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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요리 · 중화 요리의 계통별 분류 · 한국식 중화 요리 · 일본식 중화 요리 · 미국식 중화 요리 |
1. 개요
바탕은 중국 요리이나, 대한민국의 지역 특색에 맞춰 새롭게 변형된 중화 요리이다. 한국식 중화 요리를 파는 음식점을 한국에선 청요리(淸料理 : 청나라 요리란 뜻으로 가장 오래되고 정확한 표현)나 중국집이라고 한다.[1]2. 역사
한국식 중화 요리는 초기만 해도 정착한 화교들 다수가 산둥성 출신이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산둥성 요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만주족 요리의 영향이 강한 만주 요리의 영향도 받았는지 만주 요리인 물만두나 군만두와 같은 요리가 나오기도 한다.[2]#한국에 정착한 화교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으나, 근대 들어 한국에 본격적으로 화교가 들어오게 된 것은 대략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임오군란 이후 유입된 청나라 상인들이나 쿨리 등이 시작이다. 다른 화교들도 그렇지만 이들은 음식점 사업, 건설 노동자로 유입되었다.
이들이 초기 주로 활동했던 곳은 짜장면이 탄생한 곳이라고도 알려진 인천 월미도 근처의 조계지였으며, 쿨리 노동자를 위한 음식을 만들다가 점차 고급화하여 부유한 한국인과 일본인들까지 상대하는 음식점이 성행하게 된다. 그래서 이 때부터 청나라 음식이라 청요리(淸料理)라고 했는데, 화교 인구가 많았던 서울이나 부산에도 유명한 청요릿집이 몇 군데 있었다.
당대 한국 사회에서 청요릿집이 차지하는 위상은 염상섭의 소설 <삼대>를 봐도 알 수 있다. 조상훈이 친구들을 불러모아 집에서 몰래 마작판을 벌이면서 청요릿집에서 요리와 함께 빼갈을 배달시키고, 이 마작 모임에서 시중을 드느라 쉬지도 못하는 집안의 하인들이 '하다못해 요리라도 좀 남아있으면 기름진 청요리 맛이나 보는 재미로 참을 텐데 걸신 들린 것처럼 접시를 싹싹 비우니 힘들기만 하고 좋은 게 없다'고 투덜거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렇듯 한국에서 청요리는 개화기부터 1970년 대까지 가난한 사람들은 맛보기 힘든 별미였고, 청요릿집은 손님들에게 비싼 접대를 하는 고급 레스토랑과 같았다. 또한 대도시의 청요릿집은 사업과 정치의 장이 되기도 했다. 홀이 아닌 방이 따로 있어 비밀이 어느 정도 보장되었으며, 코스 요리를 시키면 오랫동안 앉아있을 수 있기 때문에 여유롭게 논의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오래된 중국집에 가면 10명 내외의 소그룹이 식사를 하며 조용히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별도의 룸을 만들어 놓은 경우가 있다.
현대에도 별도의 방이 마련되어 있는 중국집이 있고 이런 방은 대가족 식사나 직장인 회식 용도로 예약을 잡는 경우가 많다.[3] 또한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 <그 남자네 집> 을 보더라도, 한국전쟁 직후 가난했던 시절로서는 드물게 호사스러웠던 주인공의 결혼식 풍경을 설명하는 장치로 등장하는 것이 청요릿집을 빌려 벌인 피로연과 기름진 청요리를 양껏 먹는 가난한 친척들의 모습이다.
한국식 중국 요리가 끈적하고 진하고 기름진 맛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발전한 것 역시, 하층민도 종종 맛 볼 수 있었던, 호사의 상징 중 하나가 중국 요리였던 것과 관계가 깊다고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시기를 거치며 일본 문화의 영향도 제법 받았다. 일단 우동, 짬뽕이란 단어부터가 일본식 발음[4]이고, 밑반찬으로 단무지와 양파가 포함된 것과 그 양파를 과거엔 '다마네기'라고 꽤 불렀던 것도 이러한 영향의 일부분이다.
