했다.#[45]

이것과 관련해서 2005년에 한 번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터졌다. 한 국회의원이 "만 먹이다 보면 건강에 안 좋으니까, 현미와 잡곡을 섞은 밥을 군인들에게 먹이자"라고 했다가 "요즘 군대는 반찬도 잘 나오고 해서 영양소 공급에 문제가 없는데, 굳이 왜 쌀밥에 참견을 거느냐" 라는 예비역 및 현역들의 거친 반발에 순식간에 침묵한 바가 있다.

실제로 자취해본 사람은 알지만, 잡곡밥이 일반 쌀밥을 짓는거보다 시간과 과정이 더 든다. 최신식 전기밥솥의 잡곡밥 코스는 백미 코스보다 십분 정도 시간이 더 길다. 압맥이 아닌 보리는 따로 미리 삶아서 밥을 해야 덜 익지 않고 식감이 탱글탱글하고, 수수나 귀리 같은 종류도 물에 넣고 불리는 과정이 있어서 쌀보다 당연히 오래 걸린다. 무엇보다 현미 같은 잡곡이 일반 쌀보다 비싸다! 그렇다고 잡곡 대신 콩을 쓸 수도 없는 게, 콩밥은 죄수들 먹는 밥이라는 인식이 강하며 나이 든 아저씨들보다 젊은이들이 콩밥을 좋아할 가능성은 낮다.

5.6. 2010년대


2000년대와 비교하면 부식비 등이 늘어난 점을 제외하면 2010년대의 경우 식단의 경우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2013년 들어 군인공제회에서 군납사업 구조조정을 진행한 영향으로 맛스타(생생가득) 등의 일부 제품들이 생산 중단되면서 군납이 중지된 맛스타 대신 일반 시중에서도 흔히 보이는 미닛메이드 음료 등이 군대로 납품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부터 민간급식 업체로의 전환 물꼬가 일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민간 위탁급식이 시행된 부대는 공군 제11전투비행단해병대 제2사단 예하 대대 이 2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두 부대는 아예 삼성웰스토리가 들어와서 식단 관리와 메뉴까지 짜서 보급하며 시범운영을 했다. 그 결과 BX로 가거나 불취식을 하는 사람들이 확 줄어들었다. 2010년~2012년 대구 쪽에서 군복무한 사람은 널리 알려진 얘기. 육군 5군수지원사령부에서 공군에 식자재를 보급했는데 11전투비행단에서 급식체계를 변환했으므로 당시 육군 또한 공군 소식을 접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개선을 하기도 하는데, 문제는 농협에서 불만을 제기하고, 군인공제회에서 "대기업이 여길 왜 들어오느냐"는 식으로 맞서고 농민들 시위까지 주도하는 등으로 시위를 해대는 결국 제11전투비행단의 시범급식은 딱 2년 하고 정지됐다. 실제로 공군교육사령부도 저 11전투비행단 사례를 높이 사서, 삼성웰스토리와 계약을 시도했으나, 어디선가 왔는진 몰라도 입구에서 트랙터까지 끌고온 농민들이 우리를 굶겨죽일 셈이냐고 시위를 해대는 통에 무산되었다. 현역병들과 예비군들은 그야말로 그 농민들 어딨냐, 농민은 중요하고 군인은 중요하지 않은 거냐며 엄청나게 분노했고 그 결과 군인들의 농민들에 대한 인식이 극도로 나빠졌다. 상기한 인식 악화는 정확히는 1970년대 이후 국방부가 농,수,축협과 맺은 군 급식품목 계획생산 및 조달에 관한 협정 이후 결성된 전국농협/축산군납조합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군납농가 단체들에 대한 인식 악화로, 농업계에서도 국방부와 농수축협 중심으로 진행되는 군급식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농민들도 경기도 등 광역자치단체들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개선에 참여하고 있다.

한편 군대리아도 2013~2014년 시기들어 개선식 시범사업이 시작되어 스프 대신 시리얼로 변경되었고 가공샐러드가 2014년 5월부터 없어지게 되었지만 대신 새우버거가 추가되는 방식으로 군대리아의 메뉴 변동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개선형 군대리아는 2013년에 진짜사나이에서도 공개된 적이 있다.# 이렇게 개선된 군대리아는 전군에 정착되었다.

이후 2019년 빅 데이터 프로세싱 방식을 도입해 장병들이 선호하는 음식은 배식 횟수를 늘리고 선호하지 않는 음식은 배식 횟수를 줄이는 방식을 도입한다고 한다. 보여주기식이 아닌 진짜 장병들의 기호를 우선시한다면 매우 유의미한 개선이 될듯.# 이 과정에서 평가가 좋지 않던 해물비빔소스가 2020년부터 정식으로 퇴출되었다.

5.7. 2020년대 이후

2020년 이후 병영식의 일반 메뉴가 추가되고 특식도 추가되었다. 탕수육, 볶음밥, 갈비찜, 치킨텐더, 샤인머스캣, 컵과일, 꼬막, 장어, 전복[46], 삼계탕[47] 등 고급 메뉴도 맛볼 수 있다. 즉, 장병들이 선호하는 메뉴가 더 자주 나온다. 1인 1일(조식+중식+석식) 급식비는 13000원이다.

2021년 4월 18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따른 휴가 복귀 후 자가격리 중인 장병에게 교도소만도 못한 밥을 먹인다는 사실이 내부 고발되었다. 여담으로 교도소 1인 하루 급식비는 4616원이다. 약 1.6배 더 많은 비용을 투자하는데 저만큼 부실한 거면 창조경제 수준이다. 대한민국 국군 자가격리 장병 부실 식사 제공 논란 문서 참조. 다만 이와 같은 부실급식 문제는 SNS 보급에 따른 육대전의 등장으로 인해서 한국군 병영식의 질이 그나마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2021년 11월, 부실 병역식단 논란으로 국민적인 공분을 산 후 국방부는 음식의 질에 대해 여전히 불신이 나오자 그동안 납품해오던 농/수/축협 및 보훈단체와의 수의계약을 2025년까지 완전 경쟁 방식으로 바꾸기로 결정하고 군위탁급식을 확대했다. 풀무원 푸드앤컬처 같은 경우는 사실 부실급식 논란이 확대되기 이전인 2020년 6월부터 육군부사관학교에 급식을 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부실식사 논란이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후 민간급식이 시작되었다기보다 군급식 민간기업시장 확대의 계기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육군 1군단에서의 결과는 호평 일색이다. # 물론, 본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군대라는 조직은 자정능력이 극히 떨어지는 집단이므로 계속해서 이러한 퀄리티의 식단이 한국군 장병들에게 배급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파일:Ohou.jpg
파일:Wow.jpg

공군 11전투비행단은 2012년 이후 9년 만에 다시 민간급식 위탁부대로 지정되어 병사들에게 풀무원이 민간메뉴를 조리해 급식하고 있다. 국방일보 11전투비행단 병사들의 급식 만족도는 97%. 국방부는 군에 아들을 보낸 어머니들과 예비역 여군 출신들로 모니터링 감시단을 꾸려 각 부대 급식과 기타 병영 환경을 체크하는 모양이다.[48]

파일:11전투참치.jpg
풀무원은 11전투비행단과의 계약 2주년을 기념해 셰프를 비행단에 보내 병사식당에서 참치회를 썰어주어 전복삼계탕, 장어덮밥, 토마호크 스테이크, 랍스터에 이어 군에서 나온 고급진 음식의 상향점을 확 올려버렸다.


2023년 5월 제11기동사단 질풍대대의 급식 모습. 유명 유튜버의 방문을 고려해 밥이 잘 나올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식당과 조리의 질이 하루아침에 바뀔 순 없으므로 급식이 점진적으로 괜찮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23년 12월에 뷔페식 급식으로 나오고 지역업체를 통해 케이터링과 푸드 트럭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한 끼에 1만 3천 원 수준의 급식을 연 9회 제공하는 서비스도 전면 시행하기로 했다. #

2022년 해군 신병교육대대에 푸디스트, 2024년에 육군사관학교삼성웰스토리, 해군사관학교푸디스트, 공군 제3훈련비행단풀무원 푸드앤컬쳐, 제19전투비행단동원홈푸드, 제20전투비행단아워홈병사식당 급식업체로 지정되는 등 군부대 식당들의 기업식 구내식당화가 촉진되었다. # #

장병들의 기호를 만족하는 방향으로의 급식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군급식에서 수입 농산물의 비중이 확대되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코로나-19 범유행 이후 확실하게 식단의 질은 개선되었으며, 항상 지적받던 양도 최소한 부족하지는 않게, 보통 약간 남을 정도로 배급되고 있다.

6. 문제점

파일:대한민국 국방부 심벌.svg 대한민국 국군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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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전반의 문제점
국방부의 문제점
낮은 위상 | 정치군인 | 보상 | 법률 | 안전 | 의료체계 | 병영부조리 | 가혹행위 | 똥군기 | 군납비리 | 징병제 | 육군 과도 편중
한국 징병제의 폐단
사회적 배려 전무 | | 겸직 문제 | 병역 자원들의 권리 침해
생명권 경시 (부를 땐 국가의 아들, 다치면 느그 아들, 죽으면 누구세요?)
병영시설 문제 및 천차만별인 복무 환경 | 마음의 편지 | 부실한 식사
해결된 문제
월급 문제 | 병 대상 전자 기기 사용 제한 }}}}}}}}}
2021년 대한민국 국군 병영식사
파일:짬밥정식.png
<colbgcolor=#ffffff,#191919> 쌀밥, 미역국, 소시지 야채 볶음, 깍두기, , 후식 250ml 우유. 2010년대에 자주 볼 수 있던 국군 아침 병영식.[49]
일명 '짬밥'으로, 대한민국의 위상이나 경제 규모에 비해 형편없는 음식을 장병들에게 먹인다는 평이 압도적이다. 그나마 위 메뉴는 최선에 속하는 매뉴로, 병장들도 알아서 일어나 먹으러 간다는 농담이 있다.[50]
파일:밥헌병.jpg
병영식들 중에서도 최악의 식단으로 꼽히는 조기 튀김[51]과 국군 보급품 중 악명이 높은지라 결국 생산 중단된 해물비빔소스.[52]

과거 대한민국 국민들 가운데 한국군 장병이 좋은 음식을 잘 먹고 있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보기 힘들었고, 그 식단의 열악함과 형편없는 맛으로 악명이 높았다. 대부분은 반 세기 째 잘 쓰고 있는 레퍼토리 "전시 징병제라서 어쩔 수 없다." 정도로 넘어가거나, 아직도 쌍팔년도 시절의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며 "군대에 가면 원래 배고픈 법이다." 식의 후진국적 사고를 견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저조한 국민의 관심 때문에 제도의 개선도 굉장히 느렸다.