이쑤시개를 '요지'로, 요리사를 '이다바'[5]로 불렀던 것 등도 마찬가지다. 아예 일본어가 섞인 야끼만두, 중화 야끼우동[6]이라는 표현도 있다. 당시엔 고급 요리였던 청요리집에 자주 방문할 수 있었던 계층은 부유한 일본인 지배층이었기 때문에 이들에게 영합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난 것이라고 추정된다.
그러다가 광복 이후 중국 국공내전이 종식되면서 많은 화교들이 본국으로 돌아가고, 남은 화교들도 화교 탄압 정책과 맞물려 생활고를 겪자 대부분 요식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이 때 한국식 춘장이나 현대적인 한국식 중화 요리 메뉴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한국 전쟁 이후 서방 원조로 밀가루가 대중화되고 이후 정부가 혼분식 장려 정책을 추진한 것 등과 맞물려 화교가 운영하던 중국집들도 인기를 끌게 된다. 당시 화교 대다수가 중국집 사장일 정도였다. 그렇게 중국집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점차 화교가 아닌 한국인이 운영하는 중국집들도 많아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 더 다양한 한국식 중화 요리가 개발되고 맛도 점점 한국식으로 바뀌면서 현재에 이르게 된다.
2000년대 이후에는 조선족 유입 등으로 이전에는 없었던 양꼬치, 마라탕 등으로 대표되는 만주 요리가 등장하고, 그 외에도 현지화되지 않은 외국 요리[7]를 파는 식당들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본토 산동 요리나 홍콩 요리 등 한국식 중화 요리와는 또 다른 중국 요리를 선보이는 중식당도 한국에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중식당들도 10~20년간 한국 손님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이전 세대의 중국집과 마찬가지로 재료와 요리법에서 은근한 현지화가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2010년대 이후로는 미국식 중화 요리, 일본식 중화 요리도 한국에 들어오는 상황이다 보니 한국식 중화 요리는 향후 많이 바뀔 수 있다. 사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짬뽕부터가 일본식 중화 요리 중 하나인 나가사키 짬뽕이 한국에서 현지화된 것이다.
3. 중국 요리와의 비교
그나마 21세기 들어 한국 드라마 등의 영향으로 짜장면을 비롯한 한국식 중화 요리 자체를 인지하는 중국 본토인들과 대만 사람들이 많이 늘기는 했다. 당장 2018년 방영된 '현지에서 먹힐까-중국편'을 봐도 짜장면 맛이 궁금하다며 먹어보고 좋아하는 중국인들이 많았다.물론 이 경우는 전 인류 대표급 한국식 중화 요리 장인인 이연복이 즉석에서 만들어준 것이니 더 맛이 좋을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짜장면은 맛이 비교적 평준화되어있는 만큼 웬만큼 상태 안 좋은 혹은 불어터진 짜장면을 먹지 않는 한 외국인들도 호불호가 그렇게 심한 요리는 아니다. 오히려 짬뽕처럼 매운 요리가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편이다.
물론 중국이나 대만의 작장면에 익숙한 사람들은 한국식 짜장면이 너무 달고 느끼하다며 싫어하기도 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1970년대 재한 화교들이 대만에 와서 한국식 중화 요리를 팔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인기가 없었다. 그러나 한류 붐이 인기를 얻으면서 짜장면 역시 인지도가 높아졌다.
중국 대륙에서는 1990년대부터 한국 교민들이나 한국에 일하러 왔다가 돌아온 조선족들의 영향으로 한국식 중화 요리 전문 식당들도 코리아타운이나 조선족 자치주를 중심으로 개업했고, 2000년대 초반에 한류의 인기를 타고 유명해지면서 짜장면 맛이 궁금한 중국인들도 와서 먹어보기도 했다.
한국식 중화 요리로 가장 대표적인 메뉴 2가지를 꼽자면 역시 짜장면과 짬뽕일 것이다. 이들은 요리의 내용이 본토 요리와 비교해서 크게 바뀐 사례로, 짜장면은 산둥성에서 먹던 국수 요리[8]가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개량을 거쳐 정착된 예이며, 짬뽕은 나가사키 짬뽕이나 우동을 비롯한 일본식 중화 요리[9]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다시 바뀐 사례이지만 중국집에서도 팔고 있다. 특유의 불맛이 특징이다.
한국식 중화 요리는 상대적으로 녹말, 식용유[10], 조미료가 많이 들어가는 편이라 끈적하고 진한 맛을 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기름을 아낌 없이 쓰기 때문에 느끼해서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이런 맛이 나지 않으면 중화 요리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중국 요리도 상당수의 요리가 녹말과 기름을 자주 쓰기는 한다. 중식에서 기름에 튀기는 것은 단순히 바삭한 맛을 내는 것 뿐만 아니라 지용성 불순물을 드라이 클리닝하듯이 걸러내면서도 재료 특유의 맛을 잃지 않게 하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결정적인 차이점으로, 향신료 사용 방식에선 차이가 상당히 크다. 물론 두반장, 굴소스, 첨면장, 라오추 등 중화 요리의 가장 기본적인 양념은 그대로 사용되긴 하지만, 한국인에게 매우 호불호가 갈리는 고수와 혀가 아린 초피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물론 아주 다르지만은 않다. 대표적으로 양파를 엄청 많이 사용하는데, 온갖 소스에도 양파가 들어가고, 볶음밥에도 들어가며, 상기한 대로 밑반찬으로 양파가 나오는 것도 한국식 중화 요리의 기반이 된 산동 요리에 양파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당시 화교 농민들이 양파를 키웠다. 그리고 느끼하지만 양파가 밸런스를 잘 잡아주며 감칠맛이 나는 것이다. 다만 양파를 대량 구입할 수 없던 시기엔 직접 양파를 다듬어야 했던지라 주방이 눈물바다가 되곤 했다. 더불어 전통적으로 쇠고기를 선호해왔던[11] 한국에서 돼지고기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요리 분야인 것도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중국 요리[12]의 영향이다.
참고로 한국식 중화요리는 고향인 산동성보다 과거의 산동 요리의 특색을 더 잘 보존하고 있다. 오히려 한국식 산동 요리가 칭다오 등에서 먹을 수 있는 원본보다 더 전통을 보존하고 있다. 대약진운동이나 문화대혁명 등 중국 대륙의 초대형 사건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기도 했고, 현지에서는 유행에 따라 요리도 쉽게 바뀌는 반면 이민자들은 최초에 떠나오던 시대의 방식을 고수하여 당시의 특색을 더 잘 보존하는 현상이 있기 때문이다.
4. 기타
한국식 중화 요리 하면 배달 음식으로 유명하다. 정작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 대륙에선 2000년대 초반까지도 음식 배달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다. 초창기 한국의 중국집에선 나무 가방으로 배달을 했으며, 1980년대 철가방이 등장하면서 이후 본격적인 배달의 기수가 되었다. 21세기 이후부턴 플라스틱 가방도 가볍고 들고 다니기 편해서 점차 늘어가는 추세인 듯. 자전거를 이용하던 시절도 있었으나, 배달용 스쿠터가 등장하면서부턴 보다 편하고 빠르게 배달할 수 있게 되었다.중화요리집은 다른 음식점들에 비해 체력이 많이 소모된다. 일단 웍부터가 무게가 많이 나가고, 중식도 역시 다른 부엌칼에 비해 무게가 꽤 무거운 축에 속한다. 그리고 볶음 요리가 많은 특성 상 화로가 큰 데다 화력도 매우 세다. 그래서 중화권에서 외식 문화가 발달한 것이다. 중국 요리 중 가정에서는 하기 힘든 것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기름 냄비 앞에서 요리를 하거나 센 불에 바로 볶아내는 형식의 요리가 많으므로 주방에 들어가면 마치 사우나를 방불케 할 정도다. 국수 역시 수타면이 대부분인지라 요리사 중 반죽 담당 역시 체력을 많이 소모하는 작업을 수시로 반복한다. 그 외에도 마무리할 때도 기름을 제대로 정리해야 하는 등 고된 면이 있다.