현역병들이 먹는 식사만 그런 게 아니라, 예비군이 먹는 식사도 마찬가지다. 병영식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원래 짬밥이라는 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별 맛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한국군 병영식은 그런 사실을 어느정도 감안해도 경제수준에 비해 심각하게 부실한 수준의 병영식을 주고 있다.


3분 3초부터 주목. 소초장 중위가 "저희 소초 밥은 호텔식보다 훨씬 더 맛있습니다"라고 할 때 주변 해병들은 소초장이 방금 전 걸그룹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할 때보다 더한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맞은편에 앉은 해병이 막 입에 넣던 국을 뿜으며 고개를 숙이거나, 순식간에 집중되는 주위 해병들의 시선은 덤이고, 옆의 해병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식판과 소초장의 식판을 번갈아 바라보는 모습이 압권. 이건 대한민국 해병대가 공식적으로 만든 영상인데도 반어법과 각종 리액션으로 셀프 풍자할 정도다. 단, 한국군 병영식의 현실과는 별개로, 이 연출은 그간의 딱딱한 해병대의 홍보 영상과 달리 재밌고 솔직하다며 호평을 받았다.

대한민국에는 1980~1990년대에도 일명 헝그리 정신이라고 해서 물질적인 빈곤함을 강인한 정신력으로 극복한다는 식의 구 일본군식 마인드가 사회적으로도 상당히 침투해 있었다.[53] 이렇게 된 원인은 실제 어느 정도는 2차대전 때 일본군에게 있는데, 일제 강점기 후반에 일본이 2차 세계대전으로 국력이 점점 쇠퇴하고 사회 분위기도 병영국가화 되면서 군과 민간 양쪽에 정신이 물질을 극복한다며 고난을 강요했던 것을 일본이 물러난 뒤 독립한 한국도 한 동안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였던데다가 오랜기간 동안 군사독재정권기였다는 점과 분단국가라는 점이 겹쳐서 돈으로 모자라는 부분을 정신력으로 때우려는 마인드가 팽배했고, 이것이 지금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54]

해방 이후 건군기에 일본군에서 복무한 이들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국군이 재편되었는데, 당시 그러한 열악함을 당연시 여기게 되었고, 그래서 군대는 당연히 배고프고 식사도 맛없는 곳 이라는 잘못된 상식을 갖게 하였다. 물론 광복군 출신들도 열악한 환경에서 배고프고 힘들었던 건 비슷했다. 하지만 그건 다 같이 동등하게 못 살았기 때문에 내가 이거라도 먹고 버텨야 조국이 더 나은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정신으로 버틸 수 있었던것이고 현재는 어렸을 때 투정부렸던 어머니가 해준 밥이 그리울 정도로 과거에 비해 나아진 것이 별로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몸을 험하게 굴리는 직업 특성 상 밥이라도 잘 먹어야 비실대지 않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기초대사량부터가 생애주기 중 가장 높은 청년층 남성인데, 국가가 가난한 나라도 아니고 밥도 제대로 못 먹이는 상황이라면 전쟁 졌다고 봐야 한다. 보급은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그리고 정신력을 그토록 강조했던 일본군은 참패한 뒤 아예 군사 조직 자체가 해체되어 유사 군대인 자위대로 구색이나마 갖추고 있는 실정이다.

6.1. 맛이 없는 이유는?

파일:2013년 훈련소급식사진(육,해,공군,해병대 훈련소).jpg
▲2013년 국회 감사로 국방부에서 올린 훈련소급식사진[55][56]
2013년 조사에 의하면 한국군 장병 급식비는 2,051원(1일 6,155원)으로 미군 3,795원의 54%에 불과했다.# 또한 급식단가가 초등학생 2,580원의 79%, 중학생 3,250원의 63%에 불과했는데 고된 훈련을 받은 군인이 초등학생보다도 못한 급식을 먹고 있는 셈이다.

대한민국 국군 전역자들의 거의 대부분은 대한민국 군대의 병영식이 똥국이라는 단어가 생길 정도로 음식의 질도 빈약하고 맛도 없다는 의견에 모두 공감하고 있다. 사람이 먹을 만한 정상적인 요리를 20년 이상 먹어오다가 갑자기 품질이 들쑥날쑥한 대량 조리 음식을 약 2년 내내 먹게 되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현상이다. 짬밥이 맛이 없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군대 관련해서 벌어지는 모든 종류의 사건사고가 그러하듯 대한민국 군인에 대한 대우가 개차반인 것도 있지만,[57] 굳이 세세하게 따져보자면 한국 병영식이 맛이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일개 병사가 대부분의 요리를 전담
    대한민국 국군의 조리병은 해당 인원을 맞추기 위해 요리 관련 경험이 없더라도 억지로 선발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관련 자격증을 보유하고 요식업계에서 일하다가 조리병이 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사회에서 요리는커녕 라면이나 계란프라이만 겨우 만들 줄 아는 사람이 후반기 교육만 대충 받고 조리병이 되는 경우가 태반인 것이 현실이다. 다시 말해 조리병을 담당하는 병사들은 대부분 아마추어도 못 되는 요리 문외한이라는 말이다. 심지어 요리를 전문으로 배우고 사회에서 업으로 삼던 사람도 갑자기 100인분이 넘는 대량 조리를 시키면 원래 실력이 나올 수 없는 법인데, 하물며 요리 능력이 떨어지는 20대 일반 성인 남성이 날림으로 받은 교육 지식만으로 맛있는 요리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민간조리원들이 소수 있긴 하지만 여러가지로 한계가 있고, 그마저도 없는 부대들도 즐비하다. 또한 대한민국 국군의 특성 상 일 좀 할만해지면 집에 가버리고 또 새로 병사가 온다. 이는 조리병도 예외가 아니라서, 조리병이 업무에 익숙해지고 밥이 맛있어질 때쯤 되면 집에 가고 새로운 조리병이 들어와 다시 맛없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 제한된 시간에 초대량의 식사를 조리
    일반 식당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 식사 시간 조리 시간은 언제나 일정하게 정해져 있다. 식사 시간이야 말할 것도 없고, 조리 시간 역시 식중독 등을 예방하기 위해서 식사 시간 직전에 바로 조리해서 내놓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음식을 만드려면 식자재, 부식 등을 보급병과 같은 일반 병사들과 손수 운반해야 하고, 상하차 훈련과 같은 식당에서 하는 훈련도 받아야 하며, 이런 일들을 모두 한 다음에 또 수백 명 분의 식사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니 조리 과정이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매 끼니마다 수백 명 분의 밥을 해야 하며 그만큼 더 힘든 대형부대보다는[58] 식수인원이 적어서 시간도 널널한 독립중대나 특수한 부대의 밥이 더 맛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부대는 우선 간부식당이 따로 없어서 중령이든 대령이든 이등병이든 다 같은 메뉴를 먹어야 하고, 오히려 조리병들의 시간이 남으니 조리병들이 꿀빤다고 욕을 먹거나 다른 일거리를 부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디테일을 좀 더 살린다거나 남는 시간에 남는 재료로 레시피나 양념, 소스같은 걸 개발하기도 한다. 그래서 대형 부대일수록 고생만 죽어라 하고도 밥이 맛없다고 욕 먹고, 소형 부대일수록 일은 편한데 밥맛도 좋다고 칭찬을 받는 아이러니한 일이 생기게 된다.
  • 부족한 식자재
    대부분 요리 경험이 많은 민간조리원들이 불평하는 내용. 만일 주 메뉴가 육류이면 고기의 양은 그럭저럭 들어오는데 반해, 조미료부터 시작해서 각종 채소류들은 그에 걸맞지 않게 부족하게 들어온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맛’을 만들기 위한 식자재가 부족하니 당연히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일반 사회라면 공산주의 국가에서나 발생하는 공급 에러이지만 보급량을 위에서 할당하다시피 하는 시스템은 사실상 사회주의 배급 시스템과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보니 각 부대별로 최적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힘들게 된다. 부식비를 현금으로 받는 함정 및 격오지 부대라던지, 아예 선구입 후 영수증을 제출하여 추후 부식비로 받는 잠수함의 병영식이 맛있는 이유이기도 하다.[59]
  • 끼니마다 급변하는 메뉴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맘대로 사먹으러 나가지도 못하는 군 부대 특성상 급양단에서 설문조사라도 나왔다 하면 먹고싶은 메뉴들을 잔뜩 써버리고 그것을 최대한 섭렵하려 하는데, 덕분에 끼니마다 한식, 중식, 일식, 양식에서 내로라하는 대표 메뉴들이 줄줄이 섞어나온다. 당연히 약간의 메뉴만 정해놓고 판매하는 일반 식당같은 전문성을 보유할 수 없다. 군대 치킨이 사제 치킨만큼 맛있길 바라는 거 자체가 바보다. 게다가 이는 먹는 사람 입장에서도 영향을 받는데, 먹고 싶은 메뉴를 정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60] 식단표 자체를 선호할 수가 없게 된다.
  • 근본적으로 부족한 개선 의식과 동기 결여
    위의 상기된 문제는 주로 어쩔 수 없는 조리병과 대량 요리의 특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이다. 모든 문제에 가장 선행하는 것이 이 '맛있게 만들어야 할' 동기의 결여이다. 한국군은 시스템상 이 동기가 전혀 없기[61] 때문에 병사의 식사에 대한 개선이 제대로 될 수가 없다. 정상적인 서비스 제공의 패턴은 이렇다. 가령 식당으로 비유하면 식당측은 보다 맛있는 요리를 손님들에게 제공하려 하고 최대한 손님들이 만족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한다. 손님들은 그에 만족하며 식당에 계속 찾아와 음식을 주문하고 먹게 된다. 이는 식당이 착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야 살아남고 많은 이익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맛없고 불친절하면 손님들은 더이상 그 식당에 안가고 식당은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에 개업비와 운영비 손실만 보게 되지만 맛있고 친절하면 손님이 몰려 식당주인에게 큰 돈을 안겨주게 된다.

    하지만 한국군은 병사는 의무적으로 식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62] 어차피 손님이 거부하여 망하는 식당이 될 염려가 전혀 없다.[63] 밥 먹을 사람은 언제나 있고, 가령 안 먹는다고 해도 알 바가 아니기 때문. 또한 마찬가지로 음식이 맛이 없다고 해도 개선할 필요가 없다. 병사에겐 그 맛없는 음식을 거부할 권리도, 항의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건 대대장이나 주임원사가 랜덤으로 합석해서 식사해버리면 간단히 해결된다.

    즉, 결론적으로 징병제 하의 군대는 하나의 작은 공산주의 사회나 다름이 없기 때문에, 경쟁이 있어서 퀄리티를 높여야 살아남는 자본주의 사회와, 퀄리티 개판으로 만들어도 짤릴 일도 없고 망할 일도 없는 공산주의 사회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고 볼 수 있겠다.

    뿐만 아니라, 식사 자체는 아예 불취식을 처벌할 수 있게 만들어놓았음[64][65]은 물론이거와, 항의는 형식적으로는 종종 설문조사를 해서 개선점을 찾는다고는 하지만 마음의 편지를 보면 알 수 있다시피 그런 설문조사에 항의해봤자 "모두 만족" 이라는 결과를 받지 못한 높으신 분의 심기만 거스를 뿐이며 누가 썼느냐는 색출만 행해지고 그에 따른 불이익만 몇배로 돌아오게 될 뿐이다.[66] 만약 병사들에게 식사에 대한 항의가 보장된다면 부모님의 피땀어린 세금으로 만든 거니까 주면 주는대로 감사히 먹으라는 선동보다는 민간 요리사를 더 채용해 식사 질을 높이려 한다든가, 재료가 문제였다면 재료쪽에 더 예산을 투입해 보다 질 좋은 재료를 확보하려 하거나 하는 식으로 해결 방안을 찾아볼 수 있다. 하다못해 예산이 부족해 어떻게 해줄 수 없다면 그렇다라고 최소한 해명이라도 병사들에게 이루어졌을 것이다.[67] 하지만 군대는 식사를 제공하는 측에서 식사의 질을 체계적으로 개선할 의지를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에 당연히 개선하지 않는 것이고, 병사들은 일방적으로 맛없는 식사를 무조건 그냥 수용만 해야 하며 더욱 그래서 속으로 불만이 쌓여가는 것이다. 합참이 아닌이상 기행부대도 이렇게 밥맛이 맛없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는 상대적으로 높은계급일수록 눈치 안보고 밖에서 사먹고 올 수 있다. 이기 때문이다.

6.2. 군납비리 및 군수비리

예산을 누가 해먹었다는 건 같지만 분류상 서로 다른 유형의 범죄이기는 하다. 병영식에 비유해서 간단히 말하자면 군납비리는 식재료를 군대에 납품하는 단계에서 누가 예산을 해먹어서 싸구려 저질 식재료나 상한 식재료가 납품되는 것이고, 군수비리는 일단 납품된 물건에는 큰 문제가 없는데 그 물건을 누군가게 떼먹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둘 다 심심하면 터지다 못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군납비리는 말 그대로 전형적인 예산 횡령, 즉 식자재 구입을 위한 예산의 일부를 빼돌려 횡령한 뒤 싸구려 저질 식재료로 양만 맞춰서 납품하는 형태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군수비리의 경우는 대규모 군수비리도 물론 있었지만, 각 부대 단위로 병사들 먹을 양식이나 반찬거리를 빼돌려 팔아먹는 21세기 기준으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쪼잔한 비리도 셀 수 없이 자주 벌어졌다. 그 당시 기준으로는 비싼 식재료였던 쇠고기가 가끔씩 보급되면 각 부대장 및 간부들이 계급순으로 몇근씩 잘라가고 나니 병사들 몫으로는 남은 고기가 별로 없어 그냥 물 붓고 무를 넣어 고깃국이 아닌 고기향만 날듯말듯한 국을 끓여 배식했다거나[68] 조리용 콩기름(식용유)등 당시 기준으로는 제법 값이 나가던 식재료들을 보급계 장교나 부사관등이 시시때때로 몰래 조금씩(얼른 눈에 띄지 않을 만큼씩) 꺼내 팔면서 용돈벌이를 하고 있었는데 신참 쏘가리 한 마리가 눈치나 요령도 없으면서 그저 부럽고 자기도 돈이 탐난다고 대놓고 콩기름 말통 2통을 통채로 빼돌리려고 하다가 위병소에 딱 걸려서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도 있을 정도이다.

그래도 이런 문제는 2000년대 이후로는 그 이전보다는 훨씬 나아진 편이다. 군납비리를 단속할 제도적 장치도 어느정도 갖추어졌고, 군수비리(특히 소규모 군수비리)의 경우 간부들도 병사 식자재까지 빼앗아서 팔아먹어야 할 만큼 가난한 형편은 면하게 된 데다가 더이상 식자재와 같은 소소한 물건들은 팔아먹기도 힘들고, 팔아봣자 용돈 벌이도 하기 힘들게 된 덕분이다.[69]

요즘은 비리보다는 예산 절감이나 편제인원 지휘실적 등 여러요인으로 인해 지휘관 선에서 식수인원을 빠듯하게 지정해주는 경우가 많은 것이 문제.[70] 특히 100명 이하 소규모 부대에서 자주 일어난다.

군수비리로 영양공급이 부실해지는 것도 문제지만, 군납비리로 잘못된 식자재가 들어온다거나 해서 집단 식중독이 터지면 큰일이 난다. 간부들, 특히 급양감독관은 간부 경력이 한 방에 날아갈 수 있다. 2000년대 라디오에서 나온 사연에 따르면, 사연을 밝힌 시청자가 1990년대 복무한 말년병장 시절에 고기가 고파서 조리병이랑 몰래 고기 삥땅쳐서 구워먹다가 불시에 취사장에 찾아온 간부에게 딱 걸렸단다. "뭐하냐"는 살벌한 물음에 이 둘은 "아무래도 고기가 이상한 것 같아서, 구워서 조사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변명을 했고, 간부는 직접 알아보겠다며 고기를 가져갔다. 그리고 둘다 '우린 죽었구나' 하고 있었는데, 다음날 간부가 "그거 상했더라. 니들 덕에 큰일 넘겼다."라면서 칭찬하면서 휴가를 보내줬다고. 엔딩이 훈훈하긴 해도, 상한 고기가 납품되었다는 점에서 보급에 문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간부들이 급식재료 조달 간에 장난을 쳐버리면 윗분들이 싼 똥을 아래쪽에서 뒤집어쓰는 꼴이 된다.

6.3. 기타

반대로 위 요인들 중 빠지는 것이 있는 부대의 경우, 짬밥이 상당히 맛있어진다. 숙련된 조리병들이 있거나 민간조리원,[71] 군무원 등이 붙어 조리를 감독하는 부대의 짬밥은 제법 먹을 만한 정도의 퀄리티까지 상승하며, 조리병을 모조리 조리전공 특기병 중에서 선발하는 몇몇 상급부대는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짬밥이 맛있어진다. 조리 전공하다 온 조리병들은 전역 이후 진로도 요리사인 경우가 많아서 직업공부도 할 겸 꽤나 프로의식을 갖고 일하는 경우가 많다. 입대 전 뷔페 등 대량조리 경력이 있다면[72] 금상첨화.

자대만 아닌 다른 부대의 밥을 먹을 경우, 만약 운이 좋아서 해당 부대원 조리병들이 요리를 한 끗발 하는 경력(요식업 계 종사를 위해 공부를 한 사람 등)을 갖고 있다면 상당한 조리 수준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물론 대량 조리를 하는 병영식 특성 상 어떤 미식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식욕을 당길 정도의 수준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또한 식수 인원이 적은 독립중대급 부대같은 경우 짬밥이 꽤 괜찮으며,[73] 해군 함정 근무자용 식사처럼 부식비가 보다 많고 부대별 메뉴 선별의 재량권이 큰 곳 역시 밥이 매우 잘 나온다. 해군은 특히 함정 및 격오지 등에 조리병 및 예산을 우선 배치해주고 있기에, 되려 제독이 근무하는 상급 부대인 전단이나 함대급의 육상 식당 밥이 더 맛이 없다. 간부식당의 경우는 보다 메뉴가 다양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는 이용하는 간부들이 돈 내고 식권 사서 먹는 거라 비교할 꺼리가 되지 않는다.[74] 해군이 이렇게 부식비가 많은 이유는 폐쇄된 공간에서 근무하며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밖에 풀 수 없는 해군의 특성과 사기 유지를 위해서이다.[75] 포템킨 반란 같이 역사에 수많았던 해군의 반란 사건 거의 대부분이 승무원을 제대로 못먹여 일어난 참사였다는 과거의 뼈저린 교훈이기도 하다.

급양관리관이 의욕이 있을 경우 더 맛있는 신메뉴를 개발하거나 자체적으로 포상휴가를 걸고 요리대회를 열기도 한다. 요리대회의 결과물은 장병들이 시식하는데, 제대로 요리를 배운 사람이 마음먹고 요리를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맛볼 수 있다. 본래 이런 우수한 조리병 자원들은 사령부급 이상의 상급부대나 국직부대 간부식당에 우선적으로 배치되는데, 간부식당과 병사식당의 구분이 애매하거나 같은 조리병들이 둘 다 담당하는 경우나 두 식당 조리병 간 인적자원의 질 차이가 별로 없는 경우[76]에는 병들은 그나마 먹을 복은 있는 셈이다.

또한, 부대에 따라 모종의 이유로 같은 메뉴라도 밥의 질이 완전히 달라지는 수가 있다. 한 예로, 같은 제2작전사령부 소속임에도 부산의 모 해안경계 부대에서는 마파두부랍시고 두부에 고추장이랑 돼지고기 좀 넣고 으깬 괴상망측한 무언가가 나올 때 대전의 모 공병여단(대령인 단장이 운영)에서는 정말로 마파두부가 나왔다. 이곳은 주변이 온통 군부대 천지인 곳이었기 때문에 사정이 양호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런 곳이라고 해도 장병들이 자기네 부대의 밥을 맛있다고 생각할지는 미지수. 그렇지만 부산의 어느 격오지에서 말 그대로 쓰레기만 먹다가 잠시 파견 온 입장에서는 신세계를 겪을 수 있었던 만큼, 짬밥이라 해도 클라스가 다르게 질이 떨어지는 곳도 있다. 이는 결국 부대 배치에 달린 셈이다.