그래서인지 일반적으로 오랫동안 중국 요리를 해 온 주방장 같은 경우 팔뚝이 엄청 굵고 기름이 튀어서 생긴 화상 자국이 피부병처럼 보일 정도로 많다. 그리고 수타면 요리사들도 체력 관리를 제대로 해야만 버틴다. 또 이렇게 고된 일이다 보니 옛날의 중화요리집은 여자 주방장을 보기가 꽤나 어렵던 때가 있었다.[13]
그렇지만 여성 주방장을 보기 힘들다는 건 좀 옛날 얘기고, 직업의 성별의 문턱이 많이 낮아지는 추세인 요즘에는 정지선 셰프, 박은영 셰프, 이문정 셰프 등 인정받는 여성 중식 셰프들도 나날이 많이 등장하는 추세이다.[14]
중국집 밑반찬으론 단무지, 양파가 대세였고, 지금도 그러하나, 김치, 깍두기를 주는 곳도 종종 있다. 하지만 화교가 운영하는 현지식 중화요리점에서는 이런 것들보단 절인 오이와 찐 땅콩 등을 내주는 경우가 많다. 21세기 들어선 중국식 장아찌 자차이를 주는 곳도 많아졌다.
일단은 중화요리라서인지 한자에서 따 온 이름이 많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발달한 요리라 일본어의 영향이 뒤섞인 단어도 있고 하다 보니 정작 메뉴명은 한국식도 중국식도 일본식도 아닌 국적 불명의 해괴한 명칭들이 생각보다 많다. 정확히는 산동성에서 쓰던 산동 쪽 방언과 만주어, 일본어 심지어 재한 화교와 활발히 교류한 타 지역 방언인 민남어, 광동어, 객가어 등이 한국식 한자 독음과 섞여서 희한한 명칭들로 바뀌었다.
한 예로 호이구로의 경우만 해도 원래 회과육인데 일본식 독음으로 들어와 호이구로라고 알려졌다. 깐풍기 역시 乾烹鷄로 표준 중국어로는 발음이 다르며, 난자완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일본어 영향으로 볶음요리를 야키로 일컫는 경우들도 있다. 군만두도 한 세대 전에 야키만두라고 부르던 때[15]가 있었다. 중국집 메뉴판의 라조기, 깐풍기, 유린기, 기스면 등의 '기'는 닭(鷄, 계)을 산동성 동부 지역 발음으로 읽은 것이다. 표준중국어는 '지'(jī)라고 읽는다. 심지어 샥스핀(Shark's fin)은 그냥 영어다.
5. 종류(목록)
- 면류
- 짜장면 - 한국식 중화 요리를 대표하는 요리 1. 외국에서도 한국 음식으로 주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음식점에서 같이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 짬뽕 - 한국식 중화 요리를 대표하는 요리 2. 이 쪽은 일본식 중화 요리인 나가사키 짬뽕이 다시 한국에서 변형된 것이다.
- 짬짜장 - 단순히 그릇을 반으로 나눠 짜장면과 짬뽕을 각각 담아주는 짬짜면과는 다르게, 한 그릇에 둘을 같이 넣고 섞어먹는 음식이다.
- 우동(중화 요리) - 일본 음식 우동과 다른 음식. 일제강점기에 유입되면서 비슷하게 생긴 일본식 우동과 같은 이름으로 불리게 된 듯하다.
- 울면
- 중국냉면 - 진짜 중식에서 유래한 것인지 기원이 불분명한 음식이지만 많은 중식당에서 판매한다. 주의할 것은 중국집 메뉴판에 중국냉면이 아니라 그냥 '냉면'이라고만 적혀있는 경우 그냥 한국식 평양냉면인 경우도 많다.
- 기스면
- 우짜
- 밥류
- 볶음밥 - 한국식 중화 요리를 대표하는 요리 3. 중국식 차오판을 짜장 소스와 비벼먹는 것으로 짜장 소스는 얹어주는 경우도 있고 따로 주는 경우도 있다.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새우볶음밥, 치킨볶음밥 등의 메뉴를 파는 집도 있다.