공군의 경우는 비행단 별로 천차만별이다. 사이트 등 독립부대의 경우는 조리병들의 기량에 크게 의존하는 편이고 비행단은 시범적으로 민간위탁을 하는 케이스도 있는 만큼 진짜 괜찮은 곳도 있다.[77] 비행단 직할로 운영하는 경우는 대부분이 육군과 다르지 않게 맛이 없는 경우가 많다.

다만 위생에 집착하는 것만큼은 어떻게 해결할 수 없다. 덜 익거나 설익은 반찬을 먹고 식중독이 발생할 위험이 있기 때문인데 군대는 주기적으로 검열이 나와 위생상태를 점검한다.[78] 검열때만 되면 밥 하랴 대청소하랴 고생하는 조리병들의 하소연을 들을 수 있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중독 환자가 1명이라도 나오면 그날부로 부대엔 비상이 걸린다고 봐야한다. 이 때 취사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음이 드러날 경우 담당 간부부터 병까지 줄줄이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벤트로는 수도관 동파, 보일러 고장 등이 있다. 즉, 한국군은 병참의 중요성을 모르는 게 아니라 그 비효율적인 구조적 문제로 인해 병 처우가 개차반인 것이다.

음식을 익히는 시점을 잘 아는 조리병(=밥 잘 하는 조리병)이라면 충분히 잘 익히고도 맛있는 튀김이나 볶음을 만들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경험 부족+대량 취사라는 한계로 기름에 말려 뼈만 남은 닭튀김이나 화석화된 오징어튀김, 생선살이 소멸된 생선까스 같은 강화 실패가 벌어진다. 물론 덜 익히는 것만이 식중독의 원인은 아니다. 식중독은 재료의 선도, 유통 과정, 보관 상태 등 복합적인 원인 하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으며, 언론에만 공개가 안될 뿐이지 일선 부대에서 여름에 뻑하면 터지는 게 식중독 크리다. 그래도 식중독의 요인 중 하나라도 없애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것. 맛이니 원성이니 하는 것은 "일단 먹고 사는 데 지장없는 음식을 공급"하는 지상과제에 비하면 부차적이다. 전투로 치면 일단 이겨야 하는 것이나 같다.

부대에서도 짬밥이 맛이 없다는 건 아주 잘 알고 있어서, 각 부대별로 밥맛을 개선시키기 위한 노력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 앞서 언급된대로 민간조리원을 고용하거나,[79] 하다못해 간부의 부인을 데려오는 경우도 있고, 각 부대 시찰로 병사식당의 전반적인 상태를 점검해서 포상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상급부대라 해서 밥이 맛있는 건 아니고 끽해봐야 학식 수준이다. 싸제 밥이 더 맛있다는 건 간부들도 인정하는 상황이라 몰래 나갔다 들어오는 간부들이 없는것도 아니다. 밥의 맛은 계급보다는 인원 수에 달려있다. 독립소대일수록 맛이 좋아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기행부대라고 해서 항상 밥이 맛있는건 아니며, 해군의 경우 육상부대의 낮은 급식 만족도가 문제가 되고 있다. 계룡대 밥이라고 해도 근본적으로 급식인 이상 대량조리의 한계는 반드시 존재한다. 물론 그런데서 근무하는 간부나 병이라면 밖에서 먹고와도 둘이 같이 입다물면 잘 티가 안난다. 전문 셰프라고 해도 대량조리에 투입하면 제 성과를 못낸다.

일본에서 '군대정식'(軍隊定食)을 판다고 한다. 한국군 병영식을 구현한 듯 한데 650엔으로 발표되었다.

7. 예비군의 병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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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 미지정 훈련 시, 대부분 위의 예시와 같이, 판매용 도시락이 나온다.

동원 지정 훈련에서의 급양대가 어느 정도 식단과 재료를 통제가능한 군 식단과 달리, 동원 미지정 훈련시에는 계약한 업체마다 질이 천차만별이다보니 업체 바뀌는 걸로 질이 천차만별이다.[80][81] 제대로 된 현지 업체와 계약한 경우는 당연히 통상 판매되는 수준의 도시락이 그대로 나오기에, 민간에서 먹는 밥이랑 똑같다. 사실 한국군의 급양 문제는 돈만 문제가 아니라 군납비리를 포함해 모든 부분이 문제다 보니, 시스템을 정비한다면 충분히 나아질 부분이 많기는 하다.

예비군훈련 짬밥의 경우 몇 차례의 실태가 고발된 이후 예비역들의 화산과 같은 분노에 힘입어 조금씩 개선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문제가 많고 맛 없다는 게 예비군들의 의견이다. 실제로 예비군 훈련에서 가장 괴로운 것 중 하나는 맛없는 밥으로 꼽힌다. 이러니 가격을 들으면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대체 이렇게 맛없는 식사의 어디에 그 가격이 들어갔는지 도통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훈련 부대 입장에서도 골칫거리인 게 예비군들에게 제공할 도시락을 납품할 납품업체를 구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그나마 일부 대도시 시가지 근처에 있는 훈련장이라면 경쟁 입찰이 가능하고 년초에 도시락 품평회를 개최한다든지 평가해서 선정이 가능하니까 부대에서 의지가 있다면 꽤 개선할 여지가 있지만, 많은 예비군 훈련장들은 해당 도시에서 가장 외진 곳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경쟁은 커녕 그런 구석탱이까지 납품을 해준다는 자체로 감지덕지인 을의 입장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매일 수백식의 도시락을 납품하는 게 가능한 업체는 생각보다 한정적이고 거기다 외진 곳까지 배달을 해주는 업체라면 선정 범위는 더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예비군훈련이 주로 더운 계절에 있으니 식중독 관리 문제가 있고 말이다. 또한 연초에 약속했던 내용과 실제 납품 내용이 크게 다른 경우 또한 흔하다. 그렇다고 간부식당이나 장교식당 밥을 먹이자니 동원훈련에서는 예비군 식당으로 가져와서 먹이면 되지만 동미참훈련인 경우 또한 여러모로 골치가 아프다. 여러모로 개선이 쉽지 않은 이유이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사제 도시락 대신 그냥 전투식량을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 한두끼 정도는 훈련 과정의 연장으로 취급하면서 자연스럽게 넣을 수 있고, 전투식량의 경우 그냥 비축해 두었다 창고에서 인원수만큼 꺼내 지급하면 되니 식중독이나 보존 등의 골치아픈 문제가 없어서이다. 2형이나 3형이 지급되고 부족한 양은 부식을 통해 보충하는 경우도 있다.

8. 결론

2024년 기준으로 병영식은 많이 개선됐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족한 점이 있다. 개선된 곳보다 개선되지 않은 곳이 많고 개선되는 곳들도 육군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 육군부사관학교, 제3훈련비행단, 해군기초군사교육단, 공군기본군사훈련단처럼 간부를 양성하고 1차적으로 병사들과 국민들에게 노출된 군내 교육훈련기관 위주 또는 육군 11기동사단, 공군 11전투비행단, 제19전투비행단, 20전투비행단처럼 임무와 공로가 많은 부대들 순으로 이뤄져 평범한 부대들은 평범한 짬밥을 먹고 있다. 한국 군대의 밥이 집에서도 먹을 만한, 특히 집과 사회에서의 정상적인 요리를 먹던 젊은이들의 입맛을 충족시키는 일은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애초에 민영기업이 급식을 해주는 부대가 아닌 많은 부대들에서 요리에 능숙하지 않은 조리병들의 실력에 맛이 결정된다는 것 부터가 한계점이다. 상급부대에서 아무리 좋은 대안을 내놓아도 휘하 조리병들 실력이 좋지 않으면 재료의 질은 차치하더라도 요리의 맛만큼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터진 이후 군에서 직접 조리하는 부대의 병영식은 질이 더 안 좋아졌으면 안 좋아졌지 좋아지진 않았고 심지어 양마저 정량급식 명분으로 도시락통에 덜어서 주고 있다.

이 외의 병영식이 나아지지 않는 이유로는 '이 정도면 됐다', '뭘 자꾸 해주려 하느냐', '요즘 젊은이들은 배가 불렀다' 하는 기성세대의 꼰대스러운 태도도 한 몫 한다.[82] 특히 저 기성세대는 사실상 북한이 했던 고난의 행군과 다름 없는 행동들을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그냥 한 귀로 흘러 듣는 것이 낫다. 실제로 이런 경우가 있어서 정말 병사들을 죽인 사례가 있었는데 그 게 바로 국민방위군 사건이다. 6.25 전쟁 당시, 후방에 있는 한국군이 추위에 굶주리다 처참하게 죽었다는 건 다 저 국민방위군 사건이다. 그래서 한때 군 기피자들이 늘어나기도 했다고.

그리고 한국군 병영식의 이미지 자체가 너무 나쁜 것도 큰 이유 중 하나다. 한국군 병영식은 예로부터 '짬 차면 먹지도 않는 저질 음식' 이미지가 단단히 박혀 있는데, 이에는 국방부의 거듭된 삽질과 방관 + 전역한 사람들의 무관심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나마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 조금씩이라도 개선이 되고 있고, '진작 이렇게 바뀌었어야 했다!'라던지 '군대는 잘 먹어야 진격한다.'라면서 나아진 군대 식단을 지지하는 군필자들도 나오고 있다.

병영식 문서에도 쓰여 있듯이, 병영식이라는 것은 자기가 살고있는 그 나라의 경제력이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도 유념해야 한다. 민간업체 시범부대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병영식을 책임지는 건 각 부대의 조리병들이 많고 2024년 기준으로도 전군 평균으로 보면 질이 떨어진다는 사실은 변함 없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다른 나라의 병영식을 먹어보는 것 부터가 쉽지 않고 단순 선전 자료만 보고 판단 내릴 순 없다. 병영식 문서를 보면 만국 병사들이 공통으로 자기 나라 병영식은 정말 맛 없다며 비웃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짬밥은 잘 만들어도 짬밥이다

그러므로 일단은 다른 나라와 비교부터 할 게 아니라, 병영식의 맛이 없다는 사실에만 신경을 써야 한다. 한국군보다 1인당 지원이 좋을 수밖에 없는 다른 선진국의 병영식도 비슷한 문제점을 크든 작든 가지고 있다. 다만 그런 복무 환경이 좋은 타국의 장병의 불만은 '다른 건 다 참아도, 밥이 이 따위인 건 도저히 못 참겠다!'인 것과 달리, 대한민국 국군 장병의 불만은 "안 그래도 여러 방면에서 열악한데 밥까지 이따위면 어떡하냐.'인 게 한국군 병영식에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국방부가 2025년 이후 군급식 식재료를 전량 경쟁조달 체제로 바꾸기로 했으며, 보훈복지단체의 수의계약도 단계적으로 축소, 폐지하기로 한 만큼 # 앞으로 얼마나 빠르고 하위 말단부대들까지 민영 급식체계 또는 조리사 보급이 이뤄져 전통적인 병영급식을 탈피하는지가 관건이라 하겠다.