- 짜장밥 - 위의 짜장 소스와 비벼먹는 볶음밥과 다른 음식으로, 흰쌀밥에 짜장 소스를 비벼먹는 음식이다. 중식당에서 별로 인기있는 메뉴는 아니며 급식, 병영식에서 주로 제공되는데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음식.
- 짬뽕밥 - 짬뽕과 같은 국물에 중화면이 없는 대신 흰쌀밥을 같이 제공하는 음식. 그냥 짬뽕을 시켜먹은 후 공기밥을 추가해서 말아먹는 사람도 많다.
- 중화비빔밥 - 볶음짬뽕의 밥 버전으로, 볶음덮밥이라고 보면 된다. 다만 중화비빔밥은 야키덮밥에서 국물이 없는 스타일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
- 송이덮밥 - 진짜 송이버섯은 매우 비싸기 때문에 배달 위주의 동네 중국집에서는 보통 새송이덮밥으로 판다.
- 마파두부밥 - 한국 중식당에서 파는 마파두부는 중국 본토식보다는 대부분 일본식 중화 요리를 거쳐 변형된 형태에 가깝다.
- 잡채밥 - 한국 음식인 당면 잡채를 흰쌀밥에 얹어먹는 음식이지만 주로 중식당에서 판매한다.
- 고추잡채밥 - 위의 잡채와 다른 중국식 고추잡채를 흰쌀밥에 얹어먹는 음식.
- 잡탕밥 - 광동밥이나 특밥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 제육볶음 덮밥 -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 한식이긴 한데, 중국집 특유의 웍 불맛 및 기름에 볶는 레시피와 시너지가 좋아 다수의 중국집이 제육덮밥을 메뉴로 걸어놓는다.
- 오므라이스 - 오므라이스 자체는 일본에서 왔지만 제육볶음과 마찬가지로 중국집 중 오므라이스를 취급하는 곳이 꽤 많다. 일본식 오므라이스와 다르게 중국집 볶음밥에 계란지단 올리고 짜장 대신 케찹만 얹어서 오므라이스라고 파는 경우가 많다.
- 돼지고기류
- 탕수육 - 한국식 중화 요리를 대표하는 요리 4
- 김치피자탕수육
- 꿔바로우 - 2010년대 이후 유행하기 시작한 양꼬치, 마라탕 전문점들이 꿔바로우라는 메뉴를 많이 취급하는데, 이름만 꿔바로우고 그냥 한국식 탕수육과 비슷한 음식을 파는 곳도 많다.
- 사천탕수육
- 라조육
- 깐풍육
- 유린육
- 경장육사 - 춘장에 돼지고기를 볶아 건두부에 싸먹는 요리. 어향육사에서 어향장이 춘장으로 변형된 것으로 추정된다.
- 덴푸라 - 요즘엔 잘 안보이는 메뉴이지만, 옛날엔 탕수육에 버금갈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요리다. 고기튀김에 소스를 붓지 않고 그대로 내오는 것이 특징으로, 보통 간장에 찍어먹는다.
- 해산물
- 해삼탕
- 해삼주스 - 이름과 달리 주스(Juice)와는 전혀 관련도 없고 해삼은 쥐꼬리만큼 적게 들어가며 그냥 돼지고기 요리일 뿐이다. 가격대가 꽤나 높은 편.
- 잡탕
- 유산슬 - 원래 광동 요리였는데 한국 화교들이 대만 등과 교류하면서 수입되었다. 광동성 쪽 화교들은 한국에 온 적이 없었는지라 도입 당시 대만이나 홍콩/마카오를 거쳐서 약간의 변형이 일어났고 다시 한국에서 현지화되어 광동성이나 같은 문화권인 홍콩, 마카오에서의 원본과는 크게 달라졌다. 흰 쌀밥 위에 유산슬을 얹어주는 유산슬밥이라는 메뉴도 있다.
- 누룽지탕
- 깐쇼새우 - 튀긴 새우에 케찹을 넣어 만든 칠리 소스를 얹어 먹는 요리. 일본식 중화 요리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메뉴로, 乾燒(건소) 중 燒자를 일본어로 "야키"로 읽는다.