9. 육군, 해군 육상부대, 공군 비행단 병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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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육군, 공군 비행단 외 기타 병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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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각종 루머

11.1. 정력 감퇴제 투입 루머

군대 식사에는 정력 감퇴제가 들어있다는 도시전설이 있어, "혈기왕성한 장정들을 바글바글 모아둔 곳이 군대이다보니 만약의 불상사를 방지하고 통솔을 쉽게 하려고 몰래 먹인다"는 이야기를 종종하곤 하지만 루머다. 사실 군용 찍힌 식품이면 뭐든 다 그런 소문이 돈다.

이런 이야기가 도는 이유는 입대 후 아침에 기상했을 때 대다수가 발기가 안 되기 때문인데, 입대 전에는 매일매일 되던 아침 발기가 갑작스럽게 안 되니, 다들 원인을 찾다보니 저런 도시전설에 다다른 것이다. 실제로는 군대라는 익숙하지 않고 반발심이 드는 장소에 갑자기 들어와 평소와 완전히 다른 생활을 하기 시작해[83] 심리적인 압박이 상당한 스트레스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84]

이런 루머는 한국군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타국 군대에서도 보급품 관련으로 비슷한 사례가 많다. 유명한 정력감퇴 루머의 사례는 2차 세계대전미군이 아프리카나 동남아 전선 등에서 활동하는 병사들을 위해 말라리아 약을 개발했다 곤욕을 치른 경우. #의학신문 근거자료

미군 수뇌부가 아프리카의 나치 독일군에게 뺏은 전리품으로 부랴부랴 말라리아 약을 만들어 일선에 보냈더니, 이걸 먹으면 정력감퇴고자가 된다는 헛소문 등이 군인들 사이에서 돌아서 전염병 예방을 위해 복용시키는데 병사들과 씨름을 해야 했다. 말라리아 약의 주성분이 합성 아테브린(Atebrin), 클로로퀸 또는 식물에서 추출한 퀴닌, 독시사이클린 계열 등으로 다양한데, 종류에 따라 간독성으로 인한 황달, 구토, 어지럼증 등의 각종 부작용이나 굉장히 쓴 맛이 있는 등 병사들에게 의심받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11.2. 전염병과 육식

구제역이 터지면 주구장창 쇠고기, 돼지고기 요리들이 나오며 조류독감 파동이 터지면 닭고기 요리와 오리고기 요리가 줄창 나오기 때문에 해당 질병에 감염되어 살처분되어야 할 가축을 도축해서 먹인다는 소문이 돌지만 이것은 오해이다. 군대 식단은 보통 다음달 분량도 급양대 단위로 계획이 잡혀 있어서 이걸 갑자기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군대는 전쟁이 터져서 구매를 못 하더라도 1년치 이상 보급이 가능할 정도로 식재료들을 평소에도 축적해 놓는다.

그런데도 질병과 연관 있는 식재료가 나오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보통 식재료 관련해서 일이 터지면 해당 식재료의 수요가 줄어들어 값이 폭락하는데, 이 경우 농어민들의 생계 안정 명목으로 정부가 대량으로 구매하여 냉동창고에 보관해 놓는다. 그리고 정부에서 직접 급식을 손댈 수 있는 게 일부 관공서를 제외하면 짬밥이 거의 유일하다보니 거기다 몰아주는 것이다.

비합리적인 식재료 수요 저하에 따른 농어민들의 경제적 불안정을 한국군 장병들이 완화하게 되는 것이다. 잘 가열하고 유통이 안전하다는 가정 하에 농어민, 군인 모두 이득만 본다.

다만 실제로 저질 고기를 먹는 경우도 있긴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질병이라기보다는 원체 허약한 가축을 폐사시키고 그런 물건을 납품하는 케이스다. 진짜 가축 전염병이 돌 때 가축들은 이미 다른 정부 부서에서 다 폐사시키기 위하여 혈안이 돼있으며 정부에서 사서 주는 고기는 비축분이거나 공급 조절을 위하여 급하게 사온 물건이니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비록 쓰레기통이 된 듯한 기분 나쁜 건 어쩔 수 없겠지만, 멀쩡한 고기 먹는 게 여러 모로 좋을 테니까. 물론, 그 사례는 정말 극단적으로 답이 없는 유사국가에 가까운 짓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는데, 특정 식재료 가격이 폭등하여 식재료 수급이 불가능할 경우 식재료 가격이 안정될 때 까지는 해당 식재료가 들어간 음식은 구경도 할 수 없다. 대표적인 것이 2010년의 배춧값 폭등 사건. 당시 군 생활했던 사람들은 배추 가격이 안정될 때까지 배추김치는 국 속에 들어간 것만 보고 그냥 김치는 깍두기만 봐야 했다. 심지어 메뉴는 김치찌개인데 김치만 빼고 나머지 재료들은 다 넣은 김치찌개가 나오기도 했다.

11.3. 교도소소년원 배식과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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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이미지를 놓고 '교도소 밥보다 군대 밥이 훨씬 못하다'는 논란이 나왔었다.

그런데 이 사진은 아주 잘못된 예시이다. 왼쪽 교도소 밥은 수감자들의 밥이 아니라 교도소에 근무하는 교정직 공무원들의 식사다. 교도소 밥에 나오는 숟가락과 젓가락은 무기로 쓰이거나 탈옥을 막기위해 쇠가 아니라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원칙상으로는 병영식비가 교도소 급식비의 1.9배 수준으로 교도소 밥보다는 병영식이 양도 많고 질도 좋아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파일:external/www.myseoultech.com/140223_2b757d4aa234ccf7060b7202f089ea20_2gvXgNkIeo1shY9wrgBD5gsG7.jpg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07040515271330003800-001.jpg
충청남도 천안개방교도소의 식사. 이곳은 전국의 모범수만 가는 전국 유일한 개방시설로 유일하게 쇠로된 수저를 쓴다. 처음 이송가는 수용자는 식사할 때 수저가 무거워 깜짝 놀란다고 한다.

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14102600487_1.jpg
서울 남부교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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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외국인교도소.[85] 빵식 등 여러 종류의 외국인 식단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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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페 재단 소망교도소. 법무부 소속이 아닌 민영기관으로 식당에서 민간 직원과 수용자가 다 함께 먹는 것을 컨셉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문제는 예산이 부족하여 반찬이 다소 부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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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천정보통신학교(전주소년원)

파일:external/image.newsis.com/NISI20151112_0006122085_web.jpg
신촌정보통신학교(춘천소년원)

파일:external/news.hankyung.com/AA.11231478.1.jpg
고봉정보통신학교(서울소년원)

대한민국 국군의 급식 상태가 영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은 현역이나 예비역이나 체험상 모두가 공감하는 것이다. 이것은 대한민국 국군의 급양시스템을 차차 개선시켜나가는 것으로 풀어야지, '감히 국민이 낸 세금으로 주는 밥을 교도소 밥에 비교하다니! 불경하다!' 혹은 '교도소의 재소자들이 좋은 밥을 먹다니! 군대의 밥보다 개판으로 만들어라!'는 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문제를 개선하는데 손톱만큼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방부 측의 해명과 네티즌들의 반응

국방부는 '병영식이 교도소 식사보다 낫다'며 논란에 대해 해명했다. 당연히 현역으로 입대한 거의 모든 성인 남성들은 씨알도 안 먹히는 변명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인데 국방의 의무를 위해 청춘을 희생하고 있는 군인들의 식사와, 중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들의 식사가 비교 대상으로 오르는 상황만으로 국방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아직도 만화 같은 곳에서는 수용자들에게 '콩밥'을 주는 이미지가 강한데, 콩은 건강에는 좋지만 값이 비싸기 때문에 1986년에 폐지되었고, 보리쌀마저 가격이 올라 2012년 이후 현재까지 건강에 안 좋은 순수 흰밥만 나온다. 반면 군인들은 콩밥, 콩나물밥, 보리쌀밥, 흑향미밥 같은 잡곡이 돌아가며 나온다.