- 멘보샤
- 크림새우 - 사실 생크림 요리가 아니라 마요네즈 베이스 소스로 만든 깐쇼새우의 바리에이션이다. 일식으로 종종 오해된다.
- 만두 - 한국식 만두도 있지만, 한국식 만두는 이북 음식이라 분단 이후로는 중국에서 들어온 만두가 많다. 다만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일반적인 중국집에서는 군만두, 물만두 정도만 볼 수 있고, 다른 만두는 만두전문점에서 주로 볼 수 있다
- 군만두 - 일본의 야키교자가 한국식으로 현지화된 것이다. 배달 중식을 시켜먹을 때 요리류를 주문하면 서비스로 주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은 직접 빚지 않고 시판 냉동 군만두를 튀겨주는 것이다.
- 물만두 - 본래 만주족들이 한족들이 먹던 만두를 변형시켜 밥반찬으로 먹었던 것이 출발점이었다.
- 왕만두 - 중국의 바오쯔(包子)가 한국에서 현지화된 것이다. 더 변형되어 찐빵이 되기도 한다.
- 완당 - 한국식 훈툰, 광동성에서는 훈툰을 윈툰이라고 부르는데 부산에서는 완당이라는 이름으로 팔기도 한다. 부산 내 화교들이 대만, 홍콩/마카오 및 동남아시아 등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유입된 것이었다.
- 호빵
- 빵류
- 기타
- 콩국 - 더우장, 중국이나 대만에서는 아침식사로 자주 먹는데, 주로 영남지방에서는 콩국이라는 이름으로 팔기도 한다
- 양꼬치 - 일반적인 중국집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고 양꼬치 전문점에서 볼 수 있다.
- 한국식 마라탕 - 2010년대 중반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음식으로 일반적인 중국집에서는 잘 취급하지 않으며 마라탕 전문점에서 취급하거나 양꼬치 전문점이 함께 취급한다. 중국에서 들어온지 얼마되지 않아 큰 차이점은 없으나 향신료를 적게 쓴다던지 땅콩소스를 사용한다던지 해서 어느정도 한국인 입맞에 맞게 현지화되기는 했다.
- 마라국밥 - 마라탕 국물에 밥을 말아 국밥처럼 먹는 것. 일반적인 마라탕보다는 연하게 국물을 낸다.
- 맛탕 - 중국의 바쓰(拔絲)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강력하다. 과거에는 중국집에서 팔기도 했지만 요즘은 보기 힘들다.
[1] 일부 중국 중화요리전문가들이 짝퉁 중국요리라고 손가락질 한다고 하는데 원본이 되는 음식과 차이가 많이 나기때문에 동일한 음식이라 보기 힘들고 한국인 또한 중국집에서 먹는 중화요리가 중국 본토의 음식과 다르다는 걸 처음부터 인지하고 있기때문에 짝퉁이니 욕해도 딱히 틀린말이 아니라서 그러려니 한다[2] 참고로 동북3성 요리도 몽골 요리, 한국 요리, 러시아 요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국, 러시아 요리의 경우 근현대 시기 이 지역에 조선인, 러시아인들이 몰려와 살던 영향을 받았다.[3] 요정 정치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직후 당시에는 한국의 서비스업이 그리 발달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뭔가 모의하기 위한 모임을 가질 수 있는 접객업소가 별로 다양하지 못했다. 비싼 접객업소로는 궁중요리 등 전통적인 한국 고급 요리와 술, 여성 접대원이 나오는 요정, 청요릿집이 있었다.[4] 짬뽕의 원류를 중국 산동성의 '초마면'으로 보는 설도 있지만, 기존 각주의 설명대로 초마면이 짬뽕의 중국어 명칭이므로 이로 바꾸는 언어 순화 운동을 벌인다는 이야기는 모순이 있다. 