12. 사건 사고

12.1. 대한민국 국군 자가격리 장병 부실 식사 제공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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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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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80년대부터 일본군에서 쓰였던 단어로, 발음은 ‘잔판’이다.[2] 쪄서 만든 밥은 밥솥에서 한 밥에 비해 영양면에서 못 미치지만 쉽고 빠르게 많은 밥을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찐 밥은 2000년대 들어서 퇴출되고 가스식 자동 취반기로 바뀌는 추세지만 훈련장같이 상시 밥을 하는 곳이 아니거나 소규모 부대라면 여전히 사용하곤 한다.[3] 주로 보신탕 공급용 누렁이 농장.[4] 이 짬아저씨와 달걀 껍데기 때문에 트러블이 생기기도 한다. 민간에서도 달걀 껍데기는 일반 쓰레기로 분류되고, 누렁이나 돼지들이 달걀 껍데기를 먹다가 탈이 나는 경우가 있지만 병들이야 그냥 짬통에 던져버리는 경우가 많고, 이 달걀 껍데기가 빵식을 제공하는 날에 정기적으로 배출되기 때문이다. 간부들이 관리감독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들도 따지고 보면 그냥 직장인이나 병역의무 이행을 위해 반강제로 끌려온 카포가 많다 보니 정확한 지시통제가 잘 되지 않는다. 당연하지만 조리병들도 달걀 껍데기 따로 배출하면 일거리 늘어나니 싫어한다. 꽃게된장국이 나오는 날엔 돼지가 게를 먹고 목이 막혀 죽는다며 따로 수거를 종용하는 곳도 있다.[5] 왜냐하면 군에서는 식사도 급식 명령이다. 군이 보유한 장비들이 언제라도 가동할 수 있는 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전투자원의 일부인 군인도 임무수행에 걸맞은 체력과 기력을 항상 유지하고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선임이 식사를 못하게 막는 식의 부조리를 행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때문에 강제성이 있는 명령으로 식사를 반드시 하도록 한 것이며, 식사 거부에 대해서는 반드시 명령불복종으로 처리된다.[6] 밥 잘 나오기로 유명한 미군도 1일 급양비가 15달러 정도로, 한국군과 큰 차이가 없다.[7] 격오지로 갈수록 밥이 맛있어지며, 비행단 내 파입부대에 있는 포대와 정비대는 해당사항이 없다.[8] 현대전 기준으로 병력의 20~30%, 극단적으로는 10%만 전투력을 상실해도 해당 부대는 전멸한 것으로 본다. 이 전투력 상실에는 단순한 전사 말고도 질병 등으로 병력이 전투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도 포함된다.[9] 이러한 이유로 민간조리원 제도가 있기 전에는 조리병 재량으로 다른 사제 식재료를 넣는 것을 간부들이 매우 싫어했다.[10] 이를 보존식이라고 부른다.[11] 굽는 것은 조리 과정이 번거로울 뿐더러 통념과 달리 속이 덜 익어서 멸균 효과가 비교적 떨어지는 조리법이라 삼겹살데이가 아니면 거의 없다.[12] 예를 들면 국군준비대.[13] 6.25 전쟁 이후 미국 레인저 부대와 미 해병대 똥군기가 추가된다.[14] 주로 육군, 공군, 해병대에 해당하는 이야기. 해군은 손원일 제독과 상선사관들이 주도하여 만들었고, 타국 해군 경험자들이 별로 없었던 관계로 타군과는 다르다.[15] 사실 중국은 황조에 따라 군인의 처우가 조금씩 다르긴 했다. 원나라청나라는 유목민족 국가라 정복 활동이 활발해서 군인의 처우가 비교적 괜찮았으나 청나라는 점차 한족에 동화되고 황제들이 군부의 득세를 경계해 뒤로 갈수록 처우가 나빠져 결국 아편전쟁 때 제대로 힘을 못 써 망국으로 접어든다. 송나라는 국조인 조광윤부터가 쿠데타로 건국한 국가고 오대십국시대 절도사들이 날뛰는 것을 직접 본 만큼 군인이 난이라도 일으킬까 경계해 강력한 문치주의 정책을 펼치고 군인의 지위를 크게 낮췄으며 명나라 역시 군인의 처우가 별로 좋지 못했다.[16] 주말마다 카레라이스를 먹는 전통도 영국 해군에서 온 전통이다. 바다에선 요일감각을 상실하기 쉬워 이렇게 한 것.[17] 실제로 60-70년대 세대까지만 해도 남성 인구수가 많아 방위병, 심지어는 면제도 흔했었다.[18] 월급을 좀 인상해달라는 군부의 말에 군인은 봉사하는 직업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19] 정말 청렴한 군인 가족의 경우 집안이 먹고 살 만 하거나, 아내가 장교 부인 신분으로 관사 근처에서 밭농사 지으면 버티는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굶어 죽을 판이었다.[20] 일본군하면 굶주리는 것이 쉽게 떠오를 테지만, 그건 전선이 급격하게 늘어났던 태평양전쟁 시기 때 이야기이고 평시에는 고기와 생선은 물론 양식 등 좋은 반찬 지급에 신경을 써주었으며, 우동, 맥주, 단팥죽, 찹쌀떡, 카스테라, 라무네 등을 부식으로 자주 급양했다. 심지어 이건 육군이었고, 상대적으로 급양에 더 신경 써주는 해군은 말할 것도 없었다.[21]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하러 간 경군의 경우 기본적으로 쌀밥, 간장, 젓갈을 지급해 주었고, 반찬으로 삼으라며 못해도 조기나 북어 같은 생선류를 틈틈이 보냈으며, 때때로 부대운영비로 종군상인에게 부탁해 현지에서 반찬을 마련해 오거나 구해온 쇠고기를 구워 먹거나 장국으로 끓어먹기도 했다.[22] 대한제국군의 경우에도 매끼 쌀밥과 고깃국 등의 육류를 지급해 주었고, 부식으로 양과자나 빵, 설탕, 당시 사치품이었던 사이다는 물론 심지어 일부 부대에선 미제 통조림이나 위스키 같은 양주를 주기도 했었던 것과 비교해 보면 참담하다.#[23] 다만 앞서 주장은 당시 경군 병력이 600명 내외인데다 대한제국군도 모병제에 병력 규모가 3만명 내외로 작은 군대였으며 거기에 대한제국 군부 예산 대부분이 식비와 봉급으로 편성되었고 훈련과 무기 도입 관련 예산 비중은 대단히 낮은 편이라 저런 배식이 가능했던 점을 간과하고 있다.# 그리고 현금으로 지급하여 사 먹는 식이었는데 밥을 하루 한끼만 먹고 나머지 밥값을 탁주 마시는데 쓰는 병사들도 많았다.# 거기에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여파로 군수와 병참에 문제가 생겨 동학농민운동 2차 봉기 당시 조선군 병사들은 월급도 3개월치 밀려있다가 일본이 지급하는 형편이었다.#[24] 포병이나 공병 같은 지원병력도 변변치 않았으며, 소총도 모자라 일본군이 두고 간 38식, 99식를 들려줄 정도로 머릿수(보병)에만 극단적으로 치중되어 있던 군대가 당시 한국군이었는데, 이것도 모자라다고 생각했는지 머릿수를 더 채우기 위해 군사원조금을 대전차 방어물 건설에 사용되어야 한다는 KAMG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징병 관련 행정기관 설치에 돌렸다가 6.25전쟁으로 미완의 방어선도 뚫리고,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었던 탓에 기껏 자금 돌려서 투자한 행정망도 어이 없이 붕괴되었다.[25] 이유는 간단하다. 미 국무부에서 극동의 신생국보단 당시 반병신 상태였던 NATO 회원국들에 대한 재무장과 재건사업이 우선하였으니 원조순위가 최하위권이었으니까.[26] 그나마도 기타 부재료 없이 소금만으로 절인 수준이거나 고춧가루가 들어가는 둥 마는 둥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27] 베트남전에 참전하면서 파견 대한민국 국군의 보급과 급양은 대한민국 정부가 책임진다는 명목으로 국내 산업을 육성하고 관련 비용을 미국 정부에서 받았다. 그 전까지는 군복같은 기본적인 피복장구도 미군 재고였다.[28] 당시 군대에서 지급된 보리빵은 그 시대 배고픈 군인들 기준에서도 정말 맛이 없었던 해괴한 부식이었다. 배가 고파서 어쩔 수 없이 먹은 것이라 먹을 게 많아진 후엔 뒷전이 된 것이다. 심지어 관물대에 쳐박아 둔 게 검열에 걸렸을 때도 병사들이 다들 "그거 맛없지 말입니다."라고 했을 때 간부들도 차마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을 정도다. 모두가 맛없음을 알고 인정할 정도로 맛이 없었다. 결국 이 보리빵은 군견들에게 넘겨졌는데, 개들도 몇 번 먹다가 맛이 없었던지 나중에는 안 먹었다.[29] 부식을 수령해 온다던가 물자나 문서를 받아온다던가 하는 이유로 말이다.[30] 심지어 전차 주포(!)를 잘라서 고물상에 팔았다는 증언이 담긴 장교 출신 언론인의 회고록도 존재한다. 이쯤되면 대한민국 국군인지 북한군인지 구분가지 않을 정도로 군수비리와 얼빠진 군기가 만연해 있었다.[31] 물론 준 쌀의 일부는 그 집에서 수고비 겸 반찬값으로 챙겼다.[32] 웬만하면 계급에 상관없이 공정하게 보급되는 21세기 현재와는 달리, 1970-1980년대 당시에는 보급품을 받는데도 계급간 차별이 심했다. 특히 라면과 같은 간식(증식)은 면도날등의 위생용품과 함께 '일정량을 보급받으면 부대 내에서 재량껏 나눠쓸 여지'가 큰 것이라 계급이 높을수록 많이 챙겨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즉 일정량의 라면 보급이 나오면 병장은 6봉 챙겨가는데 이등병은 2봉밖에 못 가져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것. 따라서 해당 사례의 할머니는 이를 역이용하여 나름 공정한 가격을 책정함으로써 모든 군바리가 공평하게 1봉씩 먹게 된 셈이다.[33] 군대에 납품되던 라면은 봉지부터 군용이라고 인쇄되어 있고, 특히 1970-1980년대의 군용 라면은 일반 소매용 라면과는 달리 한 봉지에 2개씩 포장되어 있기에 봉지부터 티가 나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이렇게 빼돌린 라면들은 일반 소매 고객이 아니라 분식집 등 식당으로 팔렸을 가능성이 높다. 봉지에서 티가 난다고 해도 가게 창고에 보관했다가 주방 안에서 봉지를 뜯어 끓여내면 손님이나 주변 사람 입장에서는 알 수가 없는 것. 아마 지인의 식당이나 식당에 식재료를 공급하는 도매상 등에 덤핑으로 넘겼을 것이며, 위 비율대로라면 (군바리들에게 김치쯤 챙겨주더라도) 상당한 이익이 남았을 것이다.[34] 머튼은 향신료를 많이 넣고 오랫동안 조리하는 커리, 스튜 등의 요리에 쓰고, 램은 주로 스테이크나 로스트에 쓰인다.