왜냐면 일부 화교가 운영하는 중화요리점에서는 이미 초마면이라는 하얀 국물의 중화요리집의 '우동'에 가까운 메뉴를 파는 곳이 있는 데다, 지금의 짬뽕과는 전혀 다른 요리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동일하다고 생각할 순 없기 때문이다.[5] 실제 일본 발음은 '이타바'(いたば)[6] 일본의 야끼교자나 야키우동과는 다른 요리. 대구의 한 가게에서 개발되었다. 21세기 수도권으로 오면서 '볶음짬뽕'이라는 좀 더 이해하기 쉬운 명칭으로 바뀌었다. 사실 이 요리를 개발한 사장도 일본식 어감 때문에 메뉴명을 바꿀까 고심하기도 했다고 했었다.[7] 가령 베트남 요리, 태국 요리, 인도 요리, 몽골 요리, 파키스탄 요리 등이 2010년대 이후 전국적으로 크게 늘어났다.[8] 이른바 작장면. 헌데 이 작장면조차도 중국 북부 일부 지역에서 먹는 요리라 남부 쪽 사람들은 잘 모른다.[9] 초마면이 기원이란 말도 있으나 이쪽이 더 유력한 설이다. 자세한 내용은 짬뽕 항목 참조.[10] 과거에는 돼지기름(라드)를 자주 썼으나 가격의 상승, 배달 시 기름이 굳거나 배관이 막히는 관리상의 문제 등 복합적 원인으로 대부분 콩기름, 옥수수유, 카놀라유, 포도씨유를 주로 쓴다.[11] 현대에는 돼지고기 소비량이 많긴 하지만 이는 양돈산업이 정착하여 돼지고기가 쇠고기에 비해 훨씬 싸졌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한반도에서는 돼지고기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쇠고기를 많이 먹었고, 선호도는 현대에도 쇠고기가 더 높고 고급으로 취급받는다.[12] 단적으로 말해서 돼지고기 생산, 소비, 수입 모두 중국이 세계 1위 국가다. 그리고 대만 역시 1인당 돼지고기 소비가 많다. 기본적으로 중국어에서 肉(고기 육)=돼지고기이다. 그래서 동파육, 회과육, 탕수육 등 육이 붙은 요리는 돼지고기 요리다. 반면 한국에서는 아무런 수식 없이 肉자를 쓰면 보통 소고기이다. 육개장, 육회 등. 한국은 소고기의 우세가 근소해서 肉이 붙어도 소고기가 아닌 경우도 꽤 있다고 했는데 보통은 돈육이라고 친절히 표기된다. 제육볶음의 제육이 저육의 변형이다. 국내에 들어온 이슬람권 외국인 노동자들은 이를 알고 돈 자가 들어가지 않은 고기 요리를 시키는 경우가 많다.[13] 중국은 고대부터 석탄을 민간 연료로 널리 사용했으므로 센 화력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요리가 많이 발전되었다. 옛 중식 주방에선 알몸에 앞치마만 입고 요리를 했었다니 말 다 했다.[14] 사실 '요리는 여자나 하는 것'이라는 가부장제스런 통념은 실제로는 가정집 주방에서나 통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20세기까지도 식당에 가면 요리사는 남초였다. 또 과거 동양, 서양을 가리지 않고 군주, 귀족을 모시는 요리사들도 죄다 남자였고, 유명 호텔, 레스토랑의 요리사도 오로지 남성들이었다. 대장금에 나오는 나인들도 사실은 보조 역할이었으며, 군주의 식사를 조리하는 조리장도 전부 남자였다. 오스만 제국에서 술탄의 식사를 책임지는 요리사들도 당연히 남자였고, 이들은 똑같은 요리라도 올라오면 얄짤없이 목이 날아가는 처지라 신메뉴 개발에 목숨을 걸어야 했다. 현대의 예를 들어도 영국에서 잘 알려진 고든 램지, 제이미 올리버, 마르코 피에르 화이트나 한국의 유명 중식 주방장인 이연복까지 요리사들은 상당수가 남자다. 사실 조선시대에도 주방장 '숙수'는 남성이고, 여성은 보조 업무만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여성 요리사들도 제법 많아졌다. #[15] 한중일 삼국 명칭이 섞였다.