[35] 참고로 링크는 움짤로 되어 있지만 유튜브에서 원본 영상을 찾아보면 병사에게 '빵에 잼을 더 많이 발라라'고 지시하는 목소리가 들어가있다.[36] 1960-1970년대의 경우 군부대 PX에서 "카바이드를 넣어 억지로 익힌" 막걸리를 팔았고, 1990년대까지도 간간히 맥주나 막걸리 같이 가벼운 주류는 간혹 반입되곤 했다.[37] 1980년대 당시의 요리 풍토에 대해 알 수 있는 매체로 당시 출판되었던 요리책들이 있다. 낱장을 떼어 레시피카드로 사용할 수 있도록 두꺼운 종이에 인쇄하여 링바인더로 제본하고, 당시로써는 호화로웠던 (2010년대 이후 기준으로도 초라해보이기는 커녕 제법 화려해 보일 정도의) 풀 컬러 인쇄로 요리 사진까지 싣고 있는 요리책들이 많이 출판되었고, 중산층 이상 가정에서는 새신부의 혼수품으로도 크게 유행했던 것.(종이의 질이나 컬러 인쇄비용등으로 인해 그냥 사기는 많이 부담스러운 가격이었기에, 결혼하여 새 집안을 꾸리는 신혼부부를 축하하기 위한 혼수품으로 마련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런 멋진 요리책을 선물받은 새신부중에서 그 요리책에서 소개하는 요리를 정말 해 본 사례는 거의 없었는데, 그 이유인즉 요리책이 소개하는 레시피들이 일반 가정에서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연하다는 듯 오븐에 익히라고 하는데, 1980년대 당시 일반 가정집 중 오븐을 갖춘 집이 얼마나 되었겠는가. 1980년대 초반만 해도 대한민국은 농촌의 경우 유선전화의 보급조차도 원활하지 않던 시대였다.[38] 식재료조차도 당시 국내에서는 구하기 쉽지 않은, 롯데백화점이나 (구)삼풍백화점 등의 백화점 치고도 럭셔리 지향 백화점의 식품관에나 가끔 들어오는 재료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 당시에는 대형마트는 아직 없었으며, 일반인들이 공산품 식재료를 구하려면 동네 구멍가게나 '연쇄점'이라고 불리는 슈퍼마켓이 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게다가 그 당시 고급 백화점에서 판매하던 유럽산 치즈나(1980년대에는 치이즈라고 불렀다.) 향신료를 보면 1980년대에 이미 7~8000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었다. 이는 이 당시는 수입식품이 극히 제한되어 판매되었기에 이러한 가격이 형성되었다. 안 그래도 한국의 경제발전이 모자라 일용품이나 생활용품에 수입품을 쓰는것조차 사치라고 욕먹던 시기에 먹어서 없어질 음식 재료로 수입품을 쓸 만한 가정이 그리 많을리가 없다. 하다 못 해 '소-스는 오이스터 소-스나 엔초비 소-스를 사용하라'는데, 오이스터 소스는 굴소스(호유)로써 중국식당들을 상대하는 식자재상에 가면 살 수 있다거나, 엔초비 소스는 멸치젓국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정도의 설명도 해 주지 않은 것. 말하자면 평생 요리를 해 오신 아주머니께 보여드려봤자 "까만건 글자고 흰 건 종이구나. 그런데 음식 사진은 참 예쁘네~ 이걸 해 달라고? 이런건 비싼 전문 식당에서나 만드는거야~" 수준의 반응 이상은 나오기 힘들었다. 결국, 정통 레시피에 구하기 힘든 재료나 도구가 있으면 생략하거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대체품을 알려주는 등 일반인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요리 레시피를 소개하는 것은 2000년대 이후에나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고 1980년대~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요리 관련 정보에서는 '난 이렇게 특별한 것을 알고 있다'고 자랑하는 식의 불친절한 레시피가 요리계의 대세였다. 여기에 인터넷 보급 이후 시대와는 비교할수도 없을 정도로 다양한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낮은 시대이기도 했으므로, 조리병이나 간부에게 설명서를 가져다줘봤자 "이거 무슨 소린지 전 하나도 모르겠고요, 애들 빵 먹이라니 쨈이나 발라줍시다" 라는 반응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던 것.[39] 하지만 1990년대 이후로 현재는 장병 건강을 생각해서 콜라는 메뉴에서 빠졌다가 2016년부터 일부 급양대에서 다시 보급되기 시작했다. 다만 탄산음료가 아닌 건 잘 나와서 그 유명한 맛스타는 애교 수준이고 아이스크림, 두유, 이온음료 심지어 비타민 음료도 나온다. 사이다도 나오는데 이건 별로 맛없다는 의견이 다수이다.[40] 흔히 정부미(政府米) 등으로 불렸다가 2000년대 후반에 가서 "나라미"로 개명되었다.[41] 그래서 김장굴이 무너져 병사가 깔려 죽은 사건 사고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42] 이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귀한 자식 군대에 데려온 것도 모자라 부모의 노동력과 돈까지 갈취한 사례이지만 (물론 부모들을 병사들 대하듯 막말하거나 막 부려먹은 건 아니지만 보수를 주는 것도 아니면서 사비로 차비 내고 부대까지 와서 자기 손으로 김치 담가주고 돌아가라고 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비정상적인 일이다.), 당시 부모들은 안 하면 자기 자식이 제대로 된 김치를 못 먹는다니 할 수 없이 가서 해 주었다. 심지어 부대에서 준비한 재료는 겨우 배추나 무우에 소금 정도이고 양념재료는 액젓이나 젓갈은 커녕 고춧가루도 부족해서 장병 부모들이 돈을 추렴해서 사오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개중에는 세 아들을 모두 군대에 보내면서 매번 김치 담그러 쫓아다녀서, 이걸 추억으로 승화시켜서 수기를 쓴 어머니까지 있었다고 할 정도이다.[43] 다만 2000년대 이후에도 대부분의 부대에서는 고장 등의 비상 상황을 대비하여 스팀 다단식 취사기(디젤 증기식 취반기)를 여전히 남겨두고 있으며 예비군훈련장 등의 상시 밥을 하는 곳이 아닌 일부 훈련장이나 소규모 부대에서는 가스 다단식 취사기로 교체하지 않고 그대로 운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 외에도 기동형 취사장비(취사 트럭/취사 트레일러) 역시 스팀 다단식 취사기(디젤 증기식 취반기)를 쓴다.[44] 압맥이라고 해서 보리를 한번 찐 다음 납작하게 눌러서 말리는 가공을 거친 것인데, 시장 곡물가게나 마트 잡곡코너등에서도 쉽게 살 수 있다. 보통의 보리는 밥을 지으려면 먼저 불려서 한번 삶거나 찐 후에 밥을 할 때 넣어야 하지만 압맥은 바로 섞어서 밥을 지을 수 있기에 훨씬 덜 번거롭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보리밥은 산채비빔밥이나 보리밥등을 별미로 먹는 것이 아니라면 혈당 조절이 필요한 당뇨 환자(특히 흔히 2형 당뇨라 하는 성인병으로써의 당뇨 환자)들이 흰 쌀밥 대신 잡곡밥을 먹을 때가 아니면 거의 찾지 않는다. 그런데 일상식인 병영식이 매끼니 별미밥을 짓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고, 건강한 20대 초반의 장병들이 혈당 조절을 위한 식이요법을 필요로 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오히려 소화가 느리고 열량이 낮은 잡곡밥은 많은 육체활동을 위한 충분한 열량을 섭취하는데 방해가 될 뿐이다. 쌀이 부족하던 시절 혼식으로 양을 불리기 위해 만들어진 규정이지만 쌀이 흔해져서 잡곡이 오히려 쌀보다 비싸진 시대에는 비용 절감 효과조차도 없는 시대에 뒤쳐진 어리석은 규정이 되어버린 것. 국방부는 (잡곡 가격 때문에) 예산을 더 써야 하고, 취사병은 밥 짓기 귀찮아지고, 병사들은 맛 없는 밥을 먹어야 하니 누구 하나 이득보는 이가 없는 후진 규정이었다. 그나마 잡곡밥을 '가난의 상징'으로 여겨 극혐하는 정서가 줄어든 젊은 세대의 병사들에게 이것저것 다양한 음식을 먹여준다는 의미로 '가끔 잡곡밥을 배식한다' 정도의 규정이라면 그나마 좀 이해할 여지가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의무적으로 보리밥을 먹이게 하는 규정이니 그런 것도 아니다.[45] 하지만 실제로는 병사들이 보리밥을 안 먹으니 보리쌀만 창고에 쌓여 처치곤란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46] 다만 전복은 알다시피 그 비싼 가격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중급 크기의 전복이 아니라 작은 크기의 새끼 전복이다. 이걸 요리로 내놓기는 좀 난감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삼계탕과 같이 나온다. 흔히 오분자기라고 하는 그것이다(단, 어획량 부족으로 오분자기 식당조차도 대용으로써 쓰는 거지 실제 오분자기와 새끼 전복은 별개의 종이다.).[47] 전복 삼계탕은 육군기준 2015년에도 배식되었다.[48] 하지만 현역 및 예비역 병들은 여기에 대해서도 "감시단으로 아버지들이 가면 철저히 보여주기식인 거 다 뽀록날 거 뻔해서 굳이 어머니들이랑 여군들로 감시단 꾸렸다."라며 불신 가득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49] 가끔 과일음료가 우유 대신 배급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대부분 우유가 배급된다. 군납우유의 경우 2004년부터 2014년 10월 1일 이전까지 일반적으로 먹는 200ml의 우유와 다르게 250ml 규격으로 나왔으나 2012~2013년 당시 우유급식 용량을 250ml에서 200ml로 축소, 연 365회 공급계획을 세우고 수입 과일주스를 대폭 늘리려다 덜미를 잡힌 바 있었다. 당시 반발이 일자 국방부가 공식적으로 2014년 10월 1일부터 200ml로 축소하되 456회로 조정하여 급식총량을 유지키로 한다고 정책이 바뀌게 되었고 그 결과 200ml으로 용량이 줄었으며 이후 456회에서 감소하여 437회로 조정되었다. 이후 2018년에는 200ml 365회를 공급하되 72회에 대해서는 가공유를 도입하자는 안이 등장하면서 오히려 2012년 ~ 2013년 이전보다 퇴보되었다. 자세한 것은 출처 기사 참고.[50] 해당 메뉴는 주로 조식으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조리하기 편하기도 하고 아침에 먹기도 좋은 간편한 식단이기 때문.[51] 군납품이 그렇듯이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을 납품하기에 튀김 재료로 쓰는 조기의 크기가 많이 작아서 살점이 얼마 없다. 그런 주제에 가시는 쓸데없이 많아서 처리하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게다가 캔참치 제조마냥 엄청난 고열로 쪄서 가시를 흐물흐물하게 만들어 놓으면 가시째 씹어먹으면 되긴 하지만 이 조기튀김은 생조기를 평범한 기름에 튀길 뿐이다. 병영식에서 만든 튀김의 특성상 조리병 입장에서 남은 식재료 구워먹는 거 아니면 갓 튀겨 맛있는 생선튀김이 나올 리 만무하고 식어 눅눅해지지 않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이다. 생선에 환장했거나 생선을 귀신같이 잘 발라먹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여지없이 통으로 직행시켜버린다. 그마저도 대량으로 조리하는 특성상 튀긴 지 오랜 시간이 지나 눅눅해진 채로 나오는 조기의 경우는 더 흐물해진다. 거기다 조기 튀김 후 남은 기름으로 건빵을 튀기면 더 최악이다.[52] 시중 판매 식품이 아닌 군 전용 인지라 아예 완전히 사람 먹으라고 만든게 아닌 식품이다. 어떻게 만들든 군 보급품으로만 납품하는지라 완전히 대충 만들었다.[53] 1986년 아시안 게임 육상 금메달 3관으로 유명했던 임춘애 선수의 경우, 실제로는 체력 증강을 위해 도가니탕과 뱀탕 등 몸에 좋다는 건 다 챙겨 먹었으나, 임춘애 선수를 영웅화시카고 후원금을 더 지원받게 해줄려는 기자로 인해 가난으로 라면만 먹으며 우유 한잔 마음대로 못 먹고 승리한 인간 승리 스토리로 알려지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다만 이건 기자가 어린 임춘애 선수에게 더 지원을 받게 해줄려는 선의였다.[54] 군만의 문제로 보기에는 일본 초등학교 교사들조차도 칼을 차고 다니고, 학급을 군대식으로 유지할 정도로 사회 전반이 병영사회화 되어 있었다.[55] 사진만 봐도 매우 열악하지만 좋게 보이기 위해 여러 식사 중 잘나온 것을 올렸기 때문에 실제 식사는 이보다 더 열악하다는 것이다. 해병대는 아예 메뉴가 3가지 밖에 없다.[56] 사실 훈련소 병영식은 군대 내에서도 가장 질이 안 좋은 편에 속한다. 기본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양이 워낙 많아서 그에 반비례해 맛이 없고 또, 양도 부족할 때도 자주 있는 편이다.[57] 사실 어찌보면 가장 근본적인 이유기도 하다. 하술할 열악한 환경을 방치한다는 것 자체가 대우를 안 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58] 사령부 등의 상급부대보다는 보충대, 육군훈련소 등의 훈련 및 교육부대. 사령부의 경우 사령부 자체를 담당하는 소규모의 본부대가 별도로 존재하기 때문에 소형부대에 더 가깝고, 결정적으로 장성 등의 높으신 분들이 상시 존재하는 곳이다보니 절대 밥을 대충 지을 수가 없다.[59] 잠수함은 한국군의 경우 일단 승조원이 무조건 부사관 이상부터이기도 하고, 일반 전투함보다도 작은 크기에 밀폐까지 되어있다보니 승조원 사기 진작 차원에서 어느 나라든 역사적으로 잠수함에 대한 부식비 지원이 후했다.[60] 이에 따라 최근에는 기호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식단이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그래봤자 겨우 소스나 카레+짜장을 선택하는 수준에 그친다.[61] 사실 음식 문제 뿐만아니라 군은 모든 부문에서 성과를 내도 이익을 전혀 주지 않고 군이 정한 목표에 미달할 경우 처벌만 존재하기 때문에 필요이상의 노력을 들여 잘 하려고 할 필요가 아예 없다. 그냥 딱 시키는데 까지, 처벌 안받는데 까지만 하면 충분하다.[62]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무작정 의무 식사를 폐지해버릴 수도 없다. 그렇게 되면 이번엔 식사를 갖고 새로운 가혹행위가 등장할 게 뻔하기 때문. 가령, 일이병을 혼낸다고, 식사 자체를 못하게 하거나 거짓말을 쳐서 굶는다고 하는 등 고참이 밥 자체를 가지고 못 먹게 하는 것들이 있다. 의무적인 식사는 전투력 유지 목적도 있지만 어느 정도 병사를 보호하는 측면도 있다.[63] 사실 조리병 입장에서는 망하거나 말거나 그마저도 상관없다. 사회라면 영업이 잘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안되면 개업에 들어간 투자금이 손해를 보기 때문에 잘 해야될 동기가 충분하지만 군대에서는 음식을 안만들면 처벌 받기 때문에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하는 것일 뿐 영업이 잘되도 한푼 얻는게 없듯이 망해도 잃는게 없다.[64] 식당에서 인원들이 식사를 하는지 체크를 하며 결식이 심각한 경우 지휘관 재량으로 제재 또는 단체 군기훈련이 부여될 수도 있다.[65] 종종 잔반 배출을 불취식으로 간주하여 금지한 부대도 볼 수 있다.[66] 실제로 2012년 경에 공군교육사령부에서 실명 설문조사에 매우 불만족에 체크하고 불만사항 주욱 적었다가 당시 군수부대장한테 불려가 욕을 먹었다는 병사가 있다고 한다. 대놓고 엿먹어보라는 의미로 적었다.[67] 사실 예산이 없다는 소리도 병사와 예비역 출신들에겐 전혀 와닿지 않는 것이 하루가 멀다하고 장성전용 골프장과 복지시설 복지비용이 늘어가는 곳이 군대이다. 물론 소수의 장성만을 위한 예산과 수십만 단위의 병사들 전체를 위한 식사 비용이 같진 않겠지만 예산이 없는데 장성만을 위한 것은 계속 늘어가고 병사를 위한 것은 고정이라는 말을 납득할 사람은 극히 적다.[68] 이를 풍자하는 농담이 바로 '황우도강탕'이다. 고깃국이라고 하더니 소가 밟고 건너간 강물을 떠다 끓인 것처럼 고기맛이 전혀 나지 않는다는 것.[69] 한민구생계형 비리 발언에 대해 나이 지긋한 예비역들이 허탈함과 어이없음이 섞인 분노를 느낀 이유의 일부도 이런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 한민구 본인은 예전보다 규모가 작아졌다는 의미에서 그런 표현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규모가 작아져봤자 수억~수백,수천억대에 이르는 방산비리(군납비리)를 두고 '그정도면 생계형'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진짜 생계형 비리는 우리가 젊어서 군생활 하던 시절에 우리 먹을 쌀 몇되, 고기 몇근 훔쳐서 말아먹던 그 간부들이 하던 짓 아니냐? 그때는 그놈들 때문에 우리가 배고프다고 미워했지만, 차라리 그놈들은 자기 가족 밥상에 반찬 한가지라도 더 올려주고 싶어서 그런 짓까지 한 것이니 그나마 용서가 된다' 식의 허탈한 분노를 느낀 것.[70] 가령 편제가 200명인 부대에 실질인원이 250명이라면 편제인원만으로 식수가 배정되어 50인분의 식사가 없는 경우.[71] 대대급 이상의 대형 부대에서는 의외로 자주 볼 수 있다. 물론 이들이 요리를 못하거나, 농땡이를 피우거나, 집과는 많이 다른 취사장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경우라면 맛이 나아지지 않을 수 있다.[72] 보통 이러한 요리 경력이 있는 경우 조리병 중에서도 엘리트이기 때문에 대부분 군단 같은 상급 부대에서 빼돌려간다. 매우 높은 확률로 지휘관이 소장 이상인 곳으로 간다. 그리고 그런 곳으로 간다면 대부분 간부 식당에 배치되지 병사 식당에 배치되는 경우는 드물다. 아니면 아예 대통령경호처 지원부대 같은 곳으로 가거나.[73] 특히 여기에 양호한 민간조리원이 추가될 경우 짬밥 거르는 병사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74] 간부식당은 부대장을 포함한 부대 지휘부가 식사하는 곳이라 퀄리티가 좋다.[75] 해군은 배 위의 갑판 이등병이 육상 사령부의 제독보다 양과 질에서 더 좋은 배식을 받는게 당연시 된다. 고기 반찬도 자주 나오고 1식 7찬이 제공되는 함정도 있다.[76] 간부식당 조리병이나 병영식당 조리병이나 해당 전공자, 종사자 출신에 조리특기 지원해서 자원입대한 자원[77] 구내식당을 운영하는 기업체들이 주로 맡는다. 민간위탁의 시범 케이스인 제11전투비행단풀무원과 계약했다. 11비의 경우는 과거부터 에버랜드와 계약해서 정말 괜찮았던 적이 있었다.[78] 이 검열관들은 짬통까지 뒤져서 살펴볼 정도로 지독한 양반들이다.[79] 하지만 민간조리원의 솜씨가 부족하거나 게을러서서 밥맛 개선에 크게 관심이 없는 경우 여전히 밥맛이 좋지 않은 경우도 있다.[80] 해안지방 모 부대는 12월 보충훈련에 쌀 샤베트가 나오는 바람에, 예비군들이 극대노한 후 스티로폼 보온도시락이 도입되기도 했다. 놀랍게도 해당 예비군 부대는 2016년 이후부터는 밖에서도 만원 내고 사먹고 싶을 정도로 초 고퀄리티의 식사를 6천 원에 제공중이다. 업체 하나만 바꿔도 이렇게 달라지는 게 현실이라 부대 급양관들도 골치아플 듯하다.[81] 공군 동미참 훈련도 공군행정학교 혹은 제10전투비행단 식당에서 밥을 먹기 때문에 학생예비군 등으로 빠지지 않는 한 군 식단을 그대로 먹게 된다.[82] 유감스럽게도 현 세대 젊은이들에게 군대 환경에 훈수를 두시는 중노년층 분들은 인구 수가 엄청나게 많으면서도 징집률이 독보적으로 낮은 세대이다(병무청 통계에 따르면 연령대별 병역 미필률은 ▶1940~49년생 38.5% ▶1950~59년생 33.8% ▶1960~69년생 30.5% ▶1970~79년생 18.3%였다.). 물론 개인차가 있으니 총합 통계만 갖고 이야기 하는 것은 무리지만, 적어도 미필 비율이 10% 언저리인 현 세대보다는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이 많을 확률이 높다.[83] 대부분 입대 전에 휴학하거나 하던 일을 그만두고 입대까지 한동안 놀다가 입대하기 때문에,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지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모든 행동을 통제당하는 상황이다.[84] 실제로 2016년 전역의 11사단 출신은, 부대에서 이 루머를 정면으로 반박하기 위해 군대물이 아니라 싸제 생수를 제공했다고 한다.[85] 상술한 천안개방교도소 